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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국민의 함성이 이명박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5월 31일, 서울시민들은 중국순방을 마친 이명박 대통령과 대화하기를 요구하며 청와대로 행진하였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경찰의 과잉진압에 부상했다. 이를 계기로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고 있다. 6월 3일 취임 100일을 맞는 이명박 정부는 국민 지지율에서 20% 내외의 비참한 수준으로 전락했다. 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하 지지율과 맞먹는 수준이다.
이명박 정부, 미국에 'SOS'
결국 6월 3일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고시의 관보게시 연기를 발표하였다. 쉽게 말해 미국산 쇠고기의 검역을 허용한다는 지침을 내리려다가 이를 다시 연기한 것이다. 그러면서 정운천 장관은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출을 중단해주도록 미국 측에 요청했다"라며 "답신이 올 때까지 수입위생조건 고시를 유보하겠다"라고 한 것이다.
이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도 정부가 월령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출 중단을 요청한 데 대해 "국민이 걱정하고 다수의 국민이 원하지 않는다면 당연하다"고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은 부시에게 전화걸어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정부의 이러한 설명을 가지고 이명박 정부가 쇠고기 재협상을 받아들였다고 볼 근거는 전혀 없다. 왜냐하면 월령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출을 중단하는데 대해 미국이 반대한다면 정부로서는 손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농림부의 고시연기 요청은 이명박 정부가 지금까지 지켜왔던 '쇠고기 수입 강행' 원칙이 변했다고 볼 수 있다. 이명박 정부는 국민의 반대와 분노가 하늘을 찌르자 놀란 나머지 엉겁결에 미국에 긴급구호(SOS)를 요청한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이명박 정부의 다급한 SOS 신호를 단번에 무시해버리고 말았다. 당장 미국 백악관이 직접 나섰다. 토니 프라토 백악관 대변인은 "한국 정부의 계획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 대화하고 있다"라며 "우리의 우려가 해소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미국의 업계와 한국 정부 측과 계속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보조를 맞추어 미국 정부의 현지 대변자인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미대사는 3일 외교통상부 청사를 방문하여 유명환 외교부 장관으로부터 미국산 쇠고기 개방에 대한 관보 게재 연기를 통보받은 자리에서 "관보 게재가 연기된 것에 실망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겠다"라며서 "재협상의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라고 해 사실상 재협상 불가를 통보하였다.
미국도 엄연한 주권국가인데 주한미대사관과 백악관의 방침이 다를 수 없다. 주한미대사는 엄밀히 말해 미국 국무부, 부시 행정부의 지휘를 받는 미국 기관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프라토 대변인이 언급하였던 "우리의 우려"란 "30개월 이상 된 미국산 쇠고기의 한국시장 진출이 좌절되는 상황"이며 "미국의 업계와 한국 정부 측과 계속 협력"한다는 것은 더 많은 미국산 쇠고기를 한국시장에 진출시키기 위해 한국정부와 논의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의 자진 수출포기"요청을 꺼내자마자 반나절도 못 가서 미국의 "절대불가" 방침만 확인한 셈이 되었다.
나아가 이명박은 부시에게 전화를 요청해서 살려달라고 애원하였지만 재협상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이명박이 그동안 국민에게 주절거렸던 “알아서 할테니 기다려봐요.”가 이번에는 이명박이 부시로부터 듣게 생겼다. “알아서 할테니 기다려봐요.”
미국은 이명박 정부의 SOS 요청을 단호히 거부한 것이다.
미국은 왜 쇠고기 수출을 고집하는가
그렇다면 미국정부가 이토록 발 빠르게 대응하면서 미국산 쇠고기를 한국시장에 전면적으로 진출시키지 못해 안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 정부의 심정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미국 축산업의 실태와 그 배후, 그리고 축산업자와 미국정부 간의 역학관계를 살펴보아야 한다.
먼저 미국의 축산업 현황을 살펴보자. 미 농무부(USDA) 산하 농업통계청(NASS)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 2월 미국의 쇠고기의 생산량은 20억4천 만 파운드(92만 5000톤)이며 소 도축 두 수는 약 264만 두였다고 한다.
같은 기간 송아지 고기 생산량은 약 1천100만 파운드(5000톤)로 도축 두 수는 6만9천100두였다고 한다. 1달에 264만 마리의 소를 도축하는 미국 축산업의 규모를 고려하면 미국은 1년에 무려 3200만 마리의 소(추정치- 이하 수치는 이를 근거로해서 산출된 내용)를 도축하며 1억 1천만 톤의 쇠고기를 생산하는 축산대국이다. 미국의 생우 가격은 백파운드 당 약 87달러로 미국 축산업의 쇠고기 매출규모는 연간 213억 달러(21조 6000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규모다.
