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홀로 가는 산경표 (* 홀산 *)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4. 활인동치~조약봉분기점 스크랩 4/2 조약봉(활인동치-모래재-곰재)구간종주-호남금남4차완료
배슈맑 추천 0 조회 58 09.10.27 11:1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단독종주) 운해님과 함께

 

 (산행시간표)

4/2     06:10  강정골재(활인동치) 출발

          08:00  부귀산(806.4)                       4.0km

          09:20  우무실재

          09:55  질마재

          10:30  가정고개

          11:05  오룡동 -점심                         6.2km 

          11;30  오룡동고개 출발  

          13:40  조약봉-금남호남 완료 고사    4.5km

          14;30  조약봉-호남정맥 출발          

          15:10  적내재                               

          16:40  곰재                                    5.3km

 

                              10시간 30분         20km

 (오룡동 고개 넘어 조약봉 가는 길에 현호색 군락이..)

 

(4/2 05:00) 전날 마이산 구간 종주를 마치고 육십령에서 대간팀 산제에 참석한 후에 진안읍 여관에서 하

룻밤을 보냈다. 원래 계획은 오후에 천반산 짧은 산행과 용담호 주변을 둘러 볼 계획이었으나, 황사가

워낙 심하여 오후 서너시간을 여관 방에서 잠으로 때웠다. 다음 주 경주 행사 때문에 홀로 산행을 계획하

고 내려 왔으나, 마침 처음 뵙게 된 운해님과 동행을 하게 되어 매우 반갑다. 벌써 환갑을 훨씬 넘긴 연세

에 퇴직 후 대간 종주와 정맥종주를 즐기시는 건강함에 훗날 나 자신의 모습을 비쳐 본다.

 

전날 미리 예약해 둔 터미널 옆 식당에서 콩나물 해장국 한 그릇을 비우고 택시를 이용하여 강정골재 들

머리로 향한다. 인구가 대폭 감소한 진안읍의 월요일 새벽은 마치 깊은 잠에 취한 듯 휴일 처럼 불빛 마

저 잠들었다. 마이산 종합학습장 옆 도로를 따라 들머리를 잡기도 하지만, 그냥 어제 마이산에서 내려온

절개지 맞은 편의 사면을 들머리로 잡기로 하고 26번 도로의 강정골재 식당 앞에서 하차한다. 수더분하

고 검게 그을은 얼굴의 키 큰 택시기사님(011-9640-1470 조완춘)은 진안 토박이로 춘란을 캐러 다니기도

한다. 오후에 곰재 날머리로 다시 오기로 미리 예약을 해 둔다.

 

다행히도 전날의 황사는 거의 다 사라지고 잔잔한 바람만 일고 있지만 하늘에 구름이 아직은 걷히질 않

아 맑은 일출이나 조망은 힘든 날씨다. 점점 밝아지는 여명 속에서 도로 절개지 사면에 미끄러운 첫 발을

올려 놓는다. 랜턴은 밝히지 않아도 충분할 만큼 날이 밝아 온다.(06:10)

 

 (덕유산 쪽에서 일출을..)

 

절개지 사면으로 바로 올라서서 농로를 건너 버섯 재배 단지의 덩치 큰 참나무 행렬을 따라 임도를 오른

다.아직은 버섯이 눈을 틔우지도 않은 모양이다. 우측 사면 참나무 숲을 올라가니 팔각정에 다다른다.

