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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매일 기획특집
이재창 시인, 남도문학 현장을 가다 (24) - 아동문학가 김재창
정신과 영혼의 영양제 '잃어버린 계수나무'
작은 것들의 관심과 애정, 전통정서 연민과 사랑
시적 판타지·현실적 리얼리티 접목하는 순수동화작가
전쟁과 분단역사에 대한 깊이 있는 현실의식 드러내
권력의 속성에 대한 끈질긴 생명력과 저항 돋보여
2003. 10.22(수) 00:00
글 : 이재창 문화부장겸 편집부국장 jclee@kjdaily.com
동화작가이며 동시인인 김재창(58, 광주동부교육청 장학사)씨는 소탈하다. 그렇지만 그의 작품 속에는 미래를 짊어질 어린이들의 희망과 꿈들이 들어 있다.
그의 많은 작품들은 시적 판타지의 세계를 다루거나 현실적 리얼리티의 접목을 시도하는 순수동화가 많다. 또한 전쟁문학이라는 측면에서 소재의 범위를 확대하고 민중사적인 측면에서 우리의 분단역사에 대한 깊이 있는 현실의식을 드러낸다.
작고 하찮은 것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 잊혀지고 사라져 가는 우리의 전통과 정서에 대한 연민과 사랑, 힘과 억압으로서의 권력의 속성에 대한 끈질긴 생명력과 저항이 김씨가 가지는 관심사이며 문학적 특장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는 동화를 좀 독특한 문학 장르라고 말한다. 전체적인 분위기로 봐서는 시에 가깝고 문장의 진술방법은 산문이라는 것. 그러나 결국 시쪽에 가깝다고 할 만한 시적인 산문문학이라고 주장한다. 동화가 판타지 문학이라고 해서 공허하고 몽환적이며 현실과는 무관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크다. 판타지는 현실에 기반을 두어야 하며 그 나름대로 질서와 합리성을 지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듯 그의 작품에 드러난 문체의 특징은 우선 간결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문장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한 수식어로서의 형용사나 부사는 절제되고, 그 대신 사건의 전개에 따르는 동사나 부사와 같은 수식어의 사용은 절제돼 있다. 인물의 행동을 중심으로 한 동사의 활용으로 사건 전개에 박진감을 부여하고 있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복문의 문장에 의한 지리한 묘사를 통해 작품의 예술적 완성도를 높이려는 생각에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지리한 묘사를 미덕처럼 여기고 있으나, 그는 의도적으로 짧은 문장을 구사하면서 사건 전개에 중점을 둔다.
그는 첨단정보화 사회를 살고 있는 요즈음 어린이들의 동화 독서의 기피현상, 동화의 독서에 있어서도 연혼을 살찌우는 교훈보다는 표피적이고 말초적인 재미만을 쫓는 요즈음 어린이들의 왜곡된 독서 경향을 우려하고, 정신 건강을 위해서는 말초적인 쾌락적 재미보다는 비록 교훈적인 쓴맛이이지만 정신과 영혼의 영양제인 동화를 읽어줄 것을 요구하는 충고를 하곤 한다.
동화는 가장 순수하고 양심적인 문학 장르이다. 가장 동심적인 것은 가장 자연적인 것이며, 불심의 본원도 동심이다. 그런데 동화가 현대인의 가슴 속에서 언제부턴가 사라지고 말았다. 달나라 계수나무는 현대인에게는 코웃음거리의 유치한 애기가 되고 말았다. 오직 가시적이고 과학적이며 타산적인 것만이 관심의 대상인 현대인들은 계수나무를 잃은 댓가로 비정을 얻어 결국 난치의 현대병이 골수에 사무치고 말았다. 이 현대병을 치료할 수 있는 문학장르는 결국 동화밖에 없다. 다른 문학 장르들은 일상적인 삶 속에서 효능을 갖고 있으니, 가장 총체적인 문학이요, 미래문학의 기수라 할 만하다. 그래서 그는 동화작가로서의 자부심을 갖는다. 모든 산의 소망이 세상을 푸른 숲으로 덮는 것이듯, 우리의 소망도 온 세상을 풋풋한 동심으로 덮는 것이니, 부단히 동화장르의 영역 확대를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항변한다.
