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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날자 : 2017년 11월 19일 (일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올 들어 가장 춥고 첫눈으로 싸락눈이 내렸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 영하 12도에서 영상 03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담터계곡 수도중앙교회수양관 앞(상노리)-삼율리 비포장 임도-차량통제 바리게이트에서 잠시 알바-북마넘이고개(530미터, 임도갈림길 이정표 지장산 1.8 Km, 고대산 6.4 Km, 철원 상노리)-나무계단-
안전로프-569 무명봉(벤취 쉼터1)-591 무명봉(벤취 쉼터1과 돌담초소)-바위우회-암릉우회-타이어 벙커봉-폐헬기장-돌담초소봉-628 돌담초소 무명봉-잘루맥이 고개 갈림삼거리 이정표(지장봉 190m,
고대산과 지장봉 종주코스 8.01 Km)-지장산 02.22 이정표(지장산 정상 0.18 Km, 하산로, 등산로 없음)-740 전망바위-761 폐헬기장-825 벙커-844미터 벙커-공터-지장산(지장봉, 877.2미터, 정상석 2개,
삼각점, 고롱이와 미롱이조형물, 이정표들)-안전로프 내리막 등로-이정목(위험1, 화인봉 0.5 Km, 지장봉 0.2 Km)-이정표(지장산 02.20, 정상 0.15 Km)-화인봉능선 이정표(고대산과 지장봉 종주능선
지장봉 290m, 제2등산로 옛길 등산로입구 석대암 140m)-이정표(지장산 02.19, 지장산정상 0.29 Km, 등산로 없음)-이정표(지장산 02.18, 지장산 정상 0.36 Km, 등산로 없음)-바위암릉(철로프와
안전발판)-이정표(지장산 02.17, 화인봉 0.13 Km와 삼형제암 2.44 Km, 지장산정상 0.47 Km, 계곡끝지점 0.97 Km)-석대암 갈림이정표(제2등산로 5분과 화인봉 0.1 Km, 제2등산로 25분과 지장봉 0.7 Km,
제2등산로 20분과 석대암 0.3 Km)-로프구간-암릉전망대-화인봉(806미터, 정상석, 이정목, 이정표들)-740미터 바위-벤취 쉼터1-고래바위-이정목(화인봉밑 1.8, 동마네미고개 0.6 Km, 화인봉 0.3 Km)-
이정표(지장산 02.15, 삼형제암 1.95 Km, 지장산 정상 0.96 Km)-696 바위전망대-동마네미 고개와 칫숲 갈림 이정표(지장산 02.14, 삼형제암 1.50 Km, 지장산 정상 1.41 Km, 칫숲 1.42 Km)-바위우회-
안전로프구간-이정표(지장산 02.13, 삼형제암 1.19 Km, 지장산 정상 1.72 Km)-바위암릉 구간 우측 우회-로프구간-618 바위전망대-로프바위구간-바위우회구간-이정표(지장산 02.12,
지장산 정상 1.94 Km, 등산로 없음)-668 무명바위봉-절터갈림 헬기장 이정표(지장산 02.11, 삼형제암 0.80 Km, 지장산 정상 2.11 Km, 절터 0.74 Km)-폐헬기장-북대(710.1 미터, 삼형제암 갈림삼거리)-
652 무명봉-624 무명안부-가치봉 갈림 삼거리 공터봉(656미터)-651 무명봉-621 바위무명봉-629 군삼각점봉(336FOB)-바위우회-536 무명봉-548 무명봉-545 무명봉-안전철봉과 로프구간-
다라미고개(비포장 임도, 군부대 경고판, 다라미고개 순직표지석)-헬기장-568 무명봉-577.9봉-무명안부-562 돌담초소봉-무명안부-620 고사목봉-직벽주의구간-무명안부-647 무명봉-612.2 암봉-
전망바위-바위암릉지대-567.4봉 삼각점(자작나무)-암릉 우회구간-519 바위 무명봉-516.9 삼각점봉-457 무명봉-461 돌담초소봉-436 교통호-군부대 안테나-군부대철조망-군부대 철조망 우회지대-
성재(군부대 앞 시멘트포장도로)-비포장 임도-헬기장-화생방종-바위우회지대-454 안테나봉-군부대장 경고판-성산 갈림삼거리 이정표(정상 0.2 Km와 제3등산로 1.9 Km, 제1등산로 4 Km와
제2등산로 2.8 Km)-성산성터-성산(520미터, 정상석, 이정표, 설명판)-전망대-성산 갈림삼거리 복귀-안전철봉과 로프구간-제인폭포와 토토봉 갈림삼거리 이정표(성산 1등산로입구 3.91 Km와
성산 2등산로입구 2.57 Km, 성산정상 0.24 Km, 토토봉 2.94 Km와 제인폭포 3.15 Km)-성산 숲길 안내판-424 참나무 무명봉-434 전망바위-전망대 가는길 안내판-성산숲길 안내판-439 공터
이정표(제1등산로 입구 3.3 Km와 제2등산로입구 2.1 Km, 정상 0.9 Km와 제3등산로입구 2.6 Km)-암봉 우회-숲의치유 힐링 안내판-낙엽등로-369 웅덩이봉-357 이정표(제1등산로입구 2.1 Km와
제2등산로입구 0.9 Km, 정상 2.1 Km와 제3등산로입구 3.8 Km)-오봉산(361.6미터, 삼각점봉)-249 굴뚝봉-널부러진 간벌목 등로-267 무명봉-자작나무 조림지-266 범바위-오봉산2봉(202미터)-
남베이고개(비포장 임도)-바위너덜지대-벙커와 화생방종-218 무명봉-수리봉(220미터, 삼각점봉 경기 182)-돌담 교통호-비포장 임도-127 참나무봉-비포장 임도-남봉고개(2차선 포장도로)-절개지-
무명묘지1-비포장 임도-148 잣나무 조림지-비포장 임도-헬기장-1차선 포장도로-포장도로 농로-3번 4차선 포장도로(연천읍 도로표지판)-통현2리(고포리) 버스 정류장-은대1리 및 양수장입구 버스정류장-
예비군 훈련장 버스정류장-은대4리(어수물) 버스정류장-바래마을 도로 표지판-은대육교(철로)-은대삼거리-귀빈식물원-은대3리 버스정류장-갈림사거리-372번 2차선 포장도로(군남 방향)-전곡성당-
은대근린공원-게이트볼장-2차선 포장도로(청화지물포)-사거리 도로-연천군보건의료원 정문-시멘트 포장도로-비포장 임도-연천 은대리성-삼형제바위-전망대-차탄천과 한탄강 합수점-지맥 산행종료-
전곡버스터미널까지 도보이동-산행종료
산행거리 : 미끄러운 낙엽과 얼어있는 등로를 따라 너무 추워 잘 쉬지도 못하고 꾸준하게 진행하여 27.59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보개지맥 산행 - 북마넘이고개에서 차탄천 합수점까지 23.49 Km
접속구간 - 담터계곡 수도중앙교회수양관 앞에서 북마넘이고개까지 04.10 Km 포함
차탄천 합수점 위 삼형제 바위 전망대에서 전곡버스터미널까지 01.61 Km는 제외
산행트랙 : 20171119 보개지맥 제2구간 담터계곡-합수점.gpx
산행시간 : 미끄러운 낙엽과 그 밑에 얼어있는 바위들과 간벌목들로 인해 조심하며 천천히 힘들게 진행하여 10시간 36분 (08시 19분 부터 18시 55분 까지)
교통편 : 애마와 대중교통 및 택시를 이용
- 갈 때 : 집에서 도봉산역 환승센터 주차장까지 애마 이용
도봉산역 앞 버스 정류장에서 3003번 광역버스로 관인버스터미널까지 이동
관인버스터미널에서 담터계곡 수도중앙교회수양관 앞까지 관인택시 이용(10,700.-)
담터계곡 수도중앙교회수양관에서 보개지맥 마루금인 북마넘이고개까지 도보로 이동
- 올 때 : 차탄천 합수점 위 삼형제 바위 전망대에서 전곡버스터미널까지 도보로 이동
전곡버스터미널에서 39번 버스로 소요산역까지 이동
소요산역에서 인천행 지하철로 도봉산역까지 이동
도봉산역 환승센타 주차장에서 집까지 애마로 이동
보개지맥이란 ???
보개지맥은 왕재지맥 소이산(362.3봉)에서 분기하여 남쪽으로 수정봉(498.8봉), 숙향봉(473.2봉), 금학산(947.3봉), 보개봉(752봉), 보개산(지장산, 877.4봉), 화인봉(805봉), 북대(710미터), 성산(520봉), 난봉고개, 전곡읍내를 거친뒤 차탄천이 한탄강과 만난는 지점에서 끝나는 도상거리 약37 Km의 산줄기이다.
이곳 보개지맥은 그동안 지맥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다가 최근에 새롭게 지맥 규정에 부합하여 정식 지맥 이름을 부여 받은 곳으로 한북정맥 상 지맥이 총 8개에서 12개로 늘어나게 되었다.
첫 눈이 쌓여 있는 미끄러운 낙엽 등로를 타고 너무나 추운 날씨에 어렵게 걸었지만 어둠속에 차탄천 합수점까지 무탈하게 마무리하고 돌아 온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오늘은 원래 강원도 산친구들과 함께 영월지맥 마지막 구간으로 해고개에서 각동리 남한강까지 진행을 하였어야 했지만 김장철이다 보니 다들 바빠 산행은 다음에 이어가기로 하니 갑자기 일요일 하루가 비어 버렸다.
이 산객도 토요일은 시골 사촌 형님의 칠순이 있어 점심에 잠시 들려 식사를 하고 와야하고 다음주 예정되어 있는 김장 준비를 하는 옆지기를 도와줘야 하기에 산행은 꿈도 꾸지 못하고 비워 놨는데 다음주에 시골로 내려가 김장을 하게되면 결국 영월지맥은 다음달 초나 되야 가능 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스친다.
그래서 생각한 산행지가 두 군데인데 한곳은 고향 근처에 한구간 남아 있는 봉수지맥이고 다른 한곳은 북쪽 철원과 포천 그리고 연천쪽의 보개지맥이었다.
봉수지맥으로 내려가면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탁배기 한잔 마시고 올라 올 수 있겠지만 보개지맥은 낮이 짧아지는 계절에 산행 길이도 길고 암릉과 낙엽이 많이 쌓여 있을 것 같아 차탄천 합수점이 있는 삼형제바위까지 잘 진행이나 가능할지 조금은 걱정과 불안감이 교차하는 지맥 마루금이다.
다만 갑자기 추워진 날씨로 인해 조금 더 높은 산줄기로 이뤄진 보개지맥에서 기대보다 더 멋진 조망과 풍경을 생각하며 남쪽보다는 북쪽을 선택하게 되었다.
진행하다 마무리하지 못하면 조금 남아 있는 거리는 제인폭포와 토토봉을 연계해 산행하면서 완주하면 될 것 같다는 계획으로 새벽 일찍 출발을 해 본다.
생각보다 많이 추워진 날씨에 도봉산역에서 6시 15분에 도착한 3003번 버스를 타고 생각보다 늦은 시간에 관인버스터미널에 도착을 해 너무나 어렵게 택시를 타고 2개월 전에 내려왔던 담터계곡 수도중앙교회연수원 앞에 내리니 아침 8시 20분을 넘어가고 있다.
한겨울 매서운 찬바람이 빰을 스치는 계곡 옆 비포장 임도에서 겨울 산행 준비를 하고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가니 임도에 남아 있던 물이 얼어 한겨울을 연상시키고 어렵게 마루금에 접속해 산행을 이어가니 지난 밤 많이는 아니지만 사래기 눈이 내렸는지 쌓여있는 낙엽 위를 하얗게 수놓고 있고 바위틈에도 어김없이 흰 눈이 쌓여 조심스런 산행을 이어가 본다.
그렇게 잠시 추위를 견디며 등줄기에 땀방울이 맺힐쯤 드디어 오늘 산행 중 가장 높은 지장산(지장봉)에 도착을 해 진행 방향인 남쪽을 살펴보니 바로 좌측 앞으로 화인봉이 뾰족하게 솟아 있고 우측으로 돌아가며 오늘 이 산객이 걸어야 할 산줄기가 너무나 장쾌한 보개지맥 마루금이 저 멀리 한탄강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풍경이 아름다워 잠시 더 머물며 많은 사진을 남겨 보는 시간은 불어오는 한겨울 찬바람도 그 열정을 막지 못했던 시간이었다.
다만 오랫동안 사용했던 카메라에 먼지가 들어갔는지 최근들어 자꾸만 선명한 사진을 담을 수 없어 그것이 아쉬움으로 남아 있던 지장산 정상에서의 조망과 풍경이었다.
어떻게 진행하면 오늘 하루 보개지맥 남아 있는 마루금을 모두 걸은 후 마무리를 할 수 있을지 고민을 하다가 결국 시간과 경제적인 면 두가지를 혼합해 진행하기로 하였는데 산행을 마무리하고 생각해 보니 그냥 애마를 몰아 담터계곡으로 들어가 주차시킨 후 산행을 마무리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했으면 조금 더 좋은 결과를 얻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 보는 시간이다.
새벽 4시에 일어 나 옆지기가 준비해 준 먹거리를 챙겨 집을 나서는 시간이 새벽 5시가 가까웠지만 여전히 밖은 어둠의 세상이다.
막히지 않은 도로를 따라 도봉산역 환승센타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나오니 이제 새벽 5시 50여분을 넘어가고 그곳 도봉산역 앞 중앙버스정류장에서 동송행 버스를 기다리는데 어찌나 춥던지 양쪽 볼이 붉게 얼어 버린다.
처음 대중교통을 확인하면서 3003번 출발 차고지인 수유역에서 새벽 6시 출발이 첫차인데 이곳 도봉산역 앞 버스정류장에서 6시에 출발한다고 잘못 이해를 해 결국 25분 동안 개 떨듯 추위에 떨며 힘들게 버스에 오르는 시간이다.
