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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한 꿈을 꾸는 것,
무적의 적수를 이기며,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고,
고귀한 이상을 위해 죽는 것,
잘못을 고칠 줄 알며,
순수함과 선의로 사랑하는 것,
불가능한 꿈속에서 사랑에 빠지고,
믿음을 갖고 별에 닿는 것.
그것은 진정한 기사의 임무이자 의무, 아니 의무가 아니라, 특권이노라.
-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중에서 -
이 그림은 프랑스 태생으로 사실주의 화가이자 판화가인 오노레 도미에(1808-1879)가 그린 <돈키호테와 산초 판자 ( 1868)>입니다.
'돈키호테(Don Quixote)'는 스페인의 미겔 데 세르반테스가 쓴 소설로, 지금까지 쓰인 가장 위대한 소설 중 하나로 평가되며, 현대에 와서도 종교 서적을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입니다.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영국해협에서 무너진(1588년) 이후 스페인에 퍼진 제국의 위기, 세기말의 우울이 만연한 때에 쓰여진 이 책은 지독한 풍자와 은유, 위트와 해학, 다양한 패러독스(Paradox)가 녹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병을 얻어 쓸쓸히 죽는 돈키호테의 결말을 아는 이들은 드뭅니다.
중세 르네상스를 넘어 근대를 열어제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시골 지주 알론소 키하노가 기사도 문학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스스로를 '돈키호테 데 라만차'로 생각하게 되고, 농부 산초 판자를 자신의 시종으로 고용하여 세상의 악을 무찌르기 위해 일련의 여행을 떠나면서 겪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에게 흔히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정신 나간 기사의 터무니없는 무용담' 정도로 기억되는 이 소설.., 그러나 서양 문학에서는 인간 정신, 허구와 현실의 상호 작용에 대한 심오한 통찰력을 제공하는 세계 문학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죄와 벌'의 작가인 러시아 문호 도스토옙스키(1821-1881)는 "전세계를 뒤집어 봐도 '돈키호테'보다 더 숭고하고 박진감 있는 픽션은 없다"고 격찬했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인 '돈키호테'는 구스타브 도레, 파블로 피카소 등 다른 화가들에게도 좋은 소재가 되었는데, 특히 오노레 도미에의 <동키호테와 산초 판자> 그림은 이상주의자 돈키호테와 현실주의자 산초의 상반된 성격을 드러내면서 원작의 유머와 고귀한 비극성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도미에는 긴 얼굴, 깡마른 신체, 과장된 표정 등 돈키호테의 인물의 특징을 과장하기 위해 자신만의 케리커처 기법을 사용했습니다.
미완성처럼 보이는 붉은색으로 칠해진 돈키호테의 얼굴에는 눈, 코, 입의 윤곽조차. 없습니다. 말라비틀어진 돈키호테의 애마 로시난테를 굵은 선으로 묘사하니 그림은 기괴한 느낌조차 듭니다.
그 위에 타고 있는 주인공은 방패와 우스꽝스러운 기다란 창을 들고 어깨가 강조된 갑옷을 입었는데 썩 전투적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돈키호테와 그의 애마 로시난테는 마치 자코메티의 조각처럼 철사인형과도 같이 위태롭게 그려진 반면, 당나귀를 타고 거리를 둔 채 뒤를 돌보는 산초 판자는 퉁퉁하고 여유있는 현실감각의 사람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한쪽으로 살짝 기울어진 말 앞 다리 때문에 약간 불안한 기운마저 느끼게 하는데, 이렇듯 기수와 말의 모습은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이것이 바로 도미에가 이 그림, 돈키호테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시대의 부조리인 것입니다.
소설 '돈키호테'의 무대인 스페인 중남부 고원지대인 라만차 지역 특유의 맑고 건조한 기후를 보여 주는 검푸른 하늘과 붉은색 돈키호테 얼굴과의 대비가 선명합니다.
살다가 보면 가끔은 돈키호테의 호기로운 용기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도미에는 20년 넘게 영웅의 환상 속을 헤매는 주인공 '돈키호테'를 주제로 한 그림을 연작으로 여러 점 남겼는데,
도미에가 '돈키호테'를 통해 정말로 그리고 싶었던 것은 이상과 현실 사이의 극명한 괴리에도 불구하고, 비록 꿈을 꾸는 것이 가당찮게 우스워 보일지라도,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불굴의 정신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그의 그림에서 미완성처럼 느껴지는 굵고 강렬한 터치의 윤곽의 묘사는 훗날 야수파에 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크레용을 집은 몰리에르', '캐리커처의 미켈란젤로'라는 별칭의 도미에는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위선을 풍자한 4천여 점 이상의 석판화를 졔작하여 세간의 공감을 얻었는데
말년에 시력이 점차 약해졌고, 나중에는 거의 실명에 이르러 생활마저 어려워지자, 그에게 늘 너그러운 친구였던 화가 카미유 코로가 구입한 발몽두아의 조그만 집에 살다가 70세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캔버스에 유채로 그린 이 그림(51×32cm)은 현재 독일 뮌헨에 있는 노이에 피나코텍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雨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