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일정은 자연사 박물관이다. 숙소도 박물관도 센트럴파크 근방인지라 지름길로 질러가거나 버스를 타지 않고 센트럴파크로 산책하며 가는 길을 택한다.
여기서 센트럴파크의 면적이나 연혁등을 언급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참 좋다.
참 넓고 예쁘고 깨끗하다. 넓으면서 예쁘기가 어려운데 여긴 그렇다.
<사진> 뉴욕의 센트럴파크
천연의 바위나 언덕, 야산등을 될 수 있는한 유지하며, 그것들이 놀이기구를 대신한다. 공원 내의 도로는 뉴욕 마라톤의 코스에도 포함되고 관광객을 태운 마차와 인력거의 일주 트랙이며, 조깅코스, 사이클 트랙등으로 이용된다. 센트럴 파크에서 자유를 만끽하며 아침산책을 하는동안 자연사 박물관까지 자그마치 20여 블럭을 금새 걸어오고 말았다. 그렇게 걸었어도 전혀 피로하거나 거리가 먼줄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느라고 시간은 이미 정오무렵, 지금 입장하면 남은 관람시간은 채 6시간이 되지 않는다.
이 박물관에 와보고 싶어한지가 어림잡아 20년은 넘은 것 같은데 아까운 시간이다. 차라리 내일 아침 일찌기 개장과 동시에 입장하도록 해야겠다. 자연사 박물관은 여러 개가 있지만 이 뉴욕의 자연사 박물관이야말로 규모나 시설, 전시품의 수준 등에서 단연 앞서며 'The Nature History Musium'이라고 하면 이 뉴욕의 자연사 박물관을 말한다.
내친 김에 센트럴 파크를 완전히 종단하여 UN 본부 건물로 향한다. UN건물 옆에는 UN 플라자 호텔이 있고 그 맞은 편에 트럼프 타워가 있다. 트럼프는 부동산 재벌로, 실제로 수많은 철거민을 만들어낸 부동산 개발업자인데 그런 자의 건물이 UN 앞에 있는건 좀 모양새가 안 좋아보인다.
UN 본부를 견학하려면 동전하나, 허리띠의 버클까지 풀어야 하는 삼엄한 절차를 거쳐야 하고 가방은 반드시 보관시켜야 한다. 견학은 안내자의 인솔하에 일정 정원 단위로 시간을 지켜야 하는데 거길 참여하려면 수시간을 로비에서 기다려야 할 판이다. 그것도 17불이나 내고서. 그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궁금해진다. 설마 유엔 분담금도 안내고 버티는 미국의 주머니에 들어가는건 아니겠지. 설마 아닐거라 믿는다.
<사진> 차례대로 하늘을 찌르는 트럼프 타워, 유엔본부, 역대 사무총장, 주유엔 한국 총영사관
UN 본부의 1층 로비에는 역대 사무총장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부트로스 갈리와 코피 아난 다음에는 반기문 총장의 초상화가 걸릴 자리가 넓직하게 비어 있다. 아래 층에는 여성을 위한 기금마련용 바자회 같은 것이 열리고 있었고, 우체국 유엔지점에는 엄청난 중국인들이 우체국을 가득 메우며 각기 고향으로 유엔마크 엽서를 보내느라 인산인해였다. 그러니 그 소음이 상상이 가시는지? 또한 그 점을 노려 다양한 엽서를 결코 싸지 않은 가격에 판매하고 있었다.
가족들 생각에 기념품점에 들렀지만 오만가지 잡동사니에 유엔마크를 찍어 판매하는 상술은 유원지나 다름없었다. 각국의 전통의상을 입은 인형들을 한 쪽 벽에 빙둘러 전시하고 있는데, 유독 한국 인형은 안보인다. 한복을 입은 인형들이 전시되어 있었다면 아마 기념품 몇 개 정도 샀을지도 모른다.
기념품점도 미국인의 취향에 맞도록 설계와 전시가 되어 있는것처럼, UN 본부가 뉴욕에 있는한 유엔이 미국의 이해에 반하는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을 것임은 자명하다.
