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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샘의 시창작 강의 (33)강 : 비유는 시창작의 원리(D)
*감상음악 : 작자미상
클릭 : http://cfile6.uf.tistory.com/media/24352F50513366820A2F2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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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악(黃岳)의 눈길
맑은 샘
흰눈 쌓인 길,
맑게 뽀드득 고울새라
발자욱 시쓰고 그림 그리면
시샘하는 *마칼바람 낙엽들 삭아
아득한 순록의 눈물 덮혔네
시이소오 인생길 순결(純潔)하라며
깔닥길 오르는 정열(情熱)의 치기(稚氣)들
시리게 감싸고
그래도,
형제봉 올라
첩첩산중 겹겹이 구름 흐르면
비로소 지혜의 빛 세속의 뜻없어 반도의 중심
은빛초롱 산호초 가지들 노래하며
푸른거울, 빛의 그림 그리네
둘 아닌 범종(梵鐘)소리
구불구불 솟아누운
욕심없이 맑은 길
‘데엥’
한마리 학(鶴) 앉은 자리
고백의 눈물 서러워 고울새라
조심한 내리막길 순결(純潔)토록
눈길은 뽀드득
지나온 길 잊으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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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 HWANGAK OF THE SNOW
Clear the way, white snow piled, "ppodeudeuk"
Footprints draw pictures and write poetry
Windshear is jealous of the leaves
Tears of a distant reindeer covered
Your way of life, purity of seesaw
The stroke of passion rising in her head, cool wrap
Still, we are up "hyeongjebong"
Flowing mountain cloud layers
Birobong, there is no worldly mean and
wisdom of light in the center of the peninsula
Lanterns light silvery coral branches are the song
and paint picture of the light at the blue mirror
Two non-bel‘s sound said
winding road without greedy Lying, well clear
"De--eng"
Even if the tears of confession
Purity to be careful on the way down
snow way of the "ppodeudeuk"
Forget the past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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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 HWANGAK DE LA NEIGE
Dégagez le passage, la neige blanche empilés, "ppodeudeuk"
Empreintes de dessiner et écrire de la poésie
Cisaillement du vent est jaloux des feuilles
Les larmes d'un renne lointain couverte
Votre mode de vie, la pureté de bascule
Le coup de passion naissante dans sa tête, enveloppement froid
Pourtant, nous sommes jusqu'à "hyeongjebong"
Couches nuageuses de montagne qui coule
Birobong, il n'y a pas moyen mondaine et
la sagesse de la lumière dans le centre de la péninsule
La lumière des lanternes de branches de corail argentées sont la chanson
et peinture image de la lumière dans le miroir bleu
Le son de deux non-bel dit
route sinueuse sans mentir gourmand, bien à l'écart
"De - eng"
Même si les larmes de la confession
Pureté d'être prudent lors de la descente
façon de neige de la "ppodeudeuk"
Oubliez le chemin pass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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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
*황악(黃岳)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과 충청북도 영동군 매곡면에 걸쳐 있는 황악산(黃岳山)을 지칭함.
높이 1,111m. 일명 황학산(黃鶴山)이라고도 불린다. 삼도봉(三道峯, 1,177m)·대덕산(大德山, 1,290m)과
더불어 소백산맥의 연봉을 이룬다. 침식에 대한 저항력이 강한 편마암으로 되어 있어 높은 산을 형성하게 되었다.
산의 북쪽에는 괘방령(掛傍嶺), 남쪽에는 우두령(牛頭嶺)이 있어 김천시와 영동군을 연결하는 교통로가 되고
있다. 산 전체에 수목이 울창하고 특히 동쪽에 있는 직지사(直指寺)로 향하여 흐르는 계곡은 매우 경관이 좋다.
직지사 서쪽 200m 지점에 있는 천룡대(天龍臺)로부터 시작되는 능여계곡(能如溪谷)은 봄에는 산목련·진달래,
가을에는 단풍으로 메워지며, 직지사에서 1㎞지점에는 옛날 사명대사가 즐겨 찾았다는 사명폭포가 있다.
여기에서 갈라지는 내원계곡(內院溪谷)과 운수계곡(雲水溪谷)에는 작은 규모의 폭포들이 많아 계곡미를 더하여
준다. 산 동쪽은 직지사를 가운데 두고 능여암·운수암·내원암 등의 암자들이 자리잡고 있다.
