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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승지맥
부뜰이와 천왕봉이 걸어온 두승지맥
지맥길 42.9(접속1.2/이탈)km/19시간52분
산행일=2021년2월20~21일
산행지=두승지맥(정읍시/부안군)
산핼경로=두승지맥 분기점=>271.1봉=>밤고개=>192.7봉=>160.7봉=>비룡산(飛龍山:215.3m)=>259.6봉=>국사봉(國師峰:250.8m)=>139.5봉=>100.9봉=>100.1봉=>태봉(149.5m)=>109.6봉=>22번 국도=>108.3봉=>111.4봉=>덧고개(29번 국도)=>339.1봉=>두승산(斗升山:445.1m)=>441.0봉=>돌짐재=>204.6봉=>천치재=>146.3봉=>천치(天峙:180.0m)=>탑립재=>85.4봉=>163.3봉=>자라고개=>천태산(天台山:197.2m)=>171.3봉=>48봉=>705번 도로=>거령교회=>30번 국도=>백산(白山:49.0m)=>고부천/동진강 합수점
거리 및 소요시간=42.9(접속1.2)km/19시간52분
순차적으로 진행한다면 한구간남은 변산지맥에 들어야하지만 주말 이틀동안 날씨가 좋아도 너무좋게 예보가된다.
한구간하고 하루를그냥 보내기가 아깝다는 생각이든다.
그래서 변산지맥은 다음으로 미루고 지맥하나를 끝낼 수 있는 것으로 선택한것이 두승지맥이다.
두승지맥을 가기위해서 들머리인 전남 정읍시 입암면 신월리를 검색해보니 300km가 조금 안되고 12시전에 도착으로 검색이된다.
너무일찍 도착하는거 같고 그렇다고 쉬기도 어정쩡해서 도착즉시로 산행을시작할 생각으로 일반도로를 검색하니 40분정도 더 걸리는 거로 나온다.
통행료라도 아껴서 택시비에 쓰기로하고 국도로 지방도로로 내려간다.
한참을 내려가다 왠지 몸이 찌뿌둥하여 쉼터에서 1시간정도 쉬고 신현리에 도착하면서 네비안내는 종료되고 여기서부터는 GPS를 켜고 분기봉에서 가장가까운 압곡제를 찿아 올라간다.
겨우 소형차정도 통행이가능한 꼬불꼬불한 임도길을 올라가니 조그만 저수지인 압곡제에 도착한다.
저수지 둑방에다 주차를하고 집에서 준비해간 사골국을 데워서 밥을 한술씩 말아먹고 곧바로 산행을시작한다.
두승지맥(斗升枝脈)은 영산기맥의 쓰리봉(x734m)에서 북쪽으로 분기한 변산기맥 3km 지점에서 두줄기로 갈라지는데. 서쪽 산줄기인 변산지맥은 옥녀봉(△349.6m)을 지나 변산반도 격포항으로 이어지고. 북동쪽으로 분기한 두승지맥은 정읍천과 고부천의 분수령을 이루면서 비룡산(△215.3m).국사봉(△250.8m). 태봉(△149.5m). 두승산(斗升山 △445.1m). 천태산(×197.2m)을 지나 부안군 백산면 현호마을 고부천과 동진강 합수점 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37.2 km인 산줄기이다.
두승산(斗升山)은 부안의 변산(邊山), 고창의 방장산(方丈山)과 더불어 삼신산(三神山) 으로 꼽히는 명산인데, 멀리서 이 산을 보면 거북 형상을 닮았다고 한다.
영주읍지(瀛州邑誌)에 의하면 이 산에 9개의 봉우리가 있고 석두(石斗)와 석승(石升)이 있어 두승산((斗升山) 이라 불리웠는데, 1883년경 나무꾼의 장난으로 석두와 석승이 없어져 버렸다 한다.
출발 1분후에 마지막 민가을 지나고
비포장임도로 올라가는데 전날 내린눈이 제법되고 기온이 갑자기오르니 새벽시간 임에도 질척거린다.