씁쓸한 마음으로 발길을 돌려 유엔본부 바로 앞에 있는 대한민국 주유엔본부 총영사관을 보았다. 아담한 건물에 경비원도 보이지 않고 별로 바쁠일도 없는, 간판만으로 존재의 이유가 성립하는 상징적인 존재되겠다. 바로 그 상징성 때문에 그 앞을 지나는 한국인들의 어깨가 으쓱해지는 것 아닌가싶다.
곧이어 어젯밤 싱가폴 친구가 알려준 코리아 타운이다. 일부러 찾은게 아니라 우연히 닿는다. 앞의 게시물 뉴욕1 편을 읽으시면 어느 건물, 어느 지역도 필자처럼 무계획한 여행자의 이동 궤적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아실 것이다.
뉴욕의 한인타운은 맨하탄의 중심 지역에 자리잡고 있으나 중국, 일본계의 조밀하고 집중된 구역에 비해 느슨하고 방만하여 한인'타운'이라기엔 좀 미약한 감이 있는것 같고 실제로 필자가 지닌 지도에도 차이나타운은 표기되어 있는데 반해 코리아 타운은 나타나지 않는다.
한인타운 근방은 대단히 붐비고 복잡한 곳이라 지나가기가 불편할 정도였다. 록펠러센터니 타임즈 스퀘어니 하는 것들이 가까이 있었지만 지친 여행자의 발길은 어느새 마음 편한 센트럴 파크로 향하고 있다. 놀고 싶으면 노는거고 쉬고 싶으면 쉬는거다. 빡빡한 일정에 부담을 느끼는 순간 여행은 이미 '일'이 되어 버릴테니.
<사진> 센트럴 파크 남단의, 전체가 대단히 세밀한 조각으로 이루어진 건물. 확대해서 보시길
빵과 쥬스를 사서 센트럴파크 잔디에 누워서 먹으며 밀린 여행기도 정리하고 사람들 구경에 시간가는 줄 모르겠다. 미국은 워낙에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짓들을 하기 때문에 그냥 사람 구경도 재미있다. 엘에이의 지하철에서는 에스컬레이터를 런닝머신 삼아 '열심히' 운동하는 사람도 보았다. 하물며 뉴욕은 더 재미있다. 사교춤을 추는 남녀, 원반던지기 하는 노인들, 소녀축구팀, 강아지 훈련하는 사람, 게이, 화가, 기타연습하는 사람, 빵먹으면서 여행기 정리하는 사람 등등.. 같은 사람이 없다.
어차피 늦게 일어나는 것으로 여유롭게 시작한 하루, 오늘의 여유가 앞으로 오래토록 뉴욕에 대한 나의 인상을 결정지을 것임은 자명하다.
이튿날이자 뉴욕에서의 마지막 날, 태평양을 건너 울리는 아내의 모닝콜로 상쾌하게 하루를 시작한다. 새벽에 싱가폴 3인방에게 그만 떠들고 자라고 했더니 아침까지 뾰로통해서 말도 안한다. 하지만 덕분에 잘잤던 이집트 친구는 반갑게 아침 인사를 건넨다. 이제 부랴부랴 짐을 챙겨 체크아웃을 하고 자연사 박물관으로 향해야지.
가는 길에 센트럴파크의 화장실에서 속옷과 양말을 빨아 휘휘 내저으며 또다시 20여 블럭을 걸었더니 거의 말랐다. 문제는 이 남자 속옷이라는 것이 어떻게 잡아도, 어느 각도에서 보거나 아무리 멀리서 보아도 속옷이라는걸 금방 알수있게 생겨 먹었다. 내 딴에는 손수건처럼 휘두르고 다녔지만 굳이 그럴 필요없이 멀리서도 다 알아본다. 그렇다고 목에 두를수도 없고.
더럽고 찢어진 티셔츠를 입고 다니거나 공원에서 담요를 두르고 아무데서나 빨래를 말리는 정도는 여행자에게 허용되는 작은 일탈에 속한다. 또 그정도가 일탈로 보이지도 않을 만큼 다양함을 지닌 도시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꾸 부랑자와의 경계가 모호해지는건 어쩔수 없다.
20여 블록이 짧게 느껴질만큼 아름다운 센트럴 파크를 거쳐 도착한 자연사 박물관은 아직 입장을 개시하지 않았다. 박물관 입구에서 사진을 찍고 동상에 새겨진 문구들을 읽어보는 동안 입장이 시작되었다.
