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사전>의 저자인 프랑스 사회학자 자크 아탈리는 자신의 이 책에서 21세기형 신인류의 모습으로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를 소개했다. 사전적 의미의 노마족이란 유목민이라는 뜻인데, 요즘처럼 정보와 지식이 중심인 디지털시대에는 자신의 삶의 질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자유로우면서 창조적인 생각을 하는 소위 현대판 유목민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유롭고 창조적인 사고방식, 네트워크의 활용, 주도면밀한 계획과 준비, 주변인들과의 우애, 경계심 등의 특성으로 대변되는 이들은 생산과 소비를 주도하면서 미래사회의 주도세력으로 떠오를 것으로 분석했다.
이렇듯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등장한 미래형 인간형을 달리 표현한 동의어로는 '입체형 인간', 'T자형 인간’, ‘멀티 플레이형 인재’등을 꼽을 수 있겠다. 한 마디로 압축하면 ‘다양성’을 요구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21세기를 주도해나갈 미래형 인간으로선 어떤 모습과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가.
첫째. 다면적으로 생각하고 주변과 교감하며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을 지녀야 한다. 점. 선. 면이 아닌 입체를 통찰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그림과 조각을 비교 할 수 있겠다. 그림은 어느 방향에서 보든 같은 장면을 보여주는데 비해 조각은 보는 방향에 따라 형상이 달라진다. 그림처럼 한 방향에서만 바라보는 평면적 사고방식이 아닌, 전 방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조형물처럼 사물의 한 단면만 보고도 전체를 그릴 줄 아는 종합적인 능력이 요구된다.
둘째. 다양성을 갖춘 인재라야 한다. 소위 ‘T자형 자질’로 설명되는 이것은 자기 전문 분야는 물론 다른 유관 분야에까지 폭넓은 소양을 갖춘 인재를 말한다. 자기 전문 영역에서는 스페셜리스트(Specialist)지만 다른 분야에 있어서도 활용 가능한 지식과 역량을 갖춘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로서 활약할 수 있는, 제너럴 스페셜리스트(General Specialist)야말로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인재다.
특히 요즘 같은 경제위기 상황에선 자기분야에 대한 전문성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 가능한 실력이 요구되고 있다. 즉 자신이 원하는 삶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여러 개의 영역이 필요하다는 뜻인데, 이는 개인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적잖이 기여할 것이다. 만일 당신이 오너라면 본인의 전문성도 확실히 갖고 있으면서 다른 일도 잘하고 업계에서조차 '마당발'인 직원에게 더 후한 점수를 주지 않겠는가.
셋째. 긴 안목을 가진 사람,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기회를 맞을 준비를 하는 사람,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도전의식을 가진 사람, 상상력과 창의성이 있는 사람, 자기 일에 몰입하는 열정적인 사람, 배우고 독서하며 공부하는 사람, 경청하며 소통할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야 한다.
인식의 주기가 짧은 사람은 민첩성은 있고 일시적인 변화에 잘 적응하나 큰 흐름을 읽진 못한다. 이전의 산업사회에서는 단기적 변화를 잘 타는 이런 타입이 먹혔다. 또 한 가지 확실한 재능(기술)만 갖고도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거대한 변화의 파고가 밀어닥치고 있고, 빛의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변화하는 정보화 사회에 살고 있다. 따라서 나무도 중요하지만 숲 전체를 볼 수 있는 광각렌즈를 가져야 한다. 전체적인 흐름을 꿰고 있어야 하며, 일인다역을 너끈히 할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명리학에서는 이렇게 준비된 ‘멀티 플레이형 인재’를 진술축미(辰戌丑未)에 비유한다. 12지지(地支)를 크게 나눠 세 가지로 분류하는데, 인신사해(寅申巳亥), 자오묘유(子午卯酉)에 이어 세 번째로 분류되는 것이 바로 진술축미(辰戌丑未)다. 사묘지(四墓地) 또는 사고지(四庫地)라고 부르는 진술축미는 각 계절의 환절기인 음력 3·6·9·12월에 해당하며, 띠로는 용·개·소·양을 상징한다. 진술축미는 각 계절의 중심달(왕지旺地)인 子午卯酉(음력 2·5·8·11월)를 책임지는 창고 역할을 한다. 하늘의 기운인 천간(天干)의 무기토(戊己土)와 더불어 지지의 토土 기운에 해당한다. 토는 방위가 중앙이면서 각 계절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으로, 믿음(신용)과 중용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처럼 활동이 정지된 상태이나 지극히 책임감이 높고 안정된 ‘창고지기’가 바로 진술축미다.
