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계시죠?
명절이 다가오면 시댁 문간방에는 흰색 자루가 하루가 멀다하고 늘어간다. 손이 큰 시어머니는 가래떡이 썰기 좋게 마르면 손에 물집이 잡히도록 썰고, 직접 만드신 강정은 종류별로 소분해 사남매에게 공평하게 나눠진다. 어머니의 정성과 사랑은 덤으로 함께 채워졌다. 덕분에 방바닥은 곳곳엔 나뒹구는 떡국과 반쯤 굳은 물엿의 잔재들로 전쟁터를 방불케 하곤 했다. 우리는 시댁에 도착이 무섭게 대대적인 청소를 해야만 했다. 떡국, 강정 말고도 두부와 묵, 엿도 빠짐없이 어머니의 손을 거쳐 탄생하는 명절의 먹을거리였다.
그렇게 살뜰히 자식을 챙기시던 어머니는 일흔 중반을 넘어서면서 치매가 찾아왔다. 같은 연배 어머니들보다 좀 일찍 찾아온 치매는 오랜 지병인 당뇨로 인해 어머니의 건강은 급속도로 나빠지셨다. 시력과 콩팥의 기능이 반 이상 줄었고 몸 안의 장기들은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응급실로 중환자실로 옮겨 다녔고 완전 치료는 꿈도 못 꾼 채 단지 연명만을 위한 치료만 있을 뿐이었다. 그 중간에 손녀 둘은 결혼을 했고 곧 증손녀를 보게 된다. 그러던중 안타깝게도 어머님은 힘겨운 요양병원의 생활을 멈추시고 지난 해 10월 중순께 영면하셨다. 이별을 오래전부터 준비하고는 있었지만 무의미했던 연명치료로 고통의 나날을 보내신 어머님과의 작별은 슬픔보다 덤덤했다. 고통 없는 편한 그곳에서 좋아하시던 노래 많이 부르고 가고 싶은 곳 많이 다니시기를 가족 모두 바라고 소망했기에.
지난 가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어머니 유품을 정리했더니 더 휑해진 시골집은 온기는커녕 서늘한 냉기로 가득했다. 삼형제는 손님 마냥 이 방, 저 방을 서성였고 앉지도 않고 바로 산소 들렸다. 제사 음식과 국화꽃을 들고 산소로 향했다. 집과 가까워 얼마나 다행인지. 산소에서 차례를 지내고 가져간 음식을 나눠먹고 잠시 잠깐 덕담을 나눴고 그대로 헤어졌다.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1시간정도로 해서 끝나버린 이번 설이 낯설고 적응이 안 됐다. 내년 설은 각자의 집에서 보내기로 했고 어머니 기제사는 시골에서 하는 걸로 했다. 물론 약식으로.
만남과 이별은 공존하며 반복된다. 타인이 만나 가족을 이루고 아내로, 엄마로, 며느리로, 할머니로 ……. 시누이를 제외하고는 이미 사위를 맞이했고 또 새 식구인 손자들이 태어날 것이다. 부모님을 중심으로 지내던 시절을 마무리하고 집안의 어른이 된다는 건 가슴 벅차기도 하지만 어깨 또한 무거워진다. 바라건대 내 집에 와서는 평온한 마음으로 잘 쉬다 가길 바랄 뿐이다.
이번 설, 긴 연휴임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 구석은 허전한 마음이 컸다. 아버님과 합장한 봉분의 띠가 봄이 되면 파릇파릇 많이 자라있는 걸 보면 마음이 좀 편해지려나. 아버님, 어머님 안부를 여쭤봅니다.
‘잘 계시죠?’
첫댓글 생은 공수래 공수거 입니다.
우주만물이 영원한게 없습니다.
그래서 자연은 잔인 하다고 하데요.
남은 생 후회 없이 살아야 될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