<사진> 뉴욕의 자연사 박물관 입구
숙소에서 체크아웃을 했으므로 무거운 가방이 두개다. 이걸 맡겨야겠는데 보관소 직원이 이제 막 출근해서 유니폼을 갈아입는 중이라며 기다리란다. 자그마치 1분. 직원은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며 보관료 2불을 받지 않겠다고 한다. 입구에서도 빨래 말리면서 20분을 기다렸는데 입장료 15불을 다 받다니.
이 박물관의 주제는 '자연Nature'으로, 우주 차원과 미생물의 차원까지 모든 생물과 무생물을 아우르는등 삼라만상을 그 소재로 하고 거기에 '史history' 가 더해져 변화의 방향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았다. 주말이다보니 아이들을 대동한 가족들이 많았고 당연히 공룡관은 인산인해였다. 얼마나 와보고 싶었던 자연사박물관인지 입구를 들어서면서부터 기대에 들떠서 마치 며칠 굶고 잘 차려진 뷔페식당을 본 듯하다.
동물의 표본은 실제의 박제라고 의심할만큼 정교했으나 대부분은 특수제작한 것이었고 일부는 기증받은 실제의 박제도 포함되어 있었다. 기증받은 박제에는 일일이 기증자에게 감사를 표하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고, 나도 그 아름다운 동물을 죽여서 박제로 만든 기증자에게 일일이 욕을 하면서 지나다녔다. 하지만 더할나위없이 부러운 박물관이고 우리의 아이들에게도 꼭 보여주고픈 전시물들이다.
인상적인 것은 몽골지역에서 시작된 우리 선조들의 이동경로가 빙하기로 땅이 드러난 배링해협을 거쳐 북아메리카의 서부 해안을 따라 남하하여 남아메리카의 마야, 잉카 문명의 토대가 되었다는 사실이 정설이라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대를 이어 남쪽으로 남쪽으로.. 일부는 알라스카에 남아 에스키모의 조상이 되었으리라.
<사진> 동물 표본을 만드는 과정, 동북아에서 이주한 아메리카 원주민의 이동경로
지진계는 하루에도 수십차례의 지진이 감지되고 있음을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지금 이 시간에도. 미국의 서부 해안을 따라 진도 4.0 이하의 미진은 하루에도 수십차례, 그 중 진도 4.0 이상의 지진도 하루에 서너 차례는 기록되어 있었다. 이건 지구가 자면서 몸을 뒤척이거나 굴착기들이 자꾸 가렵게해서 떨쳐내는 동작들이다. 역시 지구는 살아있다.
<사진> 공룡전시관. 관객이 궁금해할만한 사항들에 일일이 친절한 설명이 붙어있다
박물관은 과학적 탐구의 성과를 소개하는 기능이 主인바, 우주의 기원이나 생물의 출현, 변태, 멸종 등에 있어 새로운 사실을 알려준다기보다는 이미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들이 대부분이었고, 다만 공룡이 멸종한 원인등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일일이 그 학설들을 소개하고 관람자의 공감을 이끌어내도록 유인하려는 시도들이 좋아보인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맛있는 음식을 먹듯이 하나하나 섭렵해 가는 동안 어느새 그 넓은 곳을 다 돌아보았다. 6시간이 걸렸다. 한마디로 참 재미있는 곳이다.
<사진> 인간과 침팬지 아기의 비교
<사진> 한국의 사랑방 모습
<사진>구겐하임 미술관의 협찬으로 전시하는 암석과 보석
<사진>당일 미국전역에서 발생하는 지진
관람을 끝내고나니 비로소 뉴욕에 온 보람이 생기고 뿌듯해진다. 안 먹어도 배고픈줄 모르겠다.
뉴욕에서는 인산인해라는 표현을 많이도 쓰는것 같지만 토요일 저녁의 록펠러센터 부근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가방 두 개를 들고 다니려니 계속 부딪쳐서 암쏘리를 연발한다. 타임 스퀘어가 유명하다길래 싱가폴 녀석 말만 듣고 가보니 광장이 아니라 건물이다. 그나마 닫혀있길래 그냥 지나쳤는데 아직도 거기가 뭐하는 곳인지 모르겠다.
