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촉(再促)하는 사랑
“내 사랑하는 자야 너는 빨리 달리라 향기로운 산 위에 있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라.”(아가8:14)
아가서 전체의 총 결론이라 할 수 있는 내용이 본 절이다. 신랑 신부가 한 몸으로 함께 삶이다. 임마누엘로 오심이 하나님께서 함께 살아주시기 위하심이다. 신부는 자기중심에서 떠나 신랑 중심이 되기까지 그는 자랐다. 이는 본래 신랑이 자기를 완전히 버려 신부만을 위한 것이다. 신랑이 그리하였음을 바로 깨달은 신부가 신랑과 함께 하는 동안 여기에 도달하였으니 ‘그는 내게 속하였다’고 만족했던 신부의 출발이 나는 그에게 그도 나에게 속하였다 로 일보 전진하더니 나중에 나는 그에게 속하였다. 나는 ‘그의 것이다’로 자랐다. 신랑은 성육신하심(육으로 내게 오셨음)이 벌써 그는 내 것으로 오신 분이다. 신부의 자람이 여기까지니 ‘나는 당신의 소유입니다’에 이른 것이다.
바울이 말한 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14:8) 이 경점에 도달한 신부의 소원은 죽으시고 살아나셔서 하나님 앞 지성소에서 중보로 계신 주님 내 신랑이 약속하신 대로 속히 와 주세요. 이 소망이 기도로 화한다. 노래로 화한다. 본 절이 그의 소망이요 그의 기도요 그의 노래인 것이다. “내 사랑하는 자야 너는 빨리 달리라.” 나를 사랑하여 영에서 육까지 산을 넘어 바다를 건너 왔다. 하늘에서 땅에까지 오셨다. 빠르고 빠른 광선을 타시고 그 머나먼 길을 오셨다. 부활하신 내 신랑은 육체에서 영체로 살아나셔서 하나님 우편에 오르셨다. 거기서 빨리 광선보다 더 빠른 것을 타시고 와 주세요. 지금 영으로 내게 임재하였으나 함께 임마누엘로 영으로만 말고 영체로 화하여 임마누엘로 살고 싶은 소원이다.
신부가 신랑에게 소원하는 바이면서 신랑도 신부에게 소원한다. 그의 소원도 대단하니 하루가 천년같이 천년이 하루같이 하루가 천년 같다 하심은 속히 오시기를 바라는 심정이니 하루가 천년같이 길다 하심이 그 마음의 소원이 어떠함을 나타내심이다. 지루하게 기다리심은 한 사람이라도 더 회개하기를 바라서라 하셨으니(벧후3:9) 신랑이 그 심정의 토로가 아니겠는가. 신부만 신랑에게 ‘빨리 와 주세요.’의 기도함이 아니다. 신랑도 빨리들 신랑 나 맞을 준비를 하면서 기다려 달라 함이시다. 어디에서 오시는가? “향기로운 산에서” 몰약산에서 유향산에서이다. 십자가의 몰약의 향기 부활의 유향 향기 그 산들에서 빨리 와 달라 하심이다. 신랑편으로 나도 기름의 향기를 토하면서 준비해 달라.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아1:14) 같이 향기를 날리며 준비하라. 가시나무 속에 백합화 같이 향기를 날리며 준비하여라(아2:2). 온화한 남풍이 불든지 역풍이든 순풍이든 불 때마다 향기를 드높이 날리면서 준비하라는 부탁이기도 하다. 신랑은 이미 몰약의 향기 유향의 향기를 물씬 날리셨다. 그러기에 신부의 품에는 몰약 향주머니를 품고 산다(아1:13). 신부의 향기를 날릴 때마다 이 향기로운 산들에서 빨리 달리자는 신랑 신부의 찬송의 노래이다.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라.” 노루의 빠름 같이 “아사헬의 발은 들노루 같이 빠르더라.”(삼하2:18) 빠른 발을 노루에 비유한 것이다. 본서에도 노루에 비긴 말씀이 2:7, 3:5에도 말씀한 바 있다. 오늘의 표현대로 ‘광선같이’로 표현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노루의 빠름이 대단하였던 고로 이렇게 표현되었다. 이제는 신랑 신부의 서로의 소원이 여기 있다. 신랑은 모든 준비는 완료되어 다만 신부의 준비를 기다리고 계시다. 이를 신부는 깨달았다. 나도 이렇게 완벽하게 준비합니다 의 고백이 본 절이다. 신랑은 광선을 타고 오시게 준비되어 있는데 신부의 미비상황을 성경은 지적하는 바이었는데 이제는 신부도 가장 빠르게 신랑에게로 ‘가겠습니다.’의 화답의 노래인 것이다. 리브가에게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그가 대답하되 가겠나이다.”(창24:58) 신부의 이 대답의 노래라 할 것이다. 신랑을 재촉함이라 함보다 신부 자신의 재촉인 것이다.
“신부 자신의 재촉이라 빨리 달리자.”
“향기로운 산에서 달리겠습니다. 자신의 다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