(06;20)좌측 숲에서 올라오는 길은 마이종합학습장에서 오르는 길인 모양이다. 마이산을 조망하기 위해

지어진 것 같으나 시멘트로 축조한 우주선 모양의 정자가 을씨년스럽다. 결코 어울리지도 않고 어차피

마이산을 조망하기엔 아직은 일러 곧장 오른쪽 정자 뒤로 내리막을 밟아 농로 고개에 내려선다.( 06;30)

 

시멘트 포장된 농로를 건너 곧장 오른쪽 경사진 밭의 가장자리를 오르면 가족묘지가 있는 곳으로 이어지

며 겨우 리본을 찾을 수 있다. 이 곳에선 매우 조심하지 않으면 들머리를 찾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아마

도 묘지에 훼손이 올까봐 리본들을 제거하는 모양이지만, 기왕 명당터를 찾아 마루금에 조상을 모실 정

성이라면, 같은 길을 걸어가는 정맥 탐사대에게도 아량을 베풀 줄 알아 좋은 인사를 받게함이 옳을 터..

완만한 능선을 올라 벌목지대 오르막에 도착한다.(06:40) 멀리 덕유산 위로 한 뼘이나 해가 솟아 있구나.

 

오른쪽 진안읍내를 내려다 보며 멀리 용담호가 아침 해를 반기며 반짝인다. 다행히 전 날의 황사 먼지는

맑게 개었으나, 등뒤로 보이는 마이산은 좀처럼 맑은 얼굴을 보여주질 않는구나.작은 봉우리를 넘어면서

벌목지대의 급경사에 수종개량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아, 올 여름 많은 비라도 내리면 산 사태가 염려된다.

2기의 묘를 지나 소나무 숲으로 올라 다시 이어지는 549봉의 왼쪽 벌목지 사면을 크게 감아돈다. 발아래

꽤 큰 공장이 깊숙이 들어 서 있다. 부귀산이 왼쪽 정상을 또렷이 보여주는 안부에 올라서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평일의 정맥길엔 사람 그림자를 찾긴 어렵다. 동행하는 운해님이 큰 형님 같아 참 고맙고 든든하

다. (07:20)

 

 (마이산을 바라보고..)

 

549봉 좌측사면 벌목지대를 돌아 로프가 설치된 짧은 오르막 숲 속으로 올라 안부에서 숨을 고르며 휴식

을 취한다. 부귀산 정상이 왼쪽 절벽을 내보이며 어서 오라 손짓한다.(07:40) 이정표 삼거리를 지나면서

인삼밭 철조망을 오른쪽으로 동행하고 10여분 천천히 오르막 능선을 오른 후 오른쪽 고림사 절골에서 올

라오르는 능선 삼거리를 만나 왼쪽 부귀산 정상 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묘 1기가 벼랑끝을 차지한 부귀산

산정에는 정상 표지 안내판이 차갑다. 멀리 동쪽으로 용담호와 북쪽으로 운장산, 구봉산이 자리를 잡고

인사를 나눈다.(07:55)

 

동쪽  덕유산 아래 천반산 기슭 죽도에서 정여립과 한서린 대동계 무사들의 포효가 이 곳 부귀산을 지나

오룡동 무덤까지 넘나든다. "天下公物 이요,何事非君이라..." 400여년전 기축년의 혁명적 사고가 빚어낸

슬픈 운명의 역사일진대..부디 오늘의 재연같은 사색당파는 사라지기를..수구와 혁명도 동시대의 삶인

것을..누굴 원망하고 누굴 업수히 여길 것인가..앞날에 다가올 자유를 위한다면 그 가치를 위한 냉정함으

로 변해 나갈 일이지, 결단코 적대시하여 깨부수고 압살하는 권력다툼은 아닌것을..역사는 끝까지 승자

의 기록일 뿐인가..결코 아닐 것이다. 오늘날은  패자로 죽은자도 말을 하더이다.

 

"살던 집은 텃자리까지 파버렸읍니다.그 이웃까지 뒤집어파서 앞내 끌어 휘돌아가게 하였읍니다. 깊고

깊은 소를 만들어 버렸지만 그때 그 집주인이 반역했다고, 그래서 전주천 물이 거꾸로 흐른다고, 북으

로 흐른다고 소문내고 그런 속셈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압니다..." -진동규,<댁 건너 대수리를 잡습니다>

 

파쏘봉 아랫마을 죽음(竹陰)리 마을에 대 그림자 걷히는 날, 그날이 오면.. 대동(大同)의 세상에서 함께

훌훌 춤추며 저기 오룡동 돌무덤 밑에서 깨어날 이 땅의 영혼들을 맞으리라..  