*마칼바람 : 겨울 북동풍, 겨울 산등성이에서는 죽음의 칼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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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연휴가 끝나고 또 시작이다. 곧 봄이 멀지 않은 것 같다. 퇴근 후 저녁을 먹고 고요히 필자의 내면으로 침잠하는 필자 시의 음
악을 들으면서 또 이 강의를 시작한다. 보다 낳은 내일을 위해 여러분도 항상 열심히 공부하시거나 일하시면서도 미래의 꿈을 결
코 포기하지 마시라...미래의 꿈이 없는 사람은 열심히 일하며 산다해도 산 송장이나 다름이 없을 것이다. 필자가 잘 아는 초등학
교 동창이면서 예전에 아주 유명했던 한 여배우가 있는데 예전과 달리 필자의 나이가 되면 아무리 옛날 유명세를 탔던 배우라도
인기가 좀 떨어진다. 항상 시간이 나서 데이트를 하면 그 친구는 초등학교 동창인 필자가 자신의 내밀한 마음의 걱정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였기에 젊었던 시절 자신의 앞날을 걱정하기도 했었다.
그때 나는 ‘우리가 중년이 되었을 때를 대비하라’며 조언한 적이 있었다. 대게 여배우들은 20대하고는 달리 30대 이후부터는 스타
의 조명을 받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 친구는 메이져 방송국의 공채 텔렌트이기도 하면서 큰 국립극장에 ‘햄릿’의 주연급 여배우
로 서본 명배우이기도 했는데 예전 필자의 조언대로 예수님을 믿고 필자와 성경공부를 같이 열심히 했다
.
여러 가지 세속적 유혹을 항상 잘 뿌리치고 점점 더 배우로서 필요한 철학을 공부하더니 인간의 철학이 가진 한계를 느끼고 한 오
년전부터 전문 산악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동안 요 근래 방송가에 터졌던 여러 잡스러운 일들은 법학공부를 한 기자인 필자
에게 알게 모르게 접수된 정보들이 좀 많다.세상의 썩은 부분을 도려내야 하는 일도 공개적으로 비공개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점들
도 많은데 이제 나는 비공개 저승사자 역할은 그만 할련다. 세상에 비밀은 없고 얼마나 드라마틱했던지 ^*^ 그녀는 전문적으로
점점 더 전문 산악인이 되어가더니 요즈음은 빙벽도 마음데로 타는 여성 전문 산악인이 되었다. 아마 영화 ‘클리프 헹어’에 나오는
여배우나 왠만한 남자가 좀 등산을 한다고 깝죽거리며 내 친구와 경쟁한다면 큰 코 다칠 것이다.^*^ 가냘파 보이는 체력의 몸일 것
같은데 그녀의 등반체력내공은 아마 육군 특전사 친구들과 맞먹을 정도일 것이다.
다른 여배우들도, 후배들도 이제는 다 스크린에서 빠져나가는 나이에 그 친구는 여전히 메이져 방송국에서 우리나라 온 국토의 산
을 돌아다니면서 전문 산악방송을 하고 있다. 그 프로는 얼굴 예쁘지, 아무나 가지 못하는 험난한 코스를 여성이 막다니지, 그 친
구밖에 프로를 진행할 적임자가 없는 것 같다. 아예 PD, 작가, 스태프들을 자기가 진두지휘해야할 정도다. 이번 연휴에 황악산을
다녀오면서 필자에게 좀 근사한 시를 써 달라고 해서 써 보았던 시가 바로 위의 시 “황악(黃岳)의 눈길”인데 초등학교 동창친구
를 자랑해서 뭐 하지만 필자가 보아도 그녀는 대단하다.
그것은 그녀가 젊고 힘든 시절, 친구의 진실한 마음의 조언을 경청했고 시기질투가 매우 강한 방송가에서 정정당당한 실력배양,
남을 밟기보다 치켜세워주는 아량과 사랑을 발휘했기에, 철저히 자신만의 꿈을 가지고 실현시킬려고 노력했기에 가능한 일이었
다. 요즈음은 모 대학 연기전공 강사이기도 한데, 친구 좋다는 것이 무엇인가? 곧 필자가 해외에서 활동도 하게되면 우리는 근사
하게 유럽행 크루즈 여객선을 타고 시와 글을 쓰며 즐거운 글로벌 문화여행도 할 그 구상을 필자는 기획하고 있기도 하다.
