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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경상남도 양산시와 울산시 울주군과 원동면 일대의 영축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 2018년 01월 20일 (토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하루 종일 짙은 미세먼지와 박무로 인해 시야가 제한되었고 바람이 불었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 영하 06도에서 영상 5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지산마을 마을버스종점-지산마을1길(1차선 포장도로)-비포장임도 공사장-철대문-영축산 황토숲길 안내도-축서암(우)-해발 295 이정목-축서암사거리 이정표(영축산정상 4.0 Km, 지산마을 0.7 Km,
비로암 1.6 Km, 축서암 0.3 Km)-해발 330미터 이정목-해발 345미터 이정목-해발 375미터 이정목-축서암분기점 이정표(영축산정상 3.7 Km, 축서암 0.6 Km)-지내3.2 이정표(영축산임도 3.0 Km,
영축산 2.5 Km, 지내마을 임도 2.5 Km, 지산마을 2.1 Km)-양산3.1 목장삼거리 이정목-해발500미터 이정목과 지내3.3 이정표(영축산 2.4 Km, 지내마을임도 2.8 Km, 지산마을 2.2 Km)-
지내3.4 이정표(영축산임도 2.3 Km, 지내마을임도 3.2 Km, 지산마을 2.3 Km, 등산로없음)-영축산8 낙동정맥 이정표(영축산 1.16 Km, 지내마을 2.55 Km)-영축산9 낙동정맥 이정표(영축산 1.1 Km,
지내마을 2.6 Km)-해발765미터 이정목과 영축산10 낙동정맥 이정표(영축산 1.0 Km, 지내마을 2.7 Km)-영축산11 낙동정맥 이정표(영축산 0.9 Km, 지내마을 2.8 Km)-해발 775미터 이정목과
영축산12 낙동정맥 이정표(영축산 0.8 Km, 지내마을 2.9 Km)-안전목책과 로프구간-취서산장 이정표(영축산 0.8 Km, 지내마을임도 4.8 Km)-취서산장-지내3.6 이정표(영축산 0.7 Km, 지내마을임도 4.8 Km와
지산마을 3.5 Km)-안전목책과 로프구간-마른샘터-해발 910미터 이정목-해발 975미터 이정목-바위암봉-영축산13 낙동정맥 이정표(영축산 0.2 Km, 지내마을 3.5 Km, 방기마을)-산죽등로-
해발1040미터 이정목-돌탑-영축산 동봉암릉-해발1080미터 이정목-영축산정상 이정표(오룡산 6.1 Km, 신불산 3.1 Km, 하북지내마을 4.9 Km)-영축산(1081.1미터, 정상석, 삼각점)
이정표(오룡산 6.0 Km, 신불산 3.1 Km, 하북지내마을 4.9 Km)-천정삼거리 영축능선3 이정표(함박등 1.5 Km와 백운암 2.2 Km 및 오룡산 5.9 Km, 영축산정상 0.2 Km, 약수터50미터와 비로암 1.6 Km)-
산죽지대-억새능선-1059.9봉(고김성국추모비와 녹슨철제구조물)-해발1035미터 이정목-안전목책-바위암릉 우회등로(로프)-영축능선4 이정표(백운암 1.8 Km와 오룡산 5.5 Km, 영축산정상 1.3 Km)-
나무계단-함박등(1051.9미터, 정상석)-안전목책과 로프-함박재 영축능선6 이정표(체이등 0.3 Km와 오룡산 4.4 Km, 영축산정상 1.7 Km, 백운암 0.7 Km)-채이등(1029미터, 이정판)-영축능선8
이정표(죽바우등 0.5 Km와 시살등 2.0 Km, 채이등 0.1 Km와 영축산정상 2.0 Km)-죽바우등(1064.4미터, 정상석)-소나무 등로-1036 무명바위봉-한피기고개(억새능선)-영축능선9
이정표(시살등, 죽바우등 0.9 Km와 영축산정상 3.4 Km, 통도사 서축암 2.8 Km, 배내골과 청수골)-소나무와 억새등로-시살등(981미터, 정상석과 삼각점) 이정표(오룡산, 영축산, 청수골)-979 무명봉-
억새안부-917봉 우회-912 전망바위-영축능선11 이정표(오룡산 1.9 Km와 도라지고개 3.2 Km, 영축산정상 4.3 Km, 통도사임도 1.3 Km)-878바위 우회-동굴-토굴삼거리 영축능선12
이정표(오룡산 1.5 Km와 염수봉 6.6 Km, 시살등 0.9 Km와 영축산정상 4.7 Km, 배내골과 장선마을)-억새안부-오룡산(951미터, 정상석) 영축능선13 이정표(염수봉 5.1 Km, 시살등 2.3 Km와
영축산정상 6.1 Km, 외석과 내석)-842.2봉-839 무명바위봉-소나무등로-도라지고개(비포장임도와 영축능선14) 이정표(어곡과 에덴벨리, 오룡산 1.3 Km와 영축산정상 7.4 Km, 배내골과 장선마을)-
이정표(염수봉 3.5 Km, 도라지고개와 오룡산 방향, 에덴벨리 임도방향)-828봉 이정표(염수봉 3.06 Km, 도라지고개 0.44 Km, 원동면 선리마을 797봉 방향)-773봉-비포장임도 이정표(염수봉 2.42 Km,
도라지고개 1.08 Km)-비포장임도-이정표(염수봉 2.39 Km, 도라지고개 1.11 Km)-78번 송전탑-770 소나무무명봉-비포장임도 이정표(염수봉 1.95 Km, 도라지고개 1.55 Km)-비포장임도-
이정표(염수봉 1.89 Km, 도라지고개 1.61 Km)-이정표(염수봉 1.74 Km, 도라지고개 1.76 Km)-비포장임도-능선진입-임도 이정표(염수봉 0.81 Km, 도라지고개 2.69 Km, 원동면 대리방향 트레킹길,
상북면 내석리 방향 트레킹길)와 입산통제구역 이정표(에덴벨리방향 임도, 원동면 선리방향 임도, 상북면 내석리 구불사 1.8 Km) 및 장터길 안내도-능선진입-비포장임도 이정표(염수봉 0.32 Km,
도라지고개 3.18 Km)-시멘트포장도로 이정표(염수봉 0.25 Km, 도라지고개 3.25 Km)-능선진입-염수봉(816.1미터, 정상석, 삼각점, 무인산불감시카메라)-791 갈림삼거리 공터-비포장임도-능선진입-
소나무 식재지-시멘트 포장도로-능선진입-내석고개(비포장임도, 대리내석리 포장도로, 비포장임도)-소나무와 바위능선-잡목등로-763 억새등로-에덴삼거리 이정표(뒷삐알산, 배내골방향,
에덴벨리리조트 방향)-뒷삐알산(827.7미터, 정상석, 삼각점, 벤취쉼터, 조망탁자)-에덴벨리 갈림삼거리-습지삼거리 이정표-에덴벨리골프장 6번홀-에덴벨리골프장 5번홀-커피숍 건물-지독한 잡목과
가시등로-742 무명봉-습지보호지역 말뚝-지독한 잡목과 잡풀지대-습지보호지역 목책과 로프구간-756 무명봉-764 무명묘지봉-습지삼거리 이정판-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안내판과 감시초소-비포장임도-
에덴벨리 둘레길 이정표-풍력발전기 시작점-대명 GEC풍력발전소 관리사무소와 양산풍력발전단지 2호기 설명판-에덴벨리 포장도로-에덴벨리 스키장-에덴벨리 스키장 곤도라 상부 커피숍-2차선 포장도로
표지판(밀양 37 Km, 밀양댐 11 Km, 배내골 6 Km)-시멘트 포장도로-풍력발전단지-능선진입-2차선 포장도로-능선진입-2차선 포장도로-원동면5 이동통신탑-670 무명봉-689 무명봉-690 무명봉-
709.5봉-707 무명봉-542 무며옹-무명안부-555.5봉-481 산불감시초소-배태고개(69번 2차선 포장도로, 배내골 이정석)-산행종료
산행거리 : 지산마을에서 배태고개까지 약 24.42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영축지맥 - 영축산에서 배태고개(69번 2차선 포장도로)까지 20.62 Km
접속구간 - 지산마을 마을머스정류장에서 영축산정상까지 약 03.80 Km
산행시간 : 배태고개에서 군내버스 시간에 맞춰 하산하며 많은 사진을 찍으며 여유롭게 진행하여 10시간 31 (06시 43분부터 17시 14분까지)
산행트랙 : 2018-01-20 영축지맥제1구간 지산마을-배태고개.gpx
교통편 : 갈때-22:35 서울 지하철 2호선 봉천역에서 지하철 탑승(1월 19일) 1,400.-
23:30 동서울버스터미널에서 양산시외버스터미널행 심야버스 탑승 32,500.-
04:00 양산시외버스터미널 옆 우동과 국수 24시 식당에서 가락국수 5,500.- (약 1시간 동안 TV 보며 버스 시간 기다림)
05:47 양산시청 앞 버스정류장에서 통도사신평터미널 행 첫차에 탑승 1,250.-
06:30 통도사신평터미널에서 택시로 지산마을 마을버스종점까지 이동 4,000.-
올때-17:25 배태고개에서 산불감시원 SUV차량에 동승해 양산시 원동면 원리삼거리까지 이동(감사 드림니다)
18:10 필그린모텔 투숙 25,000.-
18:50 탑플러스마트에서 아침 식사 및 음료수 구입 11,000.-
19:00 길촌토종집에서 돼지 두루치기로 저녁식사(소맥 포함) 15,000.-
총비용지출(차비, 식대, 숙박) : 95,650.-
영축지맥이란 ?
영축지맥은 피재에서 몰운대로 이어지는 낙동정맥이 영축산(울산시 울주군 삼남면 방기리와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 및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의 경계점)에서 남서쪽과 서북쪽 및 동남쪽 등으로 방향을 틀면서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삼양리로 이어지는 도상거리 약 40.2 Km의 산줄기로 영축산에서 시작하여 삼랑리의 청용산에서 그 맥을 낙동강에 넘겨주고 있는 산줄기이다.
이 산줄기를 따라가면 영축산(1058.9미터), 시살등(980.9미터), 오룡산(951미터), 염수봉(816미터), 뒷삐알산(827미터), 금오산(766미터), 구천산(640미터), 만어산(699.6미터), 청용산(363미터), 무월산(205.3미터), 매봉산(283.6미터) 등을 만날 수가 있다.
아울러 이 산줄기의 서쪽과 북쪽에는 백운천, 단양천, 배내천, 국정천, 동천 등이 밀양강으로 흐르고 이 산줄기의 동쪽과 남쪽에는 양산천, 선장천, 영포천, 원동천 등이 낙동강으로 흘러간다.
그리웠던 영남알프스의 한축을 이루고 있는 영축지맥에서 갈증은 풀었지만 불청객인 미세먼지와 박무로 인해 제한된 시야로 아쉬움을 남겼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그동안 마음 고생을 하였던 일도 잘 풀리면서 조금은 여유가 생기지만 충청도와 호남지방에 내린 폭설로 인해 계획되었던 산행과 산행지도 자꾸만 바뀌면서 대중교통 이용편을 알아보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더욱이 오랫동안 산줄기 종주 산행에 거의 올인하듯 진행하다 보니 가끔은 가고 싶었던 산행지가 생각이 나 오늘처럼 그 두가지를 한번해 해결할 수 있는 산행지를 찾게 된 곳이 바로 영축지맥이다.
영남알프스에 속한 산군이기도 하고 또한 영남알프스 실크로드로 개통된 산길이기도 하여 몇번인가 걸어 봤던 등로이지만 영축지맥이라는 산줄기 종주를 겸해 오르는 산행이다 보니 그 전에 올랐던 기회와는 또 다른 느낌과 생각으로 오르게 되는 곳이기에 많은 사전 준비를 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만 가고 오는 거리가 멀어 가능하면 주말과 휴일 이틀동안 영축지맥 산줄기 종주를 마무리하고 올라 올 수 있기를 바라지만 너무 무리는 하지 않게 진행하려 준비를 하면서도 자꾸만 완주를 목표로 계획이 잡히고 있어 이것 또한 조심해야 할 욕심이 아닌가 생각도 해 보는 시간이다.
결국 처음 계획된 의도대로 이틀간 조금은 빠르게 진행을 해 무탈하게 완주 후 올라 오게 되었지만 제2구간에서 가까이 있는 구천산과 매봉산을 들리지 못한 것은 오랫동안 아쉬움으로 남겨질 시간이기도 하다.
무엇이 좋아 그토록 야심한 밤에 버스를 타고 그 먼곳까지 내려가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홀로 산상을 오르는지 아직도 그 답을 정확히 찾지는 못하였지만 이제는 조금씩 몸으로 그 해답을 찾아가는 길목은 아닐까 생각도 해봤던 영축지맥에서의 시간이었다.
찬바람이 불어대는 지산마을 마을버스정류장에서 헤드렌턴 불빛에 의지해 산행 준비를 하고 오랫만에 영축산으로 오르는 등로는 옛 추억을 떠올리게 만들고 등줄기에 약간의 땀방울이 맺힐쯤 여명이 밝아오며 취서산장에 도착을 하지만 산장지기는 보이지 않고 황량한 새벽 찬바람만 이 산객의 가슴을 후벼파고 있다.
