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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개신교 이대로 좋은가? [1] 개신교 목회자의 도덕적 탈선, 교회세습과 전횡
공동선 대화 127호. (2016년 03+04월호).
사회: 류상태_ 종교작가, 전 대광고 교목실장
좌담: 수인_ <원불교 인권위원회> 사무처장
이병두_ 전 <문화체육관광부> 불교담당 종무관, 현 종교평화연구원장
이찬수_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류상태: 우리 사회에 적잖은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개신교 문제를 3회에 걸쳐 “한국 개신교 이래도 좋은가?”라는 주제로 1회는 목회자의 도덕적 탈선, 교회세습과 전횡 등을 다루고 2회는 돈 문제로 교회 재정, 목회자 연봉 및 소득세, 헌금 문제, 교회의 세금문제를 다루고 3회는 교리문제, 특히 성서해석과 관련하여 심층 분석하고 개선의 가능성을 찾고자 합니다.
이제까지는 개신교 내부에서 주로 신학자와 목회자들 끼리 논의를 해왔어요. 그런데 ‘끼리 얘기하는 것보다는 이웃종교, 타종교가 보는 개신교는 어떨까?’ 해서 이런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이웃종교에 대한 문제를 지적한다는 것이 매우 조심스럽고 힘들고 민감한 일이지만 개신교의 자성과 갱신을 위해, 개신교 목사였던 저와 공동선에서 제안한 만큼 허심탄회하게 말씀해 주세요. 일전에 한 불자께서 제게 “개신교인들이 길거리에서 전도하는걸 보면 무섭다.”고 하더군요. “마치 동물원에서 맹수가 탈출해서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것 같은 두려움을 느낀다.”는 거죠. 저는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아! 이 정도였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정도의 느낌은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죠. 이건 좀 잘못한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니까 개신교인들이 가슴으로 느끼고 깨달을 수 있게 말씀을 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
언론을 통해 접해보셨겠지만 최근에 독일유학, 박사학위도 받은 대학교수이자 부천 소사 소재 한 개신교회의 목사가 자기 딸을 살해하고 은폐한 사건으로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어떻습니까?
이병두: 사건의 가해자인 목사가 소속된 교단이 발 빠르게 사과했어요. 교단차원에서 위험을 느꼈던 거죠. 성직자의 범죄가 그동안 바깥세상에 잘 드러나지 않았었지만 뼛속 깊숙이 곪은 환부에 고름이 삐져나오는 정도지요, 어느 한 종교나 교단, 개인의 문제만은 아닐 거예요. 다른 종교에도 이런 일들이 터져 나오지 않을까하는 우려를 갖고 있습니다. 개신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종교계 전반이 위기의식을 느껴야 되는 문제인 거죠.
수인: 불교집안에서 자라면서 개신교를 접할 기회는 별로 없다가 원불교 인권위원회 일을 하게 되면서 접한 목사님들은 너무 좋으신 분들이세요. 가급적 일반인의 시각으로 얘기할게요. 우선 교수이자 목사인 이 분은 일반인들보다는 훨씬 높은 도덕적 요구를 기대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이지요. 이런 가치는 우선 접어두고 사실관계를 살펴보면 아버지와 소위 계모와 수차례 가출경력이 있는 전처소생의 딸이 구성하고 있는 가정의 문제로 봐야 합니다. 가족 구성원 간의 문제를 인권적인 관점으로 보아야 문제가 비로소 객관적으로 보이지, ‘개신교의 목회자니까 뭐 더 문제가 클 거야.’ 이런 식으로 보면 진실보다는 비난이 우선되어 사실관계를 왜곡할 우려가 높아집니다.
이찬수: 목사이자 교수인 사람이 친딸을 살해 후 가출했다고 허위신고를 하며 범행을 은폐하려 했던 상황인지라 더 충격적으로 와 닿았어요. 사람에겐 겉으로 포장된 것보다 내면이 더 중요하다, 역량이 부족한 사람이 학문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목사직을 맡다보면 학문적인 무능력으로 인한, 또는 종교적 영성의 부족으로 오는 도덕적 압박감 때문에 오히려 더 이중적 삶을 살게 되는 사례가 아닐까 합니다. 이 기회에 이른바 목사, 신부, 스님 등 성직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에 대한 의무적 존경심을 내려놓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수인: 언론이나 일반인들은 목사, 신부, 스님 등 성직자에 대해 하나님,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가 아니라 그냥 직업이 목사, 신부, 스님인 것으로 인식하는 것 같아요. 돈을 벌어먹고 사는 직업으로 여기는 거죠. ‘그냥 직업이기 때문에 저렇게 사는 것이지, 저 사람에게 뭘 기대하겠어!’라고 생각하며 포기하는 면도 있고 저들이 뭘 해도 변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2014년 여름, 교황이 내한을 하셨잖아요. 그때 정말 대다수의 사람들이-가톨릭 신자도 아닌 - 교황의 말씀과 행동을 통해 많이 설렜고 기뻐하며 고마움의 눈물도 흘렸어요. 참다운 성직자를 보고 느끼며 감동했던 거지요.