어라, 뉴욕에도 실내 경마장이 있다. 우리네와는 영업시간도 다르고 훨씬 소규모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비슷한 것이 여기에도 마찬가지로 흥청망청 경마에 돈을 탕진할만한 사람은 없어 보인다. 이채로운 것은 영화 '벤허'에 나오는 로마식의 역마차 경주도 있다는 점이다. 환전소에 길게 줄이 늘어선 것을 보니 나도 한 번 해보고 싶었지만 정보지가 비싸기도 하려니와 어깨너머로 들여다봐도 당췌 뭔소린지 알수가 없어서 그냥 음료나 하나 사서 마시다가 나왔다.
달랑 모자 6개를 놓고 행상을 하는 모자장사, 자전거의 뒷좌석을 개조한 인력거꾼들, 캐리커쳐 화가들, 스파이더맨 복장의 사진찍는 파트너, 아기업고 바락바락 전화에 대고 싸우고 있는 젊은 여자와 걸친 옷 한 벌이면 나같은 사람 세계일주도 할만한 멋쟁이 아줌마의 대비. 이게 도시다. 정말 저 멀리 중부나 서부의 촌사람이 뉴욕에 와본다면 눈이 휘둥그래질만도 하다. 대체로 보아 지역주민들은 수수한 일상복 차림인데 반해 젊은 한국여자들은 저 멀리서도 구분이 가능할만큼 패션쇼를 방불케 하는 옷차림이다.
거울한테나 잘 보이슈. 나는 갈라오.
펜역으로 가서 조용히 기차시간을 기다린다. 펜역은 하도 몰려드는 부랑자들 때문에 기차표를 보여주어야만 대합실에 들어갈수가 있다. 대합실 의자에 앉으면 절로 담요가 꺼내지는 걸로 보아 이 생활이 체질에 맞나 보다. 랩탑 컴퓨터를 켜보았으나 무선 인터넷은 연결이 되지 않는다. 정독할만한 무게있는 책이나 한권 가져올걸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한글로 된.
오늘의 일정은 자연사 박물관이다. 숙소도 박물관도 센트럴파크 근방인지라 지름길로 질러가거나 버스를 타지 않고 센트럴파크로 산책하며 가는 길을 택한다.
여기서 센트럴파크의 면적이나 연혁등을 언급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참 좋다.
참 넓고 예쁘고 깨끗하다. 넓으면서 예쁘기가 어려운데 여긴 그렇다.
<사진> 뉴욕의 센트럴파크
천연의 바위나 언덕, 야산등을 될 수 있는한 유지하며, 그것들이 놀이기구를 대신한다. 공원 내의 도로는 뉴욕 마라톤의 코스에도 포함되고 관광객을 태운 마차와 인력거의 일주 트랙이며, 조깅코스, 사이클 트랙등으로 이용된다. 센트럴 파크에서 자유를 만끽하며 아침산책을 하는동안 자연사 박물관까지 자그마치 20여 블럭을 금새 걸어오고 말았다. 그렇게 걸었어도 전혀 피로하거나 거리가 먼줄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느라고 시간은 이미 정오무렵, 지금 입장하면 남은 관람시간은 채 6시간이 되지 않는다.
이 박물관에 와보고 싶어한지가 어림잡아 20년은 넘은 것 같은데 아까운 시간이다. 차라리 내일 아침 일찌기 개장과 동시에 입장하도록 해야겠다. 자연사 박물관은 여러 개가 있지만 이 뉴욕의 자연사 박물관이야말로 규모나 시설, 전시품의 수준 등에서 단연 앞서며 'The Nature History Musium'이라고 하면 이 뉴욕의 자연사 박물관을 말한다.
내친 김에 센트럴 파크를 완전히 종단하여 UN 본부 건물로 향한다. UN건물 옆에는 UN 플라자 호텔이 있고 그 맞은 편에 트럼프 타워가 있다. 트럼프는 부동산 재벌로, 실제로 수많은 철거민을 만들어낸 부동산 개발업자인데 그런 자의 건물이 UN 앞에 있는건 좀 모양새가 안 좋아보인다.
