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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질을 알면 침 하나로 병을 고칠 수 있다
* 1994년 10월 Queen이라는 여성잡지에 실린 권도원박사님의 기사 내용
이명복 박사의 한의학 스승, 김용옥 교수에게 신의로 추앙받은 '우리나라 체질의학의 대가' 권도원
한의사 권도원씨는 체질의학,체질침의 대가로 유명하다. 치료는 물론 침 하나뿐. 약 한첩 쓰지않고 오로지 자신이 개발한 '체질침법'으로 디스크, 녹내장 등 현대의학에서 치유할 수 없는 갖가지 병을 낫게 한다. 그는 암도 상당히 정복했다고 말한다. 지금껏 매스컴과 단 한 번도 공식 인터뷰를 한 적 없어 얼굴이 전혀 드러나지 않은 '신비의 한의사' 권도원 원장의 매스컴 사상 첫 본격 인터뷰.
<인터뷰: 서울신문 기자 이장곤>
'1968년에 사상의학의 체계를 세분화하여 정리한 팔체질의학의 창시자 권도원 선생과의 만남은 나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바로 권선생의 체질침 한방으로 몇 십년동안 앓아오던 소화불량증이 싸악 가셨던 것이다.'(전서울대 해부학 교수 이명복 박사의 저서 '체질을 알면 건강이 보인다'에서)
평생 서양의학을 한 여든살이 넘는 노의사로서 '권도원이라는 인물을 만나고 나서 동양의학에 심취, 마침내 독특한 체질진단법을 선보이며 체질의학의 바람을 불러 일으킨' 이명복 박사. 그가 스스로 자신의 한의학 스승으로 깍듯한 존경의 예를 표하는 인물, 권도원. '내가 만난 신은 단 두 사람이 있다. 그 하나가 모차르트요, 또 하나가 동호 권도원이다.' '내 책상머리에는 특별히 주문하여 만든 침과 침통 한 개가 놓여 있다. 그런데 이 침 한 개가 인류의 미래를 뒤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다. 그것은 꿈이 아니라 사실이다.'(도올 김용옥 전 고대교수의 저서 '의산문답'에서)
사람에 대한 평가가 깐깐하기로 여간 유명하지 않은 동양철학자 김용옥 전 고대 교수가 '신'으로 추앙하는 사람. '침을 통해 인류의 미래를 바꿀지 모르는 사람' 권도원.
"선생님은 참으로 대단하신 분입니다. 선생님이 지금 연구중인 8체질론은 워낙 엄청나서 저희들도 함부로 말할 수 없읍니다. 그러나 분명히 선생님의 이론이 발표돼 입증되면 일대변혁이 올 것입니다. 생활상의 대변혁일 것입니다. 아마 그리되면 선생님은 노벨상을 타게 될 지도 모릅니다."(권원장을 '우리시대의 가장 위대한 한의사'로 평가하는 제자 배한의원 원장 배철환씨의 말)
이렇듯 서양의학과 동양철학계의 양대 거두와 후학들이 다투어 드높이는 인물, 권도원. 그는 도대체 누구인가? 어떤 사람인가?
한의학계에서는 평생 체질의학에 관한 연구와 오랜 임상경력으로 독자적으로 그 존재의의를 인정받는 '우리나라 체질의학의 대가', '8체질론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으며, 세간에는 '침 한방으로 만병을 치유하는 사람'으로 회자되는 인물이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공식 인터뷰를 한 적이 없었기에 고희를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 얼굴조차 공개적으로 드러나지 않아 모든 것이 베일에 싸인 '신비의 인물'이기도 하다. 이래서 한때 권도원이라는 인물은 허준이나 이제마 같은 케케묵은 시절의 어느 탁월한 한의사를 말하는 것으로 곡해된 적이 있을 정도.
그러나 동호 권도원은 곰팡이 슨 책속의 인물이 아니라 너무나도 우리 가까이 실존하고 있는 우리시대의 한의사이다. 그동안 그가 '신비화된 한의'로 그려진 것은 한의학계는 물론 몇몇 유명인들에 의해 심심찮게 이름이 거론되면서도 한번도 언론에 본격적으로 공개된 적이 없는 까닭이 크다. 물론 언론이 공개하고 싶어도 드러나는 것을 마다한 그의 집요한 고집 때문이다. 그동안 숱한 기자들이 그를 만나고자 했지만 대부분 거절당했었다.
"인터뷰라면 사양합니다. 아직 제가 나설 때가 아닙니다. 더더구나 연구도 아직 완성을 다 못 봤기에 나중에 제 연구가 완성되면 그 때나 보기로 합시다. 지금 찾아오는 환자들만 해도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입니다."
그러나 기자가 아닌 환자라면 그를 만나는 것은 의외로 크게 어렵지 않다. 한2~3시간 기다려야 하는 인내력만 있으면 만날 수 있다. 바로 이 곳 제선한의원의 원장이 동호 권도원이다.
