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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절 해방 이후의 수산가공업
1. 건제품과 훈제품
건제품의 제조에 있어서는 해방전에는 일본인들이 사용해 오던 방법이 그대로 쓰이고
있는 것이 많았으나, 해방 이후는 수산건제품의 가공에 관하여 크게 달라지게 되었다.
물론 업종에 따라서는 일제시대의 방법대로 하는 것도 있다.
○ 멸치 : 멸치는 난류성 어족으로 거제를 비롯하여 남해안 연안에서 많이 잡히는
어족 중의 하나다. 멸치는 봄부터 늦가을까지 크기는 다르지만 계속 어획되는
종으로, 가마솥에 넣어 삶아서 건조시키는 것이 일반적인 작업이다. 또 건조장
까지 운반하는데는 일제시대부터 시작하여 해방 후에도 사용되는 것은 멍석같은
것이나 대로 만든 바구니나 발 등으로 운반되었고, 건조장에는 짚으로 만든 멍
석이나 나무상자 또는 발 같은 곳에 멸치를 널어서 건조시켰다. 1967∼1968년
경 김기준(金基準)이 일본 히로시마현(廣島縣)에서 쓰고 있는 것을 보고 와서 그
대로 본따 만든 발(簾)을 쓰기 시작한 것이 널리 보급되어 많이 사용되었으나 오
늘날에 합성수지 등 다양한 재질이 개발되어 사용되고 있다.
멸치의 건조방법은 햇볕에 말리는 천일건조(天日乾燥)가 보통이었는데, 이 방
법은 특별한 에너지가 들지 않는다는 커다란 장점은 있으나, 일기가 좋지 않고
비가 오는 경우에는 처리가 매우 곤란했다.
1960년대 후반 들어 에너지 사정이 다소 나아지게 되자 화력(火力)을 이용한
건조방법이 사용되기 시작하여, 한정된 장소에 대량 건조하는 방법이 연구되었
다. 즉, 큰 여러 단으로 된 선반같은 형을 만들고 그 위에 발을 깔고 멸치를 얹
어 놓고 열풍을 보내서 건조시키는 방법이 쓰이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열풍건조
법의 시작이다. 이 열풍건조에 사용되는 화력으로서는 처음에는 전기를 썼는데,
전기는 열효율이 낮은데다 전기료가 많이 들어 쉽게 사용하기가 문제되었으나,
1970년대 들어 경유를 연소시켜 30∼40℃의 열을 내고 대형 팬(fan)을 돌려서
열풍(熱風)을 보내는 방법이 쓰이게 되었다.
1980년대 들어 이와 같은 높은 온도를 쓰는 것은 멸치의 품질을 손상시킨다
하여 24∼25℃ 정도의 저온(低溫)에서 건조시키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이 방법
은 완전 건조시키는데 7∼8시간이나 걸리지만 제품의 색깔 등이 고온을 쓸 때보
다 좋다고 하여 널리 쓰이고 있다.
이와 같은 건조장치의 규모는 한꺼번에 400∼500발을 건조시킬 수 있는 시설
2대 정도가 보통이며, 개개의 권현망업체가 각자의 기지에 다 가지고 있었는데,
재래의 천일건조 때보다는 인건비가 적게 들어 경제적이라고 한다.
○ 쥐포 : 쥐치는 남해안 일대에서 잡히는 것으로 주로 날것으로 된장에 찍어 먹었
고, 건조시켜 포를 만들어서 술안주로 많이 사용되었다. 백색어로 맛이 단백하
고 지방이 적은 것이 특징이다. 거제도에 쥐포를 만드는 곳은 사곡, 한내에서 소
규모로 만들었으나 주로 대량생산은 삼천포, 남해 등지에서 많이 생산된다.
1970년대 후반기 들어 남해안 일대에서 말쥐치가 대량으로 어획되기 시작했는
데, 생태적으로는 다소 저서성(底捿性)이 강한 이 고기는 원래 저인망·트롤·
안강망 등 저서어족을 주대상으로 하는 어법에 어획되던 것이다.
그런데 표·중층어족을 주대상으로 하던 선망어구(旋網漁具)가 대형화되어 거
의 저서어족까지도 잡을 수 있도록 발달함으로써 말쥐치를 일시에 대량 어획하
게 되면서 어가가 폭락하게 되자, 1978년 저인망업자들이 수산청에 대하여 선망
에서 쥐치를 어획하지 못하도록 조치해 줄 것을 요청함으로써 소위「쥐치전쟁」
이 일어나기도 했다. 쥐치가 이와 같이 대량 어획되어 가격이 폭락하자 가공업
자들이 이것의 가공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쥐포」라고 하는 건제
품이었다.