 

 (부귀산 전망 바위 내림길)

 

(08:00) 부귀산 정상의 서쪽 낭떠러지를 돌아 나와 왼쪽 로프를 잡으며 조망 좋은 바위 전망대에서 잠시

마이산을 돌아 본다. 아침 안개에 가려진 채 오늘도 맑지는 못하지만, 호남정맥 내림길까지 계속 보여 줄

두 귀를 응시하며 또 다시 山太極을 돌아 내린다. 로프가 끝나는 지점의 안부에서 10여분 휴식을 취하며

정상주를 겸한 포도주 한 잔을 나눈다. 동행하는 운해님의 은퇴 후 유유자적을 배운다. 산이 좋고 복잡하

지 않은 산행길이 좋아서  깊은 산중으로 찾아드는 대간 꾼들에게도 역시 더 큰 사람의 정을 느끼며 함께

걸을 수 있는 여유로움과 서로 의지하는 즐거움에야 비할 수 있겠는가,이것이 삶이요 大同인 것을...

 

자갈길이 미끄러운 급경사 사면을 내려와 부귀산 서쪽 벼랑아래 암릉을 돌아 서면서 다소 편한 능선길

을 만난다. 솔잎과 갈참나무 잎으로 가려진 등로를 헤치며 사그락거리는 발길에서 포근한 아침을 깨운

다. 작은 봉우리들을 짧게 서너개 넘어 선 후 바위 봉우리에서 우무실재를 지나는 왼쪽 남쪽 능선으로 방

향을 바꾼다.(09:20)  좌측으로 방향을 바꾸는 두서너개의 봉우리를 넘어서면서 정맥길은 남서를 향하고,

이제 호남금남정맥의 분기점을 향해 회오리를 감듯 마지막 등줄기를 용트림하면서 좌우로 출렁인다.

지나온 부귀산 벼랑끝이 매우 높게 다가온다. 부드럽게 내려서는 질마재(광주동/금평리) 고갯길이 동

네 어귀를 돌아 나와 평화로운 삶을 이어 넘는다. (09:55)

 

잠시 가파른 오름으로 질마재를 건너 600봉까지 20여분 완만한 능선을 오른다. 계속 진행방향으로 직진

하는 광주동 하산 능선을 버리고 오른쪽 비탈진 사면을 내려와 작은 봉우리를 거치며 가정고개를 지난

다.(10:35) 소나무 몇그루가 예쁘게 서 있는 봉우리를 지나 오른쪽으로 다시 용트림하여 서너개의 오르

내림을 반복한 후 오룡동 도로의 차소리가 요란할 즈음 너덜같은 돌무더기 무덤이 있는 485봉 넓은 공터

에 다다른다. 긴 세월의 아픔을 간직한 채 이제 무수한 뱀들의 요람이 되었을지도 모를 합장터에 고개

숙인다. 이곳이 임진년의 상처이든, 기축년의 상처이든 결국 역사의 뒷장에서 이름 한자 남기지 못한 채

사라져간 민초들의 안식처가 되었음엔 틀림 없으리라..(11:00) 

 

 (오룡동 고개 직전 485봉)

 

(11:10)오룡동 26번국도(전주/진안)에 내려선 후 건너편 양지 바른 묘지 앞에서 간식으로 점심을 때운다.

운해님의 배낭 속에 실려온 막걸리 한병이 그립지만, 조약봉에서의 호남금남완주 고사를 위해 아껴둔다.

오랜만에 전화를 개통시키니 월요일 아침의 문자메세지가 꽤 많이 쌓였다. 새벽에 해장국집 아주머니의

마지막 말이 떠오른다. "아직, 젊어 보이는데..직장을 버렸나 보지..휴일도 아닌데.." 내가 봐도 우습다.

