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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중항쟁 38주년_진정한 참회
누가 18:9-14
9. 예수께서는 자기네만 옳은 줄 믿고 남을 업신여기는 사람들에게 이런 비유를 말씀하셨다.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는데 하나는 바리사이파 사람이었고 또 하나는 세리였다.
11. 바리사이파 사람은 보라는 듯이 서서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욕심이 많거나 부정직하거나 음탕하지 않을 뿐더러 세리와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12. 저는 일주일에 두 번이나 단식하고 모든 수입의 십분의 일을 바칩니다.' 하고 기도하였다.
13. 한편 세리는 멀찍이 서서 감히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오, 하느님! 죄 많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였다.
14. 잘 들어라. 하느님께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받고 집으로 돌아간 사람은 바리사이파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 세리였다.
오늘은 성령강림절이자 5.18 광주민중항쟁 38주년 추모주일입니다. 5.18민중항쟁은 3.1운동, 4.19혁명, 6.10민주항쟁, 촛불혁명과 함께 이 나라의 앞길을 열어 온 위대한 힘이었습니다. 이 힘으로 오늘 우리는 올해 봄, 남북평화의 시작을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5.18민중항쟁은 1979년 12.12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 신군부의 정권 장악 음모에서 비롯된 대 학살극입니다. 80년 봄, 온 국민의 민주화 열망이 뜨겁게 달아오르던 때 전두환 신군부는 전국적인 반독재 저항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상무 충정작전>, 일명 화려한 휴가라는 극악무도한 대국민 학살극을 전개합니다. 전두환은 국민저항에 맞서 5.17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광주에 북한군이 침입하여 폭동을 일으키고 있다며 공수부대를 투입, 무차별 학살로 민중항쟁을 유발시킨 것입니다.
5·18유족회의 집계에 따르면, 항쟁 당시 사망자는 166명, 행방불명은 65명이었다고 합니다. 부상했다가 숨진 사람은 400명이 넘습니다. 군경 사망자는 27명인데, 군인들끼리 벌인 오인전투 사망자가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계엄사령부는 2,500명이 넘는 시민과 대학생을 체포해 600명 이상을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저는 5.18을 온몸으로 경험한 세대의 한사람입니다. 5.18의 직접적 계기가 되었던 5.15 서울역 항쟁을 주도한 한 사람으로서 큰 아픔과 상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저의 친한 벗이었던 당시 서강대생 김의기 군을 생각하면 깊은 슬픔과 분노가 동시에 일어남을 어찌할 수 없습니다.
김의기 열사는 저와 감리교청년운동을 함께했습니다. 경북 영주 출신이었던 김의기 열사는 당시 감청과 EYC(한국기독교청년협의회)에서 농촌선교위원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80년 3월 EYC 농촌선교 사업 활동으로 김의기 열사는 전남지방을 오가며 농민 운동사를 정리하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80년 5월 19일 광주 북동성당에서 개최될 ‘함평 고구마 농민투쟁승리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광주에 내려왔다가 계엄군의 학살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당시 기독교 농민운동을 함께하던 윤기현 작가가 김의기 열사에게 광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상을 서울에 가서 알려달라고 설득하여 김의기 열사는 광주를 벗어납니다. 서울에 올라 온 열사는 NCC와 주변 사람들에게 광주의 참상을 전했고 ‘동포에게 드리는 글’을 썼습니다.
열사는 5월 30일 종로5가 기독교회관 2층에서 열리는 금요기도회에서 광주의 진상을 폭로하려 하였으나 군부의 저지로 기도회가 열리지 못하게 됩니다. 열사는 기독교회관 6층 EYC사무실에서 ‘동포에게 드리는 글’ 300장을 인쇄하여 뿌린 후 군부대 장갑차에 떨어져 숨지게 됩니다. 그의 죽음에 관한 진실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으나, 계엄군이 사무실로 들이닥치자 유인물을 뿌리고 장갑차 위로 떨어졌다고만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계엄군은 뿌려진 유인물을 수거하느라 열사의 죽음을 20여 분간 방치하였습니다.
김의기 열사는 모든 언론에서 광주를 북한군이 내려와 선동한 폭동으로 매도하고 있을 때 광주의 참상의 진실을 그의 죽음으로 처음으로 알린 분이었습니다.
열사는 그가 믿고 따르던 학교 선배에게 남긴 편지에서 그때의 심정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형, 오랜만이야. 손이 떨리고 가슴이 떨려 글을 쓸 수 있을지 모르겠네. KUSA(한국유네스코학생회) 이번 여름 농촌활동 토의 전국 지역 간부 모임 차 광주에 갔다가 우연히 5월 18일부터 23일까지 내가 광주의 참상(慘狀)을 목격하고 직접 찍은 사진들의 일부야. 그 군인들은 먹이를 쫓는 맹수처럼 남녀노소 상관없이 눈에 보이는 대로 때리고 차고 찌르고. 그들은 인간이 아니었어. 마치 정신병자들 같았어.