다시 발길을 돌려 가파른 오르막 된비알을 타고 숨가쁘게 오르니 드디어 바위암릉지대를 지나 영축산 동봉 암릉에 도착을 해 그동안 가슴속에 그리움만 쌓였던 영남알프스의 신불산 방향과 오늘 이 산객이 진행을 해야 할 오룡산 방향을 바라보는 시간은 잠시 시간이 멈춘듯 그렇게 또 다른 고운 추억이 가슴속에 쌓이는 시간이었다.
산줄기 종주 산행에 빠지기 전에는 그리우면 야간열차나 심야버스를 타고 훌쩍 떠나 영알의 대평원을 무심으로 걸어보고 그 이국적인 풍경이 조금은 단조롭게 느껴질 쯤 서울로 복귀하곤 하였는데 그 동안 만나지 못한 사이에 그리움이 너무나 컸었는지 아니면 만나는 횟수가 늘어나며 그 감흥이 조금은 줄어 들었는지 몇 년 전 만났던 그 황홀했던 감흥보다는 찬바람이 불어대는 쓸쓸함이 더욱 커지는 이유는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영축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많은 땀방울이 깃들어 있는 신불산으로 이어지는 이국적인 대평원은 여전히 비어있는 이 산객의 가슴속 한곳을 채워주기에 충분한 풍경과 시간이기에 손끝이 아려오는 찬바람 속에서도 조금 더 그 그리움을 채워보는 시간이 되었다.
이제부터 걸어가야 할 남서쪽 방향으로는 오래 전 산친구와 푸르른 대초원이 펼쳐졌던 여름날 여유자작 걸으며 많은 추억을 남겼던 곳이기에 그 추억을 찾아 떠나는 여행 같은 기분으로 걸어보려 하지만 역시나 영축지맥이라는 이름으로 걸어가는 시간이다 보니 옛날 아무 목적없이 그저 영남알프스가 좋아 올랐던 그 시절의 동심은 사라지고 약간의 욕심이 내재되어 있는 목적산행이 되어 조금은 아쉬움도 남겨 본다.
그래도 남성미 물씬 풍기는 옹골찬 바위암릉을 따라 함박등과 채이등 그리고 죽바우등 지나 저 멀리 오룡산 줄지가 미세먼지와 박무속에서도 그 환상의 풍경을 선사하고 있으니 이 산객은 분명 복 받은 산꾼은 아닐까 생각도 해 보는 시간이었다.
오늘은 옆지기도 일본으로 온천여행을 떠나고 큰 딸 아이는 야근을 한다고 늦게 귀가하여 밥 먹기 바쁘며 작은 아들은 알바를 한다고 조금 일찍 나가고 나니 이 산객 홀로 산행 준비를 하며 이것저것 챙기다 보니 벌써 밤 9시가 가까워진 시간이다.
아직까지도 오늘 밤 양산으로 내려갈 것인지 아니면 내일 아침 일찍 가까운 지맥산행에 나설것인지 결정을 하지 못하다가 동서울터미널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양산가는 마지막 밤 11시 30분 심야우등버스의 표가 달랑 2장 남아 있어 재빠르게 예매를 한 후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귀가하는 시간에 지하철을 타고 동서울터미널이 있는 강변역으로 출발한다.
늘 그렇듯 버스에 올라 곧바로 깊은 잠에 빠졌다 선산휴게소에서 잠시 정차하는 시간에 잠에서 깨어났다 버스가 출발하면서 다시 잠에 빠졌다 일어나니 벌써 양산시내를 통과하고 있다.
버스에서 내리니 생각보다 춥지는 않지만 반겨주는 사람 하나없는 황량한 양산시외버스터미널에 불어오는 밤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만들고 있어 시간도 많이 남아 있어 통도사신평터미널로 가는 11번과 12번 양산버스를 탑승할 수 있는 양산시청 앞 버스정류장도 확인할 겸 빠르게 걸어가며 도로를 확인해 본다.
큰 알바없이 양산시청 건너편 버스정류장에 도착을 하니 양산시외버스터미널에서 걸어서 채 15분도 걸리지 않아 도착을 하는데 그곳에는 쉴만한 장소가 없어 다시 조금 속도를 늦춰 천천히 걸어 양산시외버스터미널 근처로 가 식당을 찾아보니 몇군데 문을 연 식당들이 보이고 그중 우동과 국수를 판매하는 24시 식당으로 들어가 따뜻한 우동 한그릇을 비운 후 아주머니에게 TV 시청을 하고 잠시 쉬었다 간다고 하니 손님도 없으니 그렇게 하라며 자리를 내준다.
한시간 이상 그곳 우동과 국수를 판매하는 식당에서 TV 시청을 하고 새벽 5시 10여분에 식당을 나와 천천히 양산시청 앞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니 이제 막 새벽 5시 30분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11번 버스의 운행일정이 안내판에 뜨기 시작하고 잠시 더 기다려 5시 47분쯤 도착한 버스에 올라 추위를 녹여 본다.
걱정했던 첫 대중교통인 11번 버스를 잘 탑승하여 기분좋게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이 그렇게 즐겁고 행복할 수 없었다.
양산시청에서 종점인 통도사신평터미널까지 30여개의 버스정류장을 거치며 가야하지만 새벽 첫차이다 보니 타고 내리는 손님도 많지 않고 도로도 텅텅 비어 있어 생각보다 이른 시간인 새벽 6시 27분쯤 11번 버스종점인 통도사버스터미널에 도착을 하는데 그 사이 잠이 들었는지 기사 아저씨의 깨우는 소리에 정신을 차려 어렵게 버스에서 내려 터미널 내부로 들어가 차 시간표를 사진에 담아 본다.
사진 몇장 남기고 곧바로 터미널 뒷쪽으로 나가 대기하고 있는 택시에 오르니 기본이 무조건 4,000.-원이라기에 타고 산행 들머리인 지산마을 마을버스정류장까지 이동을 하게 되었다.
택시로 채 10여분도 걸리지 않아 지산마을 마을버스정류장에 도착을 하니 이곳 역시 찬바람만 강하게 불어대는 황량한 정류장에 마을버스 한대만이 잠시 후 운행을 기다리며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지산 만남의광장 즉 마을구판장이라는 가게 앞 탁자에 배낭 내리고 산행 준비를 하면서 살펴보니 신평터미널 첫차는 7시 40분발이고 지산에서의 첫차는 7시 25분이니 아직도 한시간 이상 더 기다려야 신평터미널에서 이곳 지산마을로 들어 올 수 있어 택시 이용이 잘 되었다고 스스로에게 위로를 해 본다.
지산리는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에 있는 리로서 정족산과 취서산 사이 골짜기에 위치하여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가운데로 양산천이 흐르는 포강못, 중리못 등이 있는 전형적인 배산임수형의 농촌 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지산골(지산), 독잣골(독자곡), 부돗골, 본지산(당뒤,당후), 서리(당전,당앞), 잔방골(잠암곡), 중마을(평산) 등이 있는데 독잣골은 소가 누워있는 형국이라 하고 본지산은 지산리의 본래 마을이다. 부돗골은 마을에 부도가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문화유적으로 통도사와 통도사 국사당이 있다.
원래 생각은 지내마을로 가 낙동정맥 마루금을 타고 옛 추억을 되살리며 통도환타지아를 통과하는 등로를 생각하다가 이곳 지산마을이 조금 더 가까울 것 같아 방향을 바꿔 진행을 하게 되었다.
산행 준비를 마치고 앞에 보이는 영축상회와 민가가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며 길고도 먼 영축지맥 산행을 시작하는 시간이 채 여명이 밝기도 전인 새벽 6시 43분을 넘어가고 있다.
잠시 오르니 포장도로 좌측으로는 녹색 펜스가 설치되어 있어 잠시 그 도로를 따르니 포장도로는 이제 비포장 임도로 바뀌고 드넓은 공사장처럼 되어 있는데 어둠속이다 보니 보이는 것이 없어 잘 분간은 하기 어렵다.
그 공사장 같은 곳을 지나 계속 진행을 하니 임도 좌측으로 따라오던 철망이 문으로 연결되어 있고 그 문을 살짝 열어보니 열려 그 문을 통해 빠져 나가며 능선으로 접어 든다.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영축산 황토숲길 안내도가 서 있고 잠시 후 등로 우측으로 불빛이 보여 살펴보니 축서암이 경내에 불을 밝히고 조용히 잠에서 깨어나려고 하고 있다.
축서암은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의 사찰로 통도사의 울타리 밖에 있는 4곳의 암자(관음암, 보문암, 축서암, 무량암) 중 하나이며 통도사에서 북서쪽으로 3 Km 떨어진 지점에 있다.
1711년(숙종 37) 창건하였고 지금의 건물은 1863년(철종 14) 중수한 것이라고 하나 정확한 기록은 전하지 않으며 사찰 명은 영축산의 옛 이름이 축서산이어서 옛 산이름을 회상하여 붙인 것으로 추정된다.
절은 남향으로 세워져 햇볕이 잘 들고 주위가 평평하여 편안한 느낌을 주고 선화가로 유명한 승려 수안이 주지로 있으며 무의탁 노인들을 돌보는 사회복지법인 자비원을 운영하고 있다.
절 중에 된장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늘 통도사쪽으로만 발길을 옮겼는데 축서암은 처음으로 어둠속에 지나가는 것이 조금은 아쉽지만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들리면 될 것이다.
축서암을 내려다 보고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하는데 이곳 등로는 여전히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가 열려있어 고속도로를 걷는 기분으로 걸어 본다.
잠시 후 영축산 3-2라는 현위치 이정목이 서 있는데 살펴보니 이곳 해발고도가 고작 295미터라고 적혀있어 적잖게 당황했던 시간이기도 하였다.
그곳을 지나 잠시 후 축서암사거리 이정표를 만나는데 이제 영축산정상까지는 4.0 Km 남아 있다는 거리표시가 이 산객의 마음을 자꾸만 무겁게 만들고 있다.
다시 오솔길 같은 등로를 따라 해발고도 330미터지점을 통과하고 곧이어 345미터, 375미터 이정목을 지나니 축서암분기점 이정표가 나타난다.
사진 한장 남기고 천천히 걸어 오르니 드디어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하고 이제서야 소나무 아래 자갈들이 깔려 있는 등로가 제법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드디어 등로 우측으로 지내마을에서 올라오는 넓은 임도가 이어지고 있고 그 옆에는 지내 3-2 표시가 있는 이정표가 서 있다.
지내마을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남면 가천리 지내마을은 신불산을 할아버지산으로 한 무늘등(문을등) 아래 사자평 자락에 위치하고 있으며 국도 35호선에 접한 마을로서 못 안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뒤로는 금강골폭포에서 흘러내리는 지푸내(심천)를 뒤로하고 강당마을과 접하고 있고 서남으로는 넓은 황무지였으나 사료원종장의 포지, 주축영농부락에서 논밭으로 개간한 들이였다.
지내마을은 본래 가천마을에서 분동된 강당마을에 속해 있었으나 인구증가로 인해 1993년에 분동된 신생 마을이다.
1969년도에 이 일대가 200헥타아르 규모의 공장지역으로 공포되었는데 마을 사람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공장지역으로 정해져 당시 삼성SDI에서 개별적으로 부지매수 교섭이 있었으나 마을회의에 의하여 마을을 존속키로 결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 부락은 공장지역으로 지적고시 된 지역임으로 주택의 신축이나 개축에 대한 심한 규제를 받고 있는 실정으로 현 삼성SDI의 하청업체를 비롯 군소 공장들로 둘러 쌓여 있다.
원호 17호는 모두 순 농가였으나 셋방살이와 공장입주를 합하여 60~70호가 마을을 형성하고 있고 수 개의 삼성SDI의 협력업체와 수 개의 중소기업체가 산재된 마을이다.
지내마을에서 올라오는 이정표 옆에는 이곳을 목장삼거리라 적어 놓은 이정목도 눈에 보이는데 목장은 어느 목장을 말하는지 알 수가 없다.
이제부터 등로는 비포장임도와 능선을 번갈아 타며 걸어 오르게 되는데 그 비포장 임도와 능선 경계선에는 이정목과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어 진행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약간의 바위들이 보이는 해발 500미터 이정목을 지나 비포장임도로 올라서고 다시 돌계단을 타고 능선으로 오르니 지내3-4 이정표가 다시 보인다.
능선을 타고 걸어 오르니 등로는 다시 비포장 임도와 만나는데 이정표에는 이제 낙동정맥이라는 큰 글자가 보이기 시작한다.
조선시대 우리 조상들이 인식하던 한반도의 산맥 체계는 하나의 대간과 하나의 정간 그리고 13개의 정맥으로 이루어진 것이었으며 산과 물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사상에서 비롯된 이와 같은 산맥 체계는 10대 강의 유역을 나누는 분수산맥을 기본으로 삼고 있어 대부분의 산맥 이름이 강 이름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낙동정맥은 낙동강 동쪽에 위치한 정맥으로 이 정맥은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전국토의 근골을 이룬 백두대간의 태백산 줄기인 매봉산 천의봉(구봉산)에서 남쪽으로 갈라져 영천의 운주산(806미터)까지 높이 1000미터에 달하는 산줄기를 형성하고 월성군 서면 아화리의 낮은 구릉을 넘어 다시 경상남도의 가지산을 거쳐 부산광역시 다대포의 몰운대까지로 낙동강 동쪽 하구에서 끝난다.
