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부싸움- 왜 맞고 삽니까
:: 맞고 사는 남편들의 모임? 매 맞는 남편들이 늘고 있다지만 그런 ‘못난’
남자들이 모여 모임까지 만들었다면 혹자는 비웃고, 혹자는 그 용기를
높이 살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모임 남편들치고 실제로 맞고 사는 이는 하나도 없다는데....
맞을 수 있는 자세로 가정에 봉사하며 산다는 이 남자들이 살아가는 법은 무엇일까
- 문 영숙 -
사례 ① “맞을 짓을 했는데 당연히 맞아야죠” (김형규(31·학원 운영)
- 결혼 꼭 1년 째. 그 1년 동안 김형규씨가 아내 김경화씨(28)에게 매를 맞은
경험은 도합 2번이다.
그것도 시퍼런 멍이 들 정도로 꽤 심한 폭행을 당했다고. 매를 맞을 때 그가
취하는 행동은 딱 한가지.
몸을 최대한 돌려 아내에게 넓은 등을 내주는 것이다.
그리고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맞을 짓을 했지.’
- 그가 아내를 화나게 하는 이유는 바로 귀가시간. 신혼 초 아내와 약속한
밤 10시를 넘기고 꼭 ‘맞을 만한’ 시간에 귀가하는 것이다.
요즘은 아내도 적당히 포기한 탓에 12시 전에만 들어가면 매는 피할 수 있다.
“올 초에 맞사모에 가입했어요.
통신에서 이 모임을 발견했을 때 ‘아! 내가 있을 곳이 바로 여기다’ 싶었죠.
전 정말 맞고 사는 남편들만 가입하는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웬걸요. 안 맞으려고 피하며 사는 사람이 대부분이더라구요.”
- 그러나 그의 ‘맞을 짓’은 좀처럼 자제되지 않는다.
워낙 사람 만날 일도 많고 술을 좋아하다보니 조금만 방심해도 12시를
넘기기 일쑤.
그래서 그의 아내에게는 독특한 취미가 하나 생겼다.
하루도 빠짐없이 달력에 귀가시간을 적어두는 것이다.
그 정도가 심하다 싶으면 어김없이 아내의 추궁이 날아든다.
“당신은 술 먹고 늦는 것 외에는 말할 게 없다”라는 아내의 잔소리에
그는 “다 가족 먹여 살리려고 늦는 건데 웬 잔소리 냐”라며 맞서고
그렇게 부부싸움이 시작된다.
- 지금까지 그가 각서를 쓴 것만도 3번.
‘다시는 술을 먹지 않겠으며 만약 다시 술을 먹고 부인 허락없이 늦었을
시에는 어떤 조처도 달게 받을 것이며, 아이에 대한 모든 권리는 부인에게
있음’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니 귀가시간 때문에 야단맞을 때면 당연히 어떤 조처라도 달게 받아야죠.
대신 싸우더라도 절대 상처는 남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제 철칙입니다.
싸운 뒤에는 반드시 화해를 청하죠.
눈치를 봐가며 잘못했다고 싹싹 빌면 아내도 웃지 않고는 못배겨요.”
- 결혼 전 그는‘아내가 밥 한번 하면 나도 한번 해야지’라고 결심했었다.
그러나 막상 살다보니 아내 일을 돕는 수준으로 그치고 말더라고.
그 미안함을 달래보려고 그는 자주 아내를 감격시킨다.
“처음보다 지금 당신을 더 사랑하고 앞으로 더 사랑할 것이다”라는
말에 아내는 늘 감격 해마지 않는다.
- 그리고 지난 10월13일, 결혼 1주년 기념일에 또 한번 아내를 감격시켰다.
모처럼 딸 혜리(1)를 떼어놓고 둘 만의 시간을 가진 자 리에서 장미꽃
1백송이를 선물했던 것.
딸아이 우유병 소독과 옥상에 널어 둔 빨래를 걷어오는 일만큼은 스스로
하고 있다는 그는 오늘도 빨래를 걷기 위해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서둘 렀다.
스스로를 ‘맞고 사는 남편’이라고 주장하는 그의‘엄살’이 어떤 말보다도
더한 애처가의 자랑으로 들렸다.
사례 ② “가정의 화목은 남자 하기 나름” (박흥진(34·화사원)
- 박흥진, 임효선(32) 부부는 하이텔 공식 1호 부부.
91년 8월30일 컴퓨터 대화방에서 만나 정확하게 석달만에 결혼했다.
“대화방에서 만난 그날 몇명이 모여 술을 마셨어요.
그때 집사람이 끼여 있었죠.
두번째 만남은 한달만에 가졌는데 그것도 미사리에서 열린 정보통신
한마당이었으니 사적인 자리는 아니었어요.
그날 제가 한번 사귀어보자고 했어요.”
- 얼굴을 맞대고 둘만 사귀기 시작한 것은 불과 결혼 전 두달 간이 전부였다.
서로를 충분히 알 수 있는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는 결혼생활에 대해 서만큼은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다.
이미‘맞고 사는 자세로 양보하며 살’ 태세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 남자가 물러서면 가정이 화목하다고 믿어요.
의견차이가 심하지 않은 일은 되도록 아내 의견을 존중하며 살지요.
그러다보니 크게 부딪힐 일은 거의 없어요.”
- 그렇다고 부부싸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별 것 아닌 일로 자존심 대립이 있게 마련이고 감정이 격해진다 싶으면 일단
떨어져 있는 것이 상책.
