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난 3월 중순 다니던 업체로부터 정리해고 대상자라는 연락을 받고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가장으로서 갑자기 닥친 강제해고란 현실 앞에 몸 둘 바를 몰랐던 것이지요. 나이가 들어 갈 곳도 없거니와 별다른 기술도 없어 앞날이 캄캄했습니다. 대책을 세워야 했고 주저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4월 2일 무작정 제주행 비행기를 타고야 말았습니다.
무슨 일을 하려면 준비도 하고 계획도 세우고 해야겠지만 저에겐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습니다. 당장에 무언가를 시작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가족의 생계를 내팽개칠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귤 농사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귤농사 하는 분과 연이 닿아서 그 분 하나 의지하고 가게 된 것입니다. 그 분은 귤농가 시범사업자로 선정된 상태였습니다. 저는 농사 초보고 해서 그분을 도와서 힘 닿는 데까지 돕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일을 돕는 자체가 일을 배우는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 분이 하라는 대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 분의 추천으로 제주농업기술원에 가서 귀농교육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1년에 한 번씩 100시간 하는데 마침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서 등록을 마치고 교육에 참여 할 수 있었습니다. 그 분도 다른 일 하다가 올해로 3년째 귤농사 짓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분의 도움으로 화요일, 금요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하는 귀농교육을 모두 수료할 수 있었습니다. 제주농업기술원 귀농담당 장길남 계장님은 귀농 교육생에게 누누이 그리고 솔직히 여러가지 귀농 현실에 대해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귀농, 결코 쉬운 길이 아닙니다. 그러나 부지런히 잘 이겨내면 또한 희망이 있는 게 귀농입니다. 몇 가지 말씀 드리겠습니다. 절대로 빚을 얻어서 농사 지으려 하지 마십시오. 집안 망하는 지름길입니다. 귀농도 못하고 빚만 짊어지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될 수도 있습니다. 선도 농가에 가서 우선 인턴으로 일을 하십시오. 그렇게 2~3년 일을 배우면서 천천히 농사에 대해 알아 보셔야 합니다. 그리고 혼자 귀농한답시고 제주도 오는 거 저는 별로 찬성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본인도 힘들고 가족도 힘들어 집니다. 가족과 대화를 해서 꼭 가족의 찬성하에 가족 모두가 제주도로 내려 왔을 때 귀농 정착에 희망이 생깁니다. 혼자와서 힘들게 노력만 하다가 올라간 사람들 저 많이 보아 왔습니다. 그리고 지역에 농사 잘 짓는 분들과 친하게 지내십시오. 여러분의 귀농정착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저는 그 당시 그게 무슨 말인가 싶었습니다. 지난 4월 2일 제주도행 비행기 타고 울산을 떠났다가 지난 7월 2일 이번엔 제주도에서 비행기타고 다시 울산으로 올라 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의 제주도로의 귀농은 딱 3개월만에 끝나게 되었습니다. 지난 3개월 동안 저는 가족과 함께 제주도 귀농정착을 꿈꾸며 나름대로 열심히 했고 힘들어도 외로워도 참으며 지내왔었습니다. 3개월 만에 제주 귀농을 접으며 돌이켜 보니 제주농업기술원 귀농담당 장길남 계장님이 왜 그렇게 누누이 제주 귀농 현실에 대해 말씀해 주셨는지 그제야 이해가 갔습니다.
제주 귀농을 혹시라도 희망하시는 분들이 계실 거 같아서 이렇게 글을 올려 봅니다.
제주 귀농에는 육지 귀농과는 또다른 흐름이 있습니다. 그러한 특성을 잘 파악해야만 합니다. 가령 제주도 토착민 분들의 제주어는 우리같은 육지 분들은 잘 알아듣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 제주어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아 두시는 게 좋습니다. 제주도 분들의 습성은 육지 분이랑 많이 다른 거 같습니다. 지역이 섬이라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러한 정보를 사전에 잘 파악해야 합니다.