낙동정맥은 경상북도와 경상남도의 동해안과 낙동강 유역의 내륙을 가르는 분수령 산맥으로 연결되는 주요 산은 백병산(1259미터), 백령산(1004미터), 주왕산(907미터), 주사산, 사룡산(685미터), 단석산(829미터), 가지산(1240미터), 영축산(취서산, 1059미터), 원적산(812미터), 금정산(802미터) 등이며 길이는 약 370 Km에 이른다.
낙동정맥은 2011년 2월부터 시작해 만 1년이 지난 2012년 2월에 다대포 몰운대 앞바다에 서서 산행을 마무리하였으니 만 6년이 지나가고 있지만 이곳 등로는 그 이후에도 두어번 더 내려와 걸었던 마루금이기에 낮설지가 않는 등로이다.
그렇게 옛 추억을 생각하며 천천히 걸어 오르니 이제 영축산정상까지 1 Km 정도 남아 있는 지점에서 소나무 사이로 밝게 떠오르는 아침 일출을 맞이해 본다.
늘 맞이하는 일출이지만 오르는 산행과 계절 그리고 산행하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모두 다르게 느껴지고 달리 보이는 일출인데 오늘은 기분좋은 대박이 날 것 같은 기분으로 맞이하는 해맞이이다.
잠시 그렇게 해맞이를 마치고 오르니 이제 영축산정상까지 1.1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지나 계속 오르막 등로를 이어가 본다.
잠시 후 해발 765미터라는 이정목을 지나고 계속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를 만났다 헤어지기를 반복하다 보니 영축산정상까지 0.8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지나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등로를 만나고 그 좌측 위로 취서산장 돌담이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수많은 띠지들이 빨래줄 같은 줄에 매달려 있지만 찾는 주인장은 보이지 않고 취서산장 간판 아래 나옹선사의 시 한편이 적혀있다.
취서산장은 취서산(현재 영축산) 남쪽 자락에 위치한 대피소로서 울산광역시 울주군의 삼남면 방기리와 경상남도 양산시 사이에 위치한 영축산(1081미터)은 원래 취서산이라고 불렀으며 취서산은 산정상의 바위가 마치 독수리의 부리처럼 생겨 유래한 지명이다.
세종실록지리지(언양)에는 취서산은 현 남쪽에 있다 라고 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언양)에는 취서산은 현의 남쪽으로 12리에 있으며 대석산이라고도 한다 라고 기록한 것을 보면 유래가 오랜 지명임을 알 수 있다. 여지도서(언양)에는 단조성은 다른 이름으로 단지성이라고도 하고 관아의 남쪽 취서산 위에 있으며 돌로 쌓았고 둘레는 4050척이며 성 안에 한 개의 연못이 있으나 어느 시대 때 쌓았는지 알 수 없다.
동쪽과 서쪽 및 북쪽 삼면의 성은 허물어지고 남쪽의 성만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라고 수록하여 산정상에 있는 성터를 언급하고 있다.
취서산은 영축산, 영취산, 축서산 등으로도 부르는데 최근에 영축산으로 통일하였으며 영취산은 신령스런 독수리가 살고 있다는 뜻인데 우리나라 3대 사찰로 불리는 통도사가 위치하고 있다.
예전에 이곳에서 탁배기 한잔 앞에 두고 많은 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시절을 회상해 보니 그때 함께했던 그 산친구들이 그리워지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그 취서산장 앞마당에서 막 떠오른 햇살이 강하게 비추는 곳을 살펴보니 희미하게 내려다 보이는데 좌측의 골드그린골프장과 우측 앞으로 통도환타지아가 보이고 그 가운데 나즈막한 산줄기로 이어지는 낙동정맥이 옛 추억을 되살리며 도도히 흐르고 있다.
그 뒤로는 울산의 울주군 삼동면 일대가 희미하게 조망되고 그 뒤 저 멀리 정족산에서 천성산으로 이어지는 라인이 눈에 들어 오지만 너무나 강렬한 햇살과 미세먼지로 인해 뚜렷하지는 않아 안타까웠던 시간이기도 하였다.
그 좌측 저 멀리 조만간 다시 내려 와 걷고 싶은 남암지맥의 문수산과 남암산을 살펴보지만 그쪽은 이미 막 떠오른 아침 햇살이 삼켜버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조망을 포기하고 다시 그 취서산장을 출발해 본다.
날씨만 좋았으면 조망이 참으로 좋은 취서산장이지만 오늘은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이쪽 울산과 양산까지 미세먼지가 뿌옇게 껴 보이는 것이 없고 더욱이 강렬한 아침 햇살이 막 떠 오른 방향이다 보니 더욱 더 제대로 된 조망과 풍경을 살펴보기는 어려운 아침이다.
아쉬움을 남기고 지산마을과 지내마을로 하산할 수 있는 비포장 임도를 지나 오르니 금새 안전목책과 로프 구간이 보이지만 진행에는 큰 어려움이 없는 곳을 지나 말라있는 샘물터를 통과한다.
이제 해발 910미터라는 이정목과 975미터라는 이정목을 지나 앞을 보니 거대한 바위암릉이 앞을 가로막아 우측으로 우회하며 조심스럽게 걸어 오르고 바위너덜길을 걸어 진행을 하니 다시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보이는데 진행방향 우측으로 방기리 하산 갈림삼거리이다.
상방기리 갈림 삼거리의 상방기리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남면 방기리의 자연마을 중 한곳인 이곳 상방마을은 영축산의 동녘에 위치한 마을로 방기리의 맨 위에 위치하여 상방이라고 하며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방기리는 영축산(취서산) 단조봉 아래 있는 마을로서 단조봉을 영취산(1059미터)이라고도 하는데 소위 영남알프스라는 고산군 중의 하나이며 옛 언양현의 읍지나 양산현의 읍지 기타 향토지를 보면 어디에도 영취산이란 이름은 볼 수 없다.
다만 언양읍지에는 간월산, 신불산, 영취산 일대를 취서산이라 하고 현의 남 12리에 있다 하였고 양산읍지에는 영취산을 대석(화석)산으로 이름 지어져 있다만 언제부터 인지는 알 수 없으나 통도사에서만 영취산을 영축산이라 발음하여 부르고 있으나 틀린 것은 아니다.
영축산은 석가가 설법한 인도의 산을 말하는데 통도사의 뒷산이 인도의 영축산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이와 같은 이름은 방기리에서 동편으로 마주 보이는 문수산의 옛 이름도 청량으로 울산에서는 영축산이라고 불렀다.
방기들은 비록 큰 산 밑에 있으나 한건하여 금강골에 옛부터 사자보를 막고 못을 막아 무늘등(청룡등)을 잘라 수로를 내어 농사를 짓고 있으며 이들 사지보와 사지못은 그 소재지와 몽리구역이 다름으로 사자평의 경작자와 방기들의 경작자간에 물싸움이 자주 일어 난 곳이다.
그러나 하들(하방기)은 저지대라 상부에 있는 넓은 사자평지대의 물이 모이는 곳임으로 비교적 수리가 안전하여 선사시대부터 인류가 살았으며 선사시대의 유적이 남아 있고 하들에서 천석지기가 난 곳이다.
상방과 방기마을은 방기 제1지구와 제2지구 토지구획정리지구로 지정되어 주거지역으로 변모하는 마을이다.
방기는 우리 말로 방터 또는 방대라 하는 마을로서 이곳에 방씨가 많이 살았던 곳임으로 방터 또는 방대라 부른다고 하며 방씨가 살았다고 하는 곳은 청룡등의 고개 밑 굼벌의 남녘각단에 살았다고 전해 오며 방대의 대는 흔히 한자로 다양하며 서사하는 말인데 산아래의 높은 지명에 붙는다.
방터라는 어원으로 추리해서 하는 말인지도 모르겠으나 방기마을은 통도사와는 등 하나 사이에 두고 있으며 4월 초파일이 되면 절에서는 방이 모자라 방을 빌려주는 곳이라 하여 방터라고 한다는 설도 있다.
방기리에 뿌리 내리고 사는 집은 초파일의 행사가 끝날 때까지 찾아오는 많은 인원의 일가친지와 손님을 접대해야 하는 행사를 연례행사로 치뤘다고 하며 이러한 이유로 방터에 사는 집이라면 방이 많아야 한다는 뜻이 내포된 지명인지도 모를 일이다.
방기리는 양산과 경계하고 있음으로 양산생활권과 가까운 편으로 양산시 하북면 순지리 신평 3, 8일의 5일 시장을 많이 이용하고 있으며 전화도 양산국을 이용하고 있다.
도시계획구역 역시 신평도시계획권에 들어 있으며 2000년 울산광역시 기본도시계획조정에 따라 울산도시계획권에도 포함되어 있다.
이곳에서 등로는 좌측 영축산까지 200미터 남아 있다는 방향으로 급격한 오르막 된비알을 타고 올라야 한다.
그 방기마을 갈림삼거리를 지나자마자 등로에는 파란앞이 나풀거리는 키작은 산죽지대가 보이기 시작하고 잠시 후 그 산줅지대는 사라지고 바위돌들이 가득한 등로로 변하면서 급격한 오르막 된비알로 변하고 있다.
조심하며 오르니 해발 1040미터라는 이정목을 만나고 잠시 후 드디어 주능선에 도착을 하는데 제일 먼저 북쪽인 신불산 방향을 살펴보니 민둥의 억새평원이 갈색으로 변해 저 멀리 신불산으로 이어지는 영남알프스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토록 보고 싶고 오르고 싶었던 영알이지만 왠일인지 예전같은 감흥은 사라지고 그저 평범하지만 조금은 이국적인 풍경이 가슴속으로 남겨진다는 느낌이라 어색하기만 하다.
몇번인가 내려 와 많은 땀방울을 흘리며 걸었던 등로인데 왜 이리 그 때의 그 큰 감동과 감흥이 없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아침이다.
신불산으로 이어지는 멋진 영남알프스를 살펴보고 오르니 작은 돌탑이 보이고 그 돌탑 좌측으로는 길게 이어진 바위암릉이 보이는데 바로 전 어렵게 우측으로 우회하며 올랐던 바로 그 바위암릉이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그 바위암릉을 타고 끝자락까지 가 보기로 하고 잠시 더 걸어 진행을 하다 등로 앞을 살펴보니 울산시 삼남면쪽 마을들과 저수지 그리고 울산하이테크밸리 일반산업단지의 풍경들도 내려다 보이지만 미세먼지와 박무로 인해 희미하기만 하다.
그 뒤로 보여야 할 남암지맥의 문수산과 남암산 그리고 그 남암지맥 산줄기를 찾아 보지만 지척에 두고도 볼 수 없는 미세먼지가 아쉬울 따름이다.
이제 눈을 남쪽으로 돌리니 정족산과 천성산 방향은 여전히 미세먼지와 박무로 인해 안개가 드리워진 것처럼 뿌옇게 보이고 그 봉우리만 존재감을 살짝 알려주고 있다.
그렇게 조금 더 조망을 즐기가 남서쪽을 살펴보니 이제부터 영축산 정상으로 올라 걸어 진행을 해야 할 영축지맥의 죽바우등과 그 뒤 저 멀리 오룡산이 제법 아름다운 남성미를 뽐내며 길게 이어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그렇게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그 바위암릉 끝자락까지 갔다 조망이 없기에 다시 뒤돌아 나오니 영축지맥 마루금은 여전히 그 아름다운 남성미를 마음껏 뽐내고 있다.
그 바위암릉을 타고 끝자락까지 다녀오는데 바람이 얼마나 강하게 불고 있는지 몸이 흔들릴 정도이기에 조심 또 조심하며 진행을 해 본다.
사진 몇장 남긴다고 장갑을 벗었더니 손끝이 아려오고 다시 작은 돌탑이 서 있는 바위암릉 초입으로 뒤돌아 나와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저 멀리 또 다른 돌탑 하나 지나 영축산 정상부의 커다란 정상석이 군계일학으로 다가온다.
참으로 많이도 만났던 영축산 정상인데 이번에는 이렇게 찾기가 그리 힘들었는지 몇 년이 지나서야 다시 찾게 된 정상이다.
내려가기 아쉬워 우측인 북쪽의 신불산으로 이어지는 환상의 영남알프스 능선과 좌측의 남서쪽으로 흐르는 오늘 이 산객이 걸어야 할 영축지맥과 영남알프스 실크로드라는 산줄기르 다시 가슴에 담고 사진으로 남기며 내려가니 해발 1080미터라는 이정목이 보이고 곧이어 영축산정상이라는 이정표를 지나 거대한 정상석이 서 있는 영축산 정상에 도착을 해 셀카놀이를 하면서 추억 한장 남겨 본다.
영축산(1081.1미터)은 가지산도립공원 구역 내에 있는 해발 1059미터인 영축산은 경관이 수려하여 영남알프스라 불리며 일명 취서산이기도 하는데 이 산은 가지산에서 남쪽으로 뻗은 줄기가 능동산에 이르러 두 줄기로 갈라진다. 남서진하는 줄기는 밀양의 천황산에서 제약산으로 이어지고 동쪽으로 내려와 배내고개를 건너서 남진하는 줄기는 간월산과 신불산을 지나 영축산에 이르는데 특히 영축산의 첫머리와 연결된 광활한 능선은 억새밭의 천국을 이루고 있다.
