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닫아만 둔다면 그건 문이 아니야, 벽이지.
열기 위해 잠시 닫아 두는 게 문이야.
벌서는 아이처럼 너무 오래 나를 세워 두지 말았으면 좋겠어.
본래 하나였던 세상, 나로 인해 나누어진다는 건 정말 슬픈 일이야.
안과 밖이 강물처럼 만나 서로 껴안을 수 있게
마음과 마음이 햇살 되어 따뜻이 녹여줄 수 있게
이제 그만 나를 활짝 열어주었으면 좋겠어.
◆심사평/ 뚜럿한 메시지·완벽한 구도 돋보여
올해 동시부문 응모자는 212명으로 작품수로는 1260편이나 된다. 이 가운데서 1차로 54명의 응모작품을 걸러냈다. 멀리 아르헨티나와 북미에서 날아온 응모작도 섞여 있었다. 2차로 10명의 응모작품을 간추려냈다. 최명란(진주), 허영란(성바오로딸 수녀회), 유미희(천안), 황지혜(서울), 윤영선(서울), 김제일(충주), 박소명(군포), 최귀숙(서울), 박정은(익산), 임림(대구)씨들이 그들이다. 이 가운데엔 지난해에 최종심까지 올랐던 분도 끼어있다. 이 분들은 평균 5편씩 응모해 고른 수준을 보여주면서 만만치 않은 역량을 과시하였다.
당선작이 된 임림의 ‘문’은 고운말 예쁜말의 단순조합이 아닐뿐더러, 귀엽고 앙징스러운 풍경의 묘사로 끝난 것도 아닌, 의식이 살아있는 시이다. 읽어보면 뚜렷한 주제가 있음을 누구나 감지할 것이다. 동시라는 어휘에 아이 동(童)자가 있다고 해서, 시적 요건을 갖추지 아니한 채로, 언어의 순열조합 같은 짜깁기 형식의 말장난을 동시라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임림씨의 ‘문’은 그렇지 않다.
어린이의 눈으로 보아도 “‘오늘날 우리 삶터의 안타까운 상황을 노래했구나”하는 것을 능히 알 수 있도록, 구도가 완벽하고 구성이 치밀하며 메시지가 분명하다. 이런 작품성이 “동시도 먼저 시이어야 한다”는 점을 충족시켜주고 있다. (유경환·시인)
엄마에게 야단맞은 날
투덜투덜 훌쩍훌쩍 자전거를 탄다.
우시장 지나고 논둑길
울퉁불퉁 털털털
마른길 골라 달리면
동생은 왜 안 때려?
눈물 한 방울 더 나고
강둑 끝 자갈길
자그락 자그락 덜그럭 덜그럭
길이 왜 이래!
내려서 돌멩이 한 번 걷어차고
강바람이 휘이휘이
주먹손으로 콧물 한 번 훌쩍
어라!
살얼음에 햇빛이 내리네!
버들강아지 벌써 꽃눈을 틔웠네!
씽씽씽 쌩쌩쌩
신나게 돌아오는 길
멍멍멍 컹컹컹
자전거 꽁무니에
와라락 따라붙는 강아지들.
[심사평]
우선 동시작가로서의 잠재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판단되는 작품 10편 중 시로서의 격식을 갖추고 있으면서 동시의 특성을 제대로 지닌 작품 세 편을 어렵게 골라냈다. 이원락씨의 ‘감꽃 줍던 날’은 마치 한편의 동화를 읽는 듯한 감동을 줬다. 시어의 선택이나 각 연의 구성 등 시를 빚는 솜씨가 매우 뛰어났다.
다만 소재가 주독자인 오늘날 어린이들의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기에는 거리감이 있다는 점이 흠이었다. 권보미씨의 ‘털장갑’은 시의 전체 분위기에서 엄마의 정이 넘치고 있었다. 털장갑을 짜는 뜨개질 과정의 시적 표현이 시의 주제의식을 크게 살려 주었다. 다만 몇군데 들어있는 설명적인 표현이 시 읽기를 다소 지루하게 해 시의 감동을 저하시키는 결점이 되었다.