창고(庫)는 무작정 짓는 법이 없다. 가을걷이나 수확물을 창고에 들이듯이, 뭔가 보관하거나 지킬 게 있을 때 짓는 게 창고다. 모든 창고는 용도가 있으며, 그 안에 들인 물건을 안전하게 지킬 책임을 갖는다. 흙(土)은 겨우내 혹한의 추위 속에서도 봄에 싹틔울 씨앗을 오롯이 품는다. 봄에는 식물을 키우고 여름엔 꽃을 피우며, 가을엔 열매를 맺게 한다. 철 따라 계절의 왕인 子午卯酉를 그렇게 책임감을 갖고 안전하게 지켜내는 것, 이것이 진술축미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사명이자 질서다.
따라서 진술축미는 시작부터 완성에 이르는 기승전결起承轉結의 구조를 갖는다. 봄(Cosmos)에서 여름으로, 여름(Inflation)에서 가을로, 가을(Crisis)에서 겨울로, 겨울(Chaos)에서 다시 봄으로… 여기엔 결코 거스름이나 건너뜀이란 없다. 오랜 기간 준비하며 자신을 채워가는 인내의 시간, 숙성의 과정만이 필요할 뿐이다. 조직 안에서 업무의 전 과정, 즉 Plan-Do-See-Check 단계를 진술축미 역시 충실하게 밟는다. 필자는 이런 진술축미의 특징적 요소를 요즘 TV 프로나 영화 속에서 자주 발견한다. 또 연예인이나 연기자, 스포츠선수를 보면서 실감할 때가 많다.
노래든 연기든 운동이든 기본기를 바탕으로 오랜 세월 착실하게 실력을 연마해온 사람은 반드시 대중들로부터 제대로 된 평가와 인정을 받게 된다. 숱하게 많은 ‘반짝 스타’가 나타났다 사라지는 연예계나 스포츠계에서 유독 오랫동안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이들의 면면을 보면 금세 알 수가 있다. 양발 차기로 축구경기장을 종횡무진 누비는 노력형 ‘멀티 플레이어’의 대표주자 박지성, 이영표 선수가 그 대표적 예라 하겠다. 긴 무명시절을 딛고 요즘 TV드라마 ‘초한지’를 통해 인기절정에 오른 이범수 역시 ‘진술축미과’ 연예인. 新한류 열풍을 몰고 온 우리나라 아이돌 그룹들 또한 강도 높은 훈련과 노력과 절대적인 팀워크가 뒷받침되었기에, 해외시장에서 믿을 수 있는 ‘상품’으로 신뢰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젠 주연 한 사람만 독식하거나 숭배받던 자오묘유(子午卯酉) 시대가 아니다.
강의도, 글도 다 마찬가지다. 출중한 외모만으로, 임기응변식의 잔재주나 깊이 없는 반짝 아이디어로 버티는 시대는 이제 지났다. 철저하게 준비해야 하고, 대중에게 어필할 만한 기승전결이 있어야 팔린다. 물론 그 중간에 청중(독자)을 울리고 웃기는 감동의 퍼포먼스도 가미되어야 한다. 이미 그런 시대로 진입해 버렸다.
물론 이러한 인재는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 진술축미형 인재가 되기 위해는 우선 스스로를 다양한 경험에 노출시킬 필요가 있다. 외국 유수 대학들이 학과 성적 외에 봉사활동, 클럽활동, 여행, 아르바이트 등 갖가지 경험을 중시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자기만의 동굴 속에서 박차고 나와 넓은 세상과 소통하면서 자신 안에 내재된 특별한 능력을 찾아내고 계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술축미형 인재.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모호한 개념은 아니다. 멀티 플레이가 가능하고, 자신과 타인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본인이 책임질 몫을 정확히 지키면서, 성실한 자세로 미래에 투자하기. 그걸로 충분하다.
첫댓글 "강의도, 글도 다 마찬가지다. 출중한 외모만으로, 임기응변식의 잔재주나 깊이 없는 반짝 아이디어로 버티는 시대는 이제 지났다. 철저하게 준비해야 하고, 대중에게 어필할 만한 기승전결이 있어야 팔린다. 물론 그 중간에 청중(독자)을 울리고 웃기는 감동의 퍼포먼스도 가미되어야 한다. 이미 그런 시대로 진입해 버렸다." 우리에게 주는 핵심적인 메시지로 들립니다. 감사합니다.
오랫만에 들어와 좋은 글 읽고 자신을 추스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