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숙이 엄마
이 영 혜
오래 전 시댁이 있는 구미에 가서 산 적이 있다. 큰 딸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일 때였다.
내가 사는 집 문간방에 세 들어 사는 젊은 엄마가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딸아이와 7살짜리 아들을 둔 과부 엄마였다.
오늘 설거지통을 내려다 보다 문득 그녀가 떠올랐다. 나는 밥 먹은 그릇을 설거지통에 담글 때는 지저분한 반찬 찌꺼기가 묻어있는 그릇을 그대로 넣지는 않는다. 반드시 수도꼭지를 틀어서 헹군 다음 통에 담는다. 씻으면 마찬가지라지만 더러운 것들을 한테 썪어서 씻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나의 설거지통은 설거지를 금방 하지 않더라도 언뜻 보면 설거지해서 담가놓은 것처럼 깨끗하다.
그 과부댁이 미숙이 엄마다. 미숙이 엄마는 시댁인 해평에서 살다가 남편이 폐병으로 죽고 나서 이곳 친정 곳인 구미로 이사를 와서 살기 시작했다. 친정에는 두 오라버니내외가 근처에 각기 살고 있다. 그렇게 친정을 의지해서 남매를 키우며 살아가고 있었다. 미숙이 엄마는 삯바느질을 해서 먹고 산다. 솜씨가 좋아 일꺼리가 떨어지지 않고 늘 쌓여 있어 밤낮으로 바느질을 한다.
38살의 미숙이 엄마는 얼굴이 하얗다. 속눈섭이 까맣고 상냥한 말소리를 가지고 있다. 시골에 사는 아낙 치고는 꽤 도시인 같은 센스가 있어서 이야기를 해보면 재미가 있어서 같이 이야기할 맛이 났다. 나는 종종 그녀가 바느질 하는 방 한켠에 앉아서 이야기동무가 되곤 했다.
혼자손에 바느질하며 살림을 제대로 하기가 벅차서 그녀는 나름대로 간단히 살림하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
밥먹고 나서 바로 설거지할 형편이 되지 않으니 우선 숟가락을 맑은 물에 담거 놓는다. 그냥 내버려두면 밥풀이 말라붙을 테니까 생각해낸 방책이다. 그리고는 다음 끼니때에 그냥 흔들어서 건져 숟가락으로 밥을 먹는다.
가을이 되어 김장을 할 때면 그녀가 포기김치를 담그는 것을 못 보았다. 배추를 절인 다음 모두 잘라서 섞박지로 비벼 담근다. 포기김치를 담궜다간 나중에 머고 싶어도 못 먹을 것이다. 바빠 죽겠는데, 일일이 꺼내서 시뻘겋게 도마에 묻히면서 썰어야 할 테니까. 아무도 안 가르쳐줬지만 그녀는 지혜를 터득했다. 남편 없이 두 아이를 키우며 사는 어려움이 어디 그것 뿐이랴.
미숙이는 얼굴이 가무잡잠하고 눈이 작은 성깔 있는 여식아이다. 가수가 되겠다며 쉴새 없이 노래를 불러댔다. 목청이 허스키하면서 크게 울리는 게 탁월했다. 가수가 되겠다고 할 만 하다. 목소리만큼이나 성질이 거세어서 엄마에게 고분고분하지 않고 늘 힘들게 했다. 보드랍기 그지없는 엄마는 딸 때문에 속을 썩이며 살았다. 미숙이 동생인 아들은 양순해서 그나마도 위안이 됐다.
한 집에 여러 가구가 살았는데 긴긴 겨울밤 안집 할머니 안방에 모두 모여서 놀곤 했다. 돌아가면서 노래를 불렀는데 미숙이 엄마는 노래도 잘 불렀다. 모두가 내외가 짝을 지어 놀았고, 그녀만 홀로였다. 그녀는 가끔 우리 애아버지를 흠모하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그 때 우리 남편은 한참 때인 서른네살 이었고 모두 한 마디씩 하는 인물 좋은 남정네였다. 그런 사람과 부부를 이루어 사는 내가 몹시 부러운 듯 했다.
그러다가 미숙이네가 이사를 갔다. 바로 근처다. 우리 남편은 술을 좋아했다. 가끔씩 집에 오는 길에 미숙이네 집에 들르곤 했단다. 나는 한 참 후에 안 일이지만. 애 아버지가 가면 미숙이 엄마는 그 바쁜 중에도 꼭 막걸리를 대접했다고 한다.
나는 미숙이엄마의 마음을 알 것같다. 그렇게 함으로서 그녀는 행복했을 것이다. 소유할 수는 없지만 단지 아는 이웃으로서 술 한 잔 대접하고 마주 쳐다보고 웃으며 인사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마냥 즐거웠을 그 장면을 지금에 와서 그려보면, 그건 아름다운 정경으로 떠오른다.
젊은 엄마로서 얼마나 고독했을까. 남편 있는 사람이 얼마나 부러웠을까. 혼자인 것이 그 사람의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나중에 그 일을 알고 나는 좀 언짢았지만 그렇게 화를 내거나 나무라지는 않았다. 그녀는 충분히 그 정도의 행복을 맛보아도 되는 여인이다. 선도 알고, 아름다움을 아는 여인이었다.
미숙이 엄마는 친정에 의지해 살면서 크고 작은 일을 종종 오라버니가 해결해주고 힘이 돼주면서 살았다. 그러는 중에 올케한테서 눈치도 받고, 남편없는 설음을 톡톡히 받았던가보다. 가끔 올케한테 괄시받은 이야기를 나에게 했다. 가슴에 맺힌 게 많은 듯 했다. 오라버니는 살림이 살만 했고 그 동네에서는 유지이기도 했다. 그 부인인 올케는 당연히 떵떵거리면서 기펴고 살았다.
오라버니네가 집을 새로 잘 지었다. 커다랗고 멋들어진 기와집을 동네가 떠들석하게 지어 올렸다. 그리고 그 집에 이사를 들어갔다. 새 집에 들어간 첫 날밤에, 안방에서 자던 오라버니가 연탄가스를 마시고 숨을 거두었다. 올케가 과부가 되었다.
미숙이 엄마는 타고난 과부고, 올케는 영원한 유부녀일 줄 알았는데 이게 웬 일인가. 미숙이 엄마가 내게 말했다. “현혜 엄마, 우리 올케도 과부가 되네요”
나는 화들짝 놀랐다. 오라버니가 죽었는데....
2011년 ‘수필문학‘ 으로 등단 한국수필문학가협회, 남강문학회, 회원
진주여고 졸업, 보육교사교육원졸업, 신등중학교 교사, 도서출판 예지각 편집차장,
저서: 사의찬미
첫댓글 배건너 육거리 평상에 자주 나오던 길년이 엄마. 모시적삼이 은하수 별보다 더 하얗던.
시정이 넘치는 댓글이 올시다. 가슴이 서늘해지는...고맙습니다.
오늘 모처럼 남강문학회에 들어와서 미숙이 엄마를 읽어보니 참 재미있고 머리가 개운하고 참기름 냄새가 진동하면서 입맛이 돕니다.사진도 눈이 동그랗고 미숙이 엄마를 관찰하고 있는 듯 호기심이 폭발하는 눈빛이네요.하하하하
동근 선배님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양동근님... 남성미 넘치는 건강한 모습이 다가옵니다. 잘 지내시죠. 반갑고, 감칠맛 나는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