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5일 목요일
저녁식사를 마칠무렵 형님한테서 전화가왔다.
남해 어머니가 아버지 식사 준비하면서 국을 끓여서 다용도실에서 들고 나오시다 넘어 지셔서 무릎을 다치셨다고
그래서 어머니 병원도 모시고 가야 하지만 아버지가 식사도 못하셔서 누가 빨리 내려가봐야 하는데 형님을 낼 일정이 바빠 내보고 시간이 되면 좀 내려가라고 전화가 왔다.
일단 알겠다고 하고 먼저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더니 어머니는 왜 굳이 내려올라고 하냐며 안내려와도 된다는 투로 말씀하셨다.
그래도 내일 일찍 내려 가겠다고 하고 일단 회사로가서 급한 결재건들을 처리하고 내려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형님하고도 통화를해서 그렇게 전했다
7/16일 금요일
다음날 일찍 집사람을 태우고 회사로가서 난 결재서류들을 좀 처리하고 8시20분쯤 남해로 출발했다.
내려가는 도중 어머니께서 전화가 2통이나 오며 언제 도착 하느냐며 어제와 사뭇 다르게 고통을 호소하시며 빨리 도착하라는 독촉전화가 계속됐다
드디어 남해에 10시가 조금 넘어 도착하니 어머니는 다리가 아파 꼼짝도 못하시고 아버지는 어제 저녁부터 식사를 못하시고 계셨다.
어머니의 몸 상태를 물어보니 다용도실에서 아버지 식사준비를 하면서 가스렌지에 끓이던 국냄비를 들고 들어오시다 넘어지면서 무릎을 심하게 다쳤는데 꼼짝 할 수 없고 통증이 너무 심하다고 하셨다.
일단 두 분이 다 식사늘 못하셔서 밥부터 차려서 오니 어머니는 식사를 입에도 안대시고 아버지만 식사를 시작하셨다.
그리고 난 119에 먼저 신고를했다.
다리를 조금도 움직일수가 없으니 119를 불러 들것으로 어머니를 모시는게 맞을거 같았다.
119를 부르고 조금후 119가 도착했고 구급대원들이 거실로 들어왔다. 신발을 신은채로....
그래서 119대원들은 어머니를 들것으로 옮겨 싣는데 어머니는 움직임에 따른 다리 통증을 계속 호소하셨고 그런 난리중에도 아버지는 식사를 계속하셨고 119대원들이 어머니를 들것으로 옮기시는데 동선이 자꾸 아버지 식사하시는 자리와 겹쳐서 밥상을 가운데방 쪽으로 옮겨도 그 난리통에 식사를 계속 하고 계셨다.
어머니를 들것으로 옮긴 대원들은 혈압과 체온 체크를 했는데 혈압은 조금 높아도 괜찮은데 체온이 37.8도로 높다고 하였다
몇번을 체크해도 그렇게 나오자 일단 구급차로 옮겨 차내 에어컨을 세게 틀어놓으먼 체온이 내릴수도 있다고 그렇게 해보자고해서 그렇게 하자고 했다.
7월중순의 한낮 기온은 밖으로 나오니 장난이 아니게 더웠다.
마당에서 한참을 대기해도 어머니 체온은 내려가지 않았다.
체온이 높으면 코로나 의심환자로 구분되어 격리 병실로 바로 가야하는데 남해에 격리병실이 있는지 119대윈은 병원측과 통화를 계속했다
그 사이사이 난 형님과 통화를 계속하며 남해의 상황을 공유하고 있었다.
남해병원이냐 진주 경상대학병원이냐를 고민하다 진주 경상대학병원으로 갈수 있으면 진주 경상대학병원으로 가자고 의견을 모았다.
119대원은 더 이상 출동한 장소에 오래 머무를수 없으니일단 남해병원으로 내려가자고 했다.
그래서 난 진주 경상대학병윈으로 바로가면 안되겠냐고 하니 경상대학병원은 응급실에 환자가 더 많아서 노상 뙤악볕에서 한나절은 기다려야하고 특히 어머니는 열이 높아 격리실로 바로가야 하나 격리실이 거기도 꽉 차서 밖깥 노상에서 한나절은 기다려야 한다면서 진료가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래서 할수없이 일단 남해병원으로 향했다.
남해병원 응급실에 도착하여 119대원이 응급실로 가서 응급실 간호사와 얘기를 좀 나누더니 간호사가 체온계를 들고 어머니께 와서 체온을 쟀다
정확하지 않지만 대략 37.5~6도 나왔던것 같다.
