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놀이의 예술세계
사물놀이의 가장 대표적인 연주곡은 ‘비나리’, ‘삼도설장고가락’, ‘삼도농악가락’ 그리고 ‘판굿’등이다. 하지만 이 네 가지가 사물놀이가 내보이는 모습의 모두는 아니다. 물론 위의 그 네 가지 레파토리가 오늘의 사물놀이를 있게 만든 가장 대표적인 것들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사물놀이가 과거 조상님들이 남겨주신 위대한 유산을 오늘을 사는 우리의 정서와 감각에 맞게 재창조하였던 사물놀이의 예인정신은 여기에 결코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창조적인 실험이나 다른 예술분야와의 만남, 그리고 예술적 자기발견을 끊임없이 추구하고 있다.
1. 전통의 창조적 계승
사물놀이의 문화예술적인 성공은 일차적으로 전통을 이 시대의 정서에 맞게 창조적으로 계승하였다는 데에 있다. 사물놀이의 대표적인 연주곡들인 ‘비나리’, ‘삼도설장고가락’, ‘삼도농악가락’, ‘판굿’ 등은 과거에 조상님들로부터 전해진 전통적인 연행형태를 재구성하여 무대공연화한 것이다. 우선 이 네 가지 사물놀이의 주요 공연물을 살펴보도록 하자
1) 비나리
‘비나리’는 사물의 가락 위에 축원(祝願)과 고사덕담(告祀德談)의 내용을 담은 노래를 얹어 부르는 것인데 제의성(祭儀性)이 매우 강하다. 그래서 이 비나리는 사물놀이의 공연에서 맨 앞에 놓여진다. 비나리로서 공연의 문을 열어서 오신 모든 분들의 평안(平安)과 안녕(安寧)을 기원하는 것이다. 이 비나리로 공연을 시작할 때는 사물놀이의 무대입장은 무대 뒤에서가 아니라 객석 뒤의 극장 출입문에서이다. 그것도 사물소리를 내면서 말이다. 좀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비나리를 하기 전에 ‘문(門)굿’1)을 침으로서 사물잽이들이 왔음을 알리고 문굿이라는 통과의례(通過儀禮)를 통해 그 안의 사람들과 비로소 같은 공간의 기(氣)를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이 문굿은 북의 점고(點鼓)2)소리로 시작하여 사물이 한바탕 어우러진 뒤 상쇠가 문안에 대고 이렇게 외친다.
“문엽쇼 문엽쇼 오방신장(五方神將) 문엽쇼.
만인간(萬人間)이 들어갈 때, 만고복록(萬古福祿)이 태산(泰山)같이 두리두둥실 많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다시 ‘덩덕궁’가락으로 그 문을 지나고 객석을 지나 무대에 올라서는 지신(地神)을 누른 뒤 비나리를 시작하는 것이다. 비나리에는 창세내력(創世來歷)과 살풀이, 액풀이, 축원덕담 등의 내용이 담겨져 있다. (연주시간 : 15분 내외)
2) 삼도설장고가락
‘삼도설장고가락’은 과거 경기․충청도의 중부지방과 호남, 그리고 영남지방 등 삼도(三道)에서 명성을 날리던 장고의 명인들의 가락을 모아 사물놀이가 정리해 놓은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사물놀이적인 감각과 또한 이 시대 최고의 장고잽이인 김덕수의 독특한 가락이 덧붙여져 있다. 그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여타의 설장고놀이의 가락 엮음새가 ‘다스름-휘모리-동살풀이-굿거리-덩덕궁’의 순서인데 반해 사물놀이의 삼도설장고가락은 ‘다스름-굿거리-덩덕궁-동살풀이-휘모리’의 순서로 되어 있어 마치 산조(散調)가 다스름 이후의 장단을 느린 것부터 빠른 것으로 늘어놓은 것과 같은 형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사실 설장고놀이는 장고에 능한 상장고(上長鼓)3) 같은 이가 혼자 나와서 서서 장고를 치면서 여러 가지 춤사위나 자기만의 독특한 버슴새4) 등을 보여주는 식인데, 사물놀이는 네 명의 연주자 모두가 앉아서 연주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설장고의 놀이성보다는 음악적인 면이 강조가 된다. (연주시간 : 25분 내외)
3) 삼도농악가락