귀농해서 농사라도 지으려면 농사에 대해 배워야 합니다. 사육되는 동물도 마찬가지지만 식물도 그냥 자라고 크고 열매 맺는 게 아니었습니다. 날씨와 온도 변화에 민감한 식물을 잘 키워 내려면 그래서 상품성 높게 생산해 내려면 농사 기술이 필요합니다. 동서남북으로 4등분해서 제주지역을 관찰해 보십시오. 각 지역마다 잘되는 식물이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제주도는 화산지역이고 태풍 길목이라 날씨 변화가 자주 일어났습니다. 그러한 땅의 특성과 날씨 특성을 잘 고려해야 할 거 같습니다.
농사 지을 땅이 있다고 농사 지을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 땅에다 무엇을 심으면 좋을지 토질 검사를 통해 파악하는 일도 중요하고 농사 지을 땅이 생기면서 그때부터는 돈 들어 갈 일이 계속 생긴다는 것입니다. 식물 씨앗도 구해야 하고 땅을 갈아 엎을 트렉터나 경운기가 필요 합니다. 자비 구입은 비싸고 트렉터 가진 분들에게 부탁을 드려야 하는데 비용이 듭니다. 멀칭이라 해서 비닐을 씌우고 구멍을 내어 묘종을 심기도 하더군요. 비닐 값도 들겠죠. 흙 기운을 돕기 위해 퇴비를 해야 하는데 퇴비 값도 들어야 합니다. 친환경 농사를 짓거나 그냥 농사를 짓거나 농약 값은 듭니다. 친환경 농약 값이 더 비싸더군요.
농사 경험이 있는 분들은 두 가지를 주의하라더군요. 농약방과 친하게 지내지 말고 금융사와 친하게 지내지 말라고요. 1년 농사 지으면 어느 때 무슨 농약 치는지 제초제는 언제 치는지 공식이 나와 있다고 합니다. 농약 종류만 해도 수백가지고 어느 시기에 무슨 농약을 쳐야 할지 찾아가면 알아서 다 해주니 참 편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헛돈을 많이 날린다고 귀띔합니다.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농약까지 덤으로 얹어주니 그렇다는군요. 다른 방법은 직접 농사 짓는 분들에게 귀동냥 많이 하라고 합니다. 또 제주도엔 농업기술원과 기술센터가 여러 곳에 있습니다. 그곳에 찾아 가거나 전화해서 알아보면 농사에 대한 모든 정보를 알아 볼 수도 있고 도움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귀농교육 100시간 수료하면 담보와 절차를 밟으면 저리 융자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또 여러가지 귀농정착 하는데 도움이 많이 되는것도 사실인 거 같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저리 융자라도 빚은 빚이고 이자가 붙고 갚지 못하면 이자가 서서히 불어 난다고 합니다. 농사 잘되면 그나마 갚을 수 있지만 농사가 어디 성공만 하라는 법이 있겠습니까? 농사가 잘 안되었을 경우 빚더미에 올라 앉을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더군요. 그말이 맞는 거 같습니다. 그래서 귀농 경험자들은 빚 얻어서 농사 지으려 하지 말라고 수없이 되풀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도시 살 때는 불편함을 잘 몰랐는데 귀농은 시골로 하는 것이고 보니 자기 차량이 없으면 이동하는데 많이 불편했습니다. 더구나 농사 지으려면요. 트럭 작은거라도 한대 장만하는게 필수입니다. 농사 지으려면 여러가지 도구가 필요하고 차에 싣고 다녀야 합니다.
삽, 톱, 낫, 호미, 곡괭이, 망치, 갈고리, 트렉터, 전동펌프와 같은 많은 농기구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농사 지으려면 창고가 또 필요합니다. 돈주고 사야 할 것도 있고 빌려 쓰는 것도 있었습니다. 작은 트렉터나 포클레인의 경우 농업기술원을 통해서 저렴하게 빌려 쓸 수 있었습니다. 단, 3일간 시운전 기본 연습과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여러가지 도구와 농기구의 사용법을 익히고 터득해야 합니다.
