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飮酒 (음주) : 술을 마시며
陶淵明 (도연명)
結廬在人境 (결려재인경) : 속세에 오두막을 짓고 살아도
而無車馬喧 (이무거마훤) : 수레와 말 왔다갔다 하는 시끄러운 소리 하나 없구나
問君何能爾 (문군하능이) : 그대에게 묻노니 어찌하면 그럴 수 있는가
心遠地自偏 (심원지자편) : 마음이 세속에서 멀어지니 꼭 외딴 곳에 사는 것만 같노라
採菊東籬下 (채국동리하) : 동쪽 울타리 아래에서 국화를 따며
悠然見南山 (유연견남산) : 유유자적 남산을 바라본다
山氣日夕佳 (산기일석가) : 산의 자태는 석양 빛 속에 아름답기 그지없고
飛鳥相與還 (비조상여환) : 날아다니는 새들도 서로 함께 둥지로 돌아가네
此中有眞意 (차중유진의) : 이러한 모습 속에 삶의 진정한 의미가 있는데
欲辨已忘言 (욕변이망언) : 그것을 표현하려 해도 할 말을 잊어 어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한자독음 참고] : http://worldfox.com.ne.kr/gamsang/dl/gam89.htm
도연명의 <음주(飮酒)> 시는 본래 총 20수로 된 모음시로서 시문(詩文) 앞에는 간략한 서문(序文)이 포함되어 있다. 이 모음시 <음주(飮酒)>는 도연명이 20수 전체를 한번에 다 쓴 게 아니라 그때 그때 술을 마시며 즉흥적으로 쓴 것이기 때문에 각각의 시 내용이 서로 독립적이다. 윗 시는 그 중 다섯번 째 시로서 전체 <음주(飮酒)>시 중 가장 유명한 시이다. 특히, "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동쪽 울타리 아래에서 국화를 따며 유유자적 남산을 바라본다)"라는 구절이 유명하다.
[출처] 陶淵明 《飮酒》 (도연명 <음주>시)|작성자 방랑자
도연명 귀거래사
많은 분들께서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해석해 주셨는데
저는 도연명은 중국사람이라서 중국 사이트에 가서
중국사람들이 해놓은 해석을 가지고 번역해보았습니다...
거의 직역과 의역을 섞었지만 직역이 더 많구요
도움이 되셨음 좋겠네요^-^
보라색과 초록색은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보실 수 있는 해석이구요
그 아래 두줄은 중국어와 제가 해 놓은 번역입니다
歸去來辭(귀거래사) 陶淵明(도연명)
歸去來兮 귀거래혜
자, 돌아가자.
回去吧,
돌아가자
田園將蕪胡不歸 전원장무호불귀
고향 전원이 황폐해지려 하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田园快要荒芜了,为什么还不回!
전원이 황폐해 지려는 데 어찌 아직 돌아가지 않는가
旣自以心爲形役 기자이심위형역
지금까지는 고귀한 정신을 육신의 노예로 만들어 버렸다.
既然自认为心志被形体所役使,
정신이 육체의 노예가 되어버렸다 해도
奚而獨悲 해추창이독비
어찌 슬퍼하여 서러워만 할 것인가.
又为什么惆怅而独自伤悲?
또 어찌하여 혼자 걱정하고 슬퍼하고 있는가
悟已往之不諫 오이왕지불간
이미 지난 일은 탓해야 소용 없음을 깨달았다.
认识到过去的错误已不可挽救
지난 과거의 잘못을 탓해야 돌이킬 수 없고
知來者之可追 지래자지가추
앞으로 바른 길을 쫓는 것이 옳다는 것을 깨달았다.
知道了未来的事情尚可追回
미래의 일을 아직 쫓을 수 있음을 알았다
實迷塗其未遠 실미도기미원
내가 인생길을 잘못 들어 헤맨 것은 사실이나, 아직은 그리 멀지 않았다.