집에서 보담 0.몆도 내린것 같았다.
응급실 간호사가 어머니 코로나 백신 최종접종이 언제 있었느냐 물어보길래 어머니가 5윌 언제라하니 알겠다고 응급실 과장한테 말해보고 오겠다고 하고 들어가더니 곧 남해벙원 응급실 입원이 결정됐다.
그리고 구급대원의 들것이 내려지고 어머니는 남해병원 응급실의 침대로 옮겨 지셨다.
옮기는 도중에도 어머니는 계속해서 통증을 말씀하시고 이제 병윈 도착했으니 걱정마시라고 위로의 말을 드렸다.
병원에 도착하니 우선 수액부터 놓았다.
그리고 엑스레이 사진을 찍었다.
사진 결과는 바로 나왔고 병원장이자 정형외과 과장인 장병세가 보호자를 불러서 갔더니만 엑스레이 사진상으론 뼈가 금간 곳은 없고 일단 mri를 찍어보자 했다.
무릎에 피가고인듯 물이찬듯한데 mri결과 피가 찼으면 10만윈 물이 찼으면 30만원의
비용이 든다고 했다.
그리고 양쪽무릎의 초음파도 해보자고 해서 그러자고 했다.
초음파는 한쪽에 10만윈씩 양쪽20만원이라고 했다(나중에 정산결과는 한쪽에 20만원 총 40만원 청구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mri를 찍었는데 굳이 초음파를 찍는다는거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
남해병원에서는 환자가 내원하면 자기들끼리 속으로 저 환자는 얼마짜리 환자 이 환자는 얼마짜리 환자로 딱 벌써 견적을 내는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mri결과 오른쪽무릎 종지뼈에 실금이 갔고 절대로 움직이면 안되고 만약 움직여서 금간뼈가 더 벌어지면 아주 대수술을해야 한다고 겁을줬다.
그리고 환자에게 가서 무릎에 찬 물인지 피인지를 뽑아내야 한다고 하며 어머니 에게노 갔다.
그리고 주사기 바늘로 무릎쪽에서 고인피를 주산기 1/2~2/3정도를 빼냈다.
그리고 무릎은 통깁스를 해야한다고 이야기하더만 결국 반깁스 상태로 계속 있었다.
조금후 병실 입원이 결정되었다.
지금 기억으로는 212호실로 기억되는데 2인실로 해 달라고 했다.
형님하고 통화시 어머니가 입원하고 나면 아버지를 돌볼수 없으니 아버지도 지금 현재로 몸이 많이 안좋으시고 하니 같은 병실에 입원을 하시고 계시면 아무래도 병원의 케어를 받을수 있을것 같아서 그렇게 의논하고 난 간호사실에다 일단 어머니 병실에 다른환자를 들이지 말라고 하니 자기네들도 그게 가능한지 또 내과 과장이 그렇게 아버지 입원을 허락해줄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래서 일단 내과 과장과의 면담을 요청하고 병실 요양보호사가 있다고 하길래 형님과 통화후 어머니를 요양보호사에게 맡기기로 했다.
잠시후 요양보호사가 오고 요양보호사의 간단한 인사와 주야 각각 2명의 요양보호사가 번갈아 가며 같은 병동의 환자들을 돌본다 하면서 필요한 집기들을 적어주며 준비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장병세 원장이 병실을 방문하여 절대 움직이면 안되고 만약 움직여서 금간 뼈에 무리가 오면 대수술을 해야한다고 잔뜩이 겁을주고 갔다.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어머니는
"내 오면서 입고온 옷 어딨네? 그 바지에 돈이 들어 있는데 확인해 보라고 하셨다"
옷장에 넣어둔 바지 호주머니엔 5만원짜리 지폐한장이 구깃구깃 접혀져 있었고 확인 시켜 주었다.
조금 이따 난 병원내 구내 매점에서 각종 준비물과 물,그리고 요깃거리를 사서 가지고 왔다.
그리고 하루 내내 아무것도 안드셨는데 배 안고냐고 뭘 좀 드시라하니 어머니는 아무것도 안 먹는다고 했다.
그래서 물이라도 좀 드시라 했더니만 물로 목만 좀 축이시고 그만 드셨다.
조금후 간호사실에서 내과 과장의 면담이 가능하다고 불러서 갔다.