이찬수: 개신교는 교리, 사상, 종교사적으로 상당히 혁명적인 종교입니다. 내면, 양심, 신앙, 은총을 신앙과 신학의 중심으로 선언하고 만인사제설로 기존의 신부와 평신도 간의 수직적 관계를 목사와 신자 간에 수평적 관계로 전환한 혁명적인 종교죠. 그래서 엘리트적이에요. 그 혁명성을 소화할 성직자도, 평신도도 많지 않은 거죠. 어렵기 때문에 감당 못해서 각종의 타락과 부작용이 드러나는 거죠. 하지만 모든 것을 주체적으로 움직이고 판단하고 직분의 차별도 두지 않으려는 본래적 정신이 있기에 완전 절망하고 싶지는 않아요.
이병두: 그 목사가 속한 성결교단에서 바로 사과성명을 냈어요. 얼른 피해가려고 했던 것이 아니면 좋겠어요. 진정으로 종교계 전체가 여기에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 하고 반성하면 큰 전환의 계기가 될 텐데요. 학자들은 “누가 논문을 비판해 줄 때가 좋데요, 아예 인용도 안 해줄 때는 완전 버림받았다.”고 하던데 지금 사회가 냉정하게 대하는 것을 종교계는 더 무서워해야할 것 같아요.
류상태: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돌출 행동이나 발언을 하는 분들은 있기 마련인데 유독 개신교 목회자가 많은 이유가 우리 사회에서 왕따를 당해서 그런지, 좀 억울한 부분이 있는지, 개신교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지를 냉철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이병두: 가톨릭의 사제, 불교의 스님들 중에서 사회문제를 일으킨 비율을 따져보면 개신교의 목사가 그다지 높진 않아요. 그렇지만 목회활동을 하는 목사와 하지 못하지만 목사 자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사제나 수사, 스님보다 상당히 많아요. 그러다 보니 안 좋은 일이 터지면 거의 “목사가 그랬대.”라고 하니까 불리함도 있죠.
또한 불교와 가톨릭의 성직자는 기본적으로 출가자이죠, 가정을 떠나서 있고 입는 옷도 일반인들과 구별되니까 사고 치면 바로 신분이 노출되기 때문에 드러나는 사고를 잘 안치죠. 또한 시, 공간적으로 사회에서 격리되고 있잖아요..
이찬수: 신의 은총이나 계시나 뜻을 누군가가 독점하고 선포하는 구조는 한국사회의 정서와 상당히 이질적이죠. 한국 개신교는 워낙 교파중심으로 선교 되어 왔고 선교방식도 교회 제각각이다 보니 양적 성장으로 목사의 영적능력을 평가하는 상황이 된 거죠. 목사는 압박감을 느끼죠. 전체조직은 취약하고 부작용을 관리할 주체는 없는 거죠. 앞서 말씀하신대로 목사들 숫자가 십만 명 가까이 되고, 신학교도 워낙 많아서 양질의 목사도 있지만 저급한 목사들도 있죠. 그래서 개신교 목회자들이 이런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사건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해요.
류상태: 가톨릭은 유기적으로, 체계적으로 조직을 갖추었기에 사제양성과정도 역시 상당히 탄탄하고 엘리트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개신교는 말씀하신대로 전체를 아우르는 중앙조직이 없기 때문에 목회자 양성과정에서부터 문제가 발생합니다. 교회운영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고 목회자들의 생활이 어려워지고 있는데도 여전히 많은 신학생들이 아무런 통제 없이 신학교를 졸업해서 목회자로 쏟아져 나온다는 것이 우선 문제이고, 통제도 못하는 것이 자정능력이 없다는 증거죠. 정해진 교육 과정-신학대학 4년, 신학대학원 3년, 인턴(전도사, 강도사)과정 2년-이 지켜지지 않고 심지어는 대학을 나오지 않은 분들이 목회자 양성과정에 들어가서 어느 날 박사학위까지 취득하는 경우도 많이 있지 않습니까? 이런 게 결과적으로 목회자 전반에 대한 자질저하로 이어지는 게 아닌가 합니다.
이찬수: 신학교가 난립하는 문제나 양질의 교육과정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지만 그 이유가 각 교단과 교파가 자기 권력과 자본을 확장하기 위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과정을 체계화하고 목회자 수를 제한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일을 벌이기는 쉽지만 추스르기는 어려운 상황 속에 들어가 있죠. 개신교는 이렇게 사회적으로 문제를 계속 일으키다가 쇠퇴한 후 자정능력이 있는 쪽이 소수종교로 살아남아 유지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교육부에서 강제적으로 하면 어쩔 수 없이 욕하면서 따라갈 순 있겠지만 자체적으로는 못한다고 봅니다.