实在是误入迷途还不算太远
진정으로 길을 헤메었지만 아직 멀리 가진 않았다
覺今是而昨非 각금시이작비
이제는 깨달아 바른 길을 찾았고, 지난날의 벼슬살이가 그릇된 것이었음을 알았다.
已经觉悟到今天“是”而昨天“非”。
이제야 오늘이 맞고 어제가 틀렸음을 깨달았다
舟遙遙以輕 주요요이경양
배는 흔들흔들 가볍게 흔들리고
归舟轻快地飘荡前进,
배는 경쾌하게 흔들흔들 전진하고
風飄飄而吹衣 풍표표이취의
바람은 한들한들 옷깃을 스쳐가네,
微风徐徐地吹动着上衣
바람은 한들한들 옷깃을 스친다
問征夫以前路 문정부이전로
길손에게 고향이 예서 얼마나 머냐 물어 보며,
向行人打听前面的道路,
길손에게 앞의 길을 물어보니
恨晨光之熹微 한신광지희미
새벽빛이 희미한 것을 한스러워한다.
恨晨光还是这样微弱迷离
새벽빛이 아직도 희미하다
乃瞻衡宇 내첨형우
마침내 저 멀리 우리 집 대문과 처마가 보이자
望见家乡的陋屋,
고향의 집(좋지 않은 집)이 보여
載欣載奔 재흔재분
기쁜 마음에 급히 뛰어갔다.
我高兴得往前直奔。
나는 기쁘게 앞으로 뛰어갔다
僮僕歡迎 동복환영
머슴아이 길에 나와 나를 반기고
童仆欢喜地前来迎接,
머슴이 나와 나를 환영하고
稚子候門 치자후문
어린 것들이 대문에서 손 흔들어 나를 맞는다.
幼儿迎候在家门
어린아이가 대문에서 나를 맞는다
三徑就荒 삼경취황
뜰 안의 세 갈래 작은 길에는 잡초가 무성하지만,
庭院小路虽将荒芜,
뜰안의 작은 길은 황폐하지만
松菊猶存 송국유존
소나무와 국화는 아직도 꿋꿋하다.
却喜园中松菊还存。
희원의 소나무와 국화는 아직도 그곳에 있다
携幼入室 휴유입실
어린 놈 손 잡고 방에 들어오니,
我拉着幼儿走进内室,
내가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가니
有酒盈樽 유주영준
언제 빚었는지 항아리엔 향기로운 술이 가득,
屋里摆着盛满酒的酒樽。
방안에는 술이 가득 찬 술 항아리가 놓여져 있다
引壺觴以自酌 인호상이자작
술단지 끌어당겨 나 스스로 잔에 따라 마시며,
拿过酒壶酒杯来自斟自饮,
술 단지를 가져와 스스로 잔에 따라 마시며
眄庭柯以怡顔 면정가이이안
뜰의 나뭇가지 바라보며 웃음 짓는다.
看着庭院里的树枝真使我开颜。
뜰안의 나뭇가지를 바라보니 정말 기쁘도다
倚南窓以寄傲 의남창이기오
남쪽 창가에 기대어 마냥 의기 양양해하니,
靠着南窗寄托着我的傲世情怀,
남쪽 창가에 몸을 기대어 의기양양해 하니
審容膝之易安 심용슬지이안
무릎 하나 들일 만한 작은 집이지만 이 얼마나 편한가.
觉得身居陋室反而容易心安。
이 작은 집(좋지 않은 집)에 도리어 편안함을 느낀다
園日涉以成趣 원일섭이성취
날마다 동산을 거닐며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본다.
天天在园子里散步自成乐趣,
날마다 뜰을 거님을 기쁨으로 삼고
門雖設而常關 문수설이상관
문이야 달아 놓았지만 찾아오는 이 없어 항상 닫혀 있다.