그럼 그의 대표적인 동화집엔 ‘잃어버린 계수나무’와 6.25와 분단역사를 배경으로한 ‘동굴 속 사람들’이 있다. 한 번 그 속으로 들어가 보자.
그의 동화집 ‘잃어버린 계수나무’엔 14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대부분 주제의식이 강한 작품들이다.
하찮은 것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표현한 ‘소귀섬’,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아픔과 향수를 드러낸 ‘혼들의 장치’, 진정한 예술혼의 완성을 위한 끊임없는 구도의 길을 그린 ‘그림 없는 그림’, 권력의 속성에 대한 민중의 끈질긴 저항과 생명력을 엮어낸 ‘슈룹나무’, 강한 것에 대한 부드러움의 승리 ‘장군과 종다리’, 피나는 노력과 아름다운 마음의 진정한 가치창조 ‘귀뚜라미의 소원’, 잃어버린 우리 것에 대한 관심과 애정 ‘그리운 도깨비’, 잊혀지고 소외돼 가는 우리의 전통과 아름다움에 대한 향수 ‘잃어버린 계수나무’, 권력의 속성에 대한 신랄한 풍자와 민중의 저항 ‘문어장군’, 개발에 의한 근대화로 사라져 가는 우리의 풍경에 대한 연민과 사랑 ‘언덕길’, 작고 하찮은 것의 끈질긴 생명력 ‘단풍바위’ 등이 실려 있다.
이 14편의 순순동화들은 시적 판타지라는 환상적 리얼리즘 분위기를 통해 그 동안 우리가 잃어버렸거나 잃어가고 있는 가치 덕목과 전래의 순수한 민족정서라는 작가의 주제의식을 잘 표현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상실의 아픔을 직설적인 화법으로 형상화하지 않고 우의적인 서술기법으로 제시하고, 병든 우리들의 영혼을 치유하는 길은 순수한 동심의 회복이라고 조용히 역설하고 있다. 아프고 병든 현실을 자조하거나 항변하지 않고 유머러스하게 현실을 조롱하고 풍자하고 있다는 것은 그의 동화의 미덕인 동시에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처럼 그는 순수동화의 본질과 속성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에 대한 직설적인 접근방법보다는 우의적 기법으로서의 간접 화법이 더 강하고 큰 효능을 갖고 있음을 누구보다도 잘 터득하고 있다. 특히 그는 대개의 동화작가들이 창작 기법에 있어서 애로를 토로하고 있는 현실과 환상과 리얼리티와 자연스러운 전환의 방법론에 대해서는 천부적인 재능을 발휘하고 있다. 그의 동화들은 우의적 기법을 통한 그의 누추한 현실 읽기의 중요한 용매로 작용하고 있다.
그의 최초의 장편소설인 ‘동굴 속 사람들’은 금기시 되어온 남북분단의 6.25 전쟁을 소재로 작품을 형상화 했다는 것은 소재적 지평의 확대라는 측면에서 의미있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빨치산으로 불리는 좌익 아닌 좌익세력의 개념규정과 활동에 대한 작품의 형상화는 당시의 우리의 정치 현실구조 하에서는 조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6.25 전쟁으로 아버지와 함께 피난길에 올랐던 동호가 피난길의 폭격으로 아버지를 잃게 되면서, 외가인 대곡마을을 찾아가면서 겪게 되는 고난과 전쟁의 비참함을 그리고 있다. 그는 생존의 위기와 궁핍으로 얼룩진 피난길의 고난의 여정을 통해 전쟁의 비참함과 비인간성을 체득하게 되면서 성장하게 된다. 그는 전쟁이라는 엄청난 시련과 궁핍을 통해 정체성의 위기로까지 내몰리게 되지만, 피난길에서 남장여자로 가장한 해수형과 암자의 스님을 통해 따뜻한 인간애를 접함으로써 그러한 위기를 극복하며 성장한다. 이후 이데올로기에 의한 좌익과 우익의 대립, 우익 내부에서의 살육과 보복, 생존을 위한 이념의 변질과 전환에 이 작품은 초점이 맞춰져 있다.