이병두: 일반 대학은 구조조정을 하잖아요. 자율적으로 취업이 안 되는 과는 폐과하는데 강제로 시키니까 더 하는데 신학교들은 불가능할거라고 봐요. 자칫하면 종교탄압이라는 말이 나오고 거기다가 신학교를 세운 게 각 교단차원에서만 세웠으면 다행인데 개인들이 돈벌이 수단으로 세운 게 많잖습니까? 이런 것들을 감당하는 게 불가능하죠. 국가권력이 잘못 개입할 수도 없고 말씀하신대로 각 교단들이 그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개인들이 자기 돈벌이 수단이 되는데 신학교를 문 닫겠습니까? 선생님 말씀대로 마지막까지 가서 무너져서 할 수 없이 문 닫기 전까지는 이 문제는 해결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찬수: 목사 안수는 교단이 자체적으로 하는 거니까, 교육부와는 관계없죠. 그러니 이런 식으로 쏟아져 나온 목사가 얼마나 많겠어요. 물론 단순히 학위가 없다고 해서 열등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럴 가능성은 크죠. 사회의 교육수준은 이미 대졸 이상인데요, 또한 목사가 성직이 아닌 직업이 되어버렸으니까요. 개혁은 어느 제도에 의해서, 누군가에 의해서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분위기가 충분히 무르익으면서 떨어져 나갈 것은 다 떨어져 나가고 우리 사회에서 통하는 종교적 양심과 신앙을 가진 남은 이들이 새로운 싹을 피울 거라고, 이들에 의해서 조금씩 개편되어 가리라고 봅니다.
류상태: 안티기독교인들이 개신교인을 무뇌아라고 얘기하거든요. 완전히 세뇌되어 판단능력이 없는, 판단능력을 잃어버린 사람이라는 뜻으로 무뇌아라고 쓰는 거죠. 그리고 개신교 목사를 먹사- 먹고살려고 하는 사람들, 사명감이니 뭐니 그거보다도 그건 겉으로 내놓는 거고, 자기 밥벌이 하려고 문제가 있어도 말도 못하고 어떻게 하지도 못하는 -라고, 그리고 막사- 이거는 먹사보다 더 나가는 사람, 아예 생각 없이 막가는-라고 말하더라고요. 평소 개신교 목사들에 대한 인상이 어떤지를 솔직하게 들어보고 싶습니다.
이병두: 평소 만나는 목사님들은 참 훌륭한 분들이 많아요. 하지만 언론을 통해서 사랑의 교회 오정현 목사나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목사, 그리고 홍대새교회의 전병욱목사 -삼일교회에서 여신도를 성추행하고 13억의 전별금을 받아 챙기고- 등을 보면서 사람들이 왜 개독교라고 하고 먹사라고 하는지 이해는 되더라고요. 문제는 이런 나쁜 바이러스들이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가서 훌륭한 목사님들은 숨어버리던가, 그들과 같이 익숙해져 가지 않을까 걱정합니다. 중국 고사 중에 광천狂川이란 곳이 있데요. 이 샘물을 마시면 미친답니다. 그 마을 사람들이 다 마시게 되는데요. 혼자만 정상인데, 그 사람이 미친 놈 사이에서는 진짜 미친놈인 거죠. 그래서 그 사람까지 마시게 됐다는 겁니다. 이런 사태가 오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그 바이러스를 감당할 능력들이 있으신지.
수인: 새해 인사가 “대박나세요.”라네요. 세상이 너무 돈 위주로 흘러가다 보니까 말이죠. 지금이야말로 종교가 필요한 세상이죠. 착한 걸 예전에는 착하다고 했지만 지금은 모자라다거나 덜 자랐다고 얘기해요. 그나마 기댈 데가 종교인데, 우리가 기대야 할 종교가 사라지는 거잖아요. 종교에 대한 애정이 있으니까 목소리를 높여서 이런 얘기라고 하는 거지, 이런 얘기조차 안하는 상황이 두려운 거죠, 지금 개신교만의 문제는 아니잖아요. 종교라는 것에 대한 기대가 없으니까 거의 말을 안 하죠. 우리가 보통 매장에서 물건을 사라고 강요당할 때 사기 싫으면 안사면 돼요, 내 주머니에 있는 내 돈과 내 의지가 거의 99%이상 작용해요. 그렇지만 개신교의 전도는 그렇지 않아요. 개신교의 전도는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게 아니잖아요. 내 갈증에 대한 충족이잖아요. 길거리에서 개신교의 전도가 아무리 잘못된 방식이었다고 해도 돌아서면 뭔가 마음이 안 좋고 씁쓸한 감정들이 있는데 이런 것은 그래도 아직은 종교에 대한 기대가 있는 상태인 거죠. “예수 천당, 불신지옥”이란 말을 들으면 때론 무서워요, 자기 말을 따르지 않으면 상대방에게 저주를 하잖아요. 손가락질을 당한적도 있어요. “내 말 안 듣고 그냥 가면 당신 지옥 간다.”고 당한 적이 있어요. 무엇이 저 사람을 저렇게 만들까 두려웠어요. ‘인간이 저렇게도 될 수 있구나, 종교가 인간을 저렇게 만들 수 있구나.’하며 두려웠는데 지금은 들으면 그냥 웃어요, 조금은 포기하는 모습도 있지만 그래도 두려움이 제일 커요.
