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4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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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구네군다
축일 7월 24일
마걀 이름으로 킹가였던 구네군다는
헝가리의 국왕 벨라 4세의 딸이자
성녀 엘리사벳의 조카였다. 구네군다는
궁중에서 "라틴어와 하느님 두려워하는
법을 배우면서" 자랐고, 16세 때
폴란드 국왕 볼레스라우스와 결혼하였다.
그녀는 비록 결혼에는 동의하였으나,
결혼한 밤에 왕에게 정절을 지키겠다고 말하였다.
이에 대하여 왕은 1년 동안만 지키자고 동의하였다.
그러나 이 기간이 다 끝나기 전에 왕과 왕비는
크라카우의 주교 앞에서 평생 동정을
서약하였던 것이다. 왕비는 궁중 의상 아래에
허름한 옷을 입고 엄격한 생활을 하였고,
수시로 병자와 가난한 이에게 음식을 날라다 주었다.
1279년에 남편이 서거하자, 그녀는 나라를
다스리라는 귀족들의 청을 물리치고, 자신이
산덱크에 세운 글라라 수녀회에 들어가서
여생을 지내다가 운명하였다.
그녀는 수많은 성당과 병원을 지었으며,
프란치스꼬회를 위하여 많은 경비를
지출하였다고 한다. 만년에는 그녀 주위에
수많은 기적과 초자연적인 현상이 일어나서
그녀의 출중한 덕행이 매우 빛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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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보리스(boris)
성 글렙 [gleb]
축일 7월 24일
러시아의 첫번째 신자 왕자였던
성 블라디미르가 1015년에 죽자,
그의 맏아들인 스비야토폴크는 자신의 위치를
염려하여, 아버지의 다른 형제들인
보리스와 글렙을 제거하려고 기회를 엿보다가,
삽시간에 이 형제들을 살해하였다.
형으로부터 제거의 위협을 받게 된 계기는
부당한 방법으로 정권을 탈취하려는
형에 대하여 정의를 요구하면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는
등의 말을 했기 때문이지, 장자의 권리에
반기를 든 것은 아니었다. 이 때문에
러시아인들은 이들 두 사람을 "자발적으로
고난받은 자"로서 공경하였다. 이들의 축일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교회에서 엄수되고 있다.
성 보리스와 성 글렙은 러시아 이름이고,
신자명은 로마누스와 다윗이다. 보리스는
모스크바의 수호 성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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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니체타 (Niceta)
성녀 아퀼리나(Aquilina)
축일 7월 24일
성녀 니케타(Niceta)와 성녀 아퀼리나는
원래 전승에 의하면 성 니케타(Nicetas)와
성 아퀼라(Aquila)라는 이름의 군인 순교자로
나온다. 그런데 저자가 불확실한
성 크리스토포루스(Christophorus, 7월 25일)
전기에 의하면 그들의 이름이 여성형으로 바뀌어
매춘부였다가 회개하여 신앙에로 나아간
두 순교자에게 적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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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니콜라우스 헤르만손
(Nicolaus Hermansson, 또는 니콜라오)
축일 7월 24일
성 니콜라우스 헤르만손(Nicolaus Hermansson,
또는 니콜라오)은은 파리와 오를레망에서
대학을 마친 후 사제가 되었고, 그의 첫 부임지는
궁중의 젊은 왕자를 가르치는 교사였다.
그 후 그는 링쾌핑의 주교로 임명되었는데,
니꼴라오는 즉시 개혁을 주도하면서
자신의 염격한 생활을 보여주었다.
비록 스웨덴에서는 어려웠으나 그는 거의
강제적으로 사제의 독신제를 강요했다.
그러나 사실 그는 시인이었다. 그는 전례에
사용할 수 있는 아름다운 찬미가를 만들거나
작곡하여 중세 시대 교회에서 대중적으로
이용된 곡들이 많았던 것이다. 성녀 브리짓다의
서거 때, 그는 "로사 로란스 보니따뗌"이란
유명한 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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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데클란(Declan)
축일 7월 24일
성 데클란은 아일랜드 워터포드(Waterford)의
데시(Desi)에서 태어났고, 아일랜드계 성인인
콜만(Colman)으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그의 전설적인 생애 가운데에는 역사적으로
모순되는 이야기들이 상당히 들어 있는데, 예를 들면,
그는 성 파트리키우스(Patricius)의 선교 전후에
설교하고 선교했다는 주장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데클란의 주위에선 수많은 기적들이
일어났던 것은 사실인 듯하고, 로마(Rome)를 두 번이나
순례하였으며, 웨일스(Wales)를 지날 때에는
성 다윗(David)을 만난 것도 사실이다.
