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단아하고 아름다운 헐리우드의 여신 모나코의 여왕 그레이스 켈리!
평소에 그레이스 켈리를 동경하고 있었는데 그녀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나왔다.
'그레이스 오브 모나코'
파이 서비스가 종료되어
더이상 콘텐츠를 노출 할 수 없습니다.
자세히보기
그레이스 켈리의 일생
그레이스 켈리는 1929년 11월 12일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의 최대부호가문에서 태어나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녀는 10살때부터 예술아카데미에 다녔으며 그 중에 그녀의 외모는 눈에 뛸만큼 출중했으며 브로드웨이와 TV에서 주로 활동을 하다가 제작자 델버드 만의 눈에 띄어 22살의 나이에 영화'14시간'에 단역을 출현하게 된다.
그 이후 그녀는 프레드 진네만 감독의 '하이눈'을 비롯하여 어드벤처 영화 '모감도' 등에 다양한 영화에 출현하면서 아름다운 미모와 출중한 연기력으로 헐리우드 여신으로 거듭나기 시작한다. 거기에 히치콕 감독의 총애를 받는 등 히치콕의 뮤즈라고 불리우며 (영화에서도 확인되지만) 그레이스 켈리가 모나코 여왕이 되어서도 히치콕이 영화출현 제안하기도 한다.
1954년 그레이스 켈리는 잡지사진 촬영차 유럽의 공국 모나코를 방문하여 모나코 왕자 레니에와의 짧은 만남을 가지게 된다.
레니에 왕자는 단아하고 아름다운 모습의 그레이스 켈리를 보고 첫눈에 반하여 끊임없는 구애를 한다.
그 당시 그레이스 켈리는 여배우로서 명성이냐 결혼이냐를 두고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마침내 레이네 왕자의 청혼을 허락했다는 뜻으로 영화'상류사회'를 통해서 레니에 왕자가 선물한 반지를 끼고 출현했다.
이후, 1956년 그레이스 켈리는 영화계를 은퇴하는 동시에 레니에 왕자와 세기의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모나코 여왕으로서 자리를 잡아가면서 그레이스 켈리의 모든 사생활은 세간의 관심을 받으며 온갖 구설수로 인하여 힘든 나날들 보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처한 위치에서 많은 어려움들을 감수해야했고 그러는 동안 우울증에도 시달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캐롤라인, 알베트와 스테파니를 낳아서 현명한 어머니로서 역할을 하려고 노력했으며 무엇보다 그레이스 켈리와의 결혼이후 모나코의 관광객수가 늘어나면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그레이스 켈리의 피나는 노력으로 모나코 여왕으로 거듭나는데까지 성공했을즈음에
막내 스테파니공주가 온갓 스캔들을 일으키며 언론을 떠들석하게 만드는 일이 생긴다.
그러던 중 1982년 대중들의 관심과 공적인 일들로 심신이 지쳐있던 그레이스 켈리는 막내딸 스테파니가 모는 차를 타고 휴식을 취하고 돌아오는 길에벼랑끝에 차가 추락하면서 스테파니는 그 현장에서 부상을 입고 그레이스켈리는 사망하게 된다.
영화 '그레이스 오브 모나코'의 초점
영화의 초점은 헐리우드 여배우로로서 삶을 은퇴하고 모나코의 레니에 3세와 결혼식을 올린 후 모나코 여왕으로서 삶에 맞춰져 있다.
현명한 아내이자 정치적인 조력자 그리고 인자로운 엄마로서 작은 나라의 국모로서 다양한 역할을 해야했던
그레이스 켈리의 성장스토리라고 해야할까?
유럽인들에게서 겪는 미국인에 대한 편견, 그리고 이로 인한 마찰 등으로 그레이스 켈리는 자주 구설수에 오르고 왕실생활의 적응을
아주 힘들어 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런 왕실의 장벽을 깨기 위해서 그녀는 많은 좌절감을 맛봐야 했고
여배우로서 삶을 다시 그리워하고 동경하는 등 방황하게 된다.
진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기까지 많이 고심하기도 한다.
수많은 방황과 고민 끝에 그녀는 그녀자신이 선택한 삶을 받아들이고
특히 왕비로서라기 보다 가족과 가정을 지켜야된다는 일념하나로 그녀는 모나코의 삶에 적응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그리고 프랑스와 모나코 관계에 엄청난 위기가 닥쳐오면서 그녀는 남편을 돕기도 한다.
그레이스 켈리의 삶은 말그래도 영화같은 삶이였고 진짜 자신의모습이 없다고 생각되어 늘 공허했으며
외로웠다. 하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과 위치에 대한 책임감을 받아들임로써 비로소 자신을 찾는다.
영화를 보면서 인상적이였던 장면이..화장을 지우는 장면이였다.
가면을 벗는다는 느낌이랄까? 진짜 자신의 모습과 조우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