급기야 21일에는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총기 난사를 자행했어. 눈물 때문에 사진 못 찍고 사진기 옆에 놓고 펑펑 울었어. 거리는 피바다, 비명과 아수라장. 난 지금도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아. 형이 그 장면을 목격했더라면 아마 기절했을 거야. 난 지금 어찌할 바를 모르겠어. 가슴이 터질 것 같아. 광주의 실상을 알리는 언론 매체는 한 군데도 없어. '북의 지령을 받아 시위를 하는 거고 죽어가는 자들이 다 폭도며 남파 공작원들'이라 떠들고 있어...
나라도 서울 시민들에게 알려야 것 같아서, 24일 서울로 올라와서 사진 현상하고 전단지 초고를 만들자마자 형에게 달려 온 거야. 형의 조언 듣고 수정하고 많은 얘기 나누고 싶었는데...“
오늘 저는 성전에서 드리는 두 사람의 기도에 대한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을 본문으로 택했습니다.
두 사람이 기도하기 위해 성전에 올라갔는데, 한 사람은 바리새파 사람이었고 또 한 사람은 세리였습니다.
바리새파 사람은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저는 다른 사람들, 곧 도둑이나, 깡패나, 바람둥이나, 세리와 같은 사람이 아니기에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번이나 단식을 하고, 저는 모든 수입의 십분의 일을 바칩니다.’ 바리새인이 기도하는 모습은 매우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옆에 기도하고 있는 세리를 조롱하며 자신을 뻐기고 정당화 하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에 비해 세리가 기도하는 모습은 초라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세리는 고개를 푹 숙이고 성전 뒤쪽에 멀찍이 서서 가슴을 치며 ‘하나님, 죄인인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라는 기도를 합니다.
이 두 사람에 대해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받고 집으로 내려 간 사람은 바리새파 사람이 아니라 바로 이 세리였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든 살면서 잘못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거짓말도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사람다우려면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뉘우칠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거나 아니면 그 잘못을 감추려고 하거나, 아니면 적반하장으로 자신을 두둔한다면 그건 사람의 탈을 쓴 악마일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 시대의 세리들은 민중을 수탈하는 첨병들이었습니다. 당시 로마 정부는 세금 징수를 맡은 세리들에게 도급제로 권한을 부여했습니다. 도급제란 정해진 액수의 세금만 로마에 바치면 되는 제도입니다. 때문에 당시 세리들은 로마 정부가 요구하는 액수 이상의 세금을 거두어 자기 몫으로 착복하는 일이 많아 뭇 백성의 원성을 샀습니다.
한편, 세리들은 직업상 이교도와 자주 왕래함으로써 유대인들에게 부정한 자로 규정되었습니다. 또 로마의 하수인으로 낙인찍혀 반역자나 죄인들, 창기들, 이교도들과 같은 부류로 취급받았습니다.
이들 세리들은 당시의 제사장이나 바리새인들로부터 조롱과 비난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생활은 부유하였더라도 늘 부끄러움으로 가득 찬 나날을 보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시대의 바리새인들의 모습은 어떠했을까요? 율법주의와 선민사상으로 무장한 당시 바리새인들은 그 선조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로마제국에 대항하지 못하고 적당히 권력에 아부하며, 율법을 팔아 호의호식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는 전혀 다른 이중적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예수님 눈에는 회칠한 무덤같이 보였던 것입니다.
세리와 바리새인 이 둘의 차이가 무엇이기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기도드리는 두 부류 중 세리가 하나님 앞에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받았다고 했을까요?
그것은 바리새인과 달리 세리는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고 회개하였기 때문입니다.
광주 학살의 주범인 전두환이 지난해 4월 광주 항쟁의 실상을 왜곡하고 시민군을 모독하는 내용을 담은 회고록은 발간해 국민의 공분을 샀습니다. 전두환은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합니다.
"계엄군이 시민들을 학살해 암매장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무장시위대가 광주교도소를 집요하게 공격한 목적은 북한 지령을 받고 미전향장기수 등을 해방하여 폭동을 일으키려는 것이었다."
"계엄군과 시위대의 충돌은 무장한 시민군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한 공수부대의 자위권 발동이었다."
"나는 광주에서 진행되는 작전상황과 관련해 조언이나 건의를 할 수조차 없었다."
회고록 발간 이후 광주의 진실규명과 전두환 처벌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크게 일어났습니다. 계엄군이 무고한 시민들을 살육했다는 증언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공중에서 헬기가 조준사격을 했으며, '광주 출격'을 위해 몇몇 공군기지에서 전투기들이 대기명령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당시 광주 505보안부대 핵심 수사관으로 일했던 허장환(70)씨는 전두환이 광주 발포명령의 장본인이라고 증언하였습니다.