한현정씨의 ‘야단맞은 날’을 읽으면서 받은 첫 느낌은 시가 살아 움직인다는 것과, 덩달아 시 속의 화자와 동일한 행동에 빠져들게 되었다는 점이다. 또한 시의 장면들이 머리 속에 선명하게 떠오르는 느낌도 좋았다. 시어의 선택이 작가가 설정한 대상 독자의 수준에 매우 적절하며, 생략과 압축이 조화를 이룬 시적 함축미,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표현과 의성어.의태어의 적절한 사용이 시의 생동감을 더했다.
함께 보내온 ‘가야금 소리’와 ‘겨울 햇살’ 등도 당선작의 수준에 이른다는 점이 최종 결정에 큰 도움이 되었다. 축하의 박수를 보내며, 더욱 정진할 것을 당부한다.
할머니의
오래된 경대 서랍 안에는
잃어버린 것들이 담겨 있다
아이들하고
장난치다 떨어뜨린 단추,
바쁜 골목길
발걸음에 채였던 녹슨 옷핀,
재깍거리는 소리 그친
낡은 손목 시계 하나
할머니는
어디선가 잃어버린
내 단추의 자리를 찾아
옷깃을 여미어 주신다
녹슨 옷핀을 꺼내
동생의 앞가슴에 이름표도
달아 주신다
이제는
멈추어버린
시계 속의 잃어버린 시간은
어디서 찾을 수 있나
경대의 거울 속에 비친
할머니의 흰머리는
알고 있을까
키와 몸무게
내 키가
쑥쑥 자라는 건
키재기의 눈금이 알려 주지만
내 생각의 키가
자라나는 걸
잘 알 수가 없다
내 몸무게가
나날이 불어나는 건
체중계의 눈금이 가리켜 주지만
내 마음이
넓어지는 걸
좀체로 알 수가 없다
<나무의 문 앞에 서서>
나무의 문 앞에 서서
나는 배추벌레처럼
온 몸으로
귀를 대고
나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숨을 죽이고
듣습니다
나무는
내 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
아무 말없이
잎새의 손을 팔랑거리며
잎맥 사이에 넣어둔
초록 열쇠를 건네줍니다
단단히 잠긴
둥치의 껍질에
가만히 열쇠를 대자,
톱날같은 바람이
동그란 생각의 열매를
토…옥 떨구어줍니다
나는
따뜻한 땅 속에
생각의 열매를 묻어 두고,
나무의 문을
닫았습니다
<시골집은 누가 지켰나>
추석도 지난 늦가을 어느날,
참기름과 청국장을 한 보따리 싸들고
우리집에 오신 할머니
할머니가 안 계신 시골집을 누가 지켰을까?
노래 하던 매미도 허물만 남기고 떠났고
뒤뜰 빈 항아리엔 가을 하늘빛에 젖은 감잎새만 동동…
그 해 겨울,
앞마당 수도관은 할머니 따슨 손길
기다리다 지쳐 꽁꽁 언 가슴이 그만 터져 버렸대.
꽃바람이 불자,
봄편지를 배달하는 우체부 아저씨가
금이간 담장 끝자락에 민들레꽃 봉투에 담긴 씨앗을
넣어주곤 했는데…
여름 날,
하수구에 들낙거리던 시궁쥐들이
세수비누 조각을 비스켓처럼 갉아먹으며
할머니가 흘려 보내주던 밥알을 기다렸지
주린 배를 안고 하염없이 누워 있는데…
어느 날,
녹슨 대문이 삐걱 열리며
키 작은 할머니가 오시지 않았겠어?
민들레 갓털은 담장을 넘어 배고픈 쥐에게,
쥐는 구슬같은 눈을 반짝이며 앞마당 수도관을 따라
그리고 뒤뜰 감나무의 연둣빛 잎새는
할머니 발걸음 소리를 듣고
뒤 귀를 팔랑거리며 기뻐했대
할머니는
그 해, 시골 빈 집을
누가 지키고 살았는지
앞 마당에서 뒤뜰까지
종종걸음으로 돌아보셨던 거야
내가 부르면
"아빠."