기자는 올해초부터 9월까지 세 번에 걸쳐 한의사 권도원(72)를 만날 수 있었다. 물론 그때마다 강한 거절이 있었지만 '사진을 안 찍겠다'는 조건의 두 번에 걸친 인터뷰, 한번은 환자의 보호자로서 만났다.
그리고 기자는 만날 때마다 나름의 경이로움을 맛보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문을 열고 들어서기가 무섭게 빽빽하게 자리한 대기실의 수 많은 환자수에 놀랐다. 다음은 사실은 놀랄 것도 없는 일인데... 김용옥씨가 신으로 표현한 권도원씨가 고희를 갓 넘긴 그저 우리 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웃집 할아버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놀란 것은 권도원 원장의 이른바 '8체질론'에 의거한 놀라운 침술의 세계였다.
8체질론에 의거한 신비한 침술의 세계
디스크, 위궤양, 녹내장 등 쉽게 고칠 수 없는 환자들로 늘 가득 메운 제선한의원의 환자 대기실.
최소한 환자들은 그 곳에서 2~3시간을 기다려야만 권원장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시술 시간은 단2~3분에 불과하다. 결코 길어도 5분이 넘어가지 않는다. 환자가 들어가면 권원장은 맥을 짚고 체질을 판별한다. 그리고 자신이 개발한 체질침 요법에 따라 환자의 다리 혹은 팔에 침을 놓는다.
그야말로 순식간. 침을 잡은 그의 팔이 환자의 팔 다리 부위에 갖가지 포물선을 그리며 스치듯 지나가는 듯 싶었는데 어느 새 시술은 끝나 있다. 마치 수 십년을 입산수도한 검객이 단 칼에 적을 제압하듯, 예술에 가까울 정도로 빠른 침술 솜씨를 보여준다.
그리고 환자는 권원장으로부터 자신의 체질과 피해야할 음식과 유익한 음식 등 주의사항이 적힌 쪽지를 받는 것으로 모든 치료가 끝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뭐니 해도 환자들의 병이 실제로 얼마나 치료되는가하는 문제.
"동의이든 서의든 뛰어난 의사라면 이런저런 의학이론을 주창하는 사람이 아니라 당연히 환자들의 병을 잘 낫게 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환자치료에 혼신을 쏟아야 하는 사람만이 기본적으로 의사인 것입니다."
이는 권원장 자신의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환자들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간염, 위염, 류머티스, 각종 피부병, 저마다 다른 병을 가진 환자들이지만 너도나도 효험을 보고 있다고 이구동성으로 답변했다. 지난 4월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심한 중풍을 앓은 김길수씨(50)는 2달동안 거의 매일 권원장으로부터 침을 맞고 있다고 하는데,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다. 그는 침을 맞은 얼마 뒤부터 몸이 조금씩 조금씩 호전되었고 마비증세가 거의 풀린 현재는 병의 뿌리를 뽑으려 계속 다니고 있다고.
"한마디로 원장님은 명의입니다. 침으로 어떻게 감쪽같이 낫게 할 수 있는지 신기하기도 하고요. 지금은 집에서 원장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음식을 가려먹고 있는데 갈수록 몸이 가뿐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언론계에서 잔뼈가 굵었다는 치료중인 한 언론계 인사도 누구보다도 권박사의 효험을 절대적으로 믿는다고 강조했다.
가장 기억나는 치료 사례 몇가지를 소개해 달라는 질문에 권원장은 일일이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부지기수라고 짧게 대답했다.
그가 학계에 한 때 발표한 적이 있는 임상 사례를 소개하면.
1971년 41세의 여성 활동가의 경우가 눈에 띈다. 그녀는 만성간염으로 일본 모 의대병원에서 고생하다 불치의 선언을 받고 최후수단으로 권원장을 찾았다고 한다. 당시 맥진을 마친 권원장은 "당신은 선천적으로 너무 작은 간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깜짝 놀랐다. 일본 병원에서 마지막으로 간을 열어보았을 때 의사들이 한 말이 간이 아주 작지만 이유는 모르겠다고 했었던 것.
그녀의 체질은 금양체질. 권원장은 매일 그녀를 금양체질에 맞는 침처방을 했다. 20일뒤 그녀는 GOT와 GPT가 200에서 40으로 떨어졌다. 3개월뒤 완치되어 그녀는 20대 못지 않게 건강해졌다고 한다.
그 밖에 천식으로 고생하던 한국에서 고아사업을 하는 미국의 한 상원의원의 모친, 결핵과 소화장애로 고통받던 35세의 신문기자, 그리고 온몸이 마비된 모 그룹의 비서실장, 위암 걸린 대덕단지 서모박사 등등...그리고 앞서 언급한 이명복 박사, 김용옥 교수도 그를 만나 병을 치유한사람들이다.
그러나 좀 더 확실한 '물증'을 잡고 싶었다. 환자들의 감탄이나 그 자신의 주장이 아닌.
그러자 권원장은 '불치의 환자를 한 번 데려오라, 그러면 고쳐주겠다'며 치료에 강한 확신을 보였다.
