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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요결 요약>
- 복지.
복지에 대해서, '함께 한다'로 마무리가 되고 있다. 물론 복지를 제공하는 이들끼리의 묻고 의논하고 부탁한다'는 것 역시 필요하지만, 그 과정에 있어 '당사자'가 함께 포함된다는 것이 내가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생일 파티에 생일 파티 주인공이 빠질 수 있겠는가? 당사자의 취향과 의견, 그리고 원하는 바가 중요하듯, 복지 과정 역시 당연하게도 '당사자'가 함께 해야 한다.
지역사회라는 단어를 보면 그저 '지역 내에서 이뤄지는 사회'를 떠올리기 쉽다. 한 문장으로 정리한 지역사회는 '지역사회에 복지가 흐르게 한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누구나 어울리고, 이웃과 인정으로 누구나 정을 붙이고 살 수 있게끔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복지'는 본질을 잊지 않게끔 해 준다.
먼저 '사람과 사회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다는 것, '당사자의 삶, 지역시회 사람살이를 바라보는가? 복지사업을 바라보고 이야기하는가?'
그동안 사회복지라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해아 한다'는 정답만을 바라보고 왔던 것은 아닐까 싶었다. 복지요결에서는 사람의 다양성, 정당성에 대해서, 또한 사회복지에 대해서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며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를 말하고 있다. 사람이 하는 일에 대해서 '완벽성'을 갖출 수 없으니, 상황에 따라 선택하고 해석해야만 하는 현실을 일꺠워주는 듯 하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사회복지에 대해서 어떤 점을 가지고 가장 고려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동시에, 가장 본질적인 개념인 '사람다움'을 잊지 않고, 모든 것의 중심에 '사람'의 초점을 맞추는 것을 강조하는 점에서 이야기의 주인공을 잊지 말라고 말해주는 듯 하다.
이것만 기억해도 좋다는 것으로는 '묻고 의논하고 부탁하기'다. 이것만은 잊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복지 실습 과정 중, 이 단계를 떠올린 것도 있었다. 내 생각과 결정에 대해서 묻고, 실습을 하는 분들과 함께 의논하고, 마지막으로 서로의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부탁하는 것을 당부로 진행되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사람답게 돕는다, 사람 사는 사회 같게 하고 싶다, 라는 문장은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고민하게 했다. 사람답게 사는 것은 무엇이며, 사람 사는 사회 같게 하고 싶은 방법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 '복지'를 '당사자가 주인 노릇 하거나 주인 되게'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가 주인'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것만큼 사람의 삶에 대해서, 또한 복지에 대해서 명확하게 정의해주는 것은 없는 것 같다. '복지'라는 사전적 정의를 이 문장으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과거 '복지'와 같은 단어에 일부 사람들이 '나 같은 사람들이 도움을 줘서 너희가 먹고 산다'라는 생각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저소득층'아이들을 위한 '식사가 가능한 카드'를 주었던 것에 대해서 인터넷에 한 직장인이 '기분이 나쁘다'라는 말로 글을 올린 것이었는데 점심 식사를 하러 가서 본 광경에 기분이 나빴다는 것이었다. '식사 카드를 가지고 온 아이들이 돈까스 하나씩을 사서 먹고 있더라. 이게 굉장히 기분이 나빴다. 나라에서 준 돈이 담긴 카드로 밥을 먹는 거면 한 사람당 하나씩이 아니라 둘이 하나를 시켜서 나눠먹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라는 말을 하며 '밥 먹으러 갔다가 기분이 나빠서 나왔다'는 말을 써 인터넷에 올렸다.
'묻고 의논하고 부탁한다'는 것에 대해서 사회복지를 배우게 되는 나의 입장만을 고려했음을 깨닫게 되었다. 단지 서비스를 전달함에 있어 '실수'가 없도록 전달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당사자'의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다.
복지에 대해서, '함께 한다'로 마무리가 되고 있다. 물론 복지를 제공하는 이들끼리의 묻고 의논하고 부탁한다'는 것 역시 필요하지만, 그 과정에 있어 '당사자'가 함께 포함된다는 것이 내가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생일 파티에 생일 파티 주인공이 빠질 수 있겠는가? 당사자의 취향과 의견, 그리고 원하는 바가 중요하듯, 복지 과정 역시 당연하게도 '당사자'가 함께 해야 한다.