하고 부르면
아빠는 책장을 넘기며
안경 너머로
"무슨 일이야?"
물어봅니다
"엄마."
하고 부르면
엄마는 등 돌리고 서서
그릇을 닦으며
"왜 그러니?"
대답합니다
"할머니."
하고 부르면
할머니는 하시던 일 멈추고
두 팔 벌려
"오…오…냐!"
안아줍니다
[심사평] 유경환(동시 작가) , 노경실(동화 작가)
할머니의 시간
신춘문예용 원고가 있다 라는' 말을 들어 봤지만, 응모원고의 무게가 이에 답하는 듯하다.
문학에 대한 경건치 못함, 작가의 길을 왜곡되게 생각하는 교만, 그리고 시대 앞에서의 혼란과 자신에 대한 부정직성…. 이런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작품도 있지만 대부분 엄숙하다 싶을 만큼 치열한 글쓰기의 모습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중량감으로 다가왔다.
동화 부문에서는 정연철씨의 <국화빵 사랑>(정연철)이외에 당선작이라고 소리 높일만한 작품이 나오지 않았다.
이 작품은 좋은 작품들의 공통적인 미덕을 갖추었다. 탄탄한 구성과 군더더기가 없는데도 건조하지 않고 녹녹하게 가슴을 파고드는 문장. 전혀 억지스럽지 않게 독자의 공감을 받아내는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가 여느 기성작가보다 돋보였다. 가난한 집안의 힘없는 부모의 아들, 게다가 겨울이다.
그런데도 "아직도 따끈한 국화빵을 살짝 떼어 삐쳐 나온 단팥과 함께 아버지 입 속에 넣었다"라는 마지막 문장처럼, 마음 한구석에 하얀 설탕과는 다른 질리지 않는 달콤함, 그러나 아이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서러움의 눈물이 섞여진 짭짤함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덕목이다.
하지만 이와 맞겨룬 하인혜씨의 동시 작품의 어깨가 조금 더 높은 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 하씨가 응모한 11편 중 5편은 '동시가 다룰 수 있으며, 또 다뤄서 마땅한 소재'를 설득력 있게 형상화한 점에서 작가로서의 솜씨가 돋보였다. 또 당선작은 이번 동아일보 신춘문예가 기준의 동시 분야와 동화 분야를 '아동문학'으로 합치면서, '아동'문학이자 아동'문학'으로서 격을 갖추어야 함을 강조한 취지에도 부응했다.
<내가 부르면> 같은 작품에서는 동시로서의 압축미가 돋보일 뿐 아니라, <할머니의 시간>이나 <시골집은 누가 지켰나> 같은 작품은 마치 한 편의 동화를 보는 듯한 속 깊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런 점에서 심사위원은 이 작품이 아동문학의 지위를 높이는 본보기로 삼을 만하다는 결론에 쉽게 동의했다.
하씨가 우리나라 아동문학의 제3세대의 선두 주자가 되리란 기대를 거는 까닭은 당선작 면면이 충분하게 증거하리라 믿는다.
나라 잃고
따스한 햇살 한 줄기도 없이
어둡기만 하던 땅에서
독립만세 외치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처럼
두 손 번쩍 치켜든
저 풀꽃을 좀 봐.
그래도 춥니?
그럼
웅크리지 말고
와아!
큰 소리로 외쳐봐
뿌리 끝에서 올라오는
힘을 느낄 수 있을 거야.
◆심사평/ 귀여움과 어우러진 호소력 뚜렷 낟알이라면 체로 치거나 키질로 가려낼 수 있다. 문학작품이므로 읽어야 한다. 191명이 보낸(평균 5편씩 응모) 882편을 읽는데, 꼬박 이틀이 걸렸다. 1차로 55명의 응모작품을 추려 내었고, 2차로 21명의 것을 남겨 가렸다. 3차로 작품을 최종 심의 대상으로 삼았다. 3심을 한 셈이다.