여행사 여행루트는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을 것 같다. 화면을 받아야 하니 글과 실력이 좋으면 미모가 아니고 미모가 좋으면 글과
실력이 아니니 원,,,^*^ 필자만의 문학,예술 자유주의 정치,경제,법 사상사의 역사문화적 루트를 밝으며 1300CC의 두 오토바이크
로 배낭을 메고 미주와 유럽을 영국에서 스페인까지, 문화,예술 유적지,중심지를 돌아볼 계획이다. 마지막에는 로마, 중동, 북아프
리카로, 2차는 아시아 대륙이다. 그리 하려면 왠만한 새침떼기 아가씨의 실력으로는 어렵다
.
그정도는 받혀 줄만한 자금력, 풍부한 인문교양, 1300cc의 오토바이크를 몰 수있는 체력, 외국어실력, 화면발 받는 섹시한 육체와
미모는 받쳐주어야 가능한데 그 친구가 글과 시, 외국어에만 더 노력하면 곧 갖추어질 것 같다. 아직 후보들은 많지만...^*^누구로
결정되지는 않았다. 국제적 사회복지 봉사기획도 함께 더하여 포함되었으니 얼굴은 물론 마음씨가 예뻐야 함도 물론이다. 인생은
다 자신하기에 즐겁기도 슬프기도 한 것이다. 필자에게 시를 배우시는 여러분은 항상 즐거운 인생들이 임하기를 축복, 기원한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자신만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아름다운 길, 자신의 꿈은 절대로 포기하지 마시라...자,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비유는 시창작의 원리 (D)" 제유와 환유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4) 제유와 환유
제유(提喩)는 은유의 한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겉으로 드러나 있는 한 부분(보조관념)이 안으로 숨어 있는 전체(원관
념)를 비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드러나 있지 않은 전체를 그 사물의 일부분으로써 대신 표현하는 방법인 이 제유는 대유
의 일종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제유의 예를 들어보자.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는 표현에서 “빵”은 빵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음식물, 먹을 것 전체를 대신 가리키는 제유인 것이다. ‘푸른 눈’이 서양인을 의미하는 것이나 ‘약주’가 모든 술을 의미하는
것이나 ‘돛’이 배를 의미하는 것 등이 모두 이 제유의 보기들이다.
노래하리라 비 오는 밤마다
우리들 서울의 빵과 사랑
우리들 서울의 전쟁과 평화
인간을 위하여
인간의 꿈조차 지우는 밤이 와서
우리들 함께 자는 여관잠이
밤비에 젖고
찬비 오는 여관잠의 창문 밖으로
또 다시 세월이 지나가도
사랑에는 사랑꽃
이별에는 이별꽃을 피우며
노래하리라 비오는 밤마다
목마를 때 언제나 소금을 주고
배부를 때 언제나 빵을 주는
우리들 서울의 빵과 사랑
우리들 서울의 꿈과 눈물
----정호승,<우리들 서울의 빵과 사랑>全文---
위 시에 등장하는 “빵”은 음식물이나 먹을 것 전체를 대신 표현하는 제유이다. 그런데 이러한 제유는 직유나 은유처럼 시 속에서
그다지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그만큼 시인들이 이 제유를 즐겨 사용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 까닭은 무엇보다도 풍부한 시적
의미나 새로운 의미를 추구하는 시 세계에서 제유는 이러한 기능을 하는데 별로 힘을 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인의 독특한 창조
성이 반영되지 않아서 독자로 하여금 특별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흠도 있다
.
환유(煥喩) 역시 대유의 일종으로서, 어떤 사물을 나타내는 데에 그것과 관계가 깊고 가까운 다른 낱말을 빌려 표현하는 비유이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 동네에 금배지가 왔어”라는 표현 속에서 ‘금배지’는 그것과 가장 관계가 깊은 대상, 즉 국회의원을 대신 말
하고 있는 환유라고 할 수 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를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표현하는 것도 환유이다. ‘별’이 장군을 의미한다
든지, ‘백의의 천사’가 간호사를 의미한다든지, ‘백악관’이 미국 대통령을 .상아탑‘이 대학과 지성을 ’소월‘이 소월이 지은 시들을,
’백의‘가 우리 민족을 의미하는 것 등이 모두 이 환유에 해당되는 것들이다.