저는 울산에서 공장 생활을 했었고 단순노동만 해왔습니다. 이번에 제주도 귀농 3개월 체험하면서 느낀것은 도시 생활보다 시골생활에 더 많은 게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도시생활은 대중교통도 많고 모든 게 분업화 되어서 간편하게 생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골생활은 여러가지 불편한 점이 많습니다. 농사 지으려면 밭이 필요할 것이고 밭은 큰 길과 많이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그곳으로 이동하려면 자기 차량이 없으면 걸어가야 합니다. 그러니까 귀농하려면 어느 정도 자기 자산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골 가서도 가족이 생활해야 할 집이 있어야 하고 트럭 한대 장만해야 하고 각종 농기구와 도구를 마련해야 하고 농사 지을 밭을 빌리거나 구입해야 하고 거기 들어가는 씨앗이나 묘종도 구입해야 하고 그 씨앗과 묘종을 잘 키워 내려면 비료와 퇴비,농약도 사두어야 합니다.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든다는 사실을 잘 알아 두시고 몇 평 농사를 지을 건지 잘 알아보고 파악하고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저는 제주도 귀농 아무 계획도 없이 갔었습니다. 3개월 체험하면서 여러가지 좋은 경험도 많이 하고 또 농사에 대해 배우기도 했습니다. 유기농 농법과 친환경 농법 그리고 무농약 농법이 다름을 수박 겉핥기지만 알게 되었습니다. 농약보다 더 환경에 나쁘게 작용하는것이 제초제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초제가 별거 아닌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게 식물을 말려 죽일 뿐 아니라 동물이나 사람에게도 아주 조금씩 천천히 위험해 진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 60년대 베트남 전쟁에 투입되었던 월남참전병사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분들은 하늘에서 비처럼 뿌려지는 하얀 우윳빛 물을 시원하게 맞았다고 합니다. 그 무더운 베트남 정글 숲에서 갑자기 하늘에서 비처럼 내리니 얼마나 시원했겠습니까. 그 고엽제라는 것이 바로 제초제의 한 종류라는 사실을 저는 제주 귀농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제초제가 농약보다 더 위험하다면서 어느 농부가 저에게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고엽제는 베트남 지역이 정글 숲으로 되어 있어 미군이 작전수행에 어려워지자 비행기로 엄청나게 살포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제주도에서 경험한 제초제는 그 위력이 정말 대단했습니다. 오전에 뿌렸는데 오후가 되니 제초제 물을 맞은 풀의 잎이 모두 말라 비틀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냥 풀을 뽑으면 안되는지 풀을 제거할 다를 방법은 없는지 제초제 안뿌리면 농사가 안 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농약보다 위험한 제초제 꼭 그렇게 뿌려야 할까요?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이 사용한 고엽제가 무엇일까요? |
베트남 전쟁기간 중 V.C(viet.cong)의 은둔지와 무기 비밀수송로로 이용되어 온 정글제거와 시계를 청소하기 위해 또 V.C 경작지 농작물 제거를 위해 1960~1971년까지 베트남국토의 15%에 해당되는 60만 에어커의 광범위한 지역에 2,000만 G/A의 고엽제(AGENT-ORANGE)를 살포하였습니다. 그 중 80%에 해당하는 1,600만 G/A의 고엽제를 한국군 작전지역에 무차별 살포하였다는 사실입니다. AGENT-ORANGE란 고엽제가 담겨져 있는 드럼통에 쉽게 식별할 수 있도록 ORANGE 색깔 띠를 둘렀다 하여 붙여진 별칭인 것 같습니다. 이 고엽제라는 약품 속에 인류 역사상 가장 독성이 강한 물질인 DIOXIN이 함유되어 있는데, 이것은 고엽제를 만드는 화학적 과정에서 불순물로 생성된 것이지 의도적으로 첨가된 독극물이 아님을 밝혀두는 바입니다.
