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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극복과 유토피아 지향의 미학
-서양화가 정용규 論
강 경 호
정용규(1956~ )는 1983년 조선대학교 졸업기념 2인전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문화유산의 현장을 찾아다니며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는데 단청, 목어, 법고, 돌부처, 석탑, 토우, 서낭, 흙담, 떡살무늬 등을 클로즈업시키거나 화면에 담아낸다. 선조들의 삶과 미의식을 현대적인 기법으로 해석한 것이다. 「옛이야기」 「귀로」가 보여주듯 한지가 발라진 전통 창호를 배경으로 뒷산 숲 속에 있을 법한 부엉이나 밝은 달을 한 화면에 배치하여 마치 할머니가 들려주는 듯한 옛이야기 속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 하는 전통정서를 그려낸다. 민담이나 설화 등을 나름대로 해석하여 재구성한 것이다. 이는 서구문화로 덧칠된 우리문화의 정체성을 되살리겠다는 주체의식의 발로에서 기인한 결과이다.
이들 작품은 섬세한 사실적 묘사와 도톰한 마티엘의 구사로 침착하고 짙은 서정을 담아냈는데 이러한 그의 그림그리기는 명확한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보기에는 미흡했다. 다분히 소재적으로 접근한 면이 있었다. 물론 나름대로는 쇠락한 문화유산을 통해 역사에 대한 이해를 시도한 것이기는 하지만 작가는 곧 회의 끝에 몇 차례 자기변모를 꾀한다. 그러다가 현실에 대한 구체적인 발언들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탄부」, 「역사의 현장-이산가족」, 「무등의 시민들」, 「염원」, 「한-그날 이후」, 「뒷골목의 삶」, 「도시의 뒷골목」 등은 그의 의식을 반영한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은 모두 그의 역사와 현실인식을 형상화한 것으로, 역사의식을 보여주는 「무등의 시민」과 「그날 이후」는 기념비적인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다. 「무등의 시민」은 분단현실을 암시하기 위해 화면을 둘로 나누어 구멍 뚫린 흙벽 너머로 남도들녘의 아랫부분에는 총구멍이 나고 깨진 채 녹슬어 뒹구는 계엄군 철모나 최루탄, 전차바퀴와 쇠방망이들이 들풀에 널려있고 그 한켠에는 들꽃이 배치되어있다. 화면 한쪽에 「칼레의 시민」을 그려놓은 것에서 작가의 의도를 짐작해 볼 수 있는데,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발생한 한국전쟁과 이로 인한 무고한 희생과 남북분단, 그리고 신군부세력에 의해 유린된 광주의 비극을 형상화하였다.
이 무렵 정용규는 88년에 결성된 〈광주·전남 미술인 공동체〉 창립에 참여하여 급변하는 사회 환경 속에서 예술인의 책무와 역할에 적극적으로 활동한다. <광주전남 미술인 공동체>가 개최한 「10일간의 항쟁 10년간의 역사」전에서 정용규는 ‘이산가족’ 주제를 그렸는데 민족진영과 친미진영의 갈등을 대비시키면서 통일을 상징하는 부부상봉 뒤에 천지를 둘러싼 백두산 봉우리들을 높은 장벽으로 전이시키는 등 이념으로 얼룩진 우리의 분단 역사를 자신의 조형언어로 해석하고 있다.
5·18 광주민중현장을 직접 체험한 광주의 작가들이 광주의 현실과 분단의 역사에 대해 다양한 메시지를 형상화하기 위해 결성한 〈광주·전남 미술인 공동체〉의 분위기에 동참한 정용규는 소외되고 낮은 자들의 삶에도 관심을 가진다. 작가의 시선은 그가 살고 있는 도회지 변두리 서민들의 고달픈 삶에 머문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피상적이고 작위적인 작업들에 대한 반성의 결과이다. 현장감은 물론 시대성이 동떨어지는 작업보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역사와 민중의 현실을 담아내는 일이 더욱 절실하다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도시의 삶」 연작은 뒷골목 2층 떡집과 덕지덕지 붙은 허름한 집들, 뼈대만 남은 나무와 굴뚝들, 그것들을 배경으로 있는 군고구마통이나 붕어빵 수레에 함께한 수심에 찬 소시민이나 가족들이 화면에 등장한다.
