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앞서간 자유정신
1940∼50년대 중기 밥의 시대 - 찰리 파커의 <버드>
알토 색소폰 주자 찰리 파커(그의 별명이 ‘버드’다)의 삶을 다룬 <버드>는 지켜보기에 안타깝고 슬프고 그래서 마음에 남는 영화다. 우리는 마치 버드의 아내 챈처럼 그를 낯익은 선율과 리듬 안에 붙잡아두고 싶지만 그는 마약과 술로 망명을 떠난다. 버드의 선율 또한 낯익은 ‘스윙’을 떠나 자유로운 밥의 선율로 월경한다. 그 위태롭고 고독한 운명은 ‘밥’(bop)의 운명을 닮았다. 스윙처럼 쉽지 않고, 까다로우며, 즉흥적이고, 자유분방한 나머지 대중으로부터 환대받지 못한 ‘밥’의 운명. <버드>(1988)에서 밥 시대를 선도한 트럼펫 주자이자 지지자이며 친구인 디지 길레스피는 찰리 파커에게 “바는 열었는데 예매는 꽝이야. 아직 관객이 도착하지 않은 것 같아”라고 말한다. 미국 서부의 라디오들이 청소년에게 해롭다는 이유로 밥 연주를 금지시켰다는 소식과 함께. 찰리 역을 맡은 포레스트 휘태커가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종이봉투에 담긴 술을 마시며 힘겹게 연주하는 장면에서 알 수 있듯이, 찰리 파커는 시대를 앞선 자유정신과 방탕으로 고통받았다. 그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찰리 파커는 더 멀리 날아올랐다.
오랫동안 마약과 술에 절어 살았지만 찰리 파커는 “테이프로 칭칭 감고 풀로 여기저기 붙인 아주 낡은 (밥 알토) 색소폰” 하나만으로 자신의 위대한 경쟁자들을 감동시킨 천재였다. 그리고 ‘여전히 관객이 도착하지 않는’ 불운한 선지자였다. 그는 모든 종류의 음악으로부터 찰리 파커다운 음을 뽑아낸 블렌딩 마스터였다. 레스터 영으로부터 우아하고 느리면서도 깊이있는 솔로를, 오페라 <카르멘>과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로부터 클래식의 느낌을, 블루스로부터 즉흥적인 선율을 이끌어냈다. 재즈의 역사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것이었지만,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재즈의 자유로움과 독창성은 숱한 전통을 자기만의 것으로 뽑아낸 찰리 파커의 것이었다.
그렇다고 버드가 이해받지 못한 천재의 음악만 들려주는 건 아니다. 버드에게도 달착지근한 선율은 있다. <Bird and Diz> 앨범에서 버드와 디지 길레스피는 그들 못지않게 개성적인 델로니우스 몽크의 자유로운 피아노 선율을 타고 <My Melancholy Baby>를 연주한다. 선율을 풍요롭고 유장하게 이끄는 버드의 숨결은 어떤 색소폰 주자도 주지 못한 아름다움을 안긴다. 그가 영화에서 싸구려 바에서 달착지근한 현악 오케스트라와 <Laura>를 연주할 때, 결혼식 밴드를 전전하며 푼돈을 벌 때조차 아름다움을 느꼈다면 <Relaxin’ With Lee>에서 오페라 <카르멘> 선율을 살짝 인용하고는 시치미 뚝 떼고 예기치 못한 밥 선율 속으로 디지와 함께 뛰어드는 대목을 사랑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 마찬가지 이유라면, <At Storyville> 앨범에서 거침없이 비상하는 버드의 선율에서 자유의 냄새를 맡는 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미국의 보수적인 공기가 버드의 비상을 이해하지 못한 탓에 여전히 버드의 음악은 참신하고 새롭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찰리 파커의 밥 선율만큼이나 이해하기 어려운 찰리 파커의 복잡한 내면을 탐사한다. 디지 길레스피에게 가불하고도 월급을 달라고 떼를 쓰는가 하면, 약속된 연주를 펑크내기 일쑤였고, 수시로 병원을 들락날락하면서도 마약과 술과 여자를 끊지 못한 불규칙적인 삶의 리듬과 그의 재즈의 리듬을 조응시킨다. 그리고 평생 마약값을 대느라 쩔쩔맸던 천재의 우울 속에 갇혀 있던 그의 찬란한 선율을 관객에게 되돌려준다.
@ 재즈영화 라운드 미드나잇
프랑스 출신의 베르트랑 타베르니에 감독이 재즈 뮤지션 버드 파웰(Bud Powell)과 한 재즈 팬 사이에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거장 색소포니스트 덱스터 고든이 극중 연주자로 출연하였고 역시 재즈 뮤지션인 허비 행콕(Herbie Hancock)이 영화 음악을 담당하여 개봉 당시 상당한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작품이다.
