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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언파의(백당정 - 선천기) >
*** 상언파의(선도서적) ***
*** 차 례 ***
1. 태중면목(胎中面目).
2. 영아면목(瓔兒面目).
3. 해아면목(孩兒面目).
4. 음양분판(陰陽分判).
5. 오행분위(五行分位).
6. 후천용사(後天用事).
7. 순음무양(純陰無陽).
8. 련기축기(煉己築基).
9. 천양진심(天良眞心).
10. 양장음소(陽長陰消).
11. 찬족오행(贊簇五行).
12. 음양혼합(陰陽混合).
13. 혼연일기(渾然一氣).
14. 태공허무(太空虛無).
15. 금단(金丹).
16. 천지지심(天地之心).
17. 언월로(偃月爐).
18. 주사정(朱砂鼎).
19. 원빈지문(元牝之門).
20. 원관일규(元關一竅).
21. 곡신(谷神).
22. 금정옥로(金鼎玉爐).
23. 오토약물(嗚兎藥物).
24. 용호상회(龍虎相會).
25. 감이전도(坎離顚到).
26. 오행전도(五行顚倒).
27. 황파매빙(黃婆媒聘).
28. 이팔양현(二八兩弦).
29. 서미주(黍米珠).
30. 화후괘상(火候卦象).
31. 생아지문(生我之門).
32. 사아지호(死我之戶).
33. 유위지궁(有爲之窮).
34. 무위지묘(無爲之妙).
35. 혼속화광(混俗和光).
36. 약귀토부(藥歸土釜).
37. 응결성태(凝結聖怠).
38. 시월태원(十月胎圓).
39. 영아출현(瓔兒出現).
40. 이로환정(移爐還鼎).
41. 이세(離世), 련수(煉睡), 공행(功行).
42. 금단(金丹), 원관(元關), 식신(識神).
43. 양정(陽精), 선천기(先天氣), 선후천(先後天).
44. 수경(首經), 삼약(三藥), 성명(性命).
45. 천지심(天地心), 도심인심(道心人心), 미생시(未生時).
46. 초생시(初生時), 타가(他家), 피아(彼我).
47. 려반(侶伴), 외호(外護), 구정(九鼎).
48. 초섭(招攝), 전도(顚倒), 화후(火候).
49. 괘상(卦象), 건곤로정(乾坤爐鼎), 언월로(堰月爐).
50. 주사정(朱砂鼎), 토부(土釜), 두병(斗炳).
51. 양현(兩弦), 임계(壬癸), 련기(煉基).
52. 축기(築基), 연홍(沿汞), 영차(瓔女宅).
53. 감이(坎離), 진태(震兌), 자오(子午).
54. 묘유(卯酉), 황파(黃婆), 환단(還丹).
55. 단숙(丹熟), 성태(聖胎), 탈태(脫胎).
56. 유의(有爲), 무위(無爲), 복구(復女后).
57. 문무(文武), 화광(和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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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 례 ***
세상에는, 정심(定心) 수련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겠지만,
학(學)이나, 이론을, 중요시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열심히, 마음을 닦으면 될 일이지,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런 생각들은, 올바른 생각이 아니다.
불교에서도, 교종(敎宗)과 선종(禪宗)이 있어서,
나름대로, 자기의 수행 방법이, 옳다고 말하지만,
아무리, 선(禪)을 한들, 근본적인 학(學)이, 따르지 않고서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알지 못하면, 어둡고,
어두우니, 어렵고, 방황하며,
어려우니, 힘든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또한, 어두워서, 앞날을 예측할 수 없으니,
두렵고, 자연히, 혼탁하게 된다.
이 세상에서, 기준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나" 이다.
비록, 내가 기준이라 할지라도,
나는, 어떤 잣대로, 세상을 바라보느냐가, 또한 중요하다.
자는, 왜 필요한가?
그것은, 측정하기 위해서이다.
올바르게 재어서, 알 수 있어야, 모든 것이, 밝아진다.
이 책은, 마치, 잣대와 같은 책이다.
공부하다가, 모르는 것을, 이 책에서 구하면, 밝아지며,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비밀은, 은밀함에 있다.
그래서, 쉽사리, 알기 힘들다.
따라서, 감추어진 것을,
"마음의 눈" 을 뜨고, 보아야 한다.
마음의 눈을 뜨려면,
"밝은 생각"과 "밝은 행동"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하여, 마음을 비웠다고 하더라도,
혹세무민(惑世誣民) 하고, 혼탁한 세상에서,
길을 잘못 들어서, 헤메일 수가 있다.
그러나, "진실한 마음"을 가진다면,
산 사람도, 유명계(幽冥界)의 신명들도,
모두, 도와주게 될 것이다.
그러니, 올바른, 정심(定心) 수련을 하면서, 살아야 할 것이다.
여러 가지 면을, 고려해 볼 때,
이 책은, 도서(道書) 중에서도, 중요한 나침반과 같은 책이니,
필독으로 하여야 할, 중요한 내용들이, 많이 들어있다.
철저히, 공부해 볼 것을 권한다.
*** 백당정(百當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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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태중면목(胎中面目).
부모님이, 자기를 낳기 이전에는,
남녀음양(男女陰陽)의, 두 기운(氣運)이, 교감하는 시기인 것이니,
아득하고, 어두운, 묘명함 가운데에,
한 점, 생명력의 기틀이 있어서,
"허무한 가운데"로 부터, 온 것이다.
이것이, "선천(先天)의 진일(眞一)"의,
"조상의 기운"(祖氣)이 되는 것이다.
이 기운(氣運)이, 정기와 혈액 속으로 들어가서,
정기와 혈액이, 도용(陶鎔)이 되어,
혼연일체가 되어, 혼연히, 하나가 되니,
형체가 없으면서도, 형체가 생겨나게 되고,
그 품질은 없지만, 곧 품질의 바탕이 생겨나니,
사람의 몸 속으로는, 오장육부가 되고,
몸 밖으로는, 오관(眼, 耳, 鼻, 舌, 身)과 백해(白骸)로 변하고,
화생(化生)이, 되는 것이다.
이들은, 스스로, 그렇게 되게 되어 있어서, 완전함을 이룬 것이라,
비록, 태아를, 회포하고 있는 부인들이라도,
이런 까닭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 진리를, 알지를 못한다.
혹, 의심하여 말하기를,
사람이, 포태(胞胎)속에 있을 때에,
그 배꼽의 탯줄이, 어머니의 기운과 상통이 되어서,
어머니가 숨을 내쉬면, 그 태아도, 숨을 내쉬고,
어머니가 숨을 들이쉬면, 그 태아도, 숨을 들이쉬어서,
점점, 차례로 변화하여, 그 형체를, 이루게 되는 것이라 말하지만,
그러한 것이, 아닌 것이다.
무릇, 숨을 내쉬고, 들이쉬는 기운은,
우리가 사는, "후천 세상의 기운"인 것이니,
후천의 기운이, 어찌하여, 정액과 혈액을,
변화를, 시킬 수 있을 것인가?
하물며, 숨을 내쉬고, 들이쉬는, 그 기운이,
포태(胞胎)한, 그 속에 까지, 들어갈 수 있겠는가?
어머니의 포태 속에는, 다만, "선천의 한 점의 기운"이 있으니,
아주, 혼혼(混混)하고, 륜륜(淪淪)하게 되어서,
처음 시작의 태기(胎氣)가, 응결이 되고, 이미, 태기가, 잘 길러져서,
마침내는, 완성하게 되니,
태(胎)가, 된다는 것을, 알지를 못하는 것이다.
처음에, 태가, 시작이 되고,
마지막에 가서, 태가, 완성이 되는 것은,
모두 다, 이 조기(祖氣)가 성취하여, 구별되는 것이며,
거기에, 잡된 것을, 더한 것이 없는 것이다.
이 시기를 당하여서, 비록, 사람의 형체는 있지만,
사람의 도는, 없는 것이며,
천지의 만물과, 물과 불과, 칼날과, 병장기라도,
능히, 상하지를 못할 것이며,
칠정오욕(七情六慾)과, 오적사상(五賊四相)도,
함께, 능히, 그를, 가까이 하지를, 못할 것이다.
궁구 하여서, 진실한 그 곳에, 도달하여서, 볼 것 같으면,
다만, 하나의 "텅빈 허공"일 따름인 것이다.
예전의 신선들이, 사람들을 가르칠 때에,
도(道)를 수련하여, 부모가, 자기 몸을 낳아주기 이전의,
그 면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은, 바로, 이 경지이며,
곧, "허공의 경지"를, 말하는 것이니,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는, 무성무취(無聲無臭)의 경지인 것이다.
무성무취(無聲無臭),
이것은, 곧, 무극(無極)인 것이다.
무(無)의 지극한 경지는,
곧, 이 하나의 무(無)일, 따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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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영아면목(瓔兒面目).
사람이, 어머니의 뱃속에 있은 지, 10달이 되면,
그 태(胎)가, 아주 원만하여, 참외가 익은 것과 같아서,
그 꼭지가 떨어지고, 포태(胞胎)를 깨드리고 나온다.
이때에, 발은 하늘로 향하고, 머리는 땅으로 향하여서,
우와! 하는, 그 한마디 소리에, 바야흐로,
"후천(後天)의 기운(氣運)"을, 접촉하게 되어서,
그 코와 입으로 들어가서, 배꼽 밑에 있는, 기해(氣海)인, 단전(丹田)까지, 기운이 내려가니,
그래서, "선천(先天)의 원기(元氣)"와 더불어, 서로, 합하게 되는 것이다.
선천(先天)은, 몸의 전체가, 되는 것이며,
후천(後天)은, 활용이, 되는 것이니,
후천(後天) 이라는 것은, 선천을 빌려 가지고, 호흡이, 왕래하게 되고,
선천(先天) 이라는 것은, 후천의 힘을 빌려 가지고, 혈맥을, 잘 기르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와! 하는, 하나의 소리가, 날 때를 당하여서는,
여러, 수천 만년, 억겁 "윤회의 식신(識神)" 도, 또한, 이 구멍에 들어가니,
"선천(先天)의 원신(元神)"과 더불어서, 아주 혼연히, 하나가 된다.
원신(元神)은, 식신(識神)의 힘을, 빌어 가지고, 존속이 되고,
식신(識神)은, 원신(元神)의 힘을, 빌어 가지고, 신령스럽게 되는 것이다.
갓난아이가, 태어나는 것은,
비록, "후천의 기운"과 "후천의 신"이 있지만,
선천의 기운이, 후천의 기운을, 통솔하게 되는 것이고,
후천은, 선천을, 잘 순종하여서,
이 선천과 후천이, 혼연히, 완성되는 것이다.
이때를 당해서는, 아주, 혼혼돈돈(混混沌沌) 되어서,
인식도 없고, 또 알지도 못하지만, 하나의 참(眞)일, 따름인 것이다.
예전에, 신선들이, 사람들을 가르칠 때에,
자기 몸이, 태어나는 곳을, 잘 선택하여 가지는 것은,
곧, 궁구하여서, 그 몸이 태어나는, 처음 시초의 것을, 가지게 되는 것이니,
곧, 궁구하여서, 영아의 면목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깨닫지 못한 사람은, 몸이 생겨 나는 곳이,
부인의 산문(産門)이라 하는 것이, 망령된 말이라 하는 것도, 알지를 못하는 것이다.
무릇, 이 몸이 태어나는, 시초에는,
그 어린아이의 면목(面目)이, 순수하게, "흰빛" 이며, 죄가 없으니,
이것은, 성현의 배태(胚胎)인 것이며, 신선과 부처(仙佛)의 싹이 되니,
날으는 새도, 이 아이를 쫓지를 않으니, 맹수나, 뭇 짐승도,
아기와 싸우지를 아니하는 것이다.
대개, 모든 짐승들이, 이 아이를, 쫓지도 않으며, 다치지도 않는 것은,
그 아이가, 무심(無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무심(無心)을 가지고 있은 즉,
사는 것과 죽는 것에 대하여서, 무슨 재앙이 있으며, 무슨 근심이 있으리요,
이것은, 곧, 처음 시초의, 지극한 상징인 것이다.
"시극"(始極)이라 함은,
"처음 시작의 지극함" 이니, 후천의 모든 욕심을, 사귀지 않는, 그 경지인 것이다.
비록, 후천과 더불어, 서로, 혼현히, 순수하게 되나,
이것은, 선천의 관(官)의 일이며, 그 처음 시초의, 지극한 경지에, 있음을 인유함이니,
없는 것을, 인유하여 가지고, 바야흐로, 시작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영아(瓔兒)의 참모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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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해아면목(孩兒面目).
사람들은, 어린아이가, 점점 자라나므로 부터,
능히, 걷지도 하고, 달음박질도 하고, 말도 하고, 말도 하고, 말대답도 하여,
사람들을, 손가락으로 가르치고, 또 인도하는 것을 따르게 되니,
그것을 이름하여, 그 경지를, "해아"(孩兒) 라고 하는 것이다.
또, 이름하기를, 해아(孩兒)의, 그 "동자" 라고 하는 것이다.
그 해아(孩兒)는, 무슨 인식도 없고, 아는 것도 없지만,
손을 잡고 다니는, 어린아이들은, 이미, 인식도 있고, 알음알이도 있지만,
뜬 구름이, 저 태허(太虛)의 공중에 있는 것을, 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인식도 있고, 알음알이가 있는 것은,
이것은, 처음 시작의 지극함을 인유하여,
점차적으로, 태극(太極)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니,
태극(太極)이라 하는 것은, 그 큰 것이, 지극한 것이며,
이 큰 것이, 지극하게 된즉, 반드시 작아지고,
양(陽)이, 지극하게 된즉, 반드시, 음(陰)이 되는 시기인 것이다.
다만, 작은 것이, 오지 않는 것은, 음(陰)이 생겨나지 않은 것이며,
오히려, 이것은, 선천(先天)이, 용사를 하는 것이다.
후천 세상에, 은밀히 숨어있는 것은,
비록, 지식도 있고, 알음알이도 있으나, 그 뿌리의 티끌이, 발생이 안된 것이어서,
객기가, 오히려, 침범하지 않았으니, 어린아이는, 배가 고프면, 다만 먹기만 하고,
추우면 옷을 입고, 기뻐하고, 성내고, 슬퍼하고, 즐거워하는 것에 따라서,
일어나고, 없어지게 된다.
이 세상에는, 부귀영화와 궁통(窮通)이 있지만,
어린아이는, 그것을,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며,
그 자연함을 순종하여서, 결코, 잡된 생각이 없으니,
또한, 성현의 경지의 배태가, 이것인 것이며,
신선과 부처님의, 뿌리와 싹이 되는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이, 해아(孩兒)를 가지고서,
해아라 하는 것이 아니다 라고, 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해아(孩兒)는, 갓난아이를 말한 것이며,
해아(해아)는, 동자를 말한 것이다.
동자는, 천진의 경지를, 다 갖추고 있으니,
신분이, 높고 낮음도, 지식도, 각각 차별이 있지 아니하니,
그런 까닭으로, 예전 신선들은, 다 근본으로 돌아가고,
으뜸으로, 환원하게 되는 것을, 해아의 본래의 면목이라 하는 것이다.
완악한 아이들의 면목으로는,
이 법을, 선택하여, 가지지는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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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음양분판(陰陽分判).
어린 아이로부터, 점점 자라나서, 2 x 8 = 16살 쯤이 되면,
기운(氣運)이, 가득 차게 되어서,
양(陽)의 기운이, 지극하게 되니, 음(陰)이 생겨나게 된다.
날마다, 하나의 구멍을, 자꾸 끌로 쪼아 파니,
음양(陰陽)의 두 가지로 나누어 져서,
각각, 한 곳에서, 살게 되니,
그 참 속에서, 거짓이, 있게 되는 것이다.
지식이, 점점 열리게 되고,
선과 악을, 분별하게 되니,
이것은, 태극(太極)이, 음양(陰陽)으로, 나누어지는 것이다.
소위, 말하자면은, 2 x 8 = 16살에, 기운이 넉넉하다는 것은,
비유하건대, 하늘의 달이, 상현(上弦)과 하현(下弦)의 두 가지가,
하나로 합쳐서, 그 빛나는 것이, 아주, 원만한 현상이 되는 것이니,
그 선천의 양이, 지극함을 이룬 것이다.
양(陽)이, 지극하게 되면, 반드시, 음(陰)이 되는 것은,
비유하자면, 태극(太極)이, 한번 혼란한 가운데, 개벽이 되어서,
음양(陰陽)의 두개로, 이탈하게 되는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2 x 8 = 16살의, 생음(生陰)의 설명을 가지고, 의심하기를,
남자가, 16살이 되면, 그 음정(陰精)이 누설이 된다 라고 만 알고 있으니,
이것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시험삼아, 이 세상의 남자를 관찰하여 보면,
14 ~ 15세가 되어서, 그 정액이, 배출이 되는 사람도 있고,
16 ~ 17세가 되어서, 누정(淚精)이 되는 사람도 있고,
18 ~ 19세가 되어서, 배설이 되는 사람도 있어서,
그 나이가, 많고, 적은 데에 따라, 같지 않으니,
2 x 8 = 16살이란 것의, 나이에 의존할 것 없이,
기운(氣運)이 가득하고, 영만(盈滿)하다는 것을, 가히, 알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16살이 되면,
기운(氣運)이 가득하고, 영만(盈滿)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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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오행분위(五行分位).
음양(陰陽)이, 한번 나누게 되면,
이에 따라서, 오행(五行)으로, 나누어지는 것이다.
오행(五行)은,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의 5가지 기운이니,
선천(先天)에 있어서는,
토생금(土生金)하고, 금생수(金生水)하고, 수생목(水生木)하고, 목생화(木生火)하고, 화생토(火生土)하니,
오행(五行)이, 하나의 기운으로 발생하여서,
인, 의, 예, 지, 신(仁, 義, 禮, 智, 信)의 "오덕"(五德)이 되는 것이다.
후천(後天)에 있어서는,
토극수(土剋水)하고, 수극화(水剋火)하고, 화극금(火剋金)하고, 금극목(金剋木)하고, 목극토(木剋土)하니,
오행(五行)이, 서로 상하게 되어, 발생하는 것이,
희, 노, 애, 락, 욕(喜, 怒, 哀, 樂, 慾)의 "오적"(五賊)이 되는 것이다.
이 오행(五行)이, 서로 합하면,
곧, 오덕(五德)이 구비하여서, 서로 생(生)하게 되나,
이 오행(五行)이, 나누어져 흩어지게 된 즉,
오적(五賊)이 일어나기 되어서, 음기와 양기가, 복잡하게 되는 것이다.
오행(五行)이, 한번 나누어지게 되면,
식신(識神)이, 점점 일어나게 되고, 뿌리의 티끌이, 점점 발생하게 되어서,
참 진실한 것은, 위치를 물러가게 되고,
거짓된 것이, 권리를 담당하여, 행사하게 되는 것이다.
이 지경이 되면,
아주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의 그 면목을, 모두,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오장(五臟)이,
오행(五行)으로, 나누어져 있는 것을, 알지를 못한다.
무릇, 오장(五臟)이라 하는 것은,
형상도 있고, 그 바탕의 품질도 있는, 탁한 물질인 것이니,
후천(後天)의 오행에, 여우(旅寓)하는 것이, 그것이다.
선천(先天)의 오행(五行)이,
도덕(道德)의 기원은, 아닌 것이다.
만약에, 오장(五臟)을 가지고서, 곧, 오행(五行)이라고 한다면,
오장(五臟)이, 어찌하여, 능히, 나누어지고, 합할 수 있겠는가?
오행(五行)에는, 선천(先天)과 후천(後天)의 구별이 있으니,
선천(先天)은, 이 몸이 태어나기 이전에, 근본을 하고 있고,
후천(後天)은, 이 몸이 태어난 뒤에, 나타나게 된다.
선천(先天)은, 성인으로 태어나게 되고,
후천(後天)은, 사람으로 태어나게 되니,
두가지의 오행을, 비록, 선과 후로, 나눌 수가 있으나,
이것은, 모두 다, 활발한 경지인 것이며, 정한 위치를, 둘 수 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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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후천용사(後天用事).
음양(陰陽)이, 나누게 되니,
오행(五行)이, 여기서 분리가 된다.
후천(後天)의 기운을, 한번 사귀게 되면,
선천(先天)의 기운은, 물러 나가게 되는 것이다.