'인공복지'. 현재 우리 사회를 칭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이제 ai가 더 따뜻하다고 느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나 혼자'만 잘 사는 것을 이야기하고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다. 작은 것에도 함께 나누고, 함께 살던 사람들의 마음은 어디로 간 것인지, 이제는 동화같은 일이 되어버린 현재의 사회를 꼬집는 말이 아닐까 싶다.
어른답다는 것은 '어떤 것을 이뤄준다, 베푸신다, 가르쳐주신다'등의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모습들이다. 이 모습들은 '어른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모습들이다. 그렇다면 나는 주위의 어른들에게 '이런 모습'을 존중해드리고 있었나? 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나는 내 주변의 어른들이 너무 빨리 흘러가는 '시대'에 흐름에 맞춰가지 못하시는 모습만을 보고 판단하지 않았나, 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어른들이 쌓아오셨던 시간들, 지식들, 지혜를 보지 못하고 현재의 모습만을 보고 판단해버린 것은 아닐까. 이 판단에 갇혀, 어른분들은 진정 '어른됨'을 보여주지 못하신 게 아닐까.
- 사회 사업.
사회 사업, 수식어 '사회'가 방법과 목표를 특징짓는 사업이며 방법과 목표가 '사회적'인 사업이다, 라는 문장으로 사회사업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결정지을 수 있었다.
지역사회라는 단어를 보면 그저 '지역 내에서 이뤄지는 사회'를 떠올리기 쉽다. 한 문장으로 정리한 지역사회는 '지역사회에 복지가 흐르게 한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누구나 어울리고, 이웃과 인정으로 누구나 정을 붙이고 살 수 있게끔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복지'는 본질을 잊지 않게끔 해 준다.
- 당사자.
당사자가 자연스럽게 연락하고 접촉하며 왕래할 수 있는 존재는 사람이다. 사람은 가족, 친척, 친구, 동료, 이웃 등 많은 사람이 이웃이다.
당사자에게 도움을 주는 행위 속, '봉사하는 마음으로, 안타까워서'등의 마음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렇기 그 외에 사람에게 도움을 청한다면 신중하고 최소한으로, 또한 임시로 진행되어야 한다.
- 이상(현실)
'이상'이라고 하면 '이렇게 하고자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쉽다. 그러나 사회복지에서, 특히나 사회에서의 이상은 무엇보다 '현실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사회에서의 이상은,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실현될 수 있는 것들로 이뤄져야 한다. 마음과 의욕이 앞서 불가능하고 실현이 힘든 일들을 앞세우게 된다면, 가장 추구하고 바라보는 현실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 느낀 점.
복지와 서비스, 사회, 이 모든 것으로 다시 본 단어들은 전부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달랐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완전히 다른 분야이자, 전문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예시로 개발자에 대한 일을 들어보면, ‘코딩’을 가지고 일을 하는 것을 떠올린다. 코딩을 쓰는 개발자들은 ‘전문 용어’를 쓴다. 그것은 일상에서 쓰이는 용어가 아닌, 정말 ‘코딩’ 내에서 쓰이는 용어들이다. 분야가 다른 단어일 뿐인 것이다.
이렇듯, 사회복지를 통해 이뤄지는 것은 ‘분야’가 다른 전문적인 일이다. 진행되는 것에 있어, 실수가 없도록 해야 하며, 현실을 바라보고 해야 한다.
나는 사회복지라는 것, 사회사업이라는 것 자체가 복잡하고 어렵고, 전문적이라고만 생각했다. 내가 이론적으로 배웠던 사회복지, 전공 자체는 그래왔으니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복지를 행하는 것에 있어, 신중히 결정해야 하며 행동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명확한 사실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추구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고, 사람을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이루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행함 자체에서는 모든 것이 달라진다. 따스하고, 온정이 느껴지며, 마음을 담아 전달하는 것은 '함께 한다'는 마음을 담아 행할 수 있다.
