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선화동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덕분에 직장과 직선거리로 약 1km 정도 더 가까워졌어요. 거리도 줄었겠다, 뱃살도 부쩍 늘었겠다 겸사 겸사 자전거를 타고 통근을 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덤으로 환경도 보호하고요.
아내가 결혼 전에 타던 자전거를 수리하고 헬멧과 장갑으로 무장을 한 뒤, 대전천 자전거길을 따라 느긋하게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평소 모르고 지나쳤던 것들이 새삼 눈에 띄었습니다. 자연히 생각거리도 많아졌죠.
먼저 대전천은 그리 깨끗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차를 타고 하상도로를 다닐 땐 몰랐지만, 쿱쿱한 냄새도 나고 물이 굽이치는 곳에는 정체 모를 거품이 일어나기도 해요. 4급수부터 산다고 하는 수많은 깔따구들이 나 좋다며 계속 따라오는 것도 유쾌하진 않았습니다.
그렇게 이맛살을 살짝 찌푸리면서 서둘러 지나쳐갔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저 그런, 그냥 지나쳐가는 ‘배경’일뿐이었기 때문이죠. 무언가 나의 관심을 끄는 ‘전경’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신호등이 없어 사고 위험이 없고 자전거로 다니기 적당히 편한 도로,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여러 번 다니다 보니 조금씩 조금씩 눈에 띄는 것들이 있었어요.
다리 밑에는 벤치가 하나씩 있고, 어김없이 노인분이 앉아 계십니다. 노인분은 그 세월만큼이나 새하얀 백로를 물끄러미 바라보십니다. 그 옆으로 자맥질하는 오리도 보입니다. 버둥거리는 모습이 매일 직장 생활하는 저를 닮아 눈길이 갑니다. 백로도, 오리도, 저도 열심이지만 강물은 구름이 되어 느리게 느리게 흐를 뿐이고, 풀들은 바람 따라 여유롭습니다.
순간 여기도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인분도, 백로도, 오리도, 강물도, 구름도, 물풀도 모두가 나름대로 바라보는 그 삶이 있습니다. 내가 보든 안 보든, 알든 모르든, 여기도 누군가가 살아가고 있고 흘러감이 있고 여유로움이 있다는 것. 그간 나는 나만 보고 살아와서 몰랐지만, 내가 살아오던 삶만큼 중요하고, 가치로운 삶이 곳곳에, 이 모든 곳에 있었습니다.
나는 내 삶의 주인입니다. 주인은 손님의 반대말입니다. 필연적으로 내가 있으면 남이 있고, 내 삶이 있으면 타인의 삶이 있습니다. 그런데, 주인 입장에서만 세상을 바라보기에 그 세상은 매우 좁았습니다. 그리고 그 세상이 넓어짐을 느꼈습니다.
이 넓은 세상에 사는 사람은 화낼 일도, 속상할 일도, 짜증 날 일도 없을 겁니다.
나도 손님도, 노인분도, 백로도, 오리도, 강물도, 구름도, 물풀도 모두가 나름의 삶이 있고, 중요함이 있고 바라봄이 있습니다. 그걸 이해하니 세상이 아름답습니다.
퇴근시간에는 강물에 비친 노을을 봅니다. 일평생 주홍 빛깔 장관을 모른 채 살아왔지만, 이제 매일 지구의 강렬한 생명력이 만들어내는 짙은 그 빛깔을 봅니다. 내가 알든 모르든, 내가 보든 안 보든, 하늘은 매일매일 그 멋진 장관을 만들어주고 있었던 겁니다. 물끄러미 강물을 응시하는 노인분도, 하릴없이 하늘거리던 물풀도 모두 나름의 장관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단지 내가 몰랐을 뿐이지요.
생텍쥐페리는 “진정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지금껏 이 말이,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거라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대전천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진정 중요한 것을 내가 '외면'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러니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지요.
앞으론 지금까지 외면하며 살아왔던 것들을 바라보면서 조금 더 아름답게 살아야겠습니다.
인생은 무언가를 이루려고만 사는 게 아닙니다.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 사는 겁니다.
흘러가는 강물도 보고, 하늘도 보고, 다른 사람의 행복도 보면서요.
첫댓글 김종훈 수필가님의 글은, 사람에게 작은 여유를 품게하는 글인것 같습니다. 멋진 글 일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