이에, 기질(氣質)의 성품을 받은 것이, 발생을 하고,
몸 밖에서, 오는 습관에, 물들린 것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외래의 티끌이, 육근(六根)의 머리를, 생겨나게 하며,
문마다, 도적을 불러들이게 되고,
칠정(七情)의 서자의 종자가, 여러가지로, 재앙을 생기게 하니,
순백한, 그 전체가, 음기(陰氣)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음기(陰氣)의 속으로, 한번, 들어가니, 음기(陰氣)가, 점점 자라나고,
양기(陽氣)가, 점점 사라지게 되어서,
음기(陰氣)가 자랄 수록, 양기(陽氣)는, 더욱 사라지니,
그 욕심을, 따라하는 것이, 이르지 못하는 곳이 없으며,
모든 나쁜짓을, 하게 되는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기질의 성품"을 가지고서,
진성(眞性)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알지 못한다.
"참된 성"(眞性) 이란 것은,
천명의 심성이며, 선천(先天)에, 속해 있는 것이어서,
사람에게, 아주 유익한 것이다.
"기질의 심성"은, "사람의 성품" 으로,
후천(後天)에 나타나는 것이지만, 사람에는 해로움이 있으니,
어찌, 가히, 후천(後天)의 성품을 가지고,
선천(先天)의 성품이라,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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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순음무양(純陰無陽).
후천(後天)의 이 세상은, 욕심을 가지고, 용사(用事)를 하니,
음(陰)은, 앞으로 전진하고, 양(陽)은, 물러가는 형상이다.
날마다, 음(陰)은 전진을 하고, 양(陽)은 후퇴를 하게 되니,
해마다 그렇게 하여서, 마음속으로는, 만가지의 잡념이, 재앙을 만들게 되고,
밖으로는, 만물의 욕심에, 끌리게 되는 것이다.
마음속과 몸 밖이, 서로, 공격을 가하게 되니,
양기(氣陽)가, 사라져서 없어지고, 순음(純陰)이 되어서,
결국에는, 정기신(精氣神) 3가지 보배가, 모두, 소모되고, 끝나게 된다.
이때에는, 혼(魂)과 백(魄)도, 몸 안에, 존속하기가 어렵다.
사람이, 죽지 아니하고, 어찌, 능히, 살 수가 있을 것인가?
어리석은 사람은, 그 나이의 수명을 가지고, 명(命)이, 끊어진다고 생각을 하며,
명(命)이,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닌줄을, 알지를 못한다.
무릇, 사람의 인생을, 의탁할 곳은, 양기(氣陽)인 것이니,
하나의 양기(氣陽)라도 있어서, 이 몸에 남아 있다면, 죽지를 아니하는 것이며,
하나의 음기(陰氣)가, 전진하게 되는 것을, 그대로 방치 한다면,
양기(氣陽)는, 자연히, 죽는 길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상의 7 가지 도(道)는,
조화지술을 순행하는, 세상 사람이 살아나가는, 도(道)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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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연기축기(煉己築基).
참 진실한 경지를, 수련하는 도(道)는,
선천(先天)으로, 반환(返還)하는, 도(道)인 것이다.
돌아올 "반(返)"자는,
내가 이미 가지고 있던 것을, 가져 온다는 것을 말한 것이며,
돌아올 "환(還)"자는,
양(陽)의 기운을, 이미 잊어버렸지만은, 다시, 얻는다는 뜻이다.
이것은, 순음(純陰) 속에서, 그 본래의 진양(眞陽)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사람들은, 후천(後天)을 용사(用事) 함으로 부터, 순음(純陰)이 되었으니,
선천(先天)의 양기(陽氣)가, 다 소멸이 되고 나서,
만약, 선천(先天)의 기운을, 반환(返還)하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어찌, 지금 없는 것을 가지고, 다시 이끌어 올 수 있으며,
어찌, 잊어버린 것을, 다시 얻을 수 있겠는가?
선천(先天)의 양기를, 반환하는 공덕은,
연기(煉己)를 하고, 축기(築基)를 하는 것보다도, 더 먼저, 수련할 것이 없다.
"연기(煉己)" 라는 것은,
억겁의 근본 티끌을 잘 단련하고,
기질의 편성도 단련하여서,
일체 습관에 물들은 "나쁜 기운"[習染客氣]을 없애고,
분(忿)함을 징계하고,
욕심을 잘 막기를 잘하여서,
극기복례(克己復禮)하는 공덕이다.
극기복례(克己復禮)를 한다는 것은,
곧, 생각도 없고, 염려하는 것도 없으며,
움직이지도 않고, 요동하지도 않게 되는 것이니,
근본이, 아주, 굳고, 견고한 것이다.
비유하건데, 집을 하나 짓는다고 한다면,
그 기초를 쌓는 것과 같으니, 그 기초의 바탕을, 아주 견고하게 하면,
나무의 재목과 벽돌과 기왓장 같은 재료들을,
사람이, 그것을 잘 주작하여 짓는 것처럼, 충실한 기반을 잡아야 한다.
연기(煉己)는, 기초 바탕을, 구축하는데 있는 것이며,
축기(築基)는, 자기 몸을 수련하는 데 있는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연기(煉己)를 가지고, 수심(守心)으로 삼고,
축기(築基)를 가지고, 폐정(閉精)으로 삼는다는 것은, 잘못된 것임을 알지 못한다.
만약에, 음(陰)을 다하고, 양(陽)을 순수하게 하는, 그런 시기에 도달하도록,
연기(煉己)의 공은, 가히, 멈추지 말아야 될 것이다.
만약에, 마음을 지키고, 폐정(閉精)하는 것이,
축기(築基)가 된다고 한다면,
어찌, 능히, 금단(金丹)의 대사를, 이룰 수 있겠는가?
옛 신선(神仙)들이 말하기를,
환단(還丹) 한다는 것은, 일시(日時)가 있는 것이며,
연기(煉己) 한다는 것은, 반드시, 열 달이 걸린다고 하였으니,
수심폐정(守心閉精)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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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천양진심(天良眞心).
연기(煉己)를 하고, 축기(築其)를 하라고 하는 것을,
억지로, 강작(强作)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주 쓰라린 고초를 겪고, 힘을 들여서, 용공(用功)을 해야 한다.
먼저, 긴요한 것은,
하늘의 양심인, 참 마음을 알아서,
이 참된 진심을 빌려서, 자기 몸을 연기(煉己)한 즉,
캄캄하고 어두운, 그 속에, 곧 한점의 양기(陽氣)가 생겨서, 나타나게 되는 것이어서,
이름하여 말하기를, "진령"(眞靈) 이라고 한다.
진령(眞靈)이 나타나게 되면, 옳다 그르다 하는 것은, 분명하게 되어서,
물욕에 흔들리지 않고, 티끌의 인연에도, 물들지 않게 된다.
그 몸을 수련하는 것은, 심히 쉬운 일이나,
이미 진심(眞心)을 깨달아 얻지 못한 즉, 사정(邪正)을, 분간할 수 없게 되는 것이고,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할 수 없다.
이것은,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제어한다는 것을 뜻한다.
마침내는, 사람의 인심(人心)을 가지고, 그 공덕을 삼아서,
강제적으로 하고, 억지로 지우니, 소위, 이 망령된 것을, 물리치고, 제거하지 못하고,
그 상상이, 거듭되어서, 병이, 더하게 된다.
진여(眞如)의 경지를, 한계단씩 밟아 올라감에,
또한, 착각이 있을 수 있으니,
가지 말아야 할 곳은, 가지 않아야 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사람의 인심(人心)을 가지고,
인심을 그릇되게 인정하여서, 진심(眞心)으로 삼으니,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지 못한다.
무릇, 진심(眞心)은, 무심(無心)으로 하는 것이며,
무심(無心)의 마음은, 하늘이 주는, 진실한 양심의 마음인 것이다.
이와 같이, 천양(天良)의 마음이 있으면,
어찌, 자기에게, 극거(克去)치 못하는, 어려움이 있을 것인가?
백자(百字) 글에서 이르되,
움직이고, 고요함에, 그 종조를 알게 되면,
그 없는 일의 경지를, 다시, 누구한테 찾을 필요가 있으리오 하였으며,
"황학부"(黃鶴부)에 이르되,
이괘(離掛) 속의, 칠반(七般)의 주사(朱砂)가,
진종(眞宗)이 없은 즉, 항상, 머물러 두기가 어렵다고 하였다.
"장삼봉"은 이르되,
축기(築其)할 때에는, 반드시, 탁약(탁약)을 사용하여야 할 것이며,
연기(煉己)할 때에는 도리어 진연(眞鉛)을 가지고 조종(祖宗)을 삼을 것이라 하였다.
진종(眞宗)이라 하는 것과 탁약(탁약)과 진연(眞鉛)이라 하는 것이니 이는 다 하늘의 양심이며 참 마음의 별명인 것이다. 슬프도다! 하늘이 주는 참 진실한 양심과 참 마음을 어찌 쉽게 알 수 있으리오 이것을 알 수가 있는 사람은 곧 그 하나를 얻어 가지고, 모든 일을 다 끝마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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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내는 사람의 인심(人心)을 가지고 그 용공(用功)을 삼아서 강제적으로 하고 억지로 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함인가 ; 인심(人心)은 도심(道心)에 대치되는 말이다. 인정에 끌리게 되어 올바르게 할 수 없으며 우주의 대도(大道)와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심이 제일 인줄로 착각하게 되니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인심을 가지고 활용을 한다는 것은 욕심껏 일을 처리하는 것이고 잘못하는 것이다. 또한 수도(修道)함에도 인심을 가지고 강제로 이루려고 하니 강제로 이룬다는 것은 참선(參禪)을 한다, 금식 기도를 한다, 육경신(六庚辛)을 한다 하는 것들도 모두 여기에 속한다.
10. 양장음소(陽長陰消)
하늘에서 내리는 참 진실한 양심과 진심을 알게 되면, 주인공은 중앙 한복판에 은좌(隱坐)하여서, 도(道)를 수행(修行)하니 음기는 날로 감(減)하여지고, 그 공덕(功德)은 날마다 더 불어나게 된다. 양기(陽氣)는 점점 더 자라나고, 음기(陰氣)는 점점 사라지게 되니, 양(陽)의 기운은 자라나고 또 자라나게 되지만 음(陰)의 기운은 사라지고 모두 소멸이 된다. 결국에 가서는 양의 기운을 더 길러야 되겠다. 음기를 더 없애야 하겠다하는 그런 경지를 초월하는 곳에 까지 도달하게 된다.
어리석은 사람은 정좌(靜坐)하여서 무위(無爲)로써 적멸(寂減)함으로 완공망상(頑空妄想)하게 되면 양기가 자연히 자라나고 음기가 자연히 소멸된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이것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단법(丹法)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사람은 음속에서 양을 회복하여야 한다. 만약에 고요하게 정좌하고서, 무위적멸완공(無爲寂滅頑空)을 가지고 양의 기운을 회복하고져 한다면, 양이 어떻게 자연히 오게 되고, 음이 어찌하여
스스로 물러갈 수 있겠는가. "주사(朱砂)"와 "흑연(黑鉛)"을 다 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화후(火候)법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비유하지면 한가한 대도시에서 오로지 온전히 수련하고 지탱하는 그 힘을 의지하되 조금이라도 잘못된 것이 있으면 여기서는 단(丹)을 맺을 수가 없는 것이다. 참으로 진양(進陽)과 퇴음(退陰)의 도를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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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장음소(陽長陰消)는 양이 늘어나고 음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도(道)가 자라고 마(魔)가 물러남을 의미하고 잃었던 선천의 기운으로 회복해 돌아감을 의미한다. 정좌(靜坐)하여서 무위(無爲)로써 적멸(寂減)함은 무엇인가, 고요한 거처에 자리하여 두 눈을 감고 정신 통일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되면 세상의 온갖 번뇌(煩惱)가 사라지고 심성의 바닥인 고요한 곳에 다다를 수 있다고 생각을 한다. 다시 말하여, 완공망상(頑空妄想)하게 되니, 완공은 허공을 구경하는 것이어서 참선(參禪)을 한다 관(觀) 공부를 한다 하는 것이 모두 이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을 가지고는 아무 소용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양장음소(陽長陰消)의 원리에서 또한 깨달아야 할 것이다. 즉 아무리 선(禪)을 한들 어찌 양기가 자라고 음기가 소멸되겠느냐 여기에 깊은 뜻이 있다. 그러면 여기에서 말하는 양기와 음기는 무엇인가. 여러가지로 표현 할 수있다.그러나 일단 인심이 물러나고 도심이 자라는 것으로 보아도 된다.
11. 찬족오행((撰+贊) 簇五行)
양이 자꾸 자라나고 음이 사라지면, 이제부터는 오행(五行)을 찬족((撰+贊) 簇)하여 서 모울 줄을 알아야 할것이다. 오행을 찬족((撰+贊) 簇)하여서 모은다면 대도는 가 히 희망하여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만져 가지고 모으는 찬족하는 그 공덕이 니, 이 세상 후천(後天)속에 있으면서 선천오행(先天五行)을 나타나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 후천의 오행들은 피차간에 서로 상극하는 것이며, 선천의 오행 은 피차간에 서로 살리는 것이다.
돌아올 "반(返)"자는 서로 상극(相剋)하는 속에서 상생(相生)함을 이루는 것이며, 오행을 서로 상생하여서 살려주면, 혼연한 하늘의 천리(天理)가 될 것이다.
이 오행을 하나의 기운으로 삼으면 사상(四象)이 화합을 한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가지의 뜻을 가지고서 심신의 기운을 인용하여 상하가 서로 사귀게 되고, 간폐(肝肺)의 기운을 운행 시켜서 좌우가 서로 상합(相合)하는 것을 오행을 찬족하는 것이 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이것은 잘못임을 알지 못한다. 무릇 오장(五臟) 의 기운은 다 형체가 있는 물체이니 형체가 있는 물체는 후천의 찌꺼기 같은 재질로 형성된 것이며, 또 그것이 무너질 수가 있으니, 어찌하여 그것이 응결하여 영구히 무 너지지 않는 생명의 보배가 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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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행을 찬족 한다는 것은 오행을 모은다는 것이다. 원래 오행은 하나의 기운이 분리되어 나타난 것이니 이러한 오행 때문에 변화가 생기고 상생(相生)과 상극(相剋) 이 생겨나게된 원인이 된다. 이러한 오행속에 갖혀 있으면 어찌 생사와 윤회속에서 벋어 날 수 있겠는가. 상생 속에 있으니 은혜가 되고, 상극 속에 있으니 원수가 된 다. 이러한 은혜와 미움의 바다 속에서 어찌 대도(大道)를 ?광봉? 수 있으리요. 오행속 에서 이를 하나로 하여 회통(會通)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원래의 진면목으로 돌아 감을 의미한다. 이것이 찬족오행의 원리이다.
12. 음양혼합(陰陽混合)
오행은 음양속을 쫓아 나누어서 나타났으니, 오행을 찬족하여 만들어 모아서, 이것을 합하여 하나로 삼는 것이다. 곧 음양을 합쳐 하나로 하는 것이다. 이처럼 음양을 혼합하여 금단(金丹)의 상징을 둔다는 것은 해아면목(孩兒面目)을 하는 것이나, 다만 후천의 기운에
불과한 것이, 오히려 화거(化去)하지 못할 따름인 것이다.
그러나 비록 이것이 다 화거하지 못하였지만 선천(先天)의 양의 기운을 반환하여 돌이키고, 후천으로 곧 순종하는 것은 또한 능히 재하(再下)는 되지 않을 것이다. 여기를 쫓아서 다시 하나의 그 무거운 공부를 더할 것 같으면, 금단을 가히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어리석은 사람은 심장(心臟) 신장(腎臟)이 서로 사귄다고도 하고, 혹 독맥(督脈)과 임맥(壬脈)이 서로 모이며, 혹 남녀가 서로 사귀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지만 그것은 잘못 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무릇 금단이라는 것은 선천의 허무한 기운이 엉키고 응결하는 것이다. 어찌 후천의 기운과 혈액의 형상이라는 것들을 가지고 능히 엉기고 응결을 하게 할 수 있으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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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양(陽陰)을 모으는 것을 무엇에 비유할 것인가. 아기가 태어나서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자라서 혜아(孩兒)가 되며 또 자라서 분별을 하는 것처럼 수도(修道)를 한다는 것은 이 과정을 거꾸로 가는 것에 불과하다. 음양이 혼합됨은 바로 분별도 없고 아는 것도 없는 혜아의 경지와 같은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혜아면목(孩兒面目)으로 돌아 가는 것이라고 표현 하였다. 이것을 모르니 어리석은 사람은 음양이 교감한다고 하여, 남여가 사귀고, 심장과 신장을 통하게 하며, 임맥과 독맥을 통하게 하니 이것은 모두 잘못됨에 불과하며 생명을 단축 시키는 일이다.
13. 혼연일기(渾然一氣)
음양이 혼성(混成)한 그 반환(返還)에 들어가면, 말하자면 어린아이들이 해아(孩兒)의 면목(面目)을 이미 회복한 것이 된다. 이것을 쫓아서 혼연이 천연(天然)의 진화(眞火)를 운행하게 되어서, 그 후천의 나머지의 음(陰)을 불로 뜨겁게 하여 제거를 하여서, 아는 것도 없고(無識) 화합할 곳도 없는(無和) 그곳에서 신(神)을 갈무려서 기운을 모으는 곳에 돌아갈 수 있다. 소위 말하자면 남아(男兒)가 잉태할 수 있다고 하는 경지가 여기인 것이다.
저개(這個)에서 이 잉태를 하게 되면 곧 이것은 영아의 얼굴과 같게 될 것이며, 이것이 곧 자기의 몸에서 기운을 받아서 살아 나갈수 있는 곳이 될 것이다. 이는 처음 시작의 지극한 경지이며, 곧 태을(太乙) 진기(眞氣)를 머금는 것이라.
어리석은 사람은 이 홍연(紅鉛)을 채취하고 매자(梅子)를 다 따고, 그것을
복식(服食)하여 먹어서, 성태(聖胎)을 상결(想結)한다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을 알지를 못하는 것이라.
만약에 홍연(紅鉛)과 매자(梅子)를 가지고 능히 성태(聖胎)를 맺을 수 있다고 말 하는 것은, 그 맺혀지는 것은 혈액의 덩이나 고기 덩어리에 불과 할 것이며, 이것은 죽음을 재촉하는 귀신의 태(胎)가 될 따름이니 그 다른 것을 어찌
희망을 할 수 있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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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연 일기는 음양의 두 기운이 화합되는 경지이고 우주가 나타나기 이전의 경지이다. 두 기운이 합하여 하나가 되니 여기에는 다툼도 없고 어지러움도 없으니 다만 신령스런 기운만 있을 따름이다.
14. 태공허무(太空虛無)
성태(聖胎)가 응결되면 다시 열달(十月)의 온양(溫養)하는 공덕을 더하여서, 천연 (天然)의 진화(眞火)의 법을 운행하여서 훈증팽련(熏蒸烹煉)하여, 미소함을 인유하여 환하게 나타나게끔 하고, 아주 부드러운 것을 인유하여 견고하게 하여서, 음을 다 박 진(剝盡)하여서 없애니, 태(胎)가 원만하고 단(丹)이 여기서 형성된다. 마치 참외가 다 익어서 꼭지가 절로 떨어지는 것과 같으니, 홀연히 혼돈함을 타파하여서, 청정한 법신(法身)으로 하여 나타나게 되어서, 크게 비고 허무한 경지로 뛰어 들어가서, 삼 계(三界)의 밖으로 뛰어서 나갈 수 있는 것이라.
이것은 곧 자기 몸이 태어나기 이전의 면목으로 하는 것이며, 또한 무극(無極)의 면 목(面目)이 그런 것이며, 그 도는 무극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라. 그 형체와 신명은 함께 현묘하게 되어서, 도(道)와 더불어서 참 진경에 합할 수 가 있으니, 대장부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능히 끝마치게 될 수 있는 것이라. 어리석은 사람은 혹은 거울을 상대하여 연신(演神)을 하고, 혹은 묵묵히 말없이 자기의 정문(頂門)을 상상하고, 혹 은 자기 얼굴을 면벽(面壁)하고 또 자기의 형체도 잊어 버려서, 음신(陰神)의 종류에 서 나타난다는 것을 알지를 못하는 것이라. 금단(金丹)을 하여서 탈화(脫化)를 하는 이 신명은 양신(陽神)인 것이며, 그 일체의 모든 것이 정공(靜功)으로 나타나는 신 (神)은 이에 음신(陰神)이 되는 것이라.
