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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공광규, 다섯 번째 시집 <말똥 한 덩이> 펴내 | |||||||||||||||||||||||||||||||||||
청계천 관광마차를 끄는 말이 광교 위에 똥 한 덩이를 퍽! 싸놓았다 인도에 박아놓은 화강암 틈으로 말똥이 퍼져 멀리멀리 뻗어가고 있다 자세히 보니 잘게 부순 풀잎 조각들 풀잎이 살아나 퇴계로 종로로 뻗어가고 무교동 인사동 대학로를 덮어간다 건물 풀잎이 고층으로 자라고 자동차 딱정벌레가 떼 지어 다닌다 전철 지렁이가 땅속을 헤집고 다니고 사람 애벌레가 먹이를 찾아 고물거린다
-35쪽, '말똥 한 덩이' 모두
1980년 광주학살로 일어선 전두환 신군부가 민주주의를 외치는 국민들 앞에 독재의 총부리를 겨누고 있었던 저 암울했던 1980년대. 민족민중문학을 둥지로 삼고 '실천'문학의 길을 걸었던 참여문단에는 이른 바 '3Q'로 불리는 시인 3명이 있었다. 이름 끝에 '규'자가 붙어 있어 'Q'로 통한 시인 공광규, 이원규, 양문규가 그들이다.
이들 세 시인에게 3Q란 닉네임이 붙은 것은 단순히 이름 끝에 '규'가 붙어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밤새 안녕!'이란 말이 있듯이 그때는 하룻밤 자고 나면 시인 작가들이나 재야인사들이 숱하게 안기부로 끌려가곤 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공안정국에 따른 성명서를 내야 하고, 가투를 밥 먹듯이 벌여야 할 때였다.
Q란 시작을 알리는 신호이다. 그때 Q란 신호를 보내면(전화를 걸면) 누구보다 가장 먼저 달려온 시인들이 이들이다. 이들은 최루탄이 뒤덮인 도심에서 벌어지는 가투를 비롯해 밤샘농성 등 여러 가지 행사에 온몸으로 참여했다. 이들 세 시인들에게 잔심부름을 시키면 두말없이 다녀오곤 했다. 이들 세 시인에게 3Q란 닉네임이 붙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 한가운데 공광규 시인이 있었다. 언짢은 일이 있어도 웃음으로 받아 넘기고, 문단 어르신들이 궂은 일을 시켜도 웃음으로 해내는 시인이 공광규였다. 사람이 너무 좋아 어떤 신호를 내려도 곧바로 행동으로 들어가는 시인이 공광규였다. 때문에 공 시인이 없는 참여문단은 '앙코 없는 진빵'이나 다름없을 정도였다.
한 숟가락의 밥은 얼마나 정치적인가
"인생의 문제는 먹는 것과 사랑하는 것이라고 서슴없이 말하고 싶다… 밥 한 숟가락을 푹 떠서 입에 넣기 전에 밥숟가락을 쳐다보자. 한 숟가락의 밥은 얼마나 정치적인가. 그 쌀값의 단위가 어디서 결정되는가. 농민들은 왜 벼를 불태우고 소를 끌고 여의도로 진격하고, 할복을 하는가. 시인이 사회정치적 호흡을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인의 산문 '양생의 시학' 몇 토막
정치, 사회, 현실의 모순을 꼬집는 시를 줄기차게 써온 시인 공광규(48)가 1986년 <동서문학>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한지 22년 만에 다섯 번째 시집 <말똥 한 덩이>(실천문학사)를 펴냈다. 이번 시집에는 시래기 한 웅큼, 무량사 한 채, 아내 등 도심 속에서 살아가는 사물과 시인 자신의 이야기, 사찰, 고향 이야기가 살가운 눈빛을 튕기고 있다.
시래기 한 웅큼에 코를 부비는 것이 그리움이 아닌 절도가 되어버리는 도시 소시민 얼굴에 비친 비애를 그린 제1부 '몸관악기'(16편), 도심 속 사물과 기억 속 사물을 통해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 제2부 '미루나무 붓글씨'(19편), 어머니 죽음과 폐허가 되어버린 고향 풍경을 담은 제3부 '체온'(16편)에 실린 51편의 시가 그것.
시인 공광규는 "나의 미천한 시력을 돌아보니 양생을 위한 시 쓰기였다. 무릇 시뿐이겠는가? 모든 예술 활동이 양생을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말한다. 그는 "시가 사람의 삶에 재미와 감동과 이익을 주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수천 년 동안 생명력을 유지해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그래, 그리움을 훔쳤다, 이 개새끼야!"