오늘 서울 기온이 영하 3도 정도라고 해 그 정도 추위에 이렇게 떨고 있나 생각을 했지만 체감 온도는 그보다 훨씬 더 춥다고 느껴졌던 시간이다.
도봉산역 앞 버스정류장에 새벽 6시 15분에 도착한 3003번 동송행 버스에 오르니 얼었던 몸이 풀리면서 조금은 좋아졌지만 여전히 한기가 돌며 추위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부족한 잠을 보충하려고 눈을 감아 보지만 중간 버스터미널인 관인에서 내려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인지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어 눈만 감아 본다.
그렇게 잠시 선잠을 자다 깨다를 반복하고 드디어 관인 직전 터미널인 운천에 도착을 해 관인택시에 전화를 할까 하다가 이미 일출도 끝나고 아침 7시 30여분을 넘기고 있어 당연히 택시기사가 준비하고 있을 거라 예상을 했는데 관인에 도착을 하니 택시도 택시 기사도 보이지 않아 사무실에서 모바일 폰으로 전화를 하니 이제서야 일어 난 목소리로 세수하고 나가면 20 - 30여분 걸리겠다는 소식에 난감하기만 하다.
일찍 전화를 하였으면 좋았을 것을 이제 와 후회해도 어쩔 수 없어 택시 기사가 출근해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다.
자신을 책망하며 이곳 관인에 달랑 한대 뿐인 택시이기에 다른 방법이 없어 한동안 기다리니 드디어 아침 8시 10여분에 택시가 도착을 해 유리창에 껴 있는 성애도 닦지 못하고 곧바로 담터계곡으로 향한다.
산행 들머리인 담터계곡으로 가면서 택시 내 온도계를 보니 외부 기온이 영하 10도를 가리키고 있어 깜짝 놀라 기사에게 물어보니 어제부터 추워지기 시작해 지금 외부 온도가 이 정도는 될 것 같다고 말한다.
생각보다 추운 철원 날씨와 기온에 놀라면서 찬바람이 휭하니 불어 오는 담터계곡에서 홀로 산행 준비를 하는 자신이 참으로 가엽게 느껴지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무엇이 좋아 이 추운 날씨에 홀로 외딴 담터계곡에 남아 한기를 느끼며 산행 준비를 하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시간이기도 하였다.
드디어 지난 9월 8일 첫구간을 무탈하게 마무리하고 북마넘이고개에서 비포장 임도를 따라 내려 왔던 담터계곡 수도중앙교회수련원 앞에 내려 주위를 살펴보며 사진 몇장 남겨 본다.
2개월 전 만해도 무더위에 많은 땀을 흘리며 어렵게 내려온 담터계곡인데 이제는 찬바람만 휭하니 불고 도로 위 물들은 모두 꽁꽁 얼어 붙은 한겨울이 되어서야 다시 찾은 감회가 새롭기만 하다.
한여름에는 더위를 피해 많은 사람들이 찾았을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상노리에 위치한 담터계곡는 초입부터 절경을 이루는데 용정산 남쪽 기슭에 자리한 먹바위와 신포동을 지나서 만나는 수직 절벽 불상암(높이 약100미터)은 담터 절경이라 할 만하다.
담터는 산짐승을 사냥해서 잡아먹고 나서 버린 뼈가 담을 쌓을 정도였다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강원도 철원군과 경기도 포천시의 경계에 있으면서 고대산(832미터)까지 7 Km 이어진 깊은 계곡이며 이 계곡의 특징은 암반을 따라 계곡물이 흐르기 때문에 우기에도 흙탕물이 일지 않는다.
한여름에도 울창한 나무와 맑은 물로 한기가 느껴지며 여러 곳에 너비 50여미터의 담이 있어 야영하기 적당하며 야영장도 조성되어 있어 여름철과 가을철에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으며 또 가을이면 계곡을 물들인 단풍 또한 이 곳의 숨겨진 볼거리이다.
입구에서 2 Km 정도 들어가면 100미터 정도 높이의 절벽 위에 부챗살 모양의 불상암(부채바위)이 나오고 주변에 고석정과 도피안사 및 삼부연폭포 등 관광명소가 많다.
잠시 산행 준비 후 계곡 위에 보이는 다리를 건너 곧바로 오늘 산행을 시작하는 시간이 8시 20여분을 넘기고 있다.
말라있는 담터계곡 위에 놓여있는 다리를 건너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하니 임도 우측 저 멀리 담터계곡 끝자락으로 잘록한 안부가 보이는데 바로 금학산과 고대산을 이어주는 대소라치 안부이다.
처음에는 그곳이 북마넘이고개가 아닐까 생각을 했는데 북마넘이고개는 대소라치 안부에서 남쪽으로 한참을 더 내려 온 곳으로 지금은 좌측 산줄기에 가려 보이지 않는 고갯마루이다.
그렇게 빠른 속도로 오르니 온 몸에서 약간의 열기가 올라오고 추위가 사그라 들었지만 불어 오는 찬바람이 얼굴을 때리며 귓볼과 양볼을 얼리고 있다.
다시 두꺼운 겨울용 장갑을 꺼내 끼고 조금 더 걸어 올라 임도 우측을 살펴보니 지난 구간 어렵게 내려 온 보개지맥 마루금이 방근 전 떠 오른 아침 햇살을 받아 너무나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사진 몇장 더 남겨 본다.
2개월 전 내려왔던 임도이고 특별할 것이 없기에 빠르게 걸어 오르니 내려올 때 물 웅덩이에서 뛰어 놀던 개구리는 모두 사라지고 그 물 웅덩이들도 단단한 얼음조각으로 변해있어 이 산객이 들어가 제자리 뜀박질을 해도 꿈적하지 않는다.
지난 2개월 전 내려오며 임도를 잃고 계곡에서 약간 어렵게 알바를 하며 내려 왔기에 주의를 하며 오르니 지난 번 보지 못했던 차량 출입제한 용 바리게이트가 보이고 그곳부터는 다시 비포장 임도가 시멘트 포장도로로 변하고 있어 사진 한장 남기고 콧노래까지 부르며 바리게이트 쇠줄을 넘어 올라 가 본다.
오르다 뒤돌아 보니 저 멀리 금학산과 대소라치가 화사한 햇살을 받아 더욱 강렬하게 다가오고 있어 다시 굽은 손가락을 호호 불며 사진 몇장 더 남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시멘트 포장도로가 다시 비포장 임도로 바뀌고 지독했던 칡넝쿨도 한풀 꺽여 힘 한번 쓰지 못하는 좁은 등로를 타고 빠르게 오르다 주위를 살펴보니 아직도 생소한 등로가 보여 트랙을 확인해 보니 바리게이트가 쳐져 있는 곳에서 약 250여미터를 알바하며 올라 와 있다.
제대로 된 산행도 하기도 전에 접속구간에서 알바 후 자책하며 다시 뒤돌아 내려가 바리게이트 주위를 살펴보니 그 바리게이트 오르기 직전 우측으로 또 다른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는데 그 임도를 따라 들어가면 여름철 장마가 졌을 때 계곡물이 넘치며 휩쓸려 간 장소를 지나 등로는 소로로 변하고 있다.
조심하며 그 소로를 타고 걸어 오르며 주위 풍경을 살펴보니 드디어 지난 구간 내려오며 왜 알바를 했는지 알 것 같은 계곡이 보이기 시작한다.
큰 한숨을 내쉬고 그 소로를 타고 빠르게 오르니 등로는 점점 더 넓어져 다시 비포장 임도가 되었는데 이제서야 2개월 전 내려오며 봤던 풍경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잠시 후 여유를 되찾아 걸어 오르니 임도 우측 앞 저 멀리 올라야 할 북마넘이고개로 향하는 절개지가 보이기 시작하고 그 좌측으로 가파르게 오르며 이어지는 보개지맥 제2구간 마루금도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다시 임도 양 옆으로 웃자랐던 잡목들과 잡풀들이 죽으면서 조금은 넓어진 임도를 타고 빠르게 걸어 오르니 임도 우측 앞으로 진행해야 할 보개지맥 제2구간 산줄기가 환히 올려다 보이고 잠시 후 임도가 우측으로 휘어지는 곳 좌측으로 지독했던 칡넝쿨 속에서 멧선생을 만났던 곳을 지나는데 아직도 뒷덜미가 뻣뻣해져 옴을 느끼는 시간이다.
그렇게 지난 구간 하산을 하면서 겪었던 추억을 떠 올리며 걸어 오르니 경사도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임도 좌측으로는 절개된 바위벽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임도 우측으로는 여전히 금학산을 조망하며 오르니 드디어 임도갈림길이라는 이정표와 전봇대 벙커가 보이는 북마넘이고개에 도착을 해 주위 풍경을 사진에 담아 본다.
지난 구간 내려 온 우측의 전봇대 벙커 뒤를 살펴보니 이제 그곳도 깊게 쌓여 있는 낙엽들로 인해 진행에 여간 어렵지 않아 보인다.
몇장의 사진을 더 남기고 고개 넘어 좌측으로 보이는 나무계단을 타고 본격적인 보개지맥 마지막 제2구간 산행을 시작해 보는 시간이 아침 9시 20여분을 지나고 있다.
북마네미 고개는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 내산리 삼각동에서 포천군 관인면 삼율리의 담터로 넘어가는 큰 고개로서 옛날에 이 고개로 말이 넘어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나 마라는 글자는 으뜸과 높음의 뜻으로 쓰였던 고어의 음운 변천으로 말이 되어 넘는다는 뜻의 네미와 합쳐져 북쪽에 있는 높은 산마루를 넘는다는 뜻의 북말네미에서 북마네미가 된 것이다.
담터계곡에서부터 약 1시간 정도를 걸어 알바 포함 4.1 Km를 올라온 시간이다.
잠시 나무계단을 타고 천천히 오르니 계곡보다 더 강한 찬바람이 불어 와 온 몸이 얼어 붙는 느낌이다.
모자까지 챙겨 쓰고 조금 더 오르니 계단 우측 저 멀리 내산리마을과 그 마을 뒷쪽으로 장쾌하게 솟아 있는 산군들이 보여 잠시 사진 몇장 더 남기고 출발한다.
내산리는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에 있는 리로서 본래 철원도호부의 외서면 지역이며 험준한 보개산의 안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내산리라 하였으나 1895년 외서면이 신서면으로 개칭되면서 신서면으로 편입되었다.
내산리는 지장봉을 비롯한 고봉으로 둘러싸인 마을이고 본래 철원도호부의 외서면 지역으로 험준한 보개산의 안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내산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도리들(도리평, 도리동), 목목골(목목동), 신틀거리(진기동), 윗신틀거리, 대소라치(대송정), 삼각동, 초막 등이 있는데 도리들은 고대산에서 발원하여 이 마을 앞을 지나 내산리 중앙을 관통하는 아미천이 마을을 크게 돌아서 흐른다고 해서 유래된 지명이고 목목골은, 예전에 어떤 사람이 이곳의 조상 묘를 찾을 적에 관 안에서 흰 새가 목목 목목하며 날아갔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내산리 뒷쪽의 산들은 제법 높고 그 산세도 넓어 멋진 이름 하나 있을 줄 알았는데 집에 돌아 와 확인해 보니 걸맞는 산 이름이 보이지 않고 다만 그 산줄기 뒤로 흐르는 고대산과 고대산 줄기가 지난날의 추억을 들려주고 있다.
고대산과 내산리마을을 살펴보고 나무계단을 올라 끝자락에서 능선으로 오르니 가파른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그곳에는 굵은 로프가 설치되어 있어 그 로프에 의지해 올라 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너무나 깊게 쌓여 있는 활엽수 낙엽들이 미끄러지기 시작하고 그 낙엽 위에는 지난 밤 살짝 내린 첫눈인 싸래기 눈이 덮혀있어 더욱 진행에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어렵게 주능선에 오르니 여전히 낙엽이 깊게 쌓여있고 바람이 불 때마다 날려 또 다른 볼거리와 함께 진행의 변수로 작용을 하고 있다.
벤취 쉼터 하나가 설치된 곳을 지나니 돌로 만든 초소와 벤취 쉼터 하나가 더 나타나고 잠시 후 거대한 바위를 우회하며 통과하니 등로 위 낙엽과 바위에는 하얀 눈이 살짝 흩뿌린 형태로 쌓여 있다.
조심하며 또 다른 바위를 넘어 진행을 하니 타이어로 쌓아 올린 콘크리트 벙커가 보이고 그 벙커 앞을 통과하며 사진 한장 담아 본다.
벙커봉을 지나 낙엽 떨어진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등로 속에는 돌들이 모여 진행을 상당히 어렵게 만들고 있는데 그 낙엽 위에 눈까지 보여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잠시 더 가파르게 오르니전망바위가 나타나고 그곳으로 올라 잠시 뒤돌아 보니 지난 구간 어렵게 넘었던 숙향봉이 우측에 금학산과 좌측에 고대산을 두고 그 가운데 대소라치 넘어로 보이고 있다.
등로 좌측인 동쪽으로는 조만간 다시 올라야 할 대득지맥 넘어 저 멀리 한북정맥의 대성산에서 내려 온 마루금이 복계산과 복주산 지나 광덕산으로 이어지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등로 우측 바로 발 아래로는 산내리 마을이 아름답게 내려다 보이는데 그곳으로는 들려 본 기억이 없기에 주믕로 당겨 사진 한장 남긴다.
그렇게 주위 풍경들을 살펴보고 조금 더 걸어 진행을 하니 잡목과 잡풀들이 자라고 있는 헬기장이 보이고 그 헬기장 넘어 올라야 할 보개산 일명 지장산 또는 지장봉이란 정상석이 서 있는 봉우리가 빤히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폐헬기장에서도 주위를 둘러보고 다시 진행을 하니 커다란 참나무 한그루와 교통호가 보이는 곳 한쪽에 돌로 쌓은 흔적이 있는 825미터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다시 이어지는 등로를 타고 걸어 오르니 또 다른 844미터의 돌로 쌓은 초소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살펴보니 직진의 등로도 보인다.