최종 심사 대상에 남은 응모자는 다음 10명이다. 신정순(미국 일리노이 그렌비유), 배정순(강릉), 차현숙(고령), 이해완(광주), 고영리(안양), 임경림(고령), 허영란(성바오로수도회), 황소영(서울), 권보미(고령), 양인숙(광주). 이들의 40여 편 가운데서 1편만 뽑아내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신정순씨의 ‘하느님 조각이불’, 배정순씨의 ‘키 재기’, 차현숙씨의 ‘한방울의 이슬’, 이해완씨의 ‘몽당연필’, 고영리씨의 ‘완성된 말’, 임경림씨의 ‘바람 부는 날’, 허영란씨의 ‘단 냄새’, 황소영씨의 ‘지리산 이야기’, 권보미씨의 ‘미술시간’, 양인숙씨의 ‘춥니?’를 놓고 작품 속에 들어 있는 의식을 살펴 골랐다.
동시 한편 속에 들어 있는 ①목소리의 싱싱함과 ②스며있는 귀여움과 ③그리고 설득력 있는 호소력 따위가 한데 어우러져, 뚜렷한 숨결을 뿜고 있는 작품으로는 ‘춥니?’가 가장 돋보였다.
이지적인 구성에선 다른 작품이 우월하나 호소력이 약하며, 기교가 놀라운 작품에선 소재가 삶과 동떨어지고, 추억을 다룬 작품에선 정에 이끌려 균형이 잡히지 않는 단점이 보인다.
‘춥니?’에선 주제가 분명하고, 풀이라는 소재는 다른 의미로의 해석이 가능하며, 추위를 이겨내도록 격려와 용기를 호소한 숨겨진 뜻이 넘쳐 흐르고 있다. 누구나 읽어보면 대번에 감지할 것이다. 작품이 품고 있는 잠재능력이 어떤 독자에게도 드러날만큼 완숙한 편이며, 당선작이 될만한 역량을 보여주므로 마침내 ‘춥니?’로 결정 한다. 양씨는 끈질기게 여러번 도전한 것으로 알고 있다. ( 유경환/시인 )
한겨울 이맘때면
시골 외가 댁 처마밑에선
신문봉지에 담긴 조그만 씨앗들이
할아버지의 낡은 종다래끼 속에서
누군가 들을세라 소근소근 이야기를 나눈다
바람이 세찬 날은
갈 빛 털모자를 쓰고
함박눈이 펄펄 내리는 밤엔
하얀 솜이불을 덮고
이듬해 봄
풋풋한 흙 내음 속에서
두 팔을 번쩍 쳐들 꿋꿋한 줄기
보조개가 예쁜 꽃봉오리들과 만나면
어떤 인사말부터 해야 하나
「ㄱ」에서 「ㅎ」까지
달리기 내기를 하다
떡갈나무 둥치 속의
아기 다람쥐처럼
사르르 잠이 든다
완두콩 푸른 빛깔의 꿈을 꾼다.
나무와 새
정갑숙
햇살 따사로운 봄날
새 한마리 날아와 나무 위에 앉는다.
부러운 나무는 새를 보며 말한다.
“나도 너처럼 하늘을 날고 싶다”
나무의 마음을 안 새는 가슴의 비밀을 털어 놓는다.
하늘 푸른 여름날
“우리처럼하늘을날고싶으면네가가진것다나눠주어야해.”
아무것도지니지않아야하늘을날수있다고새가 알려준다.
하늘 맑은 가을날
새의말을기억한나무는열매를사람들에게다나눠준다.
그리고 빈 손을 펼쳐든다.
차거운 겨울날
가지에 앉아 놀아주던 새도 남쪽나라로 떠났다.
홀로 서 있는 나무는 입고 있던 옷들까지 다 벗어준다.
풀섶에서 떨고 있을 작은 벌레들을 위하여.
하늘은
가진 것을 다 주는 나무의 마음을 알고
하얀 솜이불을 펼쳐 나무를 덮어준다.
솜이불을 덮고 누운 나무는 이제 꿈을 꾼다.
한 마리 새가 되어 훨훨 날고 있다.
하늘 무지개 다리를 건너서.