흰 수건이 검은 머리를 두르고
흰 고무신이 거친 발에 걸리우다
흰 저고리 치마가 슬픈 몸집을 가리고
흰 띠가 가는 허리를 질끈 동이다 ----윤동주,<슬픈 족속>全文----
특별한 유추과정이나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더라도 독자들은 ‘흰 수건’, ‘흰 고무신’, ‘흰 저고리 치마’, ‘흰 띠’ 모두가 우리 민족을
의미하는 것임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그만큼 우리의 옛 의상생활 속에서 백의는 우리 민족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들로 미루어 볼 때 제유와 환유는 한 개인이 독창적으로 만들어내는 비유가 아니라 사회구성원들의 전체적인 생활 속
에서 오랜 동안의 경험이나 습관을 통해 형성되는 비유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제유와 환유가 가지는 특성은 앞에서 살펴본 직
유와 은유가 두 대상의 유사성에 근거하여 생성되는 것인 데 반해, 두 대상의 인접성에 근거하여 만들어진다는 사실이다. 즉 제유
와 환유가 생성되는 배경에는 두 대상의 유사성이 아니라 두 대상 사이의 관련성이 깔려 있는 것이다
.
이것을 예로 들어 살펴보자. 음식물 전체를 원관념으로 하고 있고 그것을 드러내는 보조관념인 ‘빵’은 먹을 것 전체와 이질적인 것
도 아니며 유사한 것도 아니다. 빵은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음식물 자체인 동시에 수많은 음식물 중의 하나일 뿐이다. 즉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너무나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있어서 우리는 쉽게 그 의미를 파악해 낼 수가 있는 것이다. 환유인 ‘백의’ 역시 우리 민
족과 유사성을 갖는 사물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즐겨 입던 의상의 색깔로 우리 민족의 의상생활과 깊이 관련되기 때문에 ‘백의’하면
자연스럽게 우리 민족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5) 의인법, 동화, 투사
의인법(personification)은 서정시의 본질과 원형을 가장 잘 구현하는 시의 근본적인 비유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이 세계 속에 살
면서 자신을 둘러싼 무수한 사물과 세계에 대립하게 되고 갈등과 부조화를 겪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인간은
불안하고 근심스럽고 고통스럽다. 그러므로 세계와의 갈등, 대립, 불화, 투쟁에서 벗어나 세계와의 일체감, 합일감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사물에 인격을 부여하는 의인법은 이처럼 세계와의 일체감, 동일감, 조화와 융화를 지향하는 서정시의
고유한 시정신에 바탕이 되어 주며, 세계와 합일에 이르는 통로를 마련해 준다. 사람이 아닌 사물이나 추상, 개념에 사람의 모습
이나 성질을 적응시켜 이해하는 이런 태도는 신(神)을 사람의 모습과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시를 창작하려는 지망생들 역시 하나의 사물을 ‘이것’이나 ‘저것’ 혹은 ‘그것’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인격인 ‘너’로 간주한 경험이 종
종 있을 것이다. 뭇 사람과는 구별되는 시인만의 심성이 이 의인관을 통하여 나타나는 것이다. 아주 오래전 필자가 초등학교 1학년
시절 필자의 여동생이 유치원에 다닐 때 동생은 밤에 ‘인형놀이’를 했던 기억이 난다. 금발의 드레스를 입은 고무인형을 동생은 마
치 자기 딸이나 여동생처럼 ‘너’라고 부르며 옷입히고 머리 빗고 잘 때도 안고 같이 잔다. 그때 동생이 인형을 두고 ‘너’라고 자기
혼자 말하였는데 사실은 인형과 대화한 것 아니겠는가? 그때의 ‘너’라는 동생의 심정과 상상의 인식, 또 필자의 유치원 시절 나는
의사였고 함께 소꿉놀이 하던 여자짝꿍이 환자인 인형에게 궁둥이를 탁탁 두드리고 주사기 장난감을 꼽는 시늉을 하며 ‘누워’라며
대상의 인형에 대해 말했던 점들 ,그런 것들이 바로 시인이 시적 대상에 대하여 가져보아야만 하는 인식이기도 하다. 무생물을 생
물화하고 무인격을 인격화시키는 비유인 의인법을 만드는 데는 두 가지 원리가 있다. 동화(assimilation)와 투사(prijection)의 원
리이다. 동화는 사물이나 세계를 시인 자신 속에 끌여들여서 대상을 인격화하는 것이다. 이 동화는 바로 ‘세계의 자아화’이다.
나, 잊지 못하리 그새 세월 많이 흘렀어도 우리 꿈 어찌 버릴 수 있으리 나, 기다릴 수 있으리 쑥구렁 속에서도 끝없이
가라앉는 정망 속에서도 지금껏 목매어왔거늘 누가 내 그리움 함부로 무너뜨리며 누가 내 서러움 감히 꺾어 없애리
햇무더기야 내 소중한 사람아
나, 포기할 수 없으리 그 많은 눈물 바쳤음에도 그 많은 피땀 흘렸음에도 길게 그림자나 늘이는 사람아 그림자로 웃기
나 하는 사람아 그 그림자 속으로 나, 더욱 숨죽일 수 있으리 그렇게 일어설 수 있으리.
