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곰이 되짚어 생각해 보니 내가 이제껏 살면서 12번이나 이사를 했다. 다른 사람들은 평생을 살면서 몇 번이나 이사를 할까? 12번이나 이사를 해서 많다는 생각이 드는데 실제로 내가 이사를 많이 한 편인 걸까? 이렇게 자주 이사를 하다 보니 집 주위에서 개인적으로 잘 아는 사람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옛날에 한 동네에 오래 살다 보면, 사는 골목에 누구누구와는 형제 자매처럼 지내기도 하고 동네 아지매들도 이모나 매한가지이고 골목 끝 쪽 구멍가게 아저씨는 여름에 난닝구 바람으로 20년 째 평상을 지키고 있고 .. 이런 식으로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나와 비슷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주로 텔레비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다. 텔레비에 ‘인간극장’이나 ‘생활의 달인’ 같은 프로를 보면 한 집에서 혹은 한 직장에서 20년, 30년, 50년을 살면서 자기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는데 참으로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한다. 서울대학 혹은 하버드, 예일 같은 좋은 대학을 나와서 좋은 집에 훌륭한 직장에서 나이스(nice)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런 사람들, 하나도 부러워하지 않는다. 다만 택배 트럭에 짐 싣는 일을 20년 째 하다 보니 예술적으로 짐 쌓기를 하는 사람, 혹은 30년 째 도장파는 일을 해서 이 계통으로 경지에 오른 사람, 그런 사람들을 나는 존경한다. 또 매우 부럽기도 하다. 누가 알아주던 그렇지 않던 간에, 혹은 돈이 되던 안 되던 간에 오로지 한 길, 묵묵히 자기 길을 가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라고 해서 살면서 왜 유혹이 없었겠는가? 잘 나가는 친구를 보면서 부러워했을 것이고 마누라한테 돈 못 번다고 바가지도 꽤나 긁혔을 것이다. 그들의 의지와 그 인생을 나는 부러워하는 것이다. 여기 오롯이 한자리를 지키는 일을 ‘우주의 한 귀퉁이’를 책임지는 일이라고 노래한 시인이 있다.
선운사 풍천장어집
김씨는 촘촘히 잘도 묶은 싸리비와 부삽으로
오늘도 가게 안팎을 정갈하니 쓸고
손님을 기다린다
새 남방을 입고 가게 앞 의자에 앉은 김씨가
고요하고 환하다.
누가 보거나 말거나
오두마니 자리를 지킨다는 것
누가 알든 모르든
이십년 삼십년을 거기 있는다는 것
우주의 한 귀퉁이를
얼마나 잘 지키는 일인가.
부처님의 직무를 얼마나 잘 도와드리는 일인가.
풀들이 그렇듯이
달과 별들이 그렇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