임도가 우측으로 스므스하게 돌아가고 좌측으로 임도가 갈라진다
좌측으로 들어가면 커다란 묘지가 나오고 길은 없어진다
묘지를지나면 귀신이 나올거같은 분위기다
나무에는 넝쿨이 주렁주렁 매달려있고 강풍까지 불어대니 아름드리 나무들이 서로 비비면서 삐거덕 삐거덕 소리까지 영 기분이 거시기하다
그래도 까시넝쿨도 별로없고 크게 가파르질 않아서 힘든줄 모르고 올라간다
26분만에 변산지맥 마루금에 올라서고
7분더 진행해서 두승지맥 분기점에 도착한다
출발지인 압곡제에서 1.2km가 측정되었고 36분이 소요도었다
분기점에서 인증을하고 본격적으로 두승지맥에 들어간다
변산지맥은 좌측으로 내려가고 두승지맥은 우측으로 내려서는데
시작부터 길이 완전 비단길이다
분기점에서 10여분 진행하여 봉에 올라서니 매봉이란 사각통나무가 박혀있다
뭔가 있으니 인증을하고
매봉에서 3분만에 흔들바위에 닿고
바위는 아무리 흔들어바도 끄떡도 않는다
오늘 처음만나는 이정표에는 지나온쪽으로 거담봉이 0.6km이고
진행방향으로 옥녀봉이 1km라고 안내한다
흔들바위에서 23분여 진행하여 271.1봉에 올라서면
옥녀봉이란 사각말뚝이 박혀있다
분기점에서 변산지맥으로 몇분 진행하면 지형도에 옥녀봉 있는데
옥녀봉에는 옥녀봉이란 표시는 없고 거담봉이란 말뚝이 박혀 있었다
그런데 이곳은 지형도에는 271.1봉으로 표기되여 있다
그리고 이곳이 어째서 옥녀봉이란 이름이 붙었는지 유래나 전해오는 이야기 같은것은 찿아 볼수가 없었다
인증을 남기고 우측으로 내려선다
271.1봉에서 우측으로 꺽어 13분여 내려가면
지맥길은 좌측으로 꺽어지는데
길이란건 보이지도 않고 잡목의 저항을 받을뿐만 아니라 빼곡한 산죽군락지가 나오는데
도대체 어디로 방향을 잡아야 될지 빠져나갈 수가 없다
그냥 방향만잡고 이리저리 내려서면 밤고개에 내려선다
밤고개(栗峙)는 정읍시 입암면 봉양리와 고창군 성내면 용교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708번 지방도로가 넘어간다
밤고개라 불리게된 유래를보면 주위에 밤나무가 많아서 밤고개라 하였다고 한다
고창군 성내면과 정읍시 입암면의 경계인 708번 지방도로가 넘어가는 밤고개
밤고개에서 길을건너 바로 숲으로 치고 올라간다
빼곡한 산죽에 널찍하게 정비된 길을 올라간다
15분여 올라가다가 좌측으로 올라붙는데
분명 사람이 지난 흔적은 보이지만 뚜렸한길은 없다
봉우리에 올라서면 바로 넘어가게 되여 있지만 좌측으로 100여미터 벗어나 있는 삼각점봉을 만나보기로 하고 좌측으로 진행해본다
봉우리에 닿고보니 묘지가 한기 있고 대나무가 빼곡하여 산패가 보이질 않는다
인증을하기 위해서 천왕봉이는 주변 정리를하고 그동안 나는 산죽을헤치고 윗쪽으로 올라가 본다
겨우 삼각점을 찿아서 정읍 453을 확인을하고 내려온다
삼각점을 확인하고 내려오니 천왕봉이 훤하게 해놓았다
산패는 진달래나무 위에 있는걸 선답자 산행기에서 보았는데
그 진달래나무는 꺽어져 땅바닥에 있던 것을 풀어서 다른 나무에다 설치하었다
192.7 삼각점봉을 인증하고 왔던길로 돌아간다
내림길 또한 올라올 때 이상으로 빼곡한 산죽밭이고 간신히 빠져 나와서 나도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게 된다
지독한 대나무 숲이었다
별로 좋치도 않은길이 대나무가 없으니 그리 편할 수가 없다
그렇게 한번 치고 올라서니 160.7봉
160.7봉 인증을남기고 우측으로 꺽어 내려서면 이후로는 길이 좋아진다
고속도로같은 임도 길을 내려가면
2차선 도로가 나오고 도로가 마루금인데 거의 1.5km정도 이여진다
지선 이라는 버스정류장도 지나고
진행방향으로 한정거장 가면 입암중학교가 있는 모양인데 밤이라 확인은 못했다
20여분만에 도로와 헤여지고 임도로 들어서니 밭이 나오고 농로길을 따라가면 비룡산으로 올라가게 된다
비룡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자동차도 다닐만큼 길이 좋다
비룡산에 올라서니 날도 밝아오고 막걸리 한잔씩 마시며 쉬여간다
비룡산(飛龍山:215.3m)은 정읍시 입암면 지선리와 마석리. 소성면 중광리에 걸쳐있는 산으로 2등 삼각점이 있고
비룡산이라 불리게된 유래나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는 찿을 수 없었다
비룡산의 삼각점은 2등 삼각점으로 정읍 25
비룡산에서 내림길은 최근에 길을 만든다고 파헤쳐 놓은거 같다
259.6봉에는 선답자 리본만 두장 걸려있고 산죽이 빼곡하다
259.6봉은 빼곡한 대나무 숲
갈림길이 나오는데 주위에 꼬드레 란 산이 있나
무인 산불감시카메라가 있는 국사봉에 올라서니 안내판은 땅바닥에 누워있다
삼각점과 산패는 확인해야 겠기에 우거진 대숲을 밀고들어가 본다
잘라내고 베여내고 겨우한장 담아본다
국사봉(國師峰:250.8)은 정읍시 입암면 마석리와 소성면 중광리.내동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은 완전히 대나무가 둘러싸고 있다
3개의 면(面). 동(洞)이 만나는 3면 경계봉으로 분기점에서 부터 같이해온 입암면은 여기서 끝이나고 정읍시 내동으로 넘어간다
소성면장 명의로된 안내판에는 큰 세상을 꿈꾸는 선조들이 국가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제사를 지내는 국사신앙의 중심터 라 하였는데.