이찬수: 제가 개신교인이라는 자기 정체성은 분명한데요. 동물원에서 탈출한 맹수가 마치 사람들을 해칠 것 같은 두려움이 든다는 것처럼 제가 보기에도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환자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좋게 생각해서 저런 열정이라도 있으니 나름 행복은 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이 개신교 전체로 보면 소수거든요. 그러나 개신교인의 공통적인 정서는 자신은 저렇게 용감하게 길에서는 못 외쳐도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들에게 동조하는 분위기는 아주 강해요. 이런 현실이 개신교를 지탄하는 사회적 목소리를 키워가는 중이고 그런 목소리 때문에 떠나는 사람도 생기고, 그래서 더 줄어들어야만 개신교가 자기가 살 길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자기 건강을 해치고 나서야 비로소 건강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는 거죠.
이병두: 정신병원을 탈출한 환자를 여기 앞에서도 만났어요, 아주 말짱한 분이에요. 매주 금요일 오후면 조계사 앞에도 이런 분들이 있어요. 신고하면 경범죄로 잡아가요, 그런데 사람들이 신고하다 지치는 거죠. 인사동 사거리 로터리에서도 매주 금요일 마다 하는데도 종로경찰서는 신고를 안 하면 안 해요, 양쪽에서 종로경찰서에 뭐라고 하면 종로경찰서는 조계사에서 신고가 들어왔다고 얘기한 대요, 이건 갈등을 일으키는 거란 말이죠, 소란행위가 벌어지는 건 사실이니까, 설사 신고가 들어왔어도 신고자가 누군지 얘기할 필요가 없잖아요.
류상태: 요즘은 잔잔해졌습니다만 한동안 많이 시끄러웠습니다. 목회자 세습 문제가 사회적인 이슈가 될 때마다 어떤 느낌을 받으셨는지요? 그리고 불교와 원불교에도 이런 문제가 있나요?
이병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불교에도 세습 문제가 있습니다. 대처帶妻 종단의 경우는 대개 자식들한테 물려집니다. 그런데 자식이 물려받은 후 개신교로 개종해 문제가 발생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통상 사회문제화 되지 않는 이유는 대부분 산 속의 조그만 절이기 때문입니다. 세습 문제는 최근 한 10년 전후로 나타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목사 개인이 노력해서 개척해서 세웠다고 하더라도 교회를 만드는데 목사 개인 것뿐만 아니라 신도들이 낸 헌금 그리고 여러 가지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그만큼 된 것이잖아요. 사회에서 영리를 목적으로 세운 기업에서도 자식한테 물려주고 하는 것을 사회가 용납을 잘 하지 못하는 분위기인데 더군다나 종교기관인 교회를 그렇게 넘긴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죠. 대형교회의 목사는 교회에 재직하는 동안에 연봉을 수억씩 받고 퇴직금도 수십억 받고 자식들 유학 보내면서 몇 억씩 들여 학위를 취득합니다. 그럼 자식들한테 해준 게 대한민국의 보통 기준보다 훨씬 크게 해 준겁니다. 재벌이 자기 자식들한테 하는 것 이상으로 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거기다가 교회까지 물려준다는 것은 이것은 도저히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끊어야 될 문제입니다.
류상태: 이 문제만큼은 단호하신 것 같습니다.
이병두: 네. 단호해야 됩니다. 작은 교회는 세습하지 않습니다.
류상태: 그렇죠. 거의 세습하지 않지요.
이찬수: 작은 교회는 세습해도 별로 드러나지도 않습니다.