그는 주교로 승품되어 많은 공적을 남겼고,
아드모어의 주교로서 큰 공경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 성인은 아일랜드에서만 공경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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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레비나 (Lewinna)
축일 7월 24일
성녀는 동정녀로서 순교하신 분이다.
켄트족의 엑베르토 왕 시대에 살았다.
테오도로 대주교가 살아계셨을 당시,
이방인이었던 색슨족 사람들에게 살해당했다.
성녀의 죽음은 680년 - 690년 경으로 추정된다.
16세기에 그려진 성녀 그림이, 로마에 있는
영국인 신학교 기숙사의 벽면에 그려져 있다.
베르게스(Bergues)에 성녀의 손가락
일부 유해를 보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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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레위나, 동정,
축일 : 7월 24일
성녀 레위나는 색손인들이 크리스챤으로
개종하기 이전에 브리텐에서 그들의 손에
죽음을 당하였다. 그외에 알려진 것은 없다.
그녀의 유해는 성녀 이데베르가와 함께
성 윈녹크 성당에 안치되어 순교자로 공경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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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메네우스(Meneus)
성 카피토(Capiton)
축일 7월 24일
성 메네우스(Meneus)와 성 카피토(Capiton)는
로마와 그리스 축일표에서 모두 순교자로서
기념하고 있으나 그들에 대해 알려진 바는 없다.
그는 히메네우스(Hymenaeus)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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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빅토르(Victor)
성 스테르카티우스(Stercatius)
성 안티노게네(Antinogenes)
축일 7월 24일
성 빅토르와 성 스테르카티우스(Stercatius) 그리고
성 안티노게네(Antinogenes)는 형제 사이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에스파냐
에스트레마두라(Estremadura) 지방의
메리다(Merida)에서 순교하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성 빅토르만이 에스파냐 사람으로서 그곳에서
순교하였고, 다른 두 명은 아마도 아르메니아의
세바스테(Sebaste)에서 성 테오조누스(Theozonus)와
함께 순교한 이들과 동일인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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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빈첸시오(Vincent)
축일 7월 24일
성 빈첸시오(Vincentius)는 이탈리아 로마 성벽 밖
티볼리(Tivoli)로 가는 길 위에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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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띠노(augustine)
축일 : 7월 24일
성 아우구스띠노 판지는 피에드몽의 비엘라
태생으로 고향에 있던 도미니꼬 수도회에 입회하였다.
그러나 오랜동안 앓았던 병으로 얻은 놀라운
인내심이 동료 형제들의 감탄을 자아내게 한 것이다.
후일, 그가 건강을 회복했을 때에는 원장으로
피선되었고, 다소 이완된 규칙을 더욱 엄격히
세우는 등 성공적으로 동료 수도자들을
성덕으로 인도한 것이다. 또한 그의 설교
역시 뛰어나 시민들로부터 찬사를 받았지만,
그 자신은 지극히 겸손하게 처신하였던 것이다.
그는 베니스 수도원으로 은퇴하여 10여 년을
지내다가, "하느님을 찬미할지어다!" 하는
소리를 되뇌이면서 운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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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 타벨리(Joannes Tavalli)
축일 7월 24일
요한 타벨리(Joannes Tavalli)가 토시냐노라고
불리는 것은 그의 출신지 때문이다.
그는 이탈리아 볼로냐(Bologna) 대학에서
수학하고 예수아티회에 입회하였다.
그는 그의 설립자인 성 요한 콜룸비니의 전기를
비롯하여, 성서의 이탈리아어 번역을 시도하여
그 일부를 완성하였고,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의
“모랄리아”(윤리), 성 베르나르두스(Bernardus)의
"설교집" 등을 간행하였다.