[신춘문예] 유경환/`나무와 새` 심사평
묘목으로 심은 나무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나이테 중심에 나무의 일생동안 자리하게 된다. 아동문학은 인간의 문제를 다루는 일반문학의 기초 부문에 해당하는 위상을 지닌다.
따라서 문학작품으로서의 품격과 향기를 지녀야함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런 시적인 요건을 구비한 작품이라야, 인생이 위로와 위안을 필요로 할 때 아동문학으로서 효용을 발휘할 수 있다.
동시는 고운말 예쁜말의 조합이 아니다.
형식은 동시라 할지라도 감동을 전해줄 수 있는 시적 메시지를 담고 있어야 한다. 시어의 선택에서나 전개 기법에서나 오히려 성인문학에서보다 더 세심한 배려를 요구하는 것이 동시다.
이런 요건을 충족시킨 것이 이번에 당선된 정갑숙씨의 ‘나무와 새’이다. 당선은, 출발점에서의 좋은 시작일 뿐이다.
궁금하구나 친구야
네 마음의
숲
거기
어떤 풀 자라고
어떤 꽃 피어있고
얼만큼의 나무 그늘
드리워져 있는지
친구야
한번
들어가보고 싶구나
네 마음의 숲
그 숲으로
가는 길목
살짝
가르쳐주지 않을래?
서로의 숲에
잠시 빛나는
햇빛일 수 있을테니
[2000년 매일신춘문예 동시 심사평]
오늘을 살고 있는 어린이들의 생각은 지난날에 비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문화의 주기가 너무 빨라 동시인들은 그들의 생각을 놓치고 있을 때가 많다. 따라서 문화적 간격에서 오는 독자의 상실은 우리 동시인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며, 해결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동시인들이 아무리 동심의 순수를 노래한다 해도 지난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는 추 억이거나, 어른의 눈높이에서 본 관념적 동심이라면 어린이들에게 시적 감동을 주 지 못한다.
우리가 바라는 신인의 동시는 시적 제재가 오늘을 사는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닿아 있고, 그것을 어린이들의 정서에 맞게 형상화 한 것이다.
금년에 응모된 작품은 예년에 비해 평균적으로는 수준이 높았다. 그러나 관심을 갖게 하는 작품은 수편에 지나지 않았다. 그 중에서 최종적으로 남은 작품은 임경림씨의 `나뭇잎'외, 김은경씨의 `숲'외 수편의 작품이었다. 임경림씨는 시적 대상 의 외면적 사실에 주된 관심을 보였다. 제재의 선택과 표현이 어린들의 눈높이에 닿아있고 표현도 어느 정도 새롭다.
김은경씨는 주로 내면성에 관심을 보였으며 시적 대상을 보는 눈이 따스하고 건강 했다. 그리고 소외된 것에 대한 사랑과 어린이들의 심리적 상태를 잘 드러내 보였 다. 두 사람이 보내온 작품 모두가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작품의 우열도 비슷했으나 내면성과 표현의 참신성이 더욱 돋보인 김은경씨를 당선으로 뽑았다. 당선을 축하하며 정진을 빈다.하청호(아동문학가)
어머니,
뚝배기의 속끓임을 닦는 것이
제일 힘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차곡차곡
그릇을 포개 놓다가
보았어요.
물때 오른 그릇 뒷면
그릇 뒤를 잘 닦는 일이
다른 그릇 앞을
닦는 것이네요.
내가 그릇이라면,
서로 포개져
기다리는 일이 더 많은
빈 그릇이라면,
내 뒷면도 잘 닦아야 하겠네요.
어머니,
내 뒤의 얼룩
말해 주셔요.