제사를 지내던 곳이라면 스승 사(師)가 아닌 제사 사(祀)를 써서 국사봉(國祀峰)이라 해야 될거란 생각이다
삼각점은 정읍457를 확인한다
내동 갈림길을 지나고 범적사.대동 방향으로 내려선다
지나온 국사봉이 0.5km이고
진행방향은 범적사.대동 쪽으로
좌측으로 조망이 열리고 소성면이 한눈에 들어오고 아득히 보이는 산줄기는 변산지맥일 것이다
철망이 길을막고 이쪽저쪽 살펴보지만 철망을넘지 않고는 진행이 힘들어 보인다.
철망도 구겨진 곳이 보이고 선답자들이 철망을 넘은 흔적이 보인다
철망 안쪽으로는 길이 이렇게 좋다
이제 두승산도 보이기 시작한다
139.5봉에 닿고보니 여기다가 산패를 설치하면 남아나지 않을거란 생각이 들어 철망을 넘어서 바깥쪽에 설치하고 다시 넘어온다
여기 위치가 우측으로 계동산(鷄動山:129.6m) 갈림길인데 다녀오기에는 좀 멀어보인다.
철망이 좌측으로 돌아가는 위치에서 와룡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와룡마을 뒷산이 100.9봉이고 정면으로 두승산이 보인다
오늘 두승산을 넘고 돌짐재를 지나서 천치재도 지나고 천치까지 넘을려구 계획을세웠는데....좀 힘들거 같다
와룡마을
와룡마을에 내려서면
버스정류장도 있고
명품소나무가 있는 근사한 정자도 있다
정자에서 빵으로 아침을 먹는다
산행을 시작한지 7시간 50분이 지난 9시 26분이고 15km정도 온거같다
식사후 와룡마을 뒷산인 100.9봉을 지나고 내려서면 반월마을에 내려선다
좌측으로 100.1봉이 보이고 정면으로 149.5봉인 태봉이 조망된다
반월리 마을회관을 지나고
등로를 최근에 정비를했는지 베어낸 나무들이 마르지도 않았다
마루금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100.1봉을 다녀온다
인증을 남기고
묘지가 한기 있는 태봉에 올라선다
태봉은 정읍시 상평동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묘지가 한기있고
4등 삼각점이 있다
정읍 460
조금더 진행하면 군 시설물이 보이고
사격중이니 절대 접근을 말라는 경고판을 만난다
아마도 군에서 정비를해놓은거 같다
태봉에서 내려가면 주동마을이 내려다보인다
주동마을 표지석
도로을 건너서 앞에 보이는 느티나무 있는 곳에서 산으로 올라간다.
처음에는 두룹나무를 재배하는 곳인지 두룹나무가 빼곡하고 거의 봉우리에 올라서면 병아리도 못 빠져 나갈거같은 대나무숲이 앞을 막는데.
이거야 원. 게다가 능선도 뚜렸하질 않으니 이리가는 사람 저리가는 사람 길이 만들어질 수 없는 조건이다.
그렇다고 앞이 훤하게 보이는것도 아니고 그렇게 한참을 삐집고 나오니 능선이 살아나면서 길이보이기 시작한다.
마루금에서 100m정도 좌측으로 벗어나 있는 삼각점봉에 올라서니 묘지가 한기있다.
산패가 있을만한 곳인데 왜 산패가 없지라고 생각하고 돌아가다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이상해서 배냥을열어 보니 111.4봉 산패가 떡하니 들어있다.