---- 이은봉,<햇무더기야>全文---
‘햇무더기’는 태양을 친근하게 표현해 본 것으로서, 일종의 빛무더기를 뜻한다. 햇무더기는 시인을 둘러싸고 있는 대상이며 세계로
서, 시인의 주관적 자아와는 거리를 두고 존재하는 객관적 대상일 뿐이다. 이 시에서 시인은 그 대상을 주관적으로 자아화하기 위
해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다. 대상과의 합일 이라는 꿈을 끝끝내 포기할 수 없어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 이 시에서 시인인 것이다
그 대상을 자신의 내면으로 끌여들여 그와 융합함으로써 대립, 갈등, 부조화의 관계를 허물고 일체감을 형성하려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세계의 자아화’인 동화이다. 언젠가 필자가 본 외국영화중에 어느 여류작가와 태평양의 어느 한 외딴 섬의 어린이가
인터넷을 통한 상상력으로 엮어지는 줄거리의 작품이 있었는데 매우 ‘동화’기법을 많이 쓴 작품이었다. 해양과학자인 아버지가 태
풍으로 고립된 섬에서 아이의 바다표범, 갈매기, 작은 도마뱀과 아예 말을 주고받는 사실적 동화기법이 매우 재미있었다. 아름다
운 상상력이 매우 잘 발휘된 꽤 괜찮은 작품이었다. 결국 그 여류 작가는 아이의 아버지와 결혼을 하고 아이의 엄마가 된다.
‘동화’에 대한 기본 이론은 그렇지만 필자는 이 '동화'에 대해서 젊은이가 아닌 나이가 좀 든 중견의 시인으로서 여러 가지 생각해
보는 점들이 있기도 하다. 예전 필자가 중학교때인가, 고등학교때인가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소설가 ‘김동리’님의 “등신불”에 대
한 작품감상이다. 워낙 유명한 소설이라 나중 TV드라마로도 만들어졌지만 직접적인 시적 기법인 ‘동화’는 아니더라도 ‘동화’적인
사고로 불교의 사상을 작품에 투영한 작품이라고도 나는 본다. 불교의 가르침으로는 매우 괜찮은 작품일지 모르지만 기독교의 관
점으로 볼 때, 무슨 자신의 몸을 불로 태운다는 것은 매우 악마적인 일이다. 물론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더라도 과연 어린 소년,
소녀들의 정서에 좋은 도움이 될까?
그런데 시나 소설은 우리의 상상력이 만든 산물이지 실제의 세계가 아니다. 베트남전쟁에서 어느 스님이 몸에 불을 붙이고
이른바 소신공양하는 끔찍한 모습, 또 필자가 대학생이던 6,29시절 같은 학교는 아니지만 분신자살하던 데모데의 한 친구의 모습,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다. 어려운 말 할 필요없이 무엇인가 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작가의 작품이 독자들에게 끼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또 지난 강의에 언급한 퓰리처 賞을 받은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가 쓴 시 ‘The Applicant (지원자)’가 바로 의인법과 동화
비유기법을 쓴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실비아의 정신이 온전한가? ^*^바로 정신병자였다. 필자는 예전 우리의 어느 신춘문예 등
단작품에 매우 의인법과 동화기법을 많이 쓴 어느 매우 젊은 여류시 습작생의 당선 시를 본 적이 있는데 그 평은 더 가관인 적이
기억이 난다. 무엇을 상상력이 풍부하니 어쩌니 하며 극찬을 해놓았는데 필자는 솔직히 고소를 금치 못했다
.
필자도 일하지만 무려 몇백만 이상의 독자가 보는 메이져 신문의 신춘문예 등단작이 무슨 문학적, 사회적 기여나 발전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도 아니고 기껏 어느 골방소녀의 사회적으로 하등 가치없는 작품을 상상력이 어쩌니 하면서 대문짝만하게 나오니 그
작품을 뽑은 심사위원들도 그렇고 실비아처럼 동화, 의인기법을 쓰더라도 필자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지금은 낡은 사회적
폐미니즘의 인식 정도라도 되면 모를까 그렇게 안목이 없었어야 될 말인가?