尽管设有园门却常常闭关。
뜰에 문은 달아놓았건만 늘 닫혀있다
策扶老以流憩 책부노이류게
지팡이에 늙은 몸 의지하며 발길 멎는 대로 쉬다가,
拄着手杖或漫步或悠闲地随处休息,
지팡이를 의지하거나 천천히 몸 닿는 곳으로 가 휴식을 취한며
時矯首而遐觀 시교수이하관
때때로 머리 들어 먼 하늘을 바라본다.
不时地抬起头来向远处看看。
때때로 고개를 들어 멀리 바라본다
雲無心以出岫 운무심이출수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를 돌아 나오고,
云烟自然而然地从山洞飘出,
구름은 산 골짜기에서 자연스레 나오고
鳥倦飛而知還 조권비이지환
날기에 지친 새들은 둥지로 돌아올 줄 안다.
鸟儿飞倦了也知道回还。
새들은 날기에 지쳤어도 둥지로 돌아올 줄 안다
影翳翳以將入 영예예이장입
저녁빛이 어두워지며 서산에 해가 지려 하는데,
日光渐暗太阳将快要下山,
햇빛이 어두어지고 해가 지려 한다
撫孤松而盤桓 무고송이반환
나는 외로운 소나무를 어루만지며 서성이고 있다.
我抚摸着孤松而流连忘返。
나는 소나무에 기대어 돌아가는 것을 잊었다
歸去來兮 귀거래혜
돌아왔노라.
回去吧,
돌아가자
請息交以絶遊 청식교이절유
세상과 사귀지 않고 속세와 단절된 생활을 하겠다.
我要断绝与外人的交游。
세상사람들과의 사귐을 끊겠다
世與我而相違 세여아이상위
세상과 나는 서로 인연을 끊었으니,
既然世俗与我乖违相悖,
나는 세속과의 인연을 등지었으니
復駕言兮焉求 복가언혜언구
다시 벼슬길에 올라 무엇을 구할 것이 있겠는가.
我还驾车出游有什么可求?
다시 가마에 올라(벼슬에 올라) 구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悅親戚之情話 열친척지정화
친척들과 정담을 나누며 즐거워하고,
亲戚间说说知心话儿叫人心情欢悦,
친척들과 정담을 나누니 진실로 마음이 즐겁구나
樂琴書以消憂 낙금서이소우
거문고를 타고 책을 읽으며 시름을 달래련다.
抚琴读书可藉以解闷消愁。
거문고를 타고 책을 읽으며 답답함과 걱정을 달랜다
農人告余以春及 농인고여이춘급
농부가 내게 찾아와 봄이 왔다고 일러 주니,
农人们告诉我春天已经来临,
농부들이 나에게 봄이 이미 왔음을 알려준다
將有事於西疇 장유사어서주
앞으로는 서쪽 밭에 나가 밭을 갈련다.
我将要到西边去耕耘田亩。
나는 서쪽으로 가서 논밭을 갈련다
或命巾車 혹명건차
혹은 장식한 수레를 부르고,
有的人驾着篷布小车,
어떤이는 천으로 둘러싼 수레를 끌고
或棹孤舟 혹도고주
혹은 한 척의 배를 저어
有的人划着一叶小舟。
어떤이는 작은 배를 젓고
旣窈窕以尋壑 기요조이심학
깊은 골짜기의 시냇물을 찾아가고
时而沿着婉蜒的溪水进入山谷,
굽이굽이 깊은 골짜기 시냇물 따라 산으로 가거나
亦崎嶇而經丘 역기구이경구
험한 산을 넘어 언덕을 지나가리라.
时而循着崎岖的小路走过山丘。
험함 산의 작은 길 따라 언덕을 넘는다
木欣欣以向榮 목흔흔이향영
나무들은 즐거운 듯 생기있게 자라고,
树木长得欣欣向荣,
나무들은 초목이 무성히 자라고
泉涓涓而始流 천연연이시류
샘물은 졸졸 솟아 흐른다.
泉水开始涓涓奔流。
샘물은 졸졸 세차게 흐른다
善萬物之得時 선만물지득시
만물이 때를 얻어 즐거워하는 것을 부러워하며,
我羡慕物得逢天时,
내가 만물이 하늘을 만남에 부러워 하고 있으메
感吾生之行休 감오생지행휴
나의 생이 머지 않았음을 느낀다.