다시 돌아와서 산패를설치하고
인증을 남긴다
111.4봉에서 생쑈를하고 내려가니 두승산이 보이고
29번 국도가 지나는 덧고개에 내려산다
보통 여기서 1구간을 마치지만 우리는 내일까지 마무리를 짓고 올라갈 계획이라 내일산행에 부담을 줄이고자 오늘 두승산을 넘기로한다
두승산이 어서오라는거 같다
버스정류장에는 덧고개가 안니라 서당촌이라 되여있다
덧고개를 건너서 태양광발전시설 우측으로 끝까지가면 군부대 철조망 담벼락이 나온다.
태양열발전시설과 군부대 담벼락 사이로 쭈~욱 올라간다
군부대 철조망이 우측으로 돌아가고 우리는 좌측 능선으로 올라 붙는다
끝봉과 말봉을 향해서
등로는 통나무계단으로 되여있는데
보수가 시급해보인다
끝봉과 말봉 갈림길에 닿는데
여기를 잘록이 고개라고도 한다
바위에다 배냥을내려 두고 끝봉을 다녀온다
끝봉에는 복층으로된 팔각정자가 있고 지나온 쪽으로 조망이좋다
짙은 미세먼지로 히미하긴 하지만 지나온 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끝봉에서 이쪽저쪽 조망을 즐기고 내려선다
이정표에서 말봉이라 하는 두승산이 우뚝하하다
두승산 정상에 올라서면 여기저기 바위에다 음각을한 글씨들이 보인다
수두목승(水斗木升)과 망선대(望仙坮)를 썻다는 동초(東樵) 김석곤(金晳坤)은 태인 출신으로 전국의 명승지를 두루 유람하며 바위에 글씨 새기는 것을 즐겨해 내장산 서래봉(西來峰) 불충암(彿充庵) 뒷쪽 바위에는 내장풍악(內藏楓嶽) 정읍의 두승산 정상에는 수두목승(水斗木升). 칠보산(七寶山)에는 도불원인(道不遠人). 상두산(象頭山,)에는 산명수류(山明水流).백운대(白雲臺)에는 유수불부(流水不腐) 라고 새겼다.
고부면 입석면에서 바라보면 아홉개의 봉우리가 천혜의 요새지 또는 병풍처럼 다가오며 주능선에서 조망은 호남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수두목승(水斗木升)
저것은 또 멋인고?
정상석이 있던 자린지 삼각점이 있던 자린지
두승산은 지맥에 이름을부여한 산인데 그 흔하디 흔한 정상석하나 없으니 선생님께서 여기가 두승산임을 알린다
상봉 쪽으로 진행한다
이정표에서 가리키는 상봉
상봉이란 곳에 올라서니 정읍 두승산이라 하였다
무인 산불감시 카메라가 있는 441봉
길이 좋다고 룰루랄라 내려가는데
경로에서 벗어났다는 경고음에 돌아서고
가파른 산죽 군락지가 나온다
이곳은 응달이라 눈도 있고 곤두박질 치듯 내리 꼿는데 끝이 안보인다
어찌나 가파르게 내리 꼿이는지 맥이 쪽 빠질때 쯤 안부에 내려서고 이런길도 감사한 마음이다
그렇게 내려서니 돌짐재
그런데 저게 머시여 동물이동 통로가 있었나?
돌짐재는 정읍시 고부면 남복리에서 덕천면 하학리 중하마을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2차선 도로가 넘으며 동물이동 통로가 있고 태양광 발전시설이 있다
지형도에는 돌짐재라 표기되여 있는데 독짐재 또는 석점치(石蛅峙)라고도 불럿으며 이곳에서 멀지 않은 하학리에는 동학농민운동 때 전멸한 황토현이 있다
올라가서 보니 사람이 지나간 흔적은 안보인다
건너편을 보아도 잡목만 빼곡하고
돌짐재에서 태양광발전시설 좌측으로 올라서니 묘지가한기 있는 204.6봉에 올라선다.
204.6봉에서 인증을 남기고 내려가면 736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천치재에 내려선다
그런데 왜 천치재에서 사진이 한장도 없네
뭐 하느라고 사진을 안찍엇을까
오늘은 여기서 산행을 종료한다
내일 올라설 들머리 확인하고 주차할 곳 바두고 카카오 택시 콜하니 10분이 안되서 도착한다.
새벽에 산행을시작한 신현리 압곡마을 압곡제에 주차해둔 곳으로 이동해서 보니 조용하고 좋다
여기서 밥을하고 묵은지 듬뿍넣고 고아낸 돼지등뼈을 안주삼아 쏘맥몇잔 드리키고 차박을 한다.