이것들은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일상의 풍경들로 낮고 소외되고 가난한 자들의 삶을 나타낸 것들이다. 그러면서도 정용규는 무대 뒤 광대들의 핍진한 삶의 모습 한 켠에 행복한 표정이나, 가족과 이웃과 더불어 따스한 애정을 나누고자하는 소박한 소망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와 더불어 1990년대 초의 「도시의 하루-삶」 등 일련의 그림들에서는 언덕에 다닥다닥 붙은 소시민들의 집들을 배경으로 누워있는 창백한 여인과 그 나체의 여인을 바라보고 있는 속옷 입은 남자의 음울한 표정을 담아낸다. 육체의 관능에 내던진 무기력하고 절망적인 실존의 모습을 회색으로 형상화시킨 여인의 모습은 도시의 비정함 속에서 사랑 없는 세계에서 타자와의 소통부재를 암시한다. 회색이나 암갈색으로 표현된 남성의 모습 또한 진정한 사랑 없이 욕망으로 얼룩진 자본주의의 속성과 비정한 현대인의 초상으로 나타낸다.
이렇듯 현대인의 실존 상황을 통해 작가는 자본화된 도시문명의 속악한 모습을 거울에 비추듯 그림에 반영하여 고발하며 인간 중심의 휴머니즘을 꿈꾼다. 이러한 그의 의식은 「나의 꿈」에서 보여주듯 남루한 삶 속에서도 아이를 꼭 안은 여인과 붓을 쥔 남성 곁에 사랑과 희망의 상징인 붉은 장미꽃을 그려 넣어 긍정적인 의미를 투사시킨다.
1995년, 제 3회 작품전에 발표한 작품들의 가장 큰 특징은 스스로 자기양식을 강화시켜왔던 엄격한 틀에서 벗어나 건강한 생명력을 담아내려는 객관적 실재의 시력을 갖기 위해 많은 공을 들인 점이다. 아직 도시의 뒷골목 풍경을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이전에 화면 가득 짓누르던 삶의 무게를 암시하던 우수어린 색조가 밝은 색조로 향수어린 소재와 일상의 포근함을 담아내고 있다. 이는 자연현장의 밝은 햇살 아래에서의 사생을 통해 실재감을 치부하며 경직되어 있던 부자연스럽고 굳은 선을 풀어내온 결과이다. 즉 겨울 텃밭의 배추와 고추, 눈밭에 뒹구는 모과, 옥수수대 및 누런 호박덩이, 들꽃 등에서 생태학적 상상력을 보여주며 끈질긴 자연의 생명력과 생명의 외경심을 발현하고 있다. 또한 「봄의 서정」 「사루비아가 있는 풍경」에서 보듯 향수어린 향토적 서정을 포착하여 이미지화 시킨다. 이렇듯 조인호의 지적처럼 ‘사람살이 중심’에서 ‘자연과 고향’이라는 보편적인 공간 쪽으로 정용규의 시야가 이동함을 느낄 수 있다.
1995년 네 번째 개인전 이후 정용규는 캔버스에 유화물감을 덧칠하는 그림그리기의 평범함에서 벗어나고자 재료개발을 시도한다. 마침 형이 건축자재 사업을 하는지라 형과 함께 새로운 제품을 모색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몇몇 작가가 돌가루를 캔버스에 발라 작업을 할 때였는데 돌가루는 시간이 지나면 캔버스에서 떨어지기 일쑤였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고 발색효과가 좋은 새로운 재료를 연구하였다. 그 결과 홍합껍질이나 전복 껍질 등 조개껍질을 잘게 부수어 접착제를 이용하여 캔버스에 밑칠용 물감대신 발라 물감을 칠하여 그림을 그렸다. 패각류는 97% 순도의 탄산칼슘(CaCo₃)으로 부식되지 않는다. 또한 편으로 되어있는 조개조각들이 서로 맞물려있어 잘 떨어지지 않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더불어 유화에서 중후한 발색효과나 느낌을 강하게 하며 재질감을 높여준다. 특히 이 재료는 조개 입자의 굵기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으며 요철이 생기는데, 마치 수채화의 아트망지를 사용한 것 같은 효과를 낳는다. 이러한 요철효과로 아크릴 칼라나 유화물감을 채색했을 때 생기는 크랙 또는 박열현상을 막아주고 다른 혼합재료와 함께 사용해도 고착력이 뛰어나다.
숱한 실험과 보완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밑칠용으로 개발해낸 재료는 패각을 부수고 갈아 굵기에 따라 부드러운 분말에서부터 거친 조각편에 이르기까지 다양해 캔버스는 물론 우드락, 벽, 나무판 등 회화작업을 하려는 어떠한 것에도 탁월한 효과를 나타낸다.
이 재료를 이용한 작업은 간단해 밑칠 후 3~4시간이면 굳어 자유자재로 요철조형이 가능해 부조회화 효과도 쉽게 낼 수 있다.
1996년은 정용규에게 희비가 엇갈리는 해가 되었다.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생의 기원」으로 특선을 하여 작가로서 그 능력을 인정받지만 형의 사업실패로 인해 온 집안이 쑥대밭이 되었다. 그 고통과 책임을 고스란히 져야 했다. 이후 10여 년 간 정용규는 절망과 좌절 속에서 고통스러워 했다. 이 때 그림은 그에게 간절한 기도이며 삶의 표출방법으로써 무겁고 지친 그의 어깨를 다독여주는 신앙이기도 했다.