김씨는 “우리는 이제 동굴이 아무리 어둡고 무섭더라도 피할 수가 없다. 오히려 그것을 통해 더 밝은 아침을 맞이해야 한다. 사랑을 배우고 막힌 가슴을 풀어야 한다”는 그의 말을 통해 이데올로기를 떠난 민족 동질성의 정서로 이 문제를 푸는 길만이, 억울하게 숨져간 원혼들의 맺힘을 푸는 길이며, 그렇게 될 때만이 남북화합과 공존의 미래적 지평을 보장할 수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김씨가 이 어둡고 무서운 동굴로 상징되는 아픈 우리 역사를 소재로 작품을 형상화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소재의 빈곤에 허덕이고 있는 동화문학의 집터에 소재 확대라는 주춧돌을 놓았다는 측면에서 의미있는 작업이라고 평가된다.
또다른 작품 ‘할머니의 강아지’는 시골에 살다 갑자기 서울생활로 환경을 바꾸게 한 할머니에게 할머니의 의사를 전혀 무시하고, 일러주는 대로 살기를 바라는 자식들의 고집과 그동안 살아오던 할머니의 고집스런 삶의 방식간에 갈등을 야기하며, 그 나름대로 도시생활에 적응해 가던 할머니가 뜻하지 않게 삶을 마감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도시문화에 적응해 가지 못하던 한 노인의 비극적인 삶의 한 형태를 제시하며,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를 한 아이의 눈을 통해 일깨우고 있다. 또한 한 노인의 소외문제는 가족으보부터 생겨나고, 가족 결합의 구심점으로 노인의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을 아프게 인식시키고 있다.
동화는 대자연에 의연해야 한다. 남들은 그더러 고지식합네, 결벽증입네 하지만 그는 부끄러워 않는다. 소신없이 남의 눈치나 보며 불의를 외면하고 타협, 야합하며 심지어는 파당을 지어 물리적인 힘으로 문학적인 위신을 세우려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작가는 반드시 작품으로만 말해야 함을 절감한다. 문학가는 어떤 경우에도 좋은 글로서 행세해야 한다. 그는 피천득의 ‘플루우트 연주자’라는 수필을 좋아한다. 그 화려한 악기에 가려 뒤쪽에서 존재도 없이 고독한 플루우트 연주자. 그의 동화가 푸른 숲속 오케스트라의 플루우트만 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게 없다고 말한다.
그는 동화와 동시의 경계문인임을 자처한다. 그는 모든 기존 틀을 깨뜨릴 것을 주장한다. 동시와 동화의 경계를 풀고 함께 동심의 문학의 마당에서 신명나게 어울릴 것을 희망한다. 동심의 문학은 비인간화 된 현대인을 구제할 수 있는 궁극적인 문학 장르임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문학잡지·명작 등 탐독하며 습작
76년 월간문학 신인상 당선돼 문단 활동
김재창씨는 해방이 되던 해인 1945년 전남 장흥군 용산면 계산리에서 김금암씨와 이정님여사의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유년기를 보내다가 일곱 살이 되던 해에 전남 보성군 보성읍 대야리로 이사를 가 그 곳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그래서 인지 그는 고향을 둘이라고 말한다. 첫째가 태어난 곳이고, 둘째가 성장기를 보낸 보성이라고.
그는 한국사의 격변기인 해방 후의 궁핍기와 6.25의 혼란기에 유년시절을 보내 성장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웃는다.
