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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 워셔블의 여행
미하엘 엔데 (독일)
옛날에 워셔블이라는 낡고 귀여운 곰인형이 있었어요.
처음 주인이었던 아이가 곰인형의 귀에 달린 종이에 붙은 글자를 그대로 부르기 시작하면서 워셔블(물에 빨아도 된다는 뜻)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지요.
그것도 벌써 오래전에 있었던 일이에요.
이제 그 아이는 곰인형을 갖고 놀기에는 너무 많이 커버렸어요. 학교에 다니느라 너무 바쁘거든요.
그런데 워셔블도 그 긴 세월을 아무 흔적 없이 살 수는 없었어요.
이곳저곳을 헝겊으로 기운 자국이 남았고 그동안 자주 빨고 빗으로 빗어주는 바람에 털이 거의 다 빠져버렸거든요.
그래서 요즘 워셔블은 소파의 한쪽 구석에 틀어박힌 채 멍하니 앞만 쳐다보면서 시간을 보내기 일쑤예요. 하지만 날마다 한 자리에만 앉아 있는 것은 정말 따분한 일이에요.
그래서 워셔블은 조금씩 몸을 흔들며 춤을 춰보기도 해요. 물론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을 때만 그렇게 하지요. 다른 곰인형들이 다 그렇듯이 워셔블도 춤을 잘 못 추는 것을 몹시 부끄러워하거든요.
어느 날, 늘 그렇듯이 워셔블은 소파의 한쪽 구석에 앉아 있었어요.
그때 파리 한 마리가 날아와서 주위를 빙빙 돌더니 워셔블의 콧잔등 위에 내려앉았어요.
“안녕!”하고 파리가 말했어요.
워셔블도 “안녕! 하고 말하면서 파리를 곁눈으로 흘겨보았어요.
“뭐하니?”하고 파리가 물었어요.
“여기 그냥 앉아 있어.” 워셔블이 대답했어요.
“내 눈에도 그렇게 보이는구나.”
파리가 윙윙대며 다시 말했어요. “그런데 왜 그렇게 앉아만 있어?”
“그냥 앉아 있는 거야.” 파리가 앞다리를 비비며 물었어요.
“그래도 그렇게 앉아 있는 이유가 있을 거 아냐?”
“없어. 그런 게 꼭 이유가 있어야 해?” 워셔블이 물었어요.
“그럼. 그게 얼마나 중요한데! 그게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거야. 예를 들어서 나는 빙빙 날아다니고, 세상 모든 것을 맛보기 위해서 살거든. 너는 나처럼 빙빙 날아다니면서 세상 모든 것을 맛볼 수 있어?”
“아니 난 그런 거 못해.”
“뭐라고? 기가 막혀서!” 파리는 한심하다는 듯이 윙윙대며 말했어요.
“자기가 왜 사는지도 모르다니! 넌 바보야! 정말 형편없는 바보라고!”
파리는 곰인형의 머리 위를 몇 바퀴 돌면서 콧노래를 불렀어요.
“바보래요~ 바보래요~ 아무것도~ 모른데요!”
그런 다음 파리는 멀리멀리 날아가 버렸어요.
곰돌이 워셔블은 파리가 한 말을 곰곰이 생각하다가 혼잣말로 중얼거렸어요.
“난 정말 바보인지도 몰라, 세상 모든 것들이 왜 사는지 다 알고 있는데 나만 모르고 있는 거라면…… 그래, 여기저기 찾아가서 물어보면 내가 왜 사는지 알게 될지도 몰라.”
워셔블은 소파에서 미끄러져 내려가서 뒤뚱뒤뚱 걷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걷다가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서 생쥐를 만났어요.
“안녕!”하며 곰돌이가 상냥하게 인사했어요.
“내 이름은 워셔블이야. 난 내가 왜 사는지 알고 싶어.”
생쥐는 뒷발로 서서 곰돌이를 위아래로 훑어보았어요.
“내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잡히지 않기 위해서 영리하게 굴어야 한다는 거야. 그리고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치즈와 베이컨을 잘 간수해야 한다는 거지. 넌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어?”
생쥐가 물었어요.
