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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배(군악5기-신병118기-Trumpet)-정말로 특이한 괴짜다. 해병대군악대에서 악기를 처음 배웠지만 최고의
연주자가 되겠다는 집념과 인내심,지구력이 결국 그를 재즈계의 정상으로 올려 놓았다고 보아야겠다.
그는 사령부군악대 시절 트럼펫을 잘못하니까 계속 찬밥 신세였다. 연주있을때에는 열외가 보통이고
포항사단으로 전출을 가기도 하고..... 이시절이 그에게는 와신상담의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필자와는 해병대군악대 동기생인 관계로 그의 활동 과정을 비교적 잘 알지만 그의 노력은 참으로 대단했다.
예편후에는 군악대 선배인 박종대(군악1기-미8군 공연단체 악단장)님의 악단에서 일하면서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매일 연습을 하고 어떠한 일이 있어도 흔들림없이 꾸준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남들보다 3,4년 늦게 시작한 연주라 동료들을 따라 잡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풀멤버밴드(Full Member Band-10인조내외의 축소된 빅밴드의 한국식 명칭)로 시작하여 나이트클럽 캄보를
거쳐 재즈 입문등 비록 늦었지만 정규 코스를 거쳤고 그보다 먼저 시작했던 음악동료들을 언제부터인가
앞서가기 시작했다. 그는 1973년 MBC-TV의 여대영악단과 1980년 KBS-Radio의 김인배악단을 거치는 동안
재즈활동도 별도로 꾸준히 했다. 그는 앞서 소개한 모던재즈의 강대관과는 다르게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소개되는 뉴재즈 분야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90년대 중반에는 오른손을 다쳐 연주불능의 처지가 되었는데
왼손으로 피스톤을 누르는 훈련에 집념을 갖고 노력한 결과 오른손에 손색없는 핑거링 테크닉을 구사하게
되었다. 이 또한 아무나 할수있는 일은 절대 아니다. 현재도 왼손으로 연주를 한다.
60대 중반인 지금도 활발하게 연주활동을 하고 있는걸 보면 이 또한 해병대 정신인가 보다.
음악경력
Seoul Free Music Trio(강태환<A.S>,최선배<Tp>,김대환<Perc.>)- [일본,독일등 해외 연주로 더 유명한 팀]
서울시향과 협연(1983)
Tokyo Meeting Jazz Festival(1985)
일본순회연주(NHK-TV출연, Tokyo FM-Hall 공연, Tokyo Santori Hall 공연)(1986)
서울올림픽 기념 국제 재즈 페스티벌 참가(1988)
일본초청 최선배 타이틀로 콘서트(1995)
일본 요코하마 재즈 페스티벌 참가(2002)
재즈修學: 미국 Double HighC in 37Weeks by Roger W.Spaulding 수료(1984~86)
출강: 동아방송대(1988) 단국대,동덕여대(1998~ )
음반: 최선배 재즈 트럼펫 독집 출반(일본에서 "Freedom" 98년 녹음 99년 출반)
(최선배 뉴재즈 트럼펫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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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국제가요제 그랑프리에 빛나는 인기가수 / 목회자 윤항기
돌아가는 삼각지로 유명한 작곡가 배상태
윤항기(신병110기-Drum)-1943년 충남 보령 출생
연예계에서 유명한 스타였던 부모님이 일찍 별세하신 관계로 어린 누이동생(인기가수 윤복희)을 돌볼힘이
없어서 20도 안된 나이에 군에 입대하게 된 눈물나는 사연이 있는 그가 해병대에 입대한것은 1960년 8월
신병 110기로 입대해서 포항사단군악대에 배치를 받고 드럼주자로 군복무를 하던 도중, 동생을 돌봐주려고
탈영을 했다가 6개월만에 동기생의 권유로 자수를 하고 다시 군복무를 마치고 예편하였다.