"아직 완성은 못봤지만 나의 체질침법으로 무슨 병이든 거의 다 낫게 할 수 있어요. 아직 암의 경우는 100% 완치할 수 있다고는 말 못하지만 상당한 정도까지는 물론 낫게 할 수 있지요. 믿기 좀 힘들겠지만, 아직 시기상조이며 그 내용이 나도 놀랄 정도로 엄청난 것이어서 완전히 밝힐 수 없읍니다만 언젠가 모든 것을 밝힐 예정입니다."
권원장이 말하는 체질침법. 그것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전설적인 명의 화타의 도깨비 방망이라도 되는 것일까?
"한방에 있어서 체질을 모르고서 치료를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체질을 알기는 사실 쉽지 않습니다. 그동안 여러가지 방법이 적잖았지만 제가 연구 개발한 체질의학에 의한 맥진법이 그나마 오진율이 가장 적다고 할 수 있습니다."
권원장이 말하는 체질 침법은 독특한 체질의학인 '8체질론'이다. 이명복 박사에 의해 '8상 체질론'으로 소개돼 일반적으로는 8상체질론으로 알려져 있지만 권원장은 8상체질론이란 말은 애초에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상과 8괘는 있으되 8상이라는 말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8체질론은 자신의 체질을 정확하게 판별하고 그에 따른 치료를 하고 해로운 음식과 유익한 음식 등을 가리는 체질에 맞는 생활습관을 길들이면 건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체질을 잘못 알고 치료를 하거나 약을 먹으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읍니다. 체질이 중요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에게 아무리 좋다는 것도 체질에 맞지 않으면 독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흔히 맞는 포도당 주사 한방으로도 죽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권원장이 평생 딱 두 번에 걸쳐 학계에 발표한 적이 있는 (1965년 제1차 세계침학술대회에서 최초 발표, 그리고 1973년 학술지 '중앙의학'에 영문으로 2번째 발표, 이때 권원장은 한의학계의 이단자로 엄청난 배척을 받았다고 한다.)'8체질론'에 따르면 사람은 크게 8체질로 나누어진다고 한다.
금양체질, 금음체질, 토양체질, 토음체질, 목양체질, 목음체질, 수양체질, 수음체질 하여 8체질이다. 바로 이 체질에 따라 모든 치료방법을 달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 체질에 9방식 총 72방이 있는데 그는 다른 체질에는 사용할 수 없는 전속 처방을 장방이라고 이름한다. 그리고 1방을 중심으로 8방을 배합하여 가장 강력한1방을 성립, 이를 기본방으로 정립했다.
바로 그것이 활력방, 살균방, 마비방, 정신방, 염증방 등으로 분류되는 처방들이다. 물론 이러한 처방의 도구는 오직 침 한가지이다.
권원장은 결코 한약처방을 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어서라는 아주 간단한 이유 때문. 침 하나로도 충분한데 굳이 약을 뭐하려 짓겠느냐는 것이다. 환자가 꼭 한약처방을 요구하면 경동시장에 가서 사 먹으라고 처방전을 내려준다.
우리나라 한의학계의 본산격인 경희대 한의대에서 1964년 부터 약 11년간 교수생활을 한 바 있는 권원장이지만 그는 사실 대학이나 기관에서 한의학을 체계적으로 배운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 한의학을 공부, 마침내 한의사 자격검정시험(지금은 이 제도가 없다)을 통해 한의사가 된 사람이다.
어렸을 때 그는 이상한 체질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설날이나 제삿날만 되면 배가 아팠다는 것.
병원에 가보아도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하지만 늘 배탈로 맛난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자신은 고기만 먹으면 병이 나는 체질이었다.
왜 고기만 먹으면 병이 나는 것일까? 이같은 의문을 지닌 그는 그때부터 많은 의사를 찾았지만 어느 누구도 시원한 답을 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고기만 먹으면 탈이 나는 타고난 체질이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한의학을 접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바로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준비를 하던 중 눈병이 나서 앞을 잘 보지 못하게 된 일이다. 의사들을 두루 찾았지만 낫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의 병을 스스로 고치겠다고 마음먹은 그는 한의학 서적을 뒤적이며 연구하다 체질의학을 알게 되었고 마침내 10년의 각고 끝에 자신의 눈병을 완치한 것은 물론 새로운 체질의학의 세계에도 눈 뜬 것이다.
올해가 고희하고도 2살이나 넘긴 노의사 권도원 원장. 그는 도무지 체질의학 연구와 환자의 치료외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30년 동안 오로지 체질의학만 연구해 왔으면서도 아직 완성되지 못하였다고 발표를 미루는 것도 그렇지만 이제는 쉴 때도 됐으련만 아직도 아침9시부터 저녁 7시까지 환자를 본다고 한다. 그리고 연구를 하느라 새벽2시를 넘기기 일쑤. 그러나 다음날이면 또 어김없이 일어나 환자들을 돌본다. 근처의 그 흔한 산책로조차 걸은 적이 없단다.
연구를 위해 교수직까지 그만두었다는 그는 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이 깨끗이 낫는 것을 보는 게 유일한 보람이자 삶의 즐거움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