“아니. 난 그런 거 못해.” 라고 워셔블이 대답했어요.
“너 참 불쌍하구나. 그렇다면 네가 왜 사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생쥐는 한숨을 내쉬며 말한 다음 구멍 속으로 쏙 들어가 버렸어요.
워셔블은 어리둥절해하며 어깨를 한 번 들썩인 다음 집 밖으로 나왔어요.
집 앞에는 작은 정원이 있었어요. 그곳에서 닭이 이리저리 걸어 다니며 모래 속을 파헤치거나 꼬꼬댁하며 울고 있었어요.
“안녕! 곰돌아.”
워셔블을 본 닭이 구구거리며 말했어요.
“오늘 난 벌써 알을 두 개나 낳았어. 둥그스름하고, 속이 꽉 찬 아주 좋은 달걀이야. 너도 달걀이 보고 싶어서 온 거지, 그렇지?”
“사실은 그게 아냐.”라고 워셔블이 말했어요.
“달걀에 관심이 없다는 거야?”하고 닭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어요.
“응.”하고 워셔블이 말했어요.
“달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달걀을 낳는 것이야말로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이유야. 너는 도대체 왜 사는 거야?”
“나도 그것을 알고 싶어.” 워셔블이 말했어요.
“내 말을 잘 들어. 너도 나처럼 해봐. 달걀을 낳는 거야, 달걀을 낳으라고, 달걀을 낳아…….”
“아니, 난 그런 거 못해.”
그 말을 들은 닭은 “넌 정말 형편없구나!”라고 말하며 화를 벌컥 내고는 홱 돌아서 가버렸어요.
“어리석은 닭 같으니라고!”
워셔블은 혼잣말로 이렇게 중얼거리고는 집 밖으로 나갔어요.
워셔블이 밖에서 처음으로 만난 것은 때마침 더러운 웅덩이에서 목욕을 하고 있던 되새였어요.
“이것 봐! 뭘 그렇게 멍청하게 쳐다보고 있는 거야? 목욕하는 거 처음 봤어?”
되새가 소리쳤어요.
“아니. 나도 목욕은 많이 해봤는 걸. 그렇지만 그렇게 물을 철벅거리면서 해보지는 않았어.”
워셔블이 말했어요.
“그런데 너는 도대체 왜 나를 그렇게 쳐다보고 있는 거야?”
“내가 왜 사는지 알고 싶어.”
“나는 네가 왜 사는지 알고 싶은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어. 하지만 내가 좋은 방법 하나를 가르쳐주지. 그냥 나처럼 단순하게 살면 돼. 그런 골치 아픈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 거야.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고 나처럼 이렇게 신나게 놀면 돼. 그게 제일 중요한 거야.”
워셔블이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다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어요.
“그런데 난 내가 이렇게 몸도 다 닳아빠진 채로 왜 사는지 정말 알고 싶어.”
그러자 되새는 곰돌이를 비웃고는 그냥 날아가 버렸어요.
워셔블은 골똘히 생각에 잠긴 채 다시 타박타박 걷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걷던 워셔블은 꽃이 만발해 있는 작은 풀밭에 도착했어요.
작은 꿀벌 한 마리가 이곳저곳을 바쁘게 날아다니고 있었어요.
워셔블은 풀밭에 앉아서 그 꿀벌을 쳐다보면서 조심스럽게 말했어요.
“저기 있잖아……. 한 가지 물어 보고 싶은 게 있는데…….”
하지만 꿀벌은 “시간 없어, 시간 없어.”라고 말하면서 또다시 급하게 바로 옆에 있는 꽃으로 날아갔어요.
“넌 왜 사는지 혹시 알고 있니?”라고 워셔블이 물었어요.
“물론이지! 그런 것쯤이야 애벌레 때부터 알고 있었는걸. 부지런히 움직이고, 꿀을 모으고, 벌집을 만들기 위해서 사는 거야.”
“부지런히 움직인다고?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부지런하다는 것은 그냥 부지런하다는거야. 항상 뭔가를 하고 있는 거지. 언제나 열심히 일하는 거야. 절대로 게으름 피우지 않는 거지. 그게 어떤 건지 모른단 말이야?”