그 내과 과장이 아버지 투석 담당 의사라서 이야기는 쉽게 풀렸다.
상황 설명하고 어머니와 아버지를 같은 병실에 입원을 할수 있도록 부탁을 했더니만 의사는 해줄수는 있는데 원칙적으론 안되니 아버지의 동의를 얻어서 오면 입원 조치는 해 주겠다고 했다.
난 집에서 수건이랑 기타 필요한것을 챙기러 집으로 가야했다.
그리고 약 드시는것 뭐 드시고 어디에 있냐고 물으니 문갑안에 형압약 위장약 치매 예방약이 있다고 챙겨오라 하셨다.
그리고 집에와서 아버지께 그동안의 경과를 말씀드리고 조심스레 병원 입원을 권하니 아무말도 안하셔도 일단은 그만 두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아버지도 같이 병원에 입원 하셨으면 어머니 이상을 더 빨리 알아차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준비물을 챙겨서 병원에 오니 아침부터의 오랜 피로가 몰려와서 잠시 어머니 옆 침상에 같이 나란히 누웠다.
그리고 몸은 좀 어떠냐하고 물으니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하나도 안 아프다 하셨다.
아마도 무릎에 찬 고인 피 때문에 통증이 오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조금 누워 있으니 간병인이 저녁식사를 가지고 왔다.
어머니를 앉히고 식사를 갔다주니 두어 숟가락 입을 대는둥 마는둥 하시며 숟갈을 놓으셨다.
왜 입맛이 없으시냐고 뭐든지 많이 드셔야 빨리 낫는다고 하니 어머니는 다른 걱정으로 식사를 안 하신거였다.
평생 당신 몸을 다른 사람한테 맡겨본적이 없으신데 밥을 많이 드시면 차고 계신 기저귀에 변을 봐야 하는데 아무리 간병인이라 해도 그게 당신 생각에 용납이 되지 않으신거 같다.
그렇게 밥 몇숟갈로 대충 저녁을 드시고 양치질을 하고 또 다시 누우셨다.
그렇게 한동안을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보내다가 난 집으로 올라왔다.
7/17일 토요일
아침 일찍 아버지 신장투석 관계로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갔다.
너무 이른 새벽이라 병실에 들러 어머니를 만나 보려다가 아버지를 모시러 와서 들려 보려고 그냥 왔다.
그리고 평소 보다 더 이른 시간에 아버지를 모시러 병원으로 가서 어머니 병실에 들렀다,
병실 간호사에게 물으니 간밤에 별다른 사항은 없었다 하였다.
그리고 병실로 가니 어머니는 편안한 모습으로 누워 계셨고 통증은 한나도 없으시다고 했다.
아침 식사는 또 몇 숟갈 안드셨다고 했고 대변은 안봤지만 소변은 보셨다 했다.
신발을 좀 갖다 주라 하셨다
왜 그러냐고 하니 화장실 갈때 신을라고 하신다면서 그랬는데 ...
내가 그냥 안된다고 했다.
의사가 절대로 움직이면 안된다고 만약 움직이다 뼈 금이 더해져 갈라지면 대수술을 해야한다고 했다면서 의사가 했던 꼭 같은 이야기를 다시 해줬다.
만약 그때 신발을 갖다 주었다면 또 어땠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다시 든다.
그렇게 어머니를 병문안하고 다시 신장 투석실로 아버지를 모시러 갔다.
그때만 해고 아버진 투석후 제대로 걸을수도 없어서 간호사가 병원 출입구까지 부축을 해왔다.
지금은 코로나 팬데믹이라 보호자가 투석실 안으로 들어 가지를 못했다.
난 아버지를 부축해서 겨우 차에 태우고 집으로 왔다.
7/18일 일요일
코로나로 인해 외부인의 병실 출입이 제한되어 있어 더 이상 어머니 병문안은 이루어 지지 않았다.
대신 가족들 모두 어머니와 전화통화로 병문안을 대신하며 안부를 여쭐수 밖에 없었다.
전체적으로 어머니의 몸 상태는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는것 같았다.
아버지는 진우 엄마가 남아서 당분간 보살피기로 하였다.
그리고 오후에 부산으로 오면서 어머니하고 통화를 했는데 자꾸 속이 더부룩 하다는 말씀을 하셔서 일단 간병인이나 간호사한테 이야기해서 조치를 좀 받으라고 했다.-그게 천추의 한으로 남을줄이야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