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뿌리 Father and Mother> 한지에 아크릴릭 407×227cm 1997
가족, 이웃 그리고 공동체 작가 임흥순 인터뷰
/ 김미정
가족은 인간이 태어나서 가장 처음 만나는 공동체이다. 그래서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속한 가족이 처한 환경과 상황에 영향을 받으며 자라고, 이 경험들이 곧 세상을 보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작가 임흥순은 가난한 노동자였던 가족의 삶에 대한 사적인 기록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이후 작가의 시선은 가족과 비슷한 환경의 타자들로 확장되어 현재는 지역 공동체, 사회 구조 안에서 보이지 않고 소리 내지 못하는 이들과 소통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다. 상암동에 있는 작업실에서는 곧 선보일 <위로공단>의 편집 작업이 한창이었다. 작가는 이제 또 다른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가족에 대한 작업을 하는 작가를 찾다가 작가님이 떠올랐다. 학부 때 작가님 논문을 인상 깊게 보았고 그 때 처음으로 초기 작업이 가족을 그린 회화라는 것을 알았다. 가족으로 작업을 시작했지만 현재는 그 관심이 공동체로 확장되어 지역 공동체, 영화까지 활동범위를 넓히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 회화작업은 학생 때 이후로 안 하지 않았나? =맞다. 대학원 초까지 하고 그 이후 하지 않았다. 학부를 늦게 들어가서 그런지 새로운 매체보다는 전통적인 재료를 사용하는 회화가 나랑 맞았다. 그러나 가족 때문에 바뀐 것 같다. 가족을 그리다가, 가족이야기가 회화보다는 다른 매체로 이야기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느 날 학교 조교실에서 비디오 카메라를 빌렸는데, 처음엔 일종의 홈비디오 형태로 부모님이 내 집과 형 집을 찾아가는 과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작품을 만들려고 한 것은 아닌데 뷰파인더를 통해 그 동안 같은 길임에도 내가 못 보았던 장면들이 있었고, 그것을 다시 정지를 시키든, 앞뒤를 돌리든 다시 살펴볼 수가 있어 좋았던 것 같다. 가족의 어려운 삶과 현실을 알린다기보다는 가족의 삶을 다시 보고 확인하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였고 그렇게 영상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인사동 피크닉> 캔버스에 유채 227x180cm 1998
-<성남 프로젝트>도 그렇다면 이때 시작된 것인가? =그렇다. 대학원 때 박찬경 작가와 김태현 선배가 주축이 되어 <성남 프로젝트>를 했었다. 경원대 출신 작가, 강사,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서 박용석, 조지은, 김홍빈 등의 작가들과 함께 했었다. 이렇게 해서 팀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팀 작업은 가족, 사적인 것에 함몰되지 않고 가족 공동체와 지역 공동체, 이 두 가지를 함께 비교하면서 작업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부모님이 노동자였기 때문에 이후 외국인이주노동자, 아버지 세대들에 대한 작업들, 주거공간에 대한 작업들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영구임대아파트의 경우 거주민들이 유령처럼 갇혀 산다고 생각했다. 이들이 과거에는 눈에 보이는 존재였다면 지금은 비가시적인 존재가 되어 살아간다. 또한 어려울 때 나누고 함께 했던 공동체라는 의식도 사라졌다. 이런 아파트에서 공동체란 가능할까, 만들 수 있을까 등 찾고자 했던 것이 <보통미술 잇다> 프로젝트였으며 성산과 등촌에서 각 2년씩 4년 동안 진행했다.
왼쪽) <비념> 스틸컷 / 오른쪽) <비념> 포스터
-가족을 그린 회화 작업을 가족들이 직접 본 적이 있는가? =졸업 전시 때 보신 적이 있다. 3학년 때부터 가족에 대한 작업을 했던 것 같다. 당시 개인적인 관심사는 거대한 역사가 아닌 역사였다. 그래서 흔히들 전통을 현대화하는 작업, 일종의 민화나 벽화 등을 현대미술로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했었다. 고분, 무덤, 왕릉을 답사하고 그것을 그렸는데 너무 뜬구름 잡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에게 가장 가까운 역사가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가족을 찾게 되었다. 가족애보다는 가족의 삶, 가족이 위치한 계급, 가족이 살고 있는 공간 등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던 것 같다.
-가족을 그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 가족의 삶이라고 했지만 결국 내 삶을 그리는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의외로 나에게 가족이 편했다. 대상으로서 가족이 편하다는 것이다. 몇 십 년 동안 서로의 관계가 이미 형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가족들은 빈민, 노동자였지만 상황에 분노하기보다 수긍을 하면서 열심히 사셨던 것 같다. 물질적으로는 풍족하지 않았지만 정신적으로는 부족하지 않게 살았다. 물신주의와 경쟁사회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이런 것들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가족의 환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가족 안에서 교육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의 부모님은 이런 부분의 지식들은 잘 모르셨겠지만 어쨌든 가족 안에서 개인들의 삶에 충실하려고 하시지 않았을까. 말로 표현으로 전달되지 않았지만 다른 방식으로 왔을 거라 생각한다.