산 아래 뻗어있는 계곡은 통도사 주변 암자와 연결되어 있어 산책하기 좋은 코스이기도 하다.
영축산 통도사는 양산8경의 제 1경이고 그 밖의 8경으로는 천성산, 내원사계곡, 홍룡 폭포, 배내골, 천태산, 오봉산 임경대, 대운산 탑골휴양림 등이 있다.
영축산은 석가모니가 화엄경을 설법한 고대 인도의 마가다국에 있던 산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한자 표기는 영축산(靈鷲山)과 취서산(鷲栖山) 두 가지로 표기되지만 이에 대한 한글 표기는 영축산과 영취산 및 축서산 그리고 취서산 등으로 표기되어 있어 혼동을 불러 일으켰는데 이 같은 현상은 한자 취 또는 축(鷲)자에 대한 한글 표기의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일반 옥편에서는 독수리 취라고 표기되어 있으나 불교에서는 축으로 발음하는 것이 보편적이고 취 또는 축 자가 원래 축으로 표기되었다는 근거는 1463년(세조 9)에 간경도감에서 간행된 법화경언해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산 이름 혼동의 원인은 불교에서 유래된 축(鷲)자를 일반인들이 접하기 쉬운 한자사전의 표기 취로 읽기 시작하면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이러한 혼동을 피하기 위해 2001년 1월 9일 양산시 지명위원회에서 영축산으로 확정되어 지금은 영축산이란 이름 하나로 통일되어 불려진다.
서울에서 내려 와 영남알프스나 7산 9봉 종주산행 또는 오룡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산행을 진행하게 되면 늘 배내고개 또는 석골사가 들머리로 이용되고 그러다 보니 이곳 영축산은 끝자락에 속해 늘 시간에 쫒기듯 다녀갔던 기억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신불산으로 이어지는 영남알프스 능선은 방금 전까지 많은 사진으로 남기고 가슴속에 추억으로 남겼기에 그 좌측 저 멀리 영남알프스의 최고봉인 가지산과 그 좌측으로 흐르는 운문지맥의 주봉인 운문산 줄기를 찾아 보지만 그곳은 더욱 심한 미세먼지와 박무로 인해 보이는 것이 전혀 없다.
아주 희미하게 눈으로 보이는 봉우리만 살짝 확인하고 사진에 담아 보지만 역시나 사진에는 그 모습을 찾을 수 없기에 더욱 아쉬운 마음이다.
오늘 보여주지 않고 직접 내려 와 만나라고 하니 조만간 운문지맥이란 이름으로 다시 한번 더 내려 와 이번에는 저 가지산과 운문산 줄기를 걸으며 이곳 영축지맥의 산줄기들을 찾아보는 시간도 가져봐야 할 것 같다.
그 운문지맥 마루금 좌측으로 영남알프스의 또 다른 한축을 담당하고 있는 북서쪽의 천황산과 재약산이 고개를 내밀고 그 옛날 고운 추억을 쌓았던 시절로 뒤돌리고 있다.
건강을 위해 산행을 막 배우기 시작하면서 영남알프스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듣고 불현듯 60리터 배낭에 2일간 먹고 쉴 수 있는 산행 준비를 한 다음 겁도 없이 야간열차를 타고 홀로 밀양으로 내려 와 9개산을 모두 돌아보고 큰 감명을 받은 후 참으로 자주 찾았던 곳들인데 이제는 언제 다시 그런 여유와 용기를 가지고 다시 찾을 수 있을지 궁금하기만 하다.
억새가 하얗게 피어나는 계절에 다시 한번 그 그리움을 털어내고 속세의 근심 걱정 모두 털어버리고 여유자적하게 걸어 볼 수 있기를 희망도 해 보는 시간이다.
한동안 더 그곳 영축산 정상에서 시간을 보내고 온 몸의 땀이 식으면서 한기가 돌쯤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 그 영축산 정상과의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누는데 오늘 아침 이 시간까지 이곳 영축산을 찾는 등산객 한명을 만나지 못해 못내 서운한 시간이기도 하였다.
오늘은 어짜피 배태고개에서 오후 5시 30분 전후로 통과 에정인 원동역과 태봉을 운행하는 2번 버스를 타고 원동으로 나가 하룻밤 묵어야 하기에 급할 것 없이 버스 시간에 맞춰 여유를 가지고 걸어 보는 시간이기에 사진만 늘어나는 시간이다.
약간 얼어있는 바위암릉을 따라 조심하며 걸어 내려가니 북서방향으로 진행해야 할 죽바우등과 오룡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환상으로 다가오고 그렇게 많은 추억을 남기며 진행을 하니 천정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는 안부에 도착을 한다.
등로 좌측으로는 50미터 아래에 약수터가 있고 그 길로 쭉 내려가면 비로암으로 하산 할 수 있는 등로 표시가 되어 있지만 내려가는 등로가 쉽지 않아 위험구간으로 산행주의라는 표시가 함께 적혀있다.
등로 좌측으로 약수터와 비로암 하산 갈림길이 있는 천정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는 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등로 옆으로는 사람 키만큼 자란 산죽이 빼곡하게 채우고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오르니 이제 산죽지대가 끝이나고 바위암릉이 나타나는데 그 바위암릉에 올라 뒤돌아 보니 영축산 정상석이 저 멀리 멀어져 있다.
다시 억새마대가 깔려있는 부드러운 오르막 억새 능선을 타고 완만하게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신불평원과 신불산이 아름답게 펼쳐 보이고 그 좌측으로 가지산이 희미하게 얼굴을 내밀려 존재감을 알려오지만 여전히 아쉽기만 하다.
다시 이어지는 빛바랜 억새를 친구삼아 꾸준하게 오르니 고김성국추모비가 보이고 그 옆으로 녹슨 철제구조물이 서 있는데 아마도 산불감시초소였다가 상부 구조물은 사라지고 철제 다리만 남겨진 것처럼 보이는 구조물이다.
지도를 보니 1059.9미터봉으로서 이곳 정상에서의 조망과 풍경 역시 환상적이지만 오늘은 미세먼지와 박무로 인해 시야가 제한되어 아쉽기만 하다.
지나온 영축산과 가야 할 영축지맥 마루금 상 죽바우등과 오룡산을 살펴보고 등로 우측의 신불평원과 신불산을 사진에 담은 후 천천히 그 1059.9봉을 출발해 내려가니 해발 1035미터라는 이정목을 만나고 다시 평이한 산죽등로를 타고 무명안부를 지나 바위암릉으로 오르니 예전에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던 자리에 로프는 사라지고 안전목책만 남아 있는 등로를 따른다.
언덕으로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소나무와 거대한 바위암릉이 나타나고 그 바위암릉을 좌측 우회등로를 통해 우회하며 통과하니 진행방향으로 죽바우등이 조금 더 뾰족한 모양으로 더 가깝게 다가와 있다.
등로 좌측으로 울산과 양산쪽 시가지와 정족산과 천성산으로 이어지는 낙동정맥 마루금을 살펴보지만 전혀 보여줄 기미도 없어 아쉬운 카메라만 탓하며 진행하니 이번에는 등로 우측 제일 먼곳부터 천황산과 재약산 그리고 향로산과 향로봉이 차례로 이어지며 희미한 산줄기를 보여주고 있어 위안을 삼아 본다.
그 뒤로 보여야 할 청도의 화악산과 그 주변 산들을 찾아 보지만 역시나 미세먼지와 박무로 인해 보이는 것 하나 없어 아쉬움만 달래보는 시간이다.
커다란 바위암릉을 우회해 언덕으로 오르니 다시 바위벽이 나타나고 그곳에는 굵은 로프가 설치되어 있어 그 로프를 잡고 조심하며 내려가 본다.
잠시 내려가니 등로는 주능선에서 우측으로 10여미터 떨어진 사면 등로를 타고 진행이 되고 잠시 후 조망이 터지는 곳에 도착을 해 진행방향을 살펴보니 가까운 함박등에서 채이등과 죽바우등까지 시원하게 올려다 보이는데 그 죽바우등 뒤로 보였던 오룡산은 이제 능선에 가려 그 모습이 사라져 버렸다.
잠시 더 진행을 하니 영축능선4라는 이정표를 만나고 그곳을 지나니 눈 앞에 거대한 바위봉이 가로막아 우측으로 우회하며 걸어 올라 본다.
곧이어 나타나는 나무계단을 타고 오르니 앙증맞은 함박등 정상석이 반겨주는데 지도에는 1051.9미터로 표기된 곳이다.
추억 한장 남기고 사방팔방으로 펼쳐진 일망무제의 조망과 풍경이 아름다워 잠시 배낭 내리고 쉬어 가기로 한다.
함박등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지만 찾을 수 없었는데 다만 함박은 나무를 파서 큰바가지처럼 만든 그릇이고 등은 봉우리보다 조금 작은 정상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를 하면 큰바가지처럼 보이는 봉우리라서 붙여진 이름은 아닐까 혼자 추측을 해 본다.
함박등 정상에서의 조망과 풍경 역시 환상적인데 제일 먼저 지나온 영축산 방향을 살펴보니 영축지맥 마루금이 한눈에 들어 오고 그 좌측 저 멀리 신불평원 지나 신불산으로 이어지는 영알 능선도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북쪽으로 가지산과 운문산은 여전히 직접 와서 만나라고 전혀 보여줄 기미가 없고 북서쪽으로 천황산과 재약산이 봉우리만 살짝 내밀고 존재감을 알려온다.
진행 방향으로는 함박등 바로 아래 안전목책과 로프 구간을 지나 함박재란 안부와 채이등을 지나 죽바우등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능선이 마치 아름다운 여인이 춤을추듯 다가와 있다.
등로 좌측으로는 여전히 강렬한 햇빛에 반사되어 보이는 것이 전혀 없는데 거대한 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 한곳에서 거울이 강렬한 햇살을 반사하듯 빛을 반사시켜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그 함박등에서 쉬며 많은 사진을 담고 다시 출발하면서 뒤돌아 보니 지나온 영축지맥 마루금 저 멀리 영축산에서 좌측의 신불평원 지나 신불산으로 이어지는 아름답고 이국적인 영남알프스 능선이 자꾸만 발목을 잡고 늘어져 사진 몇장 더 남기고 출발해 본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어렵게 옮기며 그 함박등을 내려가니 등로에는 커다란 바위들이 산재되어 있고 조심하며 내려가니 등로 좌측의 천길 낭떨어지 방향으로 안전목책과 로프가 살치되어 있는 등로를 만나 편안하게 걸어 내려가 본다.
잠시 내려가다 등로 좌측을 보니 거대한 함박등 바위 옆으로 새끼 손가락 같은 바위 하나가 튀어 나와 있는데 그곳 정상부에도 누군가 올려 놓은 바위들이 보여 잠시 위험한 상상도 해 보는 시간이다.
조금 더 내려가니 뒤돌아 보니 이제는 함박등 바위를 포함한 지나온 영축라인이 아름답게 빛나고 다시 카메라를 꺼내 몇장의 추억을 남긴 후 진행해 본다.
앞으로 진행 방향으로도 환상으로 펼쳐진 능선을 살펴보며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함박재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등로 좌측으로는 백운암 하산 갈림삼거리 이정표도 서 있다.
오래 전 산친구와 여름에 올라 이곳에서 개복숭아를 채취하고 통도사를 통해 부산친구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올라 온 추억을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이곳 함박재 역시 정확한 지명유래는 찾을 수 없었는데 당연히 함박등이 있어 붙여진 안부 이름이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함박재를 지나 주능선을 좌측으로 보내고 우측으로 잘 발달된 사면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걸어가니 등로 좌측 위 능선상에 봉우리라 생각되는 곳이 보여 잠시 좌측 사면 등로를 치고 올라가 보니 아니나 다를까 채이등이 그곳에 몸을 숨기듯 숨어 있다.
선답자들의 띠지 몇장이 붙어 있고 누군가 나무판에 채이등이라고 적어 놓은 정상판이 전부인 채이등이지만 우측 사면 등로를 타고 그냥 지나쳤으면 후회가 될뻔 했던 채이등과의 만남이다.
채이등 역시 지명에 관한 자료를 찾지 못해 아쉽기만 한데 왜 채이등이 되었을까 궁금하기만 하다.
채이등 주변으로는 키가 큰 잡목들이 자라면서 조망과 풍경을 전혀 볼 수 없는 봉우리로서 정상판만 사진에 담고 그 채이등을 지나 약간의 잡목지대를 헤치고 진행을 하니 영축능선8이라는 이정표를 만난다.
잠시 후 지나온 방향의 영축라인이 좌측의 신불평원과 함께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런 멋진 조망을 즐기며 진행을 하니 바위봉에 도착을 해 진행 방향으로 위세가 대단한 죽바우등을 다시 한번 확인해 본다.
다시 진행에 앞서 뒤돌아 보니 이제 저 멀리 영축산 정상부의 정상석은 보이지 않고 그 좌측으로 이어지는 영알 능선이 언제 다시 만날 수 있느냐며 아쉬워 하고 있다.