DIOXIN 이 얼마나 독성이 강하냐 하면 치사량이 0.15g인 청산가리(Kaliumcyanid)의 1 만배,비소(AS)의 3,000배에 이르는 독성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DIOXIN 1g이면 사람 2만명 을 죽일 수 있는 지구상에서 독성이 가장 강한 독극물입니다. 이것은 잘 분해되지도 않을뿐더러 용해도 되지 않아서 인체에 극히 적은 량이 흡수되었다 해도 점차로 몸 속에 축적되어 10년 ~ 25년이 지난 후에도 각종 암, 신경계 손상, 기형유발, 독성유전 등의 각종 후유증을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베트남에서 고엽제 사용에 관한 별다른 지시나 주의사항도 없었고,특히 비행기로 공중 살포시에는 모기에 물리지 않는다고 고엽제가 쏟아지는 곳을 쫓아다니면서 조금이라도 더 맞으려 했습니다. 부대 주변에서 제조작업을 하는 병사들은 고엽제 가루를 철모에 담아서 맨손으로 뿌리기도 하였습니다. 작전 기간 중에는 흐르는 물을 수통에 담아서 거에 소독약 몇 알만 넣어 마셨습니다. 이러다 보니 그 고약한 DIOXIN은 우리 참전 용사들의 눈,코,입,피부 등을 통해 아무런 여과 없이 전신에 숨어 축척 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피해는 국적에 관계없이 미군을 위시한 모든 나라의 장병들이 모르는 사이에 많은 량의 DIOXIN을 몸 속에 축적시켜둔 채 전쟁은 끝났습니다.
1970년대부터 참전국 장병들은 원인 모르는 병에 시달리기 시작했고, 1978년경부터 미국에서는 사회적 문제로 발전되기 시작했습니다. 원인모를 질병이 고엽제의 후유증인 것으로 판단하고, 고통을 호소하는 일부 환자들이 미국정부와 그 다음에는 고엽제 제조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고 손해배상을 요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미의회에서는 청문회를 열어 전 주월미국 총사령관이었던 웨스트 모랜드 육군대장을 증인으로 청문회에 출석시키는 등 한때 미국의 정계는 떠들썩했으며 큰 사회문제로 대두되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이처럼 요란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대한민국 제5공화국 정부에서 정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철저한 보도통제와 억압으로 (실제로 1984년 중앙일보에서 고엽제문제를 보도하였으나, 제보기자 해고시키고, 타 언론사에 보도하지 못하도록 통제하였음) 독재 정권하에 있는 한국에서는 대부분 그런 사실을 모르거나 입이 막혀 참전용사들은 베트남 풍토병이라는 원인 모를 질병에 시달리다가 수 많은 참전 군인들이 40대의 아까운 나이에 이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왜 자기가 죽어가는지 몰랐습니다. 병원에서 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살아보려는 본능 때문에 가산을 모두 탕진했습니다. 난치병이라고 뒤늦게 안 전우들 중 몇 명은 더 이상 가족에게 고통을 줄 수 없다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당시 한국 사회에서는 그들이 베트남에서 윤리적으로 부끄러운 짓을 하다가 고약한 성병, 국제 매독에 걸려서 죽는다고 그 질병을 좋게 말해서 "베트남 풍토병"이라고 말하며 그들의 도덕성을 비난하여 매도했습니다.
사실 어떤 사람은 자신도 그렇게 알고 죽은 사람도 있습니다. 세계평화 수호와 국가경제 발전의 초석이 되었던 수천의 명예로운 참전군인들이 영광과 환대 대신 역사의 뒤안길에서 미국의 괴질, 고엽제 질환에 가혹한 시련을 당하다가 불명예스럽게 죽었습니다.
(위 내용은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에서 발췌하였습니다) |
제주도에 가서 귀농 공부 하면서 많은 점을 배우고 느꼈습니다. 끝으로 제주농업기술원 귀농교육 담당 장길남 계장님이 제주도로 귀농하여 정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말씀해 주셨습니다. 제주도로 귀농을 꿈꾸는 분들이 도움 되셨으면 합니다.
1)귀농을 결심합니다.
2)현지 농가를 방문합니다(농촌 실정에 대해 알아야 하니까요)
3)영농 체험에 들어 갑니다(될수록 길게)
4)주말 영농을 해봅니다(농사에 대한 진정한 가치를 터득해야 합니다)
5)100% 가족 동의를 얻어야 합니다(그리고 함께 귀농할 곳으로 이주해야 합니다)
6)정착지를 물색합니다.
7)농작물을 선택합니다.
8)농업기술센터와 같은 교육기관에서 농사기술을 습득합니다.
9)주택과 농지를 임대하거나 구입합니다.
10)농사 계획을 세워봅니다.
11)그렇게 해서 몇 년 후 정착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