양신은 만년 동안 이라도 길이길이 불생(不生)할 수 있고 불멸(不滅)도 할 수 있지 만 음신은 불로 단련하여서 몸을 비리는 그 석을 경과하지 않으면은, 또 몸에 들어가 서 천문만호(千門萬戶)로 되니 만약에 금단대도(金丹大道)를 점화(點火)하는 것을 깨 달아 얻지 못하면, 비록 음신을 가지고 출입하여 자기 스스로가 문득 앞일도 알고 뒤 의 일을 깨달아 안다고 할지라도, 윤회(輪廻)를 뛰어넘어 도망하기가 어려우니, 소위 말 하자면 그대의 그 천만겁 세월을 배부르게 먹을 지라도 마침내는 공망(空亡)에 떨 어질 것이다. 이상의 7가지의 그림은 다 조화지술을 역행을 하여서 신선의 길을 수련 하는 것이라. 14의 그림중에서 순행하고 역운하는 두가지 일을 대략 가히 알것이라, 이 밑에서는 긴요한 상언(象言)을 집어 내어서 간사하고 바른것을 나누어서 판단하고 그 진실한 뜻을 가르켜 나타내어서, 학자들에게 보여주니 모든 이와 같은 종류는 자 기 뜻으로서 회통(會通)을 하여 볼 것이다.
15. 금단(金丹)
"금(金)"이라는 것은 견고하고 강(剛)하여서 영구히 변하지 않는 물체를 말 하며, "단(丹)"이라는 것은 매우 원만(圓滿)하고 빛나며 청정(淸淨)하고 이 즈러짐이 없는 물체인 것이라. 옛날의 신선들은 금단(金丹)의 이름을 빌려서 원명(圓明)하여 참으로 진실하고 신령스러운 심성을 비유한 것이니, 이 심성 을 유교에서는 이 이름하여 왈 태극이라 하고(在儒則 名太極) 불교에서는 원 각이라 하고(在佛則 名圓覺) 도교에서는 금단이라 하니(在道則 名金丹) 이 명칭이 비록 세가지로 나누어져 있지만 그 실제는 하나를 달리 말할 뿐이다. 유교에서는 잘 수련한 즉 성인이 되고(儒修之則爲聖人) 불교에서는 잘 수련 한 즉 부처님이 된다고 하고(釋修之則爲佛), 도교에서는 잘 수련한 즉 신선 이 된다고 하여(道修之則爲仙), 유,불,선 삼교의 성인들은 본래의 참 심성으 로써 도를 완성하는 성도의 근본으로 삼는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혹 오금 (五金)을 사용하여서 그것을 불에 달구고 단련하여 약을 만들어서 팔석(八 石)을 삼는다고 하나 이것은 참 금단(金丹)이 아님을 알지 못하는 것이라. 참진성(眞性)이 크게 짖는 화로(大火爐) 속에 있어 불을 사용하여 단련하여 가지고 성숙되게 한다면, 천지와 더불어 길이 장구(長久)하게 되며, 일월(日 月)로 더불어 광명을 할 수 있으니, 어찌 이 범세속에서 그 물질을 가지고서 능히 이룰수 있으리오.
16. 천지지심(天地之心)
참(眞)을 수련하는데 제일 중요하게 착안할 것은 반듯이 천지(天地)의 마음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천지의 마음이라는 것은 하늘의 진실한 양심과 진실한 마음을 말한다. 이 마음은 황홀(恍惚)하고 매우 아득하고 어둡고 묘명(杳冥)하여서 가벼이 어떤 상(象)으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텅빈 방에서 흰 광명(光明)이 생겨 나는 것을 보게 되면 그 어두움 속에서도 홀연히 밝게 되는 시기인 것이며, 바야흐로 하나의 답서가 노출하게 되니 하늘은 양에 소속이 되고 땅은 음에 소속이 되며 천지의 마음은 이에 양은 음을 벗어나지 않고 음은 양을 벗어나지 않아서 음양(陰陽)이 서로 합하는 마음인 것이다.
음양이 합하여 이 심성이 있게 되고 음양이 나누어 지게 되면 이 마음도 없는 것이니 색(色)도 아니고 공(空)도 아니고, 곧 색이라고도 할 수 있고 곧 공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없는 것도 아니니, 곧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여 이 세상에 색이다 공이다 하는 그곳에 하나도 구애됨이 없고, 있다 없다 하는 것도 여기에는 세울 수 없는 것이니, 참(眞) 공속의 소유인 것이다.
이 마음을 깨달아 인식(識)을 얻어 잘 지키고 실수를 하지 않은 즉 큰 근본을 확립하게되고 그 다음의 일은 쉬운 일 뿐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다 고기덩이의 완악(頑惡)한 그 마음이 그 위에 있어서 이것을 잘 모아서 어루만지되 혹은 운심을 하는 것으로 이것을 천지지심(天地之心)이 라하고 혹 어떤 사람은 중궁에 마음을 머물게 두는 것을 천지에 마음이 된다고 착각하고 있으니 이것은 다 잘못된 것임을 알지 못한다. 무릇 완악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은 우리가 사는 이 욕심인 후천 세상의 사사로운 욕심과 인심을 말하는 것이니, 마음을 움직이여서 동심(動心)을 한즉, 있다하는 그것에 착상이 되고 마음을 묘하게 한 즉 없다하는 없는 것에 착상이 되는 것이다.
이런 곳에 마음이 머물게 하여두면 형상에 집착하게 되니, 이와 같은 마음은 천지의 마음과 더불어서 구름과 비늘(泥)이 서로 상극되는 거와 같다. 대개 천지의 마음은 움직이고 고요한 것이 하나로 되어서 적연(寂然)이 움직이지 않지만은 느끼기만 하면 드디어 통달이 되며, 그 느끼어서 통달된다고 하지 많은 본체는 움직이지 아니하니 어찌 고기덩어리의 완악한 마음을 말하리오.
17. 언월로(偃月爐)
반달과 같은 그것은 비슷이 누워서 우러러 있는 눈썹의 반달인 것이다. 달이 그믐이 되면 그것이 지극히 밑으로 나타나 또 그곳에서 밝은 것이 생겨나서, 사람이 지극히 고요한 그 속에서 홀연히 하늘의 뿌리(天根)가 되어 나타나서 노출되어 있는 것을 비유하는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도심(道心)이라고 하는 것이며 반달은 언월의 현상에 비유할 수 있는 것이라, 노(盧)라 하는 것은 불을 운행하는 기구라고 할 수 있으니, 그 도심의 양광(陽光)을 가지고서 능히 일신(一身)의 음기(陰氣)를 다스려 단련하는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또 화로(火爐)가 된다고 비유하였으니, 말 하지면 참된 도심(道心)을 말하는 것은 모두, 천지의 마음을 가지고서 체(體)로 말을 하고, 천지의 마음이 되는 그것을가지고 활용(用)을 하며 말을 하고 있을 다름이다. 그러나 도심(道心)의 한 물체인 것이니 하나를 가지고 달리 말할 뿐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단전(丹田) 밑의 불두덩이 뼈밑인 횡골(橫骨)위의 불룩한 곳을 언월로(偃月爐)의 화로(火爐)라고도 하고, 혹은 마음 심(心)자 한 획이 위로 굽어 올라간 그것을 빗대어 말하기를 그릇된 고기덩어리의 마음이 된다고 하여서 언월로(偃月爐)가 된다고 하였다.
채전가(採戰家)들은 처녀의 산문(産門)을 가지고 언월로(偃月爐)의 화로(火爐)라고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것임을 알지 못한다. 무릇 언월로(偃月爐)라고 하는 것은도심(道心)의 빛나는 광휘(光輝)가 되는 것이며, 이 빛나고 비취는 곳에는 모든 사심(邪心)과 사기(邪氣)가 다 멸망이 되니, 능히 성인이 될 수 있고 능히 신선도 될 수 있는 것이라. "자양옹(紫陽翁)"을 찾으라 하고 또 이르시기를 화로 속에는 욕예(玉꽃술예)가 생겨나고 속에는 주사정(朱砂鼎) 속에는 수은(水銀)이 평지(平只) 하다고 하니 다만 불의 힘을 이용하여 조화를 시킨 다음에 그 황아(黃芽)가 점점 장성하여 자라남을 얻을 수
18. 주사정(朱砂鼎)
주사(朱砂)라고 하는 것은 화지색(火之色)이니 그 불로 인(因)하여, 능히 모든 물체를 단련(火段鍊)을 하여서, 예전의 옳지 못한 것을 모두 제거를 하는 것이고 새로운 것으로 바꾸게 되니, 그런 까닭으로 사람들은 솥 정(鼎)자를 가지고 주사정(朱砂鼎) 즉 주사의 솥이라는 상징을 한 것이다.
불이라고 하는 그 물체는 가장 신령스럽고 가장 신비로워서 모든 물체를 감화 시키지 못하는 것이 없으니 그 신명(神明)은 비취지 아니하는 곳이 없음을 비유한 것이며 모든 일을 성취 못하는 것이 없다는 뜻을 내포한다. 그런데 신(神)에는 원신(元神)과 식신(識神)이 있으니, 식신(識神)을 하면 능히 도(道)가 무너지게 되는 것이며, 원신(元神)을 하면 능히 도(道)를 이룰수가 있는 것이라. 대개 식신(識神)이라는 것은 아득한 세월에 역겁(億劫)을 두어서 그 뿌리에 티끌을 달고 있게되고, 원신(元神)의 신령함을 빌려서 망령됨이 자꾸 나타나니 자기의 심성(心性)과 성명(性命)을 다 잊어버리는 곳에까지 이르지 아니하면 멈추지 않는 것이라. 반드시 중요한 일은 원신(元神)을 가지고서 식신(識神)을 제거하여야 되는 것이다. 이 식신(識神)이 일어나지 아니하면 곧 삿된 마음의 불이 꺼져 버리고, 그 사기의 불[邪火]이 꺼진 뒤에는 참 진화(眞火)가 생겨나고, 진화(眞火)가 생겨나야만 그 기운이 화합이 되고 그것이 인온(絪縕)하게 되어서, 그 생기가 멈추지 아니하니, 대도를 가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이지만 어리석은 사람들은 소소하게 밝고 밝은 또 신령스럽고 신령스러운 그 식신(識神)이 원신(元神)이 된다고 그릇되게 인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조차도 알지를 못하는 것이다.
무릇 원신(元神)이라 하는 것은 신이 신령(神靈)이 아닌 그신인 것이며, 신령스러우면서 가장 진실하고, 진실하면서 가장 신령스럽게 되어서, 그야말로 소소(昭昭)히 밝고 령령(靈靈)이 신령스러운 신명이니, 이에 그것이 귀신이면서 참 귀신인 것이라. 비록 신령(神靈)스러우나 거짓이 있는 것은 거짓속에 신령(神靈)스러운 것은 그것이 신이 윤회법(輪廻法)에 어긋나는 종자(種子)가 되는 것이라, 예전에 신선들은 이르되, 무량겁(無量劫)으로부터 오는 것이 생사(生死)의 근본이며 이처럼 어리석은 "치(痴; 어리석을 치)"라는 사람을 본래의 사람이라고 부르더라 라고 하니, 곧 생사(生死)의 뿌리는 식신(識神)이라고 하는 것이라.
19. 원빈지문(元牝之門)
원(元)은 양(陽)도 되며 강(剛)한 것도 되고 움직이는 것도 되며, 빈(牝)은 음(陰)도 되고 부드러움도 되고 고요한 것도 되는 것이다. 원빈지문(元牝之門)은 이에 음양(陰陽)의 구멍(竅)이 되는 것이며 강하고 부드러운 문(門)이 되는 것이며 움직이고 고요한 동정(動靜)의 관문(關門)이 되는 것이어서, 방향도 없고(無方) 장소도 없고(無所) 형체도 없고(無形) 형상도 없어서(無象) 굽고 곧고 하여서 허공(虛空)에 달려있는 한 구멍과 비슷한 것이니, 오행(五行 ; 水火金木土)이 이르지 않는 곳에 있는 것이며 사대(四大)가 이르지 못하는 경지인 곳이며 지극히 없으면서 지극히 있는 것을 함축하게 되고 지극히 텅비어 있는것 같은데 지극히 진실함을 머금고 있으니 이에 음양이 서로 상합(相合)하는 속에 하나의 구멍이라는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입과 코가 원빈(元牝)이 된다고 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도 알지를 못하는 것이다. 무릇 입과 코라는 것을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문이 되는 것이며 음양이 출입하는 문이 아닌 것이라 음양이 서로 합하여야만 신선도 되고 부처도 되건을 [입]과 [코]로 들이 쉬고 내쉬는 그 기운이 어찌 능히 신선이되고 부처가 되리오 오진인(悟眞人)이 이르되 원빈지문(元牝之門)은 세상의 한가로운 일이다. 장차 입과 코로써 망녕되이 들이쉬고 내쉼을 알아 잘 지키는 자만이 선불을 이룰 수 있음이 바로 이것이라.
20. 원관일규(元關一竅)
원관(元關)이라 하는 것은 지극히 으뜸되고 현묘한 관문의 입구[關口]인 것이며 죽고 사는 문이라고 할 수 있으며, 낳고 죽이는 방(生死戶)이 되며 천인의 세계[天人界]가 되며, 형덕(刑德)을 하는 문이 되는 것이며, 있다 없다 하는 궁[有無窮]이 되는 것이며, 신과 기의 혈[神氣穴]이 되며, 비어있고 진실한 바탕[虛實地]이 되며, 십자로(十字路)라고도 하니 이처럼 여러가지의 다른 이름이 있으나, 이 하나의 구멍을 형용하지 않은 것이 없다. 원관(元關)이라고 하는 것은 곧 원빈(元牝)이라고 하는것의 별명의 이름이라, 그 음양이 인하고 있으니, 그런 까닭으로 원관(元關)의 문이라고 말을 하며, 얼마나 현묘한지 가히 측량(測量)할 수 없는 것이니, 그런 까닭으로 원관(元關)의 구멍이라고 말을 하지만은 그 실제는 다 하나의 구멍일 따름이니라, 어리석은 사람은 혹 심장밑에 신장위의 곳을 원관(元關)이라 하고 혹 어떤 사람은 미려(尾閭)를 원관(元關)이 된다고 하고, 혹은 협척(夾脊)과 쌍관(雙關)을 가지고서 원관(元關)이 된다고 하니 이런것들은 모두 잘못된 것임을 알지 못하는 것이라. 대개 원관(元關)은 정한 위치가 없는 것이니, 만약 정한 위치가 있다고 한다면은, 곧 원관(元關)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라. "진허백("陳虛白)"이라는 사람은 그 생각하는 머리의 곳을 원관(元關)이라고 하는데 옳은것 같지만, 또 참으로 이것도 아닌 것이라. 그 머리의 생각하는 것이 일어나는 그곳은 이미 후천의 형체가 있는 그곳에 떨어지게 되었으니, 어찌하여서 원관(元關)이라고 일컬을 있으리오. 나는 지금 여러사람과 더불어서 분명히 황홀(恍惚)하고 묘명(杳溟)한 그 속에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과 있다 없다 하는 유무(有無)가 서로 들어가는 그 즈음을 분명히 하는 것이라. 오진편(悟眞篇)에 말하기를 황홀한 그 가운데에서 현상이 있는 것을 찾을 수 있고, 묘명(墓銘)한 그 속에서 참 진정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니, 있다 없다 하는 것을 쫓아서 자연히 서로 들어가지만은 어찌하여서 그 상상하는 생각만으로 생각을 얻어서 이루어 진다고 볼 수 없는 것이라, 또 "사백자("四百字)"의 글에는 말하기를 이 구멍은 보통의 평범한 규(竅)가 아닌지라 건곤(乾坤)이 같이 합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니, 이름하기를 신기의혈(神氣穴)이라고 하는 것이며, 그 속에는 감이(坎離)의 정기가 있으니, 이것을 참으로 원관(元關)하나의 "구멍[竅]"을 말한 것이다.
21. 곡신(谷神)
곡신(谷神)이라는 것은 빈 골짜기의 신인 것이다. 곡신의 속명은 애왜(崖娃)라 고 하니, 애(崖)라 하는 것은 양쪽 산의 높이 솟아난 그 중간 사이의 골짜기를 말하는 것이다. 사람이 소리친즉 골자기의 가운데로 소리가 전달하여 가니, 그런 까닭으로 이름하여
곡신(谷神)이라고 하는 것이다.
도를 수련한다고 하는 것은, 이것을 빌려 가지고 사람의 몸에 허령한 신을 비유한 것이다. 대개 사람의 마음을 텅 비워둔 즉 신령스러워지고, 텅 비어 있지 않으면 신령스럽지 못하니 신령(神靈)스럽다는 것은 바로 텅 비어 있는 그곳에 나타난다는 것을
또한 이름하자니 곡신(谷神)이라고 하는 것이라.
신(神)자는 형체도 없고, 형상도 없이 신령스러워서, 가히 이것으로서 측량하고 헤아릴수 없다는 뜻이니, 소위 말하자면 적연히 고요하며, 움직이지 않지만은 느끼하면 드디어 통달하는 것이 이 신인 것이다. 소위 말하자면 성태(聖胎)가 엉키어서 되는 것은 이 신인 것이라.
어리석은 사람은 신이 천궁에 있는 것을 곡신(谷神)이라 하고, 혹 어떤 사람은 신이 황정(黃庭)을 지키는 것을 곡신(谷神)을 기르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그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에 말을 하자면 신이 천국에 있고 신이 황정(黃庭)에서 지킨다면, 곧 이것은 텅 빌수 없으니, 텅비어 있지 않으면, 신이 없게 되거늘 어찌 하여금 곡신(谷神)이라고 이름할 수 있으리요.
오진편(悟眞編)에 이르시니 곡신(谷神)을 깨달으면 길이 길이 죽지 않는다고 하였다. 반듯이 원빈(元牝)을 잘 의지하여 근기를 확립하여서, 진실한 그 정기로 이미 황금실(黃金室)로 돌아가게 되면은 한 낱알의 신령스러운 영광은 영원히 원빈(元牝)을 이탈하지 아니하고 합하여서 가운데 중(中)자가 되는 것이라.
곧 비워지게 되고(虛) 비워둔 즉 참 신령이 참 으로 신령스러워서 항상 존속이 되어서 어둡지를 않는 것이라. 참 진실로 정미롭고 또 신명스럽고 빛나는 곡신(谷神)을 다 진령(眞靈)의 한 일물(一物)에 비유하였을 따름인 것이라.
22. 금정옥로(金鼎玉爐)
황금의 솥[金鼎]은 강(剛)하고 강(强)하며 견고한 물질이니 사람의 인지(人志)의 그 생각을 오르지 하나로 하면 능히 도를 실을 수 있다는 것을 비유하는 뜻을 가진다.
이름하기를 금정옥로(金鼎玉爐)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매우 따스하고 부드럽고 평정한 물체로 사람이 공부를 점진적으로 하여서 능히 매우 구원하고 오래 오래 한다는 것을 비유한다는 뜻이다. 또 이름하기를 곤로(坤爐)라고 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솥을 주조(鑄造)하여 만들어서 그 진흙의 부엌으로 만들어서 금(金)과 석(石)을 태우고 소련(燒練)하여서 망상의 생각으로 그 단(丹)을 이룬다 하지만 이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지 못한다.
대개 형체가 있는 화로(火爐)와 솥은 다만 능히 형체가 있는 보통 범약(凡藥)을 잘 단련(鍛鍊)시킬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 형체가 없는 신선의 약은 단련을 시킬 수 없는 것이라. 예전의 신선이 말씀하시기를 정정(鼎鼎)하지만 근원을 말 하자면 그 솥은 없는
것이며, 로로(爐爐)하지만 그 또한 화로(火爐)가 아닌 것이다.
소위 말하는 화로(火爐)라고 하는 것은 그 도를 수련하는 공덕은 강(剛)하고 부드러운 것을 이 두 가지를 모두 활용을 하여야만 바야흐로 모든 일을 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사르고 태우고 소련(燒練)하는 거와 같이하기를 집에 솥이 있다면, 가히 화로(火爐)가 밑에 불타는 화로가 있을 것이며, 화로가 있다면 가히 솥이 없을 수 없는 것이니 솥과 화로를 함께 갖추어서 잘 구비를 하여야만 바야흐로 능히 약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이라.
23. 오토약물(烏兎藥物)
해[日]속에 금까마귀[金烏]가 있다는 것은 양(陽)속의 음(陰)이 되는 것이며 달[月]속에 옥토끼[玉兎]가 있다는 것은 음속의 양이 되는 것이라.