感叹自己的一生行将罢休。
자신의 생이 바야흐로 멀지 않음 느낀다
已矣乎 이의호
아, 인제 모든 것이 끝이로다!
算了吧!
끝이구나
寓形宇內復幾時 우형우내복기시
이 몸이 세상에 남아 있을 날이 그 얼마이리.
寄身于天地间还有多少时日!
이 몸이 천지간에 기대어 있을 날이 얼마나 있으리요
曷不委心任去留 갈불위심임거류
어찌 마음을 대자연의 섭리에 맡기지 않으며.
何不放下心来听凭生死?
어찌 생사를 섭리에 맡기지 않고
胡爲乎遑遑欲何之 호위호황황욕하지
이제 새삼 초조하고 황망스런 마음으로 무엇을 욕심낼 것인가
为什么还要遑遑不安想去哪里?
어찌하여 초조하고 불안하게 아직도 어디를 가려 하는가
富貴非吾願 부귀비오원
돈도 지위도 바라지 않고,
企求富贵不是我的心愿,
부귀를 바라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오
帝鄕不可期 제향불가기
죽어 신선이 사는 나라에 태어날 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寻觅仙境不可期冀。
신선이 사는 나라를 찾는 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懷良辰以孤往 회양진이고왕
좋은 때라 생각되면 혼자 거닐고,
只盼好天气我独自外出,
좋은 날씨에 혼자 나가거나
或植杖而耘 혹식장이운자
때로는 지팡이 세워 놓고 김을 매기도 한다.
或者将手杖插在田边去除草培苗。
지팡이를 밭에 세워놓고 김을 매기만을 바랄 뿐이요
登東皐以舒嘯 등동고이서소
동쪽 언덕에 올라 조용히 읊조리고,
登上东边的高岗放声长啸,
동쪽 언덕에 올라 소리높여 읊조리고(휘파람 불고)
臨淸流而賦詩 임청류이부시
맑은 시냇가에서 시를 짓는다.
面对清清的流水吟诵诗篇。
맑고 맑은 유수를 보며 시를 읊는다
聊乘化以歸盡 요승화이귀진
잠시 조화의 수레를 탔다가 이 생명 다하는 대로 돌아가니,
姑且随着大自然的变化走向生命的尽头,
잠시 대자연의 변화를 따라 생명의 끝으로 가리니
樂夫天命復奚疑 낙부천명복해의
주어진 천명을 즐길 뿐 무엇을 의심하고 망설이랴.
乐天安命还有什么值得怀疑!
천명에 따라 분수에 맞게 살면 의심할 것 무엇 있으리
도연명
자(字) 연명 또는 원량(元亮). 이름 잠(潛). 문 앞에 버드나무 5 그루를 심어 놓고 스스로 오류(五柳) 선생이라 칭하기도 하였다. 장시성[江西省] 주장현[九江縣]의 남서 시상(柴桑) 출생. 그의 증조부는 서진(西晋)의 명장 도간(陶侃)이며, 외조부는 당시의 명사 맹가(孟嘉)였다고 전한다. 이와 같은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생활이 그렇게 풍족하지 못한 소지주 정도의 가정에서 자랐다. 29세 때에 벼슬길에 올라 주(州)의 좨주(祭酒)가 되었지만, 얼마 안 가서 사임하였다. 그 후 군벌항쟁의 세파에 밀리면서 생활을 위하여 하는 수 없이 진군참군(鎭軍參軍) ·건위참군(建衛參軍)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항상 전원생활에 대한 사모의 정을 달래지 못한 그는 41세 때에 누이의 죽음을 구실삼아 펑쩌현[彭澤縣]의 현령(縣令)을 사임한 후 재차 관계에 나가지 않았다. 이때의 퇴관성명서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 유명한 《귀거래사(歸去來辭)》이다. 사전(史傳)에는 상관의 순시 때에 출영(出迎)을 거절하고, “나는 5두미(五斗米)를 위하여 향리의 소인(小人)에게 허리를 굽힐 수 없다”라고 개탄하였다고 적혀 있다. 향리의 전원에 퇴거하여 스스로 괭이를 들고 농경생활을 영위하여 가난과 병의 괴로움을 당하면서도 62세에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한 것처럼 그 생애를 마쳤다. 후에 그의 시호를 정절선생(靖節先生)이라 칭하였다. 그의 시는 4언체(四言體) 9편과 그때에 유행하던 5언체(五言體) 47편이 전해지고 있지만, 기교를 그다지 부리지 않고, 평담(平淡)한 시풍이었기 때문에 당시의 사람들로부터는 경시를 받았지만, 당대 이후는 6조(六朝) 최고의 시인으로서 그 이름이 높아졌다.
