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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마태복음 27장 50절 - 54절 2023년 8월20일 주일 말씀지
인류 역사에 가장 큰 사건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성당마다 예배당마다 십자가는 높이 화려하게 서 있는데 정작 예수님의 십자가를 헛되게 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1.택하신 아들들을 (엡1:4) 아담 때 가죽옷 구원을 입히셨고 (창3:21) 2.이제는 원죄로 말미암아 사망의 열매만 맺는 자기 백성인 아들들을 죄에서 구원하심인데 (갈1:4) 복음으로 살려 3.진리로 자라게 하사 열매맺는 생명으로 살게 하셔서 4.영광의 날에 영광을 얻게 하심입니다. (롬3:23) 그러나 은혜로 택하심과 은혜로 구원하심과 은혜로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은혜를 받고도 다시 바리새인들처럼 자기 열심과 행위를 앞세우는 갈라디아 교인들과 같은 자들이 많은 것은 다른 복음을 믿었거나 (갈1:6) 영적 성장을 이루지 못한 탓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로 갈라디아 교인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한다고 심히 책망하게 하신 것입니다. 갈2:21-
십자가 구원의 역사에 등장하는 로마의 총독 본디오 빌라도는 세상의 권세자이지만 심문해보니 아무 죄가 없음을 3번이나 선고하고 어떻게 하든지 예수를 놓아주려고 힘을 쓴 자요 (요19:12) 세상의 권세를 놓치지 않으려고 할수없이 비겁한 선택을 한 자인데 우리는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죽으시고’ 라고 고백을 하며 마치 빌라도가 아주 악한 자라서 예수님을 잔혹하게 십자가에 매달아 죽인 것으로 고백하게 합니다. 사실은 대제사장들과 하속들과 (요19:6) 어리석은 유대인들이 (요19:12) ‘십자가에 못 박으라’소리친 것인데 십자가 구원을 통하여 택자 모두를 의롭게 하시려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택자들 모두가 ‘예수님 나의 죄가 사함을 받기 위해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려 죽어주셔야만 합니다’ 라고 내가 소리친 것으로 들려야 합니다. 히9:22-
사도 요한을 빼고는 예수님이 끌려 가실 때에 이미 예수님께서 잡으러 온 하속들에게 제자들은 아직 순교의 믿음으로 자라지 못했으니 보내주라고 명하여 제자들이 가게 된 것인데 (요18:8) 마태는 죽음이 두려워 도망쳤다 하고 베드로는 갈까 말까? 멀찍이 섰다고 나타내었고 (마26:56,58) 마가는 자기 자신이 제일 먼저 벌거벗은 몸으로 도망쳤다고 솔직히 나타내고 뒤따라 제자들도 다 도망쳤다고 하였으나 (막14:50,51) 누가는 사도 요한에게 들은 대로 도망가지 아니한 것으로 나타내고 베드로가 멀찍이 뒤따라왔다가 부인했다고 하였습니다. (눅22:54) 요18:15-
복음서마다 다르게 기록하게 하신 것을 보지 못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누구라도 태초의 말씀부터 보지 않고 아구까지 채워지지 않으면 십자가 사건도 잘못 말하게 되고 예수님의 품에 안긴 주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인 사도 요한의 신앙에 이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하신 말씀은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그 당시의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들과 그 교훈을 받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과 헤롯 당파들이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소리치는데 그동안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구원의 역사임을 알아도 (마16:21) 약하여 도망가고 십자가가 구원의 역사가 자기를 위한 것임을 아예 모르는 유대인들은 거짓된 지도자들의 선동으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소리쳤던 것입니다. 눅23:13,31-
