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동연대감사한국어전문대학"을 찾아서
사업토론을 하고 있는 냉술해 동사장(좌)과 이만수(우)업무원장.
가장 일찍, 가장 많이 한국기업이 진출한 성은 산동성.
그만큼 산동성에는 한국기업(2만 여개)이 많고 또 한국어 인재 교육 기구(60여 개)도 많다.
하다면 산동성에서 가장 역사가 긴 최대 규모의 한국어전문대학은 어딜까?
"올해까지 연속 8년 현지 '일류학교'란 영예를 받았답니다. "
친히 역전까지 마중나온 산동 연대 감사 한국어 전문대학(山东烟台旰飒韩国语专修学院 董事长 冷述海) 이만수 업무교장을 따라 3층 교장실에 들어서니 언녕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냉술해 동사장이 반갑게 맞이했다.
"환영합니다. 이렇게 먼곳까지 찾아 주시다니요!"
마침 가는 날이 장날()이라 오후 2시부터 교내 제3회 한국어 말하기 경연대회 결승이 벌어진다고 했다. 직업적인 느낌에 "쾌재"가 나갔고 시계를 보니 아직 한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일단 냉 동사장님, 이 업무교장과 무릎을 마주했다. 학교 홍보담당이자 우리 "한국어마을" 특약기자로 활약하고 있는 우축휘(于祝辉) 선생이 타온 커피의 향기가 향긋하게 피어 올랐다.
1992년 중한수교가 이루어지던 해 연대일보사 후근부에 근무하고 있던 냉 동사장은 남편 소덕군(苏德君·지난 2003년 별세)선생과 함께 연대일보사의 지지로 대학의 전신인 "고마한국어학교(杲玛韩国语学校)"를 설립했다고 한다. 수교와 더불어 산동성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은 한국어 인재 부족으로 머리를 앓던 차였고 현지인들은 보수가 많은 한국기업에 취직하려고 한국어를 배우려는 시점이라 학교는 설립하자 마자 학생들로 초만원을 이뤘다고 한다.
1993년 학교는 연대시교육국의 비준을 거쳐 "연대감사한국어학교"로 이름을 바꾸었고 3년 뒤에는 현지 최초 전일제 중등전문학교, 고등전과과정 학력을 구비한 전문 한국어학교로 거듭났다. 동시에 한국의 유수 대학들과 자매결연을 맺고 국제교류에 앞장섰다.
"개척, 창신, 박투, 진취"를 학교 건설이념으로 하고 2001년에는 전문대 과정학과를 개설했으며 국내 최고 “한국어/조선어 교육기지”인 연변대학과 교류협정을 맺고 공동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4년제 본과과정도 개설했다. 이처럼 활발한 교류 및 한국 기업체의 인적 자원의 모체로서의 능력을 크게 인정받아 2004년 산동성 교육청으로부터 전문대학으로의 승격허가를 받았고 2006년에는 한국한글학회로부터 현지에서 유일한 “세계 한국말 인증시험(KLPT)훈련기지”로 지정받았다. 또한 산동성 교육청, 산동성 공안청, 산동성 외사처의 비준을 거쳐 “외국인 어학연수 학교 (涉外定点学校)” 로 인정 받았고 주 청도 한국영사관으로부터 “한국어 중점 훈련기지 (韩国语重点培训基地)”로 확정되었다.
그때 산동성에 진출한 한국기업에 본교 졸업생이 다수를 차지한다고 이만수 교장이 자랑하자 냉 동사장이 지금까지 배출한 졸업생만 하여도 1만여 명에 달한다고 덧붙였다. 한국기업들도 인젠 이 대학 졸업생이라고 하면 직원 모집시 우선순위로 채용한단다. 산동성 지역 한국기업들에 브랜드 한국어 인재교육기구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란다. 여기엔 이 대학 "명예교장"으로 활약한 주 청도 한국영사관 박종선 전 총영사의 노고도 깃들어 있다고 한다.
"자, 곧 말하기 결승전이 열린답니다. 함께 가보지 않을래요."
한창 솔곳이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우축휘 선생이 귀뜸해왔다. 아쉬운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한국어 인재 양성에 앞장서 달리고 있는 감사 한국어 전문대학의 밝은 미래를 속으로 기원하고 또 기원했다.
제3회 "감사컵" 한국어말하기 대회 현장, 부분적 모습
[길림신문 특간 한국어마을 신철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