하늘의 해가 주역의 괘상에 있어서 이(離)괘가 되는 것은 바깥은 양이고 속에는 음효가 되는 것이니 그 강한 것 속에서도 부드러움이 있다는 것을 비유하는 뜻이다. 하늘의 달을 주역의 감중연(坎中連)이라 하는 것은 밖에는 음이 있고 속에는 양화(陽火)가 있으니 그 부드러운 속에 강한 것이 있다는 것을 비유한 뜻이다. 금단(金丹)의 도라 하는 것은 오직 강한 것 속에 부드러움을 취하여서 가진 것과 부드러움 속에 강한 것을 취해 가지고서, 두 가지 맛이 있는 진음(眞陰)과 진양(眞陽)의 그 큰 약을 녹여서 하나의 기운으로 화생시켜서 이 단을 완성시킨 것이다. 말하자면 약물이라는 것은 진음(眞陰)과 진양(眞陽)으로서 능히 늙음을 들이켜 가지고서, 동자로 환원하여 그 나이를 연장시키고 수명을 더하게 하는 것이라. 그 거북과 뱀이 서로 얽키고 설켜서 맺어져 있는 것과 물과 불이 서로 상제(相濟)하고 있는 것은 또한 이 이치가 되는 것은 현저하게 그 상징을 가지고서 진음(眞陰)과 진양(眞陽)이 하나로 합하는 그 도를 증거 하는데 불과한 것이라.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 까마귀 오자와 토끼[烏兎]의 그 두 글자를 의심하여서 혹 어떤 사람들은 입으로 하늘의 해의 정기와 달의 빛을 들여 마시고 혹 어떤 사람들은 눈으로 하늘의 해의 정기와 달의 빛을 들여 마시고, 혹 어떤 사람들은 눈으로 하늘의 해의 정기와 달의 빛나는 것을 무릇 접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을 알지를 못하는 것이라. 하늘에는 해와 달이 있는 것이고 사람에게는 사람의 해와 달이 있는 것이니, 사람의 몸에 진음(眞陰)과 진양(眞陽)은 곧 사람의 까마귀와 옥토끼의[烏兎]이 되는 것이라. 하늘가의 해와 달의 정화스러운 빛은 우리와 더불어 서로 멀리 있지만은 어찌 능히 그것을 채취하여 올 수 있으리요. 만약에 말하기를 능히 채취한다고 하면은 곧 그 채취된 것은 자기의 몸밖에 사기인 것이니 오래되면 반드시 몸속에 고창(月鼓,脹)증을 얻게 되고, 몸 밖으로 보아서는 설명하게 되어 눈이 어둡게 되니, 유익한 것은 없고 손상만 있으리라.
24. 용호상회(龍虎相會)
용(龍)의 성품은 부드러움을 주장을 하여서 만물을 살리는 목(木)에 소속이 되니 괘상에 있어서는 진(震)이 되는 것이며, 사람의 부드러운 성품을 비유하는 것은 진(震)이 본래 양인데 부드러운 그 상징을 취해 가지는 것은 양이 적고 음이 많은 것이다.
범[虎]의 성품은 강(剛)하니 죽이는 것을 주장을 하고, 그 물체는 금(金)에 소속이 되어 있으니 괘상에 있어서는 태(兌)가 되는 것이며, 사람의 강한 정[剛情]에 비유한 것이다. 태(兌)는 본래는 음인데 강한 상(象)을 가지는 것은 음은 적고 양은 많은 때문이다.
이 심성(心性)과 정성은 피차간에 그 가로막히고 구애된즉 기와 성[氣性]과 진청(塵淸)이 되어서 그 상생(傷生)한 것이 손상이 되는 것이라. 피차(彼此)간 서로 합하게[相合]된 즉 참 진실한 심성(眞性)과 참다운 인정[眞情]이 되어서 그 삶이 유익하게 되고 용과 범의 기운이 서로 모이게 되니, 이것은 심성(心性)을 가지고 그 심정(心情)을 구하게 되는 것이고, 그 심정(心情)을 가지고서 성품(性品)을 구하는 것이다.
그 성품(性品)과 심정(心情)이 하나로 합하게 되는 뜻이니 동쪽 집의 딸과 서쪽 집의 아들과 짝을 하여서 부부가 되고 장남과 소녀의 두 집이 서로 하나로 합하여서, 금목이 서로 어울리는 현상은 이 진성(眞性)과 진정(眞情)이 교구(交溝*女)하는 것을 비유하는 뜻을 비유함이 아닌 것이니라.
어리석은 사람은 간을 가지고 용이라 하고 허파를 범이라고 하여서 그 배꼽의 제심(臍心)으로 간과 폐의 기운을 운행을 하고 혹 어떤 사람은 단전(丹田)에서 그렇게 하고, 혹 어떤 사람은 황정(黃庭)을 그렇게 하여서 용호가 서로 교구(交)하여 된다고 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고 하는 서로 알지 못하는 것이라, 미처 간폐의 기능을 알지 못하는 것은 다 후천의 이 세상에 형체가 있는 기운인 것이니, 다만 능히 한곳에 응결됨이 아니함이 아닌 것이지만은, 곧 강하게 뭉쳐 가지고 모으고 쌓으니 오래되면 좀먹는 현상이 일어날 것이며(久成蠱), 의술로 다스리는 법은 없는 것이니, 자기 스스로 자기의 죽음을 재촉하는 것이라 어찌 우습지 않으리요.
25. 감缺換?坎離顚倒)
감(坎)괘는 밖에 음효가 있고 속에는 양효가 있으니, 이 괘의 속은 양이어서 물이 되고 밖에는 음이어서 불이 된다. 단(丹)의 도는 감중련(坎中連)괘의 양효를 가지고서 이(離)중절괘 속에 음효를 매꾸어서 물기운을 가지고 불의 기운을 제압 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말하자면 물은 위에 있고 불은 밑에 있는 것이며, 물과 불이 서로 전도하게 되니, 또한 이름하자면 감리(坎籬)괘가 전도(顚倒)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도심을 참으로 아는 신수(神水)로 사람의 위태한 마음의 신령스러운 아름아리의 삿된 불을 제제한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라.
나의 참을 아는 것[眞知]은 밖은 어둡고 속은 밝은 것이니, 이것은 감중련(坎中連)괘의 밖은 음이고 속은 양인것과 같은 형상이다. 나를 신령스럽게 하는 밖은 밝고 속은 어두운 것은 이중절(離中絶)괘의 밖은 양이고 속은 음과 같이 하는 것이다.
참 진실로 아는 것을 가지고[眞知], 귀신처럼 신령스럽게 아는 것[靈知]을 제어 해야 하고, 신령의 힘을 빌려서 신령스럽게 아는 것[靈知]을 가지고서 참으로 아는 진지(眞知)에 순종하여야 한다. 그 참[眞知]과 신령[靈知]의 둘을 하나로 하여서 그것을 응결하여서, 단(丹)을 성취하는 것을 또한 감리(坎籬)와 수화(水火)를 전도하여서 상제(相濟)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
영아(*실사 제외纓兒)와 아름다운 여자[女宅* 女;찬여]와 연(黑鉛)과 붉은 수은[紅汞]에 현사에 이르러서는 또한 참으로 아는 것과 신령스럽게 신령으로 아는 거와 그 두가지를 합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신장(腎臟)을 가리켜 감중련(坎中連)이 된다고 하고, 심장(心臟)을 이중절(離中絶)이라고 하여서, 신장의 기운을 상승시켜 심장의 기운과 교감하게 하고 심장의 기운을 하강시켜 신장에 하강하여서 그 것이 감리(坎籬)를 전도한다고 한다.
규단(閨丹)을 채취하여 가지돼 남여로서 영아와 자녀를 삼아서, 남자는 밑으로 하고 여자를 위로 하는 것을 감리전도(坎離顚倒)라 하고, 또 태우고 단련[燒練]하는 그 사람들이 흑연(黑鉛)을 가지고 수은(水銀)을 제어한다고 하고, 혹은 화로 밑에 왕성한 그불과 솥위에 담겨있는 물로 감리(坎籬)라고 하여서 수화(水火)를 전도하여 상제(相濟)를 한다고 하는 것은 무릇 이것은 다 그릇됐지만 그릇됨을 알지 못하는 때문이다.
무릇 참 진실한 도를 수련하는 도는 그 참인 진실한 것을 수련하는 것이니, 모든 형체와 바탕과 찌꺼기에 바탕이 있는 것과 간사한 행동과 추잡한 그 일의 종류는 거짓인 것이며, 참 진실한 것이 못되니 어찌 능히 참 진실함을 있으리오.
26. 오행전도(五行顚倒)
오행(五行)이 순생(順生)한 한다는 것은 일목(一木)이 불(火)을 살리고, 이금(二金)이 물(水)을 생기게 하는 것이다. 오행(五行)이 꺼꾸로 전도(顚倒)된다 하는 것은, 불(火)에서 나무(木)가 생겨나고, 물(水)에서 금(金)이 생겨나는 것이다.
불(火)에서 생겨난 나무(木)라는 것은 영원히 썩지 않는 나무가 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나무가 불에 타서 변하여 숯이 되어 땅속에 들어가 영원히 썩지않는
그런 종류인 것이다.
물이 금에서 생겨 나타난다는 것은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금(金)이 되는 것이니, 비유하건대 그 흩어진 쇠를 화로속에서 녹아 -이 되어 한 덩어리를 이루게 되는 것은 그 분외에 아주 반짝이는 밝은 것이 생기게 하는 조명인 것이다.
불이 나무를 생한다는 것은 비유하건대, 사람의 본성은 큰 화로속에서 불이 일어나 그것을 하련(불화변, 데울 하瑕煉)이 되어서 나오게 되면 영원히 움직이지 않고 요동되지도 않은 성품이 되는 것이라.
물이 금을 생한다는 것은 비유하건대 사람의 참 정상(眞情想)은 욕심의 바다 파도속에 있지만 친히 과거를 잘 건너게 되면 영원히 티끌도 없고 때도 없는 그런 정상(情想)이 되는 것이다.
예전에 신선들이 말씀하시기를 오행(五行)을 순리적으로 순행을 하면은 이 우주의 법계(法界)의 세계는 불구덩이가 되는 것이며, 오행(五行)을 꺼꾸로 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의 일곱가지 보배가 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경지를 말한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동에 있는 것을 운반하여 가지고 서쪽을 희롱하게 되고 아래있는 것은 채취하여 위에 것을 보충을 하며, 앞에 것을 밀어()가지고 뒤로 운행을 하는것을 오행(五行)이 전도(顚倒)가 된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것도 알지 못하는 것이라.
뛰쳐 한몸에 순음은 속으로는 심, 간, 폐, 비, 신이 되고 밖으로는 눈(眼)과 귀(耳)와 코(鼻)와 혀(舌)가 몸이 되는 것은 그것이 다함이니 이것이 가물인 것이다. 목구멍의 기운이 끊어지게 되면 한 덩어리의 냄새나고 더러운 골육이 되는 것이니 어디 이 하나의 참된 것이 있을 수 있으리오, 만약에 이 거짓 물체의 망상(妄想)을 가지고서 이 심성(心性)을 요달하고 생명을 요달할것 같으면 어찌 능히 할 수 있으리오 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라.
27. 황파매빙(黃婆媒빙)
황파(黃婆)라 하는 것은 중앙 토(土)의 모체가 된다. 능히 음양을 잘 조절을 하고 사상(四象)을 화합하게 하니, 고로 이름하여 황파(黃婆)라고 하는 것이다. 도교의 단서(丹書)에서는 이 원리를 빌려서 능히 진의(眞意)를 깨우치고 이것을 빌려서 사람은 참 진의(眞意)의 가운데 진신(眞信)을 가지고서 심성(心性)과 성을 화합하게 하고 정신을 잘 기르게 된다는 뜻을 비유한 것이라.
참 의지(眞意)와 참 믿음(眞信)은 곧 우리 몸 속의 황파(黃婆)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니 소위 말하자면 황중(黃中)에 통리(通理)라는 것이 바로 이를 말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이 뜻을 알지 못한다. 자기 스스로 오장(五臟)의 기운을 운행을 하여서 회합(會合)하니 이것을 가지고 황파(黃婆)라고 하고, 또 조얼(造孼)하는 무리들이 활용을 능히 하여서 말하기를 노부(老婦)가 희롱을 하고, 남여가 행음(行淫)을 하는데 처녀의 머리를[首經] 취하는 것과 매자(梅子)를 황파(黃婆)이 된다고 하는 것은 크게 그릇되었다는 것을 알지를 못하는 것이라.
무릇 진토(眞土)는 위치가 없는 것이며, 참 의지라 하는 것은 형체가 없으되, 모든 물체를 살려 주지 않는 것이 없고 모든 진리에 구비되지 않은 것이 없어서, 능히 삼가(三家)에 모이게 되고 오행(五行)을 돕게 되니, 그런 까닭으로 이름을 하여 황파(黃婆)라 하거늘, 어찌 의지의 생각의 뜻으로 요망하는 것을 짖는 노부(老婦)를 말하리오.
28. 이팔양현(二八兩弦)
하늘의 달이라는 것은 그믐과 초하루의 사이로부터 사귀는데, 초사흘에는 그 미소한 광명이 현상으로 나타나지만 초팔일에 이르러서는 음(陰)속에 양(陽)이 한 반이나 되어서 비유하건대 활(弓)의 그 둥근 시위와 같으니 이것을 상현(上弦)이라고 말한 것이다. 16일이 되면 원만하게 둥글되, 한 음기가 태내에서 미소하게 검은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고, 23일 날이 되면 양속에서 음이 반이나 되니, 또한 활(弓)의 시위와 같아서, 이것이 하현(下弦)이 되는 것이다.
상현(上弦)은 수(水)중의 금(金) 팔량(八兩)을 얻게 되고, 하현(下弦)은 금(金) 가운데의 수(水) 팔량(八兩)을 얻게 되어서 2x8=16 즉 1근(斤)을 얻게 되는 것이다. 금(金)과 수(水)가 서로 여기서 멈추게 되니 음양이 서로 화합이 되는 현상이 된다.
단서(丹書)에는 이 원리를 빌려서, 강하고 부드러운 것이 서로 합방하는 것을 비유를 하였으니, 편벽 되지도 않고, 기울어지지도 않은 지극히 중도가 되고 지극히 바르게 되는 것이라.
어리석은 사람은 혹 남자가 16살이 되는 것은 28의 16의 그 양현(兩弦)의 기가 만족하게 된다고 하여서, 그래서 드디어 음정을 늑패(勒閉)하여 닫고, 혹은 흑연(黑鉛)팔냥과 수은(水銀)반근을 28의 16의 그 양현(兩弦)의 약재(藥材)가 된다고 하여서, 그것을 요리하고 단련(鍛鍊)하고 복식(服食)을 하지만 그런 것은 다 그릇 되다는
것조차 알지를 못하니 애석하다.
사백자(四百字)에 이르시길 상현(上弦)의 금팔량과 하현(下弦)의 수은(水銀) 반근의 양편을 합하면 그 정액인 건곤(乾坤) 체(體)를 합쳐서, 이에 양현(兩弦)을 이루게 되는 것이니 일음일양(一陰一陽)인 것이다.
건(乾)은 강하여 양(陽)이 되고, 곤(坤)은 부드러워서 음(陰)이 되어서, 음양이 서로 짝을 하게 되는 것이고, 건곤(乾坤)의 체(體)가 여기서 형성이 되니, 단(丹)은 여기에 그 상징이 있게 되는 것이니, 양현(兩弦)의 뜻을 알 수가 있을 것이다.
29. 서미주(黍米珠)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인 포배(胞胚)속에 있을 때에는 혼혼돈돈(混混沌沌)하고, 혼혼미미(昏昏迷迷)하여서, 다만 혼연한 하나의 기운(一氣) 가운데에 있는 것이며 별도로 다른 물체가 없는 것이니 소위 말 하자면 태을(太乙)이 진기(眞氣)를 먹음고 있다는 바로 이것을 말한다.
이 기운은 지극히 신비롭고(至神) 지극히 현묘하고(至妙), 지극히 텅 비어있고(至虛), 지극히 신령스러워서(至靈), 지극히 없는 것 같은데(至無) 지극히 있는 것(至有)을 갈무려 있는 것이다. 삼원(三元)과 사상(四象)과 오행(五行)이 모두 그 속에 포용이 되어 있으며, 그런 까닭으로 능히 형체가 없으되 변화를 하는 것이니, 소위 변화를 하여서
무궁한 까닭인 것이다.
오장(五臟)과 육부(六腑)와 구규(九竅)와 백해(百骸)는 자연히 갖추어서 그렇게 성취(成就)가 되어 있으니 그 지극히 신비스럽고(至神), 지극히 현묘하고(至妙) 지극히 텅 비어있고(至虛) 지극히 신령스러움(至靈)으로 인하여서, 이름하여 진령(眞靈)이라 하는 것이며, 또 이름하기를 귀신이 아닌 귀신(神)이라고 하는
것이다.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에 한 기운(一氣)이 진명(眞名)의 경지를 머금고 있는 것을 참 진기(眞氣)라고 하는 것이며 그 어머니의 뱃속을 나오는데 다다라서 그 신령스러운 것이 하나의 기운을 머금게 되는 것을 이름하여 신령스러운 기운인 즉 영기(靈氣)라 하는 것이다.
하나의 기운이 체(體)가 되는 것은 곧 참 진공(眞空)이 되는 것이며 그 참 신령스러운(眞靈)것이 모든 것을 활용(用)을 하는 것은 곧 묘유(妙有)의 경지인 것이며, 참 진기(眞氣)와 참령(眞靈)과 참진공묘유(眞空妙有)인 것이니 이름은 비록 다르지만 다만 이것은 하나의 참 진인 것이다. 이 참 진이라 하는 것은 형체도 없고(無形) 상징도 없는(無象)것이며, 소리도 없고(無聲), 냄새도 없는(無臭) 것이며, 가히 말로서 전해줄 도리도 없고, 붓으로 역시 이의 형용을 그려낼 수 없는 것이니, 마치 한 기장쌀의 작음(黍米)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까닭으로 예전의 신선들은 이 참된 것을 일컫기를 기장쌀과 같은 보배와 구슬이라 하니 비록 기장쌀이라고 말을 하나 참 진실로 기장쌀과 같은 형체도 없는 것이고 그 한점의 신령스러운 기운으로 인하여서, 중앙에 이것이 숨겨져 있으니 그런 까닭으로 이름하기를 기장쌀이라고 하는 것이다.
한 점의 기장쌀과 같은 신령스러움이 있는 것으로 인하여서 우주의 기운 덩어리인 허공(虛空)에서 이것이 혼돈(混沌)하게 되어서, 천지인(天地人) 삼계(三界)가 거기에 포용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런 까닭으로 이름하기를 서미(黍米)의 구슬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 진실한 곳에 이르러 그 진리를 살펴본다면, 이것은 홍몽(鴻蒙*삼수변)하여서 세상의 일들이 아직 판별이 아니되었을 때의 그 기운(氣運)인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여자의 수경(首經)의 매자(梅子)가 서미주(黍米珠)의 구슬이 된다고 생각하며, 또 가신(家神)을 공부하여 정신이 명당(明堂)에 있는 것이며, 오래 되어서 그 안광(眼光)이 흩어져서, 서미(黍米)가 되었다 라고 말하고 있으니 다 그릇된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무릇 홍몽(鴻蒙)의 판정이 이루어지지 아니하였을 때의 기장쌀과 같은 그 구슬은 성인이 거기서 태어나고, 현인이 거기서 태어나고, 신선이 거기서 이로워지고, 부처님이 거기서 이루어지는 신령스러운 보배가 되는 것이니, 어찌 탁한 혈액의 물질과 상상속의 빛(光)으로 가능하다 하리요, 사백자(四百字) 주해석에 가로되 혼돈(混沌)이라는 것은 허공(虛空)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고, 허공(虛空)이라 하는 것은 천지인(天地人) 삼계(三界)를 포용하는 것이나 그 근원인 한 쌀알(黍米)과 같은데 미쳐 간다면 한 쌀알의 서속쌀 같은 크기인 것이다. 그 기장쌀의 크기를 찾는데 미쳐 간다면, 삼봉옹(三奉翁)이라는 이분은 말하기를 누군들 이것을 알것이며, 누군들 이것과 회통할 것이며, 누군들 이것을
실행 못하오리만은 다만 그 쌀알 같은 그 기운 덩어리인 홍몽 미판한 경지의 기장쌀 같은 그 서미(黍米)위에서 미혹된다고 하는 것이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귀신이 아닌 귀신(神)이라고 하는 것이다. ===> 성품 심성을 말함.
