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와민족은 19일 오전 9시부터 효창공원 백범기념관 앞에서 10여명의 회원이 참가한 가운데 효창공원을 민족성지로 조속히 조성할 것 것을 요구하는 촉구집회를 열었다. 집회에는 월남참전 안양지회 장거리정찰대 김동학 지회장과 대원이 함께 참여하였고 4.19유족회 백윤선 고문,그리고 전우와민족회원들이 참여하였다.
피켙홍보를 마친 후 김구선생의 묘소로 이동하여 비가내리는 와중에도 참배를마치고 약식 행사를 진행하였다. 먼저 효창공원에 대한 대략적인 소개와 함께 전우와민족 박동석 회장님의 말씀이 이어졌다.
공원의소개
이곳 효창공원은 일직이 영조대왕의 뒤를 이어 즉위하신 정조대왕의 맏아들 문효세자가 5살이 되어 홍역으로 돌아가시자 이곳에 묘소를 만들었던 곳입니다. 이곳 효창원의 봉분을 멀리서 보면, 마치 무지개를 쌓아올린 것처럼 보였다하여 홍예분(紅霓墳)으로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원래는 효창원으로, 정조의 큰 아들인 문효세자와 그의 어머니 의빈 성씨· 순조의 후궁인 숙의 박씨· 숙의 박씨의 자녀인 영온공주의 무덤이 있었던 곳입니다만 일제가 1924년 6월에 효창원의 일부를 공원으로 개발하고, 패망 직전인 1945년 3월에는 문효세자 이하의 무덤을 모두 고양시에있는 서삼릉 경내로 옮김에 따라 효창원은 사실상 유명무실한 일반공원으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광복과 더불어 환국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인 백범(白凡) 김구(金九)선생은 조국 광복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 이봉창(李奉昌), 윤봉길(尹奉吉), 백정기(白貞基) 의사(義士)의 유해와 안중근(安重根)의사의 가묘(假墓)를 1946년 7월 효창공원의 중심지에 국민장(國民葬)으로 안장하는 일을 주도적으로 하셨고 이후 1948년 9월에는 중국 땅에서 순국한 임시정부 의장과 주석을 지낸 이동녕(李東寧), 국무원비서장(國務院秘書長)을 지낸 차이석(車利錫), 군무부장(軍務部長)을 역임하고 귀국 후 서거하신 조성환(曺成煥)님을 공원 동남쪽 언덕에 안장하였습니다. 1949년 6월에는 김구 선생님이 흉탄에 쓰러지자 국민장으로 공원 서북쪽 언덕에 모셔져 효창원은 새로운 민족공원의 위상으로 새롭게 거듭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서울근교는 물론이고 멀리 지방에서도 올라와 이곳에 참배하는 참배객들이 줄을 이었으나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대통령 재임시에는 상해 임시정부의 정통성이 여러 가지 정치적인 이유로 부정되었고, 선열들의 고귀한 정신까지 그 빛을 발하지 못하였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야밤에 이곳을 찾아 몰래 참배하고 돌아가는 애국지사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고, 이곳을 민족 성역화하자는 선각자들의 목소리는 줄어들지 않았으며, 이곳 효창공원은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현제에 이르고 있습니다. 골프장이 들어설 뻔 하기도 했고, 아시아축구대회 유치를 이유로 효창운동장이 만들어졌으며, 1972년에는 서울시에서 효창공원 조경공사를 한다며 공원출입을 금지하는가하면 수만그루의 나무를 잘라내고 땅을 파헤치기도 했습니다. 현제는 보시는바와 같이 이곳저곳에 갖가지 시설물들이 들어서서 이곳이 마치 체육공원 내지는 야유회장처럼 변모하고 말았습니다. 소개를마친 후 박동석 회장님의 행사를 여는말씀이 이어졌다.
박동석회장
바쁘신 와중에도 이렇게 참석해주신 각 단체와, 내빈여러분들의 충심에 경의를 표하며,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이렇게 여러 전우동지들과 애국지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구국을 말하고, 애국을 논할 수 있게 된 것은, 자신의 목숨보다 이 나라와 민족을 아끼신 선열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 이며 이곳에 모인 여러분들 또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 누구보다도 크기 때문일 것 입니다. 저 역시 조국의 부름을 받아 베트남에 두 번씩 참전하였던 몸이고, 지독한 고엽제로 인하여 반평생을 내 몸과 싸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만, 이 나라와 조국에게 원망을 해 본적이 없었고, 그저 이러한 지독한 고엽제를 만든 회사와 고엽제피해전우에 대해 응당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정치권에 대해서는 실망을 감출수가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더군다나 이곳 효창공원에 모셔진 임정요인들의 영면장소가 이렇듯 훼손되고 있다는 사실 앞에 또 한번 실망을 감출수가 없습니다. 저 아래 보이는 저곳이 작년에 저희 전우회가 임시로 사용하던 전우회관이 있었던 곳입니다. 그러나 개발을 앞세운 구청의 건축과장 지시로 본인은 젊은 경찰들에게 허리를 꺾이우고, 전우회관의 집기와 문서는 강탈당한 체 쫏겨나야 했습니다. 몇몇 전우들이 급하게 달려왔으나 역부족이었고, 본인은 참으로 울분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울분을 금할 수 없는 상황이 현제도 진행 중입니다. 전우동지들의 오랜 선배요! 정신적 지주요! 이 나라의 조국광복을 위하여 저 중국땅에서 서러운 눈물을 삼키며 싸우셨던 그분들이 이렇듯 숭앙받지 못하고, 그저 한철에 잠깐 기념식을 치르는 것만으로 후손의 역할을 다 한 것처럼 대접받는 현실에 다시 한번 울분을 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찌보면 현제의 우리 전우들의 처지와 다를바가 없어 보입니다.
이제라도 우리 전우들이 나서서 이곳을 지켜내고, 독립군의 후계자인 대한민국의 참전 전우들이 나서서, 이곳을 민족성지공원으로 조성하여야 할 책임이 있을 것입니다.
전우동지여러분? 애국지사 여러분 ? 위대한 대한민국의 대 선배전우요 민족 지사이셨던 이곳 효창성지에 영면하신 분들의 거룩한 뜻이, 세세토록 후대에 물려지도록 힘을 합하여야 할 것입니다. 오다가다 아무나 들어와 음주가무를 즐기고 강아지나 산책시키는 그런 장소가 아니라는 걸 알려야 할 것입니다. 백범기념관 또한 아무나 들어와서 정치판 싸움을 벌이는곳이 아니란 사실도 인식시켜야 할 것입니다. 이상으로 말씀을 마칠까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