보성 서초등학교 5학년 때 교내 백일장에서 동시가 입선하면서 문학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그 무렵부터 그는 일기를 쓰기 시작해 군대가기 전까지 계속했으니, 그의 습작은 그렇게 이뤄진 셈이다.
그는 시를 좋아 했으며, 체계적인 문학수업을 없었으나 문학 잡지나 명작을 골라 탐독하는 것을 즐겨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교육잡지인 ‘새교실’과 ‘교육자료’에 시가 추천된 1966년 이후부터다.
그런 그가 1973년 처음 써본 동화로 새교실 대상을 수상과 1974년 전남일보(광주일보 전신) 신춘문예에 동화 ‘배냇소’가 당선됐으며, 이후 1976년 월간문학에 동시 ‘느티나무’가 당선돼 문단에 등단하면서 본격적인 문학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의 문학적 소양은 1975년 전남아동문학가협회 회원이 되면서 무르익었다. 그 무렵 아동문학가 문삼석 회원 등과 어우리면서 문학적 추억도 무던히 쌓기도 했다. 그후 한국아동문학가협회,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안목을 넓혀갔다.
1978에 첫동화집 ‘꿈소년’을 펴냈고, 이어서 1980년 ‘쁜이’, 1989년 ‘잃어버린 계수나무’, 1992년 ‘백두산 아이’, 1997년 장편동화집 ‘동굴속 사람들’을 출간했으며, 1993년엔 동시집 ‘고향은 하나’를 상재했다. 또 평론에도 관심을 가지고 ‘아동문예’와 ‘아동문학평론’에 작품평을 연재했고, 평론 ‘강준영론’을 쓰기도 했다.
그간의 문학활동 성과로 1982년 전남아동문학가상, 1989년 한국아동문학상, 1990년 한국어린이도서상, 1998년 광주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김옥애, 장문식 등과 전국 최초 동화동인회인 ‘흙담’ 동인과 동시동인회 ‘동심의 시’ 등 의미있는 동인활동을 하고 있으며, 광주.전남아동문학인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는 1966년 광주교육대학을 졸업한 후 초등학교 교사러 재직하다가 학문적 지평을 넓히기 위해 1974년 중등교사 자격검정고시에 합격해 광주고, 전남여고, 전남대 사대부고 등에서 국어교사로 근무해 온뒤 현재는 교육전문직인 광주시 동부교육청 장학사로 근무하고 있다.
그는 휴머니즘을 사랑한다. 그가 교직을 택한 것도 인간형성이라는 교육의 목표 때문이다. 휴머니즘의 속성은 출세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공직생활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교직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겠지만, 흔히들 교직이 가장 변화를 기피하고 타성에 젖어있다고 한다. 그가 교직 중에서 가장 변화가 어려운 전문직에 몸담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는 여러번 퇴직을 결심했으나 주위의 극구 반대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교직을 그만둔다는 것은 하나의 도피요, 비겁함 이라는 것이다. 본래 그가 자신에게 약속했던 인간형성 불이행의 무능이요, 어려운 교육현실 도피의 비겁함 이었던 것이다.
그가 생애에서 가장 절망적이었던 순간은 몇 년전 불의의 교통사고로 인한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이었다. 그는 그때의 눈물을 창자를 녹이는 청산가리에 비유한다. 영국에 유한 갔던 큰 딸을 지금껏 돌아오지 않고 있다. 자기 잘못이 없는 한 어떤 불이익도 없는 신사의 나라 영국을 본 그가 아무 잘못도 없이 한 가정을 짓뭉개 버린 생명경시의 조국의 현실을 과연 용서할 수 있었을까. 그는 그 후 문학세계에서 은둔하고 있다. 언젠가 그가 다시 일어설 때, 청산가리 같은 문학의 치열성을 엿볼 수 있을까.
글 ; 이재창 편집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