다음날 일요일 새벽04시에 기상하며 컵라면으로 간단히 아침을해결 한다
오늘 산행거리는 신산경표에서 명시한 백산까지 12km정도 되고 합수점까지 4km를 더 가더라도 19km정도이다
그중에도 산길은 7km밖에 안되고 나머지 12km는 마루금이 임도 또는 농로 도로이기 때문에 큰 부담은 없지만 오늘은 산행후 집으로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마냥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아침 5시 34분 어제 산행을종료한 천치(天峙)
천치재는 정읍시 덕천면 도계리와 고부면 장문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2차선 도로가 넘어간다
천치재에서 임도로 올라가면 묘지가 나오고 좌측으로 이동해서 마루금에 닿고 서서히 오름이 시작된다
30분정도 올라가니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으로 살짝 벗어나 있는 삼각점봉을 다녀온다
마루금에서 우측으로 100m정도 벗어나 있는 146.3봉
인증을 남기고
146.3봉의 삼각점은 정읍 445
잡목도 듬성듬성 바위도 우회하고 우측으로 꺽어 내려가는데 갑자기 펑퍼짐한 능선으로 바뀌니 길이 뚜렸하지가 않다.
조금 불편하다 싶을 정도로 내려서니 2차선 도로에 내려서면 탑리고개
탑리고개는 아래쪽에 탑리라는 마을이름에서 따온 이름이다
원래 계획은 어제 여기까지 진행할려구 했었는데 두승산에서 가파른 내림길에 진이 빠져서 찬치재에서 산행을접었다
그런데 천왕봉이 왈 천치를빼먹고 왔다고 한다.
헉! 나는 왜 지금까지도 그생각을 못했지 지도를 살펴보니 들머리에서 약 800m지점이고 여기서는 1km가 넘는다.
이걸 우짜면좋노 일단 가면서 묘수를생각해 보기로 한다
일단 산행을 시작하고
한봉우리 넘으니 성황당고개에 내려선다
성황당(城隍堂)고개는 정읍시 영원면 은선리 탑리마을에서 덕천면 도계리로 안부에 성황당의 흐적인 돌무더기와 이곳이 성황당이라는 안내판이 있다
성황당 고개에 있는 안내판
성황당 고개에서 부터는 돌계단으로 길이 잘 정비가되어 있다
왠일일까 유명한 산이 있는것도 아닌데 의아해 할 때
뭔가가 보여서 살펴보니 무덤같은데 처음보는 모습이다
마침 옆에 안내문이 있어서 살펴보니 석실묘라고 하는데 군데군데 여러개가 보인다.
좀더 자세한 설명이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우리가 자라고개 쪽에서 왔는데 이정표에서 가리키는 자라고개는 좀전에 지난 성황당고개를 가리키는거 같은데
지형도에는 앞쪽으로 더 가야 되는걸로 되여있다
163.3봉에 올라서고
인증을 남긴다
잠시후 무명봉에 올라서니 직진으로 태산사 방향이고 지맥길은 우측 무제봉 방향으로 꺽어 내려간다
여러기의 묘지가 나오고 앞에 천태산이 보이면 여기가 자라고개 이다
자라고개(鼈峙)는 정읍시 이평면 산매리에서 영원면 은선리 탑리마을로 이어지는 고개인데 희미한 길의 흔적이 보인다
좀전에 솽황당 안내판에는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서해에서 자라가 육지로 올라오는 형국인 자라혈(鼈血)이라하며 이 고개를 자라고개(鼈血峙)라고 이름 하였다고 한다
우측의 산매마을은 마을이 천태산 밑이 되므로 붙여진 이름이고 좌측에 탑리마을은 모산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백제탑이 세워져 있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라고 한다
자라고개에서 올라서면 운동기구가 놓여있는 천태산에 올라선다
천태산은 마한 구소국의 역사와 백제의 지방 5대 거점중에 하나인 중방성의 역사와 유적. 유물이 발길마다 채이는데 백제시대의 은선리 3층석탑(보물 제167호)을 비릇하여 엄청난 백제의 역사적 흔적들이 흩어져 있는 곳이 이곳이라고 한다
천태산 아래에 있는 영원면은 백제의 중방성 지역으로 충청도의 공주. 논산. 예산 지역에 설치된 방성(方城)을 포함하여 오방성중의 하나이고 그 오방성중의 하나인 남밤성(南方城)이 이곳 영원면 지역 이라는 것이 여러 학자에 의해 제기되기도 했다
그 규모를 대충 살펴보면 달솔계급의 방령 1인이 은솔계급의 방좌 2명과 함께 관장했으며 군사가 1.200여명 이었고 민간 500호가 주어졌다고 하고 또 10개의 군(郡)과 현(縣) 및 성(城)을 거르렸다는데 정읍.부안.고창.김제지역이 이에 속했다고 한다.