중요한 것은 오늘의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이에 ‘나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기 전 일곱 번 말씀하시고 6시간 만에 죽으시고’가 덧붙여져야 사도들의 신앙입니다. 그리고 그 일곱 번 하신 말씀을 늘 묵상하며 나에게 이루신 구원역사에 늘 감동되어 감사뿐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 영적 신앙생활이요.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6시간은 인류 역사 6000년인데 양심시대 2000년 율법시대 2000년 성령시대 2000년에 택자들을 보내서 영광을 얻게 하시려 십자가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 것을 봐야 합니다. 마27:47-
예수님이 나를 위해 생명을 버렸으니 나도 그 은혜를 감사하며 성령 안에서 십자가를 묵상할 때마다 나같은 죄인을 위하여 독생성자를 보내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엡2:6) 나의 죄를 위하여 죽어주신 예수님의 참 사랑이 더욱 깨달아지게 하시고 이제 그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열매맺는 믿음 생활을 하게 하시는 것이요 아직도 이 은혜를 알지 못하고 자기 열심을 앞세워 나가는 자들을 보고 기도하며 나에게 믿어지게 하신 말씀을 하나라도 나누는 것이요 더 나아가서는 영광길 생명길 가는 나를 미워하고 힘들게 하고 심지어는 핍박하고 죽이려 하는 자들까지 그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스데반처럼 대하는 것이 신부의 믿음에 이르는 자들인 것입니다. 행7:60-
그러나 십자가의 사랑을 깨닫지 못한 자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조금이라도 일한 것을 내가 한 줄로 아는 것은 다 불타게 되는데 이것이 음부의 권세에 진 것입니다. 그러니 사도신경을 사도의 신앙을 찾아서 바로 고백함으로 1.음부의 권세를 이겨나가는 2.천국의 열쇠를 가진 3.주님의 영광스러운 교회가 되어 주신 은혜와 은사로 일한 것마다 감사한 것마다 다 열매요 영광이 되게 하시는 사도신경인 것입니다. 바른 사도신경을 나의 신앙으로 예배 때마다 고백하게 되는데 이것이 신령과 진정의 예배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하신 일곱 번 하신 말씀에 십자가 밑에 가지는 못했던 누가를 통해서는 1번째(눅23:34) ‘저들이 알지 못해서 그러니 용서하소서’하는 용서의 말씀이였고, 2번째(눅23:43) 행악자 중 하나에게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신 구원의 말씀이였고, 7번째(눅23:46) ‘아버지 손에 내 영혼을 부탁하는’ 부탁의 말씀인 것을 나타내주셨습니다. 마태와 마가로는 4번째 하신 말씀인 (마27:46, 막15:34)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고통의 말씀 하나만을 나타내주셨고 태초의 말씀으로 살림 받아 십자가 밑에까지 기쁨으로 따라간 요한을 통해서는 3번째 하신 말씀으로 (요19:26) 어머니 마리아를 내려다 보시고‘여자여’하신 것은 마리아도 예수님을 통해서 죄사함을 받아야 하는 죄인이라는 것이요 어머니를 위하여 죽어주시는 애정의 말씀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로 영적으로 여자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나타내주셨습니다. 롬7:2-
모세를 통해서 주신 율법을 통해서 내가 죄인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 밑에서 울고 있는 그 모친을 요한에게 부탁하시는데 27절에 요한에게 ‘네 어머니로 모시라’ 한 것은 복음이 믿어지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면 율법을 기쁨으로 지키게 하심입니다. 율법의 말씀 하나 하나는 진리의 말씀이요 거룩하게 살게 하시는 상거리입니다.