사진 한장 남기고 내려오니 지장봉까지 190미터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보이는데 고대산과 지장산 종주코스 8.01 Km라는 방향 표지판은 떨어져 등로에 나뒹굴고 있다.
잠시 후 또 다른 이정표를 만나는데 그곳에는 지장산 정상까지 180미터가 남아 있다는 표시가 표여 헷깔리게 만들고 있다.
이곳이 잘루맥이 고개 갈림길로서 잘루맥이 고개는 화인봉과 관인봉 산줄기 사이에 있어 남북으로 길을 연결하는 고개이며 환희봉 좌측 담터계곡 방향으로 내려가 만나는 안부가 바로 잘루맥이 고개이다.
그 이정표를 지나 바위를 타고 어렵게 오르니 그 바위 위에도 하얀 싸락눈들이 보이고 잠시 후 멋진 전망바위에서 뒤돌아 보니 지난 구간 넘었던 고대산과 금학산 그리고 그 한가운데 대소라치 넘어 숙향봉이 조그만 모습으로 보이면서 지난 추억을 들려 준다.
등로 좌측인 동쪽으로는 담터계곡 넘어 남쪽으로 흐르는 무명능선 지나 철원평야가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희미하게 한북정맥 대성산에서 우측으로 광덕산 지나 국망봉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 한북정맥 마루금 앞으로는 각흘봉이 보이고 그 각흘봉을 중심으로 우측인 남쪽으로는 명성산 지나 흐르는 명성지맥이 그리고 좌측인 북쪽으로는 조만간 다시 들려 걸어가야 할 대득지맥 마루금도 희미하게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은 대득지맥이지만 올라야 할 남녘의 마루금들도 많기에 앞으로 시간되면 천천히 올라볼 예정이다.
그렇게 조망을 즐기고 하얀 눈이 쌓여 있는 바위를 지나 오르니 저 멀리 지장봉이 올려다 보이는 잡목 능선이 나타나고 그 앞으로 좁은 공터가 보이는데 그곳으로 올라 이제는 등로 우측을 살펴보니 바로 발 아래 펼쳐진 신내리마을 지나 연천의 나즈막한 산들이 보이는데 그 뒤로 박무속에 긴가민가 헷깔리지만 뚜렷한 산줄기를 남북으로 그으며 내달리는 왕재지맥 마루금이 눈에 들어 온다.
지난 달 마무리를 한 왕재지맥이기에 더욱 애틋한 마음으로 조금 더 찾아 보지만 이것이 오늘 이 산객에게 줄 수 있는 최대치의 시야이기에 이것으로 만족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기고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등로를 타고 오르니 폐 타이어 하나가 박혀 있는 무명봉인지 헬기장에 도착을 하고 사진 한장 남기며 오르니 제법 넓은 정상에 정상석 2개와 고롱이와 미롱이 상 그리고 많은 이정표와 안내판들이 보이는 지장산 정상에 도착을 한다.
지장봉(877.4미터)은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에 위치한 산으로 해발고도는 877.2미터이며 신서면과 포천시 관인면의 경계를 이룬다.
지장봉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보개산으로 기록되어 있고 그 위치는 연천현 동북쪽 20리의 철원 경계부로 되어 있고 또한 보개산고성이 동북쪽으로 15리에 있으며 둘레는 4리이고 그 가운데에 우물이 3개 있다고 기록하였다.
여지도서의 기록에는 보개산이 철원에서 서남쪽으로 17리 지점이며 이로부터 맥이 서쪽으로 달려 불견산으로 이어진다고 되어 있으며 연천읍지에는 거리가 30리 지점이며 이 산의 찬취암에 오르면 철원을 조망할 수 있다고 한다.
여지도에는 상기한 위치 정보에 부합하게 표기되었지만 해동지도에서는 연천현의 남동부에 영평과의 경계부로 표기되어 있다.
산의 남사면 골짜기에는 지장암이 있으며 지장골이라는 마을도 자리하고 있다.
조선지지자료에는 보개산과 지장봉이 병기되어 있으며 높이는 877.2미터이고 연천군과 철원군의 경계로 기록하였다.
신서면 내산리와 포천군 관인면 중리의 경계에 있는 연천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높이 877.2미터)로 예전에는 환희봉과 석대봉이라고도 부르며 이 산에 지장암이라는 큰 절이 있었다 하여 지장봉이라 하나 현재는 지장암에 관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보개지맥 중 가장 높은 산으로 이름도 보개산이라 보개지맥인데 정작 정상은 그 이름을 다른 이름에 빼앗기고 있으니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 이름이다.
지장산 정상 남쪽 방향으로는 고롱이와 미롱이 조형물이 있는데 현재는 고롱이는 사라지고 미롱이 혼자 정상을 지키고 있다.
연천군을 상징하는 캐릭터 고롱이는 고대와 석기 등을 상징하는 고를 의미하며 미롱이는 미래 발전 등을 상징하는 미자를 뜻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하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이곳 지장산 정상은 또한 보개산으로도 불려지고 있는데 보개산(환희봉, 877.4미터)은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과 포천군 관인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877.4미터이며 최고봉인 지장봉이 마치 승려의 머리같이 생긴 바윗덩이를 이고 있기 때문에 생긴 명칭으로 추정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현 동북쪽 20리 철원 경계에 있다는 기록이 있고 최고봉인 지장봉과 화인봉, 북대, 삼형제암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을 이어주는 주능선은 기복이 심하다.
동쪽 산줄기에는 무너진 석축이 있는데 태봉의 왕 궁예가 부하 왕건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은거했다는 보개산성(일명 궁예성)의 유적이며 보개산성 주변에는 대전지와 지장계곡 등이 있다.
이곳 이름을 보개산으로 보고 이곳 산줄기 이름을 보개지맥이라 지은 듯 보이는데 정작 그 이름은 지자체들에 의해 지장봉과 지장산으로 바뀌어 있으니 산줄기를 이어 타는 사람중 한사람으로서 마음이 편치 않았던 시간이다.
정상석과 정상에 있는 조형물들 그리고 안내판을 살펴 본 후 본격적인 조망과 풍경을 즐겨 보는 시간이다.
먼저 남쪽을 살펴보니 좌측으로 화인봉이 여자의 유두처럼 봉긋 솟아 있고 그 뒤 우측으로 길게 이어지며 제법 옹골찬 산줄기를 만들고 있는 보개지맥 마루금이 서쪽으로 휘어지며 달려가고 있다.
우측 끝자락에 솟아 있는 성산까지가 한계로서 그 뒤로 비산비야를 달려 차탄천이 한탄강에 만나는 은대리성 부근은 이제 직접 두발로 걸어 확인해야 될 일만 남아 있는 듯 하다.
그 보개지맥 마루금 뒤로는 오래 전 환종주로 걸었던 향로봉과 종자산이 솟아 있지만 명성지맥 상 보장산은 앞의 산줄기에 막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좌측으로 불무산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 오고 중앙 뒷쪽으로 개미산과 종현산이 보이는데 소요산은 종현산과 중첩되듯 다가온다.
우측 뒤를 살펴보니 한장의 사진으로는 모두 담을 수 없었지만 감악지맥의 감악산과 마차산도 각기 다른 봉우리를 하늘 높이 치솟구쳐 존재감을 알려오고 있다.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이기에 한동안 머물며 그 이름 하나 하나를 다시 불러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우측 저 멀리 성산을 지나면 3번 4차선 포장도로를 만나는데 그 포장도로 우측의 연천읍 방향으로 보이는 아파트 촌들까지 아스라히 보이고 있어 이제부터 걸어 진행을 해야 될 등로가 결코 짧지 않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렇게 남쪽 조망을 즐긴 후 남동쪽으로 가니 바로 앞에 추락주의라는 입간판 하나가 서 있고 그곳 방향을 살펴보니 명성지맥 상 불무산과 관음산 줄기가 희미하게 눈에 들어 오며 그 옛날 맺었던 소중한 인연을 이야기 해 준다.
동쪽으로는 여전히 한북정맥 마루금이 흐르고 저 멀리 대성산과 그 앞으로 철원평야까지 거침이 없다.
이 아름다운 풍경을 두고 떠나기 아쉬워 조금 더 머물다 가야 할 거리가 만만치 않아 서둘러 내려가니 가파른 내리막 등로에는 굵은 로프가 설치되어 있고 그 위에 하얀 서리가 내려앉아 많은 주의가 필요해 보인다.
조심하며 한동안 내려가니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 교통호에 도착을 하고 그 교통호를 따라 우측으로 걸어가 등로 우측을 살펴보니 방금 전 우회하며 걸어 내려 온 보개산 정상부의 거대한 암벽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어 위압감이 대단하다.
잠시 후 안부에 설치된 이정목을 보니 화인봉까지 500미터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가 반갑고 UFO인지 권총을 닮아 있는 바위를 지나 다시 한번 전망바위를 만나 등로 좌측으로 철원평야와 대성산에서 내려 온 한북정맥 마루금을 살펴 본다.
약간의 잡목 사이로 걸어 올라야 할 화인봉을 살펴보고 가파른 등로를 타고 조심하며 내려가니 화인봉능선이라는 이정표가 서 있는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등로에도 지난 밤 내린 약간의 싸락눈으로 인해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각 지점마다 겹치는 지자체에서 각기 다른 내용으로 이정표를 설치를 해 놔 헷깔릴 뿐 아니라 설치 비용의 낭비도 심한듯 하며 특히나 각기 다른 거리 표시를 해 놔 등산객들에게 혼선을 주고 있어 전시행정의 표본처럼 보인다.
심지어 어느 지자체에서는 그 짧은 거리에 각기 다른 세개의 이정표를 설치해 놔 그 이정표 때문에 산행이 더욱 혼란스럽기만 하다.
이정표가 서 있는 안부를 지나니 진행 방향의 암벽에는 안전발판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어 안전을 확보해 줬지만 눈이 내리는 날에는 주의가 필요해 보인다.
조심하며 그 쇠로 만든 안전 발판을 잡고 밟으며 오르는데 얼었는지 상당히 미끄러워 주의가 필요해 보인다.
어렵게 그 암벽을 올라 굵은 로프를 잡으며 조심해 진행하니 다시 지나온 방향으로 조망이 터지기 시작하여 진행하던 발걸음 멈추고 방금 전 올랐다 내려 온 보개산 정상부를 확인하며 이별 인사를 건네 본다.
다시 눈 앞에 펼쳐진 거대한 바위벽을 살펴보며 약간 쌓여 있는 눈을 피해 조심하며 그 바위벽을 타고 올라 보는 시간이다.
잠시 더 오르니 바위벽 끝자락에 죽어 있는 고사목 한그루가 세월의 무심함을 알려주고 있어 사진에 담고 올라 본다.
이제 보개산 우측 잡목 사이로는 멀어진 금학산 정상부가 다시 보이기 시작하고 그 산줄기를 타고 우측 아래인 남쪽으로 내려가면 저 멀리 황금빛 철원평야와 그 뒤를 감싸듯 둘러쳐진 대성산에서 부터 우측으로 흐르는 한북정맥 마루금이 여전히 이 산객의 발걸음을 붙잡고 놔 주질 않는다.
추워서 그런지 생각보다 멋진 풍경과 조망에 갈 길이 멀지만 자꾸만 발걸음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조망을 즐기며 천천히 조심하며 급경사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금새 정상석과 많은 안내판들 그리고 이정표가 서 있는 805미터의 화인봉 정상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기는데 얼마나 춥던지 얼굴은 붉게 얼어 버린듯 보인다.
화인봉(805미터)은 임금이 싸우다 피난으로 이산에 와 있는 동안 바위에 이름을 새겨놓은 것을 보고 화인봉이라 하였는데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에 위치한 산으로 해발고도는 805미터이며 신서면과 포천시 관인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화인봉은 지장봉의 남쪽에 있으며 지장봉의 산줄기와 연결되며 조선지지자료에는 보개산의 한 봉우리로서 화인봉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높이는 805미터인데 화인봉은 근대에 들어 지명이 변경된 것으로 짐작된다.
자료에서 알 수 있듯 이곳 화인봉 역시 전체적인 보개산의 한봉우리서 존재하던 것이 최근에 지자체에 의해 그 이름이 변경된 듯 하여 많은 아쉬움이 남는 정상이다.
진행하면서 살펴보니 군부대에 막혀서 그런지 성산 방향으로의 이정표는 전혀 보이지 않고 단지 삼형제암으로의 거리 표시와 방향을 표기한 이정표가 대부분이라 이 부분도 아쉬움이 남는다.
잠시 화인봉 정상에서 몇 장의 사진을 더 남기고 능선을 타고 걸어 진행을 하니 잡목 가지 사이로 진행 방향의 보개지맥 산줄기와 그 뒤로 향로봉과 종자산 그리고 명성지맥 산줄기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곳 해발고도가 낮아져서 그런지 보개산 정상에서 봤던 모습과는 같으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조금 부족하다는 느낌으로 살펴보는 시간이다.
화인봉에서도 많은 시간 조망을 즐기고 이제 천천히 조심하며 내려가니 낙엽 등로가 이어지고 잠시 후 기묘한 바위를 만나 살펴본다.
처음에는 UFO처럼 보였는데 그 바위를 지나 뒤돌아 보니 켭켭히 쌓아 올린 평범한 바위군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바위를 지나 내려가니 공터에 벤취 쉼터 하나가 보이는데 그 벤취 옆 나뭇가지에 분홍색 바구니가 달려 있어 살펴보니 쓰레기만 한가득이라 실망만 하고 누가 이런짓을 하고 있는지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 벤취 쉼터가 있는 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니 커다란 바위 앞에 힘겹게 살아가는 소나무 한그루가 보이는데 커다란 바위는 마치 고래처럼 보이기도 한다.