수인: 원불교는 워낙 조직 자체가 구조화되어 있기 때문에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봅니다. 사실 교도들의 믿음을 근간으로 돈을 벌고 또 세습을 통해서 다시 자식에게 물려준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죠. 교도의 머릿수를 통해서 돈을 주고받고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충격이었습니다. 그 정도면 이걸 사업이라고 해야지, 종교라고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류상태: 상식에도 어긋나는데 그것도 수 만 성도가 모인 대형교회에서 일어나는 현상인데 어떻게 이게 가능한지, 도대체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그렇게 많은 교인들이 따라가는 혹은 끌려가는 그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찬수: 1970~1980년대 한국의 고도경제성장 뒤에 개신교회도 대형화되기 시작합니다. 시간이 흘러 대형교회의 목회자들의 은퇴시기가 된 것입니다. 한국개신교의 특징은 목회자를 중심으로 신자들이 모여 교회가 세를 확장하면서 목회자에 대한 신뢰감-막스 웨버는 카리스마가 세습된다-이 신자들에게도 강해지는 것이지요. 비슷한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선 낮선 사람에게는 실험과정이 필요하지만 익숙한 사람에게는 그 과정이 쉽지요. 교회 세습의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뒤집어 보면 교회가 이미 친목단체나 사교단체로 되어 그들만의 리그를 꾸리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해당 교회 입장에서 보면 “능력 있는 사람이라면 담임목사가 누구든 뭔 상관이냐, 우리 교회 안의 절차에 따라 하는 것인데 낮선 사람보다 확인된 분이 당연히 좋겠다.”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 이미 세습이 대형교회 안에서 우리의 전통인 가족주의와 결합하고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한 양적 성장을 이룬데서 오는 필연적인 결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체념할 수만은 없습니다. 성서적, 신학적으로 교회는 “끝없이 세상 안에서 예수처럼 살라고 성령께서 나를 불러 주었고 그런 사람들의 꿈틀거리는 모임이다”라는 교회 정의를 신학자들이 계속 얘기해야 합니다. 그리고 목회자가 교회를 재산으로 생각하며 거래할 때 신자 머릿수에 따라서 교회 가치가 매겨지는 것이 현실인데… 이런 것을 공론화 시켜서 사회에서 “교회라는 조직이 조금도 바랄 것이 없는 조직이로구나”라며 비판의 목소리가 커져야 교회세습이 가라앉을 것 같습니다.
2013년도 기준으로 <교회세습반대연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61개 교회에서 세습을 완료했고 21개 교회가 세습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세습방법은 잠깐 훈련시켜 오거나 건너뛰기로 세습하거나 지교회支敎會 만들어서 보냈다 본교회로 부르는 등 편법을 쓰고 있습니다.
류상태: 세습은 오히려 기독교 신앙의 중심과는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네요, 내적 신앙의 힘에 의지하기 보다는 자기에게 유리한 교회조직을 유지하고 싶은 거겠죠. 그 안에서 자기가 누렸던 정신적인 행복감, 이게 정말 종교적인 영성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냥 행복감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찬수: 그 말이 더 정확한 말씀일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사람이 오면 기존 질서를 변화시키려 할 테니까 아는 사람으로 쭉 가는 게 제일 좋겠지요.
류상태: 결국 이 문제는 사회의 동의나 이해를 받기는 어려운 문제고 교회에서 해결을 하고 넘어서야 할 문제라고 봐야 됩니다.
이병두: 교회는 해결을 못할 것입니다. 사회의 여론이 계속 쳐 줘야 합니다.
류상태: 대형교회 목회자들일수록 교회에서 전횡을 일삼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자기 혼자 마음대로 하는 그냥 독재죠. 여의도순복음교회, 사랑의 교회를 보면 담임목사의 전횡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저항이 있긴 있어요. 대책위원회를 만들어 가지고 조직적으로 저항하기도 하는데 문제는 아무리 애써도 그 사람들은 결국은 극소수가 되고 내 쳐지더라고요. 법적으로 하고 그래도 안에서 도태되는 절차를 밟게 되는데 그런 것을 보면서 정말 교회 민주화가 참 어려운 거구나 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이찬수: 목사는 하늘의 뜻을 선포하는 사람이라는 말 자체가 수직적 위계질서를 전제해 놓은 거라고 봅니다. 신자들의 생각 또한 그렇다면 민주주의가 가능하겠어요. 그러니까 뒤에서는 목사를 비판하고 희망사항을 얘기할 수는 있지만 정면으로 얘기하는 순간 뭔가 하늘의 권위에 도전한 것 같은 거리낌이 신자들에게 있는 거죠. 그러니까 신자들이 일단 노골적으로 못하고 목사들도 전혀 자신의 권위를 내려놓고 싶지 않죠. 사랑의 교회에서 신자들이 매주 몇 백 명씩 떠나도 권위를 내려놓지 않는 것은 기존 권위에 익숙한 신자들이 권위를 내려놓길 원치 않고 자신들과 익숙한 삶을 계속 가기를 원하기 때문이지 않나 싶습니다.
이병두: 사찰에서도 비슷합니다. 그런데 제도적인 것으로만 보면 1994년 이후의 조계종은 제도적으로는 민주화 절차를 다 갖추었습니다. 삼권분립에다 헌법재판소 비슷한 제도도 있습니다. 지금은 거의 본사 주지 등을 선거로 뽑으니까 불상사도 생기지만 제도는 민주주의를 이루고 있어요. 그러면서 1994년부터는 개별사찰 뿐만 아니라 말사도 사찰운영위원회를 운영하도록 되어 있어요. 주지와 신도의 대표들이 참여하는 사찰운영위원회가 법적 조항으로 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운영이 잘 되지도 않고 문제는 주지가 의지를 가지고 하려고 하는 경우도 신도들이 발언을 잘 하지 경우가 많아요.
