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평생을 살면서 각인이 되어온 김구 김두봉 김일성 김규식의
평양 4자 회담에서 (이용)만 당하고 왔다는 인쇄 활자체를 너무 많이 접해 왔다.
1948년 4월 19일부터 30일까지 김일성의 요구로 평양에서 개최됐다. 북한 15개, 남한 40개, 해외 1개 등
총 56개 정당·사회 단체의 대표 695명이 참가했다. 그러나 연석회의에서는 남한의 단독 총선거를 반대하는
북한의 일방적 진행 속에 진행됐다.
이에 반발한 김구와 김규식의 요구로 김일성, 김두봉과의 '4김 회담'과 15명이 참가한
'남북 정당·사회단체 지도자협의회'가 열렸다. 협의회는 외국군대 철수, 총선에 의한 통일정부 수립,
'단선단정'(단독선거·단독정부) 반대 등을 내용으로 한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 발표 이후 단선단정 반대운동이 전개됐지만 5월 10일 국회의원 총선거와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막지는 못했다. 북한은 이후로도 남북연석회의 개최를 줄기차게 요구했지만,
남한 정부는 '남남갈등'을 조장하려는 통일전선전술의 일환으로 판단해 수용하지 않았다.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는 "김구 선생이 합의서 도장을 찍으려고 인장을 가지고 간 것 같지만
김일성에게 헌납하려고 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며 "김일성이 연석회의에 김구를 초청한 것은
자리의 무게를 높이기 위한 것일 뿐 진정으로 남북회의를 할 뜻은 없었다"고 분석했다.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안 받아들여질지 알면서 남북연석회의를 주기적으로 제의하는 것은
내부 정치적 이유에 따른 것"이라며 "내부적으로 (북한 당국의 평화통일 노력과 의지를) 대대적으로
선전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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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사건.
발생 원인 1947년 3월1일에 제주 북국민학교에서 3.1절 기념 제주도 대회가 열려
25,000~30,000여 명의 주민이 모였다. 이날 행사를 끝낸 군중들이 가두 시위에 들어갔다.
시위대가 미군정청과 경찰서가 있던 관덕정을 지나가고,
200명 정도의 군중이 시위행렬을 구경하고 있던 도중 사건이 하나 터졌다.
오후 2시 45분경, 기마경관 소속의 임영관(任永官) 경위가 시위를 막기 위해 군중들을 헤치다가 제북교에서
관덕정으로 들어서는 길 모퉁이를 돌려 할 때 고빗길에서 서성대던 어린이가 타던 말의 발굽에 채였는데
경찰이 이를 모르고 지나가버린 것이다. 분노한 군중들이 경찰을 비난하며 몰려들었고, 기마경찰은 황급히 도망쳤다.
군중들은 도망가는 기마경찰을 향해 돌을 던졌다. 돌팔매질과 더불어 거리가 난장판이 되기 시작하자,
경찰서에 있던 경찰들은 군중이 경찰서를 습격하는 줄 알고 응원경찰들과 함께 관덕정 주변의 사람들에게
발포를 하기 시작했다. 이 일로 6명이 죽고 8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런 상황을 조선 남로당 선전부가 구경만 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
이들은 많은 무기를 동조자 들에게 나누어주고 심지어 군사훈련까지 시켰다.
죽창을 들거나 농기구를 든 양민들도 있었으나 긴 시간을 전투를 하게된 원인은 그들의 무장력이 강하고
저항 또한 강력했다. 그들의 주장대로 죽창과 농기구로 90% 무장을 했다면 긴긴 시간을 진압하지 않고
희생을 키웠을 리 가 없다.
마지막 진압 작전시 제주 경찰서장이 수십차례 삐라는 뿌리고 방송을 통하여 투항하여 전향서만 작성하면
이유를 묻지 않고 그날 가족들이 있는 가정으로 귀가 시키겠다고 설득하여 많은 양민들은 투항을 하였다.
막상 진압을 시작하게 되고 피 아간의 많은 희생이 발생한 것이 4.3 사건의 요지이다.
4.3과 관련된 사람들 면밀히 들여다 보면 좌파 측 사건의 주동자인 (김달삼)은 협상이 결렬되자
(야반 도주) 하여 북한으로 갔다가 6.25 전쟁 때 무장공비 지휘관으로 강원도 쪽을 헤집다 강원도 정선군에서
처형당해 죽었다. 김달삼이 북한으로 향한 후 남로당 제주도위원회 군사부장과 제주도 인민유격대 사령관자리를
넘겨받은 이덕구는 주민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에게 집중사격을 받고 사살됐다.
유격대가 무너져가고 도민들의 희생이 누적되는 가운데 투쟁을 중단하고 대피 생활을 지시했던
유격대 사령관 송원병, 조직부책 백창원, 군사부책 고승옥은 이에 반발한 대원들 손에 죽었다
태영호가 제주 4.3 사건의 발언이 뭐가 틀린 것인가 ?
용기있는 태영호를 민주당이나 호남지역에서 싫어 한다고 해서 징계하려는가? 목에 칼이 들어 와도
지킬 건 역사이다. 국민의힘은 그래가지고는 정당으로서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국민의힘의 지지율 하락은
김기현이 국민에게 안먹히는 문제이지 태영호의 잘못이 아니다.
김기현은 늘 술에 술 타고 물에 물탄 듯한 어중간한 행동을 버리고 빠른시간에
국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첫댓글 사실이 안 통하는 사회가 안타깝습니다.
진실을 왜곡하는 자들은
천벌을 맞을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