영화의 배경은 59년 파리의 '블루노트' 클럽 미국을 떠나 이곳에 정착한 재즈 색소포니스트 데일 터너는 알콜 중독으로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을 최고의 연주자로추종하는 재즈팬 프란시스를 만나 우연히 맥주 한잔을 하게 된다. 그리고 점차 프란시스의 보살핌과 도움으로 데일 터너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되고 결국 최고의 연주자로 거듭나게 된다.
찰리 파커(Charlie Parker)의 극단적인 삶을 다뤘던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버드>와 달리 <라운드 미드나잇>은 재즈 뮤지션과 재즈 팬 간의 우정이 아주 훈훈하게 표현된 영화라 할 수 있다. 뮤지션인 고든은 이 영화로 87년에 열린 제 5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 후보에까지 올랐을 정도로 그 연기력을 인정받았으며 행콕은 '음악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리기도.
한편 고든과 행콕 외에 토니 윌리암스(Tony Williams), 빌리 히긴스(Billie Higgins), 웨인 쇼터(Wayne Shorter), 존 맥러플린(John McLaughlin), 프레디 허버드(Freddie Hubbard), 론 카터(Ron Carter) 등 베테랑 뮤지션들이 직접 출연, 이들을 보는 재미 역시 쏠쏠하다. 재즈 팬이라면 반드시 보기를 권한다.
@ 재즈영화 모 베터 블루
Mo' Better Blues. 너무나도 익숙한 곡이자
지금 자신의 상태를평가해줄한 곡이다. 아주 유쾌하게 흥얼대며 들을 수도 있고 음악 뒤에 숨어 있는 왠지 모를 서글픔과 우울함을 느낄 수도 있는, 듣는 이의 기분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흑인 인권주의자 감독인 '스파이크 리'의 영화 『Mo' Better Blues』에 쓰인 동명의 곡이다.
영화와 관련지어서 해석하면 많은 의미가 함축된 제목이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블루스 자체가 많은 의미가 들어 있는 음악장르이기도 하고... 블루스란 음악장르는 그 역사를 알지 못하면 한 마디로 정의 내리기가
힘든 음악장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블루스의 정의는 '미국의 노예제도에서 비롯된, 서아프리카의 해안 지역으로부터 백인들에게 포획되어 유입된 흑인들이 자신들의 처지와 애환을 노래한 노동요(Work Song)를 시초로 하고 있는, 12마디의 화음조성 구조를 가진 음악'(신현준,『록 음악의 아홉가지 갈래들』, 문학과 지성사)이라고 한다. 하지만 블루스는 하나의 음악 장르 명칭에만 머물지는 않는데, 이른바 '블루지'한 상태란 음악을 듣고 연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하나의 지향점이자 인생관, 삶의 태도를 일컫는 의미로까지 확대되어 쓰이고 있다.
흔히들 재즈는 뉴올리언즈에서부터, 블루스는 미시시피에서부터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당시 뉴올리언즈를 제외한 지역에서는 흑인들의 드럼 사용이 선동용 기구라는 미명 아래 금지되었기 때문에 흑인 밀집지역 중 하나였던 미시시피에서는 주로 보컬과 현악기 위주였기에 벤조나 급조한 형태의 악기, 가령 워시보드, 하모니카 또는 휘파람 등이 사용되어 블루스가 발전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반면 뉴올리언즈의 경우 어느 정도 드럼이나 관악기의 사용이 가능했기에 후에 퍼레이드 음악의 유행과 함께 재즈가 발전된 것이라 보고 있다. 「Mo' Better Blues」 자체는 완전한 블루스 음악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뭐 어쨌건 장르 자체가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 같이 공감
할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음악이 어디 있으랴!
@재즈영화 사랑의 행로(The Fabulous Baker Boys)
사랑의 행로
The Fabulous Baker Boys, 1989
좋은 영화는 대부분 좋은 제목을 가졌다. 그러나 The Fabulous Baker Boys의 경우는 좀 다르다. '전설적인 베이커 형제들'이 사랑의 행로가 되어 버리다니, 이 엉뚱하고 전혀 특징 없는 제목 때문에 나는 이 영화를 내내 멀리하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볼 마음이 생겼다.
