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장(船長) 찾은 지명(知命)의 선원(船員)들
(2016. 문학사랑 봄호)
남 상 선 / 수필가
청 운 령 8 4 3 2호
선 장 : 똘이장군
교단의 당신 ( 남 ) 다른 체구에
청 년 그 이 ( 상 ) 의 열정으로
가르치신 참 ( 선 ) 생님이십니다.
우리 집 거실엔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범선 한 척이 정박해 있는데 거기에 씌어 있는 글씨다
이것은 바로 삼 년 전 스승의 날 식사 초대 자리에서 30년 전 충고 제자한테 받은 선물인데, 선체(船體)의 길이 1.m 너비 30㎝ 직육면체 투명 아크릴 속에 들어 있는 목조 선박으로 3년째 우리 집 거실을 지키고 있다
시선을 사로잡는 선체(船體) 좌우 양 날개 격으로 붙어 있는 열 개(좌측 다섯 개, 우측 다섯 개)의 노(櫓)에는′83학년도 충고 내 반 61명의 이름이 검은 글씨로 씌어 있다.
말하자면 내 반 전원이 선원으로 노 하나하나에 6명씩 배치되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선상에 포진(布陣)된 선원들이 선장 똘이장군(‵80년대 내 별명)을 주축으로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단합된 모습으로 항해하고 있는 모습이다. 노(櫓)마다 배치된 선원은 (임복진, 엄재영, 김종인, 박병훈, 임영환, 이은섭 ), (백시형, 오문환, 유재욱, 안상운, 권윤관, 유운선 ), (윤문수, 김윤경, 길병옥, 김형태, 정민호, 양병무 ), (이형수, 이원섭, 김용운, 양해룡, 유병민, 김홍현 ) (김완중, 강희근, 김재호, 김범식, 송상영, 이기동 ) (이남규, 최경규, 구철희, 이오형, 김현국, 강영구 ), (유병호, 조세연, 김상대, 임항수, 곽윤택, 심규황 ), (김기엽, 최진, 윤호봉, 이동호, 김용태, 고영기 ), (전병현, 정진희, 이은성, 금용, 추봉진, 김영필 ), ( 박진성, 가훈노, 천석봉, 황장연, 김종국, 최찬열 ). 이상과 같이 평생 운명을 같이할 선원들이 똘이장군 선장을 선두로 만년 항해선박 청운령 8432호에 승선해 있는 것이다. 골동품 시절 80년대에는 부인할 수 없는 사제지간의 관계였지만 이제는 한 배를 타고 운명을 같이 해야 할 연대감으로 거센 풍랑도 두려워하지 않고 용자(勇姿)를 뽐내고 있는 것이다.
생사고락을 같이 해야 할 아크릴 속의 친숙한 이름들과 똘이장군 선장은 너와 나의 팔다리가 되고 심장이 되어 세상 그 어떤 고난도 두려워하지 않고 위용을 뽐내고 있는 것이다. 선체 좌우 노(櫓)를 중심으로 포진하고 있는 선원(船員)들의 위용(威容) 앞에는 어떤 핵잠수함도 핵폭탄도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이물 고물 중간에 범선다운 나선형 부채꼴 돛을 달고 키를 달고 용골을 붙이고 용총을 잡아맬 때 거기에 오롯이 쏟아부은 열혈의 혼은 그 무엇으로 당해 낼 수 있으랴 !
열혈 가슴가슴이 한 몸이 된 청운령 8432호 !
성상(星霜) 거듭해도 청솔의 숨결로 화석이 될 바다의 수호신 !
세월의 그림자로 발효(醱酵)되어 나타난 불사조의 그 웅자(雄姿) !
똘이장군 선장을 향한 숨결 모은 열혈 천 년 해바라기의 순정 !
영겁(永劫)을 머리로 바다를 호령할 웅지의 기상 청운령 8432호 !
거기에는 음수사원(飮水思源)하는 선원들의 맥박과 가슴이 용광로로 타고 있었다.
선박의 재료값만 해도 수만 원에 비싼 보너스를 얹어야 할 것 같다. 이것이 현대인이 즐기는 현금으로 대용(代用)됐다면 인사치레 감언(甘言)의 여운도 없었을 터인데 조선공(造船工)은 선생인 내가 가르치지도 않은 별난 괴력을 어디서 모셔다가 이렇게도 가슴 뭉클하게 하는 것일까 !
