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수업에 바라는 점
특별히 없습니다.. 저녁에 진행되는 수업이니 너무 지루하지 않게 이끌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2. 그늘 윤동주 편을 읽고
그늘 윤동주 편을 읽고 윤동주 시인에 대해 처음 알게 된 사실이 있었습니다. 바로 윤동주 시인은 동시를 썼다는 겁니다. 책에 보면 처음과 마지막을 동시로 장식했다고 하고, 두 남동생 역시 동시를 쓰는 사람이라고 했었는데 그래서 윤동주 시인의 가정이 조금 궁금했습니다. 네 형제 중 세 명이 동시를 쓸 정도로 순수하게 자라날 수 있던 그의 가정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윤동주 시인에게 가장 부러웠던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정병욱의 존재입니다. 자신이 쓴 시를 읽어주고, 거기에 덧붙여 조언까지 해주는 존재가 무척이나 부러웠습니다. 윤동주 시인 역시 그 조언을 받아들여 시를 덧붙이고는 했는데 그러한 두 사람의 글로 이어진 우정이 무척 부러웠습니다. 윤동주 시인의 무덤은 가기가 조금 힘들다고 했는데 저는 오히려 그래서 윤동주 시인의 무덤을 한 번쯤은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왠지 쉽게만 살아오지는 않았을 그의 인생길을 조금이나마 경험해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길이 윤동주 시인의 인생 전부를 보여주진 않더라도 단편적으로나마 경험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는 도스토예프스키, 백석 시인을 좋아하고 그들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아 새로운 작품을 만들고, 또 유명 시인이 탄생하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한 좋은 영향을 받아 좋은 글을 쓰는 윤동주가 새삼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3. 가을, 윤동주 생각을 보고
내용 처음에 일본 유명 대학에서 윤동주 시인을 알리는 캠페인을 하는 것을 보았다. 그때부터 일본인들에게 괜히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한국에서도 그렇게 윤동주 시인을 알리자며 하는 캠페인이 없는데 오히려 일본에서 그렇게 해주니 말이다. 내용 중 윤동주 시를 안다는 건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아는 것이라는 내용이 있었다. 일본인이 그렇게 해주는 말에 참 고마움을 느꼈다. 한국에서만 느끼는 줄 알았던 한일관계를 일본에서도 한국 시인을 통해 알아가려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윤동주 시인을 사랑해 주는 것만으로도 참 고마웠다. 조국에서 마지막으로 쓴 시라는 참회록은 내가 참 울면서 봤던 시이다. 윤동주는 조국을 떠나며 어떤 마음으로 그 시를 썼을까. 나는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또한 윤동주 시인이 쓴 쉽게 씌어진 시는 또 어떤 마음으로 쓴 것일까. 자신을 스스로 깎아내리던 그 느낌은 과연 어땠을까. 보는 내내 눈물이 났다. 홀로 일본에 살며 가슴 아픈 일이 많았을 것 같다. 또 하나 감사했던 건 일본 분들이 윤동주 시인의 시를 읽는 것. 내가 알기로는 한국 시는 번역이 힘들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이 어떻게 윤동주 시인의 시를 번역하고 읽을까 싶었는데 한국어로도 그렇게 연구를 하시다니 참 감사한 일이다. 윤동주 시인의 시비를 세우기 위해 노력을 하는 많은 사람들. 우리나라에서 윤동주 시인의 시비가 유명한 곳에 있는 걸 난 별로 못 봤던 것 같다. 일본에서도 그리 노력을 하는데 한국에서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일본 분이 "그럴 죽인 민족"이라는 말을 했다. 그 말에 그 분 뿐만 아니라 나도 많이 울었다. 윤동주 시인을 사랑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니 그런 죄책감은 느끼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이 동영상을 통해 내가 몰랐던 윤동주 시인을 보다 더 많이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4. 가장 좋아하는 윤동주 시
참회록(懺悔錄)
윤동주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王朝)의 유물(遺物)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懺悔錄)을 써야 한다.
―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해설하기에 앞서 내가 말하는 모든 것은 순전히 나의 생각일 뿐이라는 것을 밝힌다. 여전히 작품 해석을 하는 것은 나에겐 너무나도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앞 영상에서 보았듯 이 시는 조국에서 쓴 마지막 시라고 했다. 정확히는 조국을 떠나며 쓴 시라고 했다. 그렇게 쓴 시가 참회록. 그렇다면 무엇을 참회한 걸까. 조국에서 열심히 독립운동을 하고 있는 동포들을 등지고 홀로 일본으로 건너온 것을 참회하는 것이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 채 일본으로 떠나는 본인의 모습을 얼마나 보기 싫었을까. 책이나 인터넷을 보면 '젊은 지성인임에도 일제에 저항하지 못한 무기력한 삶을 반성하고 일제강점기의 참담하고 암울한 현실과 자아의 모습을 성찰하고 있다.'라고 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윤동주는 일본에 가서 본인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일본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시에서 말하고자 하는 참회는 아무것도 못하는 무기력한 지성인으로서의 참회가 아니라 동포들을 한국에 두고 떠나는 미안함의 참회인 것이다. 슬픈 사람의 뒷모양은 한국을 등지고 일본으로 건너가는 본인의 뒷모습인 것이다. 거울을 닦는 것은 조국을 떠났어도 본인의 참모습을 잃지 않기 위해 매일 자신을 다시 바라보는 것이다. 나의 해설은 이러하다.
첫댓글 정병욱의 존재에 대해선 미처 생각해본 적 없었는데 확실히 부럽네요 그 점은
작가가 작가를 만든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지
윤동주 참회록시는 저도 읽을때 마다 슬픈것 같아요 . 타과생이지만 정말 잘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