先天先地
{ (鴻) -- (珠) -- (夢) } ====> 太乙 含眞氣
不色不空
태을은 양보의 기운을 말하며 음양을 떠난 경지를 말한다.
30. 화후괘상(火候卦象)
단경(丹經)에서는 모두 육십사괘(六四卦)인 양화(陽火)가 되고 음부(陰符)가 되는 법상(法象)이 있으니, 이로부터 건곤(乾坤) 두괘로 그것을 솥이되고 화로가 되는 정로(鼎爐)로 삼는 것이며, 그 양강(陽剛)과 음유(陰柔)를 갖이고서 전체를 삼는 것이라. 감이(坎離) 두괘를 갖이고 약물(藥物)이라 하는 것은, 강하고 부드럽고 중정(中正)함을 갖이고서 활용을 삼는 것이다.
복괘(復卦)와 구괘(垢卦)의 두괘는 음양의 기운이 사귀고 경계로 삼는 것이니, 그 강하고 부드러운 것을 갖이고 운용하되 각각 그 시기와 절후가 있다고 하는 것이다.
둔괘(屯卦)와 몽괘(夢卦)의 두괘는 천지 조화의 시초로 삼는 것이니 그 진화(進火)를 맞이하여 모름지기 강한것을 활용 하는 것이며, 퇴화(退火)는 반듯이 부드러운 것을 활용하는 것이다. 기제(旣濟)와 미제(未濟)로서 조화의 끝마침을 삼는 것은 그 양화(陽火)를
갖이고 강한 것으로 활용을 하되 가이 너무 지나치게 하지말고 그 음부(陰符)를 갖이고 부드러운 것을 활용을 하되 가히 중정(中正)에 미치지 못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 나머지의 54괘는 건곤감이복구둔몽기미(乾坤坎離復垢屯夢旣未)의 이 10괘를 갖이고 운용을 하여서, 자연히 그렇게 되는 것이니 이것을 요약하여서 말을 한다면은, 음양을 갖이고서 서로 마땅하게 회합하여서 혼연히 이들을 가지고 하나로 합하여서, 그 상으로 돌아간 뒤에 멈추게 되는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이 64쾌를 안음(按)하기를 년,월,일,시,위에 억지로 주작(做作)을 하고 용공(用功)을 하는 것은 그릇된 것이라는 것을 알지를 못하는
것이라.
무릇 천지음양(天地陰陽)의 조화지술은 하나의 기운이 유행(流行)을 하고서, 이것이 순환(循環)을 하여가지고 다시 회복이 되고 시작이 되어서, 이것이 순환하여서 끝이 없거늘 어찌 64쾌를 쫓아서 운행을 하리오 64쾌라 하는 것은 이것은 성인들이 천상(天象)과 지체(地體)와 음양(陰陽) 조화를 잘 관찰하여 보아서 그래서 64쾌를 지었으니, 이에 음양(陰陽)의 조화(造化)가 되는 그 해석으로 주해석을 할 따름인 것이라. 사람 몸의 조화는 천지의 조화로 서로 합하게 되어서, 자연히 64쾌가 있으니 어찌 가히 주역(周易)의 글에 구애되고 64괘의 괘상에 집착할 수 있으리오.
31. 생아지문(生我之門)
하늘의 달이 서남(西南)에 이르러서 그믐이 다하면 아주 선명하게 밝으니 서남방은 곤(坤)에 소속이 되며, 순음(純陰)의 방위가 된다.
순음(純陰)의 아래에 한 양기(陽氣)가 움터서 생겨나게 되니 위에는 곤(坤)이고 밑에는 진(辰)의 상징이 된다. 이들의 괘상은 지뇌복(地雷復)괘가 되는 것이며 달에 있어서는 언월(偃月 ○)이 되는 것으로, 그 고요함이 지극한 속에서{靜極} 홀연히 하늘의 마음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이름 짓기를 도심(道心)이라고 하고, 또 이름 짓기를 천량진심(天良眞心)이라 하니 앞에서 소위 말한 것이 언월로(偃月爐)인 것이다. 만약에 이 마음을 발견하여 보면 그것을 보수하고 지켜서 실수를 안하게 되는 것이다.
진양(進陽)법으로 나아가고 퇴음(退陰)으로 하는 이 이치를 잘하기를 고양이가 쥐를 잡으려고 하는것 같이 하여서 반드시 양의 기운이 점점 생겨나고, 음의 기운은 점점 물러가게 하여서, 음의 기운이 다 하여서 끝나고 양기(陽氣)운이 순수하게 되면 신선이 되는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서남방의 곤(坤)의 위치와 그 방향은 우리를 살리는 문(生我之門)이 되는 것이라. 어리석은 사람은 부인의 산문을 가지고 나를 낳는 문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를 못하는 것이라. 산문(産門)은 사람을 낳는 곳이므로 어찌 신선을 낳을 수 있으리오.
32. 사아지호(死我之戶)
하늘의 달은 동,북쪽으로부터 양광이 장차 없어지게 되니 동북방은 간방(艮方)에 소속이 되어서, 음의 기운이 장차 순수하게 된다. 양광의 빛은 아주 적고 미소한 것이며, 위에는 간(艮)이고, 밑에는 곤(坤)에 그 상징이 있는 것이며, 쾌상에 있어서는 산지박(山地剝)괘가 되는 것이고, 달에 있어서는 복완(覆碗)이 되는 것이다.
그 객기가 소멸하여 박괘가 되는것은 진원(眞元)에 이르는 뜻을 비유한 것이다. 만약에 출세 장부와 용맹한 남자가 확철하게 깨달아서, 회두(回頭)하여 이한점의 양의 기운을 잘 빌려서, 그 밝음을 가지고 어두운 기운을 깨뜨리고, 그 공덕을 잘 활용하고 수련을 하여서 유지하도록 하여야 한다.
선천의 반본환원(返本還元)하는 그곳에 들어가는 것은 어렵지 아니하지만 보통의 모든 사람은 미혹이 되고 깨닫지를 못한다. 그 음기에 순종하여 양기(陽氣)를 박살하니, 결국은 양이 다 없어지고 순수한 음기만 남거늘, 무엇인들 능히 할 수 있으리오.
주역(周易)에는 말하기를, 동북방은 벗을 상하게 된다(東北喪朋)고 하고, 도교의 단서(丹書)에서는 이르시길 우리가 죽는 문이라고 이름을 짓는 것이라.
어리석은 사람은 부녀(婦女)의 산문을 가지고 우리를 죽게 한다고 하지만 그릇된 것임을 알지를 못한다. 무릇 사는 문과 죽는 문은 다 형체도 없고 상징도 없는 문호가 되는 것이니 음에 순종하게 되는즉 죽게 되는 것이고, 거스러서 양의 기운으로 한즉 살아날 수 있다. 그런 까닭으로 생문(生門)이다 사호(死戶)다 라고 이름을 지은 것이지만 그 참 진실한 것은 다만 한 구멍일 따름인 것이라. 예전의 신선은 이것을 칭하여 말하기를, 살고 죽는 관문이라고 하였으니 비록 관문이 된다고 이름을 하였으나, 또한 방향도 없고 장소도 없는
것을 이에 억지로 이름을 지어 그렇게 한 것이라.
오진(悟眞)의 책에서는 말을 하되 모름지기 이 죽는 문을 가지고 사는 문으로 삼아야 되고 생문을 가지고 죽는 사문으로 이름을 지어서는 안되는 것이라, 만약에 죽는 살기를 모아 가지고 밝혀서 이것을 반복을 하여 돌려야만 비로서 해로움을 받는 그속에서 문득 은혜가 생겨난다는 것을 깨달아 알 수 있으니 여기에서만이 "생문이다", "사문이다" 그 뜻을 알 수 있을 것이라.
* 복완(覆碗)은 달의 밝음을 어둠이 가리면서 점차 그믐으로 가는 모습을 비유함.
33. 유위지궁(有爲之窮)
유위법(有爲法)의 도(道)는 있는 것을 가지고 구멍을 보고져[觀竅] 하는 공덕을 말한다. 구멍을 관찰해 본다[觀竅]는 것은, 음양 조화의 구멍을 관찰하여 본다는 것이다. 후천(後天)의 것을 빌려 가지고 선천(先天)의 기운을 돌이키고, 사상(四象)을 화합을 하며, 오행(五行)을 잘 만져서 모으고, 채약법(採葯法)을 써서 그 불기운을 운행을 하여서, 스스로가 단(丹)으로 돌아감 으로써 태를 응결하는데[結胎] 이르게 되니 공부의 차례는 다 그 속에 있다.
만약에 참 스승님이 입으로 전해주고 마음으로 넘겨주는 일이 없다면, 털끝만한 생각의 차이로 그 행동은 천리나 벌어지는 실수가 있게 된다.
어리석은 사람은 후천(後天)에 있어서 환상적인 피부와 또 주머니 위에서 기혈을 헤치고 희롱함을 가지고 유위법(有爲法)의 도가 된다라고 하나,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지를 못한다.
무릇 금단(金丹)의 도라하는 것은 선천(先天)의 학문인 것이니, 능히 잘 만지고 다듬어서 남로르게 우주의 조화 기술을 빼앗아 가지고서 거슬러서 기운을 기틀을 돌리켜서 건곤(乾坤)의 모든것을 전도(顚倒)하게 되면 천지(天地)보다도 자기가 먼저 하는 것이다.
하늘도 그것을 어기지 못하거늘, 이 도의 경지를 어찌 주작(做作)을 하여 짓겠는가, 후천(後天)의 우리 한몸은 형체도 있고[有形] 바탕도 있는 물체[有質]로서 이루어 지게 되어 있음이라.
정양옹(正陽翁)께서는 말씀 하시길 콧물과 침과 정기와 혈액과 칠반(七般)의 신령스러운 물체는 다 음(陰)인 것이다. 만약에 이 물체를 가지고 단(丹)의 근본을 삼는다면 어찌 하늘을 날을 것이며 옥경(玉京)에까지 다다를 수 있으리오. 자양옹(紫陽翁)은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정기의 침을 넘겨 삼켜 가지고, 기운을 나게 하는 것은, 이 사람은 약방(藥房)에 있는 것을 실행을 하여서, 능히 조화를 생기게 할 것이라, 그 규중(규閨中) 에 만약 진종자(眞種子)가 없게 되면 오히려 장차 작은 소대불을 가지고서, 텅비어 있는
솥에 닦는 것이니, 아! 슬픈지라, 금으로 된 두꺼비하마[蝦 ]와 구슬로 된 늙은 가마로 참으로 깨달았다고 인정하는 것은, 작가들의 유위법(有爲法)의 도가 되는
34. 무위지묘(無爲之妙)
무위법(無爲法)의 도는, 곧 없는 것을 가지고 그 현묘한 것을 관찰하고자 하는 것이며, 성인(聖人)의 태(胎)가 응결한 이후의 일인 것이다.
고요하게 관찰하는 하나의 기운이 변화하는 현묘한 것을 적나라한 것이며, 성인(聖人)의 태(胎)가 응결함을 당한 후에 후천(後天)의 기운이 이미 선천(先天)으로 돌아간 것이다. 다만 목욕(沐浴)의 법과 온양(溫養)의 공덕을 활용을 하여서 그것을 잃어버리지 말고, 돕지도 말아서 천연(天然)의 진화(眞火)의 법을 운행 하여서 훈증(熏蒸)에서 변화를 하여야 한다.
자연히 무형(無形)에서 형체가 생겨나게 되고, 바탕이 없는 곳에서 그 바탕이 생겨나게 되어서, 참외가 익어 가는 것처럼 꼭지가 떨어지게 된다. 이처럼 그 어린아이가 출현하여서 앞서게 되어 무화(武火)의 공을 팽련(烹煉)할 것 같으면, 다 버리고서 쓰지를 않을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그 심성(心性)과 생명을 염려하지 않으면, 무엇을 가지고 수도를 할 것이며, 또한 무엇을 가지고 배운다고 할 것인가.
방문(旁門)과 곡경(曲經)에 대하여서 적은 법을 가지고 거기에 편승하니, 문득 산에 들어가 고요하게 혼자 앉아 관문(關門)을 닦고 정신을 안정하고 있으니, 무위법(無爲法)을 한다는 것은 그릇됐다 하는 것을 알지를 못하는 것이라, 무릇 심성(心性)과 이 생명이라 하는 것은 모름지기 쌍수(雙修)의 공부를 하되 아주 긴요히 두 가지로 하는 것이니, 양단(兩段)이라 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유의법(有爲法)을 가지고서 먼저 자기의 생명을 요달을 하여야 되고, 한편으로는 무위법(無爲法)을 활용하여서 그 위에 자기의 심성(心性)을 요달하여야 되는 것이다.
어찌 텅비어 공허하고 또 고요히 앉아 이 신을 안정하여 능히 자기의 심성(心性)과 생명을 요달한다고 할 수 있으리요. 오진(悟眞)에서 말하기를, 자기가 수련하여 단전(丹田)에 돌아가지 못하였거든 산에 입산하지 말라고 하였으니, 산속의 안과 밖은 다 그것은 연(鉛)이 아닌 것이며, 보배는 사람 사람마다, 집집마다 그것을 두고 있지만, 스스로 어리석은 사람은 아는 것이 온전치 않다고 하고, 또 이르기를 처음에 자기가 유작(有作)을 하여 수련을 할 때에는 남들이 보지 못하다가 자기가 수련을 쌓아
모아서 무위법(無爲法)에 이르러서는 여러 사람이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라.
다만 무위를 발견하여 보면 아주 현묘하고 기묘하게 되거늘, 어찌 유작(有作)하는 것을 가지고 이 근본의 기초로 인정하여서 알리오 하니, 여기에서 가히 유의법이다 무위법(無爲法)이다 하는 것은 각각 그 시기의 절차가 있는 것이며, 각각 작용함이 있어서 크게 같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35. 혼속화광(混俗和光)
풍속에 혼합하고 그 세월에 화합하는 것을 혼속화광[混俗和光]이라 하니, 성인(聖人)이라 할지라도 속세에 은거해 있음을 말함이고 시장이나 조정에 크게 숨어서 작용하는 것이다. 혼속(混俗)은 풍속에 혼합하여서 산다는 것으로 이 세상의 풍속
속에서 남 모르게 혼합하여 살면서도 이웃이라 할지라도 알지 못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화광(和光)이라 하는 것은 다른 사람과 잘 화합을 하되 그 사람한테 물들지 않는 것이고, 티끌 세상에 살고 있지만 그 티끌 세상을 초월하는 것을 말한다. 혼속화광(混俗和光)은 능히 풍속에 혼합이 되고 세월에 화합을 하여서 그 밖을 원만히 하여서 모든 만물과 상응을 하되 자기 마음속을 아주 정직하고 모나게 하며, 자기의 주제심을 두어야 한다.
이 세상의 법률을 쫓아서 살면서 바른 독법을 수련하는 것이며, 어두운 것을 환하게 나타나게 하고 순(順)하게 하는 것을 역(逆)으로 상응하게 하여서 막히는 것도없게하고 주선할 것도 없게 할것이니 그렇게만 한다면 도를 실행하기는 지극히 쉬울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혹 의심을 하기를, 이 세상에 혼합이 되고 그 시기에 화합을 하고 살면 이로써 날마다 순간 순간의 모든 일에 휩싸이게 된다. 낯에는 날마다 모든일에 반응하여 살고 밤에는 고요하게 수련하는[靜修] 것으로 잘못 알고있다. 이처럼 말한다면 이 풍속에 ???아살면 옳지만 이세상에 혼합이 되어서 산다는 것은 곧 불가한 일이다. 종속(從俗)과 혼속(混俗)은 다르다. 종속(從俗)은 세속에 그대로 물들어 버리는 것이니 이것은 폐광(閉光)이지 화광(和光)은 아니다. 대개 풍속에 혼합이 되어서 살고 또 화광하여서 사는 도는 능히 천지조화(天地造化)의 관문을 탈취하여서 빼올 수가 있고 음양을 살리고 죽이는[陰陽生殺]의 비결(秘訣)을 훔칠 수 가 있으니 어찌 쉽게 실행을 할 수 있으리오.
36. 약귀토부(藥歸土釜)
토(土)의 성품은 아주 온화하고 부드러워서 능히 모든 만물을 기를 수 있다. 솥[釜]이라는 것은 팽전(烹煎;삶고 볶고 요리함)을 주제 하는 것이므로 모든 것을 삶을 수 가 있는 것이니 능히 그 물체를 완성[成物] 시킬 수 있음을 뜻한다.
솥[釜]은 흙[土]으로 이름할 수 있다는 것은 만물을 기르고[養物] 성취하는[成物] 그릇이 된다는 것이지 보통의 심상(尋常)의 흙[土]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보통의(尋常) 가마솥[釜]이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가히 약물이 솥으로 돌아가는 것을 비유한 것이며 음양을 서로 합하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성인(聖人)의 태(胎)가 응결하여 되는 것이고 온양(溫日*養)의 공(功)을 하게 되는 것이다. 성태(聖胎)를 온양(溫*養)하는 것은 온전하게 하나의 의지(一意)가 흩어지지 않게 하는 데 있으며, 중(中)의 도를 아주 응집하여서 미덥게 잡아서 음양을 서로 마땅하게 하고 편벽 되지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하는 것이며 또한 흙의 솥으로 이름을 하는 것이다. 참 진실한 그곳에 이르러 연구를 하여보면 다만 하나의 가운데 "중(中)"자 일 따름이다. 이 가운데 "중(中)"자를 잃어버린즉 음양이 편벽이 되고 오행(五行)이 분리가 되는 것이니 성인(聖人)의 태는 여기서 상하게 될 것이라. 그렇기 때문에 가운데 "중"자를 지키는 것은 성인(聖人)의 태를 따스하게 기르는 묘한 비결이 될 것이라. 어리석은 사람은 땅을 파고 화로를 설치하여 주사(朱砂)를 기르게 되고 그 주사(朱砂)속의 수은을 취한다고 한다. 흙의 화토[土爐]를 가지고 흙의 가마솥[土釜]라 우기기도 하며, 혹은 진흙의 화로를
가지고 회지(灰池)로 삼아서 그 납을 태워서 회지(灰池)에 집어넣어 회지(灰池)로 은(銀)을 얻어내려 하고 있을 뿐 아니라 회지(灰池)를 가지고 흙의 가마솥[土釜]으로 삼는 것은 다 그릇된 일이라는 것을 다 알지를 못하는 것이라. 자야(子野)는 이르시되 참 진실한 중앙토[眞土]는 위치가 없는 것이며[無位] 참 의지[眞意]라 하는 것은 형체[形]도 없는 것이니 특별히 가운데 "중(中)"자의 흙가마 솥[土釜]는 형상도 없고[無形] 상도 없는 것이며[無象] 방향도 없고[無方] 장소도 없는[無所] 것이나 그 능히 형성함을 이루어서 온전히 성인(聖人)의 태[聖胎]를 이룰 수 있으므로 가마솥[釜]로 이름하였으니 어찌 진흙덩어리의 가마솥에 구애됨을 말 하리요.
37. 응결성태(凝結聖胎)
성태(聖胎)라는 것은 성인(聖人)의 태(胎)를 말하니, 거기에는 인식도 없고 (無識) 아름아리도(無知) 없는 어린아이들의 본래 면목인 것이다. 그 도가 지극하니 무식(無識)하고 아무것도 알지를 못하지만(無知) 백신(百神)이 그 沌沌)하게 되어서 황홀하고 아득하고 묘명한[恍惚杳冥] 경지에 들어가게 되 는 것이고,유위법(有爲法)으로부터 무위법(無爲法)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 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심액(心液)과 신기(腎氣)를 운행을 하여 서로 사귀어서 황 정(黃庭)으로 하여금 성인(聖人)의 태로 삼는다고 하며, 혹은 중궁(中宮)에 서 이 신령을 도달하여서 성태(胎)가 된다고 한다.기운을 운행하여서 신존(神存)하야 중궁(中宮)에 머물러서 그것이 성태(胎) 가 된다고 하는 것은 다 그릇된 것임을 알지 못한다. 성태(聖胎)는 형체도
없고[無形] 바탕도 없으며[無質]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태라 하 는 것은 참으로 진실한 신령스러운 것으로 형용이 있는 것은 아니니 그것이 응결이 되어 흩어지지 않게 하는데 불가한 것이다. 만약에 기운과 혈액을 억지로 응결시켜 태(胎)를 형성시키려 한다면 이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귀태(鬼胎)가 될 뿐 오래 살 수 있는 성인(聖人)의 태(胎)
는 아닌 것이다.