너무나 아름답고 환상적인 조망과 풍경에 다시 발걸음이 느려지고 있지만 날머리까지의 시간이 충분하기에 조금 더 여유를 부려본다.
등로 좌측으로 울산과 양산쪽 시가지를 살펴보지만 여전히 짙은 연무로 보이는 것이 하나도 없고 그 옆으로 흐르는 낙동정맥 역시 보이는 것 하나 없어 답답하기만 하다.
그래도 지나온 영축지매ㅔㄱ 마루금과 진행 방향으로 남성미 물씬 풍기는 암릉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으니 참고 진행이 가능한 시간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한동안 더 전만바위에서 조망과 풍경을 즐긴 후 다시 그 바위를 넘어 진행을 이어가니 죽바우등이 아주 가깝게 다가 와 있다.
약간의 잡목을 헤치고 걸어 진행을 하니 고도차이가 별로 없어 생각보다 산행속도가 제법 나는듯 느껴지는 시간이다.
한동안 전라도의 거친 잡목과 가시 등로를 헤치고 다녔더니 이곳 영남의 지맥 산줄기는 고속도로처럼 느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여유롭게 걸어 전진하니 드디어 거대한 바위암릉 앞에 도착을 하고 이곳에서도 바위 우측으로 돌아 오르니 어렵지 않게 죽바우등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겨 본다.
흐르던 땀방울이 식고 바람이 약간 불고 있어 추위가 밀려오고 있어 배낭 내려 방풍 자켓을 입고 간식을 먹으며 허기를 달랜 후 출발하기로 한다.
죽바우등 역시 근사한 지명유래나 이야기가 전해질 듯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죽바우등에 관한 자료를 찾을 수 없어 가슴으로 느끼고 담아 오는 것으로 만족하는 시간이었지만 여전히 아쉬움도 남아 있다.
준비한 빵과 과일로 허기를 달랜 후 본격적으로 죽바우등에서의 조망과 풍경을 즐겨보는 시간이다.
제일 먼저 지나온 방향인 북동쪽을 살펴보니 바로 앞 부드러운 능선을 타고 채이등이 잡목속에 갇혀잇고 그 뒤로 이어지는 천길 단애의 함박등이 뾰족한 첨봉을 자랑하며 우뚝 솟아 있다.
그 우측으로 돌아가며 남동쪽으로 천길 단애를 이루고 있는 영축지맥 등로가 저 멀리 영축산까지 이어지고 그 영축산에서 좌측으로는 빛바랜 억새 능선이 장관을 이루고 있는 신불평원과 그 좌측 끝자락에 신불산이 어머니 품처럼 넉넉한 인심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고 또 그리워지는 영알이자 영축지맥 마루금이다.
남서쪽으로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한동안 이 죽바우등에 가려 보이지 않던 시살등과 오룡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다시 본 모습을 드러내며 이 산객을 부르고 있다.
시살등까지는 두어번 들렸었지만 오룡산가는 등로부터는 초행길이기에 더욱 기대가 되는 산줄기로서 그 모습 하나 하나를 모두 가슴속 깊이 새겨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제법 멀게 느껴지는 오룡산이지만 생각보다 큰 고도차이가 없어 보이기에 꾸준하게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금새 또 저 정상에 도착을 해 이곳을 살펴보며 지나간 추억을 되새겨 보는 시간도 있을 것이다.
그동안 잘 보이지 않던 소나무들이 제법 아름다운 모습으로 등로 옆을 채우고 있어 또 다른 산행의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진행해 온 방향과 진행해야 할 방향의 영축지맥 마루금을 살펴 본 후 북서쪽을 살펴보니 바로 아래 배내골의 펜션 단지들이 내려다 보이고 그 위로 천황산과 재약산이 반야봉을 닮아 있는 모습으로 우뚝하고 그 가운데 보여야 알 사자평은 미세먼지놔 박무로 인해 보이지 않는다.
그 우측으로 돌아 자세히 살펴보니 능동산이 살짝 드러나 있고 그 우측 저 멀리 가지산이 정상부만 살짝 하늘금에 걸려 있는 모습으로 드러나 있지만 보고 싶은 운문산은 여전히 그 모습을 숨긴채 보여주지 않는다.
이 그리움이 커지면 다음주 다시 내려 와 저 운문지맥 산줄기를 따라 걸어 볼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한동안 그 죽바우등에서 배낭 내려 휴식을 취하며 간식으로 허기를 달래며 환상의 조망과 풍경을 즐긴 후 천천히 그 정상을 내려오니 등로에는 지금까지 잘 보이지 않던 커다란 소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등로를 따라 힐링하듯 걸어 보는 시간이다.
잠시 후 소나무 등로가 끝이나고 커다란 바위암봉이 나타나는데 그곳으로 올라 가 보니 진행방향으로 또 다른 환상의 조망이 펼쳐져 있어 잠시 발걸음 멈추고 그 봉우리 이름들을 맞춰 본다.
한피기고개 지나 시살등이 보이고 그 넘어 저 멀리 오룡산이 우뚝 솟아 잇는 모습이 뚜렷하게 다가와 있다.
바위봉을 내려가며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올라 휴식을 취하고 허기를 달랬던 죽바우등의 바위봉이 우뚝 솟아 잇는 풍경이 눈에 들어 온다.
다시 이어지는 소나무와 관목 사이로 나 있는 뚜렷한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지난 가을 이곳을 아름답게 수놓았을 빛바랜 억새 군락지가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니 다시 등로는 평이한 소나무와 관목들이 자라는 등로로 이어지는데 원마루금은 등로 좌측 위로 올려다 보인다.
등로 좌측 위로 966.5봉이 평이한 능선의 모습으로 올려다 보이는데 오를 수 잇는 등로도 희미하고 특별한 것도 없어 아쉽지만 등로에서 올려다 보며 사진 한장 남기는 것으로 대신해 본다.
급하지 않게 여유있게 꾸준히 걸어 전진하니 등로는 다시 정상 마루금으로 복귀하고 빛바랜 억새들이 자랐다 말라죽은 언덕을 넘어 참나무가 호위하듯 늘어서 있는 낙엽 등로를 따라 걸어 간다.
다시 커다란 소나무와 억새가 혼재되어 있는 뚜렷한 등로를 따르니 갈림사거리 이정표가 서 있는 한피기고개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등로 좌측으로는 서축암을 통해 통도사로 하산할 수 있는 등로가 열려있고 우측으로는 배내골과 청수골로 내려갈 수 있는 등로가 열려있는 갈림사거리 안부이다.
이곳 영축지맥의 산줄기에 있는 봉우리나 고개 이름에 관한 자료들이 없어 산줄기 종주 산행을 하면서 이렇게 답답한 시간은 처음인 듯 싶다.
한피기고개에서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시살등으로 향하는데 시살등 방향으로는 거리 표시가 사라져 아쉬움이 남는다.
한피기고개를 지나니 등로는 다시 빛바랜 회색빛 억새가 넘실거리고 그 등로 좌측으로 진행해야 할 오룡산과 그 넘어 저 멀리 희미한 염수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빛바랜 억새 등로 위로 커다란 소나무들이 아름답게 자라며 그 나무가지들이 억새군락지 위로 펼쳐져 있다.
한동안 부드러운 등로를 타고 걸어 오르니 더욱 많은 억새들이 눈에 들어 오고 잠시 후 민둥의 억새 봉우리인 시살등 정상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더 남겨 본다.
시살등의 역사는 꽤 오래된 듯 보이는데 자료에는 임진왜란의 역사부터 시작을 한다.
임진왜란 때 아군은 영축산 인근 단조산성을 거점으로 왜군과 싸웠지만 수적인 열세와 영축산의 산세를 파악한 왜군에 끝내 산성을 빼앗기고 말았는데 단조산성(터)은 신불재에서 영축산으로 가는 능선 길 우측에 위치해 있으며 지금은 산성이라기보다 산성흔적이라 해야 맞을 듯 싶은 산성터이다.
산성을 빼앗긴 후 아군이 다시 전열을 정비한 곳이 바로 이곳 시살등으로 이름은 소등처럼 부드러운 이곳에서 왜군과 마지막 항쟁을 하며 화살을 많이 쏘았다는 데서 화살 시에 화살 살자 그리고 고개등자를 써서 시살등이라 명명됐다고 전해지는 봉우리이다.
일반 등산객들은 이곳 시살등에서 등로 우측인 청수골을 거쳐 배내골로 하산하는 경우가 많은 봉우리이기도 하다.
시살등에서의 조망 역시 멋지고 아름다운데 북서쪽으로 조금 더 선명하게 드러난 천황산과 재약산이 보이고 그 우측 멀리 가지산 정상부도 미세먼지 속에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 천황산과 재약산 좌측 아래로는 향로산과 백마산 줄기도 조금 더 가까운 위치로 내려 와 있다.
진행 방향으로는 오룡산이 다가와 있고 등로 좌측인 남쪽으로는 낙동정맥의 정족산과 천성산이 조금은 제 모습을 갖추고 봄으로도 당당하게 실루엣으로 보여주기 시작한다.
그렇게 한동안 그 시살등 정상에서 조망과 풍경을 즐기고 다시 천천히 정상을 출발하니 평이한 억새 등로가 열려있고 그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다시 작은 바위암릉이 보이고 그곳에서 진행방향으로 오룡산을 다시 한번 조망해 본다.
진행 방향을 살펴보고 뒤돌아 서 지나온 방향을 살펴보니 방금 전 걸어 넘어 온 시살등이 지척이지만 멀어지기 시작하고 그 우측으로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저 멀리 죽바우등이 드높은 모습으로 하늘을 향해 솟아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제 영축산은 죽바우등에 가려 보이지 않고 시살등 위 저 멀리에는 신불산의 정상부만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있어 생각보다 제법 멀리 진행되어 왔음을 느끼는 시간이다.
이제부터 등로는 관목 등로로 열려있어 진행에 거침이 없고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을 이어가 보는 시간이다.
바람에 날려갔는지 관목 밑에 보여야 할 낙엽들은 한장도 없이 깨끗한 등로로 이어지고 곧이어 잡목과 억새가 혼재되어 있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잠시 후 거대한 바위암봉이 눈 앞에 다가와 있고 그 바위를 좌측에 두고 우측 사면 등로로 우회를 하니 빛바랜 억새가 강렬한 햇살에 반사되어 반짝이고 있다.
그 억새 등로를 지나니 잠시 민둥의 등로가 열리고 부드러운 고속도로 같은 등로를 따르니 등로 우측으로 배내골의 펜션 건물이라 생각되는 건물들도 빤히 내려다 보이고 그 위로 향로산과 백마산 줄기가 병풍처럼 둘러쳐진 모습도 보이기 시작한다.
다시 바위무명봉에 올라 뒤돌아 보니 시살등이 저 멀리 멀어져 가고 진행방향으로는 커다란 바위봉 넘어 오룡산이 손에 잡힐듯 다가와 있다.
잠시 낙엽 등로를 타고 무명안부를 통과해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통도사임도로 내려갈 수 있는 갈림삼거리 이정표를 지나고 오르막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산죽과 바위 등로를 지나 또 다른 바위봉 앞에 서게 되는데 그 바위봉을 좌측에 두고 우측 우회 등로를 따르니 동굴 하나가 보인다.
그 동굴을 지나 조금 더 걸어 진행을 하니 토굴삼거리라는 이정표가 보이는데 방금 전 지나온 동굴을 이곳에서는 토굴이라 부르고 있는듯 보였다.
등로 우측으로는 배내골과 장선마을로 하산할 수 있는 갈림삼거리로서 이제부터는 한동안 좌측의 주능선을 두고 우측의 사면 등로를 타고 관목사이로 나 있는 뚜렷한 등로를 따라 진행을 하게 된다.
잠시 후 등로 좌측으로 커다란 바위암릉을 통과하고 한동안 평이한 사면 등로를 따르니 이곳 등로에도 역시 낙엽이 얇게 깔려 있는 관목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다시 억새와 소나무가 보이는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저 멀리 오룡산이 지척으로 다가와 있고 잠시 후 억새가 무성하게 보이는 무명안부에 도착을 해 잠시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소나무 한그루와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는 억새안부를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다 뒤돌아 보니 오늘 걸어 온 영축지맥 마루금이 한눈에 펼쳐져 있는데 그 등로 우측 사면은 천길 낭떨어지의 단애로 이뤄져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등로 우측으로 여전히 배내골이 내려다 보이고 그 위로 향로산과 백마산 줄기가 여전히 드높게 올려다 보이는 풍경을 감상하며 전진하니 드디어 진행 방향으로도 염수봉이 제법 뚜렷한 모습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진행을 하니 바위암릉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곧이어 오석의 정상석과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는 오룡산 정상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겨 본다.
오룡산은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959미터이며 영남 알프스 최대의 골짜기인 배내골을 끼고 있어 주말과 휴일이면 사람들이 많이 찾는 산이다.
골짜기들이 예전에 비해 오염되고 많이 훼손되었지만 통도골과 도터진골(도태정골)은 원시의 자연을 아직 간직하고 있으며 통도골은 원동면 선리 새들마을에서 통도사로 넘어가는 가장 빠른 길이고 도터진골은 깨침을 받은 골짜기라는 뜻이고 두 골짜기는 산 아래로 내려오면서 하나로 합쳐져 통도-도터진골이라고 부른다.
