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 중에 제일 어려운 것이 ‘자식농사’라 하고 ‘뿌린 대로 거둔다’, ‘벼는 농부 발자국 소리를 듣고 큰다’는 속담도 있다. 이처럼 농사를 짓는 것과 교육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시간과 노력을 들인만큼 그대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정직한 과정이라는 사실이 그것이다. 청소년 농사교육 에듀팜은 ‘땀’의 가치와 보람을 아이들에게 전해주고자 탄생했다.
글•사진_박세라 기자
사진•자료제공_에듀팜(cafe.daum.net/edufarmsn)
흙에 두 발 딛고, 아이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30여 년 가까이 교육현장에서 수학강사로 활동해 온 에듀팜 백현상 대표. 백 대표가 ‘흙의 힘’을 깨달은 것은 몇 년 전 자녀들과 함께 주말농장을 시작하면서였다. 오랜 시간 교단에 서 왔던 그조차도 ‘아이들은 원래 싫증을 잘 내는 법’, ‘아이들이니까 금세 시들해지는 것이 당연하지’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함께 주말농장을 일구는 동안 아이들은 예상을 뛰어 넘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주었다. 흙이 돌려주는 정직한 보람에 몰입하는 자녀의 모습을 보면서 그는 ‘이거다’ 싶은 깨달음을 얻었다. 그것이 에듀팜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단지 농사에 참여하는 것만으로 교육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일회성 농촌체험이나 농사 돕기는 큰 의미를 지니지 못했다. 지속적으로 꾸준히 노력할 때 비로소 얻어지는 성취감이 중요하고, 동시에 단순히 농사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재미와 의미’가 더해져야 아이들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는 것에 착안했다.
백 대표는 에듀팜을 단순한 ‘청소년 주말농장’이 아니라 부모와 자녀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어울림의 터전으로 만들고자 했다. 먼저, 아이들에겐 ‘경진대회(콘테스트)’ 형식을 빌어 미션을 해결하며 위로 올라가는 ‘경쟁’의 재미 요소를 주었다. 더불어 부모와 아이를 위한 인문학 강좌와 예술 교육이 함께 기획되었다. 한 달에 두 번, 토요일 오전에 함께 모여 가까운 주말농장에서 농사를 하고 문화 체험과 인문학 강연을 듣기로 한 것이다.
아이들이 거둔 것은 ‘소통’의 열매
시작 초기, 백현상 대표는 기획서를 들고 시청과 교육청 등을 방문했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지원을 받는 데 실패했다. 결국 에듀팜은 백 대표의 사재를 바탕으로 시작됐다. 우여곡절 끝에 올해 봄 150여 명의 참가 학생과 에듀팜 프로그램을 시작하며 백 대표는 ‘12월 종료 시점에 50명이라도 남아 있으면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고. 참가비를 받지 않는 무료 프로그램인데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 농사짓는 일이 아이들에게 무척 고될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12월 14일 에듀팜 경진대회 수료식에 참가한 학생은180명에 달했다. 백 대표 스스로도 놀랄 만큼 성공적인 결과였다.
에듀팜에 참여한 학생들이 즐거움 속에서 하나 둘씩 변해가는 모습은 그 어떤 홍보활동보다 더욱 효과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농사를 통해 알찬 수확도 거두어졌다. 지난 9월 성남시청 청소년 벼룩시장에 손수 가꾼 유기농 채소를 들고 나선 청소년 농사꾼들은 ‘완판’의 신기록을 세웠다. 아이들이 손수 가꾼 배추와 무, 고추 등으로 각자 집에서 김장을 해결할 수 있을 정도의 수확이 거두어졌다. 그냥 ‘시늉’만 하고 마는 농사가 아니라 본격적으로 두 팔 걷어붙이고 주말 농사꾼으로 산 결과였다.
머리와 가슴도 더불어 차 올랐다. 포럼 형식의 인문학 강좌는 학부모들의 토론, 진솔한 눈물과 웃음으로 가득했다. 학부모의 영원한 화두인 ‘좋은 부모 되기’와 더불어 좋은 사람, 좋은 세상을 생각하는 진지한 모색이 이어졌다. 학부모가 변하자 아이들이 변했다. 흙에 짓는 진짜 농사뿐 아니라 머리와 가슴에 짓는 생각 농사, 마음 농사도 풍성한 결실을 맺었다. ‘소통’이라는 알찬 열매가 영근 것이다.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날아올라라 에듀팜!