즉 동진강 남쪽과 노령산맥 서쪽 변산반도 일대가 이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방성이 설치된 이유는 이곳이 백제 남방 경영의 요충지이며 한반도에서 비교적 빨리 벼농사 문화가 시작된 눌제천이 있으며 내륙 깊이 좃 (潮水)가 들어와 물류 유통이 수월했기 때문일 것이다
천태산에서 인증을 남기고
삼각점은 정읍 310
천태산에서 몇발짝 내려서면 테크로된 포토죤이 있다
포토죤에서 마침 떠오르는 일출을잡아 본다
천태산에서 내려와 묘지가한기 있고 운동기구가 있는 봉에 올라서면
171.3봉
바위에는 알수 없는 글씨들이 ....
171.3봉에서 20여미터 빽해서 좌측으로 내려서는데
길이 별로 좋치않다
171.3봉에서 거의 내려선 지점에서 진행방향을 바라보면 s자로 이여지는 임도가 보이고 48봉이 보인다
48봉 이후로는 마루금이 농로 또는 마을길 도로로 이여지는데 그 거리가 백산까지 만도 8km가 넘는다
도로에 내려서면 736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영원면과
이평면의 경계이고 임도로 마루금이 이여진다
타조농장을 지나는데 타조는 한마리만 보인다
앞에 보이는 소나무숲이 48봉
48봉에 올라서는데 선답자들의 흔적은 단 한장도 안보인다
임도에 내려서고 임도를 걷는다
지덜 집 앞을 지나간다고 꽤나 텃세를하는 똥깡아지들
한국농어촌공사 청량양수장 앞에서 일단 산행을종료하고 차량회수해서 차량으로 마루금을 이여갈 생각으로 카카오택시 콜을 하는데 연결이 안된다
조금더 진행해본다
중앙선까지 있는 도로인데 지나는 차량이 한대도 없다
정애교회에서 다시 택시콜을 하는데
또 역시 안된다
또 다시 걸어본다
삼거리가 나오고 이평 방향으로
우측으로는 어제 넘어온 두승산과 천치가 아련하게 보인다
거룡마을 버스정류장에서 다시 시도해보니 금새 연결이되고 5분만에 택시 도착한다
그럭저럭 백산까지 4km남은 지점이지만 새벽에 천치를 빼먹고 왔으니 지금이라도 차량부터 회수하기로 한다
택시로 차량이 있는 천치로 가는데
우리가 지금까지 걸어온 그길을 그데로 되짚어 간다
차량회수후 다시 이길로 왔으니 요구간 마루금은 세번을 지나게 된다
천치재로 돌아와서 새벽에 빼먹은 천치에 올라왔다
인증을 남기고
아침에 걸어서 갔고 택시로 다시 빽
그리고 내차로 다시 그길로 거룡마을에서 다시 시작한다
여기서 부터는 네비가 아닌 오륙스앱을 켜고 마루금따라 간다
한치도 벗어나지 않고 정확히 마루금으로 백산 주차장에 도착한다
백산으로 올라가는 길
백산 정상은 넓은 쉼터로 만들어져 있다
부안 백산성의 대한 안내문
그리고 선생님께서 설치한 산패
백산(白山:49m)은 부안군 백산면 용계리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동학정이란 복층으로된 팔각정자가 있고 동학혁명 백산 창의비가 있다
지형도에는 높이가 47m라고 되어있고 오룩스앱에는 49m라고 되여 있다
백산의 지명은 조선 시대 백산면 용계리에 있는 백산의 역사성에서 유래한 것으로 산 정상에는 삼국 시대 산성으로 추정되는 백산성이 있는데 산에 힌색의 화강암 바위가 많아서 하얗게 보이기 때문에 백산이라 불럿다는 설이 있으며 여지도서(고부)에 백산은 군북 30리에 있다는 기록이 있다.
호구총수(고부)에는 신평리.하청리.대수탕리 등의 동리명이 확인된다
조선지형도 (김제)에는 백산 동쪽 동진강 하도가 뱀의 꿈틀 거림처럼 직강공사 이전의 심한 곡류하천 모습이 그테로 묘사되어 있는데.
