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멀리 한라산..
우뚝 크신 님 아니시온 듯
능선 자락 내려와 걸터 앉으신 채
허허 흰 웃음 한 줄기 날리우며 내려다 보시는 곳
말 잔등 옮겨다 굽이진 작은 오름 아래
그 평원엔 언제라도 풀 뜯는 조랑말 있어
무관,무심을 내게 배워가라 한다네
그래도
무심할 수 없는 저 평원에 마음 머물다
촘촘한 나무들 사이사이 비집고 난 길을 따라 들어가면..
이런 아리따운 여인 그 숲길에서 만날 수 있을까..
눈을 씻고 바라보면
선녀는 날아가고
나무가 열린 그 자리엔
연초록 진초록
허탈한 내 가슴 채워주는 대자연의 위안이여..
'족은바리메'..
오름으로 들어가는 저 작은 입구가
넌지시 내게 주는 암시에
나 비밀스럽게 자극하였던 것인가
이태 전 어느 여름날
나와 가족들은 어진 계시에 이끌리듯이
그 숲길로 슬렁슬렁 들어간다
한여름날의 수풀은 무성하나 길을 막아서지는 않았고
숲의 허릭을 받고 쏟아진 한 줌 햇살은
나뭇잎 위에 내려앉아 초록을 흡입한다
곧게 살아오지 못 한 나에게 길은 곧지 않아서 편안하고
여름날 뜨거운 태양볕과 같은 정열도 모자란 나에게 있어
나무와 잎새들이 주는 가림막과 녹빛과 숲의 향기는
절대적으로 인자하시다
그것으로 인해,
오로지 내가 숲속길을 걷고 있다는 것으로 인하여
나는 평화로와 질 수 있다
초록이 내어준 길은 아름답다 하기엔 너무도 부족하기만 하고..
숲의 고요와 정적속에서 서서히 채색되고 흡입되어지는 것들로 인하여
저 길 모퉁이 돌기도 전에 숲물이 들 것만 같다
잎새에 걸러진 손바닥만한 햇살을 받고선
아내가 웃는다
연초록 잎새빛으로 활짝 웃는다
그동안 내가 아내에게 줄 수 없었던 웃음을
이 숲은 첫 대면에서 그녀에게 준다
웃는 아내가 곱다
숲속에서 웃는 아내여서 더 곱다
이 숲에 질투가 나도록 고맙다
뭐라 말할까..
저들의 몸짓과 빛과
비밀을 풀어내주는 그들의 언어에게..
조근바리메 숲길에서
아내를 훔쳐보다
아내를 사랑하다
아내를 불러보다
나는
스스로 취하다가
이 숲의 주인네들..
사람들처럼 서 있지만
지금만큼은
사람들보다 아름답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이 원시림이 주는 빛과 풍경앞에선
내 혼탁한 정신과
내 초라한 언어는 할 말을 잃고 말았지
초자연적이란게 있을까?
자연의 이치와 자연의 신비로움을 넘어선 것이 있다면
그 역시 '자연'이 아닐까..
지금 내 눈에 보여지는
처음 그대로의 자연처럼 말이지
조근바리메에 가득차 계신 극미의 자연..
작은 공양그릇속에는 시원에서 현재까지 영겁을 담고 계시며
걸음마다 시공의 비밀을 하나 둘 보여주시기에
제주섬 그 많고 많은 아름다운 길들 가운데
나는 이 숲길을 가장 아름답다 여기고 말하기 시작한 것은
(물론 지극히 내 개인적인 취향에서 나오는 견해겠지만)
이 풍경을 대하고 난 이후일 것이다
첫댓글 펌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