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렁다리 녹색체험마을이 있는 원류리(院流里)
이곳은 용문사에서 설치한 여관(院)이 있던 곳인데, 타지로 가는 길목이기도 하여 생겨난 마을로서, 원이라 하였는데 임진왜란 때 명의 지사로 이여송을 따라 종군했다가 정탁(하금곡리에서 출생)의 구함을 받아 귀화한 두사충이 명당을 찾던 중 이곳 원에서 쉬면서 새원이라 하면 더욱 좋겠다고 하였다 하고, 양천인 허순(許珣 진사)이 이곳으로 피난을 왔다고 한다.
본래 예천군 유리면의 지역인데 1913년에 제고면에 속하고 1914년에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원리와 본원동(일부)를 병합하여 용문면 원류동이라 하였고 1988년에 원류리로 개칭되었다.
새터(새터마, 新基, 草澗亭)
원류리의 가장 中心되는 마을로서, 19세기 후반에 신원(新院)에 살던 사람들이 옮겨왔다고 한다. 앞냇가에 초간정(죽림리 구역)이 있다. 이 마을은 그냥 초간정이라고도 한다.
팔찌기(八積, 八賊)
문촌 동쪽에 여덟 사람의 부자가 살고 있어 여덟 노적가래가 있었으므로 팔적이란 이름이 생겼다고 하고, 도둑골에 8명의 도둑이 있었다고 하고 팔적이라 부른다고도 한다.
허릿골(흐릿골, 허리골, 希夷, 希里, 流里, 希弟, 本流)
원류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이 마을 사람들은 정감록의 십승지지가 바로 여기라고 주장한다. 한길에서 안 보이는 마을이므로 피난처로 알맞다. 조선시대에 이 마을 이름을 따서 유리면(流里面)이 되었고, 流里面 소재지이었다. 마을 뒤에 방아 살개처럼 생긴 형제봉이 있고 그 봉의 낮은 목의 지형이 허리처럼 생겼다고 허릿골이라 하였다고도 한다.
문촌(문村)
허리골 남쪽 큰길 가에 있는 마을로 지금으로부터 약 350년전에 감천 문씨(甘泉 文氏)가 개척하여 文氏의 마을이란 뜻이라고 하나 지금은 모두 떠나고 각성촌(各性村)이 되었다.
민경지(鳴犬地, 面境地)
면경지라고 하기도 한다. 면의 경계선 지점이란 뜻이었는데 변음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용문면이 유리면(流里面)과 제고면(諸古面)으로 되어 있을 때, 이 마을이 경계지점이었다. 이 곳 지형이 개처럼 생겼다고도 하고 또 앞산에는 맹호출림형(猛虎出林形)의 명당(明堂)이 있다고 한다.
첫댓글 유리면의 소재지답게 21명의 동창들이 있다, 권태영, 금동열, 김종화, 김현자, 김호주, 박귀순, 박노달, 박명식, 박양식, 박장식, 박희달, 박희순, 박희주, 전일상, 허종윤, 허주행, 허찬행, 허회림, 허회운, 홍명자, 홍한운이 있는데 용원초등학교는 폐교가 되어 ㅇㅇ국제연수원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옛날 같으면 골목이 왁자지껄 하였으리만 지금은 우리네 부모님만이 지키시는 한적한동네......그래도 고향의 모습만보아도 마음이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