UN 본부를 견학하려면 동전하나, 허리띠의 버클까지 풀어야 하는 삼엄한 절차를 거쳐야 하고 가방은 반드시 보관시켜야 한다. 견학은 안내자의 인솔하에 일정 정원 단위로 시간을 지켜야 하는데 거길 참여하려면 수시간을 로비에서 기다려야 할 판이다. 그것도 17불이나 내고서. 그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궁금해진다. 설마 유엔 분담금도 안내고 버티는 미국의 주머니에 들어가는건 아니겠지. 설마 아닐거라 믿는다.
<사진> 차례대로 하늘을 찌르는 트럼프 타워, 유엔본부, 역대 사무총장, 주유엔 한국 총영사관
UN 본부의 1층 로비에는 역대 사무총장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부트로스 갈리와 코피 아난 다음에는 반기문 총장의 초상화가 걸릴 자리가 넓직하게 비어 있다. 아래 층에는 여성을 위한 기금마련용 바자회 같은 것이 열리고 있었고, 우체국 유엔지점에는 엄청난 중국인들이 우체국을 가득 메우며 각기 고향으로 유엔마크 엽서를 보내느라 인산인해였다. 그러니 그 소음이 상상이 가시는지? 또한 그 점을 노려 다양한 엽서를 결코 싸지 않은 가격에 판매하고 있었다.
가족들 생각에 기념품점에 들렀지만 오만가지 잡동사니에 유엔마크를 찍어 판매하는 상술은 유원지나 다름없었다. 각국의 전통의상을 입은 인형들을 한 쪽 벽에 빙둘러 전시하고 있는데, 유독 한국 인형은 안보인다. 한복을 입은 인형들이 전시되어 있었다면 아마 기념품 몇 개 정도 샀을지도 모른다.
기념품점도 미국인의 취향에 맞도록 설계와 전시가 되어 있는것처럼, UN 본부가 뉴욕에 있는한 유엔이 미국의 이해에 반하는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을 것임은 자명하다.
씁쓸한 마음으로 발길을 돌려 유엔본부 바로 앞에 있는 대한민국 주유엔본부 총영사관을 보았다. 아담한 건물에 경비원도 보이지 않고 별로 바쁠일도 없는, 간판만으로 존재의 이유가 성립하는 상징적인 존재되겠다. 바로 그 상징성 때문에 그 앞을 지나는 한국인들의 어깨가 으쓱해지는 것 아닌가싶다.
곧이어 어젯밤 싱가폴 친구가 알려준 코리아 타운이다. 일부러 찾은게 아니라 우연히 닿는다. 앞의 게시물 뉴욕1 편을 읽으시면 어느 건물, 어느 지역도 필자처럼 무계획한 여행자의 이동 궤적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아실 것이다.
뉴욕의 한인타운은 맨하탄의 중심 지역에 자리잡고 있으나 중국, 일본계의 조밀하고 집중된 구역에 비해 느슨하고 방만하여 한인'타운'이라기엔 좀 미약한 감이 있는것 같고 실제로 필자가 지닌 지도에도 차이나타운은 표기되어 있는데 반해 코리아 타운은 나타나지 않는다.
한인타운 근방은 대단히 붐비고 복잡한 곳이라 지나가기가 불편할 정도였다. 록펠러센터니 타임즈 스퀘어니 하는 것들이 가까이 있었지만 지친 여행자의 발길은 어느새 마음 편한 센트럴 파크로 향하고 있다. 놀고 싶으면 노는거고 쉬고 싶으면 쉬는거다. 빡빡한 일정에 부담을 느끼는 순간 여행은 이미 '일'이 되어 버릴테니.
<사진> 센트럴 파크 남단의, 전체가 대단히 세밀한 조각으로 이루어진 건물. 확대해서 보시길
빵과 쥬스를 사서 센트럴파크 잔디에 누워서 먹으며 밀린 여행기도 정리하고 사람들 구경에 시간가는 줄 모르겠다. 미국은 워낙에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짓들을 하기 때문에 그냥 사람 구경도 재미있다. 엘에이의 지하철에서는 에스컬레이터를 런닝머신 삼아 '열심히' 운동하는 사람도 보았다. 하물며 뉴욕은 더 재미있다. 사교춤을 추는 남녀, 원반던지기 하는 노인들, 소녀축구팀, 강아지 훈련하는 사람, 게이, 화가, 기타연습하는 사람, 빵먹으면서 여행기 정리하는 사람 등등.. 같은 사람이 없다.