‘삼도농악가락’ 역시 삼도의 대표적인 풍물굿 가락을 모아 앉은반5)의 형태로 연주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물놀이’하면 떠올리는 사물놀이의 대표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이 삼도농악가락은 사물놀이의 초창기에는 말 그대로 ‘영남농악’, ‘웃다리풍물’, ‘호남우도굿’으로 따로 따로 나뉘어져서 연주되었었지만 그 뒤에 이 셋을 한데 엮어지게 되었다. 삼도설장고가락이 장고를 통해서 연주자의 기량과 음악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삼도농악가락은 꽹과리, 징, 장고, 북의 사물을 가지고 우리의 가락 속에 잠재되어 있는 음양의 원리와 자연의 이치를 수많은 세월을 통해 학습하고 다져온 깊고 넓은 호흡으로 동그랗게 떠 올려 감고 감아가며 쌓아서 혹은 오므리고 혹은 부풀리며 한데 어우러진다. 이러한 삼도농악가락의 장단 짜임새는 ‘호남우도굿(점고-경술-오채질굿-좌질굿-우질굿-굿거리‧풍류-양산도-덩덕궁)-영남농악(별달거리)-웃다리풍물(짝쇠)’의 순으로 되어있다. (연주시간 : 25분 내외)
4) 판굿
비나리는 제의성이 강하고 삼도설장고가락과 삼도농악가락은 음악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다면 ‘판굿’은 놀이성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판굿에서 사물잽이들은 머리에는 상모를 쓰고 사물을 손에 들거나 몸에 메거나 하여 발로는 땅을 딛어 박차고 머리로는 하늘을 휘젓고 손으로는 사물을 울리어 듣는 이의 몸과 마음을 뒤흔든다. 그것을 위해 사물잽이들은 끝없는 신명과 터질 듯한 몸짓으로 온 몸과 마음을 내 던진다. 자기가 치고 있는 가락에 얹힌 발딛음과 상모의 사위가 하나가 되어서 다른 잽이의 그것과 다시 하나가 되어야 하고 그래야만 보고 듣는 이와 더욱 크게 하나가 되어 천‧지‧인(天‧地‧人) 모두를 아우를 수 있으니 실로 사물놀이의 백미(白媚)라고 할 수 있다. (연주시간 : 50분 내외)
2. 월드뮤직으로서의 사물놀이
‘비나리’, ‘삼도설장고가락’, ‘삼도농악가락’, ‘판굿’ 등 이상의 네 가지가 이른바 사물놀이의 대표적인 레퍼토리이다. 그러나 사물놀이는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다른 공연예술의 갈래와의 실험적, 창조적 만남이나 무속(巫俗)의 사물놀이화 등의 시도를 잠시도 멈추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 사물놀이만큼 장르파괴적인 공연활동을 많이 한 연주단체도 드물다. 이를 두고 세간에서는 ‘Fusion Music’ 혹은 ‘Cross-Over’ 등의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만 나열을 해 보면 ‘사물놀이를 위한 국악관현악’ ‘사물놀이와 피아노의 만남’ ‘사물놀이와 오케스트라의 만남’ ‘사물놀이와 재즈의 만남’ 등 사물놀이가 새로운 예술적 가능성을 찾기 위해 시도한 실험적이면서도 창조적인 만남과 모색은 실로 다양하다는 표현을 넘어설 정도이다. 이는 갈수록 민족과 문화간의 만남이 잦아지어 이제는 하나의 문화권에 다양한 문화와 삶의 양식이 넘쳐나는, 이른바 ‘다문화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세계와 주체적이면서도 개방적인 만남은 새로운 시대적 화두이기 때문이다.
1) 사물놀이와 국악관현악
사물놀이를 위한 국악관현악 협주곡 「신모듬」, 작곡 - 박범훈(1986)
사물놀이를 위한 국악관현악 협주곡 「단군」, 작곡 - 김대성(1999)
2) 사물놀이와 서양관현악
사물놀이를 위한 서양관현악 협주곡 「마당」, 작곡 - 강준일(1983)
사물놀이를 위한 서양관현악 협주곡 「푸리」, 작곡 - 강준일(1983)
사물놀이를 위한 서양관현악 협주곡 「터벌림」, 작곡 - 김대성(1998)
3) 사물놀이와 팝스 오케스트라
사물놀이를 위한 서양관현악 협주곡 「절정86」, 작곡 - 정성조(1986)
4) 사물놀이와 재즈 (대표 음반들만)
"RED SUN/SAMULNORI"(1989) (PolyGram/Amadeo ; 841 222-1)
“NANJANG - A NEW HORIZON"(1995) (King Records ; ksc-4150a)
"From the Earth, to the Sky"(1996) (Samsung Music ; SCO-137stm 0047)
“Mr.Changgo - KIM DUK SOO WITH HIS FRIENDS" (1997) (Samsung Music : SCO-137NAN)
5) 그 외의 크로스오버
사물놀이와 일렉톤의 만남 「전무화악」, 작곡 - 정준희(1997) 등
6) 총체극 음악 구성 및 연주
총체극 「영고」, 작 - 장종화 / 연출 - 강영걸(1994)
콘써트라마 「사물이야기」, 원작 - 김동원 / 극본 - 구히서 / 연출 - 강영걸(1998)
7) 전통연희개발작품
新 사물놀이 「풀이와 놀이」, 작품구성 - 김덕수(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