이 동행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기억하고 행한다면. 우리는 좀 더 서로가 가까워지고 만족감이 높아질 수 있는 복지를 행할 수 있을 것이다.
- 마지막 정리.
복지라는 것은, 어쩌면 스스로의 '제자리'를 찾아가는 일일지도 모른다. 삶에 치여 제대로 살아가지 못했던 것 때문에, 이것을 해보고자 했지만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 나라는 사람의 존재조차 잊고 살아야만 했던 것, 이 모든 것들에 대한 시간을 다시금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단순하지만 어르신, 아이들, 그리고 장애인 분들이 즐길 수 있고 즐거워하는 것들을 다시금 찾고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일지도 모른다.
- 한마디 정리
사회복지사를 꿈꾸는 사람에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막대기이다.
<지역사회 사례집 사례요약>
문화 활동.
사례집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누구나 함께한다”는 것이었다. 지역 주민 모두는 어떤 일을 하던지간에,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도록 했다. 어떤 조건도, 어떤 상황도 막을 수는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함께 도왔고, 함께 원했기에 어떤 것이든 모두가 함께 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문화생활은 '영화'를 보거나, 시내 같은 곳에서 '공연'을 보는 등의 생각을 하기 쉽다. 하지만 도서관에서 만든 문화생활은 신선한 방법으로 진행되었다. 아이가 없어 참가하고 싶어도 눈치가 보이는 어르신을 위해 혼자 오는 아이들을 돌봐달라고 부탁을 드림으로 함께 할 수 있도록 했다.
문화활동, 소풍, 나들이, 이 모든 것에는 '조건'이 필요했다. 하지만 기관 내에서 진행한 모든 것에는 조금 색다른 조건이 필요했다. 바로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도록'하는 것이었다. 돈이 조금 부족하면 어떤가, 우리가 더 내면 되지. 음식을 많이 준비해가면 어떨까, 함께 나눠 먹어보자, 라는 어떻게 보면 '정'이라는 단어 속 갇혔던 우리의 문화를 다시금 꺼내 보는 게 아닐까 싶었다.
요리를 하는 것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요리를 못하는데 어떡하지?' '요리 재료가 부족한데 어떡하지?' '요리 재료는 있는데, 하는 방법과 도구가 부족해. 어떡하지?' 이 모든 생각의 정답은 '물어보기'였다.
음식 만들기 활동.
실습을 나가기 전 듣는 교육 중, '지역복지관'에서 일하시는 사회복지사분의 강의 생각이 났다. 어르신들에게 '오이소박이는 어떻게 만들어요?'라고 물으면 어마어마한 정보들과 답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요리를 하기 전, 어르신들께 모르는 것을 물어보았고, 어르신들은 아이들에게 성심성의껏 가르쳐주시고, 만들어주시고, 함께 해 주셨다. 그 예쁜 아이들이 가는 게 아쉬워서 용돈과 간식을 손에 쥐어주셨다. 반대로 어르신들께 정성껏 만든 음식을 드리러 갔더니, 그 모습에 또 예뻐서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것을 손에 쥐어주고 보내셨다. 빈손으로 가지 않고, 빈손으로 보내지 않는 한국 정이 이곳에 다 몰려있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마 어르신들은 어린 아이들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드셨을 것이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무언가를 가져온 모습에, 작은 발로 여기까기 여쭤보려 찾아온 모습에, 어르신들은 많은 생각이 들었을 것 같다. 꼭 손녀, 손자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자식 어릴 때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더 나아가서는 내 어릴 적 모습 같기도 하고... 많은 생각이 드시지 않으셨을까.
그 모든 시간 속, 베풀어주지 못해서, 받지 못해서 아쉬웠던 사랑과 관심을 이제는 줄 수 있어서 기쁘시지 않을까, 라고 짐작해 보았다.
어르신들께서 주신 순수한 마음과 정이, 아이들에게 스며들어 전달되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어릴 적 겪었던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 어른이 되어서도 평범한 일상으로 자리잡는 것처럼.
