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수집한 엄궁동 주변 옛사진
엄궁삼거리 70년대
엄궁 쇠갈밭(새알섬) 70년대
엄궁 잘돌뱅이길 (엄궁~하단) 70년대
에덴공원,동산유지,장돌뱅이길,일웅도,쇠갈밭(새알섬),엄궁강변의 '70년대 모습
엄궁 70년대 모습, 우측 상단 도로 우측에 남태평양 호텔이 들어서 있죠
'70년대 엄궁포구 재첩고르는 모습
엄궁 학장천 상류 '70년대 모습.
엄궁 강변 1979
엄궁수문앞 유수지 1979
엄궁 농수산물 센터 매립공사중 80년대
엄궁동 80년대
낙동강에서 본 엄궁 모습 80년대
엄궁택지조성 공사 1985
*** 아래글은 사상초등학교50회 권금산님의 글로 사상구청 문화지에 연재되었던 글입니다. ****
권금산님은 사상구 괘법동 "벼락부자집 앞이 고향"이며 학장초등학교로 치면 18회에 해당됩니다.
아 내 고향 부산沙上!<22>엄궁동편
학장(鶴章)에서 엄광산(嚴光山) 기슭을 따라 굽이굽이 나있는, 당시의 비포장 길을 가노라면... 산 아래에 나타나는 마을이 엄궁동(嚴弓洞)이며 사상의 ‘최 남단 마을’이다.
엄궁동(嚴弓洞)은 "엄광산(嚴光山)의 서쪽 기슭의 높은 언덕위에 산을 등지고 자리를 잡은 마을로서 해 뜨는 시간이 매우 늦고 겨울에는 낙동강의 세찬 바람이 불어 닥쳐 주거지역으로서는 부적합한 마을로 여겨졌었다. 그러나 갈대가 우거져 있는 낙동 강변을 내려다보며 갈대지붕에 토담집을 지어서 평화롭게 모여 살며 농사와 어업에 종사해 온 강안(江岸)의 빈곤한 마을이었었다.
엄궁동(嚴弓洞)은 사상에서 가장 남쪽 끝에 위치한 동리로서 학장동과 이어져 있으며, 남쪽은 사하구, 당리동, 하단동과 경계하고 있다. 서쪽으로는 낙동강이 흐르고 있다.
사상 古 문서의 기록에 의하면...
“1950년대까지는 일본군이 개설한 강안(江岸)도로가 있었으나 길이 좁고 험하며 남과 북으로 고개가 높아서 버스가 운행되지 못했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걸어 다니는 것이 보통이었으며, 특히 하단으로 통하는 도로는 지금의 도로가 아니고 수십 미터나 올라간 산복을 빙빙 돌아서 하단으로 내려가는 길이었었다.
북쪽으로 통하는 도로도 고갯길이었으나 남쪽 길처럼 그리 높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이 길로 사상까지 걸어 나가야 버스를 탈 수 있었으니 얼마나 불편하였겠는가? 짐작이 갈 것이다!
주로 보행이 많았었는데, 보통 구포나 사상까지 낙동강 제방을 따라서 걸어 다니는 것은 기본(?)이었었다."
“엄궁동(嚴弓洞)은 주민 거의가 농사에 종사하기도 하였으나 대부분 어민생활도 하였다.
사상, 감전, 엄궁, 하단을 잇는 낙동강의 하류는 “재첩”이라는 작은 담수패(淡水貝)의 보고로 강바닥의 흙을 한줌 쥐면 재첩이 한주먹 쥐여질 정도로 많았었다.
“재첩”은 술꾼의 해장국으로도 일품이려니와 간장과 폐병에 좋다는 민간의속 때문에 널리 사랑을 받았었다.
이곳 엄궁동(嚴弓洞)의 명산물은 “재첩”이라는 담수패와 잉어, 뱀장어 그리고 숭어였었는데 특히 재첩의 수확이 많아서 이 부락의 아지매들은 재첩국 장수가 아닌 사람이 별로 없을 정도였었다.
이곳에서 잡아들인 재첩을 자루에 담아서 인근 지역 재첩국 장사들에게도 보내졌었다.