등산코스는 청수우골길과 청수좌골길의 두 가지가 있고 백련사 입구에서 배내천을 건너 청수골산장 왼쪽 길로 가다보면 두 갈래 갈림길이 나오는데 왼쪽은 파래소폭포로 오르는 청수좌골 길이고 오른쪽은 청수우골 길이다.
우골길로 가면 경사가 심하지 않아 오르기가 쉽고 계류를 건너면서부터 조금씩 경사가 심해지며 영남 알프스 주능선 한피기고개에 닿는다.
한피기고개에 서면 영취산에서 남쪽으로 뻗은 능선과 울산만의 모습이 보이고 고개에서 북쪽으로 가면 영취산, 동쪽으로 가면 극락암을 지나 통도사, 남쪽으로 가면 오룡산이며 남쪽 능선을 따라 시살등을 지나 갈림길에서 직진해 남쪽 능선길을 10여 분 더 가면 정상이다.
정상에서 남서쪽 능선길을 타고 영남 알프스의 끝봉우리 염수봉에서 왼쪽으로 뻗은 능선을 가다보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어느 길로 가도 괜찮지만 바위 능선에 자신이 없으면 우회하는 것이 좋다.
산행로를 따라 임도에 닿으면 하산길이 여러 갈래 있으며 임도 왼쪽으로 들어서 백련암을 지나 통도사로 하산할 수도 있고 임도 건너 산길로 올라 묘지 왼쪽 아래의 산길을 지나 돌무덤이 있는 봉우리에서 왼쪽으로 계류를 따라 해운자연농원 눈썰매장으로 하산할 수도 있다.
하산까지 7시간 정도 걸리며 대중교통편은 언양읍 언양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골행 버스를 타고 양산시 원동면 선리의 백련사 입구에서 내린다. 열차를 타면 원동역에서 내린다.
이곳 역시 영남알프스의 실크로드길로 이어지지만 이 산객에게는 처음으로 밟아보는 등로이기에 걱정도 되면서 기대감도 커지는 시간이 되었다.
오룡산에서의 조망 역시 일망무제로 멋지고 아름다워 잠시 배낭 내려 놓고 휴식을 취하고 출발하기로 한다.
지나 온 등로 방향으로 저 멀리 끝자락에 영축산이 보이고 그 아래로 내려오며 오늘 이 산객이 발자국을 남겼던 죽바우등과 시살등이 차례로 이어지고 있다.
그 좌측으로는 오늘 오전 내내 보였던 천황산과 재약산이 영축능선에 가려 보이지 않고 그 대신 백마산이 아주 가깝게 다가 와 있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그 좌측인 북서쪽으로는 배내골이 내려다 보이고 송전탑이 줄지어 흐르는 산줄기가 이어져 있고 진행 방향으로는 도라지고개 지나 우측으로 828봉이 보이고 중앙 저 멀리 염수봉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도 보이기 시작한다.
그 염수봉 좌측 뒤로는 천태산이 보이고 염수봉 우측으로는 내일 걸어 올라야 할 금오산도 희미하지만 그 존재감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잠시 쉬면서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기다 보니 흐르던 땀이 식으면서 약간의 한기를 느끼고 다시 배낭 둘러메고 앞으로 진행을 이어가 본다.
진행 방향을 살펴보며 바위암릉 구간을 내려가 진행을 이어가니 잠시 부드러운 소나무 등로가 열리더니 금새 다시 바위등로가 보인다.
그 바위지대를 통과하니 전형적인 흙산에 소나무가 자라는 등로로 변하면서 진행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한다.
잠시 부드러운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 완만하게 내려가니 억새 등로가 보이고 등로는 다시 멋진 소나무 마루금으로 이어지고 있어 힐링하듯 걸어 본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가니 커다란 소나무들이 형제처럼 붙어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고 잠시 후 완만하게 올라 많은 가지들을 가지고 있는 커다란 소나무 한그루가 인상적인 842.2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그 소나무봉을 지나 여전히 눈에 보이는 커다란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바위 하나가 박혀 있는 무명봉을 넘고 비포장 임도같은 수레길을 따라 빠르게 걸어 내려가니 어디선가 가까운 곳에서 기계음이 들리기 시작하는데 방금 전 이 산객이 걷고 있는 이 등로를 타고 경운기인지 농기구를 끌고 올라간 바퀴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어 궁금하기만 하다.
이제부터 차량 바퀴 자국이 나 있는 넓은 등로를 타고 아주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등줄기에서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하고 다시 나즈막한 무명안부를 지나 만나는 갈림삼거리에서 우측으로 흐르는 등로를 버리고 좌측의 잡목 등로를 따라 오르니 등로 옆에는 여전히 커다란 소나무들이 즐비하게 자라고 있다.
별 특징 없는 뚜렷한 소나무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제선충 방지를 위한 벌목된 나무들을 훈증하는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곧이어 자동차 두대가 주차되어 있는 비포장 임도의 도라지고개에 도착을 해 사진 몇장 남겨 본다.
왜 이곳이 도라지고개가 되었는지에 관한 자료는 찾지 못하였지만 다른 지역의 도라지고개를 찾아 보니 우리가 알고 있는 먹는 식물의 도라지가 아닌 고개가 험하여 올라가다가 쉬게 되면 금세 졸음이 오는 고개라 하여 조라지 고개라고 하였고 이것이 도라지 고개로 변하였다라는 자료가 있어 이곳 역시 내석리와 선리를 이어주는 고개로서 지금이야 비포장 임도가 개설되어 쉽게 넘나들지만 옛날에는 험했던 고개가 아닐까 추측을 해 본다.
도라지고개 비포장임도를 가로질러 다시 능선으로 오르니 등로는 여전히 뚜렷한 산길로 이어지고 있어 진행에는 전혀 어려움이 없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멋진 소나무 등로를 타고 걸어 오르니 잠시 후 등로는 다시 관목 등로로 바뀌는데 잎이 모두 져 앙상한 관목 가지 사이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마루금이 아주 인상적이다.
다시 약간 가파라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는데 우측으로는 원동면 선리로 내려갈 수 있는 방향 표시가 되어 있는 828봉 갈림삼거리이다.
선리는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에 있는 리로서 향로산 자락에 위치하여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마을 앞으로 배내천이 흘러나가며 지대가 높아 밭농사를 주로 하는 농촌 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담재(다름재,언곡), 도초나들(도태정,도태징이), 셋들(새들) 등이 있는데 도초나들은 선리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배내는 대리와 선리의 장선을 함께 이르는 말로 배태고개에서 내려다 보면 강물에 떠내려오는 배처럼 생겼다고 하고 마을 앞으로 배내천이 흐르며 장선동과 중선동을 합하여 선리라 하였다.
이곳에서 좌측 염수봉 3.06 Km 남아 잇다는 방향으로 틀어 빠르게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그 828미터의 선리 갈림삼거리봉을 지나 조금 더 진행을 하니 갑자기 등로가 희미해지고 사라져 방향만 잡고 잡목과 낙엽을 밟으며 조심하며 걸어 내려가 본다.
빛바랜 선답자들의 띠지가 간간히 나풀거리는 방향을 잡고 어렵게 내려가니 참나무 등로가 열리는데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발목을 덮고 있어 미끄럽기에 조심하며 걸어 내려가는 시간이다.
잠시 후 평이한 등로가 열리면서 길이 뚜렷해지고 거대한 소나무 몇그루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773 무명봉을 넘어 다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비포장 임도에 도착을 하는데 그 임도 옆에는 염수봉까지 2.42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서 있다.
그 비포장 임도를 따라 잠시 우측으로 걸어 내려가며 산행을 이어가 보는 시간이다.
그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잠시 걸어 내려가니 등로는 다시 우측 능선으로 이어지는데 그 능선으로 오르는 길목에 또 다른 이정표가 서 있고 이제 염수봉까지는 2.39 Km가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가 눈에 들어 온다.
능선으로 오르니 거대한 송전탑이 서 있고 살펴보니 78번 송전탑이었다.
그 송전탑을 우측에 두고 좌측 능선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오르니 이곳도 역시 재선충 작업을 한 흔적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발효액을 넣었는지 김장김치가 익을 때 나는 냄새가 지독하게 전해져 온다.
잠시 후 몇가닥의 가지를 가지고 있는 커다란 소나무가 보이는 770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비포장 임도에 도착을 하는데 염수봉까지 1.95 Km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가 반가운 이정표이다.
그곳에서도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조금 더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는 다시 능선으로 오르는데 그 능선으로 오르는 지점에 염수봉까지 1.89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보인다.
능선으로 올라 나즈막한 언덕을 넘어 완만하게 내려가니 등로는 또 다시 비포장 임도와 만나고 그곳에도 이정표가 서 있다.
잠시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 진행을 하다 임도 우측을 살펴보니 방금 전 통과한 78번 송전탑과 영축지맥 마루금이 잡목 가지 사이로 보이기 시작하여 사진 한장 남기며 진행을 이어가 본다.
계속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를 따라 한동안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는 다시 좌측 고사목들이 널부러져 있는 능선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어 잠시 잡목을 헤치고 올라가 보지만 등로는 다시 방금 전 헤어졌던 비포장 임도가 지나는 갈림삼거리인 내석리와 선리임도가 만나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이제 염수봉까지 810미터 남아 있고 좌측으로는 상북면 내석리 방향 트레킹 코스라는 이정표를 살펴보고 갈림삼거리로 내려가니 우측에서 만나는 도로 옆에는 또 다른 이정표가 서 있는데 진행 방향으로 에덴벨리, 우측으로는 선리 방향이 그리고 좌측으로는 내석리 방향의 임도 표시가 표기된 이정표이다.
내석리는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에 있는 리로서 향로산 자락에 위치하여 뒤로 산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으며 앞으로는 내석천이 낙동강 줄기인 양산천으로 흘러든다.
내석못이 있으며 전형적인 배산임수형의 농촌 마을로서 자연마을로는 내석(내리), 구점, 오전(모밭골,머그밭골), 황지골(황재골,황계골) 등이 있는데 내석은 돌내 안쪽이 되므로 붙여진 이름으로 후에 내석리가 되었다.
구점은 내석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예전에 점이 있었다고 하고 오전은 머귀나무가 많다 하여 모밭골 또는 머그밭골이라고도 하며 황지골은 마을 남쪽 산에 있는 월성이씨의 묘가 황계포란형이라고 한다.
갈림삼거리 지나 장터길 안내도도 살펴보고 능선 진입 들머리 옆에서 배낭을 다시 한번 정리한 후 능선으로 오르며 산행을 이어가 본다.
능선으로 오르니 억새 마대포가 깔려있어 편안하게 오르고 그렇게 한동안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완만하게 오르니 비포장 임도가 우측으로 올랐다 우측으로 휘어져 나가는 곳으로 올라 선다.
하지만 그 임도는 지나가는 장소로만 이용되고 다시 능선으로 올라 조금은 가파라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금새 염수봉까지 250미터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서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난다.
그곳에서도 시멘트 도로와 금새 헤어져 다시 능선으로 오르니 부드러운 참나무 등로가 이어지고 잠시 후 816.1미터의 정상석과 삼각점이 박혀 있는 염수봉 정상에 도착을 해 고운 추억 한장 남겨 본다.
염수봉(816.1미터)은 양산시 상북면 내석리와 원동면 대리 사이에 있는 산으로 과거에 산불이 자주 발생해 마을 주민들이 소금단지 2개를 정상에 묻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나 확실하지 않고 또한 옛날에 천지개벽을 할 때 바닷물이 여기까지 올라왔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는 설이 전해지는 산이다.
서쪽에는 밀양강으로 흘러드는 배내천이 발원하고 동쪽에는 양산천으로 유입하는 내석천이 각각 발원하고 있으며 또한 염수봉은 골이 깊고 경관이 매우 수려하며 특히 기암과 폭포가 많아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유람하던 산이다.
염수봉에는 암석의 풍화 작용으로 인해 파괴되어 생긴 바위 부스러기인 암설이 집단적으로 모여 있는 너덜 지역이 나타나며 주요 식생으로는 소나무를 비롯하여 낙엽 활엽수가 많이 자라고 있다.
영축산으로 이어지는 영남알프스 줄기는 시살등과 오룡산을 거쳐 토곡산에서 마무리되는데 염수봉이 그 중간에 자리해 있으며 지나가는 봉우리에 있는 전형적인 육산인 염수봉은 산세가 뛰어나다거나 비경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깨끗하고 호젓한 산길이 있는 산이다.
봄철에는 여러 종류의 나물이 많아 내석리의 마을 사람들이 나물 채취를 위해 자주 찾는 곳으로 교통은 지방도 69호선 대리 고점에서 동쪽으로 오르거나 상북면 소재지에서 서쪽 내석리 종점에서 구불사 방향이나 구불사 아래로 오르는 길을 이용하면 되는데 이외에도 여러 군데의 등산로가 있어 오르기는 쉬운 산이기도 하다.
여전히 미세먼지와 박무로 인해 시야가 제한되어 있고 잡목과 관목들이 자라면서 제한된 시야를 방해하지만 잠시 쉬면서 주위 풍경을 둘러보고 진행하기로 한다.