다음 주에 계획된 경주 여행을 위해 한 주 미리 땜빵을 하는 호남정맥 길이 점점 정이 들어 가는 것이다.

 

(11:30) 여유로운 휴식을 끝내고, 3정맥 분기점의 조약봉을 향해 가벼운 걸음을 옮긴다. 두곳의 묘지를

우측으로 돌아 넘으니 산죽군락의 내림길 아래에 꽤 큰 공장들이 두어개 보인다. 길섶의 노랑제비꽃과

현호색이 한낮의 봄볕을 받으며 인적없는 산 길에서 모처럼 만난 나그네에게 잠시 멈춰가길 원한다.

다소 편한 듯한 동네 야산같은 마루금을 오른쪽으로 비켜 오르니, 고갯길을 지난 후 벌목지에서 부터

622봉까지 급경사 된오름으로 땀을 뺀다. 오랜만에 다리품이 힘든 것을 느낀다. 간식으로 먹은 빵이

배부름을 느낀다.(12:20) 작은 내림으로 좌측 봉우리를 지나 마이산에서와 같이 콘크리트 더미같은 암봉

(627)을 올라 서서 잠시 배낭을 내린다. 이제 한 낮의 더위에 물병도 거의 비어간다.

 

자유란 지금 이 순간 내가 느끼며 누리는 것이리라..내가 이 끝도 없는 길의 정점을 찾으며 종착역에

다다를 때 어떤 귀인이 있어 안겨줄 보상은 더욱 더 아닐 것이다. 내 삶의 과정이 자유로운 것이 되어야

하고 내 삶의 종착역에서 더 이상 자유로움에 대한 아쉬움이 없어야 하듯이..이 땅의 모든 민초들이

어떤 구호 아래서,어떤 권력의 교묘한 설득에 속아서 미래를 위한 희생양으로 내몰려진 채,먼 훗날의

발전과 보상을 약속 받으며 고통스런 삶을 참아가는 것은 결코 '자유인의 길'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힘있는 그들의 오늘을 위한 궤변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오늘의 삶이 자유로와야

한다.

 

 (627봉 암봉-마이산형질)

 

암봉을 조심스레 내려 선 후 고만고만한 높이의 봉우리들을 완만히 오르내리며 산죽과 철쭉의 행렬이

이어지는 편한 능선을 걸어 나간다. 이 달 5월쯤 철쭉이 만개하면 멋진 산책길이 되겠다. 한번쯤 산케

벗들을 초청하여 이 곳 진안 고원의 의미있는 정맥길도 맛볼 겸 원정산행을 계획해 봄직하다.

왼쪽 모래재 공원묘지가 매우 크고 깨끗하게 공사가 끝난 채 또 다른 영혼들의 안식처로 분양을 기다리

고 있구나..작은 고갯길을 지나니 641봉으로 오르는 길과 왼쪽 사면으로 이어지는 정맥 길에서 잠시

주춤거린 후 왼쪽 사면 좁은 길로 641봉을 돌아 스친다.

 

 모래재에서 조약치로 넘어가는 세봉 임도에 내려선 후(13:40) 이어지는 짧은 오르막을 올라 3정맥 분기

점 팻말이 있는 조약봉에 도착한다. 그동안  선행자들의 사진에서 열심히 기억해 둔 주화산 안내 비석과

조약봉 나무 팻말이 둘 다 보이지 않아 왼쪽 헬기장까지 헛걸음 친 후 다시 돌아와 능선 너머로 자빠뜨려

버려진 비석기단을 발견하고 마음이 아프다. 주화산(주줄산)이 옳은지 조약봉이 옳은지 오래동안 생각해

가면서 서로 결론을 내면 될 일을...둘 다 사라지는 참상을 맞았구나..