2014년이 되면 두 번째 에듀팜의 막이 오른다. 올해가 창립 원년이자 시범적 한 해였다면 본격 시작은 내년부터다. 성남시 관내 초등학교 학생 및 그에 준하는 대안학교 학생, 그리고 그 학부모, 인솔 교사 등을 대상으로 올해와 마찬가지로 10개월 간의 ‘에듀팜 콘테스트’가 시행된다. 뿐만 아니라 성남시청, 성남교육지원청, MOU 체결 초등학교 및 의회, 지역기업 등과의 협력으로 업무의 외연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이 뿐만 아니라 서울 서초, 송파, 강남, 강동지역과 경기 수원, 용인, 하남, 광주, 고양 일산 등의 지역에서도 에듀팜 시범사업이 진행된다. 성남 지역에서 첫 싹을 틔운 에듀팜이 다른 지역, 다른 성격의 환경에서도 잘 자랄 수 있는지 조심스런 도전이 시작되는 것이다. 더불어 에듀팜 연계 사업도 한층 강화된다. 어린이 신문, 방송 등의 미디어 만들기, 어린이 장터, 도시농부학교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에듀팜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실행될 것이다.
지역이 확장되고 프로그램 또한 다양해질지라도 에듀팜이 추구하는 방향은 변함 없이 한결같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흙을 밟고 작물을 키우는 농사를 통해 땀의 보람과 가치, 성취의 기쁨을 맛보며 건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하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소통하는 현장 속에서 얻어지는 건강한 결실, 그것이 바로 에듀팜이 세상 모든 아이들에게 주고픈 선물이다.
에듀팜 백현상 대표 인터뷰
즐거움이 자라나는 텃밭, 이곳이 에듀팜입니다
에듀팜 백현상 대표는 “올 한해 같이 땀흘리며 농사를 지은 에듀팜 학생들과 학부모님, 그리고 우리가 함께 더불어 쌓아 온 시간이 있어 2014년 새해 에듀팜 사업에 희망이 생깁니다.”라며 말을 꺼냈다.
- 에듀팜 사업을 처음 시작하며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은 어떤 것인지요?
“사실 저는 에듀팜이 첫째도 재미, 둘째도 재미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뜻이 좋아도 흥미를 끌 만한 요소가 없다면 아이들이 지속적으로 농사에 참여하지 않을테니까요. 그런 면에서 조금은 자신이 없기도 했어요. 스마트폰, 인터넷, 텔레비전…. 요즘 세상에 농사보다 흥미로운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에듀팜을 진행하면서 한 가지 놀랐던 게요. 아이들이 농사를 지으면서 그 안에서 스스로 직접 즐거움을 찾아가더라고요. 직접 키운 작물이 열매를 맺는 것, 채소를 가지고 벼룩시장에 참여하는 등의 행위 자체가 아이들에겐 새로운 경험이고 재미였던 겁니다. 제가 아이들을 너무 단편적으로 생각했구나, 언제나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어른들이 문제이지, 아이들은 새로운 체험과 자극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구나, 하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됐지요.”
- 에듀팜 사업이 백 대표 개인에게는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요?
“대학 시절 야학 강사를 하면서 제 적성에 ‘가르치는 일’이 꼭 맞는다는 것을 깨달은 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교육자의 길을 걸은 것에 후회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경험이 쌓여갈수록 고정관념이 단단해지는 ‘부작용’도 있었지요. ‘경험보다 가치 있는 것은 없다’는 이야기는 곧 ‘경험에 갇혀서 보이는 만큼만 본다’는 것이기도 하거든요.
에듀팜은 저에게 고정관념을 깨고 더 넓은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준 계기였습니다. ‘교육은 이래야 한다’, ‘학생에게는 이런 것을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을 벗어나 농사라는 행위를 통해서 순수한 성취감을 느끼고 또한 그것과 연관된 흥미로운 일들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틀을 깨는’ 행위였습니다. 학부모님과 아이들도 그러하겠지만, 저와 저희 에듀팜 사람들 모두에게도 성장의 한 해였지요.”
- 2014년 에듀팜 사업에 대해 바라는 점을 말씀해 주신다면요?
“에듀팜이라는 큰 울타리 안에서 농사를 포함한 다양한 프로젝트가 활발하게 펼쳐지는 한 해였으면 좋겠습니다. 최근 저희가 기획한 청소년 미디어 사업이 성남문화재단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청소년 신문 제작 프로젝트’가 시작되기도 했는데요. 이렇듯 에듀팜 본연의 ‘청소년 도시농업’ 프로젝트 외에도 미디어 제작, 독서 모임, 청소년 벼룩시장, 인문학 커뮤니티 등 ‘의미와 성장’이 함께할 수 있는 재미있는 프로젝트라면 어떤 것이든 실천해 볼 생각입니다.
에듀팜이 주말농장에서의 우연한 발상으로 시작된 것처럼 다른 프로젝트 또한 생활 속에서 반짝 하는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면 어떤 것이든 만들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중요한 것은 삶 속에서 실천을 통해 자연스럽게 스며 드는 배움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