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 김씨
댐이 들어서고
댐 아래 강의 바닥이 보일 때쯤
그는 고기잡이를 그만 두었다
저물 녘 강에 나가 그물을 치고
아침이면 걷어 들이는 일로 한 평생
강을 떠나본 적이 없었던 그
죽으면 화장한 후
강에 뿌려 달라는 유서와
화장할 돈을 낡은 봉투에 넣어
초막에 남겼다
전기를 들인 적도
살림을 차린 흔적도 없다
그의 삭은 초막 지붕에 널린
낡은 그물을 만지작거리니
잉어, 누치, 붕어, 쏘가리가
꿈틀댔다
몇 마리 손질해 비닐봉투에 담아
돌아왔다
열쇠공 김씨
아침이면 집을 나서서
어둑해지면 동네 골목을 어슬렁거렸다.
당뇨와 혈압을 앓았다.
고장 난 문을 열어주고
구두를 수선해 주었다.
아버지가 어부였던 강을 떠난 후
고향의 버드나무와 은빛 피라미는
흑백사진으로 남았다.
평생 두 여자와 살았다.
두 여자에게서 얻은
두 명의 자식의 천연색 사진은
늘 지갑에 넣어 다녔다.
술 담배를 멀리 했다.
눈이 어두워지고 손이 떨리기 시작하자
일을 접었다.
오늘 새벽 자다가 고통 없이 운명했다.
현처에겐 25평 아파트 한 채,
통장의 1억 3천 4백 2십 만원은
대학 삼학년 때 행불자가 된
죽은 전처소생
큰 아들에게 주라는 유언을 남겼다.
시장통 김씨
믿었던 도끼에 발등이 찍혀
여생을 절름발이로 살다간 사내의
부고를 신문에서 읽었다
그나마 신문에 부고가 실리는 인사라면
유명한 생을 살았을 터
수없이 등에 비수를 맞고도
끈질기게 살아남았던 시장통 김씨의
부고는 문자로 당도했다
무명의 생을 산
시장통 김씨의 상가인 한전병원
영안실 입구에서 나는
봉투에 오만 원을 넣을까
십만 원을 넣을까 고민하다가
이달에 부의금으로 나간 돈을 계산해보니
내 죽으면 부고도 못할 것 같았다
보름달만 똥그랗게 떠 있었다.
트럼펫과 중절모
고등학교 밴드부에서 트럼펫을 불던 그가
홀어미를 두고 가출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이다
부평, 의정부, 동두천, 송산 등 미군부대 주변을 떠돌다
흑인 여군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재즈 트럼펫 주자로 살았다
미군부대 근처
단칸방에 살림을 차린 것은
일흔이 조금 넘어서이다
한 십 년 그를 수발하던
어머니를 닮은 여인이 먼저 세상을 뜨고
딱 한 달 후
그도 긴 유랑을 마쳤다
평생을 같이 한
트럼펫과 중절모 몇 개
유품으로 남겼다
해피 최
젊어선 월남전에 가서
라이한* 하나 만들고
베트콩에게 밀려
중동 공사판으로 떠돌 때
아이와 어미가 행불되고
브라질 농장으로 하나 뿐인 몸 팔러 갔네.
그곳에서 혼혈 둘 만들고
홀로 미국으로 야반도주
삼십여 년 불법체류자로 떠도는
내 이름은 해피 최.
여기선 해피 초이라고 불리지만
국적은 아직 한국이라네.
주차장 관리로 밥만 먹고 살지.
혼자 산다네.
적막은 가장 익숙한 내 친구.
내 이름은 해피 최라네.
파고다 공원에서
나이 들면 성욕도 귀한 손님
잘 접대해서 보내야 한다고
형님 같은 할아버지가 웃고 계신다.
누님 같은 할머니가 웃고 계신다.
낙원상가에 기타줄 사러 왔다가
신문 속 쓸쓸한 매춘기사를 읽고
들러본 파고다 공원
쪼잔한 나는
한눈 한번 제대로 팔아보지 못하고
주차비 무서워 서둘러 귀가하는 중이다.
미국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빠는 집을 나갔어요.
여고 2학년 때
엄마도 집을 나갔어요.
다니던 학교는 그만 둘 순 없었지요.
밤에는 룸에 나갔지요.
수입이 짭짤했어요.
여고 졸업 후 일본으로 진출했어요.
귀국 후에 옷가게를 차렸지요.
이년 만에 다 들어먹고
다시 일본으로 나갔지만
일자리가 없더군요.
누가 나 미국 좀 보내줄래요.
그곳에서는 아직 젊어 보인다던데
나이는 묻지 마세요.
엄마가 집 나갈 때
내 나이도 가져가 버렸어요.
누가 나 미국 좀 보내주세요.
가서 눈 맞추며 살 부비며
힘껏 살아 볼게요.
의정부 교도소
기지촌에서 태어나
미군부대 직장 동료와 옥중 결혼
만 14년 만에
살인범에서 모범수로 출소하는
전직 미군 클럽 무명 여가수
음반 하나 낸 적 없다
여자의 남편은 미 8군에서
귀화한 흑인 베이스주자
현직 자동차 수리공
취미 소주 복용
빛바랜 기지촌 골목 끝에 주차된
낡은 자동차를 닮았다
여자의 남편이 시방 두부 한 모 사들고
의정부 교도소 정문 앞에 섰다
눈만 펑펑 내리는.