 

이 땅의 성급하고 비겁한 이데올로기 싸움을 보는 기분이다. 내 주장과 네 주장이 공존할 수 없는 오늘..

무엇이 그렇게 다른 주장의 상대방을 없애지 않으면 내가 죽어야 된다는 위기감을 심어 주었을까..무엇

이 분노 가득한 영혼으로 이끌어 왔을까.. 전쟁..전쟁..바로 힘 있는 권력자들의 속임수에 놀아난 전쟁의

아픈 상처 속에서 쉽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은 채 우리는 그 치유를 위한 많은 시간들을 허비하고 있

는 것이다.

 

 (조약봉에서 금남호남 완주기념)

 

(14:00)무거운 배낭 속에서 8시간을 아끼며 실어 온 막걸리를 꺼내고, 과일과 빵을 담은 작은 정성을 펼

쳐 놓고,3정맥 분기점을 점하고 그 맥을 이어주는 조약봉 산신께 무탈 산행을 빌며 감사드린다.

운해님과 막걸리를 음복하며 찬바람이 점점 세게 불어옴을 느끼면서도 자리를 뜰 줄 모르고 한 정맥 완

주의 기쁨을 나눈다. 이 곳의 명칭이야 주화산(珠華山,珠茁山)이 됐든, 조약봉(鳥躍峰)이 됐든 산신은

알고 있을 터..기록상에는 오늘의 운장산이 송익필(운장)이 이 곳에 머무르기 전에는 주줄산으로 불리워

졌으며, 아무래도 이곳은 산이라기 보다는 조약치 마을 위에 있는 정맥 길 위의 조약봉이 적당하다.

 

(14:30)긴 휴식과 고사를 끝내고 모래재로 바로 하산할까도 생각했으나, 다음 구간 슬치에서 호남정맥

시산제를 위하여 종주 구간을 좀 벌어 놓아야 된다는 계획으로 곰재까지 진행하기로 한다. 운해님도

아직은 피로한 기색도 아니고 참 강한 선배로 여겨진다. 호남정맥의 첫 구간 맛보기는 남쪽 헬기장으로

부터 이어진다.작은 내리막을 지나 작은 헬기장을 또 지난 후에 모래재 하산로를 스치면서 전신주가 크

게 지나가는 급경사 오르막을 오를때 까지 부드러운 호남정맥길의 영접을 받는다.

 

K군과의 만남이 이루어진 70년대 초반은, 그 시절 대학생활이 누구나 그랫듯이 잦은 휴강과 휴교사태로

인하여 정상적인 수업이 이루어질 수 없었다. 으례히 학기초에 신청교과목의 교수님으로 부터 20-30권의

필독도서 목록을 받아 각자 알아서 책을 읽고 레포트를 통하여 중간점검 및 기말학점을 획득할 수 밖에

없었다. 자연히 몇권의 책을 들고 서울을 떠나 산 속으로 훌훌 떠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수 있었다.

서로 전공과목이 다른 우리둘의 여행은 항상 엉뚱한 세상사에 관한 토론으로 흐르곤 했었고, 점점 정치

적인 현안에 대한 갈등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입주가정교사 생활을 청산하고 그가 병든 누님을 모시며 살고 있던 정릉동 산골짜기 움막집에서 함

께 기거하게 되고 시간제 가정교사생활을 이어가며 생활비를 충당하게 되었다. 밤을 새워가며 통음하고

해결될 수 없는 현실의 벽을 향해 부질없는 머리쥐어박기를 한동안 계속했다. 그가 고교생활 1년만에 자

퇴를 하고 외국에서 돌아 온 누님과 함께, 힘들게 얼어붙은 어린시절을 보내야 했던 사연들은 자세히 물

어볼 수도 없을 만큼 고통스런 나날이었다. 다행히 검정고시를 통하여서라도 대학에 다시 들어올 수 있

었던 계기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었다. 