5번째(요19:28) ‘목마르다’ 하시는 고뇌의 말씀은 육신의 목마름이 아니라 성경을 응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앞으로 영의 양식에 대한 목마른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암8:11, 계6:6-
이제 갈수록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되는 것은 여호와는 삼위로 계셔서 택하신 자들을 구원하신 자들을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복음이요 자라나 열매맺게 하시는 진리가 생명양식인데 예배당 건물을 마트같이 크게 세워놓고 신학교에서 배운대로 장사하는 집들이 되고 연보를 강요하는 강도의 굴혈이 되어서 교인들의 주머니를 털어 자기 사욕을 채우는 자들이 많이 나온다고 하신 것입니다. 6번째(요19:30)하신 말씀은 ‘다 이루었다’ 하신 완성의 말씀인데 예수님의 온몸의 피는 다 쏟아지고 기운도 다 빠지고 있는 상태에서 십자가 구원을 온전히 다 이루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로써 다 이루신 구원인데 아직도 구원을 받으려 애쓰는 자들이 바로 율법아래 있는 자들이요 무엇이나 내가 잘한 것을 구원의 대상으로 삼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러니 ‘십자가 위에서 나를 위하여 일곱 번 말씀하시고 그 영혼이 돌아가셨다’고 고백해야 사도들의 신앙과 맞는 것입니다. (요19:30)
마태로도 ‘영혼이 떠나가시다고 하였고 마가와 (막15:37) 누가로는 운명(殞命)하셨다고 하였습니다. 눅23:46-
십자가는 로마 제국에 반역한 자들을 가장 고통을 느끼며 죽게 하는 잔혹한 형틀인데 갈라디아 3:13을 통해서 기록된 말씀은 신명기 21:23에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를 받은 자’라 하셨는데 십자가에 달리면 죽을 때까지 달아 놓는 것입니다. 십자가라는 단어를 마태는 14번을 사용하였는데 그중에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를 2번(10:38,16:24) 마가는 9번 (역시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 2번) 누가로도 8번인데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 2번) 요한은 13번 사용하였는데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는 없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로 로마서에 1번 (롬6:6) 고린도 전서에 5번 (고전1:13,17,18,23, 2:8) 갈라디아서에 6번 (2:20, 3:1,5, 5:11,24,6:12) 에베소서에 한번 (2:16) 빌립보서에 2번 (2:8,3:18) 골로새서에 2번 (1:20,2:14) 히브리서에 2번 (6:6,12:2) 계시록에 1번 기록되게 하셨습니다. 계11:8-
특히 사도 바울로는 예수님의 십자가라 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라 나타내셨는데 갈라디아 2장 20절에 우리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하심으로 성령의 역사로 내 소욕을 날마다 죽이는 생활이 있느냐? 고 묻는 것입니다. 아직도 내 생각이 나를 지배하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 마태를 통해서 주신 말씀으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을 더욱 믿어지게 하십니다.
50절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이미 46절에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쩌히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크게 소리 지르셨다고 하였고 또 마지막으로 크게 소리 지르셨다고 나타내면서 무슨 말씀인 것을 나타내지 못한 마태입니다. 그것은 십자가 아래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누가를 통해서는 7번째 말씀으로‘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는’ 말씀으로 나타내주셨는데 (눅23:46) 마태와 마가와 누가는 그 자리에 없었는고로 요한과 함께 있던 여자들 그리고 십자가 형을 집행하던 자들을 통하여 그때의 사건을 자세히 듣고 성령의 역사로 기록케 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 밑에까지 가게 하신 요한을 통해서는‘다 이루었다’는 6번째 말씀으로 나타내시되 크게 소리 지르시는 것으로 나타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영혼이 떠나시다 죽음은? 영혼이 내 몸 안에 있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떠나는 것인데 에덴동산에서 육신을 지으실 때 흙으로 지으셨고 흙으로 돌아갈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창3:19-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음으로 찾아 온 육신의 죽음이 아니라 이땅에 잠시 살게 하시려 육신을 지으신 것이요 그 육신을 흙으로 지어졌기에 죽으면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2장에 ‘정녕 죽으리라’ 하신 말씀을 이 육신 죽는 것으로 보는 자들이 많은데 이미 따먹었으나 육신은 당장 죽지 아니하고 아담은 930세를 향수하고 죽게 하셨습니다. 창5:5,6-