-당시 처한 상황이나 환경 때문에 부모님이 원망스럽지 않았나? =그렇지 않았다. 부모에 대한 분노보다 ‘이렇게 열심히 사시는데 왜 똑같을까, 왜 점점 더 집이 작아질까, 열심히 안 산 것도 아닌데….’ 이런 슬픔은 있던 것 같다. 하지만 당시 회화 작업에서 어두운 기운이 느껴지는 것은 정서상으로도, 당시 상황으로도 어쩔 수 없긴 했다. 2-30대에는 자격지심과 피해의식, 3류 인생에 대한 분노가 있었으니까. 어떻게 하면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지를 매일 매일 고민했다. 이 분노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할 때 오는 것이고 나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이 사회 자체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게 만들고, 몇 가지의 모델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맞추기를 바라지 개인의 장점을 살려주는 교육을 실행하지는 않는다. 어쨌든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가장 바라는 것은, 그리고 작업을 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각자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그런 것에 힘이 될 수 있는 사례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한 사례를 만든다는 것은 어떤 뜻인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작품이다. <보통미술 잇다>나 <금천미세스>처럼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 참여자들이 성취감을 느끼고 그 성취감을 또 다른 사람들과 같이 나눌 수 있는, 그런 것이 하나의 사례가 아닌가 싶다. 이 프로젝트들 안에서 직접 만나고 느끼는 것과 단순히 내 가족의 이야기만 하는 것은 상당히 차이가 있다. 이 사람들도 가족인거고, 좀 더 넓게 보면 소모임이 되는 것이고 그 모임이 공동체가 되고 곧 도시가 된다. 거시역사를 보는 것보다 개인 개인의 삶, 가족의 관계 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금천미세스> 도 참가자 한 분 한 분이 그것을 몸으로 느꼈을 때의 순간이 굉장히 중요했고 곧 그것이 하나의 예술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예술 활동이라는 것은 꼭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비념>도 사실 공동체와 관련이 있다. 첫 개인전, 첫 작업을 내 가족에서 시작했다면 <비념>은 동반자인 김민경 PD의 집안의 가족사이기 때문에 또 다른 연결이기도 하다. 그것을 찾아가면서 돌아가신 김민경의 할아버지, 제주도 공동체, 왜 그것(4·3)이 발생했을까 등을 고민 했던 것 같다.
금천미세스와 함께하는 지역문화 & 미술공부 2011 -한국 사회가 가진 독특하면서도 때로는 끔찍한 가족애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는데, 한국의 가족애는 곧 사회에서 ‘내 것’을 지키려는 움직임으로 확장되는 것처럼 보인다. =가족은 사실 피곤한 것이긴 하다. ‘가족애’가 문제가 되는 부분은 우리 가족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꼭 한국 사회를 주도해 온 부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만’ 이라는 부분은 사실 몇 십 년 안 된 것 같다. 나는 가족애의 그렇지 않은 부분을 경험했던 세대이다. 경쟁사회, 물질만능주의가 가족애를 변질되게 한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부분이 가족들과 맞물려서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는 것이다. ‘나’라는 존재가 중요한 건 맞다. 하지만 나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남을 중요시하지 않게 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보통미술 잇다>의 경우 임대아파트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임대아파트라는 곳은 굉장히 폐쇄적이고 부정적인 곳이다. 그 분들을 위해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라기보다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드러낼 수 있을지에 주목했다. 사회는 불행한 것보다 행복한 것을 보여주려고 하기에 이런 문제를 그대로 봉합한다. 하지만 봉합이 아닌, 문제를 직면하고 치료해야 한다. 예술은 이런 문제들을 풀어내서 주민들이 쉬쉬하지 않고 어떻게 해결해 나갈 수 있을지를 의논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주민들이 직접 만나고, 접촉하고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러나 임대아파트는 상황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만든 공간임에도 사는 사람들조차도 서로를 무시하며 싫어한다. 여기서 어떻게 공동체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인가. 정말 개인이 고립되게 된다.
-사회적으로 고립된 이들 그리고 그들의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이어 영화에서도 그대로 나타나는 것 같다. 현재 작업 중인 <위로공단>에 대한 설명을 부탁한다. =그 동안 개인, 지역, 공동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해 왔다. 그 연장선상에서 노동에 관해 조금씩 작업을 했지만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2010년 금천구에 위치한 금천예술공장에 작가입주 공모를 준비하면서 기획을 했다. 금천예술공장은 예전 구로공단이 있던 곳이기도 했다. 이후 구로공단에서 일하셨던 여공들을 시작으로 대형마트, 삼성반도체, 항공승무원 등 여러 직업군 안의 여성노동자들을 인터뷰 했다. 전반적으로 한국사회에서 노동과 노동자의 의미는 무언지, 그런 의미를 찾아보고 질문하는 영화다.
임흥순 / 1969년 서울 출생. 경원대 회화과 및 동대학원 졸업. 대안공간풀(2001), 일주아트하우스(2003), 스페이스크로프트(2009) 등에서 개인전 개최. www.imheungsoon.com / blog.naver.com/imheungsoon
김미정 / 학부에선 회화를, 대학원에서는 예술학을 전공했다. 만나고 부딪히고 경험하는 것을 통해 예술계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늘 고민하며 살아간다. 현재 고양창작스튜디오 코디네이터로 근무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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