“아니, 난 그런 거 몰라.” 워셔블이 말했어요.
꿀벌이 화를 냈어요.
“이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을 시간이 없어! 지금 난 일하느라고 너무 바빠. 그러니까 어서 비켜 줘, 그렇지 않으면 너를 쏘아 버릴지도 몰라.”
워셔블은 벌한테 쏘이고 싶지 않아서 얼른 옆으로 비켜 주었어요.
초원 한가운데 파란 호수가 있었어요. 반짝이는 물결 위로 백조 한 마리가 멋진 흰색 깃털을 뽐내며 빙글빙글 돌고 있었어요.
“너 정말 아름답구나!” 라고 워셔블이 감탄하며 말했어요.
“나도 알아”라고 백조가 뽐내듯이 말하며 양쪽 날개를 펼쳐 보이자 백조의 몸은 마치 불룩한 돛처럼 보였어요.
“그런데 넌 왜 사는 거니?”라고 워셔블이 물었어요.
“그런 한심한 질문을 하다니! 나한테 가장 중요한 존재의 이유는 아름다움이야. 그거 말고 세상에 뭐가 있겠어?”
백조는 거만한 자세로 그렇게 말하고는 물에 비친 자기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무척 흐뭇해하며 다시 말했어요.
“난 벌써부터 내 존재의 이유를 잘 알고 있었어. 넌 어때?”
워셔블은 물에 비치는 자기의 모습을 보며 솔직하게 말했어요.
“난 그런 거 잘 몰라.”
“그렇다면 넌 세상을 살 필요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야.”
백조는 호수 쪽으로 몸을 돌려 닳아빠진 곰돌이에게는 눈길 한 번 건네지 않고 멀리 헤엄쳐 가 버렸어요.
호수를 지나자 이번에는 숲이 나왔어요.
워셔블은 숲 속으로 들어갔어요. 한참을 걷다 보니 나뭇가지 위에 앉아서 자꾸만 똑같은 소리를 내고 있는 뻐꾸기가 보였어요.
“너는 거기서 뭐하니?”워셔블이 물었어요.
“숫자를 세고 있는 중이야. 65, 66, 67…….” 뻐꾸기가 대답했어요.
“무엇을 세는데?”
“그냥 있는 것을 다 세는 거야. 나무, 나뭇잎, 솔방울, 날짜, 시간 같은 것들 말이야. 그런 것들 전 부 다 말이야. 68, 69, 70…….”
“그게 무슨 중요한 의미가 있는데?”
“당연히 중요하지!”뻐꾸기가 말했어요.
“언제나 숫자가 중요해. 셀 수 있는 것은 진실이니까. 셀 수 없는 것은 아무 소용도 없어.”
“그래? 그렇다면 혹시 나도 세어 줄 수 있니?”
워셔블은 기대에 가득 차서 물었어요.
“좋아, 그럼 한 줄로 서 봐.”
“그건 안 돼. 난 혼자뿐이잖아.”
“뭐라고? 그렇다면 넌 아무것도 아냐.”
뻐꾸기는 그렇게 말한 다음 멀리 날아가 버렸어요. 먼 곳에서 뻐꾸기가 뭔가를 다시 세는 소리가 들렸어요.
워셔블은 나무가 점점 더 울창하고, 더 어두운 깊숙한 곳으로 계속 들어갔어요. 넝쿨 식물들이 높은 곳에서 가지를 뻗고 내려와서 길을 막고 있었어요. 밀림이었거든요.
워셔블은 나무 위를 쳐다보았어요. 높은 나뭇가지 위에 원숭이들이 떼를 짓고 모여 앉아 신나게 떠들고 있었어요.
원숭이들은 워셔블을 보자 갑자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대장 원숭이가 나무 밑으로 내려와서 워셔블 앞에 떡 버티고 섰어요.
“여기서 뭘 찾고 있는 거야?”
대장 원숭이가 그렇게 말하며 이빨을 허옇게 드러내 보였어요.
“방해 할 생각은 없었어요. 저는 다만 제가 왜 사는지 말해 줄 수 있는 누군가를 찾고 있는 중이었어요.”워셔블이 공손히 말했어요.