빌딩 숲에서 일하는 회사원이 파출소에서 경찰서로 넘겨졌다 점심 먹고 식당 골목을 빠져 나올 때 담벼락에 걸린 시래기 한 웅큼 빼서 코에 부비다가 식당 주인에게 들킨 것이다 "이봐, 왜 남의 재산에 손을 대!" 반말로 호통치는 식당 주인에게 회사원은 미안하다 사과했지만 막무가내 식당 주인과 시비를 벌이고 멱살잡이를 하다가 파출소까지 갔다
-13쪽, '시래기 한 웅큼' 몇 토막
이 시는 산골 출신 샐러리맨이 점심을 먹은 뒤 골목길을 빠져나오다가 어느 식당 담벼락에 걸려 있는 시래기를 보고 고향 생각이 나 한 웅큼 뽑아 냄새를 맡다가 못된 식당주인과 실랑이를 벌이며 파출소로 간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 시가 여기에서 그쳤다면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한 시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이 시가 읽는 이 마음을 찡하게 울리는 것은 그 다음 구절부터이다. 샐러리맨과 식당 주인은 파출소에 가서도 경찰과 동료들 화해 노력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실랑이를 벌인다. 왜? 식당 주인이 "그동안 시래기를 엄청나게 도둑맞았다"며 절도죄를 내세워, 그 샐러리맨의 "한 달치 월급이 넘는 합의금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샐러리맨은 단단히 화가 났다. 식당 주인의 야박한 인심이 너무나 얄미웠다. 그보다 "더러운 도심의 한가운데서 밥을 구하는 자신에게 화가 났다". 샐러리맨은 경찰이 보는 앞에서 "미운 인심"에게 주먹을 날린다. "그래, 그리움을 훔쳤다, 이 개새끼야!"라며. 샐러리맨은 그 길로 경찰서에 넘겨져 유치장에 갇히고 만다.
샐러리맨은 그 유치장에서 선잠에 들어 흙벽에 매달린 시래기를 본다. 그 시래기는 "늙은 어머니 손처럼 오그라들어 부시럭거리"고 있다. 이러한 도시 소시민들이 느껴야 하는 비애를 그린 시는 이 한 편뿐만이 아니다. "굴욕의 나이를 참아야 한다고"(몸관 악기), "고기반찬이 가득한 늦은 저녁 밥상머리에는 / 아들도 딸도 아내도 없습니다"(얼굴반찬), "나를 얼른 패 죽여야 한다"(거짓말), "평생 허물을 입고 산다"(허물) 등에서도 잘 드러난다.
누가 꽉 차 있었던 아내 속을 다 파먹었을까
아내를 들어 올리는데 마른 풀단처럼 가볍다
수컷인 내가 여기저기 사냥터로 끌고 다녔고 새끼 두 마리가 몸을 찢고 나와 꿰맨 적이 있다
먹이를 구하다가 지치고 병든 컹컹 우는 암사자를 업고 병원으로 뛰는데
누가 속을 파먹었는지 헌 가죽부대처럼 가볍다.
-20쪽, '아내' 모두
공광규 시인 아내는 젊은 때 참 예쁘고 날씬했다. 글쓴이가 지금은 "헌 가죽부대"처럼 가벼운 시인 아내를 처음 본 것은 시인 아내가 시인과 결혼하기 전, 처녀 때였다. 그때 시인은 인사동에서 문인들과 술좌석이 벌어질 때면 가끔 그 처녀를 불러내곤 했다. 서글서글한 눈매에 인상이 참 좋은 처녀였다.
그런 꽃처럼 예쁘고, 풍선처럼 탱글탱글했던 처녀가 시인과 결혼을 하고, 자식 둘 낳아 기르면서 아등바등 먹고 살기 위해 발버둥 치다가 그만 골병(?)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때 시인은 아픈 아내를 서둘러 병원에 옮기기 위해 안아 든다. 근데, "아내 몸이 마른 풀단처럼 가볍다". "헌 가죽부대처럼 가볍다".
시인은 자책한다. 누가 꽉 차 있었던 아내 속을 다 파먹었을까. 누가 아내를 이토록 지쳐 병들게 만들었을까. 그 범인은 세월도 아니요, 아내 자신도 아니요, 시인 자신이라는 것이다. 가난한 시인에게 시집을 오지 않았더라면 아내가 이처럼 속을 다 갉아 먹히지도 않았을 것이고, 지쳐 병들지는 않았을 게 아닌가.