산록에 위치한 용계리는 백산의 모양이 마치 백룡이 물로 들어가는 형국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백산면 백산장 백산초등학교 등 관련 지명들이 있다
농민전쟁 1차 기병 때 호남창의소가 설치되었던 백산은 높이가 47m로 다른지방에서 라면 산도 아니라 할 만큼 나즈막하나 사방이 들판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이곳에 올라서서 보면 주변에 펼쳐진 수십리 들판이 한눈에 들어와 관군이 어느 쪽에서 접근해 오더라도 금새 알아첼 수 있는 대단히 유리한 지형이다
1894년 3월 20일 무장에서 기병한 농민군은 곧장 고부를 들이치고 3월 25일에는 백산으로 본진을 옮겼다
소식을 듣고 가까이서 멀리서 주먹을 부르쥐고 달려오는 사람으로 백산은 말 그대로 인산(人山)을 이루었다
그들이 서면 온 산이 농민의 힌옷으로 덮이고 또 앉으면 손마다 줜 죽창이 빼곡하다고 해서 서면 백산.앉으면 죽산 이라는 말까지 생겼다
삼각점은 정읍 302
복층으로된 동학정이란 팔각정
부안 평야
동진강 건너로 정읍과 김제 평야
동진강에 배수문도 보인다
동학혁명 백산 창의비
고부천/동진강 합수점은 자동차로 왔는데
합수점 위치는 온통 갈대밭이라 강물은 까마득하게 보일뿐 육안으로는 확인이 거의 불가능하다
어쨌든 합수점을 배경으로 인증을 남긴다
동진강 배수문
동진강을 건너며 배수문
소요경비
이동거리=593km(왕복)
유류비=49.420원(연비15km/디젤1.250원)
톨비=갈때 없음/올때 없음
택시=20.900원
택시=17.300원
등=30.000원
합계=117.62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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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두승지맥 졸업을 축하드립니다
두승산, 천태산, 백산이 국민학교 중학교 다닐때 소풍갔던 산입니다 백산에서 나고 자랐고 고부천에서 멱감고 동진강에서 주전자 들고 갈기 잡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어리적 게 잡으러 뻘에 들어갔다가 한다리 빼면 저다리 더 빠지고 배꼽까지 뻘에 묻혀 으앙~ 울었더니 형들이 달려와 뻘흙 긁어내고 구사일생 살아났죠 ㅎㅎ
예전엔 백산 북쪽에 석간이었고 복층루나 안내판 도로 따윈 없었는데 많이 변했네요 지금도 추석에는 선영들이 계시기에 벌초하러 가고있구요, 고향이기에 지맥을 다 마칠수있다면 두승길에서 회포를 풀고 싶다는게 제 소망입니다
넑두리 죄송합니다...
멋진 곳에서 태여나셨네요.
백산이 높이로보면 49m밖에 안되지만 조망은 1000m이상에서 보는 느낌이였습니다.
부안쪽으로 평야하며 동진강 건너로 정읍하며 김제 평야까지 수십킬로미터가 막힘이 없었습니다.
고부천에는 왠 낚싯꾼들이 그리 많은지 반면 동진강쪽에는 낙싯꾼이 단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넑두리가 아니라 충분히 자랑할 만한 이야기 입니다.
감사 합니다.
부뜰운영자님!
우선 먼저 원샷원킬로 두승지맥 졸업을 축하드립니다.^^
하지만 고부는 멋진 곳이 아닙니다.
동학혁명의 빌미를 제공한 발상지가 바로 고부입니다.
고부군수 조병갑이 보를 쌓는다는 빌미로 양민의 피를 빨아 견디다 못해 보가 터진게 동학혁명이죠~
시대를 바로보고, 힘있는 권력에 빌붙어 호가호위하려는 치졸함만 없었어도... 이 땅에 동학혁명은 없었습니다.
민초들의 바람은 무엇일까요? 배불리 먹고 자는 것입니다.
하얀 쌀을 두승산 처럼 쌓아 올려놓고 되빡과 말로 사정 없이 퍼담는 것이었답니다
정의란 무엇인가란 베스트셀러 책이 있잖아요.
저 그거 읽은 적 없습니다. 읽을 분량도 아니고 지루해서 그거 다 정독할 능력도 안됩니다.
하지만 무슨 말인지는 알것 같더군요.
옳은 것을 옳다고 말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고 똑바로 말할 줄 아는 사회가 곧 올바른 판단력을 제공한다는 말 아닌가요?
이것 저것 좌우 눈치나 살피고 어느 쪽에 붙어야 유리할까를 생각하는 사회는 정의와는 동떨어진 사회라는 얘깁니다.