그러니 에덴 동산에서는 육신이 아니라 영이 죽은 것입니다. 흙으로 육신을 지으실 때 이미 그 속에 영(靈)이 있었고 생기(生氣)를 불어 넣을 때 그 영이 살아 생영이 된 것입니다. 창2:7-
정녕 죽는 자리에 떨어진 영들이요 가죽옷 구원을 입히신 것이 산자가 된 것이요 영의 구원은 이때에 이루신 것입니다. 생영(生靈)이 뭔지 모르니 모두가 육신만 보게 되는 것입니다. 생기는 성령이요 영이 열매맺는 생명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감사로 열매맺게 된 아담인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과 여자가 벌거벗었으나 부끄럽지 않았다고 하신 것입니다. 창2:25-
산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기 전인데 이때 그대로 두시면 어떻게 될까요? 성자의 구원의 역사도 필요없고 성령의 역사도 필요없는 것이요 처음에는 은혜를 감사하다가 나중에는 그래도 내가 열매맺었다고 영광 얻었다고 할 것이 뻔한 것입니다. 그래서 미리 아시고 태초에 삼위로 계셔서 성자의 구원역사와 성령의 역사를 예비해두신 것입니다. 따먹을 줄 미리 아신 것이요 그래서 들짐승 중 뱀을 간교하게 지으신 것입니다. 창3:1-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음으로 그 영이 정녕 죽게 된 것이요 이미 생명나무까지 예비해주신 여호와이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생명나무의 실과는 하늘의 영광인 영생인데 (창3:22) 그 손을 들어 따먹지 못하게 하시려 정녕 죽는 자리에 잠시 천사보다 못한 자리에 두신 것으로 자랑치 못하게 하심입니다. 시8:4,5-
복음이 믿어지는 믿음도 선물이요 (엡2:8) 열매맺는 생명으로 거듭나게 하시는 것도 선물이요 (행2:38) 샘솟는 생수의 기쁨을 주시는 것도 선물입니다. 요4:10-
복음이 잘못되면 선물은 하나도 알지 못하고 다 내가 무엇을 잘해서 주신 것이라 여기는 것이요 은혜라 말하면서도 진정한 기쁨과 감사는 없는 것입니다. 선물로 주시는 것은 그 은혜에 감사만 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의 범죄로 모든 택자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리에 가두어 두신 것이요. 롬11:32-
원죄까지 두셔서 율법 아래 죄아래 두신 것이요 (갈3:22) 십자가 구원까지 다 이루시고 이제 불러서 믿게 하사 자라게 하사 열매맺게 하시고 생명역사에 사용하셔서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울 때는 감사뿐인 것입니다. 바로 이때가 영광성에 들어가게 하신 때인 것입니다. 영광 받은 그 자리에서 쫓겨나지 않게 하시려 성자의 가죽옷 구원으로 영을 구원하시고 십자가 구원의 역사로 혼까지 구원하사 주 예수로 다 이루신 것입니다.
이제 택자들을 양심시대 율법시대 성령시대에 이땅에 보내사 잠깐 살게 하셔서 그 영광을 얻게 하셨는데 노아 전까지는 거의 천년을 아브라함 때에는 170년을 모세 때에는 120세를 그후에는 연수를 칠십이요 강건하면 80을 살게 하셨습니다. 시90:10-
그러나 아담 때에 아벨은 순교 당하고 열 왕 때에 선지자들 역시 순교 당하고 예수님은 33세에 죽으시고 스데반도 30세에 사도바울은 67세에 사도 요한은 100세에 죽게 하신 것입니다. 육신은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적으로 살면서 열매와 생명역사를 이룬 것은 상과 영광이 되니 위엣것 영적 생활 한자들은 빈손으로 가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전3:20-
예수님은 할 일(생명역사와 십자가 구원이루시는)을 다하시고 영혼이 떠나가시는 것입니다.
51절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예수님께서 죽으실 때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마27:51, 막15:38, 눅23:45). 예수님이 오심으로 그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진 것은 성부되신 하나님이 찢으신 것으로 성령시대에는 모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제사장들이라는 것입니다. 요한으로는 나타내시지 않은 부분입니다. (출26:33) 그러니 조심히 다뤄야 할 말씀인데 성소와 지성소를 나누는 휘장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기 전에는 지성소로 들어가는 휘장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일반 제사장은 첫째 성막으로 들어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수행했고 (히10:6). 대제사장은 둘째 성막에 일년에 한 번 피를 들고 들어갔습니다 (히10:7). 첫째 성막이 있는 동안에는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이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히10:8). 성막은 육신에 속한 규례들로만 유지되어 개혁의 때까지 "그들에게 부과" 되었습니다. (히10:10). 개혁의 때는 그 씨가 오실 때까지이며 (갈3:19), 믿음이 오기까지이며 (갈3:23),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입니다 (갈4:2). 개혁의 때가 되면 손으로 만들지 아니한 성막, 완전한 성막을 주님께서 완성하십니다 (계11:19, 14:17, 15:5, 16:17). 예수님은 십자가 구원의 역사까지 다 이루신 후 하늘의 지성소인 영광성에 들어가셨습니다. (히10:12)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땅이 진동하는 것은 복음으로 살리시는 역사요 바위가 터진 것은 이제 율법만 고집하는 것을 버리게 하신 것입니다.