정상에서 추억 한장 남기고 배낭 내려 쉬면서 방금 전 지나 온 북동방향을 살펴보니 주능선에 자라고 있는 소나무들이 푸르름을 더해 주는 마루금이 펼쳐져 있고 그 끝자락 저 멀리 오룡산이 우뚝 솟아 있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오지만 그 오룡산에 막혀 더 이상의 산줄기는 보이지 않는다.
이제 보이는 풍경만으로도 제법 멀리 걸어 왔음을 알 수 있는 조망과 풍경이기에 시간을 계산해 보니 배태고개까지 내려가 산행 후 시내버스를 탈 수 있는 시간에 도착하는 것은 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지금부터 배태고개까지의 등로 상태를 모르기에 이제부터는 조금 빠르게 진행하다 마지막 봉우리쯤에서 여유를 가지고 진행을 하기로 해 본다.
지나 온 영축지맥 마루금 좌측으로는 이제 백마산만 희미하게 눈에 들어오고 영남알프스의 아름다운 풍경은 모두 산줄기에 막혀 숨어 버렸다.
선리와 장선리쪽 배내골 마을도 내려다 보고 진행 방향으로 눈을 돌리니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 하얀 스키장 슬로프가 보이기 시작하고 지도를 살펴보니 에덴벨리 골프장 지나 풍력발전기와 함께하는 스키장 슬로프이다.
이제 저 에덴벨리의 골프장과 스키장을 우측에 두고 좌측 능선을 따라 한바퀴 빙 돌아 지나가는 형국으로 진행이 되고 있어 잠시 더 눈에 그 풍경을 담아두고 염수봉 정상부를 출발해 본다.
잘 발달된 뚜렷한 참나무 등로를 따라 조금은 빠르게 진행을 하니 간벌된 공터에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좌측으로도 뚜렷한 등로가 열려있어 길주의 지점으로 이곳에서는 우측 등로를 타고 내려가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야 한다.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약간의 잡목과 키 작은 소나무들이 방해를 하지만 큰 어려움 없이 진행이 되고 곧이어 넓은 비포장 임도로 내려서게 된다.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좌측으로 조금 내려가면 우측으로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많이 걸려있고 특히나 산행리본 제작이라는 홍보성 넓은 간판이 걸려있는 능선 방향으로 마루금은 이어지고 있다.
비포장 임도를 지나 우측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진입을 하니 다시 길이 희미해지고 잡목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약간의 진행에 방해를 주지만 전라남도쪽 지맥 등로에 비하면 아직은 고속도로 수준이라 방향만 제대로 보고 걸어 내려가 본다.
잠시 내려가니 금새 또 다른 비포장 임도를 만나고 그 임도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내려가니 이곳 역시 등로가 희미해지며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있어 진행에 약간의 방해를 받는다.
쓰러진 커다란 고사목을 지나 참나무 등로를 타고 낙엽을 헤치며 걸어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무슨 공사를 하려는지 제법 넓은 지역이 파헤쳐져 있고 공사 자재들이 쌓여 있는데 무슨 공사인지는 알 수가 없다.
계속 이어지는 참나무 낙엽 등로를 따라 미끄러지지 않토록 주의하며 전진하니 억새풀이 자랐다 말라죽은 공터에 키 작은 소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는 곳을 지나 다시 시멘트 포장도로로 내려선다.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조금 걸어 내려가다 도로가 우측으로 휘어져 내려가는 곳 좌측 능선으로 들어가 내려가니 금새 비포장 임도가 지나는 내석고개에 도착을 하는데 내석고개 우측으로는 2차선 포장도로가 올라와 있다.
내석고개는 양산시 원동면 대리와 상북면 내석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로서 내석리의 마을이름을 차용해 부르게 된 고개이름이 아닐까 추측이 되는 곳이다.
시간을 보니 이제 오후 1시 20여분을 지나고 있어 시간적인 여유가 있기에 잠시 심호흡 한번 하고 그 내석고개의 비포장 임도를 건너 가파른 능선으로 오르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오르니 키 큰 소나무들이 즐비하게 등로를 가득 채우고 있지만 그 아래 키 작은 관목들과 잡목들도 제법 자라고 있어 오르막 진행에 약간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잠시 후 등로 좌우측으로 커다란 바위들이 군락을 이루며 군데군데 보이기 시작한다.
계속 이어지는 소나무 아래 관목 등로를 타고 오르니 잠시 지독한 잡목지대가 펼쳐져 있고 그 잡목 한가운데에 작은 참나무 한그루가 자라고 있는 763 무명봉에 도착을 해 긴 한숨을 토해내 본다.
이제 올라야 할 뒷삐알산이 저 멀리 올려다 보이기 시작하는데 등로는 심하게 가파르지 않지만 잡목들이 제법 성가시게 만들고 있는 듯 보인다.
잠시 그 지독한 잡목을 헤치고 걸어 진행을 하니 가을날 무성하게 자랐다 이제는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말라 빛바랜 억새들이 살랑거리는 바람에 흔들리며 사각거리고 있다.
그 억새안부를 지나 다시 능선으로 오르며 뒤돌아 보니 지나온 염수봉과 오룡산이 벌써 저 멀리 멀어지며 박무속에 숨으려도 달아나고 있다.
지독한 미역줄기 나무를 헤치고 어렵게 올라가니 다시 참나무 등로가 열리고 잠시 후 등로 좌측 앞으로 둥그런 뒷삐알산 정상부가 빤히 올려다 보이기에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오르니 이정표가 서 있는 공터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정표는 모두 떨어져 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살펴보니 올라 온 방향으로 배내골이 진행 방향으로는 뒷삐알산이 그리고 등로 우측으로는 에덴벨리리조트로 내려갈 수 있는 갈림삼거리는 에덴삼거리이다.
떨어진 이정표를 모아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관목이 아름다운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올라가니 약간의 낙엽들이 쌓여 있지만 어렵지 않게 힐링하듯 거닐어 보는 시간이다.
그림같은 그 관목 숲을 타고 한동안 무심으로 걸어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영취산가는길이란 이정표가 서 있고 그 앞에는 계단으로 만들어진 전망데크가 보이는 뒷삐알산 장상에 도착을 해 배낭 내리고 간식과 과일로 허기를 달래고 진행하기로 한다.
앙증맞은 정상석에서 추억 한장 남기고 그 옆에 서 있는 삼각점을 확인한 다음 질척이는 등로를 피해 간식 시간을 갖는다.
하지만 이곳 뒷삐알산도 주민들이 옛날부터 불리던 체바우먼당산이 사라지고 새로운 뒷삐알산이란 이름의 정상석이 세워져 있다는데 자료를 찾아 봐도 제대로 된 자료가 없어 아쉽기만 하다.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진행해 온 영축지맥 마루금이 한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우측 끝자락에 영축산이 희미하게 보이고 그 좌측으로 흐르며 함박등과 죽바우등 및 오룡산 지나 염수봉까지 시원하게 조망이 되니 이제서야 조금 그 마루금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 좌측으로 천황산과 재약산이 희미하게 머리만 내밀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청도쪽 산들도 찾아 보지만 박무로 인해 보이는 것이 없으니 아쉽기만 하다.
이제 남서쪽 방향으로는 걸어 진행을 해야 할 에덴벨리 골프장과 스키장이 보이고 그 뒤쪽 능선으로 이뤄진 영축지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지만 그 뒤로 보여야 할 부산의 산들은 미세먼지와 박무로 인해 보지 못하니 이 또한 안타까운 산행 날씨이다.
그래도 에덴벨리 뒷쪽 능선을 타고 한바퀴 빙돌아 나가는 지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다가오는 시간이었다.
다만 지금이 스키 시즌이다 보니 골프장과 스키장을 통과하며 캐디들 및 직원들과 마찰없이 무사히 통과나 가능할지 그것이 더 큰 부담으로 다가왔던 시간이기도 하였다.
한동안 그 뒷삐알산 즉 체바우먼당산에서 간식으로 허기를 면하고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기며 많은 사진을 남긴 후 다시 배낭 둘러메고 그 질척이는 등로를 따라 뒷삐알산을 출발한다.
잠시 내려가니 길목에 많은 선답자들의 띠지들이 보이는데 산줄기 종주를 하는 선답자들 뿐만아니라 일반 산악회 띠지들도 많이 보이는 것으로 봐 이곳 뒷삐알산도 제법 오르는 듯 보이는데 오늘은 만나는 사람 하나 없으니 조금은 서운한 마음이기도 하다.
잠시 더 내려가다 진흙 등로 위에서 미끄러져 배낭과 바지에 진흙은 묻히고 어렵게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꼴이 말이 아니다.
등로 옆 낙엽으로 닦아내 보지만 쉽지 않아 대충 큰 진흙만 제거하고 내려가니 이제는 진흙이 아닌 미끄러운 낙엽으로 진행이 상당이 더디게 이뤄지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주의하며 천천히 걸어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에덴벨리 별장으로 갈 수 있는 이정판이 서 있는 벨리삼거리 이정판이 서 있다.
계속 직진으로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타고 진행을 이어가니 등로 우측의 에덴벨리 방향으로 가느다란 로프가 설치되어 있고 한동안 그렇게 걸어 내려가니 등로 앞 참나무 가지 사이로 내려가야 할 에덴벨리 골프장 그린이 빤히 내려다 보이는데 몇명의 골퍼들이 골프를 즐기고 있다.
뒷삐알산 정상에서 700미터 내려왔다는 이정판을 지나 참나무 아래 억새가 보이는 등로를 따르니 습지삼거리라는 이정표가 보이고 그 방향으로 수로를 따라 걸어 내려가니 곧이어 에덴벨리 골프장 카드 도로 위에 도착을 한다.
골퍼들이 골프를 치지 않는 시간에 재빨리 그 카트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하다 골프를 치면 좌측 숲으로 들어가 진행하기를 반복하고 그렇게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또 다른 팀이 윗쪽 그린에서 티샷을 준비중이다.
티샷이 끝난 후 재빨리 카트도로를 타고 골퍼들 뒤로 올라가니 캐디가 한마디 핀잔을 주고 알았다며 올라가니 관리인이 어디를 가느냐며 제지를 하는데 산으로 올라간다고 하니 빨리 올라가야 한다면서 산으로 가도 계속 위험하니 조심하라고 당부를 한다.
다시 그 관리인을 피해 올라 그린을 빠져 나가니 등로 우측으로 커피숍과 화장실이 있는 간이 건물이 보이고 잠시 그 건물 화장실로 들어 가 따뜻한 온풍기와 온수가 나오는 수돗물에 뒷삐알산에서 미끄러진 배낭과 바지의 진흙을 닦아 내고 세수하며 손을 닦고 나니 조금은 사람의 모습으로 뒤돌아 온 느낌이다.
하지만 화장실에서의 좋은 기억도 잠시 그 건물 뒷편으로 이어지는 등로를 찾아 오르니 지독한 잡목과 억새능선이 등로를 완전히 메우고 진행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어 우측으로 잡목이 조금 덜한 곳을 찾아 빙 돌아 우회하며 힘들게 진행하는 시간이 되었다.
너무나 힘들게 그 집목지대를 빠져 나와 잠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올랐다 내려온 뒷삐알산이 저 멀리 올려다 보이고 바로 아래에는 어려게 통과한 에덴벨리 골프장이 펼쳐져 있고 바로 발 아래에는 온수를 사용했던 건물이 바로 내려다 보인다.
너무나 힘들게 그 잡목지대를 빠져 나와 주능선에 복귀를 하니 제법 뚜렷한 등로가 다시 나타나고 멋진 참나무와 관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숨가쁘게 오르니 등로는 다시 중간 크기의 참나무 군락지로 변하고 있다.
멋진 참나무 등로를 타고 잠시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 좌측으로 습지보호지역이라는 이정목이 서 있고 그곳을 지나자 다시 열리는 관목 숲을 따라 힐링하듯 여유있게 걸어 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다시 억새와 소나무들이 보이는 등로를 따르니 가지가 많이 달려있는 커다란 소나무가 서 있는 742 무명봉에 도착을 해 잠시 심호흡 한번 해보고 진행을 이어가는 순간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지독한 잡목과 억새지대가 나타나고 힘들게 걸어 진행하다 디돌아 보니 방금전 올랐다 내려온 뒷삐알산이 얼굴만 내밀고 그 뒤 저 멀리 우측으로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영축지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사진 몇장 더 남겨 본다.
사람 키보다 더 큰 억새군락지를 지나 조금 더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고 그 로프에는 낙동강유역환경청에서 제작해 걸어 놓은 습지보호구역 경고판이 촘촘하게 달려 있다.
이제부터 등로 우측으로는 신불산습지지역으로서 그 습지지역을 우측에 두고 좌측으로 빙돌아 진행하는 형태로 바뀌는 지점이다.
한동안 이어지는 안전목책과 로프를 타고 습지 경계를 진행하니 또 다시 신불산습지보호구역이라는 이정목이 보이는데 왜 이곳을 신불산이라 칭했을까 궁금하기만 하다.
잠시 그 목책과 로프를 피해 커다란 소나무 두그루가 서 있는 756 무명봉을 지나 오르니 습지보호구역이라는 목책과 로프가 다시 나타나고 한동안 그 로프를 타고 걸어 올라가는데 좌측으로는 키 큰 억새가 바람에 서걱거리며 울고 있다.