1년에 3200만 마리를 도축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1년에 3200만 마리의 소가 새로 태어나야 그 개체수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3200만 마리의 어미 소가 필요한데 이들이 바로 30개월 월령 이상의 소들이다. 어미소는 대략 8-10년간 7마리의 새끼를 낳고 도축되므로 일률적으로 계산할 경우 매년 400만 마리의 월령 어미소들 역시 평균 96개월 월령에 도살이 된다고 보아야 한다.
여기에 우유 생산을 목표로 하는 젖소도 있다. 미국의 우유 생산량은 2000년 약 7630만 톤에 달했는데 미국에는 920만 두의 경산우(우유를 생산하는 생후 24개월 이상 된 소)가 있으며 젖소의 경우 평균 도살시기가 4-5년이므로 평균 60개월 월령에서 매년 200만 마리가 폐기된다고 보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미국에서는 월령 60개월에서 100개월 상당의 암소들이 매년 600만 마리씩 폐기처분되고 있다. 현재 이렇게 월령이 지난 소들은 판로가 쉽지 않다. 나이가 많을수록 광우병 위험 인자를 가졌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만일 이들 늙은 소들까지도 식용으로 도축하여 정상육과 차이 없이 판매할 수 있다면 미국 축산업계는 최대 18%의 매출 증대, 다시 말해 매년 3조 8000억 원의 매출증대 효과를 볼 수 있다.
축산업의 배후에는 사료가 있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생각해 볼 것이 있다. 3조 원 정도 규모라면 한국에서는 막대한 금액이지만 세계 독점자본이 모여 있는 미국에서는 그다지 큰 규모의 산업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연장선에서 혹자는 미국 축산업계가 대규모라고 하지만 미국의 여타 산업과 비교하였을 때에는 각 사업장의 규모가 작아 대정부 로비를 펼치기에 다른 산업에 비해 불리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미국 정가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독점자본들은 군수산업, 금융업, 에너지산업 등이지 축산업이 들어갈 자리는 없다는 논리다.
하지만 축산업을 고려할 때 간과하지 말아야 할 연관 산업이 있다. 그것은 바로 소가 먹는 사료다. 소는 사료용 곡물을 기본으로 섭취하는데 사료용 곡물은 바로 미국의 곡물 독점자본들이 장악하고 있다.
도축 시 소의 무게가 500-600kg라고 보면 인간 체중의 대략 10배에 해당한다. 다시 말해 1억 마리의 소를 키우는 미국 축산업계는 사료회사로서 보면 10억 명의 사람이 먹는 곡물과 비슷한 양의 곡물을 소비하는 최다 소비 고객이 된다. 전체 인구가 60억 명인 조건에서 사실상 곡물 독점자본들의 주요 이윤은 가축용 사료에서 발생한다고 보아야 한다.
2007년 전 세계 곡물생산량은 230억톤으로 전년도에 비해서 4%나 증가했는데도 세계적으로 기근이 없어지지 않는 것은 바로 상당수 곡물이 사람이 아닌 축산용 가축에게 공급되기 때문이다.
미국 축산업계의 요구는 곧 곡물 독점자본의 요구가 된다는 점에서 미국산 쇠고기가 미국 정부의 막후를 충분히 뒤흔들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막강한 미국 곡물 독점자본
게다가 미국 곡물 독점자본은 세계에 유통되는 곡물량의 70%를 장악한 초대형 대독점자본이다. 흔히 미국계 카길과 아처-대니얼스-미들랜드(ADM), 남미의 붕게, 프랑스의 드레퓌스, 스위스의 앙드레 등 5대 기업을 일컬어 '세계 5대 곡물 메이저'라고 부르고 있다. 이들 곡물 메이저는 세계 곡물 유통의 80%, 미국 내 곡물유통의 85%를 독점적으로 장악하고 있다. 이 가운데 곡물류는 미국계 카길과 ADM이 핵심이다.