그러나 버거운 생의 무게를 견딜 수 없어 몇 번이고 삶과 죽음을 생각했다. 웃고 있었지만 울음이었고 근심과 불안으로 이어지는 나날이었다. 그러면서도 자신만을 바라보는 가족을 생각했다. 오직 살아야겠다는 오기가 그의 화면에서 희망을 노래하게 했다.
정용규는 「생의 기원·1」에 이어 다음해인 1997년 「생의 기원·2」가 또다시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특선을 하는 쾌거를 이룬다. 전체적으로 회색 톤으로 그려진 이들 그림은 남녀의 사랑을 통해 생명을 암시하고, 수렵과 사냥, 농경사회의 추수, 해와 달, 새, 강아지 등 원시적이고 신화적인 이미지들이 어울려 건강한 생명성을 연출한다. 그러면서 화면 중앙에 자신의 초상인 양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인물을 배치하여 자신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새로 개발한 재료를 사용하여 그린 이 그림은 조개조각이 주는 재질감으로 인해 견고한 화면을 꾸며주고 있어 성공적이었다.
이 무렵의 그림에서의 한 가지 큰 특징은 지금까지는 눈에 보이는 실존의 모습을 벗어나 회화적 상징으로 이미지와 의미를 표현하기 시작하고 있는 점이다. 그러므로 그의 그림은 사색의 공간이 확장된다. 이는 지금까지의 그림과는 보다 예술성은 물론 그림의 격이 한층 높아졌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한편 정용규는 나날이 옥죄어오는 절망과 불안 속에서 이전부터 그려오던 정미소를 배경으로 가난하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삶의 메시지를 표출한다. 낡은 집 앞에서 모자가 제비를 손짓하며 부르는 「기다림」과 더불어 ‘바람의 노래’, 즉 희망을 바라는 이 연작에서 더욱 고달픈 삶을 극복하려는 상상력을 보인다. 촛불을 켠 채 십자가를 단 조각달을 타고 태양을 향해 가는 남녀와 자신의 부부를 상징으로 하는듯한 껴안은 남녀와 그들을 배경으로 태양을 그려 넣어 화면이 매우 활기가 넘쳐난다. 「유년 시절의 꿈」과 「소년 이야기」에서는 물고기를 껴안은 소년과 소의 얼굴에 제 얼굴을 비비는 소년의 모습을 통해 자연과 하나가 되었던 작가 자신의 유년의 모습을 회상한다. 이 그림을 통해 정용규는 근대 이후 인간 중심의 삶의 방식에 대한 성찰과 더불어 자연과 인간의 상생, 그리고 유토피아를 제시한다. 이 바람의 노래 연작은 이후로도 최근까지 끊임없이 변용하며 다양한 이미지와 의미로 나타난다.
즉 ‘바람의 노래’는 한편으로 신화적이고 설화적인 화면으로 나타난다. 한때 신군부세력에 의해 짓밟힌 광주의 상처를 그려내기도 했던 정용규는 「영원한 무등의 노래」에서 드디어 악몽 같은 고통에서 자유로워졌음을 보여준다. 초기부터 화면속에 나타나 ‘어둠을 응시하는 눈’을 상징하던 부엉이들이 입석대 아래 배치되었다. 화면 왼쪽에는 남도풍류의 현장인 무등산 자락의 누정과 소나무를 그려 남도의 정서를 이미지화시켰다. 그리고 무등산을 배경으로 칠선녀가 하늘로 승천하고 기품있고 고고한 학들이 비상하고 있다. 겹겹의 무등산은 각기 다른 색채이미지를 통해 서기어린 무등산의 이미지를 신비롭게 꾸며주고 있다. 무등산 위의 하늘은 황금색으로 희망으로 가득찬 무등산, 혹은 밝은 광주의 미래를 형상화시켰다. 마치 천지가 개벽하는 듯, 어떤 상서로운 기운이 감돌고 있는 이 그림은 광주의 아픈 과거를 극복하고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어가고자 하는 광주 사람들의 바람이 수놓아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 속에 깃든 서사는 선녀이야기와 더불어 광주의 현대사의 이야기들을 압축시킨 것으로 정용규가 들려주는 우리 시대의 신화이며 설화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전통 설화 속의 나무꾼과 선녀를 모티브로 한 금강산 상팔담 배경의 그림에서는 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칠 선녀들이 상팔담 위를 날아 하늘에 오르는데 한켠에서 나무꾼이 변용한 듯한 선남이 호각을 불고 있다. 그 배경에는 금강산이 둘러싸여 있고 새가 날고 사슴이 뛰고 있다. 또 다른 화면에는 하늘을 나는 선녀 아래에 물고기를 타고 호각을 부는 선남이 수직으로 하늘을 비상하고 있다. 때로는 복숭아꽃이 핀 마을 위로 소년이 한 손에는 입에 문 호각을 잡고 또 다른 손에는 꽃을 들고 하늘을 날고 있다. 역시 그 배경에는 새들이 날고 있다. 마치 전통 산수화가 현대풍으로 다시 태어난 듯한 느낌을 주는 설화적이고 신화적인 이 바람의 노래 연작은 유토피아적 서사를 통해 잃어버린 낙원을 떠오르게 한다. 