어차피 늦게 일어나는 것으로 여유롭게 시작한 하루, 오늘의 여유가 앞으로 오래토록 뉴욕에 대한 나의 인상을 결정지을 것임은 자명하다.
이튿날이자 뉴욕에서의 마지막 날, 태평양을 건너 울리는 아내의 모닝콜로 상쾌하게 하루를 시작한다. 새벽에 싱가폴 3인방에게 그만 떠들고 자라고 했더니 아침까지 뾰로통해서 말도 안한다. 하지만 덕분에 잘잤던 이집트 친구는 반갑게 아침 인사를 건넨다. 이제 부랴부랴 짐을 챙겨 체크아웃을 하고 자연사 박물관으로 향해야지.
가는 길에 센트럴파크의 화장실에서 속옷과 양말을 빨아 휘휘 내저으며 또다시 20여 블럭을 걸었더니 거의 말랐다. 문제는 이 남자 속옷이라는 것이 어떻게 잡아도, 어느 각도에서 보거나 아무리 멀리서 보아도 속옷이라는걸 금방 알수있게 생겨 먹었다. 내 딴에는 손수건처럼 휘두르고 다녔지만 굳이 그럴 필요없이 멀리서도 다 알아본다. 그렇다고 목에 두를수도 없고.
더럽고 찢어진 티셔츠를 입고 다니거나 공원에서 담요를 두르고 아무데서나 빨래를 말리는 정도는 여행자에게 허용되는 작은 일탈에 속한다. 또 그정도가 일탈로 보이지도 않을 만큼 다양함을 지닌 도시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꾸 부랑자와의 경계가 모호해지는건 어쩔수 없다.
20여 블록이 짧게 느껴질만큼 아름다운 센트럴 파크를 거쳐 도착한 자연사 박물관은 아직 입장을 개시하지 않았다. 박물관 입구에서 사진을 찍고 동상에 새겨진 문구들을 읽어보는 동안 입장이 시작되었다.
<사진> 뉴욕의 자연사 박물관 입구
숙소에서 체크아웃을 했으므로 무거운 가방이 두개다. 이걸 맡겨야겠는데 보관소 직원이 이제 막 출근해서 유니폼을 갈아입는 중이라며 기다리란다. 자그마치 1분. 직원은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며 보관료 2불을 받지 않겠다고 한다. 입구에서도 빨래 말리면서 20분을 기다렸는데 입장료 15불을 다 받다니.
이 박물관의 주제는 '자연Nature'으로, 우주 차원과 미생물의 차원까지 모든 생물과 무생물을 아우르는등 삼라만상을 그 소재로 하고 거기에 '史history' 가 더해져 변화의 방향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았다. 주말이다보니 아이들을 대동한 가족들이 많았고 당연히 공룡관은 인산인해였다. 얼마나 와보고 싶었던 자연사박물관인지 입구를 들어서면서부터 기대에 들떠서 마치 며칠 굶고 잘 차려진 뷔페식당을 본 듯하다.
동물의 표본은 실제의 박제라고 의심할만큼 정교했으나 대부분은 특수제작한 것이었고 일부는 기증받은 실제의 박제도 포함되어 있었다. 기증받은 박제에는 일일이 기증자에게 감사를 표하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고, 나도 그 아름다운 동물을 죽여서 박제로 만든 기증자에게 일일이 욕을 하면서 지나다녔다. 하지만 더할나위없이 부러운 박물관이고 우리의 아이들에게도 꼭 보여주고픈 전시물들이다.
인상적인 것은 몽골지역에서 시작된 우리 선조들의 이동경로가 빙하기로 땅이 드러난 배링해협을 거쳐 북아메리카의 서부 해안을 따라 남하하여 남아메리카의 마야, 잉카 문명의 토대가 되었다는 사실이 정설이라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대를 이어 남쪽으로 남쪽으로.. 일부는 알라스카에 남아 에스키모의 조상이 되었으리라.