원숭이들이 웅성대기 시작했어요. “왜 사는지 알고 싶대. 왜 사는지 알고 싶대…….”
“조용히 해!”라고 대장 원숭이가 고함을 친 다음 혀로 이빨을 핥았어요. 주위가 조용해지자 대장 원숭이가 다시 입을 열었어요.
“세상을 사는 유일한 목적은 모임이나, 클럽이나, 위원회라든가, 정당 같은 단체를 만들기 위해서야. 우리는 언제나 그렇게 하고 있거든.”
“왜 그래야 하나요?”워셔블이 물었어요.
“하나가 명령을 내리면 다른 것들은 그것을 따라야 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모두 엉망진창이 되어 버리고 말거든. 함께 사는 사회에서는 자신의 가치를 알기 위해서 자기 위에 누가 있고, 밑에는 누가 있는지 정확히 알아야 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되지. 넌 우리가 내리는 명령에 복종할 수 있겠어?”
“아니. 전 그런 거 못해요.”
“그렇다면 넌 우리와 함께 살 수 없어!”
대장 원숭이가 그렇게 소리치자 그때부터 다른 원숭이들은 닥치는 대로 아무 물건이나 워셔블에게 던지기 시작했어요.
워셔블은 너무 놀라서 뒤뚱거리다가 황급히 달아났어요.
밀림지대를 지나자 이제는 드넓은 초원이 나타났어요.
그리고 초원 한가운데에 서 있는 코끼리 무리가 보였어요. 코끼리들은 다들 뭔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런지 그들은 지혜로워 보였고, 행동도 왠지 믿음직스러웠어요.
“저…… 실례합니다. 제가 왜 사는지 누구 말해 주실 분 안 계시나요?”
워셔블이 약간 수줍어하며 말했어요.
코끼리들은 이마에 주름이 깊게 파인 얼굴로 워셔블을 에워싸면서 조용히 내려다보았어요.
“그것은 아주 심오한 질문이란다. 우리도 벌써 오래전부터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중이지.”
한 코끼리가 말했어요.
“그래서요? 그래서 결론이 나왔나요?”
“심오한 문제는 신중하게 생각해 봐야 해.”또 다른 코끼리가 말했어요.
“급하게 서둘러서는 절대로 안 되지. 그래서 우리는 우선 이런 결론을 내렸어. 우리가 그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라고 말이야.”
“하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생각만 해야 하는 건가요? 저는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생각할 수가 없어요. 지금 알아야 한다고요.”
“그렇지만 너도 다른 생물들처럼 영혼을 갖고 있지? 그렇지 않니? 만약 그렇지 않다면 네 가슴 속에 뭐가 들어 있지?”
세 번째 코끼리가 점잖게 끼어들며 말했어요.
“아직 자세하게 들여다보지는 못했지만 제 가슴속에는 톱밥과 스펀지 같은 것들이 들어 있는 것 같아요.”
워셔블이 솔직하게 말했어요.
“뭐라구? 아이쿠, 이런. 넌 진짜 살아 있는 생물이 아니로구나. 그렇다면 넌 영혼도 없이 그냥 짜 맞추어 놓은 물건일 뿐이야. 아무짝에도 쓸모없게 되면 그대로 휴지통에 버려지는 신세가 되고 마는 거지.”
처음 말했던 코끼리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어요.
오래되어 닳아빠진 곰돌이 워셔블은 비록 몸속에 톱밥과 스펀지만 가득 들어 있었지만 가슴이 너무너무 아팠어요. 그냥 버려지는 신세가 되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슬픔에 빠진 워셔블은 계속 뒤뚱거리며 걷기 시작했어요. 이제는 누구를 만나 물어 보고 싶은 생각도 나지 않았어요.
초원에는 차츰 돌과 모래가 많아졌어요.
워셔블은 피곤에 지쳐 어느 바위 그늘 아래에 털썩 주저앉았어요. 그런데 그곳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서 열심히 체조를 하고 있는 거북이가 보였어요. 거북이가 운동을 끝내고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 워셔블을 쳐다보고 말했어요.