이 그림들은 물질적 탐욕과 자본문명으로 상실한 현대인의 원초적 순결성을 회복해야함을 웅혼한 서사시처럼 노래하고 있다. 정용규 예술이 지향하는 세계를 짐작해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이들 그림에서 재미있는 것은 중국의 어느 산은 물론 금강산이나 무등산 입석대 등의 바위의 재질감을 나타낼 때 조개껍질을 이용하고 있는데 조개껍질의 재질이나 색깔에 따라 적절히 사용하여 그 효과를 충분히 보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그가 개발한 조개껍질 재질이 훌륭한 안료역할을 하고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바람의 노래가 자신의 실존상황을 관념적으로 표출했다면 그의 그림의 또 다른 한 축으로 등장한 꽃이 핀 봄날은 햇빛 가득한 들판에 나가 사생한 것들로 흰 꽃, 분홍 꽃, 그리고 노란 산수유 꽃이 그의 소망처럼 화면을 가득 밝게 꽃피운다. 꽃이 만발한 들판길을 가족인 듯한 사람들이 평화롭게 마을로 돌아가는 풍경들은 한가로운 남도의 정서를 물씬 자아낸다. 특히 오랫동안 그의 시선을 끌어 온 ‘산수유’ 연작은 더욱 화면을 밝게 하면서 자신의 마음 속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를 지워간다. ‘산수유’ 연작에서 그는 도시 문명 사회에서 잃어버린 고향애와 가족애를 일깨운다. 노란 산수유 꽃에 둘러싸인 마을과 장독대, 그리고 가족의 모습은 작가 자신의 가족 해체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처방이며 산업화로 파편화된 현대인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한 따스한 마음의 노래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정용규의 그림은 기법적인 측면에는 물론 화면에도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그동안 10여년 넘게 자신을 절망하게 하고 불안에 떨게 했던 두려움을 완전히 극복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화면의 형상을 패각으로 양각처리 한듯 쌓아 빛의 색깔이나 위치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할 수 있게 하였다. 화면이 쾌청한 날씨처럼 더욱 환해지고 장식적인 요소들로 채워졌는데, 더 이상 밝아질 수 없는 화면이다. 그리고 색조도 화려하다. 해바라기 혹은 태양은 화면 가득 차오르고 나무, 새, 구름 등은 단순화 되었으며 나무 잎사귀 모양은 패턴화되어 나타난다. 그리고 하늘에는 마치 아름다운 선율이라도 들려오는 듯 보석처럼 빛나는 별들이 가득하다. 또한 곳곳에서는 새들이 노래라도 부르는 듯 활기차게 날아다닌다. 마치 축제의 날을 맞은 듯한 분위기이다. 그의 그림은 사실적인 화풍을 서서히 벗어나 보다 단순화되고 어떤 의미를 내포하려는 듯 구조물을 기호화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껏 실존극복을 위해 숨 가쁘게 달려온 정용규의 회화세계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 혹은 현실과의 불화를 어느 정도 극복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가 끌고 온 그의 그림의 한 축인 유토피아를 향한 그의 정신지향은 끝나지 않았다. 실은 유토피아를 향한 그의 그림도 그의 현실극복을 위한 하나의 방법론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정신이 바라보는 곳은 여전히 유토피아를 향할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이는 어떠한 예술장르를 막론하고 모든 예술가들이 꿈꾸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용규의 끊임없는 실험정신과 상상력이 어떤 마술을 부릴지 우리는 또다시 궁금해 하고 기대한다.
강경호 미술평론집
영혼과 형식
2009년 11월 10일 인쇄
2009년 11월 14일 발행
지은이 | 강 경 호
펴낸이 | 강 경 호
인쇄・기획 | 도서출판 시와사람
등 록 | 1994년 6월 10일 제 05-01-0155호
주 소 | 광주시 동구 금동 8-1번지
전 화 | (062)224-5319, 227-5319
팩 스 | (062)225-5319
E-mail | jcapoet@hanmail.net
ISBN 978-89-5665-262-7 03810
값 1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