조선공(造船工)은 틀림없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마술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마술사는 동(東)에도 서(西)에도 없는 미증유(未曾有)의 재주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는 그 무엇에 비길 수 없는 소중한 것이 녹아 흐르고 있으니 장인(匠人)의 그 손길과 숨결엔 어떤 요술이 들어 있다는 말인가 !
위용(威容)에 무늬한 섬세함은 시간과 손놀림의 짝꿍으로 모셔온 것이니 겉잡아 한 달 정도는 걸렸을 것이다. 그러니 끔찍하게 소중한 마음이 간다는 것은 당연지사(當然之事)가 아니겠는가 !
이 나이가 되도록 여러 차례 선물을 해 보기도 받아보기도 했지만 이처럼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감동은 하늘의 특별 주문에서만 오는 것이 아닐까…
을미년 12월 3일. 겨울 날씨치고는 너무나 잔인한, 눈발회초리였다. 귓불 따갑게 치는 악마의 손찌검이었다. 오전까지 포근했던 날씨가 저녁때가 다 되어 왜 이리 심술궂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오랜만의 선장과 선원들의 반가운 만남이 해후(邂逅)가 아니었음을 시샘하는 것이었으리라
지명(知命)의 나이가 된 청운령 8432호 선원들이 전국각지에서 유시(酉時)를 겨냥하여 모여들었다. 선장의 체온을 느끼기 위해, 아니, 서로의 따스한 가슴이 그리워서 드리오리 누룽지백숙집으로 모여들었다. 제아무리 휘몰아치는 눈발도 열혈의 가슴들 앞에선 힘을 쓰지 못했다. 청운령 8432호 선원들 앞에서는 기세가 꺾일 수밖에 없었다.
난형난제(難兄難弟)의 귀밑 서릿발로 순위 다툼이라도 하듯 청운령 선원들이 선장을 순식간에 에워쌌다. 연이어 술잔이 장전(裝塡)됐던 화살처럼 날아왔다. 세월 속에 발효(醱酵) 진화된 맹자의 인생삼락(人生三樂) 하나가 느꺼움으로 다가왔다. 거기는 천하 똘이장군 선장도 못한 일을 해내는 청운령 선원들만의 특별한 공간이었다. 강산 세 번 바뀌는 세월 속에서도 따뜻한 가슴 식지 않고 음수사원(飮水思源)하는 가슴을 태우는 바로 그런 자리였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 어디 따로 있겠는가 ! 범선속의 선원들 그 하나하나가 청출어람인 것을…
거친 세파 속에서도 소중한 것을 잃지 않고 가슴 따뜻하게 살아가는 청운령 8432호 선원들이 마냥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격랑(激浪)의 세파(世波)에도 음수사원(飮水思源)을 실천하는 청운령 8432호 선원들이 천연기념물로 온혈동물임을 과시하고 있다. 이처럼 따뜻한 가슴들이 백두에서 한라까지 만선(滿船)이 되어 동파(凍破)돼 가는 세상을 녹여 주었으면 한다. 아니, 열혈(熱血) 심장들이 우후죽순(雨後竹筍)이 되어 용광로 불을 지폈으면 한다.
첫댓글 용광로 불을 나에게도 지펴다오. 나는 늘 찬밥 신세다.
안녕하세요 남상선 수필가님 참 좋은 글 잘 읽었네요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
산넘고물건너님 댓글 보니 힘이 납니다 보약의 위력이 바로 이런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첫 글속중 삼행시만 보더라도 어떤 글 내용인지 어떤 선생님에 어떤 제자들인지 금방 알아볼 수 있습니다
얼마나 감동을 받으셨는지 이 글을 남기셨을까 과연 그 제자들이 수필가님의 인생 삶이 헛되지 않고 사랑과 존경으로
이루어졌는지 ..읽으면서도 훈훈합니다 사람사는 냄세가 바로 이런거구나 싶습니다 반면 반성되 되네요. 지난날 새 교과서와 참고서를 사주신 선생님의 고마움 새삼 느끼며 찾아 뵙지 못한 선생님데 대한 그리움이 커지는걸 보니 ...
수필가님 정말 고맙습니다
목화님 댓글 보니 조금은 부끄럽습니다
부끄러음을 무엇으로 갈음해 넣을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