38. 시월태원(十月胎圓)
10개월이 되면 태가 원만해진다 하는 것은[胎圓], 정신이 온전하고 기운이 풍족하며[神全氣足] 그 뿌리의 티끌[根塵]이 제거되어 없어지고 객기가 다 사라져서 없어짐을 말한다. 음은 다 사라지고 양이 순수한 형상이 되어서[陰盡陽純] 마치 부인이 태를
품고 있는것 같으니 이렇게 10개월이 되면 단(丹)도를 능히 이룩할 수 있으 며 10개월이 되면 태(胎)가 원만해 짐을 비유한 것이다. 성태(聖胎)가 응결한 뒤에 우리가 해야할 일은 위험한 생각을 방지하야 하 니 목욕(沐浴)의 수련과정을 겪고 온양(溫養)의 수련과정을 실천하면 기필코 원만히 이루어져 이지러짐이 없는 곳에 다르르게되는것이다. 그렇지만 10월이라 하는 것이 달력상의 10개월의 기한을 정한 것은 아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10달(十月)이라 하는 두 글자를 의심하여서 혹 기운을 운 행[運氣]을 하고 혹은 자기 심성(心性)의 상념을 존속[存想]하며 혹 응신 (凝神)을 하여 망령된 생각을 하면서 10달이라고 하니 이것이 잘못된 것임 을 알지 못한다.
참 진실한 경지를 수련하는 도[修眞]는 채약(採藥)의 수련과정으로부터 팽 연(烹煉)의 수련을 거쳐서 단(丹)을 응결시키고[結丹] 성태를 이룸으로써 지극히 탈화(脫化)하게 되니 그 중요함이야말로 한량없는 공덕을 허비하는 것이어늘 어찌 10달(十月)이라는 것으로 이에 상징을 말할 수 있으리요.
39. 영아출현(영兒出現)
간난아이(영兒)가 출현한다는 것은 성태(聖胎)가 탈화(脫化)하는 것을 말 한 것이며, 성태(聖胎)는 색신(色身)속에서 또 하나의 법신(法身)을 품고 있는 것을 말한다.
탈화(脫化)라 하는 것은 색신(色身)속에서 또 하나의 법신(法身)을 생출(生 出)하는 것을 말한다. 색신(色身)속에서 법신(法身)을 생출(生出)하기 때문 에 이것은 마치 범부(凡婦)가 10달 동안 잉태(잉孕胎) 를 하여서 하나의 어 린아이를 낳는 것과 같으니, 그런 까닭으로 법신(法身)을 이르길 영아(영 兒)라 하는 것이다.
영아(영兒)가 몸밖에 출현(出現)하게 되면 자기 몸이 삼계(三界) 밖으로 뛰 어 나아갈 수 있으니 오행(五行)속에서 벗어날 수 있을 뿐 아니라 윤회법 (輪廻法)을 파하고 들어가서 천지와 더불어 그 수명을 같이하고, 일월(日 月)과 더불어 혼륜(混侖言)을 하게 된다.
어리석은 사람은 감중련(坎中連)속에 진양(眞陽)이 법신의 영아(영兒)가 된 다고 하고 혹은 신중(腎中)의 정기(精氣)를 착각하여 법신(法身)의 영아(영 兒)가 된다고 잘못 말한다.
무릇 감중련(坎中連)속에 영아(영兒)라는 것은 음속의 양인 것이고 법신영 아(法身영兒)는 이에 음양의 혼화(混化)한 참 진인 것이다. 그 신장의 가운데 이르러서는 이에 신장(腎中)의 사화(邪火)가 되는 것이며 결코 영아(영兒)의 뜻이 없거늘 어찌 실어금 혼륜(混言侖)하여 말을 하리요, 오진편(悟眞篇)에 이르시니 영아(영兒)가 이 하나를 가지고 진기(眞氣)에 합할 것 같으면 열달 동안에 그 성태(聖胎)가 원만하게 되어서 성인(聖人)의 기초에 들어 갈 수 있다고 하였다.
사백자(四百字)글에는 이르되 부부가 교회(交會)하는 그때는 동방(洞房)에 서 구름과 비(雲雨)가 지어져서 한해에 한사람의 어린애가 태어나되 그 개 개(箇箇)의 사람이 모여서 학을 탄다고[騎鶴] 하니 여기에서 가이 법신(法身)이 영아(영兒)라 하는 그 설명을 깨달아 알 수가 있는 것이라.
40. 이로환정(移爐換鼎)
대도(大道)가 원만하게 성취되면, 몸밖에 몸이 있을 수 있고 그 형체와 신 기[形神]가 함께 현묘하게 되어서, 대성인(大聖人)의 지위에 도달한다. 이렇게 되면 노(盧)다 정(鼎)이다 하는 용구과정은 소용이 없게 된다. 어찌 노(盧)라 정(鼎)이라 하는 그 일을 다시 거론하리요. 이로환정(移爐換鼎)의 공부과정은 이러한 법신(法身)을 가지고 이것을 잠장 (潛藏)하고 치밀하게 길러서, 그 신통한 경지를 변화하는 따름인 것이라. 옮긴다 하는 것은 무슨 화로(火爐)의 과정인 것이며, 그 바꾼다 하는 것은 어떠한 경지의 공부인 것인가? 정(鼎)이야말로 우주의 태허(太虛)인 것이 고 이(移)하는 화로란 바로 무위법(無爲法)이니 이것으로 하여금 노(盧)라 하는 과정이 된다. 이렇게 전진하고 실천하여서 앞으로 나아가면, 건정(乾鼎)이라는 경지로 곤로(坤盧)라는 것과 주사정(朱砂鼎)과 언얼로(언月盧)라 하는 것은 하나의 약물(藥物)이 되는 것이니, 이 다들이 모두 갖추어 진다 할지라도 쓸모가 없는 것이다. 다만 사용하여야 할 것은 법신(法身)일 따름인 것이라. 법신(法身)이라 하 는 것은 그 허무한 속에 있으면서 스스로 변하고 스스로 화생하고[變化化生], 더욱더 텅비게 되고, 더욱더 신기하여서, 더욱 없는 거와 같이되고, 아주 신비하고 현묘하여서 측량할 도리가 없는 것이며, 그 변화야말로 무궁
하게 되니, 말을 하자면, 아들이 손자를 낳게 되고 또 손자를 낳는 것과 같다. 가지가 이 정도에 이르르게 되면 공력(功力)을 쉬어 마치며 허공(虛空)을 타파(打破)하여서 상천(上天)의 천라(天羅)의 경계에까지 뛰어 오른다. 바야흐로 요연히 모든 일을 감당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참 진실한 전기(眞傳)를 얻지 못하고 신외유신(身外有身)을 오해하고 도를 밀쳐내고서는 머리를 쳐드는 자가 있으나 그렇지가 않다. 고효가(高爻歌)에 이르시길 일물(一物)도 걸치지 않고 도를 오방(五方)에 드러내어 투출(透出)하니 도인의 모습이라. 선동(仙童)과 선녀(仙女)가 오색 찬연한 구름을 타고 오명궁(五明宮)에서 영접을 하는구나! 라고 했다. 진을 전해주고 참을 바라보니 법신(法身)이 천변만화(千變萬化)함을 알게 되매 바야흐로 그 공덕(功德)이 지극하다
제 목 : 41. 이세(離世), 련수(煉睡), 공행(功行)
♧ 여기로 부터는 상언파의의 내용을 요약한 글로써 칠언절구로 나타낸 것이 다. 그러나 여기에 약간의 보충 설명을 붙여 이해를 돕도록 하였다.
♧ 연재는 3편씩 묶어서 할 것입니다.
1. 이세(離世)
이 세상의 천가지 일들은 참되지 못하니, 이 세상 풍속의 사랑과 은혜와 인연이 가장 우리의 몸을 상하게 한다. 한 칼로 두 가지를 짤라버려서 거기에 끌리지 않도록 해야할 것이다. 그 도량 속에서 초월하고 해탈(解脫)하여서 하나의 무한한 자유스러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 보충 : 세상을 떠나라고 한 것은 욕심과 세상일로부터 자유로와 지라고 한 말다. 세상 사람들은 오해를 하기 쉽기 때문에 이 말을 속세를 등지고 산 속으로 들어가 입산수도하라고 한 말로 착각하면 안된다. 세상 일들은 모든 인연과 은혜와 사랑에 얽혀 있기때문에 이들로부터 멀리하라는 것으로 그렇게 하니 무한히 자유스러운 사람이 된다.
2. 련수(煉睡)
잠을 적게 자는 것이 수마를 단련한다는 것은 아니다. 밥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잠을 자는 것도 집어치우고 등라(藤蘿)같은 식물이 자기를 얽는 것도 짤라 버려서, 모든 세속의 인연을 다 제거하여 버려야만 심성(心性)이 아주 맑고 정정하게 되는 것이니 밤낮으로 잠만 자면서 무엇을 이룰까 걱정을 하는고.
○ 보충 : 성인은 꿈이 없다고 하니 꿈이 없다면 잠을 잘 필요인들 있을 것인가. 잠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할 것이니 보통 사람이라 할지라도 잠자고자 하는 마귀를 항복 받아야 할 것이다. 사람은 잠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면서 훗날을 도모하니 이를 경계한 것이다.
3. 공행(功行)
사람이 행동하고 수련할 시 도덕을 쌓아 모으는 것을 가장 먼저 하여야할 것이다. 공덕이 크고 행동을 깊이 한다면 하늘도 감동하여 움직이거늘, 가소로운 일은 이를 가벼이 웃어버리고 오직 자기의 몸만 이익 되게 할뿐 공덕은 쌓지 않으면서 신선을 이룬다고 망상을 하더라.
○ 보충 : 행동은 어떻게 하여야 하며 공은 과연 무엇인가. 우선은 마음을 닦는 일이니 다른 것은 모두 그 다음이다. 마음을 닦는다는 것은 자신의 인격을 도야하며 흔들리거나 방황하지 말도록 해야한다. 그러면 무엇이 공인가. 남을 위한 일이 다 공인 것이니 덕을 쌓은즉 이것이 모두 공이 된다.
4. 금단(金丹)
선천(先天)의 본래 심성(心性)을 말하자면 "단(丹)"이라고 한다. 팔괘의 " 노(盧)"라는 수련 과정속에서 단(丹)이 뭉쳐지는 것을 지어보라. 세상의 미혹한 무리들은 자기의 몸밖에 있는 먹는 약만 찾아 다니며 망녕된 생각을 하면서 구름 끝을 올라가려고 한다.
○ 단은 하나인 것이며 순수한 것이며 한점 물들은 것이 없는 것인바 이 단을 이룬즉 살고 단을 이루지 못한즉 풍진(風塵) 세상을 헤메게 된다. 한조각 마음을 단심(丹心)이라고 하니 마음이 흩어지지를 않고 모이게 되어 있어서 자연 방황함이 없다. 이러하려면 얼마나 많은 수련 과정이 필요할 것인가, 그 과정을 바로 화로(火爐) 속에서 단련하는 것으로 비유하는 것이다.
5. 원관(元關)
원관(元關)이라는 신비한 구멍이 있건만 세상 사람은 아는 이 적다. 황홀 (恍惚)하고 아득하고 묘명(杳冥)한 그 경지는 바로 음양의 양의(兩儀)를 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 순종하면서 거래하는 것이 유속으로 흘러가고 번뇌의 길로 돌아가게되니, 그것을 거스려서오는 그것이 문득 성현이 되는 기초가 되는 것이라.
○ 원관을 비록 신기한 구멍이라고 하지만 이 세상 구멍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성인이다 범인이다를 따지는 구멍이 될 뿐만 아니라, 이 구멍에서 음양이 나뉘어지게 되는것이다. 음양이 나뉘어져서 판별이 되면 범인이 되는것이고 미판(未判)이어서 아직 혼혼(混混) 돈돈(沌沌)한 상태이라면 성태(聖胎)가 응결된다. 성인과 범인을 어?┬쒼? 나눌 수 있는가 그 가름이 모두 원관에 따름이니, 사람들아 세상 돌아가는 대세를 따르는 그릇됨을 버리고 바른 마음으로 수련해야만 할 것이다.
6. 식신(識神)
우리가 생각하고 염려하고 사료하여서 그 정령(精靈)을 모으는 것을 식신(識神)이라고 하는 것이며, 우리가 세세생생토록 윤회하는 종자의 뿌리요 티끌이 되더라. 어리석고 미혹한 사람은 구파(俱把)을 잡고서 희롱하며 살고 있으나 그 밑바닥까지 철저하니 누가 능히 그 주인을 찾으리오.
○ 우리가 배워서 알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모든것이 식신의 작용에 근거하는 것이니 경험이나 지식과 학식도 여기에 속한다. 식신은 윤회 종자의 뿌리가 되기 때문에 이러한 식신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영원히 윤회를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식에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 식신이 아니라 원신(元神)이며 지식이 아니라 지혜가 중요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7. 양정(陽精)
자기의 양의 정기를 잘하는 한점이 있다면 그 신비로움은 바로 산천을 형성하는것와 같으니, 그것을 스스로 인정하여 깨달아서 한때라도 참 진실로 한다면 가히 자기의 얼굴위에 그러한 기상이 나타날 것이다. 그것은 자기 마음(心中)속에 있는 것도 아니고 자기 신(腎)속에 있는 것도 아니니, 공도 아니고 색도 아니면서 원관(元關)에 그것이 숨어있더라.
○ 양의 정기는 참으로 진실한 기운이며 모든 아름다움이 이것으로 부터 비롯 된다. 일점의 양의 기운을 잘 길러야 할것이니, 양의 기운이란 양심의 주체가 되며 올바른기운이니 이 기운은 스스로 얼굴에 나타나게 되어서 그 얼굴의 기상을 보아 그사람의 양정(陽精)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밝고 아름다운 기운을 기르게 되면 점차 음기는 사라지게 되고 식신(識神) 또한 원신(元神)으로 변하게 된다.
8. 선천기(先天氣)
선천(先天)의 하나의 기운이 심성(心性)속의 홍몽(鴻 )한 그속에서 있으니, 거기에는 상도 없고 형체도 없는 것이며 공에 떨어지지도 않은 것이다. 이 세상에 처음으로 태어날 때의 참 진실한 그 면목을 깨달아 얻어야 한다.
이를 모름지기 인정을 하여야만 참 주인공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
○ 사람이 탄생하기 이전의 기운은 혼돈(混沌)하여 인식도 알수없고 아름알이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기운은 참다운 기운으로 자신의 진면목이고 참으로 아름다움 이지만 이것으로 인하여 내가 그 참 아름다움의 주인공임을 바야흐로 알 수 있을 것이다.
9. 선후천(先後天)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을 선천(先天)이라 한다. 한번 이 세상에 머리가 나와 살아오는 그때부터 기질이 연속되는 것이라, 예전의 성인(聖人)들과 뒤 세상에 사람고 두길로 나누어져 있으니, 모름지기 자세히 어느것이 편백되는가 또 온전한가 분별을 하여보라.
○ 내몸 낳기 이전을 이름하여 선천이라 하고, 낳기 위해 형체를 이루었다면 이것이 후천이니 이미 질(質)을 이루기 이전이면 선천이 되고 그 이전이면 선천이라 한다.
이미 태어나니 후천이라 한다. 한번 이 세상에 나오게 되면 이미 후천의 기운에 접촉하게 되는바 억겁의 식신도 태어나면서 한번 와 하고 우는 것으로 부터 따라와 변화가 있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기질과 성품이 갈라지게 되는 것은 이렇게 태어나는 것으로 부터이니 성인과 범인이 갈라지게 되는 것도 이때이므로 이때의 진면목을 누가 알 것인가.
10. 수경(首經)
수경(首經)은 본래 선천(先天)의 보배인 것이니, 그 경지는 황홀(恍惚)하고 아득하고 묘명(杳冥)한 참 하나의 정기이다. 순백(純白)하며 험이 없는 청정한 물체[淸淨物]인 것이니, 탁혈(濁血)을 가지고 안정된 명의[安名]를 모목 하지 말라.
○ 선천의 지극한 보배를 수경이라 한다. 황홀(恍惚)하고 묘명(妙冥)함이 진일정(眞一精)이라 티끗하나 없으며 더럽힘도 없는 곳이니 어떻게 이러한 선천보배를 찾을 것인가. 수경(首經)은 맨 꼭대기를 이르름이니 그 중에서도 경위(經緯)의 꼭대기가 된다. 으뜸이고 보배인 것이어서 선천의 보배는 하나 일(一)자일 다름이어서 순수한 마음이고 험집없는 마음이니 이것이 바로 으 뜸이고 경우가 밝은 마음이다.
11. 삼약(三藥)
큰 대약(大藥)은 삼반(三般)의 정(精)과 기(氣)와 신(神)이나, 형체가 있는것은 본래의 참이라고 볼 수 없다. 지극히 청정하고 지극히 섬세하나 또 텅 비어서 신령스러운 물체인 것이니 그것을 잘 단(丹)련하여 나아 가면은 금강(金剛)의 무너지지 않는 대법신(大法身)이 될것이다.
○ 이세상 모든 형체가 있는 것은 참이라고 볼 수 없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장애가 되는 것이고 진실된 것이 아니다. 이세상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다. 바야흐로 정기신(精氣神)이니 살고 죽는 것이 다 여기에 달려있다. 정기신이란 대약은 잘 단련시켜야 하니 이것은 본래 누진을 꺼린다. 이것들을 잘 보전하면 썩지않는 금강을 얻을 수 있다. 썩지않는 물건이란 영원히 변치 않는 물건이고 이것을 단심(丹心)이라고 말한다. 이를 불가에서는 법신(法身)이라고 하고 유가 에서는 태극 이라고 한다.
12. 성명(性命)
사람의 심성(心性)과 생명(生命)은 그 근원이 선천(先天)과 후천(後天)으로 나누어져 있으므로 자기 몸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에 그 편백과 온전함이 전해지는 것이라. 후천(後天)의 심성(心性)과 생명은 천운을 따라가고 있으니 선천(先天)에 머물고 있을 때의 우리의 권능을 촉구하라.
○ 성(性)과 명(命)은 음과 양으로 우리의 생각이 목숨에 붙어서 있으며 명이 붙어 있는한 우리는 살았다고 하여 생(生)을 말한다. 그렇지만 명을 온전히 부지하는 가운데에서 연성(鍊性)을 할 수 있으니 이렇게 하여야 완전하게 된다. 따라서 성명쌍수(性命雙手)라 한다.
13. 천지심(天地心)
천지의 마음은 심히 갈무리져 있어서 음양의 감격(感激)으로 인하여서 원만하고 광명함을 나타내니, 허무(虛無)한 그 ㅅ[鼎] 속에서 잘 삶아 익혀서 만고천추(萬古千秋)의 유행하는 세월속에 손상됨을 피할수 있으리.
○ 천지심(天地心)이란 사람의 가슴속에있는 일점의 양심을 말한다. 사람의 마음은 때로는 나뉘어지니 흩어지게 되어 있어서 이렇게 되면 시비가 있고 선악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나뉘어 지기 이전이면 시비도 선악도 없는 천지의 마음이 된다.
마음을 허무한 가운데에 갈무리 한다. 그러니 유형의 모든 있음을 피한다. 고의로 짓는 모든일과 사사로움은 방편일 뿐이다. 하늘의 마음이란 일점의 사사로움이 없고 강건한 마음이나 땅의 마음은 모든것을 포용하고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이 된다.
14. 도심인심(道心人心)
사람의 인심은 쇠와 같고 도심(道心)은 황금과 같으니 가히 미소하고 위태한 그곳을 향하여 세밀하게 짐작을 하여보라 그것이 변화한 영통한 경지는 위와 아래가 없는 것이나, 그 근원인 머리에는 활수(活*水;생명수)로 양과 음으로 구별되어 있는 것이다.
○ 세파에 끄달리는 마음을 인심(人心)이라고 하고 ㄲㄲ하개 흔들리지 않는 마음은 도심(道心)이 된다. 인심은 녹이쓰니 원래의 자태가 바래개 된다. 도심은 변하지 않는 마음이고 인정에 휩싸이지 않는 마음이어서 욕심으로 흔들 수 없는 마음이고 재앙이
비켜가는 마음자리가 된다. 그래서 변치않는 금강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인심 속에서 살게되니 대개 인정에 끄달리게 되어서 욕심이 지혜를 가리우게 된다.