예편후에는 당시 세계적 열풍의 비틀즈 타입의 보컬그룹 "Key Boys"를 조직하여 미8군공연단체로서 대단한
인기를 얻었고 김희갑 작곡의 "해변으로 가요"를 발표하여 대중들에게 특히 젊은이들에게 우상처럼 인기있는
그룹이 되었다. 70년대에는 그룹을 떠나 솔로가수로서 활동하면서 대단한 인기가수로서 자리를 확고히 한다.
자신의 작사, 작곡이 대부분인 그의 곡은 발표하는 곡마다 히트를 하는등 인기 정상에 서게 되고 특히
1979년 서울국제가요제에서 자신의 작사작곡과 동생인 인기가수 윤복희의 노래로 함께 한 "여러분"은 대회
그랑프리를 차지하면서 지금도 국제가요제 최고의 명곡으로 자리매김하는 곡이 된다.
음악경력
가수, 드러머, 색소포니스트, 작사가, 작곡가.
1964년 남성 5인조 락 밴드(rock band) [Key Boys(키 보이스)]의 드러머로 데뷔.
1967년 솔로 가수 데뷔.
" 윤항기와 키 보이스" 를 결성하여 보컬리스트로 활동,
"윤항기와 키 브러더스"를 결성하여 보컬리스트로 활동함.-
히트곡으로는
별이 빛나는 밤에, 장미빛 스카프, 나는 어떡하라구, 이거야 정말, 다 그런거지 뭐, 노래하는곳에, 친구야 친구,
사랑하는 당신이, 여러분 外
" 여러분" 의 가수에서 여러분의 목회자로.. 윤항기목사
그런데 돌연 80년대 말 가수 윤항기는 팬들의 뇌리에서 사라졌고 지금은 우리 곁에 목회자로 돌아왔다.
음악목사 배출을 위해서 음악신학교도 설립하고 그 학교의 총장을 맡고 있는 윤항기 목사.
목회경력
미국 트리니티 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신학석사, 신학박사)
예음교회 담임목사
예음음악신학교 총장
2007 대한예수교장로회 개혁총연 총회장
(인기가수 윤항기)
배상태(신병117기-작곡)
1939년 경북 성주 출신으로 56년 대구 KBS 전속가수로 활동하다 서라벌 전문대에서 본격적인 작곡 공부를
했고 1961년5월 해병대에 입대한 후 김포여단 군악대를 거쳐 진해군악대에서 복무하다가 다른 부서로 파견
근무를 하게 된다.
진해군악대에 있을때에는 그가 평소에 작곡한 곡들과 진해시를 위한 "진해의 벚꽃놀이" 등을 위시하여 많은
신곡을 최대복(군악6기)님이 리드하는 해병대캄보밴드로 경화극장에서 신인가수들을 통해 신곡발표회를
열기도 했다.
예편후 1963년 9월 송춘희씨를 통해 ‘송죽부인’을 발표하면서 트로트 계열의 작곡가로 데뷔했다.
1967년 당시 무명에 가까운 배 호(악단 드럼주자)에게 취입시킨 "돌아가는 삼각지" "안개낀 장충단공원"
그후의 "마지막 잎새" 등이 대단한 히트를 하면서 배 호는 지금까지도 팬들이 아쉬워하는 대 스타가 되었고
작곡가 배상태 역시 유명 작곡가의 계열에 당당히 진입하게 되며 1960년대 후반 가요작곡계의 스타가 되었다.
