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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중·고등학교 다니던 6년 동안 6km를 걸어다녔어요. 학교가기 위해 개천을 3번을 건너야 하는 먼 길이었습니다” 지난해 12월 고양중·고등학교 총동문회장에 취임한 조원행(61세) 회장은 40여 년 전을 추억했다. 신도읍 용두리에서 태어난 그는 1971년에 고양중학교를 21회로, 1974년에 고양고등학교를 19회로 졸업했다. 조 회장의 학창시절 추억 속에는 교정에 줄지어선 지름 50cm의 은백양 나무도 자리잡고 있었다. “지금의 학교에 메타세콰이어가 심어지기 전 그 자리에는 은백양이 들어차 있었어요. 어린 체구에 비해 은백양이 얼마나 컸겠어요. 아침마다 은백양 사이사이에 규율부 선배들이 도열해 모자를 똑바로 쓰고 있는지, 머리카락을 길게 길렀는지 검사하는 거예요. 엄청난 위압감이 들었죠.” 조 회장이 고양중학교를 졸업하던 1971년에 ‘고양농업고등학교’라는 학교명칭은 ‘고양종합고등학교’로 바뀌었다. 이해에 고양종합고등학교는 기존의 농산제조과와 원예과 외에 인문계열인 보통과가 신설되어 3개 학과로 운영됐다. 조 회장은 고양고등학교 보통과 1회 졸업생이었다. “제가 우리학교에 다닐 당시 3개과가 있었는데 1학년때 만난 과 급우가 변동 없이 3학년까지 그대로 갑니다. 그러니 급우들 간에 얼마나 많은 정이 들었겠어요.” 조 회장은 특히 고교시절 은사였던 이재호 담임교사를 각별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고양고등학교의 전신인 고양농업고등학교 1회 졸업한 선배이기도 했던 이재호 담임교사는 제자이자 후배들에게 여러모로 엄하게 대했다. 가령 학생들이 바지 호주머니에 손을 넣으면 학생답지 못하다며 호주머니를 아예 재봉틀로 꿰매게 할 정도였다. 교실 미닫이문 밑에 있는 문지방을 밟을 경우에는 크게 혼을 냈다. 힘이 있다고 주번 여학생에게 물주전자를 들게 만든 남학생에게도 가차 없이 혼을 냈다. “비뚤어질 수도 있었는데 이재호 선생님 덕분에 제가 사람 노릇을 하게 된 것 같아요. 국어를 맡았던 선생님은 독립선언서의 전문이나 시조 100수를 다 외우게 했어요. 요즘 교사들은 그 정도의 성의가 있을까 싶어요.” 고양시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학교중 하나인 고양중·고등학교도 많이 변했다. 특히 고양중학교가 2013년 삼송택지개발로 개발지구 내로 이전했고 고양고등학교가 인문계 학과가 없어지고 2012년 특성화고로 지정됐다. 조 회장은 “특성화고로 지정된 것을 두고 동문들은 많이 아쉬워했어요”라고 말했다. 고양중·고등학교 총동문회 행사는 크게 3가지다. 매년 4월 4째주 토요일에 진행하는 등산대회, 10월 3일 개천절에 모교 운동장에서 개최하는 ‘총동문 한마음 체육대회’, 그리고 12월에 여는 송년회다.
“세월이 흐르면서 도시화가 되고 편의시설이 들어와서 땅값이 오르기도 했지만 잃은 것도 있어요. 옛날에는 학교 급우들 누구라도 집이 어디에 있고, 그 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다 알았어요. 이제는 그렇지 않잖아요. 정이 없어진 것이 가장 안타까워요.” 조 회장은 총동문회장으로서 2가지 큰 숙제를 가지고 있다. 50년을 훌쩍 넘긴, 유서깊은 고양고의 대강당을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하는 일과 내년 70주년(1947년 6월 개교)을 맞는 학교의 70년사를 발간하는 일이다. 학교 초창기 선배들이 창릉천이나 북한산에서 주워온 돌로 지은 본관을 비롯한 여러 건물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대강당에 대한 동문들의 애정은 각별하다. 조 회장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학교에 다닌 1~3기 선배들의 자료들을 취합하는 일도 쉽지 않다고 했다. 올해 고양중학교는 66회 졸업생까지 1만6800여명을 배출했고, 고양고등학교는 61회 졸업생까지 1만3800명을 배출했다. 이범림 해군참모차장, 김재웅 서울지방국세청장, 권오갑 전 과기부 차관, 디자이너 고 앙드레 김씨, 배우 김현주(77년생)씨가 고양중·고등학교 출신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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