15. 미생시(未生時)
내 몸이 태어나기 이전의 그 곳은 누가 알것인가 아주 고요하고 정정하고 소소(消消)하고 혼돈(混沌)한 시기와 사상(四象)과 오행(五行)이 그곳에 이르지는 못하였으나 혼연(渾然)한 하나의 기운이 암숫것(雌雄)을 다 없이 하는 것이라.
○ 사람이 태어나기 이전이란 음양도 없는 곳이며 사상과 오행도 없는 곳이다. 억지로 말 하자니 혼돈한 시절이고 고요하고 적적하여 태어나기 이전의 그 면목을 누가 가히 알 것인가. 대개 수도(修道)를 한다는 것도 부모님께서 나를 지어주기 이전인 미생시의 면목에 까지 도달함을 생각하게 하니 미생시에는 누구인들 시비가 있었고 욕심인들 있었을까 생각해 볼 일이다.
16. 초생시(初生時)
사람이 처음에 태어날 때의 면목이란 어떤 것인고, 선천(先天)과 후천(後天) 두개의 하늘이 하나의 기운으로 화합을 하는 것이다. 학식도 없고 아는 것도 없다고 하지만 한점의 물들림도 없을 것 같으면 그것이야 말로 부처님과 신선의 종자가 될것이며 성현들이 머믈고 있는 움막집이 될것이다.
○ 사람이 태어날 때에는 부모의 뱃속에서 한 기운이 있었으니 선천의 기운이요, 이렇게 하여 태어나매 후천의 기운이 들어와서 합하는 것이지만 이때에는 아무것도 아는 것도 없고 분별도 없거늘 금수도 해치지 못하며 순순한 모습 그대로의 면목인 것이다.
17. 타가(他家)
타가(他家)의 집이란 과연 무엇인가. 이집은 남의 집이 아니언만 그릇되게 남의 집이라고 잘못알게 되니 큰 잘못 이구나. 어린아이들이 잊어버려 헤메었건만 한번불러서 얼굴을 보니 그 아이는 곧 부모를 따를 것이다.
○ 과연 무엇이 타가의 집인가. 내 뽑내는 육신이야말로 타가의 집일세, 사람은 남의 집에 눌러 살면서 그것이 자신인줄 알며 중요하게 생각하니 다 그것이 잘못인줄을 모르더라. 혼미한 사람은 깨닫은 사람의 말을 따르게 된다. 그러나 혼미한 사람들은 나만을 알기 때문에 남을 모르게 된다. 사람은 육신인 자신이 진정한 자신인줄 알지만 나와 남이 별개가 아니요 하나(한나)임을 모른다. 이세상은 나와 남이 없는 것 이미 몸밖이 남이면 몸밖에 있는 모든것이 타가가 된다.
18. 피아(彼我)
경서(經書)의 말씀에 피아(彼我)라 불리우는 것들은 음양으로, 분별되어 있어서, 색도 아니고 공도 아닌 청정(淸淨)한 고향이라, 채단(丹)을 하고 주단(丹)을 하는 그런 사된 무리들은 그 영기의 장막의 꽃속에서 나무 울타리 그속에서 천량심을 무너지게 할
따름인 것이라.
○ 타가(他家)가 있으니 자연 너와 내가 있다. 너와 나를 구별하는 마음이 피아(彼我)이니 이러한 분별이 있어서 모든 어지러움이 생길 것이니 어찌 싸움이 없을 손가. 피아를 다투는 마음은 분별의 마음이며 하늘의 양심을 무너트리는 근본이 되니 너다 나다를 가리는 그 울타리를 헐어버려야 한다.
19. 려반(侶伴)
려반(侶伴)의 짝하는 것이어서 내외를 나누는 것이고 인하여 몸속의 짝과 려반(侶伴)이 두세사람 있는 것이라, 몸밖의 그짝과 려반(侶伴)이 함께 붙들고 돕고 있으나, 계속되는
세월의 역겁의 티끌쌓인 윤회를 다 벗어나야 되는 것이라.
○ 모든것은 짝이 있는법, 보이는 것이 있으면 안보이는 것도 있다. 이들을 음과 양 이라고 한다면 음양이 짝이다. 마음과 몸이 짝이며 이 세상에서 짝 아님이 없지만 이러한
짝에 의하여 음양이 갈라지게 되고 이렇게 되어서는 세세생생 윤회속을 돌아가게 된다. 그러면 무엇이 짝이 되는가 타가와 내가 한집 이지만 이들이 짝이되는 것이어늘
너와 나를 구별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짝은 자기와 짝이되는 도반을 말한다. 그러나 현실속에 있지않은 도반 이기도 하다. 억겁 윤회를 벗어나야 비로서
만날 수 있는 짝이기도 하다. 삼은 삼세를 말하니 과거와 현재와 미래이며 또한
정기신(精氣神)을 말한다. 음양의 대립속에 한줄기 중정의
마음이 있다면 이것도 셋이어서 안밗에서 서로 도와야 한다. 이처럼 속과밖을 인유하니 모두 셋지만 윤회를 벗어나지 않으니 어찌 그짝을 만날까.
20. 외호(外護)
모든 이들은 밖에서 지켜줄 이를 찾아 성공하기를 희망하고 있으니, 솥을 사가지고 어지럽게 바람을 재촉한다. 천기(天機)를 잘 깨닫아서 풍속의 속법(俗法)을 어떻게
초월할 것인가. 남의 힘을 빌리려는 어리석음을 버릴 지어다.
○ 밖은 어떻게 지킬 것인가. 밖이란 풍속의 세상이며 유혹으로 가득찬 곳이다. 세상의 일이란 어지러운 것이요 생멸이 이어지는 곳이고 온갖 유혹으로 가득한 장소이니
이러한 밖을 잘 지킬것 같으면 안은 스스로 견고해 지므로 스스로 두려울 것이 없다.
21. 구정(九鼎)
건원(乾元)의 구수(九數)를 가지고 순양(純陽)이라고 하는 것이며, 구정(九鼎)으로 환단(還丹)하게 하는것은 그 불을 태워서 사르는 단련법(鍛鍊法)이라 그 서자(孼)를 짖고있는 미혹한 무리들이 여자의 솥[鼎]에 시기를 하고 있으나, 결연히 타파하여서 철창으로 둘러쌓인 그곳으로 들어갈 것이다.
○ 구(九)는 모든것이 극에 다른 것이어서 지극한 것이고 정(鼎)은 솥이니 모든 것을 삶아내고 완성 시키는 곳이어서 서로 통한다. 그러므로 솥은 음양을 조화 시키는 곳이다.
그런데 솥이 아홉개나 있으니, 이는 지극히 수련한다는 뜻을 가진다. 이를 다르게 해석하지 말기를 바란다. 다르게 이해한즉 마치 철창속에 갖히는 것 같아서 답답함을 면치
못할 뿐이니 어찌 살기를 바라랴.
22. 초섭(招攝)
선천(先天)의 것을 초섭(招攝)하는 비방은 있지만 거문고를 치고
대나무로 두들겨 치는것은 허무함[虛星]을 나타내는 것이라, 색성(色聲) 시끄러운 장소는 무방하며 장애조차 없음이라, 그렇게 될지어늘 한손에 북두의 광명을 잡는 것이어라...
○ 초섭은 비밀스러운 방법[秘方]으로 전하는 것이언만 사람들은 엉뚱한 곳으로 부터 ㅊ으려 한다. 비방은 비방이니 그 전하는 방법이 다르다. 색성은 무엇인가 하나는 있는 것이요 하나는 없는 것이다. 하나는 보이지만 하나는 안보이니 그렇고, 하나는 들리지만 하나는
들리지 않으니 그렇다. 이들이 혼잡되어 있으니 세상이 얼마나 어지러울런가. 시끄러운바가 여기로부터 시작이 되고 사람들은 바로 여기에 걸리게 된다. 그러니 북두의 광명을 손에 잡지않고는 어찌 할 수 있으랴. 북두의 광명이란 무엇인가. 바야흐로 두병을 잡아야 하는 것이니 북두의 국자를 잡아야 제대로 사용 할 수 있다. 북두야 말로
세상을 재는 잣대이고 알음알이이며 깨닫음의 징표 이기도 하다. 북두는 시간따라 계절따라 흐르니 우리는 두병을 보아 변화를 안다.
23. 전도(顚倒)
음양을 꺼꾸로 전도(顚倒)하는 일이란 심히 어려운 일이니, 마땅히 고요함 속에 신명의 관찰을 한번 운행을 하여보라, 도심(道心)을 더럽히지 아니하고 인심을 없이한다면은 그 장소에 서서있는 곳에서 직접으로 백척(百尺)의 간(竿;장대)까지 올라 갈 수 있을 것이라.
○ 전도는 뒤집는 것이니 뒤집기가 어찌 쉬우랴, 음양을 전도하니 더욱 여렵다. 남들이 모두 즐기는 음양을 뒤집으니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지천태(地天泰)라 하여 오히려 망녕을 떤다. 진실로 음양을 뒤집음은 인심을 멀리하고 도심을 키우는 것이요 한점의 아득한 곳으로 되돌아 가야함을 단지 몰라서 하는 말이다. 영아가 자라나니 세상의 도이고 이를 거꾸로 돌리니 음양이 전도된다.
24. 화후(火候)
운화하는 과정의 공부는 근본적으로 시간을 초월한 것이며, 주역(周易)의 조건석척(朝乾夕 )하는 그 정신으로 삼시충(三尸 蟲)을 베어 버려야 될 것이며, 위험한 것은 예방을 하고
험한 것은 미리 염려를 하여서 항상 밤낮으로 청정(淸淨)할 것 같으면 모든 만물을 임기웅변하되 미혹하지말고 손익(損益)을 할 것이라.
○ 화후는 불때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어디에다 화후하는 것일까. 솥(鼎)이야 말로 불때는 대상이요 목적이다. 우리는 완성에 이르기 위하여 불을 때게 된다. 불때는 과정은 말할 수 없는 공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불때는 과정중에 자리를 뜰 수 없으니
이것은 또한 수련에 비유할 수 있어서 수련 과정 중에도 일정한 기간을 정해서 공을 들여야 함을 의미 하기도 하다. 이렇게 공들이는 과정은 삼시충을 제거하는 길이니 이 길이야 말로 바른 길이요 이 몸을 청정하게 할 수 있는 길이어서 만물을 보되 흔들리지 않으며 짜신을 이익되게 하고 남들을 살리는 길이다.
25. 괘상(卦象)
화후법(火候法)을 말한 경(經)에는 말하기를 주역(周易)의 괘(卦)로 하지만은 그 괘(卦)를 유추하여 가지고 상징을 집착하는 것은 함께 다 아닌 것이라, 대개 가장 중오한 것은 음양의 진리를 모두 회통(會通) 하여서, 진퇴(進退)하는 것을 시기에 따라 지휘(指揮)하는데 맡길 것이다.
○ 화후를 말하지만 화후란 불때는 것이다. 노력하는 것이고 완성을 위한 의지를 말한다. 그러니 화후에서 우리는 착한 마음을 지속적으로 유지시키고 단련 시켜 나가야 한다.
화후와 괘상은 어떤 관계일까. 세상은 음양이고 진퇴일 다름이다. 가고 오는 가운데 밝음이 있고 어두움이 있다. 이를 잘 알아서 처리 하여야 하니 이 진리는 바로 주역의 이치속에 있는바 우리는 주역을 빗대어 진리를 설명할 뿐이다. 따라서 세상의 원리를 진퇴하는 가운데에 괘상으로 비유하는 것이니 주역의 괘상을 알아야 진퇴를 제대로 할 수 있다는 말도 되겠지만, 그렇다고 너무 여기에 집착 하지는 말아야 한다.
26. 건곤로정(乾坤爐鼎)
건로(乾爐)와 곤정(坤鼎)은 모두 내 몸에 있는 것이니 몸밖의 다른 곳에서 ㅊ지를 말라. 강하고 부드러운 그 두가지 일에 간격(間隔)을 두는 마음을 없이 하여서, 선천(先天)의 하나의 기운을 불 살라서 참된것을 간추려 나타내라.
○ 로에서는 불로 달구지만 솥이 없으면 안된다. 건의 화로와 곤의 솥이다. 불때는 것은 강하고 힘있고 지속적 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릇은 무엇이고 다 받아 들일 수 있어야 한다. 취사 선택 하여서는 안되고 밥이고 국이고 모두 솥속에서 익는다. 그러니 강유로 처신을 하되 둘을 잘 병합 하여야 한다. 강할 때 강하고 유할 때 유하여야 하니 이들 사이에 간격이 있을 수 없다.
27. 언월로(偃月爐)
도를 묻노니 무엇이 언월로(偃月爐)인가, 캄캄한 검은 그 속에서도 결백한 것이어서 어두운 가운데에도 깨닫을 수 있는 것이다. 분명히 단(丹)모속으로 돌아가서 나타남을 가르킬 수 있다면 그 시의 사람을 부르짖어서 깨우치는데 많은 것을 알아주는 이가 없을 것인가.
○ 어두움이란 무지몽매 한 것을 말하며 올바르지 못한것을 말하며 혼탁한 세속을 의미 하기도 한다. 이 세상의 모든일은 마치 암흑속을 헤메이는 것과도 같으니 그러한 암흑 속에 일점의 광명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이 언월로이다. 마치 어두움을 밝혀주는 등불과 같은 것이고 밤하늘에 휘황하게 빛나는 달님과 같은 것이니 암흑속에 나타나는 한 깨닫음이다. 언월은 양심인 것이니 로(爐)는 이 양심을 계속 유지하고 발전 시켜서 올바르게 해야함을 의미하는 바 이것은 마치 로(爐)와도 같은 것이다.
28. 주사정(朱砂鼎)
진실한 경지를 수련하는데 주사정(朱砂鼎)을 본 바탕으로 삼으니, 그것은 쇠도 아니고 황금도 아니고 은(銀) 또한 아니다. 신령스럽고 밝되 적은 종자의 물질을 깨닫아 얻어보니, 새로 깨닫아 안즉 그것이 바로 으뜸의 어진(仁)의 경지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주사의 솥이란 참으로 진실한 경지이니 참 진실함을 얻기 위하여 우리는 주사의 솥에 불을 때야 할 것이다. 주사의 솥이라면 가히 진실한 연홍(鉛汞)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주사야 말로 연과 홍을 얻을 수 있는 그릇이니 연홍을 가열 하여야만 가히 썩지않는 열매를 얻을 것이고 그것이 바로 금단이 아닌가. 이처럼 수도자는 주사와 금단을 알아야 한다. 이처럼 팔석(八石)이란 여덟가지 돌이 있어서 그중에 연홍도 있고 주사도 있지만 이것이 비유사임을 알아야 한다. 세상에 흔히있는 수은과 납은 아닌 것이다. 그러면 무엇을 비유한 것인가. 주사정에서 얻을 진실한 경지는 바로 어진 마음 그것이로다.
29. 토부(土釜)
흙 가마라 말하는 이것이 어찌 흙으로 빛은 솥을 말하리요, 중앙을 뜻하는 아주 옳바른 중정(中正)을 말함이니 그 위치야말로 진실한 흙의 가마인 것이다. 나무와 쇠와 물과 불이 다 이것에 줄기되어 모여드니 한개의 원주(元珠) 구슬을 잘 기르면은 밤의 어두움을 밝힐 수 있는 아주 밝은 것이 되리라.
○ 토(土)의 가마솥 이라고 하는것은 흙과같이 한 없이 부드러운 마음을 뜻한다. 흙은 모든 것을 포용하니 누가 땅을 파더라도 불평하지 아니하고 콩을 심거나 팥을 심거나 불평하지 않는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이며 모든 만물을 킬울 수
있는 마음이니 한없이 크고 위대하고 자비로운 마음인 것이다. 이러한 토의 마음을 키우니 이런 사람은 온 천하가 우러러 볼 것이며, 어두움을 밝힐 수 있을 뿐 아니라 세상의 스승이 될 수 있으니 위대한 마음인 것이다.
30. 두병(斗柄)
두병(斗柄;북두칠성)을 관찰하면서 주천(周天)하는 그 법을 운행하여 모든것을 이용할 것 같으면 비로서 생기(生機)가 어느곳에 있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라. 근본뿌리를 잘 돌렸더니 얼굴까지 뒤집히네, 그 때를 맞추어 황금의 연꽃이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 한낯이면 주변도 어둡지 않고 태양이 있으니 자신의 위치를 판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한밤중이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 지 막막한 것이 마치 인생 살이와도 같다. 그래서 공자는 운명을 모르면 참 군자라고도 하였지 않은다. 이처럼 이 세상을 산다는 것은
암흑속에 헤메는 것과도 같고 망망 대해에 떠있는 한척의 범선과도 같다. 따라서 인생의 변별력은 나침판 과도 같다. 이러한 인생의 나침반은 두병 이라고 하니 두병은 지혜를 뜻하고 판별할 수 있는 힘이다. 가치의 기준이니 북두의 주천을 잘 관찰하고 그 운행을
살핀다면 인생에서 황금꽃을 피울수 있을 수 있으리라.
31. 양현(兩弦)
하현(下弦)은 물기운이고 상현(上弦)은 금 기운이니 음양을 조정하는데 멈추는 것이라. 만약에 강하고 부드러운 것을 화합하여서 요달할 것 같으면 마땅히 그속에서 약(藥)의 심성(心性)이 환하게 노출될 것이라.
○ 하현은 물기운이고 상현은 금기운이니 물과같은 부드러움과 금과 같은 강인함을 가지고 활용을 하여야 할 것이다. 이들을 올바로 깨닫아 채득 하여야 한다. 강하고 부드러움을 마음대로 조화시킬 수 있으니 강유(强柔)를 적제 적소에 활용한다. 그렇게 되니 진실로 양쪽을 다 알아서 강유를 합할 수 있고 또한 나눌 수 있다.
음과 양이 도 이라면 강유(强柔)또한 도인 것이다. 그렇지만 음양과 강유의 가운데가 바로 참으로 진실한 자리라고 볼 수 있다. 양쪽을 초탈하고 어디에도 기울지 않기 때문이다. 이 자리를 중(中)의 자리라 한다면 바로 이곳에서 부터 열반의 마음이 비롯될 것이다. 그러므로 착하다 미웁다 하는 생각도 버리고 이것이 착하다는 생각 조차도
없앤다. 영아는 비록 나이가 적다고 할지라도 이와같은 경지에 있으니 막 태어난 아기는 착하다 착하지 못하다 하는 것조차 없으며 진실로 가운데 중 자를 실현하고있는 상태 이기도 하다.
32. 임계(壬癸)
임수(壬水)는 양이고 계수(癸水)는 음이지만 배우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이것을 찾아볼 것인가. 그 지도리의 추의 기틀의 움직이는 곳에서 참 진실과 거짓이 그곳에서 분류되니 탁한것을 다 제거하면 청정한 것이 머물러서 백금(白金)을 낳을 것이다.
○ 같은 물이라고 하더라도 임수와 계수가 다르듯이 같은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청과 탁이 있고 진실과 거짓이 있게됨을 알 수 있다. 여기에는 모든 것이 마찬가지로 같을 것이다. 또한 음과 양의 경계가 참으로 진실한 자리 라고 하지만 배우는 사람들은 바르다 그르다 하는
것에 빠져 있으니 바야흐로 이곳으로 부터 벗어나야 한다. 우선 할 일로 청탁속에서 벋어나야 한다. 인간이 원래 청탁속에 헤메고 있으니 먼저 할 일은 탁한 가운데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그러려면 먼저 탁함을 제거 하여야 한다. 탁한 것을 다 제거하니 비로서 빛나는
아름다움인 백금이 탄생하게 될 것이다.
33. 련기(煉己)
모든 행동하고 수련함에 있어서 우리 몸을 련기(煉己)가 가장 먼저가 될 것이니 욕심을 끊어버리고 또 정(情)을 잊어버리고 이 세상의 일만가지 일[萬緣]을 끊을 것이다. 여섯 도적(六)賊과 삼팽(三彭)을 다 갈아 없애버리면 경건하고 정정(淨淨)한 하나의 단전(丹田)이 될 것이다.
