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1~8 / 최초의 살인자 가인
(창 4:1)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창 4: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창 4: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창 4: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창 4: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창 4: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창 4: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창 4:8)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조상의 죄는 자손들에게서 반복됩니다. 그리고 더욱 증폭되어 나갑니다.
첫 조상의 다음 세대는 조상이 걸어간 길을 답습하는 것입니다.
4장에는 아담과 하와의 후손인 가인과 아벨이 나오고 그 후손들이 나옵니다.
가인과 아벨의 출생
하나님은 아담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했을 때는 그의 후손 가운데서 메시아가 오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아담과 하와는 그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가인과 아벨을 낳았습니다.
죄의 결과로 하와는 잉태하는 고통을 맛보고 해산하는 수고를 하였습니다.
인류에게 처음으로 생명이 탄생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기쁨이 가득했습니다.
불순종으로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아담과 그의 아내에게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죄 때문에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두 사람은 여전히 하나님의 복을 받고 있었습니다.
가인이란 ‘얻다, 취득하다, 창조하다’ 뜻입니다. 아벨이란 ‘입김’이란 뜻입니다.
두 아들은 자라서 가인은 농사하는 농부가 되었고 아벨을 양치는 목동이 되었습니다.
아벨의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하기로 하고 오늘은 가인에 대해서만 생각하겠습니다.
가인의 직업은 “農事하는 者”입니다. 저주로 인하여 가시덤불 난 땅을 힘들게 파헤쳐야 하는 직업 특성상 거친 품성을 풍기는 직업입니다. 가인은 건강하게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땅의 소산”을 제물로 제사도 드렸습니다.
2. 제사하는 가인과 아벨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여호와께 드렸는데 하나님이 가인과 그 제물은 받지 않으셨고 아벨과 그 제물은 받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히브리서 11:4에는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는 증거를 얻었나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서 오히려 말하느니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아벨은 믿음으로 더욱 아름다운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아벨의 믿음의 제사는 영과 진리로 드리는 제사요 죽어도 살아서 말하는 참종교입니다.
가인의 제사는 불신의 제사요, 형식적인 제사요, 동시에 거짓 종교인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교인이 함께 하나님께 예배하지만 신앙이 있어야 참 예배요, 신앙이 없으면 허식에 불과하여 하나님이 이를 받지 않으신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인은 그래서 자기 기준에 의해 자기가 주격이 되어 자기가 만족하지 못한 것을 분하게 여겼습니다. 이것이 죄의 본질입니다. 좀 더 깊이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신 첫째 이유는 믿음 없이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믿음이 없는 가인이 회개하고 믿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인은 하나님의 뜻과는 반대로 믿지도 않았고, 회개하지도 않았습니다.
동생의 제사는 받으시고 자신의 제사를 받지 않으시자 분하여 안색이 변했습니다.
그는 자존심이 상했고, 자기 의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드리고 나서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는 것에 불평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예배를 받지 않으시면 자신을 돌아볼 기회로 알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사랑과 공의에 기초한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회개할 수 있고 회개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이 제사를 받지 않으실 때는 나에게 무슨 문제가 없는가? 나에게서 원인을 찾고 회개해야 합니다. 나의 죄에 대해서 상하고 통회 자복하는 심정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가인은 예배가 상달되지 않은 책임을 하나님께 찾고 하나님께 분노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분노한 결과는 동생을 죽이는 최초의 살인자가 된 것입니다.
다윗은 밧세바와 범죄하여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아들이 심한 병에 걸렸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7일 동안 금식하며 철야 기도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윗의 기도를 받지 않으시고 아들을 데려가셨습니다.
사람들은 아들이 죽자, 다윗이 안색이 변하여 하나님을 불신할까 염려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일어나서 오히려 하나님께 경배하고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죽기 전에는 혹시 살려 주실까 하고 기도했지만, 죽은 후에는 할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다윗을 축복하시고 다윗에게 솔로몬이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가인도 하나님이 제사를 받지 않았을 때 다윗처럼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려야 했습니다.