두승지맥의 테마를 동학혁명 고부군수 조병갑으로 해도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퇴근길에 술한잔 걸쳐서 두승지맥 자세한 내용은 다시 살펴야 할것 같네요
그렇죠. 옛날에 난리가 없었던 곳이 없었겠지만 고부천과 백산은 해피마당쇠님의 어린시절 추억이 있는 곳이니 안 멋있을 수가 없겠죠.
감사합니다.
부뜰운영자님!
천왕봉님과 함께 두승지맥 마무리 축하드립니다.^^
시간전개에 따라 지맥의 앞뒤 연결이 잘되게 설명을 해주셔서 이해가 쏙쏙 들어옵니다.
책임감 있고 꼼꼼하게 산패작업까지 해주셔서,
임할무지로 그냥 지나치지 않고 장소 하나하나에 의미를 담을 수 있도록 신경써 주셔서 감사하네요.
두승지맥은 온통 동학혁명과 관계있는 곳이로군요.
두승산 정상의 바위가 두승산의 핵심적 상징입니다.
동그란 말(斗) 모양에 네모진 됫박(升) 모양을 얹혀 놓은 바위는 너른 평야지대를 내려다보며
두승산처럼 하얀 쌀을 쌓아놓고 퍼담아 온 백성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세상(풍요)를 기원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만백성이 반상의 차별없이 평등하게 배불리 먹고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었을 동학혁명의 중심 사상이었을 수도 있구요.
두승지맥은 동학이라는 묵직한 테마가 있어 꼭 해보고픈 지맥 중 하나로 자리했습니다.^^
모든 지맥에 이렇게 의미있는 테마가 하나씩 스토리텔링으로 자리잡았으면 좋겠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두승지맥도 만만한 곳이 않니였습니다.
낮은 산일수록 까시잡목이 극성을 부리죠.
두승에는 대나무숲이 사람잡습니다.
그런곳이 너뎃군데 있었는데요. 낙남정맥 고운동재는 그래도 길이 보이지만 여기는 길이 없습니다.
후반부는 날로먹는 곳이구요.
부뜰이 운영자님 두승지맥 졸업을 축하드립니다.
댕댕이들 묶어놓지 않는집도 있네요...
한..두마리도 아니고...ㅎㅎ
이런곳 야간에 지나기가 제일 두렵읍니다.... ^,^
자세한 산행기 참고하도록 하겠읍니다.
늘...즐거운 맥길 이어가시길 응원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그래도 쬐끄만 넘들은 괜찮은데 커다란넘들은 겁날때도 있습니다.
큰 넘들은 그냥 가는거 보다는 눈싸움을 해주는게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요즘은 뭐든지 한방이 대세인가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두승지맥 완주축하 합니다..
그래도 무한도전이나 무영객님에게 비하면 반토막 짜리라 가능합니다.
우리는 우리능력에 맞게 가야겠지요.
감사합니다.
일박이일 동안 두승지맥 마무리를 축하드립니다.
체력도 점점 일취월장해 가시는 듯...
해안 쪽 산줄기인 탓에 ~ 김제평야도 무한 드러납니다.
111.4봉을 지나쳤더라면 어찌하였을까요?.. ㅎ
연이은 산행 무탈히 마무리하시느라 수고많으셨습니다.
해발49m밖에 안되는 마지막 백산에서 조망이 끝내 주더군요.
부안.정읍.김제 평야가 끝이 안보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장거리 산행으로 두승지맥을 이으셨네요 두승지맥 완주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항상 응원합니다 화이팅입니다 ~~~~
전라북도는 그래도 300km대라 다닐만 합니다만 전라남도는 400km가되니 가고오는 시간이 큰부담입니다.
응원 감사합니다.
천태산 포토존에서 잡은 일출 사진이 일품이네요.
그 사진 속에 산을 타는 의미와 열정이 다 녹아있는 듯 보여
산행기와 사진을 감상하는 사람의 마음이 훈훈해집니다.
산행기를 따라 마루금을 함께 걸어가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두 분은 두 발로, 저는 두 눈으로만 두승지맥을 마쳤으니 세상 참 불공평하지요?
덕분에, 삼신산의 하나인 두승산, 고부천이 내려다 보이는 백산을 함께 오를 수 있었네요.
우리가 궁극적으로 도달하려는 것이 자연이려니 생각을 해 봅니다.
언젠가는 모두 하나의 돌탑이고자 하는 간절한 염원을 품고 사는 게 아닌가 생각도 해봅니다.
그리고, 천태산 일출사진보다 더 아름다웠던 건 두 분의 산행 모습이었음을 고백합니다.
먼 길, 원샷 원킬의 여정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무탈한 마무리를 감축드립니다.
고도가 낮다고 만만히 밧다가 된통혼난 두승이었습니다.
후반전은 거저먹었구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