52절 무덤들이 열리며 요한복음으로 풀어야 오해가 없게 됩니다. 성령시대가 시작됨으로 열매맺는 생명으로 살리심 받은 모든 자들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잘못된 바리새인의 교훈과 사두개인의 교훈과 헤롯의 교훈에 빠진 자들은 열매없는 사망인 무덤에 있는 자들입니다. 요5:25,28-
무덤은 육신이 썩어지는 곳인데 택자들이 육신대로만 살면 그 육신은 사망으로 (롬8:6) 영이 갇힌 무덤이 되고 하나님의 원수가 됩니다. 누구라도 율법을 잘못 배우면 행함을 앞세워 구원받기 위하여 열심하나 하나도 열매가 되지 않으니 죽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눅9:60-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일락을 좋아하는 자는 죽은 자와 같아 무덤에 있고 자던 성도는 나사로처럼 늘 죄지으면 어쩌나? (요11:11) 조심하다가 아무것도 할수 없는 자리에 떨어지게 하셨다가 다시 생명의 부활로 살리신 역사입니다. (요11:25) 이제 십자가 구원의 역사로 단번에 모든 죄를 다 담당하신 것을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히9:28-
그러나 성령 시대인데 육신만 가지고 사는 자들은 사망 아래 하나님의 원수의 자리에 있고 성령으로 충만치 못하면 자기 의를 내세우며 죄짓지 않으려 애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53절 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글자로 52절을 보면 이들이 예수님보다 먼저 부활한 것으로 보게 됩니다. 그런데 53절에는 예수님 부활 후에 무덤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십자가에 죽으실 때 죽은 자들이 살았고 예수님의 부활 때까지 무덤에 있다가 부활 후에 무덤에서 나왔다 하니 살아난자가 어찌 잠시라도 무덤에 있을수 있나요? 그러면 모든 성경들이 맞지 않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장인데 23절과24절에 부활의 차례가 있다 하셨고 첫 열매는 그리스도라고 하셨습니다. 영적 생명으로 살리심 받은 자들이라고 하면 다 풀리는 말씀인데 글자로 억지로 풀려 하니 난해구절이라고 영의 세계를 보지 못하는 신학자들이 말하는 것이요 생명부활은 알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였다고 하는데 거룩한 성은 성령시대에 보내심 받은 자들이 복음으로 살아나 이제 자기 몸을 성전 삼은 성도들이라는 것이요 오순절 성령으로 충만케 하신 후 열매맺는 삶을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인 것입니다. 행11:26-
54절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백부장은 총독의 명을 받고 십자가 처형을 책임 진자요 시킨 대로 한자입니다. 예수를 지키던 여자들은 예수의 어머니와 다른 마리아요 약간 떨어진 곳에서 구경한 자들입니다.
지진과 그 되는 일들을 보고 그때 지진이 일어났다고 하는데 무슨 지진인가요? 땅이 갈라지는 것이 지진인데 이제 복음의 사람과 율법의 사람들이 가는 길로 갈라진다는 것입니다. 마태로 되어진 일들을 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것을 나타내게 하신 것인데 마태가 직접 들었나요? 그때 당시 십자가 밑에 가까이 있던 여자들의 증언을 들은 것입니다.
심히 두려워하여 가로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두려워하여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은 복음의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두려워서 믿는 신앙은 복음이 아니요 율법입니다. 롬8:14-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과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과 은혜를 상징하며 그 사랑을 깨닫게 되면 자신의 모든 자랑거리들을 보잘것 없는 것으로 여기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모델로 삼아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순종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오로지 나를 쥐에서 구원하시려 희생과 속죄를 나타내주신 것인데 장식으로 쓰는 자들이 많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