쥐치는 원래 몸이 납작하므로 껍질을 벗겨서 포(fillet)를 뜨기가 쉽다. 이것을
직경 10∼12cm 크기의 둥근 모양이 되게 포개서 조미를 하여 말린 것이 쥐포이
며, 거제에서 삼천포에 이르는 해안 일대에 한때 쥐포 공장이 많이 생겨 생산이
많이 되었다. 마른 오징어와 더불어 버스·열차·여객선 등에서 여행 중에 즐길
수 있는 기호식품으로 널리 애용되었으나 1980년대 후반부터 쥐치자원의 고갈로
중단되었다.
○ 굴 : 굴은 한려수도를 대표한 수산물로서 한·미패류협정에서 굴이 협정의 대상
이였다. 자연산 굴은 연안해역의 바위나 패류의 껍질에 부착하여 생활하지만 인
위적인 굴의 양식은 주로 수하식으로 굴을 양식한다.
수하식 양식업이 본격화되는 한편 식품의 가공처리방법도 발달하면서 굴의 가
공법도 다양화되었는데 거제에서 생산된 굴의 가공품에는 건제품·냉동품·통조
림 등이 있으며, 수출은 생굴을 저온이나 냉동된 상태에서 스티로폼 박스에 넣어
수출한다. 이 중 건제품은 굴 양식업이 본격화된 직후인 1968년경부터 시작되
었다.
양식 굴은 알맹이가 자연산에 비하여 월등하게 굵은데, 그 당시만 해도 굴이라
는 것은 알맹이가 작은 자연산 밖에 먹어보지 못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알맹이가
멋없이 굵고 맛이 약간 자연산에 비하여 떨어지는 것으로 양식굴에 대한 호응은
별로 느끼지 못했으나 점차 양식굴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되었다. 이것은 한
미 패류협정으로 굴의 생산요구가 높아짐에 따라 점차 변해갔다.
또한 그 당시는 가정용 냉장고는 극히 잘사는 집을 제외하고는 가정집에 냉장
고를 가지기는 쉽지 않았다. 그런 반면에는 양식기술의 발달로 양식 어패류 생
산량은 해마다 늘어나므로 어떻게 해서든지 처리가공을 해야겠는데, 당시로서
가장 손쉬운 방법이 건조시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장희운(張希雲)과 박종남(朴
鐘南) 두 업자가 공동으로 굴 수출회사를 설립, 건조굴의 수출을 주도해 나갔다.
굴 건제품의 제조방법은 먼저 굴을 현장에서 채취되면 선별 작업을 하고 선별
된 굴을 세척한 후 껍질채 여러 단으로 된 선반에 올려놓고 증기를 보내어 쪄서
자연적으로 패각에서 굴이 떨러져 나오게 하여 그것을 건조시키는 것인데 말리
는 방법은 처음에는 멸치의 건조에 쓰이는 발에 고루 펼쳐서 천일건조(天日乾
燥)시켰으나, 후에는 건조장비의 개발로 멸치를 건조시킬 때와 비슷한 방법으로
열풍건조(熱風乾燥)로 전천후 건조 작업이 가능하다. 다만 이때 굴을 그냥 말리
면 살이 터져서 모양새가 좋지 않으나, 굴을 찔 때 생기는 액즙(液汁)을 약간 농
축시켜서 거기에 적셔가면서 말리면 살이 터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3∼4일 말린 굴은 크기별로 선별하여 박스에 담아 주로
홍콩 등 유럽지역으로 수출했다. 가열·살균(加熱·殺菌)한 수산물은 금속으로
된 관(can)에 넣어 밀봉(密封)을 해서 가열 살균시켜, 장기간 보존할 수 있도록
가공한 것이 통조림이다. 통조림의 원리는 1804년 프랑스의 아페르(Appere)에
의해서 고안된 것인데, 당시의 프랑스는 나폴레옹 전쟁 때문에 식량사정이 악화
되어 장기보존이 가능한 식량을 필요로 하던 시대였기 때문에 크게 각광을 받았
으며, 그 후 1810년 영국의 듀랜드(Durand)가 주석으로 된 관(罐)을 고안해
냄으로써 현대식 통조림시대의 막을 열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 나라에 있어서의 통조림 제조업은 한일 합방되던 해인 1910년 함경남도
신포에서 명태 자망에 털게가 많이 걸려 올라오는 것을 보고 그것을 통조림으로
만들어 일본으로 가져간 것이 시발이라고 하며, 그 후 일본이 만주사변(滿洲事
變), 중일전쟁(中日戰爭), 태평양전쟁(太平洋戰爭) 등을 일으키면서 그 필요성이
더욱 고조되어 발달해갔다.