얼굴을 보지 않은 채 차분히 싸움의 원인을 돌이켜보면 아내의 마음이 헤아려진다.
그렇게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기면 그때부터는 대화가 술술 풀려나 간다.
그래서 이들 부부의 싸움은 1시간 이상을 넘겨본 일이 없다.
- 때론 대화 대신 전자메일을 사용하기도 한다.
먼저 얘기를 꺼내는 것이 쑥스러울 때, 아무리 돌이켜봐도 감정의 앙금이
가라앉지 않을 때는 이 방법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한다.
부부 모두 하이텔의 평생 무료회원이다.
공식 1호 부부에게 주어진 특혜를 충분히 활용하는 셈이다.
“우리 부부의 공통 취미는 컴퓨터예요.
아내도 결혼 전 컴퓨터 학원 강사였거든요.
그래서 다른 건 몰라도 컴퓨터 하나는 최고급으로 들여놓았어요.
결혼 전 처럼 자주 채팅은 못해도 함께 통신 상에서 홈쇼핑도 즐기고
맞사모 회원들과 통신을 할 때면 곁에서 지켜보기도 해요.”
- 부부싸움 주제로 흔히 등장하는 가사일 분쟁은 이들 부부에게만큼은
남의 일이다.
결혼과 동시에 전업주부로 옮겨앉은 그의 아내는 집안 일은 철저히 여자 몫이라고
주장하는 현모양처형이다.
딸 지은이(5)에 이어 올해는 아들 지수까지 태어나 일거리가 부쩍 늘었음에도
집안살림과 관계 된 일에는 끝까지 고유권한을 지키고 있다.
어쩌다 부엌 일이라도 거들라치면 몹시 자존심 상해하는 아내 때문에
아예 집안 일 근처에는 얼씬도 않는다고.
- 적어도 남자 입장에서 본다면 이런 아내를 둔 그는 행복한 가장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굳이‘맞사모’ 회원일 필요도 없지 않느냐”라고 물었다.
“평생 아내에게 양보하며 산다는 결혼관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라도
‘맞사모’의 정신은 소중한 것”이라고 그는 대답했다.
사례 ③ “이혼 위기 극복하며‘맞고 사는 남편’으로 거듭났죠”
(이범식(37·펜타퓨어 코리아 차장)
- 지난 여름까지만 해도 이범식씨는 이혼의 기로에 놓여있었다.
작년부터 아내의 눈치가 부쩍 이상해지더니 “이젠 내 인생을 찾고 싶다”며
반란을 도모했던 것이다.
결혼 9년 만의 도발이었다.
아니 아내를 만난지 19년 만에 처음 대하는 당혹스런 모습이었다.
그가 아내 박현순씨(34)를 처음 만난 것은 고교 시절.
첫 만남 이후 결혼에 이르기까지 그의 아내는 일편단심 그만 사랑하는 여자였고
결혼 후에도 순종적인 아내였다.
“저희 집안이 꽤 보수적이었어요.
그러니 저도 어쩔 수 없이 보수적인 남자였죠.
살면서 단 한번도 아내가 큰소리 내는 걸 본 적이 없는데 그게 다
제가 아내를 누르고 살았기 때문이에요.
제가 화 내면 아내는 말대꾸 한마디 없이 꾹 참았거든요.
그런 부부관계가 당연한 것인 줄 알고 살아 왔지요.”
- 그래서 아내에게 일어난 변화도 그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전과는 달리 아내가 끊임없이 말대꾸를 해대고 불평을 일삼아도 그저 짜증으로
대꾸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아내가 이혼을 요구했다.
“아이들은 내가 키울테니 이혼하자”는 아내 말에 그는 비로소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
“정말 심각했어요.
6개월 넘게 하루가 멀다하고 싸우고 울고 달랬지요.
그러다 지치면 차라리 이혼하고 혼자 살까 싶기도 했죠.
그렇지만 아이들 생각만 하면 그럴 수가 없더라구요.”
- 대화 없는 싸움은 나날이 심각해지기만 했다.
급기야 그가 먼저 대화의 물꼬를 텄다.
눈치가 빤한 아이들 앞에서야 싸울 수 없으니 퇴근 후 집 앞에서 아내와
만나 남한산성으로 드라이브를 갔다.
울며 털어놓는 아내의 불만은 “기다림에 지쳤다”는 것이었다.
어려서부터 오직 한 남자만 바라보며 헌신적으로 살아온 삶이 다 헛된
것으로 여겨진다는 아내의 허전한 마음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동안 제가 너무 권위적이고 이기적으로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회사일에 쫓길 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늘 새벽
1∼2시에 귀가하곤 했어요.
‘맞사모’ 주력 멤버에‘삼동회’(삼십대 동호회) 대표시삽이라는
이유로 가정보다는 밖으로 나돌기를 즐겼죠.”
- 미안한 마음은 늘 품고 있었다.
다만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아내가 그 속내를 읽고 있을 것으로 믿은 것이
착각이었다.
이번 위기를 겪으며 그는 비로소 부부 사이에도 깊은 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그리고 더이상 아내를 기다리게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며 그 위기를 간신히 넘겼다.
- 아내 박현순씨도 남편과 아이들에게만 매달려 사는 시간을 조금 줄였다.
2개월 전부터 백화점 판매사원으로 시간제 근무를 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맞사모’ 회원으로 활동을 시작한지 4년 만에 그는 비로소 ‘맞고 사는 남편의 정신’을
경험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