고래 바위로 올라 진행하니 동마네미고개까지 600미터 남아 있다는 이정목을 만나고 잠시 바스락 거리는 낙엽이 깊게 쌓여 있는 평이한 등로도 따라 걸어 본다.
이 산객이 지나면서 가벼워진 낙엽은 강하게 불어 오는 한겨울 찬바람이 날리며 마치 지금 나뭇가지에서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듯 흩날리고 있어 장관을 이룬다.
삼형제암까지 1.95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다시 만나 통과하니 커다란 전망바위가 나타나고 그곳으로 올라 진행 방향과 그 좌측으로 지장계곡과 종자산 그리고 종자산과 불무산을 살펴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오래 전 옛 산친구들과 여름철 이곳으로 들어 피서를 즐겼던 곳이기에 찾아보니 지장계곡(큰골계곡, 지장산계곡)은 경기도 포천시 관인면 중리에 위치한 계곡으로 지장계곡의 다른 이름은 큰골계곡 또는 지장산 계곡으로 보개산의 중심 봉우리인 지장봉(환희봉)에서 유래되었다.
지장봉은 과거 지장보살이 체현하였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고 또 다른 별칭인 지장 냉골은 일 년 내내 얼음처럼 차가운 물이 흐르는 곳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지장계곡은 포천시 관인면의 보개산 향로봉과 관인봉 사이에 위치한 계곡으로 계곡 곳곳에 작은 폭포와 연못이 어우러져 있어 피서객들이 많이 찾는다.
경기고 포천시 창수면 오가리에서 국도 87번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한탄강을 지나게 되는데 좌측으로 종자산을 바라보며 계속 북진하다 보면 중리지가 나온다.
이곳에서 좌회전하여 저수지를 끼고 올라가면 바로 지장계곡의 매표소가 보이고 계곡을 따라 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이 닦여 있어 피서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으며 계곡 안에는 옛날 궁예가 세웠다는 전설이 있는 보가산성지가 남아 있다.
그러고 보니 이곳 연천과 포천쪽은 궁예와 관련된 전설과 장소가 참으로 많은 곳이기도 하다.
조심하며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따라 내려가는데 수북하게 쌓여 있는 낙엽 밑으로는 미끄러운 바위면이 보이고 또한 낙엽 위에는 서리와 눈이 살짝 내려 않아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갈 길이 멀어 빠른 발걸음을 하고 싶어도 빠르게 진행을 할 수 없으니 오늘 중 삼형제바위까지 진행이나 가능할지 벌써부터 고민이 되지만 등로가 따라 주지 않으니 급하게 서두를 수도 없는 현실이다.
그래도 그렇게 내려가며 등로 좌측 뒤를 보니 방금 전 올랐다 내려 온 화인봉이 저 멀리 멀어지며 제법 뾰족한 송곳을 연상시키며 이별의 인사를 하고 있다.
그 화인봉 우측 저 멀리에는 이제 머리만 내밀고 있는 금학산이 확실하게 멀어지며 보이지 않는 손을 흔들어 다음을 기약하고 있는 아쉬운 시간이기도 하다.
거대한 바위들이 제멋대로 쌓여 있는 듯한 바위봉을 조심하며 내려가니 다시 평이한 낙엽 등로가 나타나는데 그 낙엽 사이로 커다란 바위들이 듬성듬성 박혀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앞으로 진행 방향으로 거대한 봉우리가 잡목 사이로 나타나고 잠시 후 다시 내려가 평이한 안부를 통과도 해 본다.
안부를 지나 조금 더 걸어 진행하니 더 깊은 안부가 내력=다 보이고 그곳에는 이정표 하나가 서 있는데 살펴보니 등로 좌측으로 칫숲가는 갈림삼거리 이정표이다.
칫숲은 잣나무 숲을 의미하는 듯 보이는데 왜 칫숲인지 찾아 봐도 그 의미를 알 수 없어 아쉽기만 하다.
내려갔으나 다시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거대한 바위 틈에서 겨우 목숨만 연명하며 살아가는 소나무 한그루가 눈에 들어 와 사진으로 담아 보지만 사진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 바위를 우회해 진행하니 다시 굵은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가파른 내리막 등로가 보이고 미끄럽기에 주의하며 천천히 안전하게 내려가 본다.
안부에서 이정표를 만나 살펴보고 다시 눈 앞에 나타난 거대한 바위는 좌측 사면 우회 등로를 통해 낙엽 등로를 타고 조심스럽게 걸어 진행을 한다.
잠시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는 다시 가파른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 바위 틈으로 굵은 로프가 설치되어 있어 그 로프를 잡고 올라 본다.
하나를 오르면 또 다른 로프가 나타나는 그런 등로를 따르니 등로 좌측으로 코가 메부리코처럼 생긴 바위가 보여 혼자 웃어 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다시 어렵게 오르니 전망바위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지나 온 보개산 방향을 살펴보니 따스한 햇살을 받은 보개산이 참으로 아름답게 다가오는 시간이다.
바위 전망대를 지나 내려가니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는 안부를 통과하고 다시 이어지는 바위 암릉 오르막 등로를 오르는데 쌓여있던 낙엽들이 솟아지며 진행에 상당한 어려움을 안겨주고 있다.
다시 나타나는 바위 로프를 잡고 오르니 바위봉을 지나 등로는 또 다시 내려간다.
오르면 내려가고 내려가면 오르기를 반복하는 산행이지만 오늘은 유난히 그런 빨래판 능선이 너무 자주 나타나기에 진이 다 빠져 나가는 기분이다.
특히나 수북히 쌓여 있는 낙엽으로 인해 속도는 나지 않는데 갈 길은 아직 구만리이니 조금은 걱정이 앞서는 시간이다.
이정표가 서 있는 안부를 지나 나타나는 낙엽 등로를 따라 조금은 편안하게 빠른 속도롤 걸어 본다.
안부로 내려갔으니 다시 오르고 낙엽을 조심하며 진행하니 가는 고사목과 가지들이 많은 잡목이 정상을 지키는 665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잡목 옆 바위에 올라 보지만 잡목들에 가려 보이는 것이 없기에 다시 내려 와 진행을 하니 보도블럭들이 잘 깔려 있는 헬기장이 나타나고 그 옆에는 이정표도 보이는데 살펴보니 등로 좌측으로 절터 갈림삼거리 이정표이다.
어느 절터를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그 이름까지 적어 놨으면 좋았겠다 생각하며 진행 방향을 보니 이제 삼형제암까지의 거리는 800미터로서 많이 좁혀졌다는 느낌이다.
헬기장을 지나 오랫만에 부드러운 낙엽 등로를 타고 부스럭 거리는 낙엽 밟는 소리를 들으며 걸어가는 시간도 나쁘지는 않다.
바람이 불어 와 어느곳은 발목까지 덮지만 또 어느곳은 무릎까지 덮어 오는 낙엽을 헤치며 걸어 진행을 하니 잡목과 잡풀들이 자라났다 말라 죽은 묵은 헬기장도 통과한다.
그 헬기장을 지나니 등로는 직진의 능선을 버리고 좌측 사면 등로로 이어지고 있어 지도와 트랙을 확인해 보니 능선이 바로 북대로서 이곳이 좌측으로 삼형제암으로 갈 수 있는 갈림삼거리이다.
삼형제암(710.1미터)은 지장동 북쪽에 우뚝 솟은 세 개의 바위가 마치 삼형제가 나란히 서 있는 것 같다 하여 지어진 이름으로 어느 지도에는 북대를 삼형제봉이라고도 하였는데 어느 지도에는 별도로 표기를 하고 있어 다른 지명인 듯 보인다.
삼형제암은 이 산객에게 첫번째 선택이 아니기에 다시 우측 주능선으로 올라 커다란 참나무 한그루가 보이는 북대 정상인 710.1봉에 도착을 해 잠시 주위를 살펴보고 곧바로 출발한다.
북대(724미터)는 포천시 관인면 중리와 연천군 신서면 내산리 경계에 있는 삼형제 바위 북서쪽에 위치한 봉으로 정상에는 정상을 알 수 있는 아무 표식도 없어 조금은 아쉬운 시간이다.
이 산객도 트랙과 지도를 확인하지 못했으면 그냥 통과했을지 모를 정상이기에 더욱 안타까웠던 북대 정상이었다.
가능하면 삼형제암도 한번 다녀오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정상 표시가 다 제각각이고 오늘은 특히나 해가 짧은데 걸어가야 할 거리가 길어 아쉽게도 삼형제암은 다음으로 미루고 그냥 통과해 본다.
잠시 부드러운 등로를 따라 커다란 참나무들이 도열해 있는 마루금을 타고 바스락 거리는 낙엽 소리를 들으며 힐링하는 시간도 가져 본다.
한동안 무심으로 걷다 보니 소나무와 잡목들이 보이는 654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관목 숲을 지나 등로 양쪽으로 깊은 골짜기를 만들고 있는 무명 안부로 내려간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오는 안부를 지나 다시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바위 위에 쌓였던 낙엽들이 흘러 내리며 진행에 상당한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그렇게 힘들게 오르니 다시 잡목들이 자라고 있는 폐헬기장에 도착을 해 심호흡 한번 하고 출발한다.
지도를 보니 이곳은 좌측으로 가치봉으로 갈 수 있는 갈림삼거리로서 가치봉은 이 시간 이후 등로 좌측으로 한동안 같이 가는 산줄기 상 바위 봉우리이다.가치봉(655미터)은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부곡리의 큰골과 지장골 사이에 있는 가치목 남쪽에 있는 바위 봉우리로서 치아처럼 생긴 길고 큰 바위들이 봉우리를 이루고 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폐헬기장을 지나니 다시 멋진 참나무 등로가 열리고 잠시 후 하얀 억새꽃이 하늘 거리는 등로도 만나 떠나는 가을의 마지막 분위기를 만끽해 본다.
등로에 가끔 보이는 자작나무 군락지를 지나 많은 가지들이 자라고 있는 참나무봉을 통과하고 조금 더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 좌측으로 뚜렷한 갈림삼거리가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트랙에는 671미터봉으로 나타나는 곳이다.
이곳에서 좌측 등로를 버리고 우측 등로를 타고 걸어 진행을 하니 낙엽진 앙상한 가지들만 차가운 겨울을 준비하고 있는 평이한 능선 등로가 반겨 준다.
그렇게 조금 더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 우측으로 잠시 조망이 트이더니 곧이어 지나온 등로 방향으로 저 멀리 고대산과 보개산 그리고 화인봉 능선이 벌써 멀어지며 다음을 약속하고 있다.
지나온 등로를 확인하고 다시 출발하니 눈 앞에 바위봉이 나타나는데 그 정상에는 키 작은 잡목들이 자라고 있어 진행하지 못하고 좌측 사면 등로를 타고 우회해 통과한다.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 안부로 내려가는 등로도 생각보다 쉽지 않아 조심하며 내려가고 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올라 가 본다.
등로 좌측으로 북대에서 가지를 친 삼형제암으로 가는 능선이 아름답고 그 능선을 즐기며 걸어가니 등로에 갑자기 깨진 군삼각점이 나타나는데 336FOB라는 번호가 보이는데 그 의미는 잘 모르겠다.
그 군삼각점을 지나 다시 걸어 전진하니 눈 앞에 거대한 바위가 가로막고 그 바위를 우측에 두고 좌측 사면 등로를 따르니 이곳 등로에는 더욱 깊은 낙엽들이 쌓여 있어 어떤 곳은 이 산객의 무릎까지 빠진다.
사면 우회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가지가 많은 참나무가 보이는 536 무명봉을 넘고 잠시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커다란 소나무 두그루가 서 있는 능선 상 548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며 심호흡 환번 해 본다.
그곳을 지나자마자 소나무 옆에 무덤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는 웅덩이가 보이는데 군부대 훈련을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의미는 전혀 모르겠다.
특이한 모양의 웅덩이를 지나 잠시 능선 상 낙엽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다시 나즈막한 안부를 통과하고 그곳을 지나 오르니 낙엽진 잡목들이 벌거벗은 모습으로 불어오는 찬바람에 몸을 맡기고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
잠시 후 교통호가 어지럽게 뚫려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잠시 후 커다란 참나무에 잎이 달려있는 또 다른 무명봉을 넘으니 등로는 가파른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는데 그곳에는 안전철봉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지만 미끄러운 낙엽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어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두 다리에 힘을 주고 조심하며 내려가니 등로는 다시 우측으로 길게 우회하며 내려가고 잠시 후 비포장 임도가 지나는 다라미고개에 도착을 해 잠시 쉬어 가 본다.
이곳 비포장 임도가 지나는 다라미고개 정상에는 터키군순직 표지석이 보이고 잠시 읽어 본 후 다라미고개를 확인해 보니 1951년 4월 22일 다라미고개에 배치된 터키군 제1여단 1중대의 경계소대는 전멸하는 순간까지 치열한 전투로 결정적인 임무를 완수함으로써 후방의 미군과 프랑스 및 필리핀 군이 안전하게 철수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여 차후 반격작전이 가능하도록 기여하였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낯선 타국 멀리 이곳까지 와 목숨을 바쳐 대한민국을 지켜 준 터키군 순직자들에게 고개 숙여 잠시 묵념을 하고 다시 출발해 본다.
다라미고개(터키군 순직 표지석)는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 내산리의 법화골 동쪽에 있는 큰 골짜기이고 보개산에서 가장 큰 가람이었던 심원사 외에도 많은 절들이 있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인 절골에서 연천읍 부곡리의 가마골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부곡리 가마골에서 신서면 내산리 절골로 통하는 높고 큰 고개로서 고구려어 계통에 많이 나오는 산의 옛 음인 달이 달아에서 다라로 음이 변하는 과정에서 산의 원음인 뫼가 발음 습관에 따라 변한 미를 합하면서 달뫼가 다라와 미와 고개로 합성되어 다라미고개 즉 높이 솟아 있는 산 사이로 있는 고개의 뜻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다라미현으로 한자 표기가 되어 있다.