일례로 세계 최대 규모의 곡물 독점자본인 카길을 살펴보면 2002년 580억 달러(60조 원)의 매출에 8억 23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으며 올해 초 40%에 달하는 곡물가격 급등으로 막대한 재부를 쓸어담았다. 한국도 미국산 수입 곡물의 60%를 카길로부터 수입한다. 카길의 세계 곡물시장 점유율은 50%를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결국 미국 축산업계는 중소규모의 자본세력들의 연합으로 구성되어 있더라도 이들에게 사료를 공급하는 사료회사들은 연간 수십조 원의 매출액을 기록하는 곡물 독점자본이다. 미국 축산업계는 이들 곡물 독점자본의 최우선 고객들이란 점에서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압박은 미국 곡물 독점자본의 부시행정부 압박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을 기준점으로 삼아 세계 각국을 압박하여 전세계 쇠고기 시장을 연다는 미국축산업계, 곡물 독점자본의 큰 그림이 구체적 실행단계로 들어선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한-미 쇠고기 협정이 졸속적으로 추진된 근본배경이다.
미국의 곡물 독점자본들은 대정부 로비에 도가 튼 세력들이다. 이미 1986년부터 카길, 몬산토, 노비스코 등 미국 곡물 독점자본들은 미국 정부를 상대로 하는 로비활동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 농업정책개발그룹(Agricultural Policy Working Group/APWG)을 결성한 바 있으며 우루과이라운드(UR) 농업협정과정에서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기도 했다.
또한, 유전자변형(GM) 작물의 확산을 겨냥하여 바이오(BIO), 유로파바이오(EuropaBio), 크롭라이프(CropLife)와 같은 단체를 통하여 GM 작물에 대한 각국 정부의 정책형성과정이나 규제 법안에 영향력을 미치는 로비활동을 강화해 오고 있다.
부시를 지원하는 세력은 바로 곡물 독점자본
이미 올해 세계 곡물가격이 일제히 상승하여 옥수수의 경우 40% 폭등한 바 있다. 옥수수 가격 상승은 사료가격 상승과 연동되는데 그 결과로 곡물 독점자본의 최대고객인 미국 축산업계가 곡물가격 폭등의 최대 피해자가 된 셈이다.
곡물 독점자본의 처지에서 본다면 축산업계가 붕괴되면 최대 수요의 고객층이 사라지는 것과 같은 절망적 상황이 펼쳐지기 때문에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미국 축산업계를 살려낼 것을 부시 행정부에 요구하게 된다. 한-미 쇠고기 협정에서 30개월 이상 월령의 수입이 적시되고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더라도 수입을 전면 중단할 수 없게 한 것은 바로 곡물 독점자본의 로비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이미 카길과 함께 세계적인 곡물독점자본인 ADM은 미국 에탄올의 28%를 생산하고 있는데, 에탄올에 대한 보조금을 계속 받기 위해서 이들 에탄올 생산자들로 조직된 재생가능연료위원회(Renewable Fuels Association)는 막대한 금액의 정치자금을 공화당에 후원하고 있다. 올해 미국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 매케인 후보가 민주당 오바마 후보에 비해 선거자금이 부족한 상황에서 곡물 독점자본들이 부시 행정부를 압박하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이명박 정부는 분위기 파악을 전혀 못한 채 미국의 선처나 바라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부시 행정부는 속이 타들어갈 수밖에 없다. 믿었던 한국 시장마저 쇠고기 진출이 봉쇄된다면 다른 나라의 검역 조건을 뚫을 길이 없다. 미국 축산업계는 심각한 타격을 맞게 될 것이고 이는 곡물 독점자본의 타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현 상황에서 부시 대통령이 재협상에 임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보아야 한다.
결국 이명박 정부의 "고시연기요청"은 재협상을 하겠다는 의지가 아니라 들끓는 여론을 무마하고 어떻게 해서든 지금의 국면에서 도망쳐보겠다는 어설픈 계책일 뿐이다. 이명박과 부시가 전화를 하건, 정상회담을 하건, 재협상을 하지 않는 태도 자체가 쇠고기 수입을 개정하지 않겠다는 의사의 표시이다.
미국은 한-미 FTA 재협상 가능성을 흘리면서 한국정부는 미국에게 쇠고기 재협상을 못꺼낸다는 것은 누가보더라도 불평등조약이다.
정부의 사태 파악이 이렇게 한심한 지금, 진정한 재협상은 국민들이 더욱 큰 목소리를 외칠 때 가능하다. 10만 명이 아니라 100만 명의 함성으로 이명박 정부를 넘어 부시 행정부를 압박해 들어갈 때, 재협상의 고갯길은 비로소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