“거기서 뭐해? 몸도 그렇게 뚱뚱한대 운동 좀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에이! 내 몸은 원래부터 이랬어요. 난 아무것도 바꾸고 싶지 않아요. 난 단지 내가 왜 사는지 알고 싶을 뿐이에요.”
“그거야 아주 간단하지. 우리는 가능한 한 오래 살기 위해 사는 거야. 난 이미 백 년도 넘게 살았지만 더 오래 살기 위해서 날마다 체조를 하고 있지.”
“그런데 왜 그렇게 오래 살려고 하는데요?”
“그야 뻔하지. 이렇게 계속 운동하기 위해서야. 너도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니?”
“아니요. 난 그러고 싶지 않아요.”
워셔블은 그렇게 말한 다음 계속 길을 걸어갔어요. 그렇게 한참을 가다 보니 사막이 펼쳐졌어요. 그곳에는 따뜻한 돌 위에 누워서 졸고 있는 도마뱀이 있었어요.
도마뱀이 한쪽 눈을 살며시 뜨더니 천천히 말했어요.
“햇빛을 가리지 말고 저리 비켜 줘.”
워셔블은 옆으로 비켜서며 물었어요.
“혹시 다 닳아빠진 곰 인형이 왜,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는지 말 좀 해줄 수 있니?”
그제야 도마뱀은 다른 한쪽 눈마저 뜨고는 워셔블을 유심히 쳐다보았어요. 그러고는 혀를 끌끌 차더니 하품을 하며 말했어요.
“네가 지금 찾아다니는 것은 존재하지 않아. 이 세상에 의미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모든 것은 다 지나가 버릴 뿐이야. 그러니까 그런 문제는 아예 잊어 버려. 친구야. 나처럼 여기 이렇게 햇빛 아래에 누워서 아무 생각도 하지 말아 봐, 아무런 생각도.”
그 말을 들은 워셔블은 따뜻한 햇볕 아래서 헝겊으로 기어 놓은 배를 한껏 드러내 놓고 누웠어요. 그런 다음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써봤어요. 시간이 좀 지나자 몹시 지루해졌어요. 하지만 그때였어요. 갑자기 귀에서 뭔가 긁적이는 것 같은 소리가 나지 뭐예요. 그 소리만 아니었다면 좀 더 오랫동안 조용히 누워 있었을 텐데 말이에요. 워셔블은 앞발로 귀를 후볐어요. 그러자 귀에서 귀벌레가 툭 떨어지더니 깜짝 놀라며 이쪽저쪽으로 바쁘게 움직이는 거예요.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해요. 다른 동물들처럼 진짜 귀를 갖고 있는 줄 알았어요.”
귀벌레가 말했어요.
워셔블은 “괜찮아”라고 다정하게 말했어요.
“누구나 착각할 수는 있겠지. 그런데 넌 다른 동물의 귀에 들어가서 뭘 하는 거야?”
“그 안에 틀어박혀 있는 거예요. 그 안에 둥지를 틀고 있다가 점점 더 깊숙이 파고 들어가면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게 되죠.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이유예요. 당신도 어느 곳에 둥지를 틀고 싶지 않나요?”
“글쎄, 나도 그렇기는 해. 그런데 너처럼은 하고 싶지 않아.”
그렇게 말한 다음 워셔블은 다시 뒤뚱거리며 걷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해서 워셔블은 다시 혼자서 넓은 사막을 타박타박 걸어가게 되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어딘가에서 스르륵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어이, 뚱뚱이, 어디를 그렇게 급하게 가는 거야?”
워셔블이 뒤를 돌아보자 두 눈을 반짝이고 혀를 날름거리는 방울뱀이 보였어요. 워셔블은 얼른 도망가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어요.
“그대로 가만히 있어, 꼬마야. 안 그러면 내 신경이 몹시 날카로워진단 말이야.”
방울뱀은 그렇게 말하고는 천천히 다가왔어요.
“자, 꼬마야! 너 참 잘 만났다. 넌 내 마음에 아주 쏙 들어.”
“고…고…맙습니다.”
워셔블은 더듬거리며 말했어요. “그런데 저는 지금 빨리 가봐야 할 데가 있어요.”