그것이 무슨 거창한 상상력이 어쩌니 저쩌니 할 것도 없는 시 창작강의에 나오는 바로 이 ‘의인법’과 ‘동화기법’인 것이다. ^*^ 또
연이 없는 산문시인 슈르 레알레슴의 초현실주의도 그렇다. 무슨 개인 넋두리, 잡기내용을 가지고 초현실주의 어쩌니 하면서 불
어로 원전을 읽어 보지도 않은 군상들이 순 골방 또라이들의 배설을 시라고 웃기는 소리들 하고 있으니 얼마나 문제인가? 좋은 시
썩어 문들어졌겠노라....^*^ 시판이 할 일없는 또라이들의 놀이판인가? 나이가 20대 30대 심지어 40대가 되어도 유치원 아이들 상
상력을 발휘하는 시간들인가? 그것을 가지고 쓴 골방 넋두리들을 시라고 긁적거리니,,,,그것들이 또라이지 뭐가 또래이인가? 시인
도 심사위원들도 제발 좀 공익적, 사회적 안목들 좀 키우시기를 바란다. 아는 것이라고는 좌빨 이론들 줒어들은 것 밖에 없으니,,,,
원,,,에휴 그만하자 !
시인은 시적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정말 잘 구분하며 스스로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 필자도 개인적으로는 이 두 세계를 어떻게 잘
조절하는가? 하는 문제를 시를 쓸 때 슈르기법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의인법, 동화기법을 쓰더라도 항상 심사숙고 하고 내 인격
의 문제를 고려하며 되도록 시적 대상과 그 소재를 아름다운 것을 선택하도록 노력한다. 시적 대상과 소재는 그렇지 못하더라도
창작 결과물인 시는 되도록 아름답도록, 감동을 주도록, 어떤 대상에 신선함을 주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정말 읽는 독자들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라고 나는 누차 강조하는 바이다. 습작생들은 명심 하시기들 바란다
.
투사는 동화와 반대로 시인 자신을 사물과 세계 속에 상상적으로 투여하여 대상을 인격화하는 것인데 ‘자아의 세계화’가 바로 그것
이다. 객관적인 사물 속에 시인의 정서를 투사하여 미적 가공물로 시를 드러내는 ‘객관적 상관물’을 활용하는 기법도 일종의 ‘투
사’라고 할 수 있다.
옥창에서 바라보이는 조각 하늘에
누집 아히가 날려보내는 고운 연이냐
푸른 하늘로 끝없이 깃더오르랴는 갈망
연의 마음도 한없이 자유가 그리운게다.
미친 것처럼 떨며 내달아 솟아도
번번히 야문 실오리에 끌려내려와야 하는
연아 ! 너의 슬픔 몸부림을
자미롭다고 사람들은 바라보겠구나
얼마나 가고 싶으냐 새떼 마음놓고 지줘기는
구름과 바람이 번덕여 재롱떠는 하늘가
노을이 타서 피가 듣도록 타서
숲속에 마지막 종소리 울리는데
연아 달아나거라 끝없이
실끝 끓어버리고 일사천리 끝없이 달아나거라
----김상훈,<연>全文----
의인화된 ‘연’은 시의 화자가 자신의 모습을 투사하고 있는 대상이다. 제 1연의 “옥창에서 바라보이는 조각 하늘에” 라는 첫행에서
드러나 있듯이 시의 화자는 지금 감옥이라는 공간에서 자유를 박탈당한 상태에 있다. 그러므로 시의 화자는 이 억압의 구속에서
벗어나 마음껏 자유를 누리기를 갈망하고 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시의 화자의 처지와 마음의 갈망을 그대로 반영하
는 것이 바로 감옥에서 바라본 ‘연’이라는 대상이다.
그래서 시의 화자가 보기에는 푸른 하늘로 날아 오르는 연의 모습은 자유를 향한 몸부림이며, 아무리 솟구쳐도 끌려 내려와야 하
는 연의 모습은 감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자신의 존재인 것이다. 이처럼 하늘로 날아오르는 ‘연’을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위 시는 감정이입에 의한 투사의 원리가 어떠한 것인가를 우리에게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자 다음시간 의성법과 의태
법 그리고 시의 알레고리가 끝나면 ‘비유는 시창작에 있어 원리’편이 모두 끝난다. 이제 몇강의 남지 않았다. 화자와 어조, 시의
행과 연 만들기, 마지막 시의 제목 붙이기까지 분발하시기를 바란다.
*다음(34)강 예고 : 비유는 시창작의 원리(E)
의성법과 의태법, 시의 알레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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