[심사평]
어린이의 언어로 어른까지 감동 줘
지난 해 당선자가 바로 대산 문학상 지원을 받고 발표 활동이 눈부셨던 탓인지 올 응모 수준이 전반적으로 발돋움했다. 참 많이도 응모했다. 이 가운데서 송근영(대전), 박희순(제주), 장수경(서울), 조영여(서울), 이영남(대구), 이혜안(광주), 남혜란(광주), 하정심(이천), 김용문(전주), 홍수안(제주)과 윤미라(서울 동작구)의 작품을 최종 단계에까지 추려 올렸다. 동시는 예쁜 말, 고운 말의 짝맞추기가 아니다. 생각이 담긴 글이다. 어른 시와 다른 것은 담긴 내용이 아니라 표현 방식 곧 어린이의 언어일 뿐이다. 동시도 시다. 어른 아이 구분 없이 읽을 수 있는 시다. 우주의 먼지가 질량을 갖게 되면 새 별이 되어 빛을 내듯이, 사람도 생각을 여물게 하면 결실의 빛을 낼 수 있다. 이런 필요 충분 조건을 다 충족 시킨 이가 윤미라이다. 두 사람을 당선시킬 수가 없어 하인혜를 미루었다. 내면의식의 치열함에서 좀 뒤지는 편이다. 짐승은 수면에서 제 모습을 보고, 사람은 시에서 제 모습을 읽어낸다. 유경환 (시인)
아무도 넘겨다보지 않는 돌담 지나
아무도 건너지 않는 징검다리 건너
하얀 이름표 달고
까치가 학교에 갑니다.
늦어도 기합 주는 선생님 없고
시끄럽게 떠드는 아이들도 없는
학교에 갑니다.
바람 버스를 타고. 씨이잉-
미루나무가
수위 아저씨처럼 서 있는 학교.
그런데 아이들은 다 어디 갔을까.
반기던 그 아이들은 모두 어디 갔을까.
깨진 창문으로 나뭇잎 소리만 들락거리고
책상들이 조용조용 앉아 있는
햇빛만 지키고 있는 학교.
까치 혼자서 다니는 학교.
푸드득- 달리기를 해보고
농구골대에 앉아 심판도 보지만
아이들이 없는 운동장은
토옹 재미가 없다.
기차역 긴 의자 이야기
<심사평> 참신한 비유로 표현 솜씨 돋보여
정성스럽게 써서 보낸 작품마다 동시에 대한 사랑이 배어 있어 흐뭇했다. 응모작 중에서 사회 현실을 반영한 시들은 현실성 있는 소재와 진솔한 내용이 좋았으나 감동이 약했다. 반면에 자연을 소재로 한 자연 친화적 시들은 표현 기교는 앞섰으나 내용이 없어 공허한 것이 흠이었다. 동심의 세계를 다룬 시들은 어린이들의 마음과 정서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쓴 경우가 많아 어린이들의 참된 생각이나 느낌과 거리가 먼 것이 문제였다.
동시 창작은 쉬운 듯하면서도 의외로 어렵다. 문학성, 교육성, 독자의 이해성 등 고려해야 할 조건들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응모자들은 이런 동시의 특성을 염두에 두고 좀더 진지한 자세로 동시 창작에 임해야 할 것이다.
이지현, 모순덕, 조유인, 김자연의 작품이 최종적으로 논의되었다. 이지현의 <겨울 속의 봄>은 따뜻한 내용, 희망적인 메시지가 호감을 주었다. 그러나 발상과 표현이 이미 기존 동시에서 되풀이되던 유형이어서 참신성이 떨어졌다. 모순덕의 <마중길>은 아픈 현실을 다루었음에도 작품 속에 훈훈한 사랑의 정이 흐르고 있어 좋았으나 지나친 산문성이 결점이었다. 조유인의 <스웨터를 풀면서>는 헌 스웨터를 풀어 새 모자와 장갑을 짜듯 휴전선의 철조망도 풀어 녹여서 육 천만 개의 열쇠를 만들어 나누어 줄 순 없을까 하는 발상이 빛난다. 그러나 함께 보낸 작품들의 수준이 워낙 처져 제외되었다.
당선작으로 뽑힌 김자연의 <까치네 학교>는 신선미와 독창성은 좀 떨어지지만 폐교로 문 닫은 학교에 대한 안타깝고 애틋한 마음을 의인화한 까치를 통해 인상적으로 그려낸 작품이었다. 특히 참신한 비유와 동시다운 표현 기법으로 아이들이 떠난 텅 빈 학교의 정경을 생생하게 표현해낸 솜씨가 돋보였다.
심사위원= 이준관(아동문학가) 노원호 (아동문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