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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회 형식으로 농구경기를 갖던 휘문고 농구부는 1920년대부터 정식 농구부의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했다.
27회 이성구 선생을 비롯해 김용무, 안병석, 이경재 등 많은 우수 선수를 배출하면서 농구명문으로 자리잡은
휘문고는 20~30년대의 도약기를 거쳐 1946년 YMCA 동계리그전에서 첫 우승을 맛봤다.
또 1970년에는 쌍용기와 전국체전, 대통령기 등 전국대회 5관왕에 오르는 위용을 뽐내기도 했다.
휘문고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 초반까지 정경호, 장창곤, 서장훈, 현주엽, 정인교, 황인성, 윤제한, 석주일 등을
배출하며 고교 최고의 팀으로 거듭나면서 전성기를 맞았다. 출전하는 대회마다 정상을 밟았던 것이다.
자료에 따르면 90년대 10년간 승률이 무려 76%(174승 54패)였다. 우승 전통만큼이나 휘문고가 배출해낸 인재도 많았다.
한국농구의 대부인 이성구 선생을 비롯해 숙명여고 농구발전의 절대적인 공헌자 김용무, 농구 심판의 대명사 윤환섭,
각종 농구 기록 보존의 공헌자 이문호가 대표적 인물. 신동파는 한국을 대표하는 슈터로 맹활약했으며,
연세대 전성기를 이끈 최희암 전 감독은 대학 농구에 한 획을 그었고,
이민현과 임달식, 정인교 역시 현재 활발하게 지도자로 활약하고 있다.
****자료 출처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65&aid=000005049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