"관계를 먹는 간식"이라는 한마디로, 이 모든 것을 요약할 수 있다고 느꼈다.
행사.
작은 행사 하나도 허투루 넘기는 일이 없다. 그 속에는 서로에게 베푸는 것이 '의무'가 아닌 즐거움, 그리고 그 자체로 행복감인 것은 '함께 하기'였다. 서로가 함께 모여 준비하고, 작은 곳곳마다 내가 준비한 것, 너가 도와준 것, 어르신이 도와주고 빌려준 것들이 있는 것을 발견하며 뿌듯해하고, 함께 나누는 그 시간은 무엇으로도 값주고 살 수 없는 귀한 것이다.
문제, 고민이 생기면 어른에게 물어보면 된다, 라는 생각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물어봐야 할 '어른'이 나눠져있지도 않고, 그 어른은 '한정된'사람이 없다.
친한 사람, 자주보는 사람, 선생님, 주변 어르신들, 사장님. 모두가 그들에게 '어른'이고, 이곳에서 어른은 '무엇이든 함께 하는 좋은 분들'이었다.
'이웃'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가깝고, 정겹고, 기꺼운 단어인 줄은 몰랐었다. 이곳에서는 '어른', '이웃집' 이라는 단어의 뜻이 아마 사전적 의미와 달리 쓰일 것이다. 전부 새롭게 고쳐야 할 것이다.
책 읽는 활동.
책을 읽고 그에 대해서 '독후감'을 쓰는 딱딱한 시간이 아니라, 서로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책의 내용을 나눴다. 어쩌면 이게 더 기억에 남기 쉽고, 좋은 추억으로 남지 않을까.
책을 읽고 저마다 떠오르는 비슷한 경험을 이야기하며 까르르 웃는 시간이 그리 행복할 수 없을 것 같다. 사례집을 읽을 때마다 나도 꼭 그곳에 참여하고 싶은 기분이 많이 들었다.
어르신들 역시 이야기를 듣는 것에 푹 빠지신 채로 이야기를 들으셨다. 이야기 중, 엄마가 나오는 이야기에 부모님이 떠올라 눈물을 흘리셨다. 이야기를 듣는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어릴 적 아이로 되돌아가는 것 같다.
모두가 한껏 집중해서 들었던 이야기가 담긴 책을 읽는 그 순간을 통해,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도서관을 좋아했던 나는 혼자서 책을 읽는 걸 좋아해 도서관 안쪽 자리에 들어가 책을 읽곤 했다. 책을 한가득 쌓아두고 읽던 그 순간이 즐거웠다. 책을 읽는 즐거움은 혼자 읽는 것이라고 느꼈던 내게, 아이들끼리 이야기를 들으며 웃는 시간, 어르신들이 이야기를 들으며 추억을 다시금 떠올리는 시간, 가족들끼리 이야기를 읽으며 마음이 가까워지는 시간이야말로 책의 또 다른 매력이 아닐까.
감사인사.
학생들은 반드시 ‘인사’를 잊지 않았다. 졸업여행을 가고자 준비를 하고, 계획서를 쓰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에는 꼭 마무리로 도와주신 분들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행복한 시간을 즐길 줄 알았고, 그 시간을 만들 수 있게 해주신 분들이 누구인지를 잊지 않고 기억했다. 행복, 추억을 만들 수 있게 해주신 분들게 감사인사를 잊지 않는 행동이 마음을 찔리게 했다.
아이들의 인사는 어른들에게도 큰 추억을 주었을 것이다.
그 감사를 잊지 않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도움을 주신 어른분들 역시 재정적인 지원보다 더욱 갚진 마음의 선물을 받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해본다.
서로가 제자리에서 행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모두가 잊지 않았다. 대학생으로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음식점을 무사히 잘 영업할 수 있도록, 시간이 오래 지나 어울릴 사람들이 없어진 할머니와 할아버지께 찾아가는 시간들 등, 모든 것이 제자리에서 잊혀지지 않도록 했다.