3. 인류 최초의 살인자 가인
가인은 매우 화가 나서 안색이 변하였습니다. 고개를 떨어뜨리고 몹시 화가 나 있었습니다. 가인은 자신의 제물이 열납되지 못한 이유를 살펴 회개하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화를 내었습니다. 분노에 사로잡힌 가인을 향하여 하나님은 부드럽게 부르시면서 “네가 왜 화를 내느냐? 왜 안색이 변하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분노를 절제하지 않으면 재화가 올 것을 경고하셨지만 가인은 듣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로 인간의 죄는 불신과 분노에서 나오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우를 죽인 가인에게 하나님은 물으셨습니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9절).
이것은 3장에서 죄를 짓고 하나님께로부터 얼굴을 돌리고 동산 나무 사이에 몸을 숨긴 아담에게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3:9)고 물으신 것과 비교가 됩니다.
아담에게 던지신 물음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있는 위치를 물으신 것입니다. 가인에게 던지신 물음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있는 위치를 물으신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두 가지 질문을 던지고 계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창 4: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창 4: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하나님은 가인이 화를 내고, 안색이 변한 것이 잘못되었음을 말씀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네가 좋은 마음을 품고 있다면 어찌 얼굴을 들지 못하겠느냐? 네가 좋은 마음을 품지 않으면 죄가 너를 지배하려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선을 행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 얼굴을 들지 못하는 것 아니냐고 하셨습니다.
선을 행하면 선한 마음을 품었으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는 말입니다.
다른 번역에서는 그가 선을 행하지 않아서 하나님이 제물을 받지 않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가인은 선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선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것이 선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이 선입니다. 그런데 가인은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없이 드리는 형식적인 제사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가인은 마음 첫 자리에 하나님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죄가 문 앞에 엎드립니다.
사자가 사슴을 잡으려고 엎드리고, 뱀이 개구리를 잡으려고 엎드려 있는 것과 같습니다. 죄는 가인을 잡기 위해서 길목에 숨어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인의 마음에는 죄의 소욕이 일어났습니다. 미움과 시기와 분노가 일어났습니다.
아담이 범죄 한 후에 인간의 내면에는 죄가 들어온 것입니다.
죄는 가인을 잡아먹고자 원하고 있습니다.
가인은 죄에게 잡혀 먹지 말고 오히려 죄를 다스려야 합니다.
우리에게도 때로는 죄의 소원이 우리의 마음속에 일어납니다.
이런 죄의 소원을 이기는 길은 성령의 소원이 더 크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성령님이 충만하고 하나님을 경외할 때는 죄의 소욕이 약해집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므로 죄를 다스려야 합니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면 우리는 죄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
마음의 첫 자리에 하나님을 두고 우리의 마음과 몸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성령을 따라서 행해야 합니다. 성령이 주시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죄의 소욕이 사라집니다. 공격은 최대의 방어입니다.
8절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가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해야 했습니다. 그는 겸손하게 아벨에게서 배워야 했습니다. 아벨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두려워하는 마음을 배워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우선인 죄를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벨에 대한 질투하는 마음과 미워하는 시기심이 생겼습니다.
그는 아벨의 선이 자신의 악을 더 드러낸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니 아벨만 죽이면 자신의 악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욱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는 분노를 통제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아벨을 들로 나가자고 꾀어 데리고 갔습니다.
그는 아벨과 들에 있을 때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알고 아벨을 쳐 죽였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을 처음으로 죽였습니다. 자기의 친동생을 죽인 것입니다.
그는 주인이신 하나님의 마음에 못을 박았고 아버지 아담의 마음에도 못을 박았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서 정면으로 도전하였습니다.
아담은 최초의 불순종의 죄를 저질렀고 그 자손 가인은 최초의 살인을 했습니다.
친족 살인을 했고, 시체를 유기하였습니다.
죄는 누구나 지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죄를 범한 후에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범할 때 반드시 어떤 방법으로든지 회개의 기회를 주십니다.
그때 깨닫고 회개하는 것이 해답입니다. 이게 지혜요 신앙인이 할 일입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멸하지 않으십니다. 회개하지 않는 죄인을 멸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죄의 유혹을 받습니다. 죄를 지을 수도 있습니다. 거기서 끝나면 망합니다.
죄를 짓지 않으면 최고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죄인 것을 알고 회개하고 주님의 용서하심을 믿으면 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불쌍히 여기시고 이전보다 더욱 사랑하여 주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