2. 통조림 제조업
거제시의 통조림 제조업은 칸노(神野)라는 일본인에 의해서 창업된 것이 시초인 것
같은데, 장승포, 마산시, 통영시의 도천동 등지에 공장을 세우고 처음에는 전복·소
라·새조개 등의 통조림과 일부는 어묵(카마보꼬)도 만들어 일본으로 가져갔고, 대동아
전쟁 중에는 군수공장으로서 고등어, 꽁치 등의 어유가 많은 종류들을 통조림으로 생산
하여 군납된 것으로 전해진다.
1950년, 6·25동란으로 군용 통조림이 대량 필요하게 되면서 급신장하기 시작하여
거제, 마산, 통영 등지에서 지방이 풍부한 고등어, 삼치, 꽁치 등으로 통조림을 생산하
였다. 통조림의 수요가 급증하자 원료가 부족하여 갈치를 대용하기도 하였다.
6·25전란으로 급신장한 통조림 생산은 정전(停戰)과 더불어 수요가 줄기 시작했고,
또 고등어의 어획도 연중 계속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대체원료를 찾던 중 전남 나로
도(羅老島)에서 소량이지만 굴 통조림이 생산되는 것을 알고 그것을 모방하여 자연산
굴을 원료로 한 굴 통조림 시제품을 만든 것이 굴 통조림의 시발이라고 한다.
굴 통조림은 원료를 훈제(燻製)해서 면실유(棉實油)에 담근 것(smoked oyster in
cotton seed oil)과 삶아서 소금물에 담근 것(boiled oyster in salt water)의 두 가지
가 있으나 주종은 앞의 것이다. 훈제를 하기 위해서는 나무를 태워 그 연기를 쐬어야 하
는데 태우는 나무로는 참나무를 쓰며, 그 위에 참나무·전나무(檜) 등의 톱밥을 얹어서
120∼150℃의 연기를 내어 30분 정도 쐬운다. 관(罐)은 처음에는「각 3B」라고 하는 내
용물 105g들이 납작한 양철관(tin plate can)을 썼는데, 1982년부터는 다양한 통조림
관(罐)이 개발되어 쉽게 관(can)을 딸 수 있는 형태의 관이 개발되었다(easy open
can). 내용물은 굴의 크기에 따라 4등급으로 나뉘는데, 105g짜리 관에는 90g 내외의
굴을 넣고 거기에 면실유를 부어 중량을 조절하였다.
굴 통조림은 전량 수출을 목표로 생산되었는데, 수출 대상국은 미국·캐나다·호주
등이며 미국이 80% 정도를 차지한다.
굴 통조림은 굴 자체의 채취시기가 3월경부터 시작하여 5월이면 끝나므로 통조림 생
산도 5월이면 끝이 날 수밖에 없는데, 그 유휴기를 메우기 위해 6월부터 9월경까지는
홍합 통조림도 생산하며 최근에는 연안해역의 오염으로 인하여 원료부족 현상으로 수입
품에 의존하고 있으며 품질도 연안해역에서 생산된 어족과는 맛이나 형태상 차이를 가
지고 있다.
3. 냉동업
냉동업은 수산물의 장기보존의 수단으로 널리 사용되어 지고 있다. 수산물의 보관에
는 냉동과 냉장법이 사용되고 있다. 넓은 의미로는 기체·액체 또는 물체로부터 열을
빼앗아 주위보다 온도를 낮추는 일을 냉장이라고 하는데, 이런 의미로는 냉방(冷房)이
같은 뜻으로 사용되며, 냉동은 물체를 빙점이하로 하여 얼음의 형태로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냉동은 보통 -20℃이하가 일반적이며 급속 냉동은 -80℃이하가 되어야 한다. 수
산물의 경우 품질의 손상이 최대로 줄이는 방법의 하나로 급속냉동을 많이 사용한다.