그는 평생의 거의 대부분을 민간인으로 보냈기 때문에, 그의 시는 생활로부터 스며나온 마음의 부르짖음이었으며, 당시 유행하던 귀족적 생활에서 풍겨나온 여유 있는 유희문학(遊戱文學)이 아니라 민간생활 그 자체를 노래한 문학이었다. 따라서 그의 시는 따스한 인간미가 있으며, 고담(枯淡)의 풍이 서려 있다. 형식면으로는 대구적 기교(對句的技巧)나 전거(典據) 있는 표현은 별로 쓰지 않았으므로, 같은 시대 시인인 사영운(謝靈運)과는 매우 대조적이었다. 양(梁)나라의 종영(鍾嶸)의 《시품(詩品)》에서는 “고금 은일시인(隱逸詩人)의 종(宗)”이라 평가하였으며, 후세에도 똑같이 평가되고 있다.
그의 시풍은 당대(唐代)의 맹호연(孟浩然) ·왕유(王維) ·저광희(儲光羲) ·위응물(韋應物) ·유종원(柳宗元) 등을 비롯하여 많은 시인들에게 영향을 끼쳐, 문학사상으로 남긴 업적은 매우 크다. 그리고 양(梁)나라의 소명태자(昭明太子)는 《문선(文選)》에다 9 편을 수록하여 전집을 편집하였다. 이후 판본(版本) 및 주석서가 나왔다. 시 외에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 《도화원기(桃花源記)》 등 산문에도 뛰어났으며, 또 지괴소설집(志怪小說集) 《수신후기(搜神後記)》의 작자로도 알려져 있다.
권주가 몇 수 - 장진주사(將進酒辭) / 송원이사안서(送元二使安西) / 산중대작(山中對酌)
조선 선조 때의 송강(松江) 정철(鄭澈 1536~1593)은 가사문학의 대가이기도 했지만, 술꾼으로도 유명했다. 송강과는 반대 성향의 사람이었던 율곡(栗谷) 이이(李珥)가, “술을 줄이고 말을 삼가라”는 충고를 했지만, ‘제 버릇 개주랴’라는 속담처럼 송강의 음주벽은 사라지지 않았다. 어느 날 선조는 송강의 술버릇을 고치기 위해 은잔을 하사하면서 “이 잔으로 하루에 한 잔씩만 마시라”고 했다. 제 아무리 술꾼이라도 임금의 명은 어길 수 없는지라, 송강은 그 잔으로 한 잔씩만 마셨다. 하지만 도무지 양이 차지 않는지라, 생각 끝에 그 술잔을 두들겨 사발만큼 크게 만들어 하루에 한 잔씩만 마셨다고 한다.
그런 그이기에 권주가 장진주사(將進酒辭)라는 시를 남겼다. 그 쓸쓸함으로 인해 술이 당기지 않을 수 없는 시다. 단언하건대 이 시는 술을 읊은 시 중에서 한국 최고의 안주거리이다.