그는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광주를 다녀간 뒤 그날 밤 자위력 행사라는 미명하에 발포명령이 내려졌다는 말을 상관인 S중령에게 직접 전해 듣고 실탄 무장 지시를 받았고 실제 실탄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연합뉴스 5월 16일자).
광주항쟁 38주년을 맞는 이 시점에 우리는 '광주 민중 학살 주동자 처벌을 위한 특별법'을 꼭 제정해 전두환과 노태우, 장세동 등 핵심 범죄자들을 단죄해야 하겠습니다.
광주학살 책임을 빼더라도 전두환은 사실 아직까지 감옥에 있어야 할 범죄자입니다. 이미 1996년 1월 14일, 내란 및 반란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되어 8월 26일 서울지방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12월 16일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고 이듬해 4월 17일 대법원의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의 죄명은 이렇습니다.
"반란 수괴, 반란모의 참여, 반란 중요임무 종사, 불법진퇴, 지휘관계엄지역이탈, 상관살해 미수, 초병살해, 내란 수괴, 내란모의 참여, 내란목적 살인,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 등. 이런 범죄자가 2년 만에 사면되어 거리를 활보하며 후안무치한 짓을 저지르고 있으니 통탄할 노릇입니다.
만일 전두환과 노태우가 사면되지 않고 지금까지 감옥에서 처벌을 받고 있다면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적폐청산은 많이 진전되었을 것입니다. 회개하지도 않고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자신들을 정당화시키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자들을 철저히 단죄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 민중들은 해방 후 지금까지도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성전에서 죄책을 고백하는 세리처럼 우리의 죄책을 먼저 고백하고 참회해야 합니다.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죄, 일본 대신 미국에 기대어 동족을 적대시하고 악마화 한 죄, 경제 성장이라는 욕망에 휩싸여 독재와 자본에 굴복한 죄....
진실된 참회가 새 세상을 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우리 역사의 변화를 위해 함께 노력하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광주 학살을 목도하고 가장 먼저 죽음으로 세상에 그 참상을 알린 김의기 열사가 유언처럼 남긴 동포에게 드리는 글을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동포에게 드리는 글>
"피를 부르는 미친 군홧발 소리가 우리가 고요히 잠들려는 우리의 안방까지 스며들어 우리의 가슴팍과 머리를 짓이겨 놓으려고 하는 지금. 동포여, 무엇을 하고 있는가?
동포여,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보이지 않는 공포가 우리를 짓눌러 우리의 숨통을 막아 버리고 우리의 눈과 귀를 막아 우리를 번득이는 총칼의 위협 아래 끌려 다니는 노예로 만들고 있는 지금. 동포여, 무엇을 하고 있는가?
동포여,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무참한 살육으로 수많은 선량한 민주 시민들의 뜨거운 피를 오월의 하늘 아래 뿌리게 한 남도의 공기가 유신 잔당들의 악랄한 언론탄압으로 왜곡과 거짓과 악의에 찬 허위선전으로 분칠해지고 있는 것을 보는 동포여,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20년 동안 살벌한 총검 아래 갖은 압제와 만행을 자행하던 박 유신 정권은 그 수괴가 피를 뿌리며 쓰러졌으나, 그 잔당들에 의해 더욱 가혹한 탄압과 압제가 이루어지고 있다. 20년 동안 허위적 통계 숫자와 사이비 경제 이론으로 민중의 생활을 도탄에 몰아넣은 결과를, 우리는 지금 일부 돈 가진 자와 권력 가진 자를 제외한 온 민중이 받는 생존권의 위협이라는 것으로 똑똑히 보고 있다.
유신 잔당들은 이제 그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공포와 불안에 떨면서 개처럼 노예처럼 살 것인가? 아니면 높푸른 하늘을 우러르며 자유 시민으로서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시며 환희와 승리의 노래를 부르며 살 것인가? 또다시 치욕의 역사를 지속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후손들에게 자랑스럽고 떳떳한 조상이 될 것인가?
동포여, 일어나라. 마지막 한 사람까지 일어나라! 우리의 힘을 모아 싸워 역사를 정방향에 서게 하자. 우리는 이긴다. 반드시 이기고야 만다.
동포여, 일어나라! 유신 잔당의 마지막 숨통에 결정적 철퇴를 가하자.
일어나라! 동포여!
매일 정오 서울역 광장에 모여 오늘의 성전에 몸 바쳐 싸우라! 동포여!“
새 세상을 꿈꾸며 부족하지만 예수님의 뒤를 따르려는 저와 여러분들 가운데 주님의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018. 5.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