다라미고개는 비포장 임도를 내면서 등로 양쪽이 절개지로 변해 진행이 어려워 고개를 넘어 동쪽으로 걸어가니 임도 우측 짧은 절개지 쪽으로 들머리가 보인다.
임도 우측으로 나 있는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등로는 계곡 등로로 이어지고 그 계곡 등로에서 우측 가파른 교통호 오르막 등로를 따라 등줄기에 약간의 땀줄기를 흘리니 드디어 주능선에 도착을 해 긴 한숨을 내쉬어 본다.
그 교통호를 지나 좌측으로 오르니 넓은 헬기장이 나타나고 그 헬기장 우측으로 가 지나 온 방향을 살펴보니 저 멀리 고대산 줄기와 보개산 그리고 화인봉이 시원하게 올려다 보이고 우측으로는 이곳으로 이어져 온 보개지맥 마루금이 빤히 올려다 보인다.
잠시 더 머물며 주위 조망을 즐기는 사이 바람이 불어 와 한기를 느끼기에 다시 그 헬기장을 지나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산행을 이어가 본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낙엽 등로를 따르니 다시 바위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렇게 한동안 오르니 작은 공터가 나타나는데 그 공터 한쪽에는 군부대 초소가 보이지만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는지 많이 무너져 있다.
다시 그 공터를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작은 웅덩이 옆으로 가지가 많은 커다란 참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577.9봉에 도착을 하고 사진 한장 남긴 후 다시 출발한다.
우측에 무명봉을 두고 좌측 낙엽 사면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군데군데 웅덩이들이 보이는 참나무 등로가 나타난다.
그 참나무 등로를 지나니 다시 등로는 완만하게 내려가 나즈막한 안부를 통과하는데 이곳 안부에도 역시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어 조심하며 통과한다.
약간의 바위지대를 지나 다시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잘 부서지는 바위봉이 나타나고 그 바위봉을 우회해 진행하니 또 다시 돌담으로 만들어진 군초소가 보이지만 이곳 역시 사용한지 오래되었는지 모두 허물어져 있다.
다시 웅덩이가 보이는 611 무명봉을 지나고 가파르게 내려가니 저 마래 많은 낙엽들이 쌓여 있는 가파른 내리막 등로 넘어 깊은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좌우측으로는 깊은 골짜기가 절벽처럼 드러나 있다.
직볃 안부를 넘어 다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허물어진 군초소와 소나무 그리고 죽은 고사목이 보이는 620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사진 몇장 남기고 조금 더 진행하니 등로 우측으로 멋진 조망과 풍경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살펴보니 동막리로서 그 한쪽에는 넓은 강물도 내려다 보여 처음에는 차탄천이라 생각을 했는데 지도를 확인해 보니 동막계곡이 있는 아미천이었다.
그 아미천 좌측 저 멀리에는 연천읍으로 가는 길목인 3번 4차선 포장도로 옆에 보였던 아파트 단지들이 조금 더 가깝게 다가와 있어 제법 많이 걸어 왔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 아미천 좌측으로는 이제부터 걸어 진행해야 할 성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도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 잠시 더 머물다 진행을 이어가 본다.
그 성산 뒷쪽으로는 감악지맥의 감악산과 마차산이 뾰족한 모습으로 옛날 추억을 들려주고 있다.
조금 더 걸어가니 이제 등로 좌측으로 관인면 중리쪽 높은 산줄기가 빤히 보이는데 지도를 확인해 보니 조금 전 지났던 가치봉 갈림삼거리에서 분기한 산줄기 상 가치봉이다.
생각보다 멋지고 아름다운 그 가치봉 좌측 뒷쪽으로는 잡목 사이로 지나 온 보개산과 화인봉이 올려다 보이는데 이제 제법 멀어져 그 보개산과 이야기 나누기도 어려워 보인다.
그렇게 멋진 조망이 보이는 전망바위를 지나 진행을 하니 다시 등로는 가파른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는데 그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갑자기 제법 높은 직벽의 바위벽이 나타나는데 직접 내려갈 방법이 없어 고민도 해 보는 시간이다.
늘 만났던 로프도 없어 스틱과 배낭을 먼저 내려 놓고 제법 높은 직벽 옆에 보이는 큰 참나무 가지를 붙잡고 내려가며 이마에 땀방울을 흘려보는 시간이다.
어렵게 그 직벽을 내려가 안부를 지나니 다시 진행 방향으로 거대한 바위암봉이 올려다 보이는데 그곳을 오르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도 주의하며 오르니 활엽수가 정상을 지키고 있는 무명봉을 통과하고 다시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 커다란 자작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무명안부를 통과한다.
그 안부를 지나 다시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고 고사목들이 널부러져 있는 무명봉을 넘어 거대한 바위를 조심하며 올라 뒤돌아 보니 아름다운 소나무가 눈길을 사로 잡는다.
오랫만에 만나는 파란 솔잎과 소나무를 배경으로 사진도 남기고 잠시 망중한을 즐긴 후 그 등로 우측 뒤를 살펴보니 저 멀리 보개산과 북대 그리고 우측으로 흐르는 삼형제암 가는 등로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렇게 지나 온 보개산을 뒤돌아 보고 앞으로 전진하니 눈 앞에 또 다른 거대한 암봉이 앞을 가로막는데 지도 상 612.2봉이다.
그 암봉은 도저히 그냥 통과할 수 없어 우회하며 조심해 통과하여 바위 위로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멋진 산줄기가 시원하게 조망되기 시작한다.
향로봉이라 생각되는 산이지만 지도에도 잘 나타나지 않아 정확하지는 못하여 아쉽기만 하다.
그 아름다운 바위 산을 등로 좌측에 두고 우측 앞을 살펴보니 저 멀리 종자산과 보장산 및 불무산으로 이어지는 명성지맥 마루금이 그 옛날 힘들게 진행하며 걸었던 추억을 다시 들려주고 있다.
계속 이어지는 바위 암릉을 따라 조심하며 진행하다 보니 시간은 자꾸만 늘어져 현재 상황에서는 도저히 차탄천 합수점까지 진행이 불가능 할 것처럼 보인다.
바위암릉을 지나 낙엽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다시 완만하게 오르고 그곳에도 역시나 제법 큰 바위들이 등로 이곳저곳에 보이기 시작한다.
바위봉에 자라는 활엽수들을 바라보며 그 무명봉을 넘으니 잠ㅅ 멋진 활엽수들이 도열하여 이 산객을 맞이하는 듯한 멋진 활엽수 등로가 나타난다.
그림같은 등로를 타고 깊은 낙엽을 밟으며 완만하게 내려가 나즈막한 안부를 통과하고 다시 가파르게 오르니 567.4봉이 나타난다.
그 봉우리를 지나 완만하게 내려가니 다시 거대한 바위 하나가 앞을 가로막아 진행이 불가능하기에 좌측으로 우회하며 걸어가 잠시 그림같은 낙엽 등로를 타고 힐링을 해 보는 시간이다.
안부를 지나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완만하게 오르니 다시 거대한 바위가 앞을 가로막아 우측으로 우회하며 통과하고 잠시 후 소나무와 바위들이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뾰족봉에 도착을 하는데 오룩스맥 상 519 무명봉이다.
잠시 더 진행 해 516.9 삼각점봉에 도착을 해 삼각점을 찾아 보지만 찾지 못해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하니 커다란 웅덩이가 보이는 무명 웅덩이봉에 도착을 한다.
그 웅덩이 봉을 지나니 그동안 잘 보이지 않던 소나무 몇그루가 반갑기만 하고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낙엽을 밟으며 올라 본다.
잠시 더 올라 457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 내리막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무명안부를 지나 돌담 초소가 보이고 커다란 참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461 무명봉에 도착을 해 잠시 쉬어 간다.
그 돌담초소봉을 지나 완만하게 이어지는 낙엽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평이한 안부를 통과한다.
다시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라 조금 더 걸어 전진하니 교통호로 이뤄진 436봉이 나타나고 살펴보니 이고저곳 많은 교통호가 사통팔통으로 나 있다.
교통호봉을 지나 좌측으로 보이는 풍경들을 살펴보니 제인폭포로 갈 수 있는 토토봉 능선처럼 보이는 산줄기가 잡목 사이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조망을 즐기며 걸어 진행을 하니 갑자기 눈 앞에 군부대 안테나가 나타나고 주위를 살펴보니 안테나 바로 앞으로 군부대 철조망이 보이기 시작한다.
군부대 안테나를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최근에 설치된 듯한 군부대 철조망이 나타나고 그곳에서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군부대로 통할 것 같은 시멘트 포장도로가 내려다 보이고 제인폭포와 연결될 것 같은 부곡리 계곡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부곡리 지나 그 뒤로는 고문리가 보이는데 그 고문리 방향의 산 하나는 채석장이 들어섰는지 완전히 사라지고 잇는 듯 보인다.
그 뒤 한탄강 넘어 저 멀리 명성지맥의 산줄기들도 보이고 있어 그 옛날 추억을 회상하고 군부대 철조망을 좌측에 두고 우측으로 돌아 내려가니 그곳에는 동막골 유원지쪽 풍경과 아미천이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에 다시 발걸음 멈추고 몇장의 사진을 더 남긴 후 가파르게 이어지는 잡목과 잡풀 등로를 타고 군부대 철조망 옆을 내려가 본다.
한동안 그 군부대 철조망을 따라 계속 걸어 진행을 하니 갑자기 철조망이 또 하나 나타나는데 살펴보니 바깥쪽 철조망은 옛날 철조망으로 두 철조망 사이로 등로가 열려 있어 조심스럽게 진행을 한다.
한동안 진행을 하니 등로는 다시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잠시 후 두 철조망 사이로 진행되던 등로는 군부대로 통하는 시멘트 포장도로의 성재를 만나면서 다시 하나의 철조망으로 변경이 되고 있다.
그 군부대로 통하는 성재 시멘트 포장도로를 건너 잡목과 잡풀들이 우거진 능선 등로로 오르니 다시 등로 좌측으로 군부대로 통하는 쪽문을 만나는 곳에서 등로는 우측의 넓은 비포장 임도 같은 등로를 따라 오르도록 되어 있다.
한동안 올라 다시 등로가 우측으로 갈리는 곳 좌측으로 넓은 헬기장이 보이고 그곳에서 잠시 지나 온 방향을 살펴보니 군부대 뒤 저 멀리 보개산에서부터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보개지맥 마루금이 환상의 모습으로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또한 군부대 뒤 정상부로 울퉁불퉁한 암릉 구간도 보이는데 어느 산님들은 저곳을 공룡8봉이라고도 부르고 있는 듯 한데 실제로 진행하면서는 그 정도까지 암릉 스릴을 느끼지는 못하였던 것 같다.
등로 좌측으로 한탄강을 내려다 보며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오르니 등로 옆으로 화생방종이 보이고 또 다시 군부대 철조망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제 군부대 철조망을 좌측에 두고 걸어 진행을 하니 잠시 후 타이어와 거대한 암봉이 있는 곳에서 우측으로 우회하며 그 암봉을 오르니 454미터봉에 높은 군부대 안테나가 서 있다.
그곳으로 올라 사진 한장 남기고 잠시 심호흡 한번 한 후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성산 방향으로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약간의 바위들이 산재되어 있는 낙엽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평이한 활엽수 등로가 나타나는데 그곳에도 역시 낙엽들이 깊게 쌓여 있어 진행에 주의가 필요하다.
잠ㅅ 더 걸어 전진하니 군부대에서 세워 둔 출입금지 경고판이 보이고 드디어 그 경고판을 지나면서 출입금지 구역을 벗어나게 되었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 진행을 하니 좌측으로 제1/2 등산로 입구와 우측으로 성산정상과 제3등산로 입구로 갈리는 성산갈림 삼거리 이정표에 도착을 해 사진 몇장 더 남겨 본다.
우측 등로를 타고 낙엽이 깊게 쌓여 있는 마루금을 걸어 진행을 하니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오르며 이어간다.
등로 우측으로는 돌담들이 보이는데 이것이 바로 성령산성은 아닐까 생각도 해 본다.
성령산성은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동막리 성령산(성산)에 있는 산성으로 세 개의 봉우리를 포함하고 있는데 그 중 서쪽에 있는 봉우리가 가장 높으며 이 봉우리 일대를 성령 또는 성재라 부른다.
성령은 광주산맥의 한 부분으로 깊은 산속의 으슥한 골짜기 형태라 이곳에 지은 산성은 전투를 위한 목적보다는 적이 공격하기 힘든 지역에 주민들을 대피시킬 목적으로 쌓은 피난성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주변 절벽이 있는 곳에는 돌을 쌓지 않고 자연 그대로를 방어벽으로 이용하였으며 계곡이나 절벽과 절벽 사이에만 돌로 성벽을 쌓았다.
성벽의 전체 둘레는 약 740미터이며 잘 다듬어 지지 않은 직사각형의 작고 큰 돌을 섞어 쌓았다. 현재 남아 있는 성벽은 높이가 평균 2미터 정도이나 아래로 많은 돌들이 무너져 내린 것으로 보아 원래 성벽의 높이는 더 높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간 부분과 남쪽 부분에 넓은 평지가 펼쳐져 있어 내부의 면적이 넓은 편이고 우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주로 동남쪽 부분에서 기와나 토기 등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이 곳에 건물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잠시 나타나는 바위지대를 지나 오르니 금새 성산 정상에 도착을 하고 배낭 내려 추억 한장 남긴 후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겨 본다.
정상에는 이정표들과 안내도 그리고 정상석과 삼각점 들이 보이고 있다.
성산(520미터)은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동막리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520미터이며 나지막하고 산세가 부드러운 산으로 모산은 지장봉(877.4미터)이다.