한동안 오르니 764 묘지봉에 도착을 하고 그 묘지를 지나니 연속으로 2기의 묘지가 다시 나타나는데 진디가 죽어 물이 고이고 있어 하루 빨리 이장이 필요해 보인다.
그 묘지들을 통과하니 억새 사이로 바위들이 보이고 잠시 후 습지삼거리 갈림길에 도착을 해 좌측 등로를 버리고 우측 등로를 따라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우측의 비포장 임도같은 넓은 등로를 타고 조금 빠르게 진행을 하니 출입통제초소와 바리게이트가 나타나고 조용히 그 금줄을 넘어 오르니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안내판과 출입통제초소 및 화장실이 보이는데 다행이 지키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신불산습지보호구역은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대리의 신불산 일대에 있는 습지로서 달포늪 혹은 신선늪이라고 불리는 신불산 고산습지는 입지 지역인 신불산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명칭으로 신불산이란 이름은 신령님이 불도를 닦는 산이라 하여 이름 붙였고 사람이 곤경에 처했을 때 도와주는 산이라고 한다.
습지보호구역 출입통제초소를 지나 우측으로 이어지는 넓은 비포장 임도를 따르니 이제부터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며 내는 웅웅 거리는 소리에 귓전이 멍해지기 시작한다.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둘레길이라는 이정판이 보이고 곧이어 바람개비 형상의 풍력발전기가 눈 앞에 펼쳐져 있는데 바람이 얼마나 세게 불고 있는지 설치된 모든 바람개비가 쉴틈도 없이 강력한 소리를 내며 돌아 가고 있다.
잠시 더 진행을 해 언덕을 넘어 내려가니 내일 걸어야 할 영축지맥 마루금이 저 멀리 길게 이어져 있고 그 앞으로는 거대한 바람개비 형상을 한 풍력발전기가 쉴새 없이 돌아가며 웅웅 거리는 소리를 지르고 있다.
잠시 더 걸어 진행을 하니 임도 우측으로 대명GEC 풍력발전소 관리동이 나타나고 곧이어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는데 포장도로 건너편으로는 에덴벨리에서 운영중인 스키 슬로프가 보이고 곤도라가 쉴새없이 움직이며 많은 스키어들을 실어 나르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이제부터 스키장을 우측에 두고 좌측 능선을 따라 한동안 걸어 진행을 해야 하는 구간이다.
잠시 진행을 하니 스키 슬로프 바로 좌측으로 등로는 이어지고 그렇게 한동안 걸어 오르니 드디어 곤도라를 타고 내리는 스키장 상단부에 도착을 해 잠시 스키어들과 함께 그 정상부를 지나 스키장 가장자리를 따라 조심스럽게 내려가며 어려운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젊은 스키어들이 이상한 눈길로 바라보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서로 방해가 되지 않게 내려가니 슬로프 좌측 안전 망에 개구멍이 나 있고 그곳을 통해 스키장을 빠져 나가 좌측 능선으로 오르며 정상적인 마루금 산행을 이어가 본다.
능선을 걸어 진행하며 등로 우측 아래를 살펴보니 에덴벨리는 생각보다 거대한 위락시설로서 골프장과 스키장 그리고 썰매장은 물론 호텔과 레스토랑들도 갖춰진 종합 휴양소처럼 보였는데 그 넓은 주차장이 꽉 차 있을 정도로 이곳 주민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듯 보였다.
잠시 후 등로는 다시 좌측 1051번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나 그 도로를 따라 잠시 진행을 하는데 앞에 보이는 도로표지판에는 배내골까지 6 Km와 밀양까지 37 Km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가 보인다.
잠시 더 그 1051번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시멘트 포장도로가 보이고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소나무가 식재되어 있는 무명봉으로 오른다.
하지만 잠시 후 다시 1051번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나기에 그냥 편안하게 1051번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을 해도 무방할 듯 보이는 곳이다.
정상부에도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돌아가고 그곳에서 잠시 발걸음 멈추고 지나온 마루금을 살펴보니 좌측 뒷삐알산에서 우측으로 내려 와 골프장을 지나 우측 능선을 타고 다시 스키장 뒷쪽 능선을 돌아 다시 이곳으로 휘어져 이어지는 마루금이 하눈에 보인다.
에덴벨리리조트를 가운데 두고 한바퀴 빙돌아 진행되는 영축지맥 마루금이다.
절개지로 이뤄진 무명봉을 한바퀴 돌아 어렵게 내려가니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 참나무 등로가 이어지고 잠시 후 방금 전 헤어졌던 1051번 2차선 포장도로와 다시 만나 그 도로 위로 내려가는데 내려가며 우측을 살펴보니 거대한 에덴벨리 리조트와 그 뒤로 오늘 걸어 온 영축지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도로를 가로질러 다시 능선으로 오르고 약간의 잡목들과 소나무 등로를 헤치고 언덕을 넘으면 또 다시 갈지자로 이러져 내려오는 1051번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났다 금새 그 도로를 우측으로 보내고 좌측 능선으로 진입하며 그 1051번 2차선 도로와 헤어지게 된다.
도로 좌측으로 이어지는 등로를 따라 진행하며 올려다 보니 잠시 후 만나야 할 거대한 이동통신탑이 올려다 보이고 그곳을 목표지점으로 삼고 열심히 걸어 올라 보는 시간이다.
처음에는 묵은 밭 경작지 같은 등로를 따르다 본격적인 능선으로 진입을 하니 묵은 비포장 임도가 이어지는데 아마도 이동통신탑을 세우면서 개설되었다가 사용하지 않아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난 임도처럼 보이는 곳이다.
한동안 키 큰 억새 군락지를 따라 오르니 금새 SK 원동면5라는 이동통신탑에 도착을 하고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출발하니 소나무들이 빼곡하게 자라고 있는 소나무 군락지를 통해 670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이제 별 특징없는 희릿한 소나무 등로를 따라 조심하며 걸어 진행을 이어가니 선답자들의 산행띠지들이 걸려있는 689 무명봉을 통과하고 다시 바위 등로를 지나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 마루금을 타고 690 무명봉도 넘는다.
여전히 등로는 깊은 낙엽과 참나무 그리고 가끔 나타나는 소나무 등로를 번갈아 갈아타며 진행이 되고 오르는지도 모르게 꾸준하게 올라 걸어가니 709.5봉에 도착을 해 준.희님이 붙여 놓은 산패를 사진에 담아 본다.
이제 잡목 사이로 내려다 보이는 555.5봉만 넘으면 오늘 산행도 마무리가 되기에 힘을 내 걸어 가니 고사목이 웅덩이에 서 있는 707 무명봉을 넘고 약간은 지루할 정도의 낙엽 깔린 참나무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 본다.
한동안 내려가 무명안부를 지나고 다시 올라 바위가 박혀있는 542봉을 넘으니 그동안 잘 보이지 않던 자작나무와 벗나무가 등로에 서 있어 잠시 살펴보며 사진 한장 남겨 보는 시간이다.
무명봉을 넘어 낙엽 등로를 내려가니 무명안부를 통과하고 다시 미끄러운 낙엽등로를 타고 어렵게 걸어 오르니 바짝 말라있는 낙엽이 부서지며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정겹기만 하다.
한동안 지루하게 걸어 오르니 드디어 키 작은 소나무들이 자라는 곳을 지나 커다란 소나무에 준.희님이 걸어 놓은 555.5미터벙이라는 산패가 반겨준다.
이제 오늘 산행의 실질적인 마지막 봉우리를 넘었으니 내려가면 산행 목표 지점인 배태고개가 나타날 것이다.
다시 이어지는 낙엽 등로를 타고 조심스럽게 걸어 내려가니 원동역에서 출발해 태봉으로 가는 양산시내 버스가 배태고개 방향으로 힘겹게 올라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오고 시간을 보니 이제 오후 5시 6분으로서 약 15분이면 내려갈 수 있기에 정확하게 버스 시간에 맞춰 산행을 마무리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다.
특이할 것 없는 참나무 낙엽 등로를 타고 한동안 꾸준하게 걸어 내려가니 눈 앞에 갑자기 산불감시초소가 나타나는데 마침 산불감시원이 안에 있는 듯 하여 불러보니 아저씨 한분이 지키고 있어 잠시 몇마디 이야기를 나누고 먼저 내려간다고 인사를 한다.
하지만 이 아저씨의 호의로 일찍 원동삼거리로 내려갈 줄은 꿈에도 생각을 하지 못했던 시간이었다.
산불감시초소를 지나서도 계속 이어지는 참나무 낙엽 등로를 따라 한동안 내려가니 드디어 오늘 산행 날머리인 69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배태고개에 도착을 하고 한쪽 벤취에서 배낭 정리하고 있는데 구석에 세워져 있던 산불감시초소에서 아저씨 한분이 나와 버스 시간표를 확인해 보니 원동역에서 출발해 배태고개를 넘었으면 약 30분 후에 다시 배태고개를 넘어 원동역으로 돌아 간다는 소식에 느긋하게 그 버스를 기다려 본다.
배태고개는 경상남도 양산시의 원동면 대리와 영포리 사이에 위치한 고개로서 고개 북쪽으로 밀양시와 경계하고 서사면에서 영포천이 발원해 남류하며 고개를 69번 지방도가 지나간다.
조선지지자료(양산)의 하서면 어포동(현, 원동면 영포리)에 있는 고개로 이현을 기재하고 한글로 뵛퇴라고 병기하였고 또한 조선지형도(밀양)에 현재 영포리 배태마을이 이현마을로 표기되어 배태고개가 이현이라고 불린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지명총람에 내포천과 배내천이 큰 강일 때 고개 양쪽에 배를 대었다고 그 유래에 대해 기록하였고 여지도(양산)와 해동지도 등에 이천산 남쪽의 신흥사 서쪽의 고개로 이현 혹은 이치로 표기되어 있다.
하지만 잠시 후 SUV 차량을 운전하시는 분이 불러 가 봤더니 방금 전 산속 산불감시초소에서 만났던 아저씨로서 원동까지 태워주시겠다는 호의에 감사 인사 드리고 편안하게 원동삼거리로 나갈 수 있었다.
그 산불감시 아저씨의 SUV 차량을 타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원동삼거리에 도착을 하고 아저씨는 직진의 원동역 방향이 아닌 우측 방향으로 가야 하기에 그곳에서 내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헤어져 바로 옆에 보이는 불이 꺼져 있는 필그린 모텔로 들어가니 영업을 하지 않는 듯 보여 몇번이나 주인장을 불러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장사가 잘 안되는지 손님도 없어 보여 다른 곳으로 갈려다 가격 흥정을 하니 25,000.-원까지 해줄 수 있다는 소식에 계산을 하고 하룻밤 묵어 가기로 한다.
오늘 하루 대중교통부터 잠자리까지 잘 해결되어 기쁜 마음으로 샤워하고 모텔 바로 옆 식당으로 가 삼겹살 2인분을 시키니 이 식당은 3인부부터 가능하다며 돼지김치찌개가 맛있으니 먹어보라고 권한다.
고기량을 조금 더 부탁해 소맥 몇잔을 마시며 저녁을 먹는데 생각보다 맛이 좋아 탁월한 선택으로 저녁까지 해결하고 나니 다음날 새벽 아침식사와 배태고개까지 가는 교통편이 고민이다.
일단 모텔로 돌아 와 아주머니에게 식당을 확인해 보니 아침 일찍 문을 여는 식당이 없으니 방금 전 저녁식사를 했던 식당 옆에 마트가 있으니 그곳에서 필요한 물건을 사 두라는 조언을 듣고 새벽 교통편을 문의하니 삼랑진에 택시가 있지만 그곳은 밀양으로 구역이 달라 택시가 오지 않으니 양산 택시를 불러 타야만 한다는 소식이다.
어쩔 수 없이 양산택시에 전화를 하니 30,000.-원을 달라는 소식에 택시를 포기하고 고민하고 있다 모텔 아주머니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고 새벽에 픽업 서비스를 해 줄수 있느냐고 문의하니 아저씨가 들어오면 확인후 알려주겠다고 말하고선 감감 무소식이다.
그렇게 영축지맥 산행 첫날은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이 되어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선답자들의 산행후기를 확인해 보니 거의 다 제2구간 산행이 잡목으로 더 어렵고 빨래판 같은 등로로 설명이 되어 있어 새벽 일찍 시작하지 않으면 해가 짧은 요즈음 시기에 당일로 마치기가 버거워 보여 새벽에 히치하이킹이 안되면 느긋하게 2구간으로 나눠 진행하기로 하고 마음 편히 쉬어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첫댓글 죽바우등, 시살등의 영축지맥을 출발하셨군요.
낙동정맥을 지나면서 유달리 눈여겨 보던 줄기가 생각납니다.
아직은 그곳 지맥상에는 눈이 보이질 않네요.
찬 날씨에 만만치 않은 행보 진행하시느라 수고많으셨습니다.
이어지는 구간 여정담도 궁금해 집니다.
네 방장님,
전라도쪽으로 내려갈려고 준비를 하였는데 폭설에 한파가 밀려 와
이곳 경상도 끝자락으로 내려갔었답니다
눈은 보이지 않고 가뭄이 들 정도였으니 좁은 땅에서도 차이가 심하더군요
몇본 걸었던 등로이지만 영축지맥이란 의미로 걷는 기분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구요
늘 성원 주심에 감사 드림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