아다지오
-노광래에게
아우가 보내 준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반복해서 잘 듣고 있다네
오래 익은 뒤란의 장독에서
풀려나오는 슬픔들
하나하나 손끝에 묻어날 때까지
새벽마다 퍼 담고 있다네
오래 잊혔던 것들을
은밀히 일깨우는 첼로의 현
오래 가두어 두었던
갈기 푸른 말 한 마리
고개 쳐들고
노쇠한 콧김을 뿜어대곤 했지
내민 손 마다
왜 세상은
오늘도 흰 눈발만 담아주고
잡히지 않는 햇살만 내어주느냐고?
그래도 그게 어디인가
아직 내밀 손과
상처받을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
혹자는 이런 나를 염세주의자
혹은 패배주의자로 읽고 가곤 하지만.
풍문
꿈속에서 그를 보았다.
여전히 젊고, 우울해 보였다.
흰 양복을 입고 비 그친 비포장 길
물웅덩이만 골라 밟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흰 바지에 흙탕물을 묻히진 않았다.
몹시 야위어 보였다.
재래식 부엌 하나 방 하나 딸린 집에서
혼자 몸살을 앓고 있던 그.
방 안에는 삼양라면 봉지가 흩어져 있었다.
그가 음독자살한 건
35년 전 음악 교사로 발령 난 해이다.
그를 의혹에 시달리게 하던 여자는
아들 하나 결혼시키고 혼자 산다고 했다.
그의 아들이라고도 하고
아니라고도 했다.
분신(分身)
그는 하루 세끼 꼬박꼬박 챙겨 먹으면서
먹고 살기 힘들다는 말이 입에 붙어있었다
담배 값이 두 배로 올랐음에도
여전히 잘 사 피우고
철이 되면 옷도 잘 사 입었다
틈만 나면 해외여행도 하고
골프도 치러 다니고
술시가 되면 친구들과 술을 마셨다
음악은 듣지 않았다
가끔 돈이 될지도 모르는 그림만 보러 다닐 뿐
독서는 해 보려 노력했지만 그의
체질은 아니다
그의 소망대로 그에겐
갑자기 하늘에서 돈벼락이 떨어지거나
로또에 당첨되는 일 따위는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저녁 뉴스에 등장했다
골목길에서 사소한 시비 도중
자동차를 서서히 후진시킨 후
갑자기 돌진하여 시비를 가리던 사람을 받아 버렸다
느와르 영화광이었던 그
그의 변호사는 그의 정신감정을 의뢰하겠지만
감옥에서 오래 머물 것이다
그는 내 속에 오래 숨어살던 분신이다.
돈
그가 할 줄 아는 것은 장사 뿐 성실하게 물건을 떼다가 파는 상인
의 길을 걸었다. 그의 재산은 알곡처럼 불어났다. 돈 모으는 재미 외
에 취미가 없었던 그. 의식을 잃기 전 그는 죽음과 수월한 거래를 위
해 종교에 귀의했다. 그의 장례식은 화려했으며 그를 추모하는 사람
들은 모두 부자들이었다. 그는 한 번도 돈을 벌어 본 적이 없는 외아
들에 게 아래와 같은 유언을 남겼다.
'세상엔 돈 버는 사람 따로 쓰는 사람 따로 있단다. 하지만 돈은 버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쓰는 사람의 것이다. 아들아, 그러고 보니 애빈
한 번도 돈의 주인인 적이 없었구나!‘
다시 읽는 시
사십여 일을 예루살렘 통곡의 벽에서
단식과 밤샘 기도로 보낸 여자의 목소리에선
쇳소리가 났다.
세상의 무엇이든 다 잘라버릴 듯한
그 여자의 눈빛,
가족관계는 묻지 않았다.
삼십여 년 명상 수행한 사내의 목소리에선
바람소리가 났다.
휑한 눈빛에서도 바람이 불었다.
색스폰 주자인 아들 하나 두었다.
약방 집 아들로 태어나 평생 무면허 한의로 살아 온
그의 처방전엔 늘 사람이 붐볐다.
그를 찾는 사람들은 신통방통 몸이 좋아졌다.
아이 둘 엄마를 딸려서 미국으로 유학 보냈다.
고등학교 다니다 출가한 그는 사십 년 동안
동안거, 하안거, 한 번도 선방을 벗어난 본 적이 없다.
만행 시 머무는 토굴엔 늘 사람이 꼬였다.
토굴 앞엔 늘 고가의 외제 승용차들이 서 있다.
내 사는 골목, 삼십여 년 간판을 바꾸어 본적 없는
전파사 주인은 동네 축구 동아리 회장이다.
늘 반바지차림의
그의 굵은 종아리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내 딸아이가 다닌 초등학교 1회 졸업,
애비 또래의 딸아이의 선배이다.
시간은 있으리라, 시간은 있으리라,
당신이 만나는 얼굴들을 만날 얼굴을 준비할 시간은,
살인하고 창조할 시간은 있으리라,
당신의 접시 위에 문제를 들었다 놓는
손들의 모든 일들과 날들의 시간은.
T.S. Eliot의 <프루프록 연가>를 이십 년 만에 다시 읽는 아침이다.
서랍
텅 빈 서랍을
궁금해 줘서 고맙다
셀 수 없는 모욕은
압축 냉동된 채 숨어있어
눈에 띄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궁금하다면
삐걱거리는 소리까지
통 채로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