정상의 3면이 성령산성으로 둘러싸여 있어 성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지며 성령산성은 높이 20미터가 넘는 수직절벽의 암벽들로 이루어졌으며 병자호란 때 연천 현감 이창조가 주민들과 함께 청나라 군사들을 물리쳤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정상은 상수리나무 군락으로 둘러싸여 있고 북쪽과 남쪽은 절벽으로 이루어졌는데 북쪽으로 지장봉과 북대 및 고대산이 보이며 정상에서 남쪽으로 자리한 절벽바위에서는 서쪽 아래로 동막계곡 너머 군자산과 멀리 군사분계선 방면까지 보인다.
정상에서 동쪽 510m봉으로 이어지는 분지에는 우물터가 있다.
기암괴석과 울창한 숲으로 잘 알려진 동막계곡이 있어 여름철이면 찾는 이가 많으며 남쪽 골짜기에는 신라 때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 오봉사지가 있고 부근 계곡 안쪽에 오봉사지 부도(경기유형문화재 131)가 있다. 또 산 속에는 깊이 16미터에 높이 2.2미터의 천연동굴(풍혈)과 특이한 모양의 남근석 등 볼거리가 많다.
산행은 동막계곡에 있는 천연동굴(풍혈) 주차장에서 시작하여 통재와 남서릉을 지나 호랑이바위와 510미터봉을 경유하여 정상에 오른 후 북서릉을 타고 남근석과 410미터봉 직전 삼거리를 경유하여 동막리 첫머리민박집 앞으로 내려오는 6 Km로서 4시간 코스가 있다.
등산로는 대체로 완만하고 평이한 편이며 부근 한탄강변에는 슬픈 전설이 얽힌 재인폭포가 있다.
제일 먼저 지나 온 방향으로 성산 정상석 뒤로 가 북동쪽을 살펴보니 우측 군부대 철조망은 능선과 소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고 그 뒤로 이어진 보개지맥 마루금이 저 멀리 보개산으로 이어지는 풍경이 한눈에 들어 온다.
그 보개지맥 마루금 건너편으로는 삼형제암쪽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제법 옹골찬 모습으로 다가와 있고 그 우측 저 멀리에는 한북정맥 마루금도 보일듯 말듯 펼쳐져 있다.
성산 정상석 넘어 북쪽을 살펴본 후 조금 더 북쪽 방향으로 걸어가 보니 생각보다 잡목들이 많아 제대로 된 조망은 보이지 않아 그 잡목 사이로 등로 좌측인 서쪽 방향을 내려다 보니 구비쳐 흐르는 아미천과 동막리 마을이 그림처럼 내려다 보인다.
다시 성산 정상석이 서 있는 곳으로 뒤돌아 와 찬바람이 강하게 불어 한기를 느끼기에 다시 배낭 둘러메고 그곳 성산 정상부를 출발하기 앞서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사진 몇장 더 남겨 본다.
잠시 내려가다 등로 우측 낭떨어지 방향 소나무 아래로 가 보지만 이제는 소나무 가지들이 앞을 막아 제대로 된 조망은 내려다 보이지 않아 발길을 돌려 바위지대를 돌아 내려가 본다.
낙엽이 깊게 깔려있는 안부를 지나 등로 우측으로 솟아 있는 바위 위로 오르니 이제서야 아미천과 동막리 마을 그리고 저 멀리 3번 4차선 포장도로 옆으로 형성된 마을들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한다.
많은 사진을 남기고 다시 그 동막리와 아미천 좌측으로 길게 이어지는 보개지맥 마지막 산줄기를 다시 한번 사진에 담아 본다.
아직도 걸어 내려가야 할 산줄기가 제법 길게 남아 있음에 더 이상 지체하지 못하고 서둘러 그 전망대를 빠져 나와 방금 전 걸어 올랐던 등로를 타고 이제는 반대로 걸어 내려가 본다.
잠시 후 진행 방향으로 감악지맥의 감악산과 마차산이 이제는 제법 가깝게 다가와 있어 눈을 의심해 보지만 지도를 꺼내 확인해 보니 그렇게 가깝게 보이는 것이 맞다는 결론이다.
다만 그 옆으로 보여야 할 소요산은 무슨 이유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아쉽기만 하다.
그렇게 낙엽 깔린 푹신한 등로를 타고 빠르게 성산을 내려 와 바위를 지나니 금새 다시 군부대 출입금지 경고판과 등로 우측으로 성산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반겨 준다.
이제 그 이정표가 보이는 곳에서 좌측 올라 온 군부대 방향의 등로를 버리고 우측 가파른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는 안전철봉과 로프를 타고 어렵게 낙엽 등로를 헤치며 천천히 걸어 내려가 본다.
미끄러운 급경사 내리막 등로를 타고 어렵게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토토봉과 제인폭포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보이는데 토토봉까지는 2.94 Km거리이고 제인폭포까지는 3.15 Km라는 거리 표시가 인상적이다.
제인폭포는 가마골 입구에 있는 폭포로 높이가 8.5미터인 이 제인폭포에는 고을 원님의 탐욕으로 인한 어느 재인의 죽음과 그 아내의 정절을 담은 이야기가 전해 온다.
여지도서는 다른 전설을 싣고 있는데 옛날 어느 원님이 재인 아내의 미색을 탐하여 현재의 재인폭포에서 재인으로 하여금 광대줄을 타게 한 후 줄을 끊어 죽게 하고 재인의 아내를 빼앗으려 하였으나 절개 굳은 재인의 아내는 남편의 원수를 갚기 위해 원님의 코를 물어 뜯고 자결하였다고 한다.
그 후부터 원님의 코를 물었다 하여 코문리라 칭하게 되었으나 차츰 어휘가 변하여 고문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고 한편으로 같은 책 연천현 산천조에는 재인폭포는 연천관아에서 동쪽으 로 20리 거리인 원적사 동구에 있는데 벽립해 있는 양 절벽 사이로 수십 길 높이를 수직으로 흐르며 떨어진다.
옛날에 재인이 마을 사람과 함께 폭포 아래에서 놀다가 그 마을 사람 아내의 미모가 뛰어난 고로 흑심을 품은 재인이 자기 재주를 믿고 그 자리에서 장담하며 말하기를 이 절벽 양쪽에 외줄을 걸고 내가 능히 지나갈 수 있다고 하였다. 마을 사람은 재인의 재주를 믿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자기 아내를 내기에 걸게 되었고 잠시 후 재인은 벼랑 사이에 놓여 있는 외줄을 타기 시작하는데 춤과 기교를 부리며 지나가는 모습이 평지를 걸어가듯 하자 재인이 반 정도 지났을 때 마을 사람이 줄을 끊어 버려 재인을 수십 길 아래로 떨어져 죽게 하였다. 이 일로 이 폭포를 재인폭포라 불리우게 되었다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재 재인폭포는 보개산과 한탄강이 어울리는 주위의 빼어난 경관과 맑은 물로 인하여 사시사철 방문객들이 끊이지 않는 명승지이다.
언제 시간되면 맥 잇기 산행과는 별도로 다시 한번 올라 토토봉과 제인폭포 방향으로 걸어 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 본다.
계속 이어지는 낙엽 등로를 타고 거대한 바위를 우측에 두고 우회하듯 걸어가니 성산숲길이라는 안내판이 다시 보인다.
방금 전 올랐던 성산 정상에서 내려오며 소나무가 보이는 곳으로 내려 와 조망을 즐겼던 곳이 바로 우측 위로 보이는 바위 절벽 상부였던 것이다.
우측으로 돌고 돌아 미끄러운 낙엽 등로를 타고 조심하며 걸어 진행을 하니 다시 속도가 전혀 나질 않는다.
잠시 지나 온 거대한 바위 암봉을 뒤돌아 보고 힐링하듯 낙엽 등로를 따르니 등로에는 다시 바위들이 보이는가 싶더니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에 꼭 등장하는 고사목 위 전망바위에서 내려다 본 동막리와 아미천이 너무나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동막리는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동막리는 본래 연천현 현내면의 지역으로 조선 초부터 분청사기, 백자, 옹기 등을 굽던 요업이 번창했던 곳이 되어 독막으로 불리워오다 차츰 어휘가 변하여 동막으로 굳어져(독 뒤에 ㄴ.ㅁ의 음이 따라오면 동으로 발음되는 현상에 의해) 한자표기로 동막리라 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군내면에 편입되었고 1945년 8·15 광복 직후에 3·8선 북쪽에 위치하여 공산 치하에 놓였다가 6 ·25가 끝난 후인 1954년 11월 17일 수복지구 임시 행정조치법에 의거 행정권이 수복되어 오늘에 이른다.
현재 2개의 행정리와 4개 반 그리고 2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이제 하루해가 서산으로 길울어져 가며 햇살이 길게 늘어지고 있는 시간이다.
아미천과 동막리를 내려다 보고 이제는 그 아미천 좌측으로 길게 이어진 보개지맥 마지막 산줄기를 살펴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그 산줄기 끝자락에 보이는 아파트 단지가 조금 더 가깝게 다가 와 있고 그 아파트 좌측으로 길게 이어지는 3번 4차선 포장도로도 박무속에 희미하지만 보일듯 말듯 다가와 있다.
생각보다 아름다운 조망과 풍경에 가기 바쁜 시간이지만 조금 더 머물며 많은 사진을 담고서야 그 바위 전망대를 내려 와 좌측 미끄러운 등로를 타고 조심하며 내려가 본다.
잠시 내려가니 나뭇가지에 전망대가는 길이라는 안내판이 보이고 곧이어 방금 전 우회한 바위를 뒤돌아 본 후 낙엽이 발목 위까지 빠지는 등로를 따라 조금은 빠르게 걸어 본다.
부드러운 낙엽 등로를 따르니 다시 성산숲길 안내판이 보이고 그렇게 빠르게 걸어 전진하니 갑자기 넓은 공터에 이정표가 서 있는 439봉에 도착을 해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하지만 아침보다 더 강하게 불어오는 찬바람에 쉬지도 못하고 곧바로 배낭 둘러메고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는 시간이 되었다.
등로는 이제 자꾸만 우측인 서쪽 방향으로 틀어 진행을 하다보니 진행 방향 머리 위로 서산으로 기울어 가는 햇살이 정면으로 다가온다.
다시 나타나는 거대한 바위는 좌측으로 우회하며 통과하고 약간의 바위들이 산재되어 있는 낙엽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다시 깊게 쌓여 있는 낙엽을 타고 완만한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오랫만에 마음 놓고 편안하게 걸어가니 등로는 다시 나즈막한 무명 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고 곧이어 숲의 치유(힐링)라는 안내판을 만난다.
그 안내판을 지나면서도 등로는 낙엽이 깔려 있는 푹신한 등로로 이어지기에 이곳을 진행하며 시간 단축을 많이 해 보는 곳이기도 하였다.
계속 이어지는 참나무 낙엽 등로를 따르니 속도도 빨라지고 산행에 대한 집중도도 급격하게 올라가는 느낌으로 걸어 본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가니 갑자기 바람이 강하게 불며 이 산객이 지나는 등로의 낙엽들이 휘날리며 한기를 몰고 오고 있어 자꾸만 발걸음만 빨라지고 있다.
그림같은 낙엽 등로를 따라 걸어 진행을 하니 다시 사각 웅덩이와 커다란 참나무들이 서 있고 그 옆으로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가 붙어 있는 369 무명봉에 도착을 해 잠시 심호흡 한번 더 하고 출발한다.
다시 나타나는 바위들을 바라보며 속도를 조절해 보고 잠시 후 바위 너덜길을 걸으며 낙엽으로 인해 미끄럽기에 주의하며 조심조심 걸어 보는 시간이다.
지금까지 낙엽 등로를 통해 빠르게 걸어 단축됐던 산행 시간이 자꾸만 늘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어렵게 바위암릉 등로를 지나 내려가니 부드러운 낙엽 등로가 열리고 무명 안부를 지나니 성산숲길이라는 안내판이 다시 보인다.
다시 완만하게 올라 바위지대를 지나니 거대한 암봉이 눈 앞에 나타나고 그 암봉을 오르기 직전 양쪽으로 바위가 서 있는 석문 같은 곳도 통과를 해 본다.
그 바위봉을 지나 잠시 평이한 낙엽 등로를 따르니 성산 정상에서 2.1 Km 지나 왔다는 이정표를 지나자마자 지도상 361.6 삼각점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은 일부 지도에 오봉산이라 표기가 되어 있는 봉우리이기도 하다.
오봉산(제5봉, 361.6미터)은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에 위치한 산으로 해발고도는 520미터이며 여지도서에 연천현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해동지도나 여지도 등을 보면 현재 성산의 위치와 일치하지 않고 오히려 오봉산으로 기록된 산이 현재의 성산 위치와 일치해 현재의 성산은 조선 시대의 오봉산으로 추정된다고 전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연천 동쪽 15리 지점에 있는 산으로 기록되어 있고 이 문헌에 따르면 오봉산에는 오봉사가 있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현재 오봉사는 성산의 남사면에 있으며 오봉사지부도 역시 성산의 남사면에 자리하고 있다.
여지도서나 연천읍지에 오봉산이 현재 지장봉으로 불리는 보개산의 지맥이 남으로 뻗은 것으로 되어 있는 것도 현재의 성산이 조선 시대의 오봉산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전한다.
제대로 된 정상석 하나 없지만 삼각점이 있어 쉽게 오봉산임을 인지하고 다시 출발한다.
오봉산 삼각점을 지나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낙엽 등로를 따르니 보이지 않던 바위들이 낙엽 밑에 숨어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그 바위들을 지나 다시 낙엽이 발목까지 뒤덮는 마루금을 따라 완만하게 내려가니 무명 안부를 지나 등로는 다시 완만하게 오르며 진행이 되고 있다.
그렇게 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굴뚝이 보이는데 그 아래 벙커는 숨었는지 보이지 않는다.