<사진> 동물 표본을 만드는 과정, 동북아에서 이주한 아메리카 원주민의 이동경로
지진계는 하루에도 수십차례의 지진이 감지되고 있음을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지금 이 시간에도. 미국의 서부 해안을 따라 진도 4.0 이하의 미진은 하루에도 수십차례, 그 중 진도 4.0 이상의 지진도 하루에 서너 차례는 기록되어 있었다. 이건 지구가 자면서 몸을 뒤척이거나 굴착기들이 자꾸 가렵게해서 떨쳐내는 동작들이다. 역시 지구는 살아있다.
<사진> 공룡전시관. 관객이 궁금해할만한 사항들에 일일이 친절한 설명이 붙어있다
박물관은 과학적 탐구의 성과를 소개하는 기능이 主인바, 우주의 기원이나 생물의 출현, 변태, 멸종 등에 있어 새로운 사실을 알려준다기보다는 이미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들이 대부분이었고, 다만 공룡이 멸종한 원인등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일일이 그 학설들을 소개하고 관람자의 공감을 이끌어내도록 유인하려는 시도들이 좋아보인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맛있는 음식을 먹듯이 하나하나 섭렵해 가는 동안 어느새 그 넓은 곳을 다 돌아보았다. 6시간이 걸렸다. 한마디로 참 재미있는 곳이다.
<사진> 인간과 침팬지 아기의 비교
<사진> 한국의 사랑방 모습
<사진>구겐하임 미술관의 협찬으로 전시하는 암석과 보석
<사진>당일 미국전역에서 발생하는 지진
관람을 끝내고나니 비로소 뉴욕에 온 보람이 생기고 뿌듯해진다. 안 먹어도 배고픈줄 모르겠다.
뉴욕에서는 인산인해라는 표현을 많이도 쓰는것 같지만 토요일 저녁의 록펠러센터 부근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가방 두 개를 들고 다니려니 계속 부딪쳐서 암쏘리를 연발한다. 타임 스퀘어가 유명하다길래 싱가폴 녀석 말만 듣고 가보니 광장이 아니라 건물이다. 그나마 닫혀있길래 그냥 지나쳤는데 아직도 거기가 뭐하는 곳인지 모르겠다.
어라, 뉴욕에도 실내 경마장이 있다. 우리네와는 영업시간도 다르고 훨씬 소규모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비슷한 것이 여기에도 마찬가지로 흥청망청 경마에 돈을 탕진할만한 사람은 없어 보인다. 이채로운 것은 영화 '벤허'에 나오는 로마식의 역마차 경주도 있다는 점이다. 환전소에 길게 줄이 늘어선 것을 보니 나도 한 번 해보고 싶었지만 정보지가 비싸기도 하려니와 어깨너머로 들여다봐도 당췌 뭔소린지 알수가 없어서 그냥 음료나 하나 사서 마시다가 나왔다.
달랑 모자 6개를 놓고 행상을 하는 모자장사, 자전거의 뒷좌석을 개조한 인력거꾼들, 캐리커쳐 화가들, 스파이더맨 복장의 사진찍는 파트너, 아기업고 바락바락 전화에 대고 싸우고 있는 젊은 여자와 걸친 옷 한 벌이면 나같은 사람 세계일주도 할만한 멋쟁이 아줌마의 대비. 이게 도시다. 정말 저 멀리 중부나 서부의 촌사람이 뉴욕에 와본다면 눈이 휘둥그래질만도 하다. 대체로 보아 지역주민들은 수수한 일상복 차림인데 반해 젊은 한국여자들은 저 멀리서도 구분이 가능할만큼 패션쇼를 방불케 하는 옷차림이다.
거울한테나 잘 보이슈. 나는 갈라오.
펜역으로 가서 조용히 기차시간을 기다린다. 펜역은 하도 몰려드는 부랑자들 때문에 기차표를 보여주어야만 대합실에 들어갈수가 있다. 대합실 의자에 앉으면 절로 담요가 꺼내지는 걸로 보아 이 생활이 체질에 맞나 보다. 랩탑 컴퓨터를 켜보았으나 무선 인터넷은 연결이 되지 않는다. 정독할만한 무게있는 책이나 한권 가져올걸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한글로 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