(작곡가 배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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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관악계의 지도자로 협회에서 활동중인 김영방, 전동혁
김영방(해간29기 -군악대장-소령)
연세대학교음악대학 졸업
해병대군악대 입대(1959)
해병대군악장교(1960 해병대간부후보생교육 수료후 사령부군악대)
해병대군악대장(1962 김포여단 -1962 진해기지-1967~1973 사령부)
진해시가 작곡(1963년 진해군악대장 시절)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강사
한국관악협회 창설(초대 사무국장)
제1회 동경 아시아 관악제 한국대표로 지휘
미국으로 이민(1976~ )
백제예술대학 교수(1993~2002)
백제예술대학 명예교수 (~현재)
일본고등학교 취주악경연대회 심사위원
한국 마칭밴드협회 회장
세계마칭밴드 경연대회 한국유치(제주도)
중국 콘서트밴드 경연대회 심사위원
아시아태평양(APBA)밴드협회 창설(부회장)
한국관악총연합회 이사장(현재)
(시가행진 후 여학생으로부터 꽃다발을 받는 김영방 대장-1961.10.01.국군의 날)
전동혁(군악15기-신병194기-Horn)
1946년 서울 출생
서울음대 기악과 (호른) 졸업-단국대 대학원 지휘과 졸업(1964~1987)
연주단원: 예그린악단,국립교향악단,서울시향(1970~1977)
음악감독: 롯데월드 예술단(1988~2006)
단장: 코리아 캣츠 재즈오케스트라(1995~ 현재)
지휘: 서울 청소년교향악단, 서울심포니오케스트라, 코리아심포니오케스트라,
서울유스심포니,모던팝스오케스트라,
출강: 단국대, 세종대, 강릉대, 관동대, 강원대, 강남대.(1981~1991)
수상: 한국예총 예술문화상 음악부문 수상.(1994)
한국음악협회 이사-감사-부이사장 역임(1985~2005)
한국마칭밴드 연맹 회장(1996~2004)-現 명예회장
한국예총 정책연구위원-감사-수석부회장(2001~2005)
한국예총 부회장 (현재)
[전동혁 한국 예총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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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국악계에서 뛰어난 창작 활동을 한 백대웅
백대웅(해간35기 -군악대장-대위)
1943년 전남 광주 출생
1961년 광주일고 졸업
1966년 서울음대 국악과(작곡전공) 졸업
1981년 서울음대 국악과 석사
1966~1969년 해병대 군악대장
1971~1983년 KBS PD
1984~1987년 전남대 예술대 국악과 조교수
1987~1998년 중앙대 음대 한국음악과 교수, 음대 학장 역임
1998~2008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초대 원장 역임(2001년까지) 및 음악과 교수
2004~2005년 중국 옌볜(延邊)대 예술대,
일본 오키나와(沖繩) 현립예술대에서 연구
문화재위원회 제4분과(무형문화재) 위원
저서:'전통음악의 보편성과 당위성'(2005년 지식산업사)
'전통음악의 이면과 공감'(2004년 〃)
'한국전통음악분석론'(2003년 어울림)
'전통음악의 랑그와 파롤'(2003년 통나무)
수상: 작품 '회혼례를 위한 시나위'(1986년 대한민국 작곡상 국악부문),
음악극 '영원한 사랑 춘향이'(2004년 대한민국 국악부문 작곡상 대상)
작품: 북청사자놀이, 남도환상곡, 회혼례를 위한 시나위, 용상, 길군악, 남도아리랑,
백대웅님은 한국의 국악을 국악관현악화하는데 있어 서양음악이론과 국악이론을 잘 조화시켜 외국인들도
이해할수 있는 분위기의 국악관현악 이론을 정립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하겠다.
"한국전통음악의 선율구조" 라는 그의 획기적인 논문이 발표되면서 또 많은 작품 발표를 통해서 그동안
행해오지 않던 국악의 단순선률에 서양식 화음방식을 도입하는것과 국악관현악단이 서양식 오선 악보를
사용케 하는 등 국악의 세계화에 앞장 선 국악작곡가로서 국악창작계의 거목이라 아니할 수 없다.
2008년도 1학기를 끝으로 교수정년퇴임을 맞이했지만 앞으로 그에게는 마음놓고 창작에 전념할수 있는
시기가 바로 지금부터일것 같다.
[국악 창작의 명인 백대웅 교수]