해발고도는 294미터를 나타내고 있어 이제 등로도 상당히 낮아지고 있음을 느끼는 시간이지만 서산으로 기울어 가는 햇살이 자꾸만 길게 늘어지고 있어 마음은 바쁘기만 하다.
굴뚝봉을 지나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는 바위 등로를 따라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는 다시 완만하게 내려가며 이어지는데 그 등로에는 간벌 후 남겨진 잘려진 나무토막들이 널부러져 있어 조심하며 전진을 해 본다.
잠시 더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 우측 앞으로 진행 방향의 보개지맥 마루금이 보이고 그 우측으로 연천읍으로 가는 길목에 보였던 아파트 단지들이 조금 더 가깝게 다가온 느낌이다.
다시 아기자기한 능선을 타고 빠르게 걸어가니 우측으로 벌목 후 자작나무 조림지가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 오르니 바위암릉 등로가 반겨준다.
뾰족하게 솟아 있는 그 바위암릉을 따라 가파르게 오르니 정상에는 연천농협에서 붙여 놓은 범바위 이정판이 나뭇가지에 달려있는 270 봉인데 이곳이 바로 가마봉 범바위이다.
가마봉(270미터)은 재인폭포와 통현리의 통재 동쪽에 있었던 마을로서 6·25 전까지 강릉 김씨 25호가 집성을 이루고 살았던 곳으로 조선 중기에서 후기까지 팔판서가 배출 되있던 유서 깊은 곳이며 연천 관내에서 강릉 김씨의 명성과 권세가 하늘까지 닿을 정도로 높았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지만 지금은 군부대가 들어서 있어 민간인이 살고 있지 않은 건쟁이(팔판서마을) 동쪽에 있는 가마처럼 생긴 바위 봉우리로서 고문리와 경계가 된다.
가마봉 범바위에서의 조망 역시 높이에 비해 환상적인데 제일 먼저 북동쪽으로 방금 전 올라 온 보개지맥의 지나온 능선을 살펴보니 바로 아래 좌측으로 자작나무 군락지가 눈에 들어 오고 그 뒤로 우뚝한 오봉산이 보이며 우측으로 길게 이어지는 마루금이 서산으로 기울어 가는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다.
그 뒤 우측 끝자락으로는 이 보개지맥이란 이름을 붙여준 보개산 일명 지장산과 지장봉이 얼굴을 내밀고 보이지 않는 손을 흔들며 이별을 아쉬워하고 있다.
그 우측으로 돌아가면 등로 좌측으로 아름답게 보였던 가치봉이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며 다음에는 자기와의 만남을 약속하고 있는 듯 보인다.
정상 우측 앞으로는 여전히 동막리마을과 아미천이 내려다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산행 내내 보였던 연천의 아파트 단지들도 사자락 아래 아주 가깝게 다가 와 있다.
그 연천읍 넘어로는 얼마 전 완주를 한 왕재지맥 마루금이 나즈막하게 흐르며 추억을 되살려 주고 있어 잠시 감회에 젖어 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다시 눈을 남동쪽으로 돌리니 고문리 마을이 아름답고 그 끝 산자락에는 커다란 암자 한채가 내려다 보이는데 줌으로 당겨 보니 제법 큰 절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 온다.
고문리는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에 있는 리로서 한탄강과 산을 끼고 위치한 마을이며 본래 무수동리 지역이었으나 고문리로 개칭하였다.
자연마을로는 가래동, 고문리(고문동), 느즌모루, 무시울(무추동), 번드리(반도동), 오봉동 등이 있는데 고문리는 토토봉 동쪽에 있는 마을로 고문 2리의 중심지이고 느즌모루는 아랫삼거리 서쪽에 있는 마을로 지형이 낮은 모퉁이가 된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청산면 장탄리에 있는 풀무산과 연관시켜 대장간의 연모인 모루와 같다 하여 풍수지리설과 연관하여 해석하기도 하며 한자로는 만우동이라 쓰여지고 있다.
바쁘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조망과 풍경이 펼쳐져 있어 그 가마봉 범바위에서 잠시 더 시간을 보낸 후 다시 내려가니 가마봉 범바위는 제법 거대한 암봉이었다.
다시 이어지는 낙엽 깔린 바위 너덜길을 타고 걸어 완만하게 오르니 202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라 전진하니 등로 우측으로 아미천과 연천읍이 아주 가깝게 다가 와 있다.
그 뒤로 이어지는 왕재지맥의 군자산 자락을 살펴보며 걸어 전진하니 등로 우측으로 간벌된 지역이 나타나며 앞으로 올라야 할 수리봉이 바로 코 앞으로 바짝 다가와 있다.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 내려가니 커다란 소나무 한그루가 반겨주고 잠시 후 커다란 참나무들이 보이는 비포장 임도의 남배이고개에 도착을 하는데 이름이 수상해 찾아보니 남배이고개는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고문리와 통현리 사이에 있는 공터 고개로서 옛날 젊은 두 남매가 이 고개를 넘다가 서로 남봉이 났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는 고개이다.
어느 산님은 이곳을 오봉고개라고도 부르고 있던데 아마도 오봉산과 가까이 있어 그렇게 부르는 것은 아닐까 추측만 해 볼 뿐이다.
오봉고개는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통현리의 통재 동쪽에 있었던 마을로서 6·25 전까지 강릉 김씨 25호가 집성을 이루고 살았던 곳으로 조선 중기에서 후기까지 팔판서가 배출 되있던 유서 깊은 곳이며 연천 관내에서 강릉 김씨의 명성과 권세가 하늘까지 닿을 정도로 높았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지만 지금은 군부대가 들어서 있어 민간인이 살고 있지 않은 건쟁이(팔판서마을)에서 고문리의 오봉으로 넘어 다니던 고개를 말하는데 넓은 공터가 있는 고갯마루이다.
남배이고개 일명 오봉고개를 지나 다시 이어지는 능선 등로를 타고 오르니 커다란 참나무를 지나 바위너덜길이 시작되고 있다.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그 바위너덜길 위에 쌓여 썩어가고 있기에 진행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고 특히나 하얀 서리와 새벽에 내린 약간의 싸락눈이 녹지 않고 남아 있어 여간 미끄럽지 않아 더욱 진행이 순조롭지 못하다.
그렇게 그 바위너덜길을 지나니 등로는 가파른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힘들게 그 오르막 등로를 오르니 돌로 쌓은 초소와 화생방종이 나타난다.
잠시 후 벙커를 만나고 다시 주능선에 도착을 해 돌담으로 만든 군초소와 커다란 웅덩이 그리고 바위를 지나 진행을 하니 삼각점이 박혀있는 220.4미터의 수리봉 정상에 도착을 해 잠시 심호흡 한번 하고 출발하는 시간이다.
수리봉(220.4미터, 삼각점)은 소목개 북쪽과 건쟁이 남쪽에 있는 높은 봉우리로서 높음과 으뜸의 뜻으로 쓰였던 고어 술이 수리로 연철되어 봉과 합쳐진 이름으로 높은 봉우리라는 뜻이며 하늘에 날아 다니는 조류의 수리와는 전혀 연관이 없는 단순히 높은 봉우리라는 의미이다.
수리봉 정상에서 우측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내려서기가 만만치 않아 직진으로 조금 더 걸어 간 후 우측으로 휘돌아 내려가니 돌로 쌓은 교통호가 나타나고 그 교통호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가니 좌측으로 내려 갈 수 있는 장소가 보인다.
조심하며 내려가니 급경사 내리막 등로에도 역시 많은 낙엽들이 쌓여 있어 미끄러지기 일쑤이라 상당히 주의하며 천천히 진행하지만 속도는 자꾸만 빨라지고 있다.
잠시 후 내리막 등로가 끝이나고 평이하게 걸어가니 잡풀들 사이로 소나무 한그루가 멋지게 서 있고 잠시 후 평이한 넓은 수레길 같은 낙엽 등로를 만나 조금은 편안하게 걸어 가는데 이제 두껍게 낀 구름속으로 하루해가 넘어가며 땅거미가 지기 시작한다.
잠시 후 비포장 임도들이 보이는 옛날 남봉고개를 만나 통과하고 다시 능선으로 오르니 커다란 참나무 한그루가 보이는 127 무명봉에 도착을 해 우측으로 꺽어 진행을 한다.
진행 방향의 산자락에 걸려있던 하루해도 이제 서서히 서산으로 기울어가며 사진을 찍어도 제대로 된 사진 한장 남기기 어려운 시간이 지나고 있다.
이제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낙엽 깔린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78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남봉고개에 도착을 해 사진 몇장 더 남겨 본다.
남봉고개 좌측으로는 민가가 보이고 하얀 연기가 피어 오르는데 강아지 몇마리가 목이 쉬도록 짖어대고 있다.
이곳 남봉고개는 새로 뚫린 듯한 78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곳으로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통현리와 고포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인데 차량 통행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이곳 남봉고개에서 잠시 고민을 하다 늦더라도 오늘 보개지맥 산행을 마무리하고 돌아가기로 결정하고 그 78번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건너편 절개지를 타고 빠르게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남봉고개를 넘어 절개지로 오르니 콘크리트로 만든 수로가 보이고 그 수로를 따라 우측 절개지 상단부로 오르는데 자랐다 말라죽은 잡풀들이 무성해 진행에 어려움을 느낀다.
어렵게 그 절개지 상단부로 오르니 좌측 능선 방향으로 희미한 등로가 보이고 그 등로를 타고 들어가니 낙엽이 덮혀있는 무명묘지 한기를 지나 교통호에 도착을 한다.
잠시 그 교통호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 진행을 하니 커다란 소나무 한그루가 보이는 141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부터는 넓은 비포장 임도가 이어지고 있어 조금은 더 빠르게 걸어 보는 시간이다.
잠시 후 키 작은 소나무들도 만나고 계속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같은 넓은 등로를 따라 빠르게 걸어 전진하니 등로 좌측으로 잣나무 군락지도 보이는 148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그곳에서 등로는 우측으로 휘어지며 그 잣나무 군락지와 헤어지고 잠시 후 등로 우측으로 연천읍 아파트 단지들이 바로 옆으로 다가와 있는 풍경도 살펴 본다.
계속 이어지는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빠르게 걸어 진행하니 밤나무 단지를 지나 잡초가 무성했던 헬기장을 만나 통과한다.
헬기장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빠르게 걸어 내려가니 임도 좌측으로 민가 한채가 보이는데 그곳에서 기르고 있는 강아지 몇마리가 또한 목청껏 울부짖고 있다.
잠시 후 농로 시멘트 포장도로가 보이는 비포장 임도 날머리 입구에서 배낭 내려 남아 있는 간식과 과일로 허기를 달래고 내려 가니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고 드디어 고포리 포장도로에 도착을 한다.
고포리는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통현리의 가장 남쪽에 있는 마을로서 1950년 6·25 당시 이 마을 앞 벌판에 고사포부대가 주둔하며 피난민을 입주시켜 마을이 새로 형성되자 주둔 부대장이 이 마을을 고사포부대와 인연이 있다 하여 고포리라고 명명하였다 한다.
고포리 들녁으로 나 있는 포장도로를 타고 빠르게 3번 4차선 방향으로 걸어가니 저 멀리 3번 국도를 달리는 차량들의 불빛이 아름답게 다가온다.
잠시 후 우측으로 인삼포를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드디어 3번 4차선 포장도로를 만나 그 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 보는 시간이다.
이곳은 고포리 통현2리 버스정류장이 있는 곳으로 이곳 고포리에서 걸어가 만나야 할 은대리까지는 온통 드넓은 들판인데 가사평 들녁으로 불리는 들판이다.
가사평 들녘은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은대리와 전곡리, 연천읍 통현리에 걸쳐 있는 연천군 제일의 평야이며 곡창지대로서 점토질 성분으로 된 이 곳의 토질이 이른 봄 해빙기나 여름철 우기 때가 되면 인마의 통행이 어려울 정도로 질고 미끄러워 예전에 한탄강을 건너서 통현리까지의 20리 벌판 길을 통과하자면 기운이 다 빠지고 탈진상태가 되었다는 사연을 간직한 곳이다.
조선 영조조에 편찬된 여지도서 1757에는 이곳의 유래를 다음과 같이 적고 있는데 예전에 어떤 중이 이 벌판을 지나가다 진흙속에 넘어지고 자빠지고 하여 온몸이 진흙 투성이가 되어 걸음을 옮길 수 없게 되자 입고 있던 가사를 벗어 버리고 갔다 하여 가사평으로 명명되었다 라고 이 곳을 기술하고 있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연천현 제영조에 실린 서거정의 시에는 봄 진흙 미끄러워 말도 가기 어렵구나, 양주서 오는 길 높았다 낮았다 하네 라고 이 곳의 인상을 시로 남기기도 하였다.
6·25가 끝나고 이곳이 수복지구가 되면서 사람들이 차츰 입주하고 부터는 진 땅 때문인지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사는 곳이란 별칭도 붙게 되었으나 농지정리가 되고 도로가 포장되면서부터 잡초가 무성하던 이 곳 황무지가 연천 제일의 곡창지대로 변하여 가을이면 누런 황금벌판이 장관을 이루는 곳이 되었다.
3번 4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연천읍에서 전곡읍 방면인 남쪽으로 걸어가니 생각보다 차량 통행도 많고 차량들 속도가 빨라 조심하며 걸어가는 시간이다.
어둠이 내리며 다시 찬바람이 강하게 불어 겨울 장갑과 방풍의를 입고 모자까지 쓰고서야 그 추위를 견디며 걸어가는 시간이다.