저 같은 경우에 예전에는 발언을 많이 했어요. 스님이 차를 샀기에 “왜 이런 차를 사느냐, 배기량 낮추어야 되는 것 아니냐, 앞으로 오는 스님마다 다 차 사줄 것이냐.” 이렇게 따졌더니 오히려 신도들이 싫어하는 겁니다. 그런 것을 감히 어떻게 스님한테 따지느냐는 거예요. 이런 식으로 되기 때문에 종교 자체적으로 돈 문제에 대해서 신도들이 나서서 아니라고 못합니다.
예를 들어 명성교회 등 대형교회에서 큰돈을 안 내놓으면 지난해 말 부산에서 열린 행사를 치르기 어려웠을 거예요. 불교계도 어느 스님이 10억원 낼게, 누가 몇 억 낼게 이런 것이 있습니다. 그거 볼 적마다 화가 나요.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자기들 마음대로 하는 겁니다. 사찰 내에서 절차를 안 거칩니다. 이번에 뭐 하는데 “몇 십억 내겠습니다.” 하는 이런 절차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주변에서 칭찬을 합니다. 언론에서는 어떻게 마음대로 10억이나 쓰느냐 비판을 해야 하는데 못합니다. 제가 보기엔 교회세습 반대운동에 앞서서 지나친 존경심 내려놓기부터 해야 될 것 같습니다.
류상태: 스님, 목사님이 가지고 있는 깊은 영성에서 우러나와서 신도들이 갖게 된 지나친 존경심이기보다는 오랫동안 세뇌된 결과라고 한다면 참 심각한 문제인데 그런 측면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민주적인 제도적 장치가 개신교에 전혀 없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재직회나 교인들로 구성된 총회도 있고 각 교회마다 당회에서 결정하는 것 아닌가요? 문제는 제도적인 틀은 갖추어져 있는데 현실에서 잘 반영이 안되는 게 문제인거 같은데요?
이찬수: 한국 정치의 여러 분야가 개혁 되어야지만 특히 국회의 개혁이 중요합니다. 개혁이라는 것은 기득권을 내려놓는 것인데 기득권자인 국회의원이 어떻게 기득권을 내려놓습니까? 그러니 국회개혁을 못하고 있잖아요. 선거구 획정조차도 못하잖아요. 교회도 같은 것 같습니다. 가령 제도개선을 누가 하냐면 신자들이 해야 된다고 하면 뭔가 하늘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못합니다. 그럼 그런 결정을 누가 해야 되냐면 담임목사가 스스로 용감하게 제도를 만들고 “나는 정말 2년마다 한 번씩 재신임을 묻겠다. 아니면 교회가 천 명 넘어가면 다른 교회를 만들겠다.”고 할 때야만 가능성이 생기는 거라고 봅니다.
분당 우리교회에 저랑 동명이인인 목사분이 가끔 재신임을 묻기도 하는데 나쁘게 말해 쇼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런 절차를 얘기를 하고 자신을 내려놓으려고 하는 모양새는 참 가상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목사가 바꾸자고 말을 했다고 신자들이 바꾸자고 하면 목사가 꽁할 것 같은 느낌이 드니까 못 바꾸는 것이죠.
이병두: 목사님이나 스님한테 벤츠600을 사드리고 싶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개혁이 자체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류상태: 목회자 문제 중에 또 하나는 도덕성에 관련한 것인데 신도에 대한 성적 폭행이 사실은 가톨릭, 불교에도 있습니다. 오히려 거기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인간본성에 거슬리는 독신제도가 있기 때문에 신앙적인 의제로 싸우는 거죠. 그런데 오히려 제도적으로 가정을 꾸릴 수 있는 개신교에서 이런 도덕적인 해이 문제가 심각하게 드러날까요? 오히려 보수적인 교회일수록 도덕적인 엄격성은 더 강조합니다. 술, 담배, 혼전순결을 강조하고, 이혼을 반대하는 등 엄한 도덕적 규율을 강조하는 보수교회 목회자들이 도덕적 탈선에 취약한 이유와 원인이 있을 것 같은데요?
이찬수: 여기서 구분을 하나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immorality하고 amorality가 있는데 immorality를 우리말로 부도덕적이라고 번역한다면 amorality는 비도덕적이라고 구분하기도 합니다. 부도덕성은 자기 의도적으로 도덕적이지 않은 행동을 하는 것, 자기 위주로 적극적으로 반도덕적인 행위를 하는 것이니까 위선 같은 거고 비도덕적amorality이라고 하면 사회구조나 분위기가 도덕적이 못한 행동을 하게 하는 소극적 반도덕성 같은 겁니다.
류상태: 비도덕적은 먹고 살기 위해서 할 수 없이 하는 것 같은 거군요.