서글프다. 사실, 글쓴이도 사업에 실패하면서 아내 속을 무던히도 많이 갉아먹었다. 지금도 마지막 남은 아내 속을 갉아먹으며 살아가고 있다. 글쓴이에게 속을 갉아 먹히고 있는 40대 중반을 훌쩍 넘긴 아내는 점점 가벼워지며 점점 지쳐가고 있다. 이는 가난한 시인 가정뿐만이 아니다. 이 나라 모든 서민들 아내 또한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강은 얼굴을 고치며 가는 수억 장 거울이다
강물은 몸에 하늘과 그름과 산과 초목을 탁본하는데 모래밭은 몸에 물의 겸손을 지문으로 남기는데 새들은 지문 위에 발자국 낙관을 마구 찍어대는데 사람도 가서 발자국 낙관을 꾹꾹 찍고 돌아오는데
-56쪽, '놀란 강' 몇 토막
이 시는 대자연을 사람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욕심 많은 개발지상주의자들에게 날리는 경고장이다. 우리 지형에 맞지도 않는 한반도 대운하와 같은 무분별한 개발정책 때문에 강마저 너무 놀라 파랗게 질려 있다는 것이다. "사람도 가서 발자국 낙관을 / 꾹꾹 찍고 돌아오는" 그 강은 "수 천리 화선지"이자 "수만 리 비단"이다.
한반도 대운하로 언제 찢겨나갈지 모르는 그 강은 "해와 달과 구름과 새들이 / 얼굴을 고치며 가는 수억 장 거울"이다. "갈대들이 하루 종일 시를 쓰는 / 수십억 장 원고지"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들은 제 욕심만 채우기 위해, 일자리 창출이라는 그럴 듯한 명분을 내세워 생명의 강을 죽이려 하고 있다.
강이 죽으면 환경 대재앙이 올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이는 글쓴이가 어릴 때 겪었던 일이기도 하다. 글쓴이가 태어나 자란 마을에는 도랑이 배암처럼 꾸불거리며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비가 많이 와도 홍수는 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도랑을 일직선으로 바꾸는 공사를 한 뒤부터 비만 오면 홍수가 나곤 했었다.
공광규 다섯 번째 시집 <말똥 한 덩이>는 문명이라는 이름 아래 껍데기만 화려한 도시 심장부를 향해 쏘아대는 시의 최루탄이다. 퇴비값도 나오지 않는 쌀 수매가 채소값에 피땀 찢기고, 쌀 직불금 미국산 수입 쇠고기에 피멍 맺힌 농촌 사람들, 무너지고 사라져가는 고향 앞에 올리는, 양생을 위한 고사상이다.
시인은 도시 소시민과 농민, 사람과 삼라만상을 따스하게 어루만지며 서로 살갑게 이어주는 파수꾼이다. 공광규 시인 시가 '시가 죽은 사회, 시집이 팔리지 않는 불행한 시대'에서도 더욱 독특하고도 찬란한 빛이 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부디 화엄의 시세계를 일구어 이 땅 구석구석에 드리워진 그늘을 밝히는 사리가 되길.
시인 도종환은 "좋은 시는 어렵지 않다. 좋은 시는 인간 존재의 유한함과 모슨 앞에 정직하고 진솔하다. 공광규의 시가 그렇다"고 말한다. 도종환은 "공광규는 상처와 아픔을 불교적 서정으로 덮는 내공도 깊을 뿐 아니라 흔들렸다가는 다시 수평으로 돌아오는 수면처럼 평상심을 유지하는 사유의 눈으로 대상을 바라볼 줄 아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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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 시집을 보고 절필하고 싶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孔을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으니 사는 것도 시 쓰는 것도 다 거지같다고, 부질없는 짓이라고 절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말똥 한 덩이' 안주로 술만 내리 내리 푸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공광규 시인께 연락을 좀 해주세요. 사람 하나 베리겠습니다.
"나를 살리기 위해 시에 매달려 있다"..느낌표! 천 개쯤 찍고 싶습니다.
선생님들!, 아직 아내의 속은 다 파먹지 않았겠지요. 어때요. 큐라인. 강라인.임라인.전라인.성라인.김라인.나라인.박라인.....
매섭네요,
3Q시대..정말 멋있습니다..수천 리의 화선지..수억 장의 거울 같은.. 시의 강물을 보고 갑니다.
좋은 정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