잠시 더 걸어가니 은대1리와 양수장입구 버스정류장을 만나 통과하고 계속 걸어가니 예비군훈련장 버스정류장도 지난다.\
은대리는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에 있는 리로서 본래 양주근 영근면의 지역으로 고려가 멸망한 뒤 불사이군의 절개로 음터에 은거한 일노정 김양남의 사적에 의하여 은대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명천리를 병합하여 은대리라 하여 연천군에 편입되었으나 1945년 8·15 광복과 동시에 3·8선 북쪽에 위치하여 공산 치하에 놓였다가 6·25가 끝난 후인 1954년 11월 17일 수복지구 임시 행정조치법에 의거 행정권이 수복되어 오늘에 이른다.
현재 4개의 행정리와 26개 반 그리고 7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다시 계속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하나건설중기라는 회사도 보이고 잠시 후 은대4리(어수물) 버스정류장도 통과한다.
은대4리 어수물마을은 3번 국도변에 있는 은대4리에서 가장 큰 마을인데 조선 개국 초 태종 이방원이 고려 신하로써 절조를 지키며 연천읍 현가리 도당골에 은거하고 있던 금은 이양소를 만나기 위해 연천으로 친행하던 중 이 곳에 있는 우물에서 물을 마셨다 하여 이 우물을 어수물로 명명했다 한다.
이 우물은 지금도 남아 있다.
잠시 후 도로 우측으로 바래마을로 들어갈 수 있는 도로 표지판도 만나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한다.
잠시 도로공사중인 곳을 지나 도로가 우측으로 휘어지는 곳을 통과하니 철도가 지나는 은대육교 위를 걸어 넘는다.
다시 계속 이어지는 도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 전진하니 도로 표지판들이 나타나고 잠시 후 은대삼거리 도로 표지판을 넘어 은대3리 버스정류장도 지나간다.
도로 우측으로 전곡이라는 커다란 이정석을 통과하고 은대3리 버스정류장을 지나 회사 건물 앞을 걸어 통과하니 우측으로 372번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군남으로 갈 수 있는 사거리 직전 고가도로에서 그 고가도로 우측의 소 도로를 따라 걸어 내려가니 갈림사거리가 나타난다.
전곡성당 앞을 지나 만나는 사거리에서 우측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군남방향으로 걸어가니 다시 갈림사거리가 나타나는데 그곳에서는 도로를 건너 좌측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들어간다.
잠시 걸어 들어가니 은대선린공원이고 십이지상 동물들 모형이 설치된 곳을 통해 마지막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후 은골게이트볼 장을 지나고 다시 만나는 2차선 포장도로에서 그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가니 다시 넓은 6차선 포장도로와 만나는 갈림사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정문 방향으로는 연천군보건의료원 건물이 크게 보이는 곳이다.
그 연천군보건의료원 좌측으로는 연천장례식장도 보이고 있다.
도로를 건너 그 연천군보건의료원 정문 우측으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 들어가니 연천 은대리성 설명판과 조감도가 나타난다.
연천은대리성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으며 1995년도에 발간된 연천군사료집에 의해서 처음 알려지게 되었다.
그 후 1995년부터 2003년사이 지표조사 및 발굴조사가 이루어지면서 고구려토기 일부가 발견되는 등 고구려를 중심으로 한 삼국시대 성으로 추측된다.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은대리 등에 분포한 삼국시대 성터로서 한탄강 북쪽 기슭의 장진천의 합류 지점에 형성된 삼각형의 하안단구 위에 축조된 강안평지성이다.
평면의 형태는 삼각형으로 내성과 외성의 이중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성곽의 전체 길이는 약 1005미터이고 동서 400미터이고 남북으로 130미터이다.
성 내부의 면적은 약 7000평 정도인데 일부는 경작지로 이용되고 나머지 부분에는 울창한 소나무 숲이 조성되어 있다.
성벽은 흙과 돌을 혼합하여 쌓았는데 양쪽 기단부만 돌로 쌓았고 안쪽과 기단 윗부분은 흙을 다져 쌓았으며 현재 동쪽과 북쪽 성벽의 상당 부분이 훼손된 상태이나 성 내부의 보존 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성의 남쪽과 북쪽은 한탄강에 접하여 낭떠러지가 형성되어 있어 동쪽 부분을 제외한 다른 방면으로는 접근이 불가능하다.
성 안에는 문지 3개소, 건물지 1개소, 치성 2개소가 확인되었고 경작지에서 철기 조각과 백제의 것으로 보이는 토기 조각 그리고 회식 연질의 고구려 토기 조각이 수습되었다.
2006년 1월 2일 사적 제469호로 지정되었고 연천군이 관리한다.
이제 온세상이 완전히 어둠속에 묻혀버려 한치 앞도 보이지 않기에 배낭에서 헤드렌턴을 꺼내 길을 밝히며 마지막 합수점으로 향한다.
은대리성 중앙부를 통해 걸어가지만 어둠속에 보이는 것 하나 없이 그저 상상만으로 그 은대리성터를 확인하며 걸어 보는 시간이다.
드넓은 잔디밭 같은 은대리성터를 지나 잠시 소나무들이 주위에 자라고 있는 비포장 임도를 따르니 금새 마지막 전망대와 삼형제바위 설명판이 있는 합수점 위에 도착을 해 마지막 사진 한장 남겨 본다.
하지만 보이는 것 하나 없어 조금은 아쉬움이 남기에 인터넷에서 선답자의 사진 한장을 빌려 와 함께 올려 본다.
마지막 합수점 위 전망대 앞에 설치된 삼형제바위에 관한 설명판을 사진에 담고 자료를 찾아 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보인다.
삼형제바위는 전곡읍 은대리 한탄강변의 주위 강폭이 넓고 물이 맑아 여름철 피서지로도 좋은 곳에 있는데 이 삼형제바위에는 애틋한 모성애와 형제애에 얽힌 전설이 있다.
오랜 옛날에 한 어머니가 아들 삼형제를 키우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는데 일찍이 남편을 여의어 궁핍한 살림이었으나 삼형제가 어머니의 말씀을 잘 따르고 열심히 일하여 집안이 화목하게 살았다.
남편을 잃은 팔자 기구한 여인이라고 스스로 죄인 행세를 하는 어머니 역시 아들 삼형제를 하늘처럼 믿고 살았다.
얼마 안 되는 농사였지만 아버지가 하시던 농사일을 삼형제가 이어받아 어린 나이였음에도 열심히 일을 하여 추수기에는 먹고 살 만큼의 수확을 거두어들일 수 있었다.
큰 아들이 17살, 둘째가 15살, 막내가 13살이던 어느 무더운 여름날 강가 밭에서 김을 매던 삼형제는 더위를 식히러 한탄강으로 들어 가 셋은 수심이 얕은 곳에서 물장난을 하면서 즐겁게 목욕을 하고 있었다.
이 강은 흐르는 물이라 모래가 파여 나가서 생긴 웅덩이가 여기 저기 있었으며 그것을 모르고 제일 깊은 웅덩이 근처에서 놀던 막내 아우가 발을 헛디뎌 급한 물살을 따라 떠내려가기 시작하였다.
그것을 본 큰형이 동생을 구하기 위하여 빠르게 흐르는 물 속으로 아우의 뒤를 따라 헤엄을 쳤는데 앞뒤를 생각할 겨를도 없는 순간적인 행동이었지만 물은 깊고 물살은 세서 도저히 동생을 따라잡아 구할 수가 없었다.
큰형도 막내와 함께 떠내려가기 시작하였고 큰형과 막내가 떠내려가고 있는 광경을 본 둘째도 그 뒤를 쫓아 급류 속으로 뛰어들었으나 형과 아우를 구하여 낼 수는 없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없이 흐르는 강물 위에 삼형제가 허우적거리면서 떠내려갔으나 어느 누구도 구하여 줄 사람은 없었다.
멀리서 이 모습을 본 동네 아주머니가 급히 이 사실을 어머니에게 알려 주었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은 삼형제의 어머니는 허둥지둥 강가로 달려왔으나 그 때는 이미 아들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어머니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땅을 치며 통곡을 하였다.
그 후로 어머니는 매일 강가에 나와 아들들의 생전 모습을 그리며 세 아들들의 이름을 차례로 불러 보았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어머니의 눈앞에 신기한 모습이 나타났는데 어제까지도 보이지 아니하던 큰 바위 세 개가 강 한복판에 우뚝 솟아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죽은 아들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말할 수 없이 기뻤다.
이 소문을 전하여 들은 마을 사람들이 모여 세 개의 바위 중 제일 큰 바위에 제단을 만들고 해마다 한 차례씩 동네 아이들이 물에 빠져 죽지 않도록 보호하여 달라고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그때부터 이 세 개의 바위를 삼형제바위라 불렀고 지금도 삼형제바위가 있는 강에 가 보면 제일 큰 바위 꼭대기가 넓적하게 되어 있어서 제사를 지냈던 흔적을 엿볼 수가 있다.
사실이던 아니던 이런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이곳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싶은 장소는 아니였을까 생각도 해 보는 시간이다.
어둠속에 도착을 해 보이는 것 하나 없기에 선답자들이 담은 사진 한장을 빌려 와 함께 올려 본다.
좌측으로 보이는 넓은 강물이 한탄강이고 우측에서 흘러 내려오는 강물이 차탄천인데 그 두 강물이 만나는 합수점에는 바로 위에서 설명한 삼형제바위가 잡목 사이로 살짝 보이고 있다.
한탄강은 강원도 평창군에서 발원하여 김화, 철원, 포천 일부와 연천을 지나 연천군 미산면, 전곡읍의 경계에서 임진강으로 흘러드는 총 길이 136 Km의 물줄기이다.
화산폭발로 형성된 추가령구조곡의 좁고 긴 골짜기를 지나는데 유역에는 절벽과 협곡이 발달하여 있다. 남대천, 영평천, 차탄천 등의 지류가 있으며 하류인 전곡 부근은 6.25 전쟁 때의 격전지이기도 한데 강변이 아름다워 한탄강국민관광지가 조성되어 있다.
차탄천은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을 흐르는 하천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연천 남쪽 5리에 있는데 물의 근원은 강원도 철원부 서쪽 고을파이고 남으로 흘러 양주 유탄으로 유입된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여지도서에도 이와 동일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광여도, 여지도에는 연천 남쪽으로 흘러가는 하천으로 표기되었으며 팔도군현지도, 조선팔도지도에서는 한탄강과 합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곡리에서 한탄강과 합류하는데 순 우리말로 수레 여울이라고 불린다.
언제 다시 이곳으로 와 저 아름다운 차탄천과 한탄강이 만나는 합수점과 슬픈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삼형제바위를 만날 수 있을지 기약도 할 수 없지만 한번쯤은 더 들려 오늘을 추억하는 날이 있기를 희망도 해 보는 시간이다.
많은 바위암릉과 수북히 쌓여있는 낙엽들로 인해 결코 쉽지 않은 산행이었지만 아무 사고 없이 무탈하게 너무 늦지 않은 시간에 보개지맥 산행을 마칠 수 있어 홀로 자축하는 시간이다.
그렇게 차탄천과 한탄강이 만나는 합수점 위 삼형제바위 전망대에서 보개지맥이라는 맥 잇기 산행을 마무리하고 다시 뒤돌아 나가 연천군보건의료원 앞에서 넓은 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가고 다시 좌측으로 돌고 돌아 약 1 .2 Km거리의 전곡 버스터미널로 이동을 해 그곳 터미널에서 기다리고 있던 39번 버스에 올라 소요산역으로 이동을 한다.
오래 전 젊었을 때 이곳 가까운 파주에서 군대 생활을 했고 첫 직장도 동두천에 있는 회사에서 잠시 시작을 했기에 친숙한 전곡과 동두천이지만 이렇게 산행을 위해 자주 들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감회가 새롭기만 하다.
너무 늦지 않게 도봉산역에 도착을 해 애마를 회수하고 생각보다 많이 막히지 않는 도로를 타고 집으로 복귀해 가족들과 시원한 소맥 한잔으로 또 하루를 마감해 본다.
이제 남아 있는 성골지맥 한구간과 대득지맥 두구간만 마무리를 하면 한북정맥 상 12지맥 산행도 모두 마무리가 될 것이다.
가까운 곳이니 서두르지 말고 시간이 날 때마다 들리기로 하고 또 하나의 산줄기 이어가기 산행을 마무리 해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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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당일로 상당히 부담되는거리인데 추운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어두워진 차탄천 합수부까지 이어가신 대단한 열정입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네 수헌님
말씀처럼 하루에 마무리하기에 조금은 벅찬 거리이고 특히나 바위와 미끄러운 낙엽으로 걱정을 했는데 처음 계획처럼 무탈하게 차탄천 합수점까지 갈 수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추운 날씨에 늘 건강하시고 조만간 다시 뵐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아무튼 칠갑산님의 산줄기 열정은 대단하십니다.
24km에 이르는 보개지맥 남은 구간도 거뜬히 해 내셨습니다.
그날은 저도 한남의 산줄기를 걷고 있었는데~
금년 겨울들어 제일 추웠던 기억이 납니다.
어둠에 차탄천 합수점에 이르시면서 한줄기 마무리하시느라 수고많으셨습니다.
네 방장님
진행하면서 방장님 띠지도 몇장 만나 반가웠답니다
같은날 독조에 드셨던가 봅니다
생각보다 추워 조금은 고생도 했지만 조망이 좋아 보상 받았던 날이었지요
늘 성원해 주심에 감사 드림니다
남아있는 오늘 하루도 즐거운 시간 되세요
수고하셨습니다. 보개지맥 마무리도 축하하고요.. ^^ 제 친구가 연천군 전곡면에 군생활을 할 때, 이 곳으로 편지를 많이 보냈지요. 지역명이 눈에 많이 익네요. 하하!
감사합니다 현상님
친구분도 이곳에서 군 생활을 하셨군요
저도 이곳에서 가까운 곳에서 군 생활을 해 많은 추억이 있던 곳들이라 새로운 기분으로 걷기도 해 봤지요
성원에 다시 한번 감사 드리며 진행하시는 맥 잇기 산행도 늘 무탈하게 이어가시기 바람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