음악은 데이브 그루신, 졸업, 구니스, 폴링 인 러브, 황금 연못 등의 영화 음악으로 유명한 영화 음악가이자, 키보디스트이며, 작·편곡자에게 GRP 레이블의 사장이기도 하다. 지금도 그의 음악은 광고며 시그널 음악으로 심심찮게 사용되고 있는데, 언젠가는 눈만 뜨면 여기저기서 그의 음악이 흘러나왔을 정도였다. 나는 그루신의 음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여러 장르를 섭렵해 진지한 연구를 한 그의 이력은 음악사에서 쉽게 간과할만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내게 데이브 그루신의 음악은 3분만 데우면 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식품 같은 느낌이 들곤했다. 데이브 그루신은 남부럽지 않은 음악적 지식과 재능에도 불구하고 대중에게 쉽게 어필할만한 쉬운 음악을 만드는 것을 지침으로 삼았다. 훌륭한 생각이다. 굉장히 복잡한 지식을 가진 학자가 평범한 독자를 위해 쉬운 글을 쓰는 것과도 같지 않은가! 하지만 어떤 것은 좀 지나치게 쉬워졌던 건 아닌가 싶다. 소리는 형태를 가지지 않기 때문에 이미지를 설명하기가 힘들다. 또한 그 때문에 음악은 어떤 사물이나 인물, 상황에 쉽게 부합되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데이브 그루신의 음악이 어묵과 이미지 연상 작용을 하는 바람에 그의 대중예술성을 감안하더라도 재즈 팬에게 썩 좋은 영향을 주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런 이유들로 사랑의 행로를 보기 전에는 데이브 그루신의 음반을 구입해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이 사운드트랙만은 달랐다. 데이브 그루신은 이 영화에서 재즈를 특유의 방식으로 변형시키기보다 정통 재즈를 사용했다. 듀크 엘링턴의 Prelude to a kiss라든가, Lullaby of Birdland, Makin' Whoopee 등은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연주했던 스탠더드곡들이다. 특히 미셸 파이퍼와 빨간 드레스, My Funny Valentine의 삼위일체는 너무나 강렬했다. 빨간 드레스를 입은 미셸 파이퍼가 그랜드 피아노 위에 올라가 My Funny Valentine을 부르는 장면만으로도 이 영화를 볼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감히 그렇게 단정 지을 수 있을 정도로 이 한 장면에 영화의 농후함이 함축되어 있다. 수많은 아티스트에 의해 불려진 스탠더드 곡 My Funny Valentine, 하지만 미셸 파이퍼를 통해 전혀 다른 이미지를 얻었다. 재즈란 그런 식으로 수십 법, 수백 번씩 새로 태어나는 음악이다 |
@ 재즈영화 레이 (RAY)
영화 레이(Ray)는 ‘소울의 천재’로서 전세계인들에게 추앙받는 ‘레이 찰스’의 인생을 그린 감동 드라마. ‘레이 찰스’는 74세를 일기로 타계할 때까지 평생 100회 이상의 콘서트를 하는 등 열정적인 음악활동을 해왔으며, 그래미상을 14번이나 수상한 천재적인 음악가이다. 노라 존스 등 신세대 인기 가수들과 듀엣으로 녹음한 유작 앨범 ‘Genius Loves Company’로 47회 그래미상 ‘올해의 레코드’ 등 8개를 석권해 다시금 화제가 되었다. 이제 영화 <레이>에서 펼쳐지는 그의 드라마틱한 인생과 서정적인 음악은 관객들에게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올 것이다.
영화 레이(ray) 레이찰스의 일생을 담은 영화.
흑인 소년 '레이'(제이미 폭스)는 시력이 급격히 나빠져서 7살 때부터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이다. 그러나 아들이 혼자의 힘으로 당당히 살아갈 수 있기를 원했던 어머니 '아레사'(샤론 워렌)의 엄한 교육 덕분으로 세상에 맞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창문 밖 벌새의 날개 짓 소리까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타고난 청각과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발판으로 흑인 장애인이 받아야만 했던 모든 편견을 물리치고 가수로서의 삶을 시작한 레이. 가스펠과 블루스를 접목시킨 새로운 노래로 젊은이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끈다.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가장 좋아하는 음악장르가 가스펠이라는 말 때문에 만나게 된 목사의 딸 '델라'(케리 워싱턴)와 결혼까지 하지만, 자유분방한 성격 탓에 밴드의 코러스인 '마지'(레지나 킹)와도 애인관계를 만든다.
발매하는 음반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음악인으로서 성공하지만, 6살 어린 나이에 목격한 동생의 죽음이 환영처럼 따라다니고, 앞이 보이지 않는 데서 오는 암흑 속의 공포, 철저히 혼자라는 지독한 외로움은 그를 마약의 세계로 빠져들게 만든다. '델라'의 간곡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점점 마약의 늪에서 헤어나올 수 없게 된 그는 최고 유명인의 자리에서 검찰에 검거되는 파문을 일으킨다. 그러나 마약에 한 번 손을 댄 이상 도저히 그만 둘 수 없었고, 평생을 지키겠노라 약속했던 가정마저도 위태로워질 뿐. 하지만 자신의 영향으로 마약에 빠져든 마지의 죽음 소식을 접하게 된 레이는 지금껏 자신을 지탱하게 했던 음악마저 송두리째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를 느끼고 재활의 의지를 불태운다.
그리고 마침내... 흑인으로, 그것도 시각장애인으로 당당히 세상의 편견과 맞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은 레이. 그가 바로 전 세계인들의 가슴속에 살아 있는, 영혼의 음성 '레이 찰스'다.
그 후 40년 동안 히트 앨범을 만들었으며, 그래미 상을 수상하고,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엔터테이너가 되었다. 그는 약속을 지켜, 다신 헤로인에 손대지 않았다. 유명해진 이후에도 뿌리를 잊지 않고, 20만 달러 이상을 흑인 대학 장애인들에게 기부하고 있다. - 레이 찰스 로빈슨(Ray Chares Robinson: 1930-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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