將進酒辭 (장진주사)
한 잔 먹세그려 또 한 잔 먹세그려
꽃 꺽어 산(算) 놓고 무진무진 먹세그려
이 몸 죽은 후면 지게 위에 거적 덮어 줄이어 매여 가나
유소보장(流蘇寶張)에 만인이 울어 에나
어욱새 속새 떡갈나무 백양숲에 가기 곧 가면
누른 해 힌 달 가는 비 굵은 눈 소소리바람 불 제
뉘 한 잔 먹자 할꼬
하물며 무덤 위에 잿납이 휘바람 불 제야 뉘우친들 어이리
후에 정철의 후학 권율이 정철의 묘 앞에서
빈 산에 낙엽지고 비 쓸쓸히 내리는데
송강 재상 풍류는 이곳에서 적막하네
섭섭타, 술 한잔 올리지도 못하나니
그 옛날 장진주사 오늘을 말한 듯
送元二使安西 (송원이사안서)
渭城朝雨 泥輕塵 (위성조우 읍경진) 위성의 아침 비는 대지를 촉촉히 적셨는데
客舍靑靑 柳色新 (객사청청 유색신) 객사의 버들은 그 빛이 더하구나
勸君更進 一杯酒 (권군갱진 일배주) 그대에게 다시 권하노니 이 술 한 잔 들게나
西出陽關 無故人 (서출양관 무고인) 서쪽 양관으로 가면 술 권할 친구도 없을 것을
당나라 시인 왕유(王維, 699?~759)도 꽤 괜찮은 권주가인 ‘송원이사안서(送元二使安西)’라는 시를 남겼다.
지방 오지로 가면 술 권할 사람도 없으니 지금 한 잔 하라는 협박에 가까운 시 이지만, 그 운치가 제법 쏠쏠하다.
山中對酌 (산중대작)
兩人對酌 山花開 (양인대작 산화개) 둘이서 마시노라니 산에는 꽃이 피네
一杯一杯 復一杯 (일배일배 부일배) 한 잔 먹세, 또 한 잔 먹세 그려
我醉欲眠 卿且去 (아취욕면 경차거) 나는 취해 이만 자려니, 자네는 갔다가
明朝有意 抱琴來 (명조유의 포금래) 내일 술 생각나면 거문고 품고 찾아오게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 701 - 762)의 ‘산중대작(山中對酌)’이다. 이 시에서 화자는 친구하고 둘이서 주거니 받거니 술을 마시고 노래도 하고 춤도 추다가 잠이 오니 잠을 자려고 한다. 다음날 또 술 생각나면 다시 한 잔 하러 오라는 이백 시인의 말씀인데, 술꾼으로서의 여유와 품위가 느껴진다.
권주가
권주가의 내용은 초로(草露)와 같은 허무한 인생을 탄식하고 천만 년 수부귀(壽富貴)를 누릴 것을 빌며 무궁무진 즐겨 보자는 것이다. 1·2·3·4절과 5·6·7·8·9·10절은 각각 같은 가락의 반복이다. 술잔을 권할 때 부르는 노래이기 때문에 일정한 장단이 없이 마음대로 내뽑는 자유형이다. 춘면곡(春眠曲)이나 어부사(漁父詞)와 같이 4도 상행 종지법을 갖는 다. 1. 불로초로 술을 빚어 만년배(萬年配)에 가득 부어 비나이다. 남산수(南山壽)를. 2. 약산 동대(藥山東臺) 어즈러진 바위 꽃을 꺾어 주(籌)를 노며 무궁무진 먹사이다. 3. 권군 종일 명정취(勸君終日酩酊醉) 하자. 주부도 유령분상토(酒不到劉伶墳上土)니 아니 취 (醉)코 무엇하리. 4. 백년을 가사인인수(可使人人壽)라도 우락(憂樂)을 중분미백년(中分未百年)을 살았을 때 잘 놉시다. 5. 명사십리(明沙十里) 해당화야 꽃 진다고 설워 마라. 명년 삼월 봄이 오면 너는 다시 피려 니와 가련하다 우리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