“그래? 어디를 그렇게 급히 가는 거지?”
“제가 왜 사는지 알아보러 가야 되거든요.”
그러자 뱀은 소름이 오싹 돋을 만큼 징그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어요.
“그런 것은 고민거리도 못되지. 너 같은 것들은 나한테 잡아먹히기 위해서 사는 거야. 뚱뚱아, 너를 보니 정말 식욕이 돋는구나. 음하하하, 그렇지?”
“잘못 보신 것 같은데요. 제 몸속에는 톱밥과 스펀지뿐이거든요.”
“뭐라구? 이런 젠장. 그렇다면 다른 것을 찾아봐야겠군.”
뱀은 실망한 어투로 그렇게 말하고는 인사도 없이 스르륵하고 사라져 버렸어요.
워셔블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짧은 다리를 이끌고는 최대한 빨리 그곳에서 도망쳤어요. 그러다가 옆구리가 아파서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살펴보니 눈앞에 가시덤불이 보였어요. 그런데 그 가시덤불 안쪽의 나뭇가지에는 비단실로 만들어진 작고 눈부신 주머니가 매달려 있었어요.
워셔블은 가만히 주머니를 쳐다봤어요. 바로 그때였어요, 그 주머니가 터지더니 나비 한 마리가 화려하고 아름다운 빛깔의 날개를 펼쳐 보이는 것이었어요.
“오! 정말 멋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지?”
워셔블이 감탄하며 말했어요.
“난 그냥 한 거야.”
나비가 속삭였어요.
“맨 처음에 난 알이었어. 그러다가 애벌레가 되었고, 그 다음에 번데기로 변했다가 이제 이렇게 나비가 된 거야. 우리는 항상 더 나은 존재로 발전하기 위해서 살거든. 넌 더 발전할 수 없니?”
“아니, 난 그런 거 못해.”라고 곰돌이가 말했어요.
“그러면 왜 사는데?”
나비는 그렇게 말하고는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가 버렸어요.
“글쎄 말이야. 나도 이제는 제발 그 해답을 알게 되면 좋겠어.”
그때 한 소녀가 그곳을 지나가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소녀는 무척 가난했나 봐요. 신발도 신지 않은 채로 여기저기 헝겊을 기운 헌 옷을 입고 있었거든요. 워셔블을 발견한 소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물어 보았어요.
“넌 이름이 뭐니?”
“난 워셔블이라고 해.”
“난 한 번도 곰인형을 가져 본 적이 없어. 그런데 넌 정말 예쁘구나. 난 네가 정말 좋아
내 곰인형이 되어 줄래?”
바로 그 순간, 톱밥과 스펀지로만 가득 채워진 워셔블의 가슴이 온통 따뜻한 기운으로 가득차기 시작했어요.
워셔블은 바로 “좋아”라고 대답했어요.
소녀는 워셔블을 안고 콧잔등에 입맞춤했어요.
그 순간부터 워셔블은 다시 누군가의 곰인형이 된 거예요.
그리고 둘은 정말이지 크나큰 행복을 느꼈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며칠이 지난 후 성가신 파리가 다시 소녀의 집으로 날아 들어왔어요. 파리는 낡은 곰인형을 보자마자 또다시 머리 주위를 빙빙 돌며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지요.
“너 뭐하러 사니? 바보래요~ 바보래요~ 아무것도~ 모른데요…….”
하지만 워셔블은 이번만큼은 가만있지 않고 제대로 응수해 주었어요.
‘찰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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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모모'의 작가가 쓴 동화에요. 끝에서 작가가 무척 고민하면서 결론을 내렸을거라 생각하니 웃음도 나오고, 다양한 인생에 대해서 말해주고요, 6학년 국어책에 일부 내용이 나오기도 하지요.
^0^ 하하하 정말 재미있네요.
처음엔 재미로 읽었지만, 작가님이 끝에 부분 강조하신게 생각나 다시 한번 천천히~~~ 두번을 읽었나봐요. 읽을수록 정말 많은 생각이 드네요. 처음엔 웃었지만 나중엔 내가 왜 사는지 제 자신에게 묻게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