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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분 |
시 간 |
세 부 일 정 |
비 고 |
1 월16일 |
23:30 00:00 |
집결 및 출발(풍생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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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17일 |
05:00 07:00 09:00 14:00 15:00 19:00 20:00 |
목포도착 후 유달산등산 아침식사 목포출발(퀸메리호) 제주항 도착 및 중식 외돌게(대장금 촬영지) 및 석부작 테마농원 관광 해녀촌(개인부담 "회" 취식 및 포장) 숙소도착 일반호텔(석식) 후 투숙 |
3식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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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18일 |
05:00 05:30 06:00 12:00 16:00 16:20 16:50 22:00 22:30 02:30 |
기상 후 조식 성판악으로 이동 성판악도착 한라산 등반시작 중식(도시락) 관음사도착 (일부 낙오자 발생으로 10시간소요) 및 여객 터미널로 이동 제주도 여객선 터미널 도착 및 승선 제주도 출항 목포 도착 석식후 버스탑승 출발 성남도착 후 해산 |
조식 제공
중식 제공 (도시락)
목포석식 |
▲ 목포 유달산등산
◎.높이 : 228 m.
◎.위치 : 전남 목포시 남서부에 있는 산.
-. 유달동 ·대반동(大盤洞) ·온금동(溫錦洞) ·북교동(北橋洞)에 걸쳐 있고, 유달산 동쪽 기슭을 중심으로 목포시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 산은 비록 해발고도가 낮으나 산정은 매우 날카롭고 층층기암과 절벽이 많아 경치가 수려합니다.
-. 산정에서는 목포시와 다도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 동쪽 산꼬리에는 기상관측소 ·시청 ·법원 등 관공서가 있고, 산 중턱에는 유달사 ·수도사(修道寺) ·관음사(觀音寺) 등
사찰이 많습니다.
-. 서쪽 산록은 바다에 임하며 해수욕장으로 유명합니다
유달산 안내도
유달산 초입에 있는 " 천자총통 " 입니다.
임진왜란때 사용했던" 천자총통 " 발포체험을 할수있다고합니다
인터넷을 통해 예약하고 주말과 일요일에 발사체험을 하며 요금은 2만원이라하네요
먼 바다에서 마지막으로 고하도 용머리를 돌아오면 목포항이 보입니다.
고하도를 돌아서 보이는 목포의 각양각색의 불빛들..
" 천자총통 "에서 본 목포시내 야경
목포는 다도해를 잇는 항구도시 입니다. 그래서 명절이면 그 섬고향을 찾아가는 뱃길 귀성객으로 만원을 이룹니다.
'고하도'는 목포에서 뱃길로 10여분이면 도착하는 바로 앞에 위치한 섬입니다.
" 천자총통 "에서 본 목포시내 야경
저기 보이는곳이 일등 바위이다...저 멀리 이등 바위도 있는데...이 일등 바위로 눈길이 저절로 향합니다.
망원경으로 보며 마음에 소원을 빌어봅니다. 내 마음에 소원이 빌어 우주로 갔으니 이루어 지겠지...
1 등바위, 2등바위,3등바위, 마당바위....
그다지 특이하지 않는 이름의 바위에 올라서면 한눈에 목포시내가 내려다 보이고 뒤로는 점점히 다도해를 배경으로 합니다.
입구에서 부터 꼭대기 까지 모두 돌계단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산책길로는 그만입니다.
애기바위(두엄씨바위)
큰엄씨가 애기를 업고 작은 엄씨에게 등을 돌리고
작은 엄씨도 애기를 업었는데 큰 엄씨를 보려고 하는 모양입니다.
애기바위(두엄씨바위) 표석
유선각 앞 돌에는 ‘흰구름이 쉬어가는 곳입니다.
세 마리의 학이 고이 잠든 푸른바다의 속삭임을 새벽별과 함께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조대바위(낚시터바위)
고하도 앞바다에 낚시대를 드리워 놓고
팔장을 끼고 앉아 조용히 생각에 잠겨있는 낚시꾼 모양
조대바위(낚시터바위) 표석
"투구바위" 투구바위로 투구모양 또는 코뿔소의 뿔모양이랍니다.
" 투구모양과 코뿔소 뿔모양인 투구바위 " 표석
오름길에는 이난영씨의 '목포의 눈물' 비석이 있습니다.
이를 노래가사에 넣어 민족혼을 강조한 것이었다. 총독부는 이를 눈치채고 레코스 발매금지조치까지 하였습니다.
이난영은 지금 그녀가 그토록 사랑했던 목포 삼학도 기슭에 묻혀있습니다.
어린이 헌장탑
일제시대부터 정오를 알리던 오포대
원래 조선 헌종 때 제작됐던 대포가 오포로 이용되었으나
1913년 일본식 야포로 대체돼 지금까지 전해져오고 있습니다.
오포대 설명비
목포개발 110주년 기념비로 유달산 정기가 목포시민에게
이어 받기를 기원하며 세워진 기념비라합니다
유달산 입구의 표석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은 소수의 군사로 많은 왜적을 물리치기 위하여 이 봉우리에 이엉을 덮어
군량미로 가장하여 우리의 군사가 엄청난 것처럼 보이게 하여 왜군의 전의를 상실케 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