1431년 그는 페라라(Ferrara)의 주교로 피선되었고,
그의 교구민들을 극진히 사랑한 것으로 명성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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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 보스트(John Boste)
축일 7월 24일
잉글랜드(England) 웨스트모어랜드(Westmoreland)의
더프턴(Dufton)에서 태어난 성 요한 보스트
(Joannes Boste)는 옥스퍼드의 퀸 대학에서 수학하고
그곳의 연구원으로 일하다가, 1576년에 가톨릭
신자가 된 후 프랑스의 랭스(Reims)로 가서
1581년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즉시 잉글랜드 선교 길에 올랐으며,
주로 북 잉글랜드의 가톨릭 신자들을 사목하였다.
이 일로 인하여 그는 요인 암살의 주요 표적이 되었다.
그는 더럼(Durham) 근교에서 프란치스코 엑클스필드에
의하여 배신을 당하여 런던으로 압송되었다.
여기서 그는 오랜 감옥생활을 하다가 다시 더럼으로
이송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1594년 7월 24일 참수
당하였다.
그는 잉글랜드와 웨일스(Wales)의 40명의 순교자 중
한 명으로 1970년 10월 25일 교황 바오로 6세
(Paulus VI)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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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우르시치노(Ursicinus)
축일 7월 24일
성 우르시키누스(또는 우르시치노)는 프랑스 상스의
제4대 주교로 기록되어 있다.
그는 아리우스주의(Arianism)의 반대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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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크리스티나 (CHRISTINE OF BOLSENA,)
축일: 7월 24일
이탈리아 반도 중부의 라티움(Latium)의 볼세나에서
성녀 크리스티나를 공경하는 전설은 너무 단순하여
그 내용을 조금이라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역사성은 희박하지만 유명한 재판과 기적에
관한 전설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
볼세나에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무덤들이 남아
있으나 그곳이 순교자 크리스티나가 묻힌 곳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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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크리스티나(Christina)
축일 : 7월 24일
벨기에 남동부 리에주(Liege) 근교 브루스템에서
태어난 성녀 크리스티나는 3세 때에 고아가 되었고,
21세 때에는 간질병을 앓은 병력도 있다.
또 그녀를 위한 미사가 봉헌되고 있는 성당의
지붕으로 갑자기 높이 치솟았을 때에는 마치
죽은 듯이 보였으나, 주임 사제가 아래로 내려오라고
명하자 그렇게 하였다. 또한 그녀는 지옥, 연옥
그리고 천국에도 다녀왔고, 연옥에서 고통을 받는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러 지상으로 되돌아오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 모든 사건들은 도저히 믿기 어려운 일들이지만,
그녀의 생애에서 실제로 일어났다고 보는 이들도
많이 있다. 그녀는 극도로 가난한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녀를 이상하고 놀라운 사람
(the Astonishing)으로 여겼지만 그녀를 공경하는
이들이 더 많았다.
그녀는 생의 마지막 해를 생트롱(Saint Trond)의
성녀 카타리나(Catharina) 수도원에서 지내다가
7월 24일에 운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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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크리스티아나(Christiana)
축일 7월 24일
성녀 크리스티아나는 앵글로색슨(Anglo-Saxon)
왕의 딸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플랑드르(Flandre)
지방으로 건너가서 수도자로서 죽을 때까지 살았다.
그녀는 벨기에 테르몽드의 수호성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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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펠리치아(Felicia)
축일 : 7월 24일
그녀는 밀라노의 훌륭한 가문의 장녀로 태어났으나,
양친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12세기 되면서부터 그녀는 동정을 지키며
하느님만 섬기기로 결심하고, 글라라 수녀회에
들어갔다. 그 얼마 후에 그녀의 여동생은
자신의 뒤를 따랐고, 남동생은 프란치스꼬
회원이 되었다. 25년 후의 그녀는 뛰어난
글라라 회원으로 수녀원의 꽃으로 불리웠다.
그녀의 고행과 항구한 기도, 그리고 뛰어난
공동체 생활은 만인의 귀감이라는 평을 들었고,
따라서 그녀의 명성은 놀랍게 퍼져나갔다.
이리하여 그녀는 페사로의 공작
갈레아쪼 말라테스타 부인의 협력을 받아서
페사로에 새 수도원을 짓는 등, 외적인 활동도
수반할 수 있었던 뛰어난 봉쇄수녀로 공경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