제빙업(製氷業)은 -20℃이하로 수산물을 보관할 때 얼음을 분쇄하여 수산물에 첨가하기
도 한다. 또 일단 동결시킨 식품을 동결온도보다는 높은 온도에서 저장하는 것을 냉장
(冷藏)이라 하여 구별하는 수도 있으나 보통은 같이 취급한다. 냉동의 원리는 18세기에
발명된 것이며, 다음에는 주로 제빙(製氷)에 이용되다가 19세기부터 식품의 냉동에 이
용되기 시작했는데, 1877년에는 쇠고기나 양고기를 아르헨티나에서 프랑스로 냉동·수
송했으며, 1880년경에는 호주·뉴질랜드로부터 영국이나 프랑스로 육류의 냉동·수송
이 이루어졌다. 어류의 냉동은 1860년대에 미국에서 시작되었는데, 20세기에 들어와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기술의 개발이 촉진되어 그 전의 냉동식품과는 다른 급속
냉동법(急速冷凍法)이 개발됨으로써 질이 좋은 냉동식품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있어서의 냉동산업은 1920년대에 일본인들이 제빙(製氷)을 시작한 것이
효시인데, 본격적인 의미의 냉동을 시작한 것은 1930년대에 들어 서해안의 참조기 등을
일본으로 가져가는 과정에서 하야시가네상점(林兼商店)이 군산(群山)에서 냉동공장을
설립한 것이 효시인 것 같다.
그 보다도 조금 후에 부산에서 하세가와(長谷川)라는 회사에서 부산냉동(釜山冷凍)이
라는 것을 설립했다는데, 이 공장은 해방 후 몇 가지 경로를 거쳐 마지막에는 최성문이
인수해서 대한수산(大韓水産)으로 개칭하여 운영했고, 6·25전란 때에는 미군 보급창으
로 이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70년대 들어 북양어업(北洋漁業)의 개발로 트
롤선에서 잡은 명태가 냉동상태로 대량으로 시장에 나오게 됨으로써 가뜩이나 부족하던
동물성 단백질 식량원으로서, 그것도 냉동된 것이어서 전국 방방곡곡까지 수송이 가능
하여 일대 각광을 받게 되자, 그것의 보관을 위하여 부산에 냉동공장이 들어섬으로써
비로소 냉동업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 냉동업 : 거제의 냉동업은 크게 발전된 것은 없으나 거제와 가까운 통영에서 냉
동업이 수산물을 대상으로 발전하였는데 그것은 1970년대 초에 국영기업체인 한
국수산개발공사(韓國水産開發公社)가 당시 동호동의 남서쪽 끝에 일제시대부터
있던 비료창고를 인수하여 냉동시설을 하고, 대한종합식품(大韓綜合食品)이 도
남동에다 냉동시설을 하여 북양 명태의 필레(fillet) 등을 냉동한 것이 효시라고
한다. 이 무렵부터 냉동 어패류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기 시작하자 1973년경 천
기주(千基柱)가 역시 동호동 바닷가에 있는 200여 평의 대지에 150평 정도의 냉
동공장을 지어 일부 제빙을 하는 한편, 근해산 붕장어를 필레로 만들어서 냉동
하여 일본에 수출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들 두 냉동공장은 1977년부터 금성수산(金星水産:대표 金載錡)이 인수하여
운영하게 되었다고 한다.
○ 한미패류위생협정과 굴 냉동업 : 이 보다는 앞서 1960년대부터 수하식 굴 양식
업이 본격화되면서 굴의 생산량이 늘어나 그것의 냉동·냉장이 필요하게 되고,
굴을 세계 제1의 소비시장인 미국으로 수출하기 위한 1차 관문인 한미패류위생
협정(韓美貝類衛生協定)이 1972년에 체결되어 미국 FDA(식량의약청)가 승인한
가공처리업체에서 생산된 것만이 미국으로 수출하게 되자, 여러 업체가 승인을
받기에 이르렀는데, 그 동안의 FDA 승인업체의 변동은 <표 8-5-1>과 같다.
미국식량의약청에 승인을 받고 수출품을 최초로 등록한 업체는 1973년 4월
15일 통영시 도남동에 위치한 대한종합식품(주)와 통영시 동호동에 위치한 제동
산업(주), 거제시 둔덕면에 위치한 제동산업(주)가 우리나라에선 굴 수출회사로
미국식량의약청에 승인을 받고 거제시 동부면 가배, 둔덕면 어구 일대와 한산도
해역 충무연안 등에 대대적인 굴 양식장이 생겼다.