 

 (514봉에서 만덕산을 바라보며)

 

잘 인도해 주는 리본을 따르며,왼쪽 진안읍의 지세는 그리 낙차가 크지 않은 완만한 사면을 이루는데,

오른쪽 완주 쪽 급경사 낙차 큰 지형을 이룬다. 진안 고원을 실감한다.30여분의 오르내림으로 산죽군락

이 예쁘게 맞이하는 적내재 고갯길에 내려선다.(15;10) 고갯마루까지 쓸려 내려 온 광업진흥공사 시멘트

표지석에서 이 부근의 오른쪽 신보광산 터를 짐작한다. 활석광산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폐광이 되었

다.

 

적내재(죽천치)를 지나 산죽군락의 작은 봉우리를 서너개 넘어면서 화심온천으로 유명한 오른쪽 소양면

좁은 산골 마을들을 내려다 보며 함께 걷는다. 깊은 산으로 둘러처진 완주군 남쪽마을이 이른 봄볕에 바

람을 실어 올린다. 오른쪽 멀리 묵방산(먹방산)이 희미하게 보이는가 싶더니, 오른쪽 봉우리가 가려지며

왼쪽 사면을 타고 514.5봉 능선에 올라선다.(15:40) 발아래 신촌리 두목(아가위나무)마을이 아른거리고,

남으로 멀리 만덕산이 푸르게 다가온다. 보름후 또 다시 만날 수 있겠지..진달래가 곱구나..

 

완만한 능선을 거쳐 잠시 암릉으로 이어지는 급경사를 올라서서 진행방향을 버리고 오른쪽 급경사로 다

시 내려서야 하는 563봉에서 휴식을 취한다.(15:50) 많은 리본으로 길 방향 주의를 유도하여, 90도 우측

방향의 내림길을 밟는다. 작은 봉우리를 지나며 묘 1기가 있는 우측 길을 들어서니 왼쪽 목장지대가 시작

되면서 긴 마루금을 따라 철망이 이어진다. 부드러운 내리막을 밟으며 펜스를 따르니 서낭당 흔적이 있

는 곰티(뒷재,웅치) 옛고개에 내려선다. 옛날의 임진왜란 웅치전적지 안내판을 읽어 본다. (16:10) 

 

 (웅치 전적비-곰재)

 

계속되는 목장 펜스를 따라 다시 작은 봉우리를 넘고, 목장길과 헤어지는 임도사거리에서 직진하여 마지

막 607봉 깔딱오름을 맛본다. 함께 걷던 운해님이 조금 힘이 드신 것 같다. 봉우리 삼거리에서 야호를 외

쳐 별일 없음을 확인한 뒤 서둘러 오른쪽 내림길을 밟는다.(16:30) 빨리 내려가서 택시를 불러야 하는데

핸펀이 잘 연결되지를 않구나..10여분만에 가족묘지를 지나며 신식으로 잘 단장된 웅치전적비 앞에서

오늘의 긴 발걸음을 접는다.(16:40)

 

진안 부귀면과 완주 소양면을 잇는 이 고개는 옛날 모래재와 오룡동 국도가 생기기 전에는 진안/전주간

26번 국도의 명성을 지녔다지만 아직 비포장인 채로, 간간이 오가는 짚차들의 만남이 신기할 정도다.

다음 구간의 만덕산 오름길을 바라보며 저물어 가는 고갯길에서 택시를 타고 진안읍으로 향한다.

 

운해님과의 10시간 30분 동안의 산행이 참 즐거웠읍니다.

진안읍 터미널 식당에서 둘만의 뒤풀이에 흑돼지 삼겹살을 마련해 주신 넉넉한 아주머니의 얼굴이 복스

럽습니다. 전주에서 기차를 타고 영등포역에 도착하니 물푸레가 반갑게 맞아 줍니다.(23:10)

 

4/11 道然

 

(후기) 산행 후 집안 사정과 경주여행이 겹쳐 후기가 늦게서야 정리되었읍니다.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