이들은 밤새 끓여서 만든 재첩국을 동이에 담아서 머리에 이고 새벽녘에 마을을 떠나 걸어서 대개는 하단동을 돌아 ‘대티고개’를 넘어 가기도 하였었고 구덕령을 넘어서 대신동, 부민동, 아미동의 새벽거리를 누비며 큰소리로 “재치국 사이소!~재치국!~”를 외쳤었다.
과거... 부산사람들은 이 소리를 매일같이 듣는 아침 잠의 첫소리였고 동시에 기상을 알리는 신호처럼 되기도 하였었다. 특히 외지에서 부산을 찾아온 나그네들에게는 잊을 수없는 부산의 추억거리가 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인근 공단의 폐수와 오염 하수의 방류로 재첩의 생산이 매년 줄어들다가 1980년대 낙동강 하구 둑 공사로 산소가 없는 강이 되어 재첩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엄궁동(嚴弓洞)의 명물(?)은 또 하나 있었다.
옛날! 부산의 경계선은 낙동강이었었다.
그래서, 부산의 제일 외각이었던 엄궁동(嚴弓洞)에 [핵 폐기물 처리장]도 아닌, [하수 종말 처리장]도 아닌 <분뇨 처리장>이 있었던 것이다.
강 부근에는, 당시 부산시내의 모든 분뇨를 처리하던 대규모(?) 처리 시설이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수세식]이지만, [퍼세식]이던 옛날! 부산의 재래식 화장실의 모든 분뇨를 탱크로리에 담아 오면, 여기서 분뇨를 처리하였던 것이다.
오늘날... 오갈 데 없는 어르신들을 수용하는 <복지 시설>도 “우리 마을에는 안된다!...”, “화장장 시설도 납골당도 우리 마을에는 안된다!...”는 이 시대에!......
[수세식]도 아니고... [퍼세식]인 분뇨 처리 시설을(?)...
오늘날 같으면... 과연 어느 지역에서 분뇨를 맡아서 처리하자고 하겠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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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30년도에 괴정동 대티마을에 분뇨투기장이 생기고 투기한 분뇨는
지하구를 통해 9만석 규모의 하단 분뇨처리장에 저장되어 있다가 똥다리 배출관
(에덴공원 부근)을 통해 낙동강으로 바로 투기하도록 건설되었답니다.
일부는 똥다리 배출구에서 분뇨선에 바로 실어다가 김해평야에 가져가기도 했답니다.
근처 주민들은 분뇨를 똥다리로 바로 가져와 버리기도 했다고 들었습니다.
"30년대 ~ 70년대초까지 괴정, 하단사람들은 똥냄새를 많이도 맡고
살았을 겁니다.
'60년대 하단동 똥다리 배출관 모습 똥다리를 선착장으로도 활용했답니다.
'73년도에 엄궁동(행정구역상 감전동)에 분뇨처리장인 부산위생사업소(현 부산환경공단 위생사업소)
가 들어섰으며 괴정동 분뇨투기장과 하단동 분뇨처리장은 '75년도에 문을 닫게 됩니다.
엄궁 위생사업소에서 최신화학처리시설로 본뇨 처리후 침전물과 농축물들을 배출관을 통해 낙동강으로
투기하다가 환경인식변화에 발 맞추어 '90년도에 침전물 농축물을 저장, 처리하는 을숙도 분뇨해양투기장을
건설하게 됩니다. 저장된 침전물,농축물 들은 '92년 부터 동해바다 투기허용지역에 해양투기하고 있으며
그리고 농축물중 일부는 탈수건조하여 재활용도 한답니다.
2005년도 부터 침전물,농축물 처리업무는 장림하수처리장에서 취급하고 있으며 을숙도 분뇨해양투기장은
폐쇄했다고 합니다.
폐쇄되었던 을숙도 분뇨해양투기장은 2012.7.21부로 낙동강하구 탐방 체험장으로 재탄생하여 개장 하였다고
합니다. 많은 예산을 들여 새로 만든 시설이니 낙동강 하구 탐방체험 많이 활용하도록 합시다.
첫댓글 엄궁 장어,재첩 요즘은 거의 사라져 버렸지요.. 옛날이 그립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