○ 단련(丹煉)이 무엇이며 수련은 무엇인가. 이것은 자기를 닦는 것이니 먼저 단련 즉 연마하여야 한다. 마장과 못된 도적이 있으니 도적을 잡고 마를 갈아내야 한다. 여섯 도적은 보는 것, 듣는 것, 냄새, 맛, 감촉, 법에 의해 짓게되는 여섯종류의 마장을 말한다.
이처럼 주변에 마 아닌 것이 없으니, 마가 자란즉 도는 물러나고 도가 자란즉 마가 물러난다. 마를 물리치면 가히 도에 이를 수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 우리를 지옥에 빠트리는 벌레를 제거하여야 한다. 삼팽 이라고도 하고 삼시충 이라고도 하는 벌레를 제거하여야 한다. 이렇게만 된다면 우리는 청정한 한 가운데에로 나아갈 수 있어서
마음밭의 한가운데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34. 축기(築基)
수행자의 생각이 변하지 않고 견고하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축기(築基)의 몸과 마음이 다른 재화와 환란과 재앙과 액을 우리가 빙자하고 있지만은 물이 고요히 그치는 바와같이 하여서 파도를 없이 한다면 모든 만유의 인연을 다 여윌것이다.
○ 축기란 기반을 닦는 것이며 기반을 쌓는 것이어서 음과 양으로 말한다면 몸과 마음의 기초를 닦는 것이다. 축기는 몸에 보이는 기운(氣運)이 쌓이게 되어 손끝과 발끝으로 부터 쌓아올라가게 되고 그렇게 되려면 물기운인 의지와 사념인 심기(心氣)를 굳건히 하여야
한다. 즉 축기의 기틀이 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을 다같이 부동하게 하는 것이어서 상념 속에서 칠정과 육욕을 제거하여야 하는 현묘한 방법이다. 이처럼 해서
마음을 잔잔한 파도와 같이 한다면 어찌 재액이 있을 수 있겠는가. 마음이 이미 잔잔한 파도와 같았으니 만가지 인연을 벋어날 수 있다.
35. 연홍(鉛汞)
참 수은이라 하는 것은 이 티끌 세상의 수은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참 납이라하는 것도 광산에서 채굴되는 그런 납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한 그 정성과 한 심성(心性)이 선천(先天)의 약(藥)인 것이니 잘 불에 태워 단련(鍛鍊)하여 그 근본 뿌리로 돌아간다면 크게 선천으로 돌아가는 것을 요달할 수 있을 것이니라.
○ 그렇다면 진실로 말하고자 하는 수은은 무엇이고 연홍은 무엇이던가. 수은은 물속에 있는 은인 것이니 물이란 감중련(坎中連)을 상징한다. 홍은 무엇인가. 홍은 가운데가
비어있으니 강한 가운데에도 부드러움을 살릴 수 있는 마음인 것이다. 이러한 강과 유의 마음을 비유사로 연홍이라 하였으니 이처럼 하기는 정말 힘들어서 하는 과정 과정이 단련인 것이다. 수은은 액체요 아지랑이와도 같은 것이니 이것이 뭉치고 굳건해지고 이윽고 결정을 이루어 진즉 홍이된다. 연홍이 상대적이다. 상대를 이루고 나타나는 일정(一情)과 일성(一性)인 것처럼 이들을 잘 다루어야 한다. 인간의 성정을 잘 가꾸고 성품을 단련하는 것처럼 선천의 약을 만들기 위하여는 이들을 불에 달구어 환단을 이룰
것이다. 연홍은 본래 무엇이던가, 참수은도 참납도 아닌 것이니 산에서 생산되는 금석(金石) 또한 아닌 것이다. 이처럼 인정을 끊고 도심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할 수 있으니 이것 또한 마찬가지의 비유사이다.
36. 영차(瓔女宅)
차녀(女宅女)과 이괘(離卦)의 잠겨있다고 하나 본래의 참된것이 아니며, 영아의 어린아이가 감중련괘(坎中連卦)에 있는것 또한 옳다고 볼수 없더라. 지금 음양규(陰陽竅)를 설파(說破)하여 능히 진실한 마음으로 모든것을 텅비워둔다면 낳을 수 있을 것이라.
○ 차녀는 이괘내에 존재하는 부드러움이니 자연 차녀(女宅女)의 형상이라 불리우는 것으로 안에 있는 음효이기도 하다. 음이니 여(女)이고 차녀의 원리로 표시 하였다. 그렇지만 영아의 어린이는 음중 양이다. 어리므로 험한 가운데에 있고 단지 음속에 있지만
이후로 씩씩하게 자라날 음중 양의 모습이므로 그모습 그대로 감괘(坎卦)의 형상으로 표현하였다. 그러하니 이러한 음과 양의 가운데에 있는 구멍을 살펴 알아야 그것이 진실로 알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어서 이러한 음양 원리인 영차의 원리를 음양의 조화로
아름답게 가꾸어 나아가야 한다. 이것은 진실한 마음을 배태 하여야 가능한 것이어서 모든 것을 텅 비게 하는데에 있다는 바로 그 진리를 말하는 것이다.
37. 감이(坎離)
감중련괘(坎中連卦)와 이중련괘(離中連卦)는 북쪽을 향하고 남쪽을 구한다는 단순한 의미는 아니니 불의 성품은 공중으로 올라가고 물의 성품은 밑으로 흐른다. 그렇지만 두 물체를 전도(顚到)시키면 물기운은 올라가고 불기운은 내려가게 되어서 수승화강(水昇火降)의
조화를 이루어서 단두(丹頭)를 맺을 것이다.
○ 감괘란 의 형상 이어서 험한 가운데 양이 살아있는 모습을 보인다. 험한 가운데에도 진실함을 보이는 것이요 물 속의 진실함을 말하는 것이다. 은 가운데가 비어있으니 꽉찬 가운데에도 겸손함을 뜻하며 강한 가운데에도 부드러움을 겸비해야 함을 뜻한다.
살아있다는 것은 거꾸로 흐르는 것이어서 역행하는 것이다. 물 속의 고기도 역행하는 과정속에 생명이 숨쉰다. 물을 거슬러 오르지 못하는 것은 생명이라 할 수 없다. 물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은 역으로 불을 내리는 것이 된다. 화를 내리고 물을 올리는 과정이 바로 단련이다.
38. 진태(震兌)
태괘(兌卦)는 서쪽의 땅이 아닌것이며 진괘(震卦)역시 동쪽이 아닌것이며 성품(性)이 어지럽고 그 정성(情)이 미혹되면은 그 기운이 같을 수 가 없는 것이라. 그 정성(情)이 오는것을 잘 음득(陰得)하여 깨달아 성(性)으로 돌아가게 됨이 법(法)이니 삽시간에 우리는 주인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 진은 동방목이고 태는 서방금이다. 그렇지만 진태를 동방과 서방으로 국한해서 생각하면 안된다. 진태(震兌)의 법을 잘 음득하여 성(性)으로 돌아간다고 하였으니 진태의 법이란 진성 자체이다. 진은 동방이니 어진 것을 주도하고 태는 서방이니 의를 주장한다. 따라서 진인 어진 성품과 의로운 서방 성품을 잘 기르게 되면 이것이
진성으로 돌아가는 첩경이 되니 이것이 바로 성으로 돌아가는 법이다.
39. 자오(子午)
자(子)와 오(午)는 밤과 낮이 아니니 이것을 ㅉ아서 찾지말라고 하는 것은 우리몸속에 별도로 지남침이 있음을 말함이라. 음양의 동정이 그시기를 따라서 있는것 이어서 그속을 우리가 다 안정을 시키게 되면 예전 태고의 음성까지도 능히 들을 수 있을 것이라.
○ 자오는 무엇인가? 자오는 경계이고 지남침이니 자오가 있어야 구별이 되고 분별이 되니 모든 분별은 자오의 구분으로 부터 시작이 된다. 자오가 있으니 좌와 우가 있고 동쪽과 서쪽의 구별이 있다. 이처럼 분별이 자오로 부터 시작 되는 것이니 자오를 모르고서 어지 분별을 알 것인가. 음양과 동정을 따라서 음도 양도 아닌 그곳을
따르도록 할 것이다. 좌와 우에 치우침도 없는 그 태고의 자리까지 도달 하여야 할 것이다.
40. 묘유(卯酉)
목욕沐浴이라 하는 과정을 경서에서 말하기를 묘유卯酉의 시時라고 하였다. 그 형용은 두기운이 편백되게 험있는 곳으로 빠져들어가는 것이라 어리석은 사람은 음양의 회통을 깨닫지못하여 아침과 저녁으로 오는 춘분과 추분에 고요하게 앉아 있더라.
○ 자오가 있지만 묘유 또한 중요하다. 자오에는 반드시 묘유가 따라오게 되어있으니 자오에 묘유는 합하여 날줄과 씨줄이 된다. 날줄과 씨줄은 각기 방위와 위치를 잡고 합하여십자를 이루니 십자는 또한 열이어서 모든 것을 다 포함하고 함유한 상태가 된다. 말하여 자오 子午로 위[位置]를 말하였다면 묘유로는 시時를 말하였다. 이렇게 하면 시와 공을 함께 말한 것이니 합하여 시공이 되고 우주가 된다. 또한 목욕의 과정을 묘유라고 하였다.
목욕이라 하는 과정은 과연 묘유로 부터 시작되는 것이니 묘유는 방향으로 동서가 되며 춘분이고 추분이며 아침과 저녘이더라. 그러나 이 기운은 지극한 양도 아닌 것이고 또한 지극한 음도 아닌 것이니 다만 음속에 양이 혼재해 있고 또한 양속에 음이 혼재해 있는
자리임을 알 수 있더라. 그러니 묘유의 과정을 목욕이라 표현 할 수 있을 것이다. 잡된 것이 없다면 이미 더럽고 닦아낼 것이 없을 터이니 목욕이 필요 없을 것이다. 목욕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우리는 참 진실한 자리로 갈 수 있고 이것을 따스하게 길러야 할것이니 우선
목욕이란 과정이 필요하다 함을 이로써 알 수 있을 것이다.
41. 황파(黃婆)
암컷이다 수컷이다 베필이다 하는 것은 그 긴요한 것이 황파黃婆인 것이다. 무기토戊己土와 구성을 이루는 것은 조화지술을 움직이는 움집이 있는 것이다. 만약에 황파黃婆를 질문하여 가서 참으로 그 숨쉬고 멈추는 것을 여기서 깨달아 확신할것같으면 하나의 정성으로 오행五行이 화합이 될 수 있는 그 경지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
○ 황파는 진실로 중요한 위치이니 중앙 토土의 기운을 말한다. 중앙토라 하는 것은 모든 것을 포용한 자리이고 음양을 잘 조절한 자리를 말한다. 이 자리야말로 청정한 참다운 자리인 것이고 모든 것을 함유한 자리이니 조화의 자리이고 온갖 비밀과 아름다움을 함유한 자리이다. 이 자리를 깨닫아 알아야 할것이다. 음양이 화합한 자리이고 오행이 찬족된 자리이니 음양과 오행의 변화와 조화를 깨닫아 알 수 있어서 모든 것을 화합할 수 있고 배태할 수 있는 자리이다. 신선과 불 보살이 바로 이곳으로 부터 연유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음양이 짝 지우려면 반드시 매파가 있어야 하는 것 처럼 황파의 이치 또한 이속에 있다. 황파 속에서 음양과 오행의 조화가 숨어있게 된다.
42. 환단(還丹)
단丹을 수련한다는 것을 어찌 환단還丹이라고 하는가 ? 오행五行의 기운이 분리分離되는데 함께 각각 한가지인것이라. 본래의 면목의 시초를 회복한다면은 그 원리를 회취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몸과 마음은 타성단打成團에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 환을 어찌하여 돌아올 환還 이라고 하였던가, 돌아온 자리는 원래의 자리이니 먼저 있던 자리인즉 선천의 자리이고 진성眞性의 자리이다. 참다움 그 자체이고 성품을 회복 하였으니 말하자면 성인의 배태인 것이고 영원히 불변하는 ㅆ지도 아니하는 금강金剛의 자리인 것이다. 말하자면 법신法神의 자리인 것이어서 그 변하지 않는 일편단심 一片丹心의 그 자리를 ㅊ은 것이다. 가히 몸과 마음은 세파에 마장에 물들리지 아니한다.
43. 단숙丹熟
이 "단丹" 이라는 하는 것은 이미 그 시기에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이나 모름지기 반드시 가감加減을 하여 가지고 다시 양陽을 더하지 말것이라. 자연히 그 신형을 화로火爐속에서 잘 단련鍛丹鍊을 하면은 하늘을 통하는 하나의 쌀알과 같은 광명이 흩어져서 따라나올 것이다.
○ 이미 단丹을 이루었으니 다시는 풍 속의 세속에 빠지지 말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화로 속의 풍구질 하는 과정속에서 신화神火를 더욱더 단단하도록 잘 숙성 시켜야 한다. 그러니 이 말은 마음을 잔잔히 한다는 말이 된다. 따라서 몸가짐도 여일하니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고 걸림이 없다. 뿐만 아니라 단을 이룬 후에는 이를 잘 유지하고 다시는 세속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 하여야 그 기운은 자라나 새로운 씨앗을 잉태하게 될 것이다.
44. 성태聖胎
성태聖胎라 하는 것은 형상이 있는 것이 아니니 기운이 모이고 그 정신이 응결되어서 참종자가 심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 위험한 것을 염려하여서 위태한 것을 예방하고 항상 말조심 생각 조심을 하여야 하거늘 만약에 큰 뜻으로 돌아간다면 반드시 재앙이 생겨날 것이다.
○ 성인의 씨앗이 배태胚胎되니 가히 성인의 종자를 낳을 것이다. 참되고 진실한 자리이니 착하다 그르다의 구별도 없고 미웁다 고웁다의 구별도 하지 않는다. 성내지도 따지지도 않으니 세상의 온갖것을 알아도 내색조차 하지 않는다. 혼혼돈돈하여 세상의 모든
알음알이를 모두 같이 하더라도 또한 기뻐하거나 말하지 아니한다. 그저 있어도 없는 것 같이하고 없어도 없는 것을 모른다. 가히 성인의 마음이란 헤아릴 수 없다.
45. 탈태脫胎
성태를 벗어나서 탈화脫化를 하면 처음으로 완전한 참된것이 될것이니 10달 공부하는 것이 곡신谷神을 기르는 것이 될것이라. 양기陽氣를 지극히 하고 순수하게 하면 음의 기운이 다 없어지게 될것이니 그 허공虛空을 뛰어넘어 나아갈 수 있는 하나의 신선이 될 것이다.
○ 성인의 배태됨을 안다 할지라도 이것을 잘 키워야 한다. 10달의 공을 쌓아야 아기가 탄생하는 것처럼 명命을 수련함에도 그러하다. 이처럼 하여 성인의 태가 배태되어 나타나니 허공을 초월하여 신선이 될 것이다. 이처럼 목욕하고 다스히 온양하니 성인의 태가 나타나서 가히 출태出胎되었다고도 하며 탈태되었다 고도 한다. 성태의 씨앗을
지극히 길러 얻어진 것이다.
46. 유위법有爲法
유위법有爲法으로 하는 것이 어찌 이 피부의 주머니를 희롱함 이리오. 일천가지를 방작倣作하여 짓는 것이 다 상처만 받게된다. 마음으로 전하여주는 그 참현묘한 묘결을 즉 깨달아 얻는다면 귀신도 측량할 수 없는 음양을 눌러서 우리는 비길수가 있을 것이다.
○ 유위법이 있으니 이어찌 훌륭하지 않으리요, 비록 방편에 흘렀지만 유의법을 통하지 않고 어찌 무위를 갈 수 있으며 영원히 무궁한 자연에 도달 할 수 있으리요. 날마다 마음으로 실천하고 정성을 들이게 되니 비록 의지대로 열심히 한다고는 하지만 언젠가는 묘용을 얻을 것 이리라. 유의를 자꾸 하다 보아야지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묘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47. 무위법無爲法
무위법無爲法이라 하는것은 완만한 허공虛空에 집착이 되는 것이 아니니 도리어 홀망忽忘하고 홀조忽助하는 공덕을 얻어야 될것이다. 그 윤회를 반복하는 생사生死의 씨를 뽑아 버린다면은 당장에 그속에는 다만 신동이 있을 것이라.
○ 세상에 유의법이 있다고 하나 어찌하여 사람들은 무위법을 모르는가. 세상의 지고한 진리는 무위이고 자연인 것을, 진실한 참경지가 모두 무위법으로 부터 비롯되는 것인데 사람들은 무위법을 실천할 줄 모른다. 일하는 하나 하나가 모두 무위법에 있어야 하니 마치 자신이 착하지만 착하다 하는 것도 모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하지만 모든 행함이 올바르지 않음이 없고 그렇더라도 이러한 올바름이 작위적이 아님을 무위법이라 한다. 보시를 하더라도 참다운 보시를 함을 의미하는 것이며 덕을 닦더라도 자신의 행위가 남에게
도움이 되는지 그것조차 초연하여야 한다. 진실한 마음 자체이어야 하므로 성인이요 불보살의 경지에 도달하지 아니해서는 무위법을 실천하기에 힘들다고 할 것이다. 무위법을 채득하여 무위자연에 이른즉 생사와 윤회를 초월할 것이다.
48. 복구復女后
음이 지극하게 되면은 반드시 한 양이 회복하는 복괘復卦의 양이 되어서 모름지기 이 진화眞火법을 사용하여 양을 순수히 하니 참동계를 가지고 음부陰符를 운행하여야 될 것이라. 음부陰符와 양화陽火을 틀리고 착작함이 없게하여서 선천先天태극도를 가출하여
나타낼 것이다.
○ 음이 지극하게 되면 반드시 한 양이 시생始生하드시 양도 지극하면 음이 생겨나게 된다. 말하자면 한밤이 아무리 깊어도 아침이 오며 태양이 아무리 높이떠도 저믈게 마련이다. 그래서 난세와 치세가 교차되는 원리가 되며 이것이 대자연의 원리요 인간사의 원리이며
어쩔 수 없이 겪어야만 하는 세상살이이다. 주역에서는 이것을 지뇌복地雷復괘와 천풍구天風 괘로 나타내었지만 참동계 에서는 이것을 음부와 양화로 표현하여 도의 원리를 밝혔으니 참고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49. 문무文武
아주 용맹무쌍한 그 힘을 가지고 마장을 항복받는 것을 무련武煉이라고 할 것이며, 마음을 텅비어가지고 자기 본래의 일기를 양성하는 이것을 바로 문팽文烹이라고 이름을 지을 것이다. 흉한 것을 알고 길한 것을 깨달아서 그 시기에 따라 임기응변을 잘한다면
이세상을 두루 답사하여도 다 황금이 되어서 그 눈이 밝게 빛나게 될 것이다.
○ 문무는 겸비 하여야 한다. 용감히 마음 속의 욕심과 맞서서 싸와야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또한 마음을 텅 비게하여 자기의 기운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 도심을 키우는 것이 또한 마장을 물러나게 하는 것이며 단련 하는 것이지만 이와 더불어 마음을 비우고 수련하는 것 또한 병행 하여야 함을 뜻한다. 가히 문과 무는 겸비 하여야 함을 의미한다. 그렇게 하여야만 세상을 두루 살펴나가며 금강金剛과 같이 영원한 법신法身을 이루게 될 것이다.
50. 화광和光
이 세상 광명시간에 화합을 하고 풍속에 잘 혼합을 하여서 남이 모르는 천기의 비밀秘密을 다 깨달아 알더라도 크게 신공을 활용한다는 것은 참으로 하나라도 드물게 할 일이다. 항상 모든 것을 임기응변하고 항상 모든 것을 청정하게 하고 항상 모든것을 자유자재하되 시기에 따라서 예전것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의복을 입을 지어다.
○ 빛[光]에 화합한다. 화광은 세상의 속세 인연들과 더불어 하되 그 인연속에 빠지지 아니하고 그 진흙의 티끝에 물들지 아니함을 의미한다. 그러하니 조정에 있고 시장에 있더라도 세상 사람들은 모르게 하는 것이요, 모든 것을 세상과 더불어 하는 것을 의마하는
것이다. 그러하니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신선은 감로주를 마시고 깊은 산 속의 안개속에 구름처럼 살아가는 존재는 아닌 것이다. 신선은 덕도 닦아야 하고 세상에 이로운 존재이기도 하니 가히 깊은 산속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화광동진和光同盡이라고도 하니 먼지속에 살되 먼지를 묻히지 말고 산다는 것은 어디 신선뿐 이겠는가. 우리 모두가 세속에는 살되 세속과 타협하지 아니하고 참다움을 실현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