이찬수: 그렇게 볼 수 있죠.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아이히만은 6백만 유대인을 학살한 주범 중에 하나인데 잡고 보니까 평범한 사람이더라. 자기가 얼마나 큰일을 저지른 것인지 사유하는데 무능력한 것이 이렇게 큰 교훈을 낳았다”라고 썼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신앙주의자들이 신학을 위험시 하며 사유를 경계하는 경향으로 갑니다. 목사 개인이 정말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사람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목사가 소극적인 의미에 반도덕성을 보이는 사람인데 분위기가 강력하게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면 마음속에 욕망이 자라면서 어느 순간 터져 나오는 것이죠. 전병용 목사처럼 성폭력범이 되는 거죠. 아무나 목사로 양산시켜 놓은 것도 문제입니다. 이런 점에서 개신교는 여러 가지로 탈선의 가능성이 크고 원인은 총체적이고 복합적이라고 봅니다.
이병두: 원래 부정부패한 정권이 늘 부패와의 전쟁을 내세우고 정의사회를 구현하자고 합니다. 엄밀하게 보수는 아니고 수구나 꼴통이라고 표현해야 합니다. 꼴통들이 과하게 하는 데에는 자기네들의 숨긴 죄가 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승려가 여자문제 등으로 절벽에서 투신, 자살했는데 그래도 여신도들이 가서 우리 스님이라고 시신을 수습하고 그럽니다. 이러다보니 일명 팬티 목사로 유명한 분, 이런 분들이 아직도 활동할 수 있는 것이잖아요. 인터넷에 그렇게 사실이 떠돌아다니는데도 신도들이 받아줍니다.
류상태: 그때마다 그 사람들이 써 먹는 게 목사들이 잘못하면 “하느님께서 알아서 쳐. 당신들은 입 다물고 있어.” 입니다.
이병두: 지금은 그런 일이 없어졌지만 1998~1999년까지 조계종에서 각목 들고 많이 싸웠잖아요. 그럴 때 조계사 대웅전 문 열어 놓으면요, 거기 가서 돈을 열심히 넣는 사람들 많습니다. 그래서 “아니, 저 판에 왜 돈을 넣느냐.”고 하면 자기는 “부처님한테 받친다.”는 거예요. 교회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그게 아니라고 해야 되는데 목사님을 하느님의 대행자로 여기니까요.
수인: 문제가 생기면 목사직에서 완전히 물러나야 되잖아요. 그런데 또 가서 합니다. 지나친 말로 교인들이 너무 무식해서라면 이해하겠어요. 그런데 나름대로 배웠다는 분들이 교회 가서 문제목사에게 설교를 듣고 하는 것을 보면서 ‘과연 무엇 때문일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류상태: 그래서 무뇌아라고 하는 것이죠.
이병두: 사색하는 능력은 다 뺏어 버리고 무조건 믿게 만드는 것이죠.
수인: ‘교회라는 집단으로 이해관계가 얽히는 게 밖에서 손가락질 하는 것보다 났기 때문에 앉아 있는 게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밖에서 손가락질해서 생기는 손해보다 거기 앉아서 얽혀있는 이해관계와 더 났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본인이 느끼기에 그게 돈이 아니면 자기의 위안이든 뭐가 되었든 간에 말이죠.
류상태: 개신교 목회자들의 행태 중에서 이웃종교인들에게 결례가 되는 언행들이 좀 그동안 많이 있었습니다. 사찰에 잠입해서 불을 지르거나 낙서를 하거나 방뇨하거나 뭐 이런 경우에 범인을 찾은 경우도 있고 못 찾은 경우도 있는데 못 찾은 경우도 대부분 어느 특정 종교라고 봅니다. 그런데 밝혀진 게 꽤 있습니다. 목사라든지 전도사라든지 개신교 목회자들인 경우로 밝혀진 경우가 많은데 설교라든지 강의 중에 혹시 들어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아주 노골적으로 불교를 좀 비하하고 이런 경우가 있었는데 여기에 대해서 이웃종교인으로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어떤 조언을 해 주실 수 있는지 듣고 싶습니다.
수인: 요즈음은 사찰마다 CCTV가 달려 있던데요.
이병두: 그것은 그 용도가 아니고 방재시스템으로 전기, 화재 그런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 설치한 것입니다.
수인: 며칠 전에 대웅전 하나 있는 조그만 절에 갔는데 CCTV가 무려 8대가 달려 있는 거예요. 전통사찰도 아니라고 하던데 그래서 제가 “CCTV가 많네요.” 했더니 “불미스러운 일이 많아서요.” 이러고 마시더라고요. 그래서 일행끼리 “요즈음 그런 공격을 받거나 그래서 많이 다는구나.” 라고 이야기했었습니다.
이병두: 절에 가서 페인팅하고 불상을 훼손하면 문제가 심각해지는 거죠. 조선시대에는 유자儒者들이 툭하면 절에서 오줌 싸고 기생파티 벌이고 음식 차려 내라고 했었죠. 문제는 과거에도 있었는데 과거에는 별로 안 알려졌죠. 이제는 CCTV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스마트폰 가지고 있어서 바로 찍어서 날려 보내는 시대죠. 김천의 개운사 사태도 주지 스님이 찍어서 SNS에 올려놓은 거죠.”