1974년 4월 1일에는 한산면 염호리에 제동사업(주) 설립되었고, 1977년 9월
3일에는 부산시 남부민동에 위치한 대림수산이 수출회사로 등록하였고, 1979년
1월 1일에는 거제시 둔덕면에 중앙수산(주)이 선립인가 되었고, 1987년 1월 1
일에는 통영시 미수동에 대흥물산(주)가 승인되어 굴수출회사로 등장하였다.
그러나 이들 업체들이 대부분 세월이 지남과 동시에 기업주가 변경되거나 생
산품목도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대한종합식품은 월남전쟁 당시 군납으로 굴
이외 김치통조림 등 식품분야에 다양하게 취급하였으나 세계의 흐름에 따라 많
은 변동을 가져왔고 따라서 기업주도 교체되었다. 대한종합식품은 태정기업으로
업주와 회사명이 바뀌었고, 주로 굴통조림 생산을 하고 있으며, 통영시 동호동
의 제동산업은 수산개발공사에서 다시 국제원양으로 개칭되었으나 역시 회사운
영상 1981년 등록을 취소시켰다.
거제시 둔덕면에 있는 제동산업은 수산개발공사로 다시 화인무역에서 진양어
업으로 개칭한 후 냉동굴 15톤, 참치통조림 13만관을 생산한 실적이 기록되어
있다. 한산면 염호리에 위치한 제동산업은 수산개발공사로 개칭한 후 1981년에
등록을 취소 시켰고, 부산시 남부민동에 위치한 대림수산은 업체는 그대로 있
으나 냉동굴 수출업무를 1991년에 취소시키고 생산품목을 게맛살, 생선묵 등으
로 바꾸워 생산판매하고 있다. 통영시 미수동에 있는 대흥물산(주)는 현재까지
변화없이 냉동굴(IQF)과 피조개 등을 생산하고 있다.
냉동굴(ice quick food:IQF)은 급속냉동으로 원칙은 굴 하나 하나가 얼려서
상자에 담긴 것을 수출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대부분 굴을 까서 깨끗하게 세척
한 후, 굴 낱알이 담길 수 있는 홈이 있는 용기(tray)에 담아서 동결실에 넣어 -
35℃이하의 온도에서 60분 정도 급속 냉동시킨 후, 동결된 굴을 +5℃의 물에 담
그면「얼음옷」[氷衣. grazing]이라고 하는 엷은 피막이 생기는데, 이 얼음 옷
은 세균의 침범, 탈수·탈색 등의 방지에 효과가 있다.
얼음옷이 입혀진 굴은 크기별로 8온스(226g)짜리 또는 4파운드(1.2kg)짜리 용
기에 담아서 포장하는데, 8온스 들이는 가정용이고 4파운드 들이는 식당 같은
대량 소비업소용이다.
4. 멸치 냉장업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한 최대한 방법 중의 하나가 저온저장이나 냉장법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1978년부터는 기선권현망수협에서도 멸치를 냉장법으로 저장을 시도했다. 수
산 어패류나 육상동물에 함유되어 있는 지방산은 두 가지의 유형으로 구별할 수 있다.
하나는 포화 지방산이고 다른 하나는 불포화 지방산이다.
수산어패류의 경우는 불포화 지방산이 많이 함유하고 있어(불포화란 탄소와 탄소간의
고리가 두 개 연결된 상태) 공기 중에 방치해 두면 산소의 작용으로 쉽게 산화(酸化)되
어 색깔이 누렇게 변하고 맛도 나빠지며 나중에는 본래의 성질이 변질되는 현상이 생기
는데 이것은 주로 산화현상(酸化現象)이 일어난다고 한다.
따라서 산화가 일어나면 부패현상이 생기게 되므로 가능한 산소와 접촉을 피하거나
아니면 저온에 저장 보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권현망수협에서는 1978년부터 용량
3kg들이 멸치포로 1만8천포(중량으로는 54톤)를 수납할 수 있는 냉동창고를 지어 -20
℃ 정도의 온도에서 보관하기 시작했는데, 이 무렵부터 우리 국민들도 식품의 질(質)이
라는 것을 중요시하기에 이르렀으며, 각 가정에도 냉장고가 보급되면서 그런 인식이 더
욱 고조되어 갔다.
권현망수협의 냉동창고는 1990년 조합을 통하여 저온환경에서 관리하는 것이 각 권
현망수협을 통하여 차츰 확대되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