- 한마디 정리
전공 책에서 누누이 말했던 ‘사람답게 살아간다’의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호숫가 마을 이야기 – 요약, 느낀 점>
아이들이 만드는 변화는 어떨까? 기대감과 함께 어떻게 아이들을 데리고 이끄실지가 궁금했다. 내가 어릴 적을 자연스럽게 생각했고, 내 어릴 적은 다른 이들과 함께 하는 게 익숙치 않은 채로 내 고집만을 앞세우는 게 익숙했었다. 지금도 남아있는 생각으로는 아이들은 고집과 의견을 내세우는 것이 강하다, 라는 것이었는데 이 책에서 아이들은 어떤 활동을 하고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가 기대되었다.
아이들은 자신의 시간을 즐기고, 행복하게 나아갔다. 선생님과 어른들은 아이들이 시간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함께 해 주었다. 책을 읽는 내내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가는 모습을 보며, 함께 그 걸음을 걸어가는 것이 생각나기도 했다. 행복감과 해맑음, 즐거워 넘치는 웃음소리가 귓가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그 시간 속, 아이들은 어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배워가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어른들이라고 생각한다면 단순하게는 '부모님'과 '아이들'이라는 생각이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현재 시대에서 어른들, 그리고 아이들까지 모두 '스마트폰'에 익숙해져있다면, 이 당시 아이들은 아마도 자신들끼리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른, 하면 우리가 언젠가 되는 모습들, 우리가 되고 싶은 모습들을 떠올릴 아이들은 어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끼리 힘을 합쳐 함께하는 시간은 소중하고 귀했다. 이 추억은 아마 오랫동안 기억되며, 내 생각과 마음에도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았다.
책에 담긴 8년간의 시간은 절대로 짧지 않았다. 생생한 이야기 속 담긴 이야기는 읽는 내내 나를 바닷가에 데려가고, 그곳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을 떠올리게 했다.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이들과 어른들, 그 모든 것에 ‘불가능’이라는 것을 전제하지 않았다는 거다.
여행을 짜는 것부터 해서 실제로 가는 것, 어른들과 함께 하는 시간들, 도움을 받는 것, 그 모든 것에서 한번쯤은 ‘이게 될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쩌면, 내가 ‘이런 시간을 가져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도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아이들은 자신이 목표한 여행길에 대해서 성실하게 준비하고 꼼꼼하게 계획했다. 그리고 그걸 실제로 이뤄갔다. 그 과정에는 아이들의 열정, 그리고 뒤에서 함께 받쳐주고, 도와주시는 어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책은 참 나에게 많은 것을 떠올리게 했다. 만약 내가 저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면, 이런 생각이 절로 들게 하면서도, 실습에 대한 나의 모습을 상상하게 했다.
저곳에서 여행에 대한 계획을 짰다면 나는 어딜 가장 가고 싶어 했을까, 친구들과 의견이 다를 때는 어떻게 의견을 좁혔을까, 뒤늦게 여행에 참여한 친구를 보고 얼마나 반가웠을까.
만약 정말 내가 저 곳에 있었다면, 그리고 지금의 모습으로 그 때를 떠올린다면, 아마도 ‘힘’이 날 것 같다. 그 당시는 미처 몰랐던, 이해했다고 생각했어도 완전히 다 알지 못했던 어른들의 사정을 지금에서야 이해하면서, ‘이땐 이랬었지’라는 생각에 절로 쓴웃음이 지어질지도 모른다.
동시에, 어른들의 도움에 다시금 행복함과 감사를 느끼면서 힘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아르바이트를 일찍 시작하면서 어른들의 사정에 대해서, 또한 사회생활에 대해서 조금 일찍 알게 되었다. 당시 다니던 학교에서도, 주변 친구들도 부모님이 이혼을 하셨던 경우가 흔했어서 그런지, 어른들의 세계는 꼭 어두침침한 곳 같았다.
책에서 보았던 어른들은, 행복함과 즐거움을 선물해주는 어른들이었다.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과 여행의 기대감에, 아이들은 여행이라는 멋진 선물과 추억을 선물받을 수 있었다.
- 한마디 정리.
하루가 지쳤을 때, 다시금 꺼내보고 싶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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