류상태: 마지막으로 이웃종교가 보는 개신교의 장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죠.
수인: 개신교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역동적이고 늘 변화에 민감하고 주체적으로 대응을 빨리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보면서 부럽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원불교나 가톨릭은 체계가 복잡해서 뭘 하나 변화시키는데도 몇 년 걸리고 또 이 변화를 위해서 준비하고 노력했던 것이 지도부의의 결정 하나로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는 경우를 봐왔기 때문이죠. 개신교는 여러 교파로 나눠져 있기 때문에 어떤 교파는 좀 더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부럽다는 생각을 했어요. 변화의 시작은 스스로 권위를 내려놓는 것도 변화의 시작이지만 그 종교를 믿는 신도들로부터 모든 변화의 시작이 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신도들이 변화하고 좀 더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하면 이미 목회자 스스로도 거기에 적응해서 변화될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되지 않겠어요. 스스로 뭔가를 내려놓기는 정말 어렵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변화되는 세상에서 절대적인 신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사는 개신교인들이 부럽습니다. 그리고 보다 건강한 개신교가 되길 기원합니다. 건강한 개신교로 가는 길은 평신도들로부터 시작해야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류상태: 평신도들이 몇 번 시도 하다가 안 되면 계속 지속적으로 하기보다는 그냥 교회를 나와 버리게 되죠. 그래서 그냥 가나안 교회, 가나안 성도가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가나안’을 거꾸로 하면 ‘안나가’가 되죠. 그래서 “난 가나안 성도다, 가나안 교회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수인: 그것도 변화의 시작일 수 있는 것이 아닌가요? 안 나가고 자꾸 줄어들면 변화할 수밖에 없겠지요.
이찬수: 기대를 해야죠. 저는 그런 희망을 가지고 제 스스로 기독교인이라고 여기며 남아있어요. 기회가 되는 대로 대화도 하고 글도 씁니다. 개신교는 혁명적인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주체성을 종교의 전면에 내세운 종교전통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신의 은총을 얘기하면서 인간의 주체성을 다시 역설적으로 얘기합니다. 그만큼 혁명적인데 그러나 그만큼 어려운 거죠. 그러다 보니까 부작용도 자꾸 나오는데요. 이제는 신학도 완전 재구성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구약성서, 신약성서 이거 말고 사랑의 신학, 정체 신학, 인간의 신학 등 주제별로 이 시대 사람들이 알아야 될 언어로 재구성되어야 된다고 봅니다. 신앙의 확장보다 인격의 성숙이 다시 신앙적 성숙을 이끄는 것이죠, 인격의 성숙을 먼저 얘기할 수 있어야 하고 용서를 먼저 얘기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웃종교에 결례하는 행위는 무지 수준도 아니고 사회적 범죄다 해서 사회적 언어로 해설할 수 있어야 된다든가, 이건 범죄다 그런 것처럼 종교 언어를 좁히면 이제 기독교 언어겠죠. 개신교 언어 그것을 사회적 언어로 번역해 내는 작업을 해나가면 그게 이 시대에 앞으로 기독교가 살아남아 갈 수 있는 기초를 다지는 게 아니겠나 생각합니다.
이병두: 이웃종교의 결례문제 얘기에 관해 생각나는 게 있습니다. 2000년에 싱가포르의 유명한 의학 잡지사가 도교와 유교를 공격하다가 싱가포르 내무부에서 공개 사과하지 않으면 “종교평화유지법”에 근거하여 기소하겠다고 해서 유명한 의학 잡지사가 사과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까지 가지 않도록 개신교 쪽에서 특히 도와주어야 되죠.
개신교의 장점은 한국에서 종교가 어려움을 겪어서 사라지게 된다면 그래도 개신교가 가장 뒤에까지 살아남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문제를 일으키는 잘못된 목회자도 많지만, 훌륭한 목사님들이 뜻밖으로 많고 불교계의 비율이나 천주교에서의 훌륭한 사제의 비율보다는 이제까지 본거로는 개신교가 오히려 훌륭한 목사님의 비율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개신교가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까지 가도 대중들이 믿고 따를 것이고 그리고 가톨릭이나 불교와 달리, 교단 중심이 아니라 각 개별 교회 책임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부패와 타락이 전파되지 않는 청정지역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더 큰 공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문맹률 최저라고 자랑할 수 있게 된 것도, 개화 이후 교회와 기독교 선각자들이 이 땅에서 교육 사업을 펼친 덕분이고, 한국전쟁 이후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는 등 개신교가 복지사업에 기여한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이 많은 장점과 공이 최근 일부의 비행과 일탈 행위 때문에 묻혀버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류상태: 오늘의 대화는 개신교 바깥에 이웃종교, 타 종교인들, 신실한 종교성을 가지고 나름대로의 진리를 추구하는 분들에게 개신교에 대한 느낌과 조언